달콤한 갈색 쿠키 (어이김씨)



구청에서 오늘도 열심히 민원을 처리하고 있던 철웅은 퇴근 후 진저리 난다는 얼굴로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최근 들어 구내에 유일한 공원에 실장석이 들끓게 되면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구내에 유일한 공원인 만큼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데 실장석 일가가 서너 세대만 있으면 모를까 실장석 일가 백 세대를 코 앞에 두게 됨으로서 공원 곳곳에 운치와 동족식 당한 독라 실장석의 파편등이 즐비 하게 되었고 그조차도 모자라 이제는 공원을 넘어 탁아 시도 라던가 식당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엎는등 당장 구제 하라는 민원이 미친 듯이 쏟아졌기 때문이였다.

몰론 그 뿐이라면 당장 구제업체에 연락해서 날 잡고 실장석들을 구제 하면 그만이였지만 어떻게 된건지 구제 계획이 시내 애호파 카페에 누출 되면서 구제 하지 마라, 다른데로 방사 하라, 공원에 실장석 급식소 설치하라 라는 끔찍한 민원들이 쏟아져 이도저도 못하게 되었다.

"에잇, 십헐 보나마나 김미영 주임이 카페에 흘렸겠지. 실장맘이니깐."

가뜩이나 프사도 뒤록뒤록 살찐 실장석으로 한 작자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넘치고 넘쳤다. 철웅은 답답한 마음에 담배 한대 피우려다가 담배가 떨어진걸 깨닫고 욕지꺼리를 내뱉으며 원룸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때마침 복도를 지나가고 있던 유학생 토시아키를 만날수가 있었다.

"앗, 철웅ㅡ상. 좋은 저녁입니다."

"아, 토시아키씨. 좋은 저녁입니다. 이제 출근 하시나요?"

"아뇨, 오늘은 수업만 하는 날이라서요. 마실 물이 떨어졌길래 생수 사러 가는 길이였습니다. 철웅 상은?"

"아, 저는 담배 사러 가는 길입니다."

"오, 그럼 근처 편의점으로 가시겠군요. 같이 가죠."

"그러죠."

두 사람은 자연스레 근처 편의점으로 걸어갔다. 바로 근처에 있기에 얼마 걸리지 않았다. 철웅은 평소에 피던 담배를 주문하고 덤으로 소주 몇병과 안주를 샀다. 먼저 계산을 마친 토시아키는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철웅 상은 술 전혀 안하시던 분 아니셨나요? 그런데 술을 이렇게나?"

그러자 철웅은 멋쩍은 얼굴로 변명 했다.

"하하, 전혀 안 마시는건 아니라서요. 좀 힘든 일 있을때마다 먹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무슨 일이긴요. 저 같은 박봉의 공무원은 항상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긴 하잖아요."

토시아키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철웅의 비닐봉투 안을 내려다 보았다. 소주 몇병에 술안주로는 핫바 두개. 술안주로 하기엔 너무 부실했다. 토시아키는 타국 생활 하면서 외국인으로서 어려운 일 있을때 자신을 도와준 친절한 이웃 청년을 외면 하지 않았다. 잠시후 토시아키는 따뜻하게 데운 고기감자와 일본주를 철웅에게 대접 했다.
철웅의 입이 풀린건 그때부터였다.

"아하,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해 합니다. 일본에서도 그런 일이 왕왕 발생하긴 하죠."

"넵, 딸꾹! 안 그래도 오늘 공원 근처 먹자 골목 쪽 자영업협회에서 몰려 나와서 한바탕 따지고 들어왔는데 그 사람들 나가고 1시간 뒤에 XX시 실장석 애호단체에서 몰려나와서 깽판을 치니깐... 아니 진짜 그 미친 실장맘들 씨발 지네 집에 데려가지도 않을 작자들이 공원에서 노상 생활 하는 실장석들이 불쌍하지도 않냐고 난리 치는데 그럼 지들이 데려가던가... 딸꾹!"

"안 그래도 제가 일하는 식당 사장님도 그것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죠. 식재료를 대량으로 들이는데 포장 된거면 괜찮지만 배추나 양파 같은건 실장석들이 한번씩은 건드려 보니깐요.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통에도 매일 같이 달라붙어 있어서 항상 쫒아내는게 일이에요."

철웅의 한탄에 토시아키도 동감한다는듯 자신도 한잔 들이켰다.

"몰론 우리도, 구청도 실장석들 구제할 마음 가득하죠. 그런데 애호 단체에서 저렇게 민원 쳐넣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개인적으로 뭘 어찌 해보시려는 분이 있는데 애호파 그 인간들이 단체로 몰려가서 못살게 구니 뭘 하지도 못해요."

"......철웅 상,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들어 보실래요?"

토시아키, 한국에 유학 오기 전 일본 열도에 명성이 자자 했던 학대파가 눈 앞의 불쌍한 공무원에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이주일 후



온통 운치 투성이가 된 공원 한복판에서 한 남자가 무언가를 실장석들에게 배포 하기 시작 했다. 생김새는 실장 푸드와 같으나 색깔은 애호파들이 평소 뿌려대던 싸구려 녹색이 아니라 연갈색의 무언가였다. 당연히 실장석들은 냅다 받아 먹기 보다는 이 낯선 무언가에 대해 경계를 했다.
그도 그럴것이 음식점들이 자력 구제 하겠다고 음식물 쓰레기에다가 코로리를 섞어 버리면서 그 코로리를 먹고 죽은 실장석이 최근에 몇몇 있었기 때문에 먹는거라면 운치도 먹는 실장석들이 이 낯선 무언가에 대해 선뜻 입을 가져다 대지 못하는 것이였다.

"레후~ 평소의 운치 색깔이 아닌 땅씨의 푸드레후~"

"우지챠! 그런건 함부로 먹는게 아닌레츄!"

"그런테치! 마마가 음식 함부로 먹지말란테치!"

"그치만 오네쨩타치, 저 땅씨 푸드는 무언가 고소하면서 씁쓸하고도 아마아마한 냄새가 나는 레후! 분명 천상의 아마아마 인레후!"

코가 기가 막히게 좋은 모양인지 저실장 한마리가 갈색 푸드에 달라 붙으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마마로부터 교육이 잘된 모양인지 곧바로 자매들에게 제지 되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계속해서 실장석들에게 푸드를 배포 하고 권유 했다.

"어이ㅡ, 실장석들 이게 요새 새로나온 초ㅡ세레브한 푸드라고? 아마아마 하니깐 한번 먹어봐."

그 말에 한 성체 실장이 갈색 푸드를 하나 집어 들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저실장이 한 말대로 고소하면서도 씁쓸한, 그리고 숨기지 못하는 아마아마한 냄새가 맡아졌다. 한번 먹어볼까? 이성의 끈이 끊어지려 했지만 성체 실장은 나름대로 공원 생활을 오래한 실장석, 실장석은 옆에서 질질 침을 흘리고 있는 독라를 한 대 쥐어 팬 후 강제로 입 안에 집어 넣었다.

"그만하란데샤앗!"

독라 실장은 저항하려 했지만 이어지는 명치로의 한방에 결국 입을 열고 갈색 실장 푸드를 먹고야 말았다. 입 안에 푸드가 들어오자 본능적으로 씹고야 만 독라 실장은 뱉으려 했지만 이어지는 엄청난 단 맛에 끔찍한 교성을 내지르며 바닥에 떨어진 실장 푸드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우효오오오!!!! 조금 텁텁하긴 하지만 극상의 아마아마인데스! 세레브 푸드인데스! 이거라면 하루종일도 먹을수 있는데스!"

그 모습에 처음 독라 실장을 팬 실장석은 즉시 독라 실장의 옆구리를 쥐어 팬후 세레브 푸드를 하나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허겁지겁 바닥을 쓸었다. 그러자 그것이 시작이 되어 곧이어 공원 공터에 있는 모든 실장석들은 노소 막론하고 이 '안전한' 실장 푸드를 줍기 위해 악전고투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자는 그런 실장들을 말리면서 푸드는 얼마든지 더 있으니 싸우지 말라고 말했다.

"어이어이, 푸드는 얼마든지 있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성인 남성의 절반만한 포대기에서 푸드들을 양껏 퍼올려 실장석들에게 나눠졌다. 그때였다.

"저기요!!!"

늙지도 않았지만 젊지도 않은 한 애호파가 남자를 향해 씩씩거리며 다가갔다. 애호파가 씩씩 거린 이유는 최근 들어 학대파가 코로리를 콘페이토 라며 뿌린 사례가 있기 때문에 그런건 아니고 비싸지도 않고 쿠펑에서 가장 싸게 파는 실장 푸드를 기껏 들고 왔더니 왠 잡놈이 실장 푸드를 자기 대신 나눠주기 때문이였다.
아니 저놈이 뭔데 내가 성취할 알량한 우월감을 못 누리게 하는거지? 게다가 실장석들은 내가 실장 푸드를 나눠줄때는 저렇게 좋아 하지도 않았는데 저 남자가 뿌려주는건 왜 저렇게 좋아하고 ㅈX이야?

"아, 주민분이십니까?"

"저는 XX시 법인 실장석 권리 협회 직원 입니다. 누구신데 왜 공원에서 함부로 실장 푸드를 배포 하시는 건지? 함부로 배포 하시면 큰일 나시는거 아세요?"

법인도 아니고 협회도 아니고 직원도 아니지만 애호파는 상대방이 주눅게 하기 위해 자신을 그렇게 칭했다. 그러나 남자는 주눅 들기는 커녕 오히려 활짝 웃으면서 애호파한테 인사를 나눴다.

"아, 안녕하십니까! XX시 법인 실장석 권리 협회라면 저도 이름을 많이 들어봤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하무라뾰 실장 푸드 만드는 업체 직원인 구라다 요시키야 입니다."

남자는 즉시 지갑을 꺼내 명함을 애호파에게 건네줬다. 그러고는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애호파는 얼떨결에 명함을 건네받긴 했지만 남자에게 명함을 교환하지 못했다. 당연하겠지만 변변찮은 알바조차 못하고 생계급여로 살아가는 입장이라서 명함이고 뭐고 그런게 없기 때문이였다.

"아, 저는 오늘 휴일이라 지갑을 가져오지 않아서..."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궁색한 변명 밖에 없었다.

"그러시군요. 그나저나 함부로 배포하시면 안된다는게 무슨 말이신지요?"

"...아, 저희 협회에서 실장석들을 먹이 급여를 통해서 개...개체수 조절을 하고 있는 입장이거든요. 그래서 먹이 급여도 철저하게 스케쥴을 짜서......"

"그런가요? 그런데 제가 이 공원에 들어올때 입구에서 실장석들이 굶어 죽고 있으니 먹이를 나눠 줘야 한다고 후원 계좌가 적힌 전단지를 보았는데...."

남자는 품 속에서 전단지를 꺼냈다. 최대한 잘 만드려 했지만 전단지용 두꺼운 종이가 아닌 A4용지에 코팅 한게 다인 조잡한 전단지였다. 특이하게도 후원금 상한이 적혀져 있는데 999만원까지만 적혀져 있고 그 이상은 환불 한다고 적혀져 있었다. 당연하지만 탈법의 의도가 명백한 전단지였다.

"아 그건 저희 협회에서 후원자 모집을 하기 위해 배포한 전단지 입니다. 아무튼 먹이 급여는 함부로 하시면 안됩니다."

애호파는 그렇게 말한 후 협회에 보고 하겠다며 자리를 쨉싸게 떠났다. 그리고 남자, 토시아키는 그런 애호파의 등을 비릿한 미소로 배웅했다.



계획은 이러했다.


토시아키는 철웅에게 실장석들을 대량으로 구제 할때는 코로리 같은 것도 있지만 먹이를 못먹게 해서 아사 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아니, 토시아키 씨. 그게 말이 되나요? 저 아귀들이 못먹게 할 수 있나요?"

"요는 이렇죠, 실장석들을 특정한 먹이에 빠지게 해서 그 먹이가 아니면 다른 먹을 것에 눈독을 들이지 않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일본에서 꽤 자주 쓸 정도로 유효해요."

"특정한 먹이라뇨?"

"실장석들은 입만 열면 스시니 스테이크니 노래를 부르지만 실제로 단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아, 그럼 각설탕 같은걸로요?"

"아니요. 철웅 상, 수크랄로스 라고 아십니까? 설탕의 600배나 넘는 단맛을 자랑하는 인공감미료요. 이런걸 먹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알다피시 들실장석들은 평소에 쓰레기 같은걸 먹고 사니깐 단걸 먹으면 평소 먹던걸 잘 안먹으려 해요. 설령 굶어 죽을 지경이여도 말이죠. 설탕의 600배면... 짐작이 가시겠죠?"

"호오...."

흥미로운 이야기에 절로 술기운이 가신 철웅은 허리를 곧두세우고 토시아키의 말에 경청 했다.

"이것들을 싸구려 실장 푸드에 뿌리는 방법도 있긴 한데 문제는 싸구려 실장 푸드라도 최소한의 영양가가 있어서 실장석이 그렇게 빨리 굶어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본 구제 업체들은 어떤 방법을 썼냐. 진흙에다가 수크랄로스를 섞어서 푸드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어, 그거 혹시 진흙 쿠키?"

"예, 그리고 당연하지만 진흙은 영양가가 없고 수크랄로스 또한 칼로리가 없어요. 그렇지만 단거에 환장하는데다가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은 실장석들은 배고프면 배고픈대로 이 진흙 쿠키를 계속 먹으려 들겠죠."

토시아키는 철웅에게 메신저로 해당 정보가 잘 기입된 일본의 구제업체 블로그 주소를 보냈다. 철웅은 일본어가 가능했다. 다음날 철웅은 출근을 한 후 점심 시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찬가지로 실장석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상사에게 같이 식사라도 하자고 권유 했다.

"어? 김 서기 왠일이야? 같이 식사라도 하자니?"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한번 들어보실래요?"

철웅은 청국장 향기가 옷에 배든 말든 어젯밤 토시아키에게 들은 이야기를 간략하게 요약하여 팀장에게 알려줬다. 구청 환경과에서 나름 짬밥이 쌓인 덕분에 실장석의 생태에 다소 알고 있는 팀장은 이야기가 끝나자 다음에 같이 돈까스 먹으러 가자고 대답했다.
그후 일은 일사천리였다.
철웅과 팀장은 비밀을 유지 하기 위해 구청장과 독대하여 이야기를 나눴고 표면적으로 이주 방사 및 개체수 조절을 위해 실장석 푸드 제조 라는 명목으로 예산을 동원 했다. 업체는 실장 푸드에서 코로리 까지 폭 넓게 제조하기로 소문난 이노옴 실장석 농장 법인이 선정 되었다.
진흙으로 실장 푸드를 만드는 것에 난색을 표할줄 알았지만 농장 법인 대표인 이 사장은 한번 해볼만 하다며 혼쾌히 수락 했다.



그리고 진흙 쿠키를 배포한지 3일 후...



"마마, 배고픈테치."

"먹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배고픈데스?"

"닝겐상이 주는 세레브 푸드는 너무 아마아마해서 먹을때 먹은줄 모르는테치!"

친실장은 고민 했다. 세레브 푸드야 닝겐상이 많이 줘서 여유가 좀 있지만 문제는 자신 포함 해서 자들이 이 세레브 푸드만, 그리고 많이 먹는 바람에 내일 먹을 분량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몰론 좀 생각이 있는 실장이라면 좀 아껴 먹는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문제는 이 생물들이 실장석들이라는 것이였고 또 이 공원에는 그걸 깨달을 정도로 현명한 실장석이 없었다는 것이였다.

"아무래도 내일부터라도 좀 많이 얻어야 하는데스."

"마마, 그럼 이 세레브 푸드 먹는테치?"

"안된데스, 그건 내일 아침 먹어야 하는거데스."

"하나만 먹으면 안되는테치?"

"그러면 내일 아침에 세레브 푸드 없어서 보존식 먹어야 할텐데 그걸 먹을것인데스?"

친실장의 말에 칭얼거리던 자실장들은 입이 합죽이가 되었다. 사실 실장석들이 공원과 공원에서 얻는 먹이는 뻔했다. 운이 좋다면 인간이 떨어뜨린지 얼마 안된 음식물이 가장 신선 했고 대체로 애호파가 나눠주는 가장 개싸구려 실장푸드와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건져낸게 실장석들의 주된 식사였다.
예전 같으면 그들은 이런 쓰레기 같은... 아니, 쓰레기라도 기꺼이 먹겠지만 요 몇일간 인공감미료 범벅인 진흙 쿠키만 먹다보니 자연스레 냄새 나는 기존의 먹이에 등을 돌리게 된 것이였다.

"독라 노예는 이거나 먹으란 데스!"

"오로로롱, 와타시도 세레브한 푸드를 먹고 싶은데스."

성급한 어느 일가의 경우 겨우내를 나기 위해 만들어낸 보존식들을 독라 노예나 먹는거라며 운치굴을 향해 투기 하기도 했다.

"자, 그러면 내일 아침에 닝겐상한테 세레브 푸드를 받으러 가는데스."

"마마, 잘자라는테치."

"배씨가 꼬록꼬록하는 레치."

"힘이 없는 레후...."

당연하지만 진흙 쿠키는 먹으면 당장은 배는 차지만 영영가가 별로 없기에 몇일 동안 이것만 먹고 산 공원의 실장석들은 점차 하나둘씩 비실거렸다. 수크랄로스? 제로 칼로리 라고 들어봤나?



진흙 쿠키 배포한지 일주일 후,


"배...고...파..."

파킨!

마침내 한 성체 실장석이 최초로 쓰러짐과 동시에 공원 내 실장석 사회은 종말을 맞이 했다. 실장석들은 이 지독한 허기를 달래기 위해 봉지 가득히 담아온 세레브 푸드들을 양껏 먹어 댔다. 얼마나 먹어 치웠는지 너무 많이 먹어서 게워낼 정도였다. 그러나 세레브 푸드, 진흙 쿠키들은 영양가가 없기에 배는 부르나 뇌에서는 계속해서 영양을 요구 하고 있었다.
배부른데 배고프다ㅡ 라는 모순적인 상황이 현재 실장석들의 상황이였다. 이미 엄지 실장이나 저실장 같이 어린 개체들은 5일째에 허기를 견디지 못해 위석이 파킨 해버렸고 그 다음부터는 자실장이나 독립을 앞둔 중실장들이, 그리고 곧이어 친실장들도 쓰러졌다.
운치굴에서 운치를 먹고 살던 저실장들과 독라, 달마 노예들은 영양가 없이 달기만한 운치를 양껏 먹고 굶어 죽었다.
맨 처음 오동통통 살이 오른 모습은 온데간데도 없이 지금은 그저 배만 볼록 튀어나왔다. 그것은 이들이 진흙 쿠키만을 배고프다며 진흙 쿠키만을 끊임 없이 먹어 치웠기 때문이였다.

"....아...마...아마....테스...."

"천상의....아마아마...데프프......"

"아마아마...."

"배고프니깐 더.... 더....."

너무 먹어치운 나머지 게워냈지만 그것마저도 끊임없이 주워먹었다. 실장석들은 이제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소중한 자실장들이 쓰러져 죽던 말던 계속해서 달콤한 진흙 쿠키만을 먹어치웠다.
희안하게도, 이들은 아직까지 보관 하고 있던 보존식만은 건들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해가 밝아올때 공원은 옛날처럼 조용해졌다.








어느 겨울날... 행복한 엄지실장 (ㅇㅇ(220.118))



개같이 추운 겨울 어느날 아침 10시
레찌이~
엄지실장 미도리는 느즈막히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다.
실장석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계절인 겨울
먹을것도 없고 날씨는 춥고 매일 같이 굶어죽고 얼어죽는것이 일상인 계절

하지만 미도리가 일어난곳은 실장석들이 매일같이 죽어나가는 공원 같은곳이 아니다.
이곳은 토시아키의 집 베란다 한구석에 놓인 플라스틱 수조
수조 한구석에 놓인 작은 과자 상자가 미도리의 침실이다
특별히 난방장치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일단 베란다 창문이 찬바람은 막아준다.
그리고 수조는 작은 환기구멍만 뚫려있어 냉기를 막아주고 있고
사방이 보온재로 둘러싸인 과자상자안에는 목욕용 두툼한 수건이 바닥에 깔려있고
미도리는 그 안에서 낡은 수면양말속에 들어가서 밤을 보내는것이다.

후끈후끈... 하다고는 할수 없지만
보온재와 두툼한 수건바닥에 수면양말을 침낭처럼 사용하면
그럭저럭 아늑하게 잠을 잘수 있는 공간이 되는것

상자에서 나온 미도리는 레찌레찌 거리며 수조 한구석에 놓인 화장실로 아장아장 걸어간다
화장실이라고 해봐야 수조 한구석에 구멍을 뚫어 둔것
푸드드득
엉덩이를 까고 총구에 힘을 주자 운치가 쏟아진다

보통의 운치는 설사에 가까운것이 보통
하지만 미도리가 먹는 사료는 엄지용 특수사료라 토끼똥같이 둥그런 놈들이다
배설의 쾌감은 설사쪽이 더 크지만 어치피 공원에서 주워진 미도리에게 선택같은건 없다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채 볼일을 마친 미도리는 옆에 놓인 물티슈통에서 물티슈를 하나 꺼낸다

레찌잇!

이것도 엄지실장전용 물티슈라 약한 힘으로도 슉하고 뽑여져 나온다.
물티슈를 고간사이에 넣고 양손으로 슥슥 문지르는 미도리
쾌감이 느껴지는지 약간 얼굴에 홍조를 띠면서 고간세척을 마무리한 녀석은 휴지를 운치구멍에 넣는다
처음 이집에 왔을때는 운치를 싸고난후 렛츙~ 하면서 아첨으로 닦아달라고 했었지만
돌아온건 방금싼 운치가 주사기로 다시 입으로 쑤셔넣어지는 학대였다
게복...게보보복... 거리면서 며칠간을 당하고서야 간신히 물티슈를 사용할수 있게 되었다.  

레찌 레찌 레찌 레찌

배설을 마치고 걸어가던 미도리의 눈이 창밖으로 향한다.
폭설이다. 하늘에서 솜뭉치가 퍼붓듯이 쏱아지고 있다.
바로 밑 공원에서는 벌써 얼어죽은 실장석 몇마리가 널부러져 있는게 보인다.

한달전전 미도리가 주워지던 그날도
이렇게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진작에 친실장에게 먹혀버린 구더기들
그리고, 이제 미도리 마저 먹힐 위기에 처했을떄 마침 굶주린 독라들이 쳐들어왔고
친실장에 독라들에게 뜯어먹히는동안 미도리는 간신히 도망쳐 나와
공원 화단 경계석에 쓰러져있다가 마침 술에 취해 지나가던 토시아키에게 주워진것이다

꾸르륵~

운치를 싸고 나니 여지없이 배꼽시계가 울린다
프프프... 거리며 수조 한구석의 접시로 걸어가는 미도리
접시에는 엄지실장용 푸드가 한가득 쌓여있다.

처음에는 한끼분량으로 몇알씩만 넣어주던 토시아키는
이것도 귀찮았는지 며칠에 한번씩 접시에 한무더기를 부어넣고 가는것이다

데챱 데챱... 쩝쩝

네발로 엎드린 미도리는 게걸스럽게 푸드를 먹어치운다
싸구려 재료로 만든 푸드이지만 합성감미료가 잔뜩 들어간 놈이라 맛은 좋아서
운치굴에서 살던 미도리에게는 천상의 음식이나 마찬가지다
어차피 푸드 이외 다른음식은 주지도 않으니 역시 선택의 폭같은건 없지만...
성장억제제가 들어가 있어 미도리의 키는 한달전과 다름이 없다.

물론 미도리도 식탐이 없는것은 아니다
2주전 토시아키가 먹는 치킨을 보고는 황홀한 냄새에 본능적으로 광분해서 
자기도 달라고 수조를 두드리며 
레짜아악~ 떼를 쓰다가 온몸을 수십번 쥐어박히고 난 후에는
다시는 토시아키의 음식에는 눈을 돌리지 않게 된것이었다.
정말 죽기직전에야 학대를 멈춘 토시아키는 비누곽에 회복용 드링크를 부은후
그속에 미도리를 던져 넣었다.
...자그만치 3일이 지나서야 간신히 눈을 뜰수 있었다.

푸드를 배불리 먹은 미도리는 레에~ 하고 만족한 소리를 내고는
옆에 달린 급수기에 혀를 갖다대고 할짝할짝 핥기 시작한다
그냥 수돗물일 뿐이지만 공원에 있을떄는 이런 신선한 물을 마신다는건 상상도 못할일이었다
친실장이 떠오는 페트병의 물은 친실장과 춘자들의 몫이었으며
자신은 운치를 핥으며 그 수분으로 간신히 목을 축일수 있었던 것이다

밥 먹고 목을 축인 미도리는 다시 과자상자로 걸어간다
레...레칫!
머리가 비대한 가분수의 몸으로 아장아장 걸어가다보니 휘청하고는 넘어졌다
하지만 비명도 지르지 않고 아무렇지 않다는듯 다시 일어나는 미도리
수조 바닥에는 햄스터용 톱밥이 넉넉하게 깔려있어 아무리 넘어져도 다칠일이 없다
게다가 이 톱밥은 보온재 역할도 하고있어 한겨울에도 쾌적하게 생활할수 있는것이다

다시 과자상자로 돌아간 미도리는 수면양말안으로 기어들어간다
아직까지 아까의 체온이 남아있어 따뜻하다
어차피 엄지실장이 할일이라고는 먹고 자고 싸는일 밖에 없다
따뜻한 양말속에서 레에츄~ 레에츄~ 거리면서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든다

렛츙~
몇시간만에 일어난 미도리가 고무공을 굴리며 신나게 놀고 있다
수조안에서 가지고 놀것은 이것이 전부이다
키가 5센치 밖에 안되는 미도리이지만
좁은 햄스터용 수조에서 공을 굴리다보면 금새 벽에 부딫치게 된다
보통의 경우라면 좁은 수조에 분노하며 마구마구 짜증을 내야하지만
미도리는 이내 반대쪽 벽으로 공을 굴려서 가면서 신나하는것이다

사실 3주전 좁은 수조에서 꺼내달라며 새벽에 레쨔아아! 거리며 소리지르고
수조벽을 탁탁 두드려대던 미도리였지만
덕분에 새벽에 잠이 깨버린 토이아키는 격분해서
그대로 미도리를 수조에서 꺼내 베란다 바닥에 던져버린것이었다

그대로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버린 토시아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무시무시한 겨울칼바람
방금전까지 따뜻한 수조안에서 안락하게 살았던 미도리는
수조에 다시 넣어달라며 필사적으로 문을 톡톡 두드렸지만
토시아키는 커튼을 쳐버리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가사상태로 베란다 바닥에 웅크린채 꽁꽁 얼어버린 미도리는
드라이기로 1시간 넘게 녹여서야 간신히 눈을 뜨게 되었던것이다.
이후로는 목욕을 위해 수조에서 꺼내는것도 무서워하게된 미도리
이제 이 엄지에게 수조밖은 지옥이며 수조안은 안전하고 안락한 천국인것이다

드르륵~
베란다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토시아키가 들어온다
깜짝놀란 미도리는 무언가 학대를 당하는것이 아닌가 살짝 쫄았지만
그는 수조안에 뭔가를 툭 던져넣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레에~ 레.... 레짜아악!!!

잠시 어리둥절하던 미도리는 신나서 그것으로 달려든다
그건 우지차의 모양을 본따서 만들어진 봉제인형이었다
본능적으로 우지차와 깊은 유대관계를 가지게 되는 엄지실장
우지차 인형을 끌어안고 프니프니를 해주며 좋아서 난리다.

좁디좁은 플라스틱 수조안에서 갇혀지내는 생활
매일매일 같은 푸드만 먹고 지내는 생활
고무공 하나와 우지차 인형밖에 없는 생활
하지만 지금 미도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지실장이다.








프랑스와 실장석 (ㅇㅇ(211.243))



때는 1789년 5월.

프랑스의 국민들은 지역별로 다른 통치제도와 법률, 또 통제를 받지 않는 징세청부업자들의 갈굼에 운치굴 자판기처럼 극한까지 쥐어짜이고 있었다.
게다가 1787년에는 홍수가, 1788년에는 가뭄과 우박이, 1788년 겨울에는 기록적인 강추위가 나라 전체를 흔들었다.

막대기에 뇌를 휘저어진 자판기처럼 천재지변이 판을 친 국가에 사는 자판기 국민들.
이 와중에도 귀족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었고, 우리 살기도 바쁜데 어디 먼 대륙의 미국인지 뭐시긴지가 독립하는 걸 도와야 한다고 군대를 보낸 왕가는 또 다른 대륙과 교류를 한다는 미친 짓을 벌이고 있었다.

"이렇게 천천히 말라죽을 순 없어..."
"혁명...혁명이 필요합니다! 레볼루숑!"
"베르사유로!"

그렇게 조직된 민중의 군대가 베르사유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루이 16세! 나와라!"
"아내와 아이들이 굶는 걸 더는 못 보겠다!"
"1인 1표제 시행! 테니스코드의 맹세에 동참하라!"

그렇게 베르사유 궁전 앞에 모여서 구호를 외치고 있을 때,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망루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어어! 나왔다!"
"현 사태에 왕으로서 책임을 져라!"

"빵을 달라!"

어느새 나무판자들이 분분히 모여 단두대 비스무리한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민중을 바라보던 루이 16세가 근엄하게 입을 열었다.

"프랑스의 국민들이여. 짐이 최근 타 대륙과의 무역에서 들여온 것이 있다. 이 나라의 근심을 해결해줄 수 있는 보물이지."

그리 말하며 루이 16세가 들어올린 것은 초록색 두건과 옷을 입은 괴생명체였다. 즉, 실장석.
무슨 개소린가 하고 듣던 국민들이 다시금 폭발했다.

"배고파 죽겠는데! 뭔 개소리냐!!!"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당신도 모르는 걸 저 생물인지 아닌지도 모를 물건이 알겠냐고!"

그 순간, 압도적인 적대감을 견디지 못한 실장석 미도리가 오른팔을 턱 밑에 대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데스우....?"

그 순간, 베르사유 궁전 앞에는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Thatsu...? 저, 저 생명체가 지금 우리의 분노에 공감한 것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거, 저건 신의 계시가 분명해!"
"조용! 지금부터 타 대륙에게서 배운 이 생명체의 쓸모를 설명하겠다."

흥분한 국민들에게 루이 16세가 말했다.

"먼저, 이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도덕개념 자체가 없다. 조금만 호의를 베풀어도 바로 인간을 노예취급하지. 영국 놈들도 혀를 내두를 뻔뻔함을 가진지라, 신의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척결해야 할 악마의 자식으로 봐야 마땅하다."
"그, 그런!"

국민들이 경악하건 말건 왕의 강연은 이어졌다.

"태어날 때부터 옷을 가지고 태어나니, 이놈들의 옷을 빼앗아 모으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
"녹색안을 붉게 물들이면 곧바로 출산하는데, 성모의 처녀수태를 어설프게 따라한 악마의 자식들이다. 번식속도가 토끼보다도 빠르니, 철저하게 가둬야 한다.
"무엇이든지, 실로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다. 자신의 똥도 먹을 수 있다만, 식탐이 엄청나서 사람 먹을 걸 주면 순식간에 사라지기에 아까 말한 것처럼 어디 가두고 옷을 벗긴 뒤엔 화장실 처리나 시켜야 한다. 우리의 정원은 다시 깨끗해질 수 있을 것이다!"
.
.
.
"마지막으로...이놈들은..."

꿀꺽.

"먹을 수 있다."
"허어어어!"

불신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믿지 못하는군. 보여줄 수밖에."

루이 16세가 뒤로 빠지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앞으로 나왔다.
비명을 지르는 미도리를 강제출산시키고, 모조리 독라로 만든 뒤, 미도리와 자들의 분대를 빼내어 세척 후 구워 먹기까지 찰나였다.

미도리 팔 꼬치를 쩝쩝거리며 먹으면서 프랑스의 왕비는 마지막 남은 미도리의 자, 엄지를 높이 치켜들었다.

"빵이 없으면 실장석을 먹으면 된다!"

우와아아아아아-!

마리 앙투아네트가 성벽 아래로 엄지를 떨어뜨리자 함성은 더욱 커졌고, 선두에서 혁명을 외치던 국민은 엄지를 낚아채자마자 레볼루숑-! 하면서 신나게 빙빙 돌리다 던져버렸다.

레-레- 거리며 회전하던 엄지는 레벳-! 하면서 바닥의 질척한 얼룩이 되었고, 베르사유 궁전을 둘러싸고 왕을 칭송하는 노래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쓴 작가가 있다.
그는 '그 자리에서는 모두가 행복했고, 불행한 것은 얼룩이 되고 나서도 레레거리던 엄지밖에 없었다'고 회고하면서 소설을 출판했는데, 그것이 세계 최초로 실장석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불행한 엄지)>이다.








애호파는 링갈을 쓰지 않는다 (ㅇㅇ(14.43))



실장숍에서 파는 사육실장은 대부분 브리더의 엄격한 훈육을 통과한 개체이다.
적어도 팔리는 시점에서는 함부로 인간에게 아첨도 하지 않고 스시나 스테이크 따위의 요구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육주는 브리더만큼의 훈육을 따라하지 못하므로 자연스럽게 ‘올려진다.’
그렇게 지속적인 분충화와 그로 인한 항의로 인해 실장석 시장은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지속적으로 파이를 빼앗기고 있었다,
이에 여러 기업의 협의를 통해 한가지 운동이 시작되었다.
‘링갈 쓰지 않기 운동.’이다.
미도리는 사육실장이다.
처음에는 예의 바른 아이였다가 곧바로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는, 흔하디흔한 사육실장.
“똥닌겐! 이따위 음식은 치우고 당장 우마우마한 스시와 스테이크를 가져오라는 데샤앗!”
“그래그래. 미도리는 아침부터 활기차구나.”
매일 아침 미도리의 외침에도 주인은 실장푸드만을 준다.
밥그릇에 반도 채 차지 않는 싸구려 실장푸드가 미도리의 하루 식량이었다.
소식하는 실장석은 평균적인 실장석에 비해 1년가량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 때문이다.
“이딴 건 줘도 안 먹는 데샷! 도게자를 하며 우마우마를 가져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입에 안 대는 데샷!”
밥만 주고 바쁘게 일을 하러 나서는 주인에게 미도리는 오늘도 닿지 않는 고함을 친다.
주인이 사라지고도 한참을 씩씩대던 미도리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푸드를 힐끗 바라본다.
“데에... 절대로 안먹는 데샷...”
아까와 비교해 확연히 작아진 소리.
계속해서 꼬르륵 거리는 배와 씨름하던 미도리는 점심때가 돼서야 결국 푸드에 손을 댄다.
“데챱데챱. 내일은 절대 안 먹는 데챱. 똥닌겐에게 항의하는 데챱.”
매일의 맹세도 희미하게 미도리가 정말로 밥을 먹지 않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푸드를 게눈 감추든 순식간에 먹어버렸지만 아직 배는 반 밖에 차지 않았다.
“데에... 푸드를 먹어도 배고픈 데스우.”
조금만 배가 불러도 불평을 하는 미도리이기에 주인이 주는 양은 항상 모자랐다.
“뎃승. 뎃승.”
평소라면 자실장 시절부터 가지고 놀아 이제는 질린 공과 블록을 가지고 놀아야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며칠 전 주인은 사육 2주년을 기념해 실장석용 크레파스를 사 준 것이다.
혹시 모를 임신을 방지하기 위해 빨간색과 초록색이 없는 실장석용 크레파스를 들고 미도리는 종이에 열심히 낙서를 시작했다.
“뎃승 뎃승. 똥닌겐은 세레브한 와따시의 노에인 뎃승~. 매일매일 우마우마한 스시와 콘페이토를 바치는 뎃승~.”
현실과 동떨어진 노래를 데스데스하면서 부르며 놀다 보니 어느새 주인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다녀왔어 미도리.”
“똥닌겐! 뭐하다 이제 온 데스! 이 죄는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모자란 데스!”
양팔을 휘두르고 데스데스하며 화를 내는 미도리를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성체 실장석이 고함을 지르면 시끄럽기만 하겠지만 성대에 열처리한 사육실장의 목소리로는 그리 씨끄럽지도 않았다.,
“벌써 밥 시간인 데스! 당장 네놈이 먹는 우마우마한 것은 내놓는 데스!”
주인은 밥을 먹는 동안 미도리가 데스데스하며 화내는 것을 보아도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지금 먹을 것을 주면 내일 푸드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데에. 소리를 계속 질렀더니 배고픈데스. 물이라도 먹는 데스. 데챱데챱.”
한동안 떠들다가도 곧바로 조용해지는 미도리를 보고 주인은 싱긋 웃었다.
수조에는 미도리가 크레파스를 가지고 논 종이가 흩어져있었다.
저대로 놔두면 운치에 더러워질 수 있으므로 주인은 수조 속에서 종이를 꺼냈다.
“데엣! 와따시의 보물을 가져가지 말라는 데샷!”
미도리의 항의를 무시하고 주인은 그림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뭘 그렸는지 알아볼 수 없었지만 뭔가 열심히 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크레파스를 사 주길 잘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주인은 인간의 미적 감각으로도 그럴싸해 보이는 한 장을 따로 빼내어 보관했다.
그리고 나머지 종이를 버리는 모습을 미도리는 데에 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한데스. 너무한데스.”
풀 이죽은 미도리를 보고 주인은 놀아주기 위해 손가락을 수조로 집어넣었다,
미도리는 데샷 데샷 거리며 주먹을 날렸지만, 아무리 성체실장이라 하더라도 고작해야 실장석의 주먹이다.
간지럽기만 한 주먹에 주인은 웃고만 있었다.
“데휴. 데휴. 지친데스.”
그렇게 어느 정도 놀자 기운이 빠져 털썩 주저앉는 미도리를 보고 주인은 손가락을 빼냈다.
꾸벅꾸벅 조는 미도리가 귀엽기만 한지 주인은 내내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미도리. 오늘 직장에서 그 상사가 말이지...”
“그래서 그 놈이...”
“정말 웃기지 않아? 그치 미도리.”
미도리는 지친 몸으로 데스데스 하고 울 뿐이었지만 주인은 마치 미도리와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아지나 고양이와 달리 실제로 ‘대화하는’ 듯한 기분.
이러한 부분이 실장석 사육이 끊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한번 링갈을 써 볼까?’
순간 충동이 든 주인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링갈 사용은 실장석 사육의 금기 중 하나였다.
링갈 따윈 없어도 미도리와는 마음이 통하는 것 같다고 느끼며 주인은 어느새 잠든 미도리를 살짝 쓰다듬고는 침대로 옮겨 이불을 덮어 주었다.
사육실장 미도리와 주인의 하루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계속될 것이다.
자를 갖고 싶다는 것. 스시와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는 것.
일반적인 실장석이 원하는 것들을 미도리는 절대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사육실장의 삶과 들의 삶.
어떤 삶이 실장석에게 행복한 삶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그걸 결정하는 것은 실장석이 아닌 인간이다.

그리고 애완동물인 이상 실장석들은 영원히 전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애완동물은 주인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니까.








겨울철 우지챠 (펑크(112.163))



찬바람이 세차게 부는 12월의 겨울, 공원에서는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어죽는 실장석과 추워서 얼어죽는 실장석이 즐비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하고 먹이가 풍족한곳이 있으니 바로 '운치굴'이다.

[레후~레후~따뜻한 레후~!]

[이곳이 바로 천국인 레후!]

실장석들은 집안이나 밖에 땅을 판뒤 거기에 자신의 운치를 싸고 우지챠를 들여보낸다.

이런 운치밖에 없는 비위생적인 환경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운치에서 나오는 열과 더불어 실장석이 배설하는 많은 양의 운치 덕분에 겨울임에도 운치굴에 우지챠들은 배부르고 따스한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의 마마와 자매를 만날수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빨리 마마와 오네챠를 만나고싶은 레후~]

[우지챠도 레후~]

[손발긴긴씨가되고 싶은 레후!]

한편 운치굴에 우지챠들이 즐거운 목소리로 떠드는동안 지상의 하우스에서는 친실장의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데휴~]

친실장은 몸을 바들바들떨며 낡은수건을 이불삼아 덮고있는 장녀와 차녀를 바라본다.

[테스...테스...]

[테츄우우우...]

모두 봄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남은 훌륭한 자들이다.

하지만 겨울이 깊어짐에따라 식량수급이 너무 어려워 지난 이틀동안 제대로된 식사 한번 한적이없다.

결국 결심을 한듯 친실장은 운치굴로 향한다.

 운치굴 입구에 도착한 친실장은 입구로 쓰고있던 판자와 돌맹이를 치운뒤 운치굴 안을 들여다본다.

갑작스러운 마마의 등장에 우지챠들은 너나할거없이 잠에서 깨어난다.

[레훙! 마마 어서 우지챠를 데려가주는 레후~]

[우지챠 운치많이 먹은 레후! 그러니 우지챠를 데려가는 레후!]

[아닌 레후! 우지챠가 운치 더 많이 먹고 커진 레후! 그러니 우지챠를 데려가는 레후!]

운치굴에 우지챠들은 모두 친실장과의 약속을 기억하며 꾸물꾸물 기어간다.

그리고 그런 친실장이 선택한 우지챠는 크기가 중실장까지 성장한 거대 우지챠이다.

[응차~이번에는 오마에가 선택받은 데스]

[레훙~우지챠 선택받은 레후~]

[마마! 우지챠를 데라가는 레후~]

친실장의 선택을 받지 못한 우지챠들은 눈물을 흘리며 떠들어대지만 친실장은 무시하고 운치굴을 닫는다.

[레후~우지챠는 선택받은 레후~어서 마마의 집에 데려가는주는 레후~]

친실장의 품에 안긴 우지챠는 꿈틀꿈틀 몸을 흔든다. 안그래도 무거운데 이렇게 움직이니 친실장은 조금 짜증이난다.

하지만 집에서 배고파하는자들 생각 때문에 친실장은 조용히 우지챠를 안은체 집으로 옮긴다.

집에 도착하자 우지챠는 기쁜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말한다.

[레후? 여기가 우지챠의 새로운 하우스인 레후? 프니프니와 아와아와는 어디있는 레후?]

쫑알쫑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우지챠를 무시한체 친실장은 잠들어있는 자신의 자들을 깨운다.

[자들 일어나는 데스]

[마마...무슨일인 테스...?]

[배고플때는 자는게 최고인 테치...그냥 자게 놔두는 테치...]

[오랜만에 밥인 데스. 그러니 어서 일어나는 데스]

[밥 테스!?]

[밥인 테치?!]

밥이라는 소리 한번에 장녀와 차녀는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자들의 눈앞에 거대한 우지챠 한마리가 눈에 든다.

[마마 저 우지챠는 뭐인 테스?]

[정말 거대한 테치...와타시가 우지챠일때보다 거대한 테치...]

[레후? 오네챠들인 레후?]

장녀와 차녀가 우지챠와 대화하는동안 친실장은 물에 젖은 행주와 그릇,보검을 준비한다.

그리고는 우지챠를 부른다.

[우지챠는 이리오는 데스. 마마가 아와아와를 해주는 데스]

[레후! 아와아와인 레후! 어서가는 레후!]

[테치...마마 와타시들은 안하는 테치...?]

[이모토챠 조용히하는 테스. 마마는 와타시타치의 밥을 준비하는것인 테스]

[테치?!]

장녀와 차녀가 우지챠의 귀에 들리지않을정도로 소곤소곤 얘기하는동안 친실장의 우지챠의 포대기를 벗긴뒤 그릇에 집어넣어 몸에 묻은 운치를 씻겨내기 시작한다.

[레후~! 기분씨가 좋은 레후!]

처음 해보는 목욕에 우지챠는 기분좋은듯 소리를 낸다. 잠시뒤 운치를 다 씻겨내서 깨끗해진 우지챠는 친실장에게 프니프니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마마 이제 우지챠에게 프니프니를 해주는 레후~]

우지챠는 프니프니를 받을 생각에 배를 보이게한다.

하지만 그런 우지챠의 배를 친실장은 대못으로 가르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지챠는 당황하며 소리를 지른다.

[레뺫! 미친 레후? 이게 무슨짓인 레후! 이건 프니프니가 아닌 레후!]

친실장은 그런 우지챠의 말을 무시한체 배를 갈라서 우지챠의 분대를 꺼낸다.

[마마가 미친 레후! 똥마마인 레후? 오네챠들 우지챠를 도와주는 레후!]

우지챠는 장녀와 차녀를 바라보며 도움을 요청하지만, 장녀와 차녀는 그저 바라보기만 할뿐 움직이지않는다.

그리고 잠시뒤 친실장이 우지챠의 분대를 밖으로 끄집어낸다.

[파킨-!]

분대를 끄집어냄과 동시에 우지챠는 고통속에 파킨한다. 하지만 친실장은 신경쓰지않고 작업을 이어나간다.

분대와 피는 그릇에다가 놔두고 죽어버린 우지챠의 살점을 천천히 해체한다.

어느정도 뼈와 살을 분리해낸 친실장은 우지챠의 살점을 자들에게 건내준다.

[어서 먹는 데스. 오늘 밥씨는 고기인 데스]

오랜만에 먹는 고기이기에 장녀와 차녀는 허겁지겁 고기를 먹어치운다.

그리고 자들이 식사를 하는동안 친실장은 우지챠에게서 빼낸 분대를 들고 운치굴로 향한다.

운치굴을 연 친실장은 분대속에 운치를 털어낸다. 운치가 떨어지자 우지챠들이 또 한번 모여든다.

[마마 우지챠도 데려가주는 레후~]

[빨리 마마와 오네챠를 만나고 싶은 레후~]

자신도 연신 데려가달라는 우지챠들에게 친실장이 말한다.

[운치 많이 먹고 몸을 키우는 데스~그러면 마마에게 선택받을수있는 데스~]

그말과 동시에 친실장은 운치굴을 닫는다.

그리고 마마의 말처럼 몸을 크게 만들기위해 우지챠들은 운치더미로 모여든다.

[레챱 레챱 우지챠 운치 많이 먹는 레후~]

[운치씨를 먹는 레후~그리고 마마에게 선택받는 레후~]

마마와의 약속을 믿으며 꾸역꾸역 자매들의 배설물을 먹어대는 우지챠들, 하지만 밖에 나가는 순간 마마와 자매들의 뱃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우지챠들은 알고있을까?

그저 아무생각도없이 먹고,자고,싸고 그리고 먹히는것이 겨울철 우지챠들의 운명이다.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드는 어리석음이여 (ㅇㅇ(116.127))



햇빛이 쨍쨍하게 비치는 여름, 친실장이 자와 우지챠를 데리고 가까운 곳에 산책을 나왔다. 특별한 의미는 없고 그저 자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생각이다.


''가끔이라면 이런 것도 괜찮지 않은 데스까?''


''그런 테치.''


''우지챠는 선탠을 해서 구릿빛 피부를 가질 것인 레후.''


한가한 생각을 하며 그늘에 자리잡은 일가. 그때 독라실장 한마리가 접근한다. 일가는 딱히 경계하지 않는다.


''이웃상.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서 온 데스.''


''어서 오시는 데스. 태어날 때부터 멍청해서 마마에게 옷 뺏기고 쫓겨난 독라상.''


친실장은 이 독라가 위협이 되지 않음을 알고 굳이 전투태세를 갖추지 않는다. 자들도 마찬가지.


''상담하고 싶은 게 뭐인 데스?''


''실은 저번에 공원에 온 하얀악마 기억하는 데스?''


''아, 공원에서 탁아나 투분을 일삼는 분충만을 타깃으로 삼아 선별적 구제를 한 단독활동의 구제업자 말인 데스까?''


친실장은 공원에서 똑똑하고 현명하기로 유명한 실장석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웃실장들이 녀석에게 상담을 하고자 찾아온다. 여기있는 독라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그 하얀악마가 와타시를 좋아하는 것 같은 데스.''


''쿨럭! 쿨럭!''


독라의 개소리에 놀란 친실장은 순간 헛기침을 해댄다.


''올 해 들은 소리 중 이렇게 병신같은 소리는 처음인 레후.''


태어난지 일주일 정도 된 우지챠조차 이 소리가 개소리인지는 알고 있다.


''도대체 어떤 행복회로를 굴리면 그딴 결론을 낼 수 있는 데스?''


''오마에가 뭘 몰라서 그런 데스. 그건 사랑이 틀림없는 데스.''


독라가 하는 소리를 듣고 자실장이 풀숲에 들어가 구토를 하기 시작한다. 우지챠가 자실장의 등을 두드려준다.


''근거가 있는 데스. 우선 저번에 구제말인 데스, 그 덕에 와타시를 독라라고 차별하는 분충들이 전부 죽어서 와타시가 살기 편해진 데스.''


''오마에를 차별하지 않던 실장도 다 뒈진 데스.''


구제는 구청이나 시청에서 회사에 요청을 넣고, 회사가 그걸 수락하면 진행되는 일이다. 구제업자가 하고 싶다고 하는 일이 아니란 이야기다.


이 사실은 단 한마리의 실장석을 빼고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구제 덕분에 식량수급에 여유가 생긴 데스.''


''오마에가 먹는 거 오마에 차별하던 분충인 데스.''


''그리고 하얀악마상 덕분에 드디어 집도 생긴 데스.''


''거듭 말하지만 그 집 오마에를 차별하던 분충들 집인 데스.''


''와타시를 이렇게 위해주는데 와타시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하는 데스까?''


''운치굴에 운치싼다고 우지챠를 사랑하는 게 아닌 데스요.''


''맞는 레후! 오바상은 철 좀 들어야 하는 레후!''


우지챠도 따끔한 충고를 날리지만, 독라는 고개를 저으며 여유러운 표정을 짓는다.


''우지챠는 어려서 뭘 모르는 데스네~''


''오마에는 그 나이 쳐 먹고도 모르는 데스네~''


독라의 귀는 납땜이라도 한 듯 자기가 듣기 싫은 말을 모조리 필터링하고 있다. 이럴거면 도대체 뭐하려고 친실장의 조언을 들으려고 온 걸까?


''...그래서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게 뭐인 데스? 오마에의 헛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와타시의 회색 뇌세포가 전부 파킨해버릴 것 같은 데스.''


''아! 이제부터가 중요한 데스요! 우선 하얀악마상이랑 동거하기에 앞서서 악마상의 경제력이나 생활력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와타시의 운치로 마킹을 해두고 스토킹을 해본 데스!''


''경제력이나 생활력은 모르겠고 전투력과 파괴력은 곧 알게 될 것 같은 데스...''


''마마~ 우지챠는 가스불을 켜두고 온 거 같아 집에 좀 도망가야 할 것 같은 레후~''


친실장은 가슴에 성호를 그리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다.


''그래서 스토킹을 해본 결과, 이 근처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안 데스! 자가가 아니라는 건 조금 마이너스지만 그 정도 결점은 와타시가 봐줄 수 있는 데스!''


''염라대왕님은 오마에를 봐주지 않을 것인 데스...''


친실장의 머리 속에서 독라의 죽음은 이미 확정이고, 이제 얼마나 험한 지옥에 빠질 지를 걱정해야 할 단계이다.


''그런데 집 밖에서 확인하기에는 디테일한 사항을 파악하기 어려워서 하얀악마씨가 잠깐 나왔을 때 창문을 부수고 와타시의 장녀를 밀어넣어 본 데스요.''


''뒈지고 싶으면 혼자 죽지, 왜 자까지 끌어들이는 데스?''


친실장은 분노한 인간이 공원에 와 독라를 포함한 모든 실장석을 죽여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돌아온 장녀에게 물어본 데스.''


''잠깐, 오마에의 장녀가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 데스까?''


''그런 데스요.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깨끗하고 무사한 상태로 돌아온 데스.''


친실장은 당연히 분노한 인간 손에 고문당하고, 오체분시된 다음 위석처리되어 원흉인 독라를 찾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을 거라 생각했다. 무사히 돌아온다는 건 전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장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하얀악마가 '난 휴일에까지 굳이 일하고 싶지 않다. 그냥 평소에 살생을 많이 한 나의 업보라고 생각하겠다. 삼세번까지는 봐주는 게 내 원칙이기도 하고 말이야. 용서해 줄 테니 돌아가라.' 라고 말했다고 한 데스.''


''다행인 데스! 오마에는 죽어도 싸지만, 와타시들이 휘말리는 일이 없는 건 다행인 데스!''


친실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독라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뭐, 그래서 와타시의 차녀랑 삼녀도 같은 방식으로 탁아한 데스. 삼세번까지는 봐준다고 했으니 그건 채워야 하지 않은 데스까?''


라고 한다.


''미친 데샤아아아아! 세번까지 봐준 다고 진짜 세번이나 그 미친 짓을 하는 분충이 어디 있는 데샤아아아!''


''마마. 우지챠는 먼저 집에 가서 여권이랑 캐리어 좀 챙겨놓는 레후. 서둘러 남쪽 나라로 망명하는 레후.''


독라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는 눈치이다.


''그 하얀악마가 와타시를 설레게 하지 않는 데스까? 이게 섹시도발이 아니고 뭐인 데스?''


''섹시도발이 아니라 시발인 데스...''


친실장은 절망했다.  독라를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은 하얀악마가 이 공원에 오면 무슨 짓을 벌일 지 알 수 없다. 아마 다음날이 되면 공원 표지판에 해골 다섯개가 붙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온 삼녀에게 물어보니 하얀악마가 '목 닦고 기다려라. 내가 지금 간다.'라 했다고 한 데스. 드디어 와타시에게 고백하려고 오는 것 같은 데스.''


''글쎄, go back하면 어디로 가야 하는 데스까~ 데퍄퍄팟~''


친실장은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그만 실성하고 말았다.


''마마! 이럴 때일수록 정신줄을 붙잡아야 하는 레후!''


우지챠가 친실장의 발치를 두드리자 녀석의 날아가버린 이성이 뇌로 go back했다.


''뎃! 그런 데스! 하얀 악마가 지금 공원으로 온다고 한 데스까?''


''...그런 데스.''


''그런 자세는 좋지 않은 데스! 오는 걸 기다리는 건 대단히 수동적인 자세인 데스! 요즘 여주인공 트렌드는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인 데스! 즉, 오마에가 먼저 하얀 악마가 있는 곳에 가서 그...사...ㄹㅏㅇ을 받아줘야 하는 데스!''


친실장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max가 되자, 없는 지혜도 저절로 솟아났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데스! 역시! 오마에에게 상담하길 잘한 데스! 지금 하얀 악마에게 먼저 가서 그 열정적인 사랑을 받아주는 데스!''


그렇게 말한 독라는 뱃살을 출렁이며,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공원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부디 와타시가 도망갈 시간은 벌어주는 데스...''


친실장은 스스로 불길 속으로 걸어들어가려는 독라의 등을 떠밀어 뛰어들게 만든 것이다.


친실장 일가는 바로 집에 돌아가 간단한 짐을 챙겨 공원 옆 산으로 올라갔다.


그로부터 며칠 후,


''다행히 공원의 실장석에게 추가적인 공격을 하지는 않은 것 같은 데스요. 아무래도 짐 챙겨서 피난까지 할 필요는 없었던 모양인 데스.''


''렛레후레~~ 그냥 호캉스 같다왔다고 생각하면 되는 레후~''


그러면서 친실장은 바뀐 게 없나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공원 입구 쪽에 표지판이 하나 놓여있는 걸 발견했다.


''...분충의 말로데스...''


표지판에는 살가죽이 다 벗겨지고 화상, 타박상, 찢겼다가 다시 꿰매진 자국, 강제출산의 흔적, 총상, 주먹자국 등이 새겨진 독라 한마리가 매달려있었다. 간신히 목숨은 붙어있는 듯 하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본보기! 봐줄 때 알아서 기어라!'


공원에 글을 아는 실장석들이 서로에게 이 정보를 전달하며 경각심을 다시 세운다.


''레에... 결국 저 꼴이 난 레후. 그래도 다른 오바상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지 혼자 뒈진 게 그나마 잘한 짓인 레후.''


친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들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착한분충 (참피장화)




우지챠 에게는 착한 언니짱이 있는 레후......
언니짱은 달씨가 뜨면 운치굴로 내려와 와따시에게 우마우마 푸드씨를 가져다 주는 레후~

축축한 운치굴 안에는 사이좋아 보이는
자실장 하나와 구더기 한마리가 있다.

테챱테챱

퉤...텍.... 웩...웩....

구더기짱....어서...먹는....테치~

자실장은 단단한 실장푸드를 씹어삼키고 토한후 죽같이 만들어 구더기에게 먹이고있다.
구더기가 단단한 실장푸드를 씹을수 없는걸 본능적으로 알고있어 하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레챱레챱

우마우마를 잔뜩먹고 엄지짱이 되는 테치~

엄지짱이 되면 마마가 하우스로 우지챠를 데려다줄것이 분명한 테치~

언니짱은 와따시가 엄지공주가 될수있게 우마우마를 먹여주는 레후~

그리고 우지챠는 귀여워서 인간의 사육실장이 될수도 있는 테치~!!!

사육실장 레후?? 왠지 세레브해 보이는 레후~♡

와따시가 엄지가 된다면 하우스에서 살게되거나 멋진 닝겐상의 사육실장이 될수있다고 말해준 레후♡

오네챠~

구더기짱 배부른 레후~프니후~

언니짱이 프니프니 해주겠는 테치~

프니프니 테치 프니프니 테치~

레후우웅♡!!! 레에에엥♡!!!!

뷰리릿 뷰리리릿

언닝짱이 해주는 프니프니는 언제나 최고인 레후~
언니짱은 프니프니 장인인 레후~!!!!

구더기짱....

와따시 이제 가야하는 테치.....
마마가 기다리는 테치.....

언니짱 가지마는 레후!!!!!!!

가지않으면 와따시는 슬픈일 당하는 테치이.....

레에? 슬픈일이 뭐인레후?

언니짱이 또 이상한 소리를 하는 레후.....

오늘밤에 다시 오겠는 테치....
그리고 구더기짱이 좋아하는 콘토페이토 가져오겠는 테치

레에 콘토페이토♡!!!!!좋은레후♡!!!
언니짱 사랑하는 레후♡!!!!콘토페이토 좋아레후♡!!!!

언니짱 잘가는 레후~♡

테에....테에

자실장은 운치굴위로 이어지는 줄을 타고 운치굴 밖으로 나간다.

테에 어서 들어가야 하는 테치.....

끼익.....

자실장은 조용히 하우스로 들어가 조용히 눕는다.

구더기짱.......꼭...엄지짱이.....되는....테치
구더기짱은....와따시의..동생....테치.......

이 자실장이 구더기를 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게 된것은
중실장이 되어 독립준비를 하는 언니와 보존식을 모으러 나가는 마마와 다르게 구더기는 항상 운치굴에서 자실장을 기다리고 있었고 자실장의 말을 잘 들어주었고 구더기에게 처음으로 먹이를 가져다 주었을때 자신을 칭찬하는 구더기의 모습을보고 마치 마마가 된것같은 기쁨을 느꼈다.
그렇게 자실장은 구더기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게 되었다.

자실장은 하우스 가장자리에 누워 잠들어간다.
그리고 날이 밝아온다.




친실장에게는 한가지 큰 고민이 생겼다.다 자꾸 보존식이 몇개씩 없어진다는 것이다....

저번에는 20개였던 도토리가 6개가 없어지고
이번에는 다른 실장들과 힘들게 경쟁하여 애호파에게 받아온 실장푸드가 줄어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버틸수 없는 데스......
분명 열두개 였던 데스.....몇일사이에 다섯개나 사라진 데스.......이상한....데스.....

다른 실장석들과 다르게 이 친실장에게는 사육실장의 자였던 어미를 가진 어미가 있었고 친실장은 그 어미에게 어설프지만 40까지 숫자세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친실장은 보존식이 조금씩 없어진다는 것을 눈치챌수 있었다.

분명히 훔쳐먹는 분충자가 있는게 분명한 데스......
빨리찾아야 하는 데스......
찾지 못한다면......

마마가 해준말이 친실장의 떠올랐다.
여섯 마리의 분충을 죽여서라도 똑똑한 자 하나를 독립시키는게 중요한 데스....

겨울은 끝나가지만 여전히 쌀쌀한 날씨때문에 공원에 오는 애호파는 보이지않고 쓰레기장으로 갈수있던 철조망사이에 틈은 이미 막혀버렸다 친실장은 닥치는대로 공원에 남은 나무열매와 여러 식량이 될만한 것들을 모아왔다 식량을 아끼기 위해 굶은적도 많았다.....그치만 훔처먹는 자가 있다면.....자신이 모아논 것들은 소용없게 되어버리고
끝나가는 겨울을 버티기는 더더욱 힘들어진다.......

장녀가 요즘 독립준비를 위해 밥씨를 많이먹는 데스.....
장녀챠가 푸드를 훔쳐간 걸지도 모르는 데스.....
하지만 장녀챠는 독립하기 위해 보족식과 골판지를 구하러
자주 나가는 데스.....바쁜 장녀챠가 훔칠리가 없는 데스....
그럼.....혹시......차녀챠가.......
데.....아닌...데스...챠녀챠는 좋은자인 데스...
말도....잘듣는데스.......
그냥 착각한 거인 데스.....착각인....데스...

어느새 친실장의 마음은 무거워져 있었다.
성체실장이 되어 독립을 준비하는 장녀나 말잘듣고 바른 차녀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러번의 솎아내기를 하고 건진 좋은 자들이니까.....

그렇지만 마마가 해준 이야기는 떨쳐낼수 없다.
분충을 냅두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운치나 하고 생각해야 겠는 데스.......

친실장은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운치굴로 걸어간다.




데에.....일단 운치를......

마마아~!!!!!

마마~구더기짱 곧 고치를 틀고 엄지공주가 될것같은 레후~
착한 오네챠가 가져다준 우마우마를 먹고 우지챠 이만큼 자란 레후~!!!!!!!


구더기의 말을듯자 친실장에 머리속에는 착했던 차녀의 모습이 생각난다....

오늘 밤씨에 착한 오네챠가 콘토페이토 와따시에게 준다고 한 레후~!!
어서 마마와 함께살고싶은 레후.......

레엣....마마.....?

멍청한 우지는 분노한 마마를 모르고 엄지로 우화할수 있다는것에 허황된 기대를 품고 떠들어 대고 있다.

차녀챠.......

머리속이 복잡하고 이상하다
말잘듣던 차녀가 어째서 이런 힘든 상황에 아까운 푸드를
왜 구더기에게......

우지를 멍하게 쳐다보던 친실장은 운치굴을 벋어나
하우스로 들어가 피가 말라붙은 대못을 꺼낸다....

분충 여섯마리를 죽여서라도 똑똑한 자 하나를.......

친실장은 중얼거리며 움직인다.

친실장은 속으로 여러번 생각한다.
해야하는 데스....!!!
미루면 안되는 데스....!!!

친실장은 망설임 없이 하우스를 나와 차녀가 놀고있던 하우스 뒷편의 풀밭으로 향한다.

데에......차녀챠....

테치~오랜만에 보는 꽃씨인 테치~예쁜 테치~

차녀는 추운 날씨에도 피어오른 민들레를 흔들며 놀고있다..... 친실장에게는 차녀의 그모습이 어느때보다 사랑스러워 보였다....그렇지만 왠지...사랑스러운 차녀의 모습을 볼수록 친실장의 분노는 커져갔다.......

오마에......

마마?

오마에는 왜 보존식을 가져가 구더기에게 먹인 데스?!!

테.....마마.....
구더기짱은 불쌍한 테치...항상...똥먹는...테치.....
구더기짱은 와따시의 소중한 동생인 테치......

차녀는 심상치 않은 어미의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친실장은 대못을 꺼내들고 소리쳤다.

오마에는 분충인 데스!!!!!!!!
구더기 따위보다 겨울을 넘기는게 중요한 데스!!!!!!!
구더기가 엄지가 되어봤자 쓸때없는 분충인 데스!!!!!!!!
와따시가 보존식을 모으느라 얼마나 고생한지 오마에는 아는 데스??!!!
학대파 닝겐과 냐옹씨를 피해도망치고 동족식 분충과 싸워야 했던 데스!!!!!!!!
오마에를 먹이려고 굶었던 적도 많았던 데스!!!!

그런데 와따시가 힘들게 모은 보존식들을 오마에가 구더기에게 먹이고 아껴두던 콘토페이토 까지 훔치려 한데스??!!

오마에....살고싶다면 이 보검으로 구더기를 죽이는 데스.....
그러지 않으면 오마에는......




마마........
구더기짱은......와따시의 동생인.......테치..
왜...죽이는...테치?

구더기는 자도 동생도 아닌 데스!!!!
어서 죽이는 데스!!!!

구더기짱을....아프게...하는건....싫은 테치이......
하기싫은 테치....

이제 기회는 두번다시 없는 데스.....

마지막 기회를 쉽게 차버린 자실장을 친실장이 차갑게 바라본다.

친실장은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양눈에서 적녹의 눈물을 흘리며 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친실장은 망설임 없이 흙바닦의 있던 돌을 집어들고 자실장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콰직!!!!!!

왜 그러는 테치이!!!!!!

테챠아아아!!!!!! 아픈테치!!!!!! 그만하는 테치이!!!!!!!!

마마!!!!!!!

마....!!!

그따위 구더기는 와따시가 씹어먹어 주겠는 데스!!!!!!!!

구더기짱을 아프게 하지 마는 테치!!!!!!!!

친실장에게 구타당하면서도 끝까지 구더기를 찾는 차녀의 모습은 친실장이 가진 차녀의 대한 조금의 애정을 식게 만들었다.

친실장은 그때 자신이 독립하기 직전마마가 해줬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마마에게는 다섯 동생이 있었다고 했다....
그중 착하고 배려심이 많던 삼녀는 운치굴의 살던 구더기를 좋아했고 구더기에게 자신의 식사를 나누어졌고 구더기는 결국 엄지가 되었고 삼녀의 간절한 부탁대로 골판지 하우스에서 살게 되었지만 멍청하고 탐욕스러운 엄지는 보존식을 털어먹고는 결국에는 학대파 인간을 불러와 마마의 마마와 동생들은 모조리 죽였지만 마마는 혹독한 겨울에도 어미와 동생들과 엄지의 시체를 먹으며 버텼고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였다.

마마는 그이야기를 하고나서 말했었다.
3녀도 사실은 엄지같은 분충이었을지 모른다고
살아남는 것보다 분충인 엄지를 가축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구더기나 엄지같은 가축이나 분충에게 사랑을주고 가족으로 대하는 자는 하나의 분충보다 일가의 파멸을 훨씬 더 앞당기는 "착한분충" 이라고

그런데스.....

마마의 말이 맞는 데스...!!!!

오마에는 가족을 위해 죽는데샤아아악!!!!!!!

테에엑.....!!!!!

와따시가 가르쳤던 데스 구더기는 자가 아니라고!!!!!!!!
왜 그런 쓸모없는 짓을 하는 데스?!???

테에.....!!!!!

테에에엑???

그....뫈....아....??
그데....기...챠.....ㅇ....???

하루뽜묘 뫼봐소???

차녀는 그렇게 돌에 머리가 뭉개져 백치가 되었다.
친실장은 보검을 들어 백치의 팔다리를 하나씩 자르기 시작했다.

하루...뽜...뫼....보 ㅏ...소...!!!!

알수없는 비명을 지르는 백치의 다리를 자르고 친실장은 백치를 운치굴에 던져넣었다.

쿵!!!!

하루뽜묘....!!!!!

데데로케....데데로...게...
데데로게......데데로케.....

운치굴에 운치가 눈에 튄건지 차녀였던 자판기는 뱃속의 자들을 위해 의미없는 태교를 부르고있다.

일가를 파멸에 빠뜨릴 뻔했던 차녀는 자판기가 되어
착한 분충이 아닌 쓸모있는 존재가 되었다.




레후~언니쨩

데데로케.....데데로게.....

보고싶었던 레후~

언니짱?

콘토페이토는 어딨는 레후?

언니짱도 구더기된 레후??

이제 와따시가 언니짱인 레후~!!!

콘토페이토를 바치는 레후~♡

구더기는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떠들어대고 있다

친실장은 차녀를 보며 생각한다....
차녀가 자신같은 들실장이 아닌 마마의 마마 같은 사육실장에게서 태어났으면 분명히 좋은 자가 되어 사육실장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거라고
그렇지만....이곳에서는 착한자는 필요가 없다. 착한자는
착한 분충일 뿐이다.

친실장은 자판기가된 차녀를 보며 후회하고 있었다.
차녀가 "구더기챠는 동생이 아닌 테치? 왜 운치굴에...."
라고 말할때부터 알아채고 솎아냈어야 했던 데스......
그랬으면...보존식을....더...모아둘수 있었을것인 데스......

터벅 터벅

와따시 돌아온 데스.
오늘은 담요와 보검을 주운데스.
수확이 좋은 데스.

발 소리와 함께 성체실장인 장녀의 목소리가 친실장의 귀에 들린다.

친실장은 생각한다.
장녀는 똑똑한 자이다
장녀는 내가 가르쳐준 것들을 잊지않고 알고있다.
가장 중요한건....
차녀 처럼 불쌍한 동족의 대한 연민보다는 삶의 중요함을 아는 장녀이기에 절대로 차녀 같은 실수는 하지않을 것이다.
자들을 낳고 자들로 세상을 채우며 잘 살아가겠지

장녀에게 자판기가 낳을 구더기들을 먹이고 고치를 틀 구더기의 옷과 고치실을 뺐어 장녀한테 줄것이다. 장녀가 모은 모든물건과 보존식을 봉투에 챙겨주고
장녀가 떠나기전에 마마의 마마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장녀에게 모두다 이야기해줄것이다.
착한분충이였던 차녀의 이야기도.....

그리고.....장녀가 떠나고 봄이된다면 또다시 자를 가질것이다.....마마의 마마가 그랬던 것처럼....자들로 세상을 채워야지.....












사육실장의 출산은 금기인가요?



“텟테레!”

탄생의 외침과 함께 장녀는 어미의 총구를 비집고 나왔다. 온통 끈적거리는 점액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흐릿한 너머로도 보이는 풍경은 여기가 분대 밖의 세상임을 보여주었다. 

“레헤에~”
장녀가 시각으로 들어온 정보를 뇌로 처리하고 있자니 어느새 붕 뜨는 부유감이 느껴진다.

데챱데챱. 

점막을 취하는 소리. 마마다! 마마다! 친실장은 출산의 고통인지 양 눈에서 색색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어미로서의 의무를 다하여 처음 태어난 새끼의 점막을 열심히 취해주었다.

이윽고 새끼의 눈에 붙은 점막까지 벗겨내자 세계는 더더욱 선명하게 장녀의 눈에 들어왔다. 

“테햐~”
“오마에는 장녀인 데스.”

천상의 소리. 이제 어미로부터 무엇이든 가장 처음, 가장 많이 물려받게 될 것이라는 상징. 장녀. 장녀라 불린 새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연신 주변을 둘러본다.

세면기와 거대한 벽으로 둘러쌓인 둥그런 통, 벽을 장식하고 있는 하얀색 타일과 저 높은 곳에 걸려있는 샤워기까지, 그게 어떤 용도로 쓰는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새끼는 딱 하나의 사실만은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사육실장이다!

게다가 자신을 들어 점막을 취해준 거대한 마마는 천연의 연두색과는 다른 색의 실장복을 입고 있었다. 이것이 사육실장생의 증거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장녀는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분대에서 들었던 사육실장의 삶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비록 다른 무언가가 그 외에도 많았지만 장녀가 기억하는 것은 사육실장이라는 단어였다. 그것 외에 다른 무어가 중요하단 말인가? 다른 건 세레브하지 않다. 세레브하지 않은 건 무시하면 그만이다. 

“장녀, 마마는 동생들을 더 낳아야 하니 거기서 움직이지 마는 데스.”

친실장은 출산의 괴로움에 녹적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사뿐히 장녀를 내려놓는다. 그러면서 당부도 한 마디 건낸다.

“테햐아아아~~”
장녀는 연신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간의 집이다. 안전하고 아늑한 인간의 집이란 말이다! 들실장들은 꿈에도 못 꿀 인간의 집! 기쁨의 춤이 절로 나온다. 장녀는 기쁨에 취해 이곳저곳 도도도도 뛰어다녔다. 생각 같아서는 운치를 발라 이곳이 지엄한 자신의 소유임을 선언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막 태어나 비어있는 분대는 쉭쉭 거리는 방귀만 배출할 뿐이다. 무엄한 분대 같으니.

“장녀, 움직이지 마는 데스.”
차녀의 얼굴이 막 보일정도로 힘을 주는 와중에도 친실장은 장녀를 향해 다시 한번 말한다. 장녀는 그 말에 친에게 잠시 시선을 돌렸지만 이내 다시 토테토테 발을 움직이며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성체에게서 들리는 작은 한숨. 힘듦의 표시일까 아니면…

그러나 곧 친실장은 시선을 돌리고 다시 데끄응하며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막 덩어리 하나가 더 떨어진다.

“텟테레!”

데챱데챱.

장녀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구더기 형상의 덩어리는 점막을 취하자 금새 팔다리가 쑥쑥 돋아나 자실장이 되었다.

“오마에는 차녀인 데스.”
“마마 보고싶었는 테츄.”
활짝 웃는 얼굴로 답하는 자실장. 친도 괴로운 얼굴에 순간 웃음이 피어난다.

“여기 가만히 있는 데스.”
“알겠는 테츄.”

차녀 또한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만 그 자리에 앉아 기다린다.

“마마, 와타시를 낳아주셔서 감사한 레치.”
삼녀는 엄지다. 친실장은 삼녀를 향해서도 웃음을 보여주었다. 들실장계에 있어 엄지는 필요 없는 존재. 저실장용 프니프니 노예가 아니면 버림패 취급이다. 하지만 그건 들실장에게나 그러한지, 이 친은 엄지 또한 쓰다듬어 주며 움직이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 이후로도 엄지 하나와 저실장 두 마리를 더 낳은 친은 그제야 성취일지 안도일지 모를 한 숨을 내쉬며 출산을 마쳤다.


“오, 새즈. 다 낳았냐?”
친이 새끼들을 다 모으고 있는 찰나, 새끼들 눈에는 절대 열 수 없을 거 같아 보이던 거대한 화장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얼굴을 디민다. 순간 남자의 존재에 굳어버리는 새끼들. 마마도 거대했는데 남자는 더 크다. 

“다 낳은데스요, 주인사마.”
하지만 새즈라 불린 친실장은 그런 주인을 보고도 그저 활짝 웃으며 맞이한다. 사육실장에게 있어 출산은 금기중의 금기. 그러나 주인남자는 그건 별로 문제가 아닌 거 같다.

“어, 그러면 대충 준비하고 있을 테니 ‘그 작업’ 부터 해놓고 있어.”
“알겠는 데스.”
주인은 다시 문을 살짝 닫고 나간다. 그러자 바로 새끼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새즈.

여전히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촐랑촐랑 다니는 장녀. 가만히 앉아서 새즈를 바라보는 차녀와 삼녀, 그리고 삼녀에게 안긴, 육녀쯤으로 보이는 저실장과 엄지사녀, 오녀 저실장. 평범한 사육실장이 봤다면 이쁜 내새끼들 하고 감탄하거나 들에 버려질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벌벌 떨겠지만 새즈는 달랐다. 차분히 새끼들을 바라보는 새즈. 그 눈은 새끼를 바라보는 어미의 눈이라기 보다는 신병 훈련소에 막 입소한 구더기 훈련병들을 보는 교관의 눈에 가까웠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하는 데스.”
짝 하고 박수를 치는 새즈. 그와 동시에 모든 새끼들의 시선이 새즈를 향한다.

“우선, 이 집에서 살기 위해 지켜야 할 룰을 알려주는 데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새즈는 아까까지 물이 빠지는 하수구채 구멍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장녀를 덥썩 집어서 자리로 돌아왔다.

“테지이? 마마, 놓아주는 테치! 저기 재미있는 게 있는 ㅌ.”
“오마에, 와타시가 뭐라고 한 데스?”
“테?”
얼빠진 표정의 장녀가 새즈를 올려다본다. 

“와.타.시가 뭐라고 한 데스까?”
“와타시는 사육실장 아닌 테치?”
어찌본다면 그 순진무구하기 그지없는 답변. 그러나 새즈는 탄식도, 환희도 보이지 않은체 무표정으로 다시 한번 묻는다.

“도대체 태교로 뭘 들은 데스? 와타시가 분명히 태교로 말한 게 있지 않은 데스?”
“사육실장 외에 다른 건 하나도 세레브하지 않은 테치. 세레브한 것만 들으면 됐지 나머지는 왜 듣는 테치?”
분명히 사육실장이란 단어 외에도 무언가가 있긴 했었지. 예를 들면 복종이라든가 주인사마라든가, 하지만 그런 걸 왜 들어야 하나? 사육실장인데? 만물의 주인이자 이 우주의 조물주와도 같은 사육실장인데? 장녀는 그리 생각하며 콧김을 팍 뿜는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새즈의 얼굴에 떠오르는 같잖다는 표정.

“기회는 두번 준 데스. 오마에는 두번 다 걷어찬 데스.”
“테? 그게 무ㅅ…”
“오마에는 불합격이다 데스.”

청천벽력 같은 소리. 장녀는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눈만 꿈뻑인다.

“차녀?”
“네 테치.”
“이제부터 장녀인 데스.”
“테? 장녀테치? 알겠는 테치. 복종하는 테치.”
차녀는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는 눈 앞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한 새즈의 판정에 수긍한다.

장녀라는 세레브한 위치를 박탈당했다는 소리에 이제야 뇌에 피가 돌기라도 한 걸까, 장녀, 아니, 前 장녀였던 자실장이 뺴액 하고 소리를 질렀다.
“테챠아아!!!!!!!! 와타치는 장녀고 사육실장이다 테치!! 감히 똥마마 따위가 이러고 저러고 할 위치가 아닌 챠아아아아!!!!!”

장녀의 사자후. 장녀는 이쯤되면 똥마마고 닝겐노예고 다들 덜덜 떨며 엎드릴 줄 알았다. 허나 현실은 늘 건조하다.
“웃기는 데스. 그걸 누가 보장하는 데스?”
“테에?”
“오마에가 장녀고 사육실장인 걸 누가 보장하냐는 데스.”
새즈는 실실 조소를 보냈다. 

“와타시의 지위는 운명이 점지하고 하늘이 보장한 권리를 가진 장녀이자 사육실장이란 말인 테챠!!!!!!”
“아, 그런 데스까?”
“테치!!!!”
“그럼 어디 그 운명하고 하늘을 불러보는 데스.”
“텟?!”
“그 운명하고 하늘인지 뭔지를 불러서 오마에의 권리를 납득시켜 보라는 말인 데스.”
“테ㅊ……”
갑자기 조용하게 우물거리는 장녀. 새즈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오마에가 사육실장인지는 주인사마께서 정하시고, 장녀인지는 와타시가 정하는 데스. 그리고 와타시는 분명 태교로 말한 데스. 와타시의 말에 절대 복종하라고. 그렇다면 오마에들이 성체가 될 때까지는 사육실장의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장녀였었던 자실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이제야 생각났다. 분명 그랬다. 분명 들었다. 하지만 분명 중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 그런 거 모른다 테챠!! 와타시는 날 때부터 사육실장이다 테챠아아아!!!”
“착각 속에서 사는 분충인 데스네.”
시뻘건 얼굴로 자기 주장만 반복하는 ‘장녀였던 것’을 보며 새즈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장녀를 쥔 팔을 번쩍 들더니 곧바로 화장실 바닥으로 패대기쳤다.

철퍽!

“테짓!!!!”

화장실 그 단단한 타일 바닥에 부딪힌 장녀는 처참한 고깃덩이로 돌변했다. 충격으로 팔 다리는 부러지고 이제 막 나기 시작한 치아도 몇몇개가 바닥에 굴러다녔다. 

“자들, 잘 보는 데스. 와타시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 분충은 이렇게 되는 데스.”
장녀였던 자가 죽어가는 처참한 광경에 대다수의 새끼들이 눈을 돌리고 있다가 새즈의 나지막한 호령에 어거지로 몸을 돌리고 그 참상을 지켜봤다. 아니, 방금 장녀가 된 차녀, 차녀로 승격된 삼녀, 그리고 그 차녀가 안은 저실장 하나만이. 그 외에 엄지와 저실장 각 한마리씩은 두 눈을 감고 귀를 가려 필사적으로 현실에서 눈을 돌리려 했다.

“삼녀, 사녀, 눈 뜨고 귀 가리지 말고 여길 보는 데스.”
여전히 복지부동. 둘은 그저 덜덜 떨고 있을 뿐이다. 

“솎아지고 싶은 데스?”
새즈의 위협.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는 두 마리.

“마음대로 하는 데스.”
두 마리의 운명을 나직히 선고하는 친실장. 하지만 그 집행은 미룬다. 어기적 거리며 땅바닥을 기는 이 분충을 먼저 처리해야지.


“주인사마, 끝난 데스요.”
새즈가 차고 있던 목걸이에 대고 말하자, 곧 주인이 문을 열고 다시 들어온다.

“이번엔 빠르다? 확 나뉘나봐?”
“어떻게 이번은 그런 데스네.”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둘. 

“노예에에에!! 와타시를 구해라 테챠!!! 오마에의 주인인 와타시를 당장 구하라 테챠!!!!!!!”
그리고 그 사이에 분충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미쳤냐, 내가 왜?”
“테?!?!”
믿었던 노예(?)에게도 차디찬 버림을 받은 전 장녀. 

“바, 반역이 테치!! 똥마마도 똥노예도 다 미친 테챠!!!!!!”
“미친 건 오마에인 데스.”
새즈는 더 볼것도 없다는 듯 처참한 몰골의 고깃덩이를 들어올리더니 바로 앞머리를 쑥 뽑았다.

“앞머리씨가!!!”
“하여간 질기기도 한 데스.”

이번엔 뒷머리가 뽑힌다.
“머리카락씨 돌아오는 테치! 옷씨 돌아오는 테치!!”
비참하게 외치는 자실장. 사육실장의 장녀이자 사육실장에서 독라가 되었다. 태어난지 한시간도 되지 않아 노예가 되었다.

“테에에에에엥!!!!!”
서러움에 우는 고깃덩이. 이 울음 소리를 들으면 마마가 잘못했다고 도게자를 할 것이다. 닝겐노예가 스스로 독라가 되어 사과할 것이다. 이 옥 같은 소리에는 그럴 가치가 있다!

“그럼, 이번엔 어떤 녀석들 가져가면 돼?”

남자의 말. 그 말에 자실장의 행복회로는 산산이 부서진다.

“이 고깃덩이 필요하시면 가져가셔도 되는 데스. 멀쩡한 건 저기 눈 감고 덜덜 떠는 두 마리인 데스네.”
“에이, 이번엔 소득이 적구만.”
투덜거리는 남자. 하지만 얼굴은 웃고 있다.

“그럼 이거 내가 쓸게.”
“네 데스. 잘 부탁드리는 데스 주인사마.”
“걱정마. 내가 아주 ‘잘’ 대해줄게.”
“찌이이이익!!! 찌이이!!!!”
“야, 이거 싱싱한 게 아주 물건이야.”
웅철은 손에 든 깡통에서 무언가를 분사한다. 기체는 엄지와 저실장 그리고 ‘고깃덩이’를 잠재운다. 오랜만에 그럴 듯한 분충이 굴러들어왔네. 남자주인은 웃는다.


그 억겁과도 같은 시간의 참상이 끝나고, 새즈는 화장실을 나와 거실에서 남은 자들을 불러 모았다.

“자, 그러면. 이제 오마에들이 왜 태어났는지, 그리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들려주는 데스.”
새즈의 말. 어느새 남자주인도 근처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 남자, 웅철은 원래 학대파, 그 중에서도 데스넷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거물급 학대파였다. 지금은 데스넷에서 조용히 눈팅만 하는 정도지만 웅철의 위명은 이미 전국구로, 웅철을 모르는 학대파는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런데 이런 학대파가 사육실장을 기르는 것도 모자라 사육실장의 출산까지 허락한다? 만약 다른 학대파가 봤다면 뒤집어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과연 웅철은 애호파가 되기라도 한 걸까?

그럴리가, 사실 이 새즈도 어느날 운 없이 웅철에게 발각되어 학대실장으로 살다 실각한 들실장 일가의 막내에 지나지 않았다. 뭐, 운치굴 프니프니 엄지노예도 막내라면 막내겠지. 

하지만 새즈가 다른 실장석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건 압도적인 힘 앞에서 숙여야 할 때를 잘 알았다는 점이었다. 인간만 보면 노예로 삼지 못해 안달하다가 명을 재촉하는 다른 놈들과 달리 새즈는 웅철의 말에 절대 복종했다. 아무리 불합리해 보여도 일단 복종한다. 힘들거나 불만이 있다해도 일단 명령은 무조건 따른다.

웅철은 이 엄지에게 굉장한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키우기 시작했다. 반쯤은 호기심, 반쯤은 네놈이 언제 그 가면을 벗을까? 라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천대받던 엄지노예는 ‘새즈’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네임드 학대파 웅철의 사육실장으로 거듭났다. 

“그렇지만 분충성은 실장석의 본능인 데스.”
새즈는 말한다.

“와타시도 어른이 되자 슬슬 그 분충성이 고개를 들고 올라온 데스.”

실장석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남을 깔아보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역겨운 습성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좀 순화해서 이야기한다면 서열의식이 있고 남보다 뒤쳐지기 싫어한다는 소리다. 어찌보면 그냥 사회적 동물의 습성이다. 다만 아주 질이 안 좋은 쪽으로 특화되어 있을 뿐.

그리고 그건 양충이고 분충이고를 가리지 않는다. 게다가 사육실장은 어쩌면 평생을 자신의 ‘위’만 있는 생활을 하게 된다. 주인부부가 출산을 한다고 해도 그 아이는 자신의 아래가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는 금방 자신의 윗 서열을 가져간다.

사회성을 가진 동물 중 가장 서열이 뒤쳐지는 것을 싫어하는 실장석이 평생을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가 없이 지낸다는 건 평생을 군대 이등병으로 산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컨데 자신의 ‘밑’이 하나도 없는 삶을 오랫동안 살게 되면 실장석은 늦든 빠르든 미쳐버린다는 이야기다.

그 말인 즉슨 비록 새즈는 학대파 주인 밑에서 양충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분충이 되어버린다는 소리. 그것도 자기도 원치 않는 본능으로 인해서 말이다.

“와타시는 만약 주인사마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생각도 한 데스. 하지만 주인사마께서는 다른 방법을 찾아주신 데스요.”

새즈를 통해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웅철은 고민했다. 예전같았으면 그냥 기르던 실장석을 학대실장으로 전환시키거나 때려죽였을 일. 그러나 웅철은 양충을 죽이는 취미는 없다. 게다가 매우 흥미로운 생태를 가진 실장석이라면 더더욱. 

그때, 웅철은 무언가를 떠올렸다. 자기보다 밑이 없어서 그렇다면 주기적으로 자신보다 ‘아래’인 존재를 만들게 해주면 어떠할까?

“그래서 오마에들을 낳은 데스. 

그래. 없으면 만들면 된다. 실장석은 성체가 되면 본능적으로 새끼를 치려고 한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보다 아래인 존재. 자신의 비호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고 때에 따라 자신이 생사여탈권을 비롯한 모든 권리를 쥐는 존재. 자신에게는 예정된 세레브한 삶이 있건만 운명의 억까로 현재의 시궁창에 구르고 있다는 심정은 가진, 그러나 생태계 최하위의 삶에 위치하여 무엇하나 자신들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실장석이 성체가 되어 유일하게 누를 수 있는 존재.


자를 임신하고, 낳는다.


“태교때 말했지만 지금 저기 끌려간 멍청이때문에라도 한 번 더 말해주는 데스. 오마에들이 지킬 규칙은 딱 세가지인데스. 첫째, 와타시의 말에 절대복종하는데스. 둘째, 주인님의 말에 절대복종하는데스. 셋째, 주인님과 와타시의 말이 다르면 주인님의 말을 따르는데스.”

자신들을 낳은 마마의 목적, 그 압도적 광기에 떠는 것도 잊은 새끼들에게 새즈가 세가지 규칙을 알려준다.

“이 세가지만 지키면 오마에들은 그래도 등 따습고 배부르게 먹으며 살 수 있을 것인 데스. 그리고 성체가 되면 주인사마의 친구분들께 사육실장으로 갈 수 있는 데스. 아니면 지원물품을 가지고 ‘공원’으로 가거나 데스.”

이것은 사형선고인가? 아니면 희망고문인가? 새끼들은 저마다 고민하지만, 결국 답은 자신들이 저 세 규칙을 지키고 살아남았을 때 알게 될 것이다.

“참고로, 나는 너네 어미가 너네를 어떻게 훈육하는지에 대해 전혀 관여 안 할거다? 그게 너네가 느끼기에 얼마나 불합리하든 죽을 거 같든 말이지.”
웅철의 선고. 이건 사형선고 비슷한 거 같다.

“뭐, 잘해봐. 그래도 여태까지 독립한 놈도 있고 사육실장으로 딴 데 간 놈도 있긴 했어.”
이건 희망고문.

“하여튼.”
새끼들의 팽팽 돌아가던 자그마한 뇌는 새즈의 말에 멈춘다.

“보금자리에 온 것을 환영한다 제군데스.”
새즈는 웃고 있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
“…”

조용하다. 나무로 보이는 벽에 둘러싸인 이 공간에서, 자실장과 엄지는 어딘가를 응시하며 조용히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다른 일가 같으면 자매들의 운치를 먹으며 레후~ 프니후~ 따위의 소리를 냈을 저실장 마저도 엄지에게 안겨 조용히 꼬물거리고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 마냥 압도적인 침묵이 이 자매들 사이에 말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저 문의 틈새를 따라 살며시 들어온 빛만이 자매들을 비추며 이곳에 생명이 살고 있음을 명시할 뿐이었다.

마마는 없다. ‘바깥세상’으로 오늘 먹을 밥을 구하러 나갔기 때문이다.

대개 친실장이 부재중인 집안이 으레 그렇듯이 새끼들만 남으면 울고, 떠들고, 짖어대고, 소리치고 그러다 지쳐서 잠이 들기 마련이지만 이들 자매는 설사 무언가가 듣기라도 하면 큰일난다는 듯 소리를 내지 않고 생활했다.

“오네챠, 마마 늦어지는 레치이…”
“걱정마는 테치. 그냥 조금 늦어지는 것일 뿐인 테치.”
걱정스럽게 자신을 올려보는 삼녀 엄지를 꼬옥 안으며 장녀가 말한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조차 않을 자그마한 목소리. 하지만 이조차도 밖으로 들리는 것이 아닐까, 엄지와 자실장은 혹시 몰라 더욱 소리를 낮췄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묵언수행을 하듯 침묵할 것을 강요받았다. 솔직히 괴롭다. 하지만 자매들은 그것에 불평할 수도 없었다. 

생존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실장석은 누구나 태어날 때 환희의 찬가를 부르짖는다. ‘텟테레!’라는 세글자의 찬가. 이는 실장석이라면 누구나 외치는 소리고 그 누구도 이 본능에 저항할 수 없다. 하지만 장녀를 포함한 여기에 있는 새끼들은 모두 그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장녀가 태어나 처음 텟테레! 를 외쳤을 때, 자충이 처음 본 것은 축축한 동굴이었다. 뭐지? 라고 생각할 찰나 장녀는 바로 동굴밖으로 꺼내졌다. 꺼내진 후 본 것은 어미라 생각되는, 무언가를 참느라 지독한 표정을 한 성체의 얼굴.

‘오마에는 장녀인 데스.’
그 성체는 무어가 그리 괴로운지 연신 땀을 흘리면서도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소근소근 말했다.

‘장녀, 입에 집어넣어 미안한데스.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텟테레’를 못 막는데스. 조용히 해야 하는 데스. ‘괴물’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숨소리도 참아야 하는 데스.’
장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태실장이었을 시절, 들려오는 마마의 태교는 대부분이 ‘조용히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괴물에게 잡아먹힌다.’ 였다. 그렇기에 태어난 직후지만 장녀는 마마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납득했다.

친은 장녀를 핥아 점막을 취해주었다. 점막을 걷어내자 포대기에서 팔다리가 돋아나고 뒷머리가 자라나며 건강한 자실장이 드러났다.

‘오로롱 장녀, 이모토들을 낳을 테니 거기 가만히 있는 데스요.’
장녀를 보고 소리 죽여 기쁨의 오열을 하던 친실장은 곧 다음 자실장을 낳기 위해 필사적으로 힘을 줬다. 

두번째 자가 나오자 장녀에게 그러했듯 친실장은 바로 입에 넣었다. 아직 점막을 벗지 못하였기에 저실장마냥 꼬리가 파닥인다. 분명 ‘텟테레!’라는 소리가 동굴에서 울려퍼지고 있을 것이다.

잠시 틈을 두고 차녀를 꺼낸 친실장. 바로 장녀에게 했던 것처럼 얼굴의 점막을 취해주고 조용히 말을 건내려는 찰나,

‘레햐악! 감히 고귀한 와따치가 태ㅇ,’

차녀의 삿대질과 폭언에 놀란 친은 바로 다시 차녀를 입에 넣었다. 얼떨결에 한 행동이지만 정답이었던 것 같다.

“!!!”
아직 점막으로 둘러쌓인 꼬리가 항의하듯 페타페타 요동치지만 적어도 뭐라뭐라 외치는 소음은 친의 입 밖으로 거의 새지 않았다.

어찌해야 하나…어찌해야 하나…

친은 눈알을 굴렸다. 그렇게 태교를 했건만 분충이 나왔다. 하지만 아직 뭘 모르는 아이다. 두고두고 잘 가르치면 납득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건 여유가 있을 경우다. 생존하려면, 단호해야한다. 이제 막 태어난 장녀. 그 모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다. 그런데 이 아이가 위험에 빠질 위기다. 그것도 같이 태어난 자매에 의해.

친실장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턱에 힘을 줬다.

와직!

생명의 문이 닫히는 소리. 그와 함께 자신이 응당 누려야 할 것을 온몸으로 외치던 꼬리가 경련하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마마가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먹어버림에 굳어버린 장녀. 하지만 곧 친실장의 눈에 다시 흐르는 색색의 눈물에 의해 친의 슬픔을 느꼈다.

‘조용히 해야한다.’

장녀는 다시금 태교의 말을 떠올렸다. 조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 뱃속에 있을 때는 그저 응 그렇구나 싶었던 말이지만 나와서 보니 그건 자기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말이었다. 

도대체 그 무엇이 무적의 마마조차 두려움에 떨며 침묵을 강요하게 만들었는가? 장녀는 굳은 몸을 풀면서도 그러한 의문을 품었다.

그 뒤로 친실장은 엄지 하나에 저실장 세마리를 더 낳았다. 다행이도 엄지는 착하고 말도 잘 알아들었기에 태어나자마자 조용히 장녀에게 인사하고는 같이 생명의 탄생을 목격할 권리를 얻었다. 하지만 문제는 저실장들.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계속 레후 레후 울며 친실장의 속을 태웠다.

‘제발 우지짱, 조용히 쉿, 쉿.’
마마는 몸이 달아서 연신 손을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보내지만 저실장 두마리는 그저 해실해실 웃으며 레후 레후만 연발한다.

‘밥 주는 레후~ 배고픈 레후~’
‘태어나서 기쁜 레후. 아마아마 먹고싶은 레흐.’

분충은 아니다. 단지 이 상황을 이해할 지식이 없을 뿐.

그러나 여기에서 어쩌면 멍청한 것은 크나큰 중죄인 것 같았다.

‘레ㅃ!’
‘레ㅎ?’

친실장은 바로 두마리 모두 입에 넣었다. 간신히 말랐던 눈물의 강에 또다시 색이 입혀진다. 자식을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남은 자식들이 죽는다. 그렇지만 자식을 먹어야 한다.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키고 나서, 친실장은 다시금 입을 막은 체 소리 죽여 오열했다. 자식을 죽였음에도 소리 높여 우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이 남은 세 자매의 위석에 새겨졌다.

출산이 끝난 후, 출산소로 썼던 그릇을 치우고 친실장은 태어난 세 자매를 나란히 앉혔다.

‘마마는 사육실장이었는 데스.’
그 말에 놀라는 세 마리. 그제서야 마마가 자신들과는 다른, 살짝 색이 바랬지만 분홍색의 사육실장복을 입고 있음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옷의 가슴께에 달린 명찰. 그곳에는 갓 태어난 자충들은 모르는 인간의 글자로 ‘도리미’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마마, 텝!’
무언가 말을 하려던 장녀는 다시 한번 친에 의해 입이 막힌다.

‘쉿’

끄덕끄덕

‘다 말해주는 데스요. 그러니 조용하는 데스.’
의문과 향후 생활에 대한 기대로 빛나는 세쌍의 눈동자.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도리미는 길디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와타시는 방금도 말했듯이 사육실장인 데스. 아니, ‘이었던’ 데스. 예전에는 주인사마와 행복한 나날을 살고 있었는 데스요. 하지만,’
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괴물이 쳐들어와 바깥 세상은 멸망한 데스. 주인님도, 다른 닝겐상들도 다 사라진 데스.’
도리미의 양눈에서는 아직도 남았는지 적녹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괴물은 소리를 듣고 움직이는 데스. 소리가 들리면 잡아먹는데스. 그러니 조심해야 하는 데스.’

간단하면서도 의문해소에 필요한 것은 모두 담긴 말. 장녀와 차녀 엄지, 그리고 삼녀 우지 모두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그제서야 자충들이 기특한 듯 작게 데프프프 웃는 도리미.


탄생의 순간은 그렇게 혼란스러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럭저럭 잘 적응하고 있다. 적어도 장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네챠.’
‘?’
자신을 올려다보며 부르는 차녀에게 반응하는 장녀.

‘이 문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는 레치?’
차녀의 질문에 삼녀 우지도 귀를 쫑긋 세운다. 장녀는 며칠 전 어미를 따라 나무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왔다. 차녀와 삼녀는 아직 이 문 안 세상밖에 모른다. 아무래도 이런 곳에 갇혀 있다 보면 이러저러한 이야기라도 들어야 사는 재미가 있다.

“이 문밖은 재미있으면서도 위험한 테치.”
장녀는 삼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회상하듯 눈을 감았다.


며칠 전, 장녀는 세상 적응 훈련이라는 명목 하에 친실장과 함께 나무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처음 나가본 ‘바깥 세상’은 생각보다는 깨끗했다. 다소 헤진 다리네발씨와 문 많은씨 등 – 도리미는 그걸 ‘탁자’와 ‘서랍’이라고 불렀다 - 낡은듯하면서도 잘 정돈되어 있는 모습이 신기한지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장녀.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장녀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어둡고 축축한 나무문 안. 그에 비해 ‘바깥 세상’은 이리도 축복받은 빛이 세상을 아로새긴다. 장녀는 무심코 약간이나마 이곳을 돌아다니는 친실장에게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이곳은 바깥이 아닌데스.’
‘테? 여기가 아닌 테치?’
장녀의 마음이라도 읽은 걸까? 친실장은 조용히 하라는 특유의 제스처와 함께 말을 이었다.

‘이곳은 옛날 주인님과 와타시가 살던 집 안인 데스.’
그러면서 회색조의 단단해 뵈는 문을 가리키는 도리미.

‘저 문을 지나야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데스.’
문을 바라보는 장녀. 굳게 닫힌 철문은 자신은 물론이고 친보다도 거대하다.

‘저 넘어는 위험한 데스. 성체인 와타시도 매일매일 죽음을 무릅써야 하는 곳인 데스. 괴물은 밤낮으로 돌아다니는 데스.’
뭔가 실감이 나지 않는 장녀. 이렇게 밝고 아름다운 세상에 그런 괴물이 진짜 있을까?

‘데샤아아아아!!!’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창문 넘어로 갑자기 들려온 성체의 비명소리. 장녀는 절대 빵콘하면 안 된다는 친의 가르침도 잊고 살짝 지려버렸다.

‘금기를 어긴 동족상인 데스. 아마도…괴물들에게 잡아 먹히고 있는 모양인 데스.’
베란다 넘어로 힐끗 시선을 준 도리미는 담담히 말했다. 

‘잘못한 데스! 죽이지 마는 뎃샤아아아!!!!’
처절한 비명이 들린다. 하지만 도리미는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다. 한두번 들어본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키 차이로 인해 장녀는 바깥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처절한 비명소리가 장면을 상상케 해주었다. 낙원이라 생각했던 곳은 사실 파리지옥이었던 것일까? 장녀는 잠시나마 이곳을 천국이라 생각했던 자신을 책망했다.

아까 친이 가리켰던 철문과 비슷한 사이즈의, 하지만 나무로 된 문을 살짝 열자 그 안에는 거대한 투명투명씨가 벽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다. 그 뱃속에는 녹색의 작은 원통물건이 여러 개 담겨있었다.

‘이건 푸드인 데스. 와타시들의 주식.’
도리미는 조용히 푸드봉지의 끝을 풀고 푸드를 하나씩 꺼낸다.

‘며칠 전에 와타시가 좀 늦게 들어온 적 있지 않는 데스?’
장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그 때 바깥 세상으로 나가서 모아온 푸드인 데스. 그땐…정말로 죽을뻔한 데스.’
장녀는 말없이 도리미를 안았다. 마마는 자신들을 위해서 늘 목숨을 걸고 있다. 아주 찰나같지만 잠시라도 그런 마마를 질투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장녀를 본 도리미는 데프프 웃으며 장녀를 안아주었다.


“그 회색문 넘어는 와타시도 못 가본 테치. 하지만 언젠가는 와타시도, 이모토차도 갈 수 있을 것인 테치.”
자신에게 꼭 안긴 엄지를 쓰다듬는 장녀.

‘그러니 와타치가 이모토차들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테치.’


그렇게 서로 붙어 웅얼거리던 자매는 어느샌가 또 잠이 든다. 빛이 점차 줄어든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들어오는 빛이 점차 줄어드는 시간. 장녀가 일어난다.

장녀와 나머지 자매들은 하루 중 두 번, 이런 시간을 제일 싫어한다. 

왜냐하면, ‘괴물’이 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무벽 뒤로 어둠이 내리깔기 시작할 때, 괴물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둡던 틈새에 갑자기 강렬한 빛이 새어든다. 괴물이 왔다는 신호다. 왜인지 모르지만 괴물은 항상 빛을 등에 지고 찾아온다.

쿵쿵쿵

“장녀 오네챠…”
“쉿.”
마치 어미를 따라하듯 장녀는 차녀와 삼녀를 꼭 안으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자신도 떨리긴 매한가지지만 지금은 자신과 자매들 밖에는 없다. 차녀 품에 안긴 삼녀는 저실장 특유의 동그랗게 말기를 하며 벌벌 떤다.

쿵쿵

어느덧 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제발, 제발, 제발.


멈춰섰다.

죽음과도 같은 적막. 장녀 품에 안긴 삼녀의 심장소리조차 들릴지 모르는 침묵. 바깥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살짝살짝 들리는 소리가 괴물이 무언가를 찾고 있음을 알려준다.

열지 마라. 열지 마라. 제발 열지 마라.

1분일까 2분일까, 마치 억겁과도 같은 시간. 하얗게 질린 막내 우지가 검은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은 시간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데스데스

마마다! 마마의 목소리다! 그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 그런 생각으로 뇌를 채운다. 하루에 두번 괴물이 오는 시간. 마마는 늘 이렇게 문 밖에서 외친다. 마마가 저렇게 소리치면 어느새 괴물은 마마를 따라 뒤돌아 사라진다.

쿵쿵쿵

괴물의 발소리가 지축을 뒤흔든다. 언제까지고 들릴 것 같은 그 발소리는 이윽고 ‘철문’이 닫히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끝난다.

괴물이 나간 것이다. 오늘도 마마가 괴물을 물리친 것이다!

“다들 무사한데스?”

괴물이 가고 시간이 흐른 후 도리미가 조용히 나무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리미를 맞이하는 새끼들의 얼굴은 뭐라고 단정짓기 힘든 감정들이 응축되어 있다. 반가움, 슬픔, 환희, 서러움, 성취감. 매일 보는 모습이지만 그 모습을 보고는 역시 눈물을 흘리며 모두를 안아주는 도리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녀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미안한데스 미안한데스. 괴물이 또 왔다간 데스. 마마가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한데스.”
“아닌테치. 마마 고생하신 테치.”
친이 소리죽여 운다. 새끼들 또한 그런 마마에게 안겨 운다.


굶지는 않지만 하루하루 살얼음판에 사는 실생. 이들은 가족간의 사랑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런 일가에 하나의 작은 경사가 생겼다.

막내가 고치를 틀었다. 보름달이 뜬지도, 보름달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때가 되었다고 느낀 건지 막내는 자는 동안 하얀 실을 내어 온 몸을 휘감았다.

“마마, 막내가 없어진 레치.”
차녀가 당황하여 친을 붙잡고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한다.

“차녀, 다른데스. 이게 삼녀인 데스.”
“레?”
도리미는 새끼들을 앉히고 찬찬히 설명을 해준다. 저실장은 영양이 충분하고 때가 되면 엄지로 우화하기 위해 실을 내어 스스로를 감는다. 그리고 특정 시점이 지나면 엄지가 되어 고치를 찢고 나온다.

“그럼, 와타치, 엄지 이모토가 생기는 레치?”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물어보는 엄지. 친실장은 그런 엄지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마마도, 아마 마마의 마마도 이런 건 보지 못한 데스. 오마에들이 자랑스러운 데스.”
저실장이 우화하려면 매우 많은 조건들이 갖춰져야 한다. 충분한 영양, 충분한 애정 그리고 충분한 프니프니까지. 팍팍한 삶이지만 막내 우지는 그 정도로 사랑받고 자란 셈이다.


그 뒤로 일가의 매일은 행복했다. 차녀는 언제 동생이 나올지 몰라 두근거리고 장녀 또한 말을 안 하고 있을 뿐이지 차녀와 마음은 비슷했다. 언제나 괴물을 유인하고 들어오는 도리미의 표정도 훨씬 밝아졌다. 

행복이 그렇게 계속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 환희의 나날. 그날도 아침에 찾아올 괴물을 유인하려 조용히 작은 나무문을 열고 나가는 친실장과 그런 친을 배웅하는 새끼들. 평소와 같은 나날이었다.

단 하나, 고치만 빼면.

쩌저적!

모두가 소리의 진원지를 쳐다봤다. 고치에 작은 틈이 생겼다. 

쩌저저적!

고치가 찢어진다. 갈라진 틈새로 길쭉해진 손이 튀어나온다. 소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리고 동생이 나온다! 모두가 그 순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이 나온다. 반신이 거의 다 나왔다. 가족은 기뻐한다. 무언의 환호가 가족을 둘러싼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막내 우지, 아니 엄지가 그에 화답한다.


“텟테레!!”



도리미는 멍했다. 장녀는 경악으로 입이 벌어졌다. 차녀 또한 마찬가지다.

도리미는 몰랐다. 태어날 때 환희의 찬가를 부르는 것은 알았지만, 저실장이 고치를 깨고 나올때도 그러할 것이란 것을. 고치를 깨고 나온다는 건 새로 태어나는 것과 같기에 그렇다는 의미인 것을.

쿵쿵쿵

발소리가 들려온다. 

“…다 끝난데스…”
도리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쿵쿵쿵

점점 커진다. 괴물이 온다! 장녀는 안절부절 못하고 그저 마마를 쳐다본다. 차녀는 여전히 멍하니 삼녀를 볼 뿐이다. 삼녀는…하얗게 변한 얼굴로 아닌레치 아닌레치…를 반복하고 있다. 삼녀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그 누구도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 못했을 뿐이다.

벌컥!

문 바깥에 있는 다른 큰 나무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괴물이 나왔다. 도리미는 새끼들이 있는 작은 장의 나무문을 닫지도 않은 체 그저 괴물을 등지고 서 있었다.

크다. 그리고 검다.

‘괴물’을 처음 본 장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천천히 도리미와 새끼들을 향해 다가오는 괴물. 빛을 등지고 선 괴물은 곧장 일가를 습격하지 않고 말없이 장녀와 도리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장녀의 눈에는 자신을 향해 긴 무언가를 뻗어오는 괴물의 모습이 들어왔다. 촉수 같이 길쭉한 것에 끝에는 다섯개의 돌기가 달려 장녀를 구속하듯 얽어 맸다.

비명을 지르고 싶다. 잡아먹히긴 싫어! 살려줘 마마! 하지만 침묵할 것을 강요받고 침묵 속에서 살아온 자실장은 자신이 생각하던 최악의 상황이 닥쳤음에도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저 입만 뻐끔뻐끔 움직이는 장녀, 그리고 소리를 죽이고 이 상황을 바라보는 나머지 자매를 지긋이 쳐다보는 괴물.

그 ‘괴물’이 입을 열었다.

“도리미…결국 몰래 새끼를 낳고 키우기까지 했구나…”

‘괴물’은 굉장히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실장석이 인간보다 힘들게 사는 이유



“와타시타치가 왜 이리 힘든 삶을 사느냐는 데스? 그거야 간단한 데스.”


나는 오랜만에 주말에 시간을 내서 근처 언덕을 낀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11월에 접어든 나날이지만 이상기후로 인해 기온이 영상권이던 그날 나는 두툼한 비닐봉지를 들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나아가던 성체 실장석을 보았다.


“뎃?! 니, 닝겐상…제발…와타시는 먹여살려야 하는 자가…”

“난 너네에게 관심없어. 네가 똥벌레 짓 안 하면 건드릴 생각도 없어.”

“가…감사한데스.”

“다만, 뭐 하나만 물어보자.”

죽일 생각이 없다는 내 말에 안도의 한 숨을 쉬던 성체실장은 내 물음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띄웠다.


“뭐인 데스까?”

“네가 생각하기에 너네는 왜 이리 힘든 삶을 사는 거 같냐?”

“데에?”

더 모르겠다는 표정의 성체. 하긴 나도 그냥 실장석을 본 김에 아무거나 생각나는 걸 물어본 거라 어떤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잘 풀리지 않는 내 삶의 푸념 같은 질문이라 대답하기가 힘들겠지.


“데에, 그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와타시 생각에는 동족들의 시기와 질투가 큰 거 같은 데스.”

“뭐야 그건. 그런 건 인간도 똑같다고.”


지나가는 내 푸념에도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성체는 그런 답변을 내놓았다. 


“데에…하지만 닝겐상, 닝겐상이 보시기에 만약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던 사람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내일도 사는데스! 하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 데스까?”

“음? 그거야…박수를 쳐주겠지. 그리고 여태까지 힘들었으니 이제는 좀 잘 살아봐라 라는 생각이 들 테고.”

“바로 그것인 데스.”

“어?”

이번엔 아까와 반대로 내가 의아하단 표정을 띄우고 있겠지. 


“와타시는 예전에 사육실장이었던 데스. 어느날 꽃가루로 임신되어버리는 바람에 자를 포기할 수 없어서 독립한 데스.”

“그래서?”

“와타시가 사육으로 있는 동안 그 주인사마가 파소콘(PC)으로 커뉴미티? 하여튼 그 비슷한 데를 들어가는 걸 많이 본 데스.”

“커뮤니티겠지. 뭐 디지털 카메라 아웃사이드나 호시노웹 같은 데인가?”

“와타시는 잘 모르겠는 데스. 하지만 주인사마가 가던 커뉴? 여튼 그 커뮤티라고 하는 데서는 누군가 어려움에 처해있고 그걸 극복하면서 살고 있다는 글이 뜨면 그 대끌이라고 하는 글로 사람들이 위로와 축하를 해 주는 걸 본 데스.”

“음,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렇겠지.”


내 말에 성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것인 데스. 닝겐상들은 그렇게 아는 사이든 알지 못하는 사이든 누군가의 극기와 성취에 위로와 응원 그리고 찬사를 보내주는 데스. 그걸 힘으로 삼아 닝겐상들은 어려움을 해치며 살아가는 데스.”

“그게 왜? 인간 중에서도 남의 성공과 성취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은 있어.”

“하지만 그런 닝겐과 아까 말씀하신 ‘보통의’ 닝겐상들 중 누가 더 많은 데스까?”

음, 나는 잠시 생각을 굴렸다. 세상에 미친놈들이 많긴 하지만 아직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더 많지.


“후자.”

그러자 내 대답을 듣고는 힘 없이 데프픗 웃는 성체.


“와타시타치는 그 반대인 데스.”


나는 그제서야 뭔가 알 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성체가 말을 이었다.


“와타시가 사육일 무렵 주인사마는 그렇게 말씀하신 데스. 닝겐상을 의미하는 한자? 는 닝겐상이 다른 닝겐상을 떠받치는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인 데스.”

“사람인(人) 이야기로군.”

“그렇게 닝겐상들은 알게 모르게 주변 혹은 다른 사람들의 수난 극복기를 보고, 듣고, 위로해주고, 축하해주며 자신들도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거 같은 데스.”


하지만, 이라는 소리와 함께 한숨을 팍 쉬며 어깨를 늘어트리는 성체.


“와타시타치는 그 반대인 데스. 와타시가 이곳에 와서 경험한 거라고는 서로 무시하고, 시기하고, 누군가 어려움을 해쳐나가면 그걸 비난하며 습격하던 것이었는 데스...”


나는 왠지 내 앞에 있는 성체에게 측은지심이 들었다. 실장석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똑똑하고 삶을 통찰할 수 있음에도, 그러나 그렇기에 자신들에게 펼쳐진 길이 절망과 고난 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저 성체에게 불쌍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 다면 ‘보통의’ 사람은 아니겠지.


“자, 이거 가져가라. 오늘만이라도 행복해봐.”

“감사한 데스. 정말 감사한 데스.”


나는 마침 산책하면서 까먹을 용도로 건빵을 사왔기에 그걸 성체에게 주었다. 성체는 색색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와 함께 건빵을 받아갔다.


녀석이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기에 오늘의 고난을 해치며 살아간다. 실장석은 반대이기에 점점 쇠퇴하고 있다. 


만약 인간이 멸망하는 날이 온다면 그건 실장석들 같은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가 되는 날일 거다.


나는 오랜만의 뜻깊은 산책을 즐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기적인 미도리코



“미도리코 오바상은 왜 그리 이기적인 데스까?”
“데에…”

또 이런 말이군. 새파랗게 젊은, 이제 막 성체가 된 젊은 실장석의 말에 5년차에 접어든 미도리코는 작게 한숨을 내 쉬었다.


수도권 근교도시의 새로운 주거지역인 S시 G지구. 그곳에는 5년 전 정부가 나름 야심차게 추진한 4차 신도시계획의 일환으로 조성된 국내 최대 도심생태공원인 두루마리 공원이 있다.

그리고 그 공원에서는 특이하게도 그 지역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육실장들의 주인을 위한 사육실장구역이 있다. 일종의 사육실장 모임장소로 사육주가 자신의 사육실장을 데려다 놓으면 실장석들끼리 모임을 가지는 구역인데,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이곳 두루마리 공원의 명물처럼 된 곳이다.

그런 모임장에서, 미도리코라고 불리는 한 실장석은 여러 사육실장들에게 둘러쌓인 안쪽에서 한 젊은 실장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체 실장석이 되었다면 마땅히 자를 가져 주인에게 보여줘야 하지 않는 데스까? 주인사마와의 사랑의 결실인 흑발의 자라면 더 좋고 말인 데스. 그게 와타시타치, 실장석들의 권리이자 의무인 데스요.”

무슨 대중연설이라도 하는 양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스스로 뿌듯해하는 젊은 성체에게 미도리코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마에, 오마에는 사육실장으로 교육받은 교육장 출신이라 들은 데스. 그런데 거기 브리더상이 가르칠 때 자를 가지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 않은 데스?”

“그렇게 교육받은 데스. 하지만 주인사마의 집에 와 보니 주인사마는 와타시를 엄청나게 예뻐해주셨던 데스. 그걸 보면 그 똥브리더는 와타시가 이 귀여움과 세레브함으로 주인사마를 메로메로하는 걸 질투한 게 틀림없는 데스!”

“오마에, 거기에 자를 낳으면 오마에가 가진 모든 것을 자와 나눠야 하는 데스. 그걸 감내할 수 있는 데스까?”

미도리코의 말에 한창 떠들던 성체는 물론이고 그 둘을 둘러싸고 있던 다른 성체실장들 까지도 무슨 소리냐는듯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 꼬았다.

“그걸 왜 걱정하시는 데스 오바상? 마마가 되면 당연히 와타시의 세레브한 삶을 자들에게 나눠줘야 하지 않는 데스?”

“와타시는 그게 싫은 데스. 아무리 자라도 왜 와타시가 주인사마께 받은 와타시걸 나눠줘야 하는 데스까?”

”바로 그게 이기적이라고 하는 데스!!”

미도리코의 말에 상대 성체가 입에서 침을 튀기며 미도리코를 성토한다.

“와타시타치, 실장석이 마마가 되어야 하는 것은 우주의 진리요, 하늘의 뜻인 데스!” 주인사마를 비롯한 닝겐상들은 그걸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 데스!! 똥브리더가 감히 그걸 와타시타치에게 숨기며 말하지 않았지만 와타시는, 그리고 여기서 마마가 될 결심을 마친 자들은 그걸 알아버린 데스요?”

그 장엄한 연설에 여기저기서 맞는데스! 진리인데스! 같은 말이 튀어나온다.

미도리코는 주위를 둘러본다. 아는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한숨을 쉴 뿐이었다.


왜 자식을 가져서 주인의 한정된 사랑을 나눠 가져야 하는가? 주인의 돈이나 식량은 무한하지 않다. 구체적으로 얼마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미도리코는 늘 그게 자기 생각보다 넉넉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그리 똑똑하지 않은 실장석이라도 미도리코는 자신의 어렸을 적 기억으로 그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미도리코는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육실장과 달리 들실장 출신이었다.

들실장이던 마마는 하루종일 밖에서 난리를 치고도 다섯자매가 그야말로 마음에 점이나 찍을 만큼의 음식밖에는 들고 오지 못했다. 아니, 마음에 점이나 찍으면 다행이지 그 부족한 음식의 대부분은 마마가 먹고 그 다음에 장녀와 차녀가 간신히 무언가를 먹었다 수준의 쓰레기를 배급받았으며 삼녀인 자신은 찌꺼기 정도나 받으면 다행이었다. 그나마 자신은 자실장이었으니 그런 거라도 먹었지 사녀 엄지와 막내 우지챠는 가족들의 운치로 연명했다. 그런 운치마저도 비상식량인 운치굴 노예들을 먼저 먹이고 남는 걸 먹였으니 사녀와 막내는 그야말로 간신히 목숨만 붙이고 사는 수준이었다.

그런 미도리코는 어릴 때부터 굶어죽지 않으려면 남이 입 속에 집어넣은 것도 빼앗아 먹어야 했다. 덩치가 크다고 자기 먹을 걸 빼앗아 가려는 장녀나 차녀에 맞서서 지지 않고 맞서 싸웠다. 물론 덩치가 훨 작은 삼녀따위가 그나마 무언가를 먹고 큰 장녀나 차녀에게 이길 수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기지는 못해도 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는 먹을 것을 빼앗기지 않는 것만 해도 미도리코가 이겼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중에는 미도리코가 하도 독하게 저항하자 장녀와 차녀는 지들끼리 싸우고 하다하다 사녀와 막내의 운치까지 빼앗아 먹었다. 저항하지도 못하는 사녀와 우지챠는 결국 굶어 죽었다.

자신도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런 꼴이 되었겠지…미도리코는 회상 도중에 오늘 몇번째일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실생은 허무하다. 동생들이 굶어죽고 며칠 안 지나 마마가 학대파에게 맞아죽었다. 중실장도 되지 못한 자실장들만이 남은 상황. 어느날 밤 장녀와 차녀가 자신을 내일 아침에 잡아먹자고 작당모의를 하고 있기에 미도리코는 그날 밤 모두 잠들었을 때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다.

굶는 건 당연하고 성체들에게 걸려 잡아먹힐 뻔 한 걸 몇 번이고 운이 좋아 숨어다녔던 어느날, 미도리코는 주인을 만났다.

주인은 젊은 남자였다. 전문직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남자는 무슨 변덕인지 미도리코를 사육실장으로 데려왔다.

주인은 따뜻한 남자였다. 온화하고 주위에서 평판도 좋다. 여태까지 미도리코가 잘못을 해도 조용히 타이를 뿐 큰 소리 한 번 내본 적이 없을 정도다. 직업도 전문직이라서 돈도 많은지 집은 제법 넓고 푸드도 상급 이상의 질은 되는 푸드를 준다. 자기 방도 없었던 미도리코에게 전용 집이 생겼다. 옷도 여러벌 있고 장남감도 사주었다.

그렇게 주인을 만나고 이제는 굶어죽기는커녕 사는 데 아무런 걱정은 전혀 없는 사육실장이지만 미도리코에게 그런 사육실생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봤을 때 그저 언제든지 없어질 신기루 같은 것에 불과했다.

지금은 주인이 밥과 잠잘 곳을 주지만 그게 언제 끝날지 모른다. 마치 마마처럼 주인도 그리 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인간이라고? 주인이 가끔 보여주는 TV프로그램에서 보는 인간들은 행복한 삶을 살다가도 순식간에 운치굴에서나 볼 듯한 삶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러니 있을 때 최대한 자기 입에 집어넣어야 한다. 자기가 모두 가져야 한다. 욕심내지 말라는 건 사치에 불과하다. 단 하나, 주인이 나눠주지 않은 것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미도리코는 일단 자신이 누리는 모든 걸 남에게 단1도 나눠줄 의향이 없었다.

자식을 낳으면 자신의 밥을 나눠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아마 주인이 자식을 보고 푸드를 조금 더 줄 수는 있겠지만 지금보다는 확실히 먹는 양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실장용 놀이공 같은 장난감도 자식들에게 내 줘야 할 거다. 자신이 금쪽같이 아끼는 세레브한 실장복도 마찬가지. 막 낳았을 때야 자식들이 작아서 못 입지만 나중에 성체가 되면 그 옷을 탐낼 것이 아닌가?

게다가 집이나 놀이공간은 어떠한가? 지금도 미도리코가 크면서 안 그래도 좁다고 느끼는 공간인데 자식들이 나오면 더 북적거릴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자식들이 왁자지껄 뛰어다니고 노는 동안 미도리코는 저 구석탱이에 데에~ 하면서 찌그러져 있어야 할 거다.

그걸 내가 왜 감내해야 하는데?

“그건 이기적인 말인 데스요 오바상! 와타시의 자들, 그리고 오바상의 자들도 와타시타치가 누린 세레브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는 데스!!”

젊은 성체는 그렇게 외쳤다. 뭉툭한 손으로 치는 박수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와타시는 행복하다! 그리고 이 행복을 자들도 누려야 한다!

어쩌면 저렇게 토시 하나 안 틀리는지 원…미도리코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러고보니 자신이 성체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체 모임에 처음 참석했을 때 들었던, 지금은 없는 초록이 오바상이 해준 말이 생각난다.

[그걸 왜 걱정하는 데스요? 주인사마에게 자들 몫만큼 더 사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닌 데스? 이미 세레브한 와타시의 자들에게 메로메로된 주인사마는 최고급 실장집과 실장옷들을 착착 가져다 받칠 게 뻔한데 왜 그런 한심한 걱정이나 하는 데스우? 혹시 오마에는 자신의 사육실생을 자들과 나누기 싫어서 핑계대는 거 아닌 데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사육실장 공원모임에서, 당시 모임의 리더(?)격이었던 초록이 오바상은 다른 사육실장들의 선망의 눈빛을 받으며 미도리코를 이기적이라고 질책했다. 미도리코가 앞서와 같은 이유를 말하자 초록이 오바상은 저렇게 말했다.

초록이 오바상은 분명 그리 말했지만 그때 미도리코는 그게 아닐 거라 생각했다. 자실장 시절부터 간혹가다 밖으로 산책을 나가면 아들이나 딸로 보이는 사람이 주인 같은 어른 남성에게 울며불며 매달려도 그 어른 남성은 따끔하게 혼을 냈지 사주지는 않았다. 자기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안 해주는데 우리에게 그렇게 해줄 거라고???

[데프프~ 그건 자닝겐이니 그런 데스요. 와타시는 주인사마의 방에서 주인사마의 마라액을 훔쳐낸 데스. 그걸로 임신하면 와타시는 주인사마의 자를 가지는 거고 그러면 와타시는 주인사마의 안주인이 되는 데스네. 안주인이면 곧 닝겐이고, 주인사마보다도 높으니 다 사오라고 명령하면 되는 데스!]

그 말과 함께 둥그렇게 형성된 모임에서 몇몇 부러움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미도리는 그 모임 이후 몇날 며칠을 고민했지만 결국 자를 가지지 않기로 생각을 굳혔다.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자기 걸 나누기는 싫다. 이기적이라고 소리를 듣든 말든 싫은 건 싫은 거다.

다음에 초록이 오바상을 보면 그렇게 말해주자라고 결심한 미도리코였지만 그 이후 초록이는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모임에 자주 나오는 성체 몇 마리도 같이 보이지 않았다. 남아있던 성체들에게 그들의 행방을 물어봤지만 알 수 없다는 대답만 들려올 뿐이었다.

혹시 주인은 뭘 알까 싶어서 물어봤지만 주인은 왠지 저 멀리 하늘높이 쭉 뻗어 있는 굴뚝을 가진 건물 – 사람들은 ‘소각장’이라고 부르는 건물 – 만 바라보며 좋은 데로 갔을 거라고 밖엔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미도리코는 그냥 그런갑다 하며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모임은 계속 유지되었다. 멤버는 1년 정도를 주기로 계속 바뀌었다. 신규 사육실장이 유입되고, 어느 정도 큰 성체들은 사라졌다.

그러나 매번 그렇게 멤버들이 교체되어도 미도리코는 그때마다 이기적이라는 질타를 들었다.

이 세상은 너 혼자 사는 게 아니다.
주인에게 자식을 보여줘야지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
너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다가 아니다.
말년에 외로울 거다.

말하는 실장석은 바뀌었어도 나오는 말은 늘 비슷비슷한 패턴이다. 그리고 그 말을 한 실장석은 다음 모임에서는 볼 수 없었다는 것도 비슷하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이 새파란 젊은 녀석에게도 이런 말을 듣네. 미도리코는 자기 앞에서 자를 낳는 기쁨과 그걸 행해야 할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장광설로 늘어놓는 젊은 성체를 말없이 바라본다.

“오바상, 만약 오바상이 자를 낳지 않으신다면 와타시가 먼저 마마가 되어서 실생 선배로서 그 기쁨을 알려드리는 데스! 브리더상에게 배운 것까지 포함해서 세레브한 실생을 알려드리겠는 데스!”

자기보다 나이든 성체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음에 기뻐서 하지 말아야 할 선을 건드리는 젊은 실장석. 거기에 그 성체는 자신이 태생부터 사육실장 후보로 태어났음까지 어필했다. 아마도 들출신인 미도리코를 은연중에 얕잡아 보고 있는 것일 것이다.

“오마에, 선 넘지 마는 데스요. 만약 그리 하고싶으면 그리 하는 데스. 그러면 어떻게 될지 한 번 보여주는 데스.”

미도리코의 낮은, 하지만 묵직한 한 마디에 까불거리던 성체는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이래봬도 5년이 넘게 살아온 미도리코다. 다들 뒤에서 이기적이라고 수근거릴지 언정 지금껏 살아온 미도리코의 경륜과 지혜는 그 누구도 뭐라 하지 못했다.

“뎃?! ㅇ…와타시가 진짜 그럴 거라는 게 아닌 데스 오바상. 와, 와타시는 그저…오바상도 자를 낳아 실장석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시고 기쁨을 누리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리 말한 데스…”

“오마에의 마음을 아니까 와타시도 이번엔 넘어가는 데스우. 하지만 와타시는 여전히 자를 낳아 와타시의 것을 나눠야 하는 것에 대해 마음이 들지 않는 데스. 주인에게 자들 몫까지 달라고 메로메로 시킬 정신이 있으면 그걸 와타시가 더 받지 왜 그걸 나누는 데스까?”

미도리코는 우물거리는 그 성체에게 쐐기를 박듯 그리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 성체를 쏘아보며 말했지만 모임 멤버들이 한 차례 또 교체되었으니 결국 그 자리에 있는 새로 온 사육들 전부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역시나 미도리코가 자리를 뜨자마자 몇몇이 뒤에서 뭐라뭐라 쑥덕거린다. 이기적인년, 지 혼자 인생사나? 석녀아냐? 역시 들출신이라 세레브한 와타시와는 맞지 않는다 등등 뭐 그런 거겠지. 이젠 안 들어도 다 짐작이 간다.


“미도리코, 저기서 무슨 말 했어?”

미도리코가 다가오자 벤치에 앉아있던 주인이 웃으며 말을 건냈다.

“새로운 멤버가 또 온 데스 주인사마. 다들 좋은 친구들인 데스.”

주인의 말에 미도리코는 살짝 심드렁한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미도리코가 찬 목걸이형 링갈에서 나오는 그녀의 말을 들은 주인은 그렇구나? 하며 씩 웃더니 집으로 가자며 일어섰다.


“그럼 쉬고 있어 일 하나만 해놓고 푸드 줄 테니까.”

“알겠는 데스 주인사마.”

집으로 돌아와 가볍게 씻은 미도리코와 그 주인은 각자의 집과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이지, 이기적인 녀석이라니까 미도리코.”

방안에 들어온 주인은 그 사람좋던 얼굴에 약간의 음영을 띄우며 나직히 말했다.

“어서 빨리 분충이 되어 악을 쓰게 하기 위해 기존 모임 녀석들을 몰래 선동했는데도 5년이나 변화가 없다니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거야 그 녀석은?”

여전히 웃고 있지만 아까와 같은 온화한 웃음은 아닌, 그러면서도 결코 악의만 가득한 게 아니라 못 말린다 싶은 악동 같은 존재를 대하는 그런 쓴웃음이 가미된 웃음을 지은 남자는 자기방 구석에서 여러장의 사진을 꺼냈다.

“미도리코, 미도리코. 사랑스러운 미도리코.”

그것은 실장석의 사진이었다. 그것도 여러장. 거기엔 각자 다른 실장석들이 한 마리씩 유리를 치며 판토마임을 하는 듯한 포즈로 찍혀있었다. 그 뒤에는 불꽃이 일렁이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소각로에서 고통받는 실장석을 찍은 것이 분명했다.

“초대 미도리코는 한달도 안 돼 분충이 되어 소각당했지. 2대는 그래도 세달은 버텼고 3대는 일주일도 안 되어서 소각로로 가 내 즐거움을 늘려줬어. 4대는 참 잘 버텼지만 그래서 그런가 소각될 때 정말 고통스러워 했었었지 하하.”

사진을 한 장, 한 장 볼때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웃는 남자.

“우리 5대는 그런 면에서 정말 기네스북 감이라니까. 5년을 버티면서 내 즐거움을 앗아가 버리다니 말이지.”

사진에서 시선을 떼고 남자는 여전히 웃는 체 방문을 쳐다본다. 그 방문 밖에 있는 미도리코의 집에 앉아서 데휴 하는 한 숨과 함께 아픈 다리를 주무르고 있을 ‘미도리코’를 생각하며.

“정말 이기적인 녀석. 주인의 기쁨은 1도 생각하지 않는 녀석. 하지만 저런 녀석이 분충이 되어 소각되면 얼마나 나를 기쁘게 만들까.”

남자는 그건 그때의 즐거움으로 남기자며 혼잣말을 하고는 미도리코의 밥을 챙겨주기 위해 방문을 열고 나갔다.








위석 인터넷



실장석들에게 위석은 인터넷과 같다. 

그들에게 위석은 삶의 갈림길에서 소중한 조언을 해주는 조언자이자 심심할 때마다 각종 유희성 정보를 제공해주는 커뮤티니이며 삶의 지혜를 개체를 넘어 축적 및 보존해주는 아카이브다.

“이건 또 뭔 헛소리냐? 위석이 인터넷? 참피놈들에게?”
“어. 참고로 이거 내 뇌피셜이 아니라 저명하신 학자님의 논문에서 나온 말이다.”

대한민국 수도권의 내로라하는 공업단지 중 하나를 담당하는 A시 G동 신도시 지역의 한 고기집. 치익-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고기가 놓인 불판을 사이에 두고 철웅은 뭔 도그 사운드냐는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은 남자, 도시악을 쳐다봤다.

“누구?”
“아키토시 세이지로. 『실석류 위석파동과 실장석 개체 간 정보이동에 대하여』. 참고로 이제 개제된 지 하루 조금 넘은 따끈따끈한 논문이다.”
“어, 그 양반이면 흰소리할 양반은 아닌데…”
끄응 하고 철웅이 얼굴을 찌푸렸다. 세이지로 아키토시, 일본의 1세대 실장석 학자이자 그 똥벌레에 대해서는 세계 1인자라 할 수 있는 양반으로, 처음 실장석이란 생물을 정의하고 위석을 분석해 냄으로써 현재의 실장산업이 존재할 수 있게끔 만든 사람이다. 일반인이라면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링갈의 개발자라는 그 한 단어만으로도 그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참피를 처음 연구했던 사람인만큼 아키토시는 철저한 학대파였다. 자기 앞에서 검은 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빌던 성체를 가차없이 해부하고, 한 시간만에 일가 두셋을 몰살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으며, 지금와서는 학대파라면 당연한 소질인 머리만 남기고 모조리 포를 뜬 실장석을 살려놓는 것도 그가 처음 시도했고 또 성공한 일이었다. 물론 아키토시는 학자답게 자기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그리했다기 보다는 실장석을 분석하면서 부차적으로 학대를 한 쪽에 가까웠겠지만 그가 실장석에게 행한 ‘실험방식’은 지금도 학대파들의 바이블이나 다름없으니 말 다 한 거겠지.

그러니 그 정도의 양반이 무려 논문을 발표했을 정도라면 그건 그냥 지나가는 헛소리는 아닌 게 분명하다.

“아키토시 박사가 예전에 쓴 걸 리바이벌해 보자면 한 실장석이 무언가 행위를 취하고 그로 인해서 이득이나 손해를 볼 경우 그 정보는 그대로 개체의 위석에 각인된다고 했지.”
고기 한 점을 우물거리며 말하는 도시악. 야 다 먹고 말하든가 입을 가리든가 둘 중 하나는 해라. 철웅은 그렇게 핀잔을 주면서도 그의 입에서 다음말이 떨어지기를 재촉한다.

“문제는 거기까지는 우리도 알고 있는 사항인데, 아키토시 박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렇게 말했어. ‘위석에 각인된 정보는 위석파동을 타고 개체를 떠나 모든 ‘실장석’에 해당하는 생물체들에게 공유된다.’”
“그건 이미 다 아는 거잖아?”
철웅이 살짝 실망한듯 말했다. 방금 도시악이 말한 건 실장석에 대해 아주 약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익히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사실 갓 태어난 새끼가 아무리 태교를 들었다 한들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어느정도 알고 태어나는 것은 바로 그 위석에 여태까지 실장석들이 깨우치고 배운 사실들이 축적되고 공유되는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도시악은 그럴줄 알았다며 씩 웃더니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이번에 나온 건 더 놀랍게도, 그 위석정보는 단순히 공유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장석 개체가 어떤 의문이 들거나 어떤 행위를 하려고 하면 적극적으로 개체의 행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더라. 더 재밌는 건 어떤 행위에 하나의 정보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쉽게 말해봐.”

“그러니까 일종의 자동검색 및 다단 답변 시스템인거냐?”
“딩동댕! 예를 들어 네가 퇴근 10분 남았는데 짐을 미리 챙길까 말까라고 생각하면 머리속에서 팀장의 오늘 기분, 내기로 한 보고서 일정, 네가 돕거나 무시해도 될 동료의 업무 등등의 정보가 바로 나온다는 거지.”
“와 이런 미친. 자동검색 시스템이라니 이거 완전 AI를 뛰어넘네? 참피새끼들이 인간보다도 더 놀라운 시스템을 쓰고 있었단 거잖아?!”
“그러니 이 논문 공동저자들에 AI전문가들이 들어가 있겠지. 더 놀라운 게 뭔지 아냐?”
“뭔데?”
철웅은 아까와 달리 흥미진진한 얼굴로 도시악을 바라봤다. 

“이 놈들 위석은 단순히 정보만 주는 걸 넘어서서 딜레마 시스템도 가지고 있더라.”
“어? 그건 또 뭔 소리야?”
“너 가끔 만화나 영화서 그런 장면 보지? 왜 주인공이 뭔가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게 있으면 머리 위에 천사와 악마가 나타나서 각자 이리해라 저리해라 선택지를 주잖아. 위석도 그런기능이 있다는 거지.”
미친. 철웅은 술 한 잔을 더 털어넣었다. 이거 맨정신으로는 못 들을 미친 소리네. 도시악도 동의하며 술을 마신다. 

“만약 이 메커니즘이 분석되면 지금까지의 AI와는 또 다른 혁명적인 무언가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진짜 이 참피새끼들이 살다살다 인간에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
도시악의 말에 철웅은 무언가를 고민했다.
“아니 그러면 그 놈들 분충소리 하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만약 위석이 인터넷이면 아무리 분충이라고 해도 자기들 살 방법에 대해 정보를 검색할 텐데 왜 이리 분충짓하다 죽어나가는 놈들이 많냐?”
“야 너 고등학교때 나보고 뭐라 그랬어?”
철웅의 의문에 갑자기 고등학교때 일을 꺼내는 도시악.
“내가 뭘?”
도시악은 실실 쪼갰다.
“너 분명히 5천의 몽골 기마궁사가 5만의 튜튼기사단을 박멸했다고 떠벌렸지 아마?”
“야 이 ㅆ…내 흑역사를…”
철웅은 끄응 하는 신음을 내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랬다. 고등학교 때 한창 새벽에 몰래 컴퓨터를 키고 탐험했던 인터넷의 바다에서 주워들은 정보들. 그 정보들을 검증해보거나 확인하지 않고 그저 새로운 정보를 알았다는 치기어린 신나는 마음에 학교서 떠벌리고 다녔던 그 흑역사. 

이래서 고등학교 동창놈하고 대학교까지 동창이면 골 아프다니까. 철웅은 진절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런데 그게 왜?”
“너 그거 어디서 얻은 정보냐?”
“인터넷이지 어디겠냐…제기랄…그렇구만.”
철웅은 혀를 찼고 도시악은 거 보라는 듯 씩 웃었다. 짠 하는 소리와 함께 술 한 잔이 또 돌고, 도시악은 말을 이었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지. 하지만 바다에 좋은 것만 있지는 않잖아? 나쁜 정보도 있고, 잘못된 정보도 있으며, 때로는 허황된 것도 있지.”
도시악의 말. 철웅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마이튜브나 틱-클릭이 문제되는 것도 그거지. 분명 그 수많은 영상 중에는 좋거나 힐링되는 컨텐츠도 있지만 잘못되거나 나쁜 정보를 주는 컨텐츠도 있거든. 만약 그걸 보는 사람이 돌 중에서 옥석만 가려낼 수 있으면 전혀 문제될 게 없어.”

그렇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잘 선별해서 받아들이기만 하면 지금의 세상은 그야말로 정보가 넘치는 세상.

“하지만 너도 명색이 경영학과라면 조직행동론 배워서 알겠지만 사람은 그게 잘 안돼. 사람은 자기가 원래 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편견 혹은 선호에 더 부합하는 정보를 더 받아들이려 하지.”
“알고말고.”
그놈의 확증편향. 비록 학교를 졸업한지는 좀 오래되었지만 회사를 다니다보면 경영학 시간에 배운 걸 늘 실감하게 된다. 왜? 회사는 꼭 교과서에서 하지 말란 짓을 골라가면서 하거든.
“네가 그때 몽골군 5천이 튜튼기사단 5만을 박멸했다는 정보를 손쉽게 받아들인 건 그때 당시 너에겐 그 정보가 네가 가진 그들에 대한 이미지에 더 부합했다는 거겠지. 그러니 검증없이 믿었을 거고.”
거기까지 말한 도시악은 젓가락으로 불판위의 고기를 한 점 집어먹었다.
“뭐, 인터넷에 나오는 우리의 일상만 해도 그래. 그게 진짜 일상은 아니잖냐. 만약 진짜 그랬으면 여기는 맨날 살인이 일어나는 산 안드레아스고 저기 I시는 삼합회가 꽉 지배하고 있으며 저기 서울 모 동네는 살인사건이 나도 한국 경찰의 손길이 닫지 못하는 치외법권의 마굴이게? 하지만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어. 게다가 그런 게시물이나 정보가 계속 올라오고, 또 자기 자신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은연중에 그게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거지.”
“그리고 그게 계속되면 뒤에는 그게 실은 거짓이라고 알던 놈들조차 그게 진실이라고 믿게 되고?”
철웅의 말. 도시악은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위석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은 흔히 실장석의 분충화를 위석에서 나오는 속삭임이 부추긴다고 알고 있지만 아키토시 박사에 의하면 위석에서는 나쁜 말과 좋은 말이 동시에 흘러나온다고 하더라. 그 중에서 어떤 의견을 받아들여 양충 행동을 할지, 분충 행동을 할지는 오로지 그 똥벌레들 선택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철웅은 도시악의 빈 잔에 맥주를 따라주었다.

“분충짓 하는 놈들은 본판부터가 분충이라 위석이 제공하는 정보 중 지들이 듣고 싶은 나쁜 정보만 듣고 받아들였다 이거야?”
“바로 그거지. 그 반대인 놈들은 본판이 괜찮은 놈이라 좋은 정보만 받아들였거나 최소 자기가 받은 정보가 똥인지 된장인지 교차검증은 해 볼 줄 아는 놈들인 거고.”
“허어…”
철웅은 어이가 없었다. 가끔 애호파라는 양반들이 매스컴에 나와서 실장석들의 분충화는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이니 실장석들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더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논문 대로라면 분충은 그냥 태생적인 똥벌레라는 소리다. 

“지들 죽을 걸 알면서도 저러는 게 레전드다 레전드.”
“대가리 깨져도 OO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냐? 닝겐도 그런데 참피라고 별반 다를 바 있는 데스웅~?”
“꺼져 미친놈아! 소름 돋는다.”
“크크크크.”
도시악은 철웅의 빈 잔에 맥주를 따른다. 두 남자는 술을 채운 잔을 쨍 하고 건배했다.

“나원참. 대가리 깨져도 지 입맛에 안 맞는 정보는 안 받아들이는 게 어찌 보면 우리나 저 놈들이나 다른 게 없구만.”
“이러니 내가 참피놈들을 좋아하는 거지.”
“두 번만 더 좋아하면 참피놈들 싹 다 전멸하겠네.”

두 남자는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와 함께 밤이 깊었다.







침묵의 봄



수도권 공단의 나름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공단도시 S시


이곳에도 어김없이 사계절은 찾아온다. 그렇다는 것은 생명체들에게 있어 최대의 위기인 겨울 또한 이곳에 둥지를 튼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혹독하고 영원할 것만 같은 추위도 한풀 꺾이고 봄꽃이 봉우리를 튼 4월. 여러 생명체가 봄의 도래를 반기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봄을 만끽하는 생명체가 있었으니,


“데에스! 자들은 얼른 나오는 데엣!!”


바로 실장석이다.


“텟테레!”
그 특유의 탄생찬가가 울려퍼지고 드디어 첫번째 새끼가 점막에 쌓인채 어미의 총구에서 튀어나온다. 친실장이 섭취한 영양을 제법 잘 받아먹은 건지, 첫 자부터 크기가 제법 크다.


“오로롱 장녀인 데스. 드디어 와타시도 마마가 되는 데스.”
꽤 튼실해 뵈는 장녀를 보고 친실장이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레후~ 마마! 할짝할짝 해주시는 레후우!”
“뎃?!”
그렇게 감격에 취할라는 찰라, 친실장은 장녀의 다급한 외침을 듣고 화들짝 깨어난다. 흙을 살짝 파 낸 뒤 비닐을 깔고 물을 부은 임시 웅덩이에서 바둥거리는 장녀를 친실장이 급하게 꺼내고는 점막을 취하기 시작한다.


“테햐! 마마 고마운 테치! 와타시 우지챠가 되는 줄 알은 테치!”
점막을 취하자 구더기 형상의 장녀는 완전한 자실장의 형태가 되어 자신 앞에 있는 마마에게 인사했다.
“오로롱 장녀 반가운 데스. 아직 이모토들이 나와야 하는 데스. 장녀는 잠시 여기서 기다리는 데스야.”
장녀가 건강한 자실장으로 나와준 것에 대한 감격도 잠시, 친실장은 장녀를 곁에 내려놓고 다시 한번 힘을 주기 시작했다.


“텟테레!”
그 뒤로도 5번의 텟테레! 소리가 더 들리고 나서 친실장의 한쪽눈은 녹색으로 돌아왔다. 친실장은 나온 순으로 하여 차녀부터 열심히 점막을 취해주었고 마침 장녀도 친실장을 도와 동생들의 점막을 핥았기에 친실장의 새끼들은 모두 본연의 형태로 나올 수 있었다.


“오로롱 자들이 모두 잘 태어난 데스우. 이게 행복인 데스.”
자실장 4마리에 엄지 한마리 그리고 우지챠 한마리까지 모두 6마리의 새끼들. 태어나 처음으로 만끽하는 세계가 신기한지 새끼들은 연신 테치테치 레치레치 레후레후 조잘거리기에 바쁘다.


“자 다들 집으로 가는 데스.”
친실장의 선도 하에 새끼들이 줄을 맞춰 따라간다. 애초에 집으로 쓰는 굴 근처에 출산장을 만든지라 집까지는 자실장의 걸음으로도 1분이 안 걸리는 거리다.


“여기가 와타시의 집인 테치?”
“굉장한 테치! 세레브한 테치!”
“골판지가 아닌 레치?”
“집인 레후. 기쁨의 프니프니를 바라는 레후~”


집으로 쓰는 굴을 보는 새끼들의 감상평. 그 와중에도 골판지를 언급하는 엄지 5녀를 보면 한국에 정착한지 30년이 넘어도 여전히 실장석들의 본능 레벨에는 집 = 골판지라는 인식이 박혀있나보다. 


“여기에는 골판지 상자는 없는 데스. 그래도 세레브한 집인 데스야. 자들은 어서 들어가는 데스네.”
“하이테치!”


친실장 혼자 쓰기엔 살짝 넓은 굴이었지만 새끼들까지 들어가자 금세 굴은 가득찬다. 아침만 해도 외로움과 고독함이 남아있던 굴은 어느새 생명의 활기로 넘쳐 흘렀다.


새끼를 낳을때도, 다 낳고 나서도 느꼈던 바지만 친실장은 새끼들이 가득 들어찬 굴을 보고 다시 한번 감격에 젖었다. 죽음과도 같았던 한기에 덜덜 떨며 생명의 위협을 견뎠던 건 바로 이러한 행복을 맞보기 위함이었다.


이제 더 이상 괴로움은 없을 것이다. 태어난 자들은 여름을 넘기고 가을에 중실장이 되어 독립할 거고 그걸 반복하다보면 언젠가 이 산 공원은 자신의 자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마마.”
“뎃? 장녀. 무슨 일인 데스우?”

그렇게 행복에 젖은 친실장의 상념을 중단시킨 것은 장녀의 칭얼거림이었다.
“배 고픈테치.”
“맞는 테츄. 배씨가 꼬르륵 하는 테츄우.”
친실장은 아 맞다!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생각해봤더니 자식들은 태어나서 아직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이다.
“데에, 자들은 이리로 오는 데스. 태어나서 첫 밥을 먹는 데스요.”
친실장의 말에 6마리의 새끼들이 좋아서 방방 뛰며 친의 곁으로 온다.


첫 식사로는 모유를 먹인다. 특히나 이 시기의 모유는 초유라고 하여 새끼들의 성장과 면역형성에 필요한 호르몬이 뜸뿍 들어있다. 그래서 새끼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초유를 갈구하게 된다.


“레에엥! 와타치는 어려서 마마젖 잔뜩 먹어야 하는 레츄!! 오네챠들 그만 먹고 내려오는 레치!!!”
장녀와 차녀, 삼녀와 사녀 순으로 모유를 먹이고 있자니 엄지인 5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울음을 터트렸다.


“데에, 5녀는 어리광쟁이인 데스. 조금만 기다리는 데스. 마마의 젖은 끝도 없이 나오는 데스야.”
그런 엄지의 이유있는 땡깡조차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친실장. 


대부분의 들실장들이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인해 엄지와 우지는 자의든 타의든 운치굴에 넣어 비상식으로 기르지만 이 친실장은 그런 엄지조차 자식으로 길렀다.


그 이유는 이곳이 의외로 실장석들이 살기에 나쁘지 않은 환경이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기계돌아가는 소리와 화학약품이 섞인 냄새가 가득한 이곳 공단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의외로 녹지가 상당히 있는 편이다. 애초에 바다를 매립해 만든 계획도시였던 이곳은 주거지구와 공업지구를 나누는데에 그리고 공단지구 사이사이에도 숲이나 공원을 조성하여 구획을 나누었고 매립지 끝으로 가면 예전에는 섬이었던 곳에 야트막한 언덕도 있어 제법 녹음이 우거진 느낌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녹지 중에 예전에는 섬이었지만 지금은 간척으로 육지와 이어진, 52번섬이라고 불리는 포구에 붙은 이 언덕공원에는 실장석 수십일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곳은 서쪽은 52번섬 주택가 빌라촌과 맞닿아 있고 동쪽은 공단초입인 곳으로 빌라촌 특성상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현관앞에 놔두는 경우가 많아 밤중에 몰래 음식물 쓰레기를 얻기 편하다. 게다가 S시 주거구역하고는 거리가 있어서 학대파들도 굳이 이곳까지는 찾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러다보니 애호파들도 오지 않아 푸드나 방한용품을 얻을 수도 없긴 하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엄지에 막내 우지챠까지 젖을 충분히 먹고 새끼들은 어느새 춘곤증인지 낮잠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데프픗 웃는 친실장.
‘오늘이나 내일까지는 젖을 먹인다 해도 슬슬 먹이를 구해놔야 될 거 같은 데스.’
코츄~코츄 숨소리를 내며 자는 장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친실장은 의지를 다졌다.


이튿날, 친실장은 새벽부터 일어나 어렵게 구한 편의점 봉투를 들고 밥구하기에 나섰다. 이제는 위에 있는 상표도 흐려진 이 비닐봉지는 일가의 가보이다. 
“이놈의 동네는 비닐봉지 구하기가 하늘의 콘페이토 따기인 데스.”
200ml짜리 우유 하나만 사도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일찌감치 비닐봉지 제한에 들어섰다. 친실장의 이 비닐봉지도 낡았지만 다시 구하려면 보존식 10일치는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걷던 친실장은 다른 성체 실장을 보고는 반갑게 인사한다.
“안녕하신데스요 고목나무상.”
“안녕하신데스 이웃상.”
근처 오래된 고목나무 밑에 사는 이웃이다. 둘은 독립한 중실장때 서로 마주하여 지금껏 서로 협력하며 지내고 있었다. 


“출산은 잘 된 데스? 와타시는 첫끗발이 개끗발이었던 데스. 첫번째가 실한 자라 좋아했더니 7마리 중 엄지가 4마리나 나온데스.”
고목나무상이라 불린 이웃도 어제 출산을 했나보다. 그런데 7마리나 나았다면서도 엄지에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는 거 보면 이 실장은 아무래도 엄지를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

“와타시는 중박은 친 데스요. 6마리 중 자가 4마리, 엄지 하나에 우지 하나인 데스.”
“데에, 부러운 데스네.”
“엄지는 어떻게 할 것인 데스까?”
“물어볼 게 있는 데스? 쓸모없고 시끄러운 주제에 자기는 연약한 존재이니 보호받아야 한다, 마마의 젖은 전부 자기들꺼다, 세레브성을 내놓아라 등등 되도 않는 소리를 치길래 어제 이미 싹 다 독라로 만들어서 운치굴에 처박은 데스.”
“분충들인 데스.”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친실장.


“그런데 이웃상. 요즘 조심해야 할 거 같은 데스.”
“뎃? 무슨 일 벌어진 데스?”
출산과 가족 이야기를 하던 중 고목나무에 사는 친실장이 갑자기 뜬금없이 저런 이야기를 했다.
“못 본 데스까? 요즘 저기 깡깡건물씨들에서 도망쳐온 분충놈들이 많아진 데스.”
무슨 이야긴가 했더니 공단지역에서 이주해 온 실장들에 대한 이야기인가 보다.
“아, 와타시도 몇몇 일가를 본 데스. 그런데 무슨 문제있었던 데스네?”
“그 분충놈들이 며칠 전 밥 구하는 데에서 행패를 부리다 맞아 죽은 모양인 데스야. 봉지를 아무렇게 흐트러트리고 그걸 본 닝겐에게 콘페이토와 스테이크를 내놓으라고 소리쳤다는 데스.”
“데에에에?!”
친실장은 깜짝 놀랐다. 이건 안 좋은 소식이다. 지금까지 이 공원 실장석들이 많이는 아니어도 안정적으로 밥을 구해온 것은 가급적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훼손시키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점이 컸다. 빌라촌 주민들도 실장석의 존재는 알았지만 별 탈이 없으니 지금까지는 묵인해왔던 것이다.


“이러다가 와타시타치에게도 일이 생기는 거 아닌가 모르겠는 데스. 그ㄹ…”
갑자기 고목나무 친실장은 넋두리를 하다말고 멈춰섰다.
“데? 고목나무상? 왜 그러는 ㄷ…”
친실장도 갑작스러운 이웃의 행동에 당황했다가 자신 앞의 광경을 보고 말을 잊었다.




하얀 벽


높은 하얀 벽이 자신들 눈 앞을 가로막고 있다.


“데?”
두 실장석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멍청한 소리를 냈다. 여기는 공원 출입구. 여기를 지나면 빌라촌이다. 하지만 오늘은 빌라촌의 그 익숙한 모습 대신 하얀 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인 데스? 이게 도대체…”
“와, 와타시도 모르겠는 데스요. 이건 무슨…”


놀란 것은 자신들뿐만이 아닌지 옆 수풀 속에도 뎃? 하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이웃상. 다른 곳으로 한 번 가보는 데스.”
“그러는 데스.”
당황하던 둘은 일단 다른 입구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분명 오늘 저곳에 무슨 공사가 있었을 것이다. 다른 곳은 평소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막힌…데스.”
친실장은 자신들을 막아서는 흰 벽을 보고 힘없이 말했다. 그 흰 벽은 공원을 따라 주욱 늘어서 있었다. 마치 이곳을 봉쇄하는 마냥. 


도대체 왜?


“일단은…돌아가는 데스 이웃상. 해님씨가 가고 내일 해님씨가 뜨면 이 벽은 없어져 있지 않겠는 데스까?”
고목나무 친실장의 말. 친실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집으로 돌아갔다. 안 돌아간들 뭐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하루가 더 지나도 그 벽이 없어지는 날은 오지 않았다. 단지 하루를 보냈을 뿐이지만 공원 내 실장석들은 극한의 허기를 느꼈다.


"마마...배고픈 테치..."
"데에..."
장녀가 굶주린 배를 잡고 친실장을 불렀지만 친실장도 멍청한 소리만 내고 있을 뿐.


보존식은 겨우내 먹어치웠고 봄은 탄생의 계절이기에 되는 데로 먹을 뿐 비축분은 없다. 게다가 갓 태어난 자실장들은 그야말로 먹성의 악마들. 신체 성장과 유지에 동시에 열량이 필요한 새끼들은 심지어 골판지도 뜯어먹을 기세가 된다.


그런 상황에서 찾아온 기아는 단 하루만 진행되었을 뿐임에도 공원의 실장석 전체를 죽음의 공포로 내 몰았다.


다음날에도 벽은 여전하다.


"똥 벽씨는 와타시에게 매로매로 되어서 길을 열어주는 데스웅~"
"데갸아아아!! 와타시의 세레브한 자들이 굶고 있는 데샤아아!!! 당장 비키란 데스요! 비키란 데스아아아!!!"
"이건 현실이 아닐 것인 데스. 현실이 아닌 데스야..."
아첨하고, 위협하고, 현실도피를 하고.


그러나 그런다고해서 자신들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결국, 그날 또 모든 이가 굶는다. 


“장녀, 우지챠…6녀를…먹는데스요.”
친실장의 일가는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장녀 포함 자실장들은 이제 울 힘도 없다. 막내 구더기는 운치를 먹다가 그 마저도 없어 이미 혀를 빼 물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숨을 내 쉬고 있다. 


친실장은 결국 나지막한 목소리로 막내의 운명을 선언했다.


“마마! 그건…”
“장녀!”
“텟?!”
친실장의 결정에 무언가 말하려던 장녀가 친실장의 호령에 동작을 멈춘다.
“먹는 데스. 다른 방법이…없는 데스.”


친실장은 장녀로 부터 등을 돌리고 일어섰다. 자신의 두 눈에서 흐르는 이 물은 무엇일까. 아직도 나올 물이 남아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친실장에게 소득은 없었다. 막내 구더기가 있었을 토굴 구석에 갔을 때, 남은 것은 산산히 흩어진 우지챠의 포대기 조각들과 입에 적녹의 체액을 잔뜩 묻힌 5녀 엄지였다.


“레? 레에?”


“5녀…오마에…”


“마, 마마! 아닌레치. 와타치 너무 배가 고팠던 레츄! 그랬는데 막내가 우마우마해 보였런 레치. 와타치를 매로매로 시키려는 분충이 틀림없었던 레치!”
되도 않는 소리를 변명이랍시고 더듬거리며 내뱉는 엄지를 친실장은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그래서, 오마에. 우지챠를, 막내를…먹은 데스?”
“레…와, 와타치가 분충을 먹어 물리친 레치! 그런 레치! 마마, 분충을 물리친 아타치를 칭찬해주고 상으로 콘페이토를 주는 레츄웅~”
피뭍은 입으로 독사의 아첨이 나오자 친실장은 순간 이성을 잃었다.
“자매를 먹는 건 분충인 뎃샤아!!! 죽는 데스!! 오마에 같은 분충을 살려둔 게 잘못이었던 뎃샤아아아!!!!!”


친실장의 사정없는 주먹질이 엄지에게 내리 꽂힌다.
“렛! 마마! 와타치! 죽는 레츄! 죽는 레ㅅ!!”
“죽는 데스! 죽는 데스아!!!!”
자기도 단 몇초전에 막내를 먹자고 한 주제에 친실장은 엄지 5녀를 이제는 숫제 바닥에 몇 번이고 패대기 치며 소리를 질렀다.


“마마! 그만두는 테치! 5녀 이미 죽어버린 테치이!!”
친실장은 장녀의 외침에 그제서야 자신의 손에 잡힌 5녀를 바라보았다. 손에 잡힌 상반신을 제외하면 형체도 없이 뭉개진 5녀. 분노는 어느 정도 가셨지만 남은 건 결국 막내가 자매에 의해 잡아먹혔고 그 5녀마저도 자신이 죽인 상황.


“자매를 죽인 자는 분충인 데스…자들, 이거라도…먹는 데스요…”
그날 남은 일가는 5녀를 나눠먹었다.


이틀 후, 4녀가 굶어죽었다. 누구보다 마음씨 착한 자였건만 굶주림 앞에서는 선함은 의미가 없었다. 그날은 4녀를 먹었다.


그 다음날에는 3녀가 죽었다. 이미 5녀를 먹을 때부터 가슴을 부여잡고 아파했던 자였다. 파킨 소리와 함께 죽은 3녀는 검은 눈물로 얼굴이 뒤덮혀 있었다. 그날은 3녀를 먹었다.


그렇게 또 다음날이 왔다. 해씨가 이미 중천에 걸려 있지만 친실장의 둥지에 움직임은 없었다.


“데히이익!”
친실장은 이제 발작적으로 튀어나오는 딸꾹질 같은 비명을 질렀다. 빵콘이라도 해서 이 고통을 줄이고 싶건만 먹은 것이 없는 총구에서는 방귀조차 나오질 않는다.


배고프다. 친실장은 몇번째인지 모를 생각이 또 떠오르자 미칠 것만 같았다. 며칠 연속으로 자기 자식들을 먹었지만 비쩍 마른 새끼들의 고기는 먹어본들 간에 기별은커녕 입가심도 안 되었다. 


서럽다! 어떻게 겨울을 버텼는가! 무엇 때문에 그 모진 세월을 겪었는가! 다 세레브한 실생을 살기 위해서였다. 이 춥고 운치만도 못한 계절을 버티고 나면 분명 그 끝에 찾아올 봄의 제전을 맞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런데 이 상황은 도대체…


“장녀…미안한데스.”
“테ㅎ…”
이미 장녀는 콘페이토별에 한 발을 걸치고 있다. 말을 다 잇지 못한 장녀를 입에 넣으며 친실장은 적녹의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어미가 자신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뻔히 알면서도 장녀는 저항할 기력조차 없이 테…소리만 반복할 뿐이었다.


콰직!


이빨과 이빨이 말라붙은 살붙이를 짖이기며 서로를 맞잡는다. 분명 입 안에 퍼지는 것은 향긋해야 할 고기의 맛이건만 왜 이리 슬프고 토할 것 같단 말인가?


“테히히힣. 테히히히히.”
무어가 그리 좋은지 어미에게로 돌아가는 장녀를 보며 차녀가 웃는다. 이미 빛을 잃어 회색에 가까운 두 눈을 뜬 차녀는 그저 계속 웃었다. 웃고 웃고 또 웃는다.


파킨!


상반신이 없어진 장녀의 질긴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차녀의 위석도 같이 깨졌다. 친실장은 그저 말없이 입 안의 고기를 씹었다. 한때 엄지와 구더기를 포함해 6식구가 행복을 노래했던 곳에 이제는 다 말라죽어가는 실장석 한마리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파킨!


그 다음날. 유리깨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굴 속에 살아있는 존재는 없었다.



실장석을 구제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어느 때일까?


누군가는 강렬한 추위에 실장석이 숨 쉬기만 해도 생존을 위협받는 겨울이라고 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작열하는 태양이 실장석을 비롯한 모든 것을 익혀버리는 여름이라고 할 지도 모른다.
아니면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월동준비만 망쳐도 일가실각 특급을 태우는 가을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장석에 대한 모든 것을 파는, 실장석과 애호물품 심지어 구제업에조차 발을 걸치고 있는 ㈜로젠의 10년차 과장, 도시악은 다르게 생각했다.


“그래서, 밥 사준다고 부르더니 한다는 소리가 그거냐?”
S시 신도시 상가거리의 한 고기집. 다섯 남자가 한 테이블에 모여 북적이는 가운데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는 도시악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 철웅은 도시악의 설명에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생각해봐라. 나름 괜찮은 방법 아니야?
도시악은 고기를 한 점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비록 계절을 타긴 하지만 여러군데서 동시다발적으로만 실행할 물자와 인력만 있으면 이것만큼 좋은 구제방법이 없다니까?”
“아니, 뭐 이론적으로는 좋은 방법이긴 해. 그런데 그 유용성을 증명할 방법은 있는 거야?”
이번에는 철웅 옆에 앉은 곱상한 남자, ‘아기토’가 물었다. 어째 대학생때와 외모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그는 몇 년 전 행정고시에 합격해 지금은 S시의 당당한 5급 공무원이 되었다.
“물론이지. 시범 케이스로 한 공원에서 구제를 할 거야. 거기서 증명이 되겠지.”
“공원에서 구제를 한다? 너네 회사에서 하는 거냐?”
봄임에도 연신 비오듯 땀을 흘리며 고기를 집어먹던 풍체 좋은 남자, ‘오벨릭스’가 말했다. 유통계 굴지의 대기업 ㈜샤를로떼 물류팀 과장이 된 이 남자는 외모는 조금 삭았지만 풍체는 대학교때보다 더 커졌다.
“아니! 내 개인적으로 할 거야. 회사에서 하면 승냥이들이 많단 말이지.”
“승냥이라…하긴 회사에 그런 놈들이 간혹가다 보이지.”
도시악의 말에 맞장구치는 작은 체구의 남자, ‘아스테릭스’. 역시 대기업인 뉴월드의 계열사 뉴월드푸드에서 재직하다 퇴사하고는 부친의 인력사무소를 물려받아 소장으로 전직한 그는 회사 재직 당시에 뭔가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눈에 쌍심지를 켰다.


“뭐 여하튼 좋다 이거야. 너 개인이 공원을 구제한다는 거부터 말이 안 되는 거 같은데 그건 어쩌려고 이러냐?”
철웅이 상황을 정리하며 말한다. 솔직히 로젠이 아무리 대기업이고 거기서 지사장 아버지를 둔 과장이 아무리 끗발이 좋다고 한들 솔직히 그걸로 일개 개인이 공원 하나를 구제하는 정도의 영향력은 없다고 봐야 한다. 


영 못미덥다는 철웅의 표정에도 도시악은 방긋방긋 웃는다. 아 이놈이 이렇게 웃을 때는 뭔가 대형사고를 치기 직전인데…철웅이 문득 지금 여기 모인 멤버들의 면면을 돌아봤다. 시청공무원, 유통회사 과장, 가구회사 과장 그리고 인력사무소 소장까지. 그제서야 철웅은 도시악의 의도를 파악하고 얼굴을 감싸쥐었다.


“바로 그러니 네 녀석들 도움이 필요한 거지.”
어우씨 불안한 낌새는 왜 틀린 적이 없냐… 철웅은 파악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며칠 후.


“와 미친 이게 되네?”
“그럼, 누가 고안했는데.”
반쯤은 어처구니없어하는 네 남자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의 도시악. 


시청 공무원 아기토가 허가를 내주고 가구회사 재직자인 철웅이 벽 세울 폐기재료를 조달해줬으며 물류회사 직원 오벨릭스가 그걸 수송할 차량을 섭외해주는, 거기에 아스테릭스의 사무소에서 온 일용직 노동자들까지 더해지니 완벽한 대(對) 실장석 포위망이 하루아침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벌어진 구제 아닌 구제는 며칠 안되어 깔끔하게 성공했다.


아스테릭스네 일용직들이 마대자루에 시체를 수거한다. 살아있는 실장석도 있었지만 어차피 움직일 힘조차 없는 놈들. 저항다운 저항조차 못한체 마대에 차곡차곡 쌓일 뿐이다.



실장석들에게 봄은 곧 출산의 계절. 겨우내 극한의 고독과 생존의 위기를 경험한 실장석들은 봄이 되자마자 새끼를 밴다. 그리고 그렇게 임신한 실장석들은 안 그래도 식욕에 제한이 없는 놈들이 새끼에게 줄 영양을 위해서라도 뭐든 먹을 수 있는 것은 전부 먹어 치우게 된다. 분충이든 양충이든 지금 이 시기에는 보존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식량을 구하는 데로 실컷 먹는다. 겨울은 멀다. 보존식 모으기는 새끼를 낳고 성장시킨 다음 해도 늦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2주 정도의 임신기간이 지나고 실장석들은 새끼를 낳는다. 생태계 최하부를 이루는 약하디 약한 놈들. 그렇기에 실장석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자식을 많이 낳아 그 생존성을 끌어올리려 한다. 5마리는 기본이고 8마리, 10마리도 낳는다. 


“자, 그럼 문제. 그렇게 새끼 낳은 놈들이 식량을 못 구하면 어떻게 될까?”
도시악의 말. 
“닥치는 데로 먹어 치우느라 보존식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상황. 늘어나버린 입. 차단된 먹이수급. 이 조건이 모두 겹쳐지면?”
“카니발리즘이로군.”
아기토의 말. 도시악은 대답대신 웃으며 가볍게 손뼉을 친다.
“구더기가 더 작은 구더기를 먹고, 엄지는 큰 구더기를 먹으며, 자실장이 그런 엄지를 먹을테고, 결국 친실장이 자실장을 먹겠지.”
아스테릭스도 한마디. 다섯 남자들의 시선이 봉쇄된 공원을 향한다. 간간히 들려오는 실장석들의 비명소리가 아스테릭스의 말을 증명하듯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렇게 먹은 후에는 자기들끼리 잡아먹을거고 말이야.”
철웅도 공원을 바라보며 한마디 얹는다. 하지만 그 직후 무언가 의문을 담아 그는 도시악에게 질문을 건넸다.
“하지만 이건 꼭 봄이 아니라도 통할 방법 아니냐? 굳이 봄에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철웅의 말에 도시악이 공원 한쪽을 가리켰다.
“이 계획의 핵심은 스피드야. 여름이나 가을에는 똑 같은 방법을 써도 친실장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나지.”
도시악의 손끝에는 성체 한마리가 무언가를 먹어 치우고 있었다. 자신들을 여기 가둔 인간 다섯명이 빤히 보고 있어도 그저 눈 앞의 먹이를 혹여 빼앗길까 먹는 데만 집중하는 놈의 손에 들린 건 자실장이었다. 엄지보다 약간 더 큰 정도의 자실장.
“저거 저놈의 장녀야. 깜찍하지?”
“과연. 그런 거였군.”
네 남자는 납득했다. 봄에 갖 태어난 새끼들은 먹은 것이 별로 없어 키도 작고 몸도 말라 있다. 그 말인 즉 슨 친실장이 기아에 시달려 새끼들을 먹어 본들 살도 별로 없어 삐쩍 마른 고기조각 몇개를 먹는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여름만 되어도 잘 먹은 놈들 중에는 벌써 중실장 초입에 들어가는 놈도 생겨. 가을이면 말할 것도 없지. 그런 놈을 먹으면 친실장의 생존시간이 더 늘어나는 거야. 그렇다는 건 우리가 들여야 하는 봉쇄기간이 더 늘어난다는 셈이지.”
어떤 기업이 안 그러겠냐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게다가 공원 봉쇄가 길어지면 결국 시민들의 불편과 그에 따른 민원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 봄이다. 이거군?”
오벨릭스가 감탄했다.
“그렇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는 놈들이 새끼까지 잡아먹고 버티다 자기들끼리 잡아먹는데 걸리는 시간이 많아봐야 4일. 그리고 그 후 약해질 데로 약해진 놈들을 우리가 싹 수거하는 게 하루.”
“합계 5일이면 완벽에 가까운 구제가 되는 건가? 경제적이네.”
“일요일 자정에 시작해서 그 다음주 금요일 저녁이면 구제가 끝나. 그러면 주말에는 공원을 시민들에게 개방할 수 있는 거지.”
“이거 진짜 잘만 되면 지자체에서 좋아할 수밖에 없겠는데?”
“우리야 좋지. 굳이 우리가 안 들어가서 죽여도 되니까.”
철웅의 말에 아기토가 답한다. 실장석들을 하도 빠르게 많이 죽여서 학살의 아기토라 불리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생명을 해치는 걸 싫어하는 남자다. 게다가 공무원들도 사람이다. 생명체를 죽여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잘 없는 것이다. 그게 아무리 민폐 덩어리 똥벌레라곤 해도 말이다.


“게다가 현재 구제라고 하면 거의 일주일 넘게 잡아먹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 방법이면 총 비용도 줄어서 관청이라면 안 좋아할 수가 없어.”
도시악은 씨익 웃었다. 철웅도 화답하듯 웃었다. 역시 이 미친놈은 대학때부터 싹수가 보였다니까. 이건 정말 실장석이라고 하는 생물의 뼛속까지 파고든 놈이 아니면 생각도 못했을 방법이다. 



실험을 끝낸 도시악은 상부에 실험보고서를 올렸다. 곧 회사 차원에서 4군데 공원에 추가 실험이 전개되었다. 결과적으로 봄이 가기 전에 전국 수많은 공원에서 이 구제법이 실행되기 시작했다.


봄은 생명 탄생의 계절이다. 혹독한 겨울을 끝내고 새로이 맞이하는 생명이 움트는 계절. 


실장석에게도 봄은 번식과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는 계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닌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