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의 겨울은 해가 짧다.
오후 3시 밖에 되지 않았건만, 골짜기 너머로 벌써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기온은 영하 4도. 입김을 불면 하얀 연기가 흩어진다.
나는 4륜 오토바이를 타고 텅 빈 사이트를 천천히 순찰했다.
이번 주말부터는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하는 연말 성수기.
100개가 넘는 사이트가 전부 예약된 상태다. 오늘 안으로 수도 동파 방지와 전기 시설 점검을 마쳐야 했다.
캠핑장은 고요했다.
하지만 오토바이 엔진을 끄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이 적막의 밑바닥에서 바스락거리는 소음들이 들려온다.
마른 낙엽을 밟는 소리, 플라스틱을 긁는 소리,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울음소리들.
지난 여름 성수기 동안 손님들이 흘린 음식물 쓰레기에 취해 불어난 녀석들이다.
대부분은 가을철 방역과 첫 추위에 쓸려나갔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은 놈들은 시설물 곳곳에 기생하며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놈들을 굳이 찾아다니며 죽이지는 않는다.
내 업무는 어디까지나 시설 관리이지, 해충 구제가 아니니까.
다만, 이다금 영업에 방해가 되는 사례들이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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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 중앙의 취사장 겸 개수대 건물.
이곳은 캠핑장의 심장부나 다름없다.
겨울철 캠핑장 전체에 공급될 온수를 위한 대형 가스 보일러가 열심히 일을 하는 곳이니까.
건물 뒤편,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만한 으슥한 곳.
벽면 밖으로 툭 튀어나온 보일러 연통 주변, 역시나 녀석들이 있었다.
『따뜻따뜻한 테치이~.』
녀석들은 꽤 머리를 썼다.
벽에서 튀어나온 원통형 연통 끝부분에, 버려진 라면 박스를 씌워 자신들의 하우스로 개조해 놓은 것이다.
마치 연통이 박스 하우스의 난방 파이프처럼, 박스 내부로 연결되도록 만든 구조였다.
덕분에 보일러가 가동될 때 배출되는 따뜻한 배기가스가 박스 안을 훈훈하게 데워주고 있었다.
『텟츙~! 마마, 따뜻한 바람씨가 오는테치! 천국인테츄!』
『장녀는 조용히 하는데스. 닌겐에게 들킨다면 모두 쫓겨나고 마는데스.』
슬쩍 고개를 숙여 상자 안을 엿보니, 성체 친실장 하나와 자실장 두 마리가 박스 안에서 뒹굴고 있었다.
개수대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받아먹고 살았는지, 살도 통통하게 올라있었다.
이 정도면 영리한 기생이다. 굳이 건드려봐야 귀찮기만 할 뿐이다.
나는 구태여 손을 대기보다는 녀석들을 못 본 척 그냥 지나쳤다.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유달리 새벽부터 온도가 급격하게 하락한 날이었다.
영하 11도, 관리실 제어 패널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울려 나는 선잠에서 깼다.
[Error 03]
'배기 폐쇄?'
고개를 갸웃하는 동시에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네, 여보세요. 네, 네. 아, 온수가 안 나오신다고요? 죄송합니다, 지금 확인 중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없는 손님, 그들이 아침에 몸을 씻으려다가 느닷없이 찬물 세례를 맞은 것이다.
명백한 영업 사고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욕지기를 뱉었다.
"하, 씨X....."
쇠꼬챙이를 챙겨 들고 취사장 겸 개수대 건물 뒤편으로 달려갔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혈압이 치솟았다.
녀석들의 골판지 하우스는 여전히 연통 끝에 매달려 있었다.
문제는 그 안쪽이었다.
새벽녘, 보일러가 목표 온도에 달해 잠시 휴동한 사이 따뜻한 바람이 끊기자, 녀석들은 연통 구멍에서 찬바람이 들어온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박스 안쪽에서, 연통 구멍을 진흙과 쓰레기로 콱 틀어막아 버린 게 분명했다.
"방 빼, 새끼들아."
부드럽고 젠틀한 철거 및 이주 작업은 없었다.
챙겨온 쇠꼬챙이를 그대로 들었다.
놈들은 박스 안에서 웅크린 채 잠들어 있을 것이다.
나는 박스 입구, 그러니까 놈들이 드나드는 정문을 향해 꼬챙이를 겨눴다.
푸우욱--!
둔탁한 타격감과 함께, 손끝에 무언가 걸리는 맛이 났다.
『츄아아아아아--!!』
『오네챠?! 뭐, 뭐인테치이?!』
『데, 데뎃?!』
박스 안에서 끔찍한 비명과 함께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꼬챙이를 더 깊숙이 밀어 넣어, 박스 너머 연통 구멍을 막고 있는 진흙 벽까지 거칠게 부수었다.
퉁!
막혀있던 연통이 뚫리자, 갇혀있던 가스와 검은 그을음이 한꺼번에 뿜어져 나왔다.
나는 꼬챙이를 쑥 뽑아냈다.
『테...치이잇...!』
꼬챙이 중간에는 자실장 한 마리가 명치 부근이 꿰뚫린 채 꼬치처럼 매달려 있었다.
녀석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허공에서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츄아아...! 마마..! 마마...! 살려주는테치이!!』
아무래도 꼬챙이가 명치 부근을 꿰뚫으면서, 운이 나쁘게도 위석을 긁어버린 듯 했다.
점점 눈동자가 탁해지는 자실장을 바라보며, 나는 괜시리 기분이 나빠져 꼬챙이를 털어 녀석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쯧."
패대기쳐진 자실장은 몇 번 꿈틀거리더니, 마지막으로 몸을 한 번 부르르 떨며 탈분하고는 축 늘어졌다.
『장녀어어어!!!』
그을음을 뒤집어쓴 친실장이 골판지 하우스 밖으로 기어 나왔다.
녀석은 바닥에 죽어있는 자식을 보더니, 적록의 눈물을 흘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상황 파악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녀석은 내 작업화를 두들기고, 깨물고, 위협 자세를 취하며 악을 썼다.
『착한 자였던데스!! 착한 자였던데스!!! 고생해서 만든 하우스였던데스!!』
배상해라, 살려내라.
일가의 겨울을 책임져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녀석은 자기가 막은 그 구멍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는 것도,
자기가 멍청해서 자식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영리한 기생 정도라면 눈 감아 줄 수 있겠지만, 영업을 방해한 분충에게 베풀 자비는 없다.
퍼억!
단단한 작업화 앞코로 녀석의 배를 가볍게 걷어찼다.
『데게뵤옷?!』
단말마와 함께 친실장은 눈밭을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그대로 눈 속에 처박혔다.
남은 자실장 한 마리는 그 광경을 보고 공포에 질리더니...
『테챠아아!! 마마가 날아간테치이!! 일가실각인 테챠아아!!!』
하고 비명을 지르며 무작정 숲 쪽으로 뒤뚱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굳이 쫓아가지 않았다. 영하 10도의 야생에서 녀석이 홀로 생존할 확률은 없다.
그리고 너덜너덜해진 골판지 하우스를 뜯어내 쓰레기봉투에 담고, 그 다음엔 눈 속에 처박혀있던 친실장을 집게로 집어 담았다.
시간이 나는대로 연통과 연통 주변에 스파이크라도 감아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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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도 있었다.
계곡 옆에 위치한 15번 데크였던 걸로 기억한다.
바닥에서 50cm 정도, 꽤 높이 유격되어있는 나무 데크였다.
그곳은 비바람을 피하기에도 좋고 습기도 적어, 녀석들이 가장 선호하는 데크였다.
4륜 오토바이를 세우고 시동을 끄자마자 데크 밑에서 무언가 긁고 끄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데스..! 데스으읏...! 장녀! 더 당기는데스!』
『테히...! 테히...! 무거운테치이...! 마마, 손씨가 아픈 테치이..!』
바닥과 데크 틈새 사이로 플래시를 비춰보았다.
"허."
가관이었다.
손님들이 버리고 간 컵라면 박스, 스티로폼, 찢어진 은박지 조각들을 덕지덕지 이어 붙여 만든 집.
녀석들 딴에는 바람을 막겠다고 지은 요새겠지만, 관리인 입장에서 보자면 데크 밑에 인화성 쓰레기를 쌓아둔 꼴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쓰레기만 모아둔 것이라면, 바쁜 연말 시즌이니 눈 감아주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진짜 문제는 놈들이 건축 자재를 고정하는 방식이었다.
『마마! 이 주황색 끈 씨는 아주 튼튼한테치! 하양하양씨(아마도 스티로폼을 말하는 것 같았다.)가 꿈쩍도 안 하는 테치!』
『데프픗. 역시 차녀인데스. 아주 영특한데스우~.』
『텟츙~! 텟츙!』
녀석들은 건축 자재를 고정하기 위해, 데크 하단을 지나가는 외부용 전원 케이블을 억지로 끌어다가 묶어놓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당겨 묶었는지, 팽팽해진 전선 피복이 데크 기둥 모서리에 쓸려 벗겨지기 직전이었다.
"이건 안 되지."
나는 오토바이에서 내리며 장갑을 고쳐 끼었다.
전선은 건드리면 안 된다.
피복이 벗겨져 누전이라도 되면 차단기가 내려가 캠핑장 전체가 정전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화재로 이어진다.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위험 요소였다.
나는 데크 밑으로 몸을 숙여 손을 뻗었다.
놈들이 애지중지 지은 요새의 중심부, 전선과 얽혀있는 부분을 움켜쥐었다.
"니들도 방 빼라."
우지끈! 콰직!
망설임 없이 힘을 주어 잡아뜯었다.
녀석들이 침과 어디서 주워온 테이프로 공들여 붙여놓은 쓰레기 벽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데샤아아아!! 와타시의 하우스가!! 와타시의 세레브한 하우스가!!』
『테챠아아아!! 마마!! 무서운 닌겐이 온테치! 마마! 마마!!』
구조물이 반파되어 무너져 내리자, 데크 아래에서 친실장 한 마리와 자실장 네 마리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밖으로 튀어나왔다.
놈들은 갑작스러운 재난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나를 향해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똥닌겐!! 무슨 짓인 데샤아아아앗─!!』
친실장은 내 어깨 쯤에 달려와 나를 투닥투닥 때리고 있었다.
분노로 이성이 날아간 건지, 내가 작업을 끝마칠 때까지 계속 그러고 있었다.
나는 일단 녀석들을 무시하고, 뜯어낸 전선을 다시 제 위치로 돌려놓는 작업을 이어나갔다.
다행히 피복은 겉면만 살짝 긁혔을 뿐, 구리선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안도하며 일어서는데, 친실장은 일어서려던 내 눈을 마주치고는 투분을 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용서하지 않는데샤!! 똥노예로 만들어주는데스!! 각오하는데샤아앗!!』
『마마! 똥닌겐을 노예로 만들어버리는테치이!』
『와타치타치를 사육실장으로 만들게 하는테치!』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게다가 투분이라니, 그건 싫었다.
가볍게 팔을 휘둘러 투분을 준비하던 친실장을 후려쳤다.
퍼억!
친실장은 일격에 나가떨어져 눈밭을 굴렀다. 녀석은 배를 감싸 쥐고 부들거리며 일어섰다.
『데... 데갸아...! 용서 못 하는 데스...!』
그리고 계속해서 무어라 소리쳤다. 하지만 관심 없었다.
나는 놈들을 놓아둔 채, 그대로 오토바이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났던 걸로 기억한다.
녀석들은 어떻게 됐을까.
뭐, 날씨가 날씨다.
바람을 피할 집이 한 순간에 사라졌으니, 어디선가 딱딱하게 얼어죽어있겠지.
백미러 속에서, 텅 빈 돌바닥에 서로를 껴안고 웅크린 초록색 덩어리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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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 구역에는 커다란 드럼통이 하나 놓여있다.
일단은 재떨이를 겸하고 있지만, 진짜 목적은 재와 장작을 버리는 일종의 수거함이었다.
손님들이 캠핑장에서 불멍을 즐기고 남은 재와 덜 탄 장작들을 수거할 곳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마침 흡연 구역에서 나오는 담뱃재를 털 곳도 필요해, 겸사겸사 이곳에 배치해둔 것이다.
그 드럼통을 비우기 위해 도착해보니, 드럼통 주변 눈밭에 회색 재가 어지럽게 흩어져있었다.
바람에 날린 게 아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끄집어낸 흔적이었다.
바닥에는 작은 발자국들이 재 수거함과 화단 구석을 부지런히 오간 자국이 선명했다.
실장석이었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발자국을 따라 화단 뒤쪽, 배수로와 옹벽이 만나는 구석진 틈새.
그곳에 녀석들의 둥지, 아니 골판지 하우스가 있었다.
『데프프! 똥닌겐들은 정말 멍청한데스! 이렇게 따뜻한 '빨간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는데스!』
『치프픗!』
『마마! 따뜻따뜻한 레치!』
『레후~, 우지챠도 따뜻따뜻한 레후~, 프니프니 해주는레후?』
꽤 대가족이었다.
친실장 하나에 자실장 둘, 엄지 하나와 구더기 하나.
다섯 마리의 실장석은 재 수거함에서 아직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은 숯 조각들을 훔쳐다가 둥지 한가운데에 모셔두고 있었다.
보통 짐승이라면 불을 무서워해서 피할 텐데, 지능이 어설프게 높아서일까.
녀석들은 불이 따뜻하다는 것만 알고 위험하다는 건 모르는 모양이었다.
실장석들은 훔쳐 온 숯 조각 서너 개를 둥지 중앙에 쌓아놓고, 마치 숭배하듯 둘러앉아 도란도란 떠들고 있었다.
『이 빨간 보석씨만 있으면 겨울도 무섭지 않은데스. 다른 분충들은 밖에서 얼어죽을 때, 와타시타치는 세레브하게 지내는데스.』
친실장이 자신의 배를 두드리며 거만하게 말했다.
『테츄웅~, 마마는 역시 똑똑한 테치이~!』
『아타치도 나가지 않는레치! 여기서 계속 우지챠와 지내는렛츙!』
자실장과 엄지는 환호했다.
그들의 눈에는 그 숯 조각들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마법의 난로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바람이 틈새로 들이치자, 숯의 열기가 흩어지는 게 느껴졌는지 친실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데..., 바람씨가 와타시타치를 질투하는데스.』
친실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단을 내린 듯 자식들에게 소리쳤다.
『자들은 잘 듣는데스. 지금부터 이 하우스의 모든 구멍을 막는데스! 바람씨가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틀어막는데스!』
그렇다면 이 열기와 빨간 보석은, 영원히 자신들의 것이다.
그 어리석은 말에 자식들은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는테치!』
『아타치도 돕는레치!』
녀석들은 실장석치고는 빠르게 움직였다.
주변에 있는 진흙, 비닐 조각, 낙엽, 심지어 자신들의 배설물까지 동원했다.
판자와 옹벽 사이의 작은 틈새는 물론, 공기가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입구까지 틀어막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멀리 떨어져서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
녀석들은 지금 자신들의 무덤을 짓고 있었다.
타오르는 숯, 산소를 소비하는 네 마리의 유기체, 밀폐된 공간.
결과는 뻔해보였다.
잠시 고민했다. 저 멍청한 녀석들에게 최소한의 자비는 베풀어줘야 할까?
하지만 숯은 시설물이 아니다. 녀석들이 훔쳐간 쓰레기일 뿐.
게다가 놈들이 피해를 준 것도 없었다.
저기서 저러고 있는다 한들, 영업에 방해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자기들끼리 따뜻하게 살겠다며 집 문을 걸어잠그는 행위를, 제지할 명분도 의무도 없지 않은가.
명분 없이 도와줄만큼 내가 실장석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마마! 이제 바람씨가 들어오지 못하는테치!』
하우스 안에서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남은 작은 틈새까지 친실장이 진흙 덩어리로 꾹 눌러 막아버렸다.
"....."
거기까지 보고,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갔다.
둥지 안에서는 '따뜻한데스~' '잠이 솔솔 오는테치이~' '살짝 어지러운 레치이...' 같은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밤새 함박눈이 내렸다. 캠핑장은 하얀 설국으로 변해있었다.
기온은 영하 12도.
나는 눈을 치우기 위해 제설기를 끌고 4번 구역으로 향했다.
그러다 어제 그 숯 도둑놈들의 골판지 하우스를 지나쳤다.
골판지 하우스 주변에는 밤새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하얀 눈 위로 삐져나온 비닐 조각만이 그곳에 무언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작업화 발 끝으로 둥지 입구를 툭툭 건드려보았다.
안에서 '뎃샤!' 하는 비명이나, 바스락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입구를 막고 있던 진흙 덩어리를 걷어내보았다.
안에서는 퀴퀴한 가스 냄새와 함께 싸늘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녀석들은 그대로였다.
숯은 이미 하얗게 타올라 재가 되어 식어 있었고, 그 주변에는 친실장과 새끼들이 서로를 감싸안고 누워 있었다.
실장석들의 표정은 평온했다.
고통에 몸부림 친 흔적은 없었다.
동사일까, 질식사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하우스에 있다고 굳게 믿었으리라.
"....멍청한 녀석들."
나는 진흙 덩어리를 다시 덮어주었다.
굳이 지금 꺼낼 필요는 없다.
꽁꽁 얼어붙은 시체는 썩지도 냄새가 나지도 않는다.
봄이 찾아와 땅이 녹을 때쯤, 부드러워진 흙과 함께 퍼서 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무심하게 제설기를 작동시켰다.
기계가 내뿜는 하얀 눈보라가 녀석들의 무덤 위를 다시 한 번 스쳐지나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
일과를 마치고 관리동으로 돌아오면, 항상 해는 저물어 있었다.
산속은 해가 짧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늘에서 또 다시 희끗희끗 날리기 시작한 눈발을 바라보며, 나는 믹스 커피 한 잔을 뽑아들었다.
사무실의 히터를 켜고, 창 밖을 바라본다.
취사장 뒷편에서 쫓겨난 놈들은 아마 야생에서 얼어죽었거나, 아니면 야생 동물의 먹이가 됐을 것이다.
데크 밑에서 집을 잃어버린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터.
숯을 훔친 도둑들은 그나마 조금 편안한 최후를 맞이하긴 했다.
"눈 좀 그만오지."
참 다양하게도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의 관리 구역 안에서 놈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 치워야 할 낙엽이나 눈과 같은 존재였다.
겨울밤은 긴 편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실장석의 삶은 참으로 짧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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