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딸랑, 하는 경쾌한 종소리와 함게 나는 습관적인 인사를 건넸다.
백화점 8층, 잡다한 가게가 모여있는 층의 너른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실장샵.
그곳이 현재 나의 직장이었다.
직장이라고는 해도 좋게 포장해봐야 단기 계약직.
편하게 말해 일개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하지만, 아무튼 직장은 직장인 법이다.
백화점에 위치한 실장샵이라는 점에서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곳은 꽤나 신경을 쓰는 가게이다.
매장 안에는 항상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 비싼 자동 디퓨저 여러 대가 24시간 라벤더 향을 뿜어낸다.
하지만 아무리 비싼 향수로 덮으려 해도, 수백 마리의 짐승이 내뿜는 퀴퀴한 체취와 배설물의 냄새까지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
별 말 없이 자신의 볼 일만 보고 돌아가는 점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업무를 시작했다.
알바생의 업무는 단순했다.
매장을 청소하고, 각종 용품을 정리한다.
그리고 투명한 아크릴 감옥 안에 전시되어있는 '살아있는 생물'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일.
유리로 된 벽면으로 둘러쌓인 가게, 벽면에는 수많은 아크릴 케이스들이 층층이 쌓여있다.
그 중에서도 시선을 끄는 건 매장 한 가운데에 놓인 거대한 아크릴 타워.
아크릴 타워의 꼭대기에는, 유리로 만들어진 고급 수조가 있다.
이 높이라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높은 곳에 위치한 실장석은 가격이 비싸고, 아래층으로 갈수록 가격이 저렴해진다.
분명 인간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규칙일텐데, 어느 샌가 그 규칙은 실장석들 스스로가 지키는 규칙이 되어있었다.
『테챠아아!! 똥닌겐!! 노예!! 우마우마한 식사를 가져오는테치!』
『분충은 저리 꺼지는테치!! 우마우마한 식사는 세레브한 와타치가 먼저인테챠!!』
높이가 무릎보다 아래인 하층부는, 말 그대로 '시장통'이나 다름없었다.
마리 당 만 원 이하, 좁은 아크릴 수조에 수십 마리씩 들어갈 저가형 자실장들이 악을 쓴다.
들실장과 조금 다를 것도 없어보이는 녀석들을 무시하고, 시선을 위로 올린다.
허리춤에 닿는 중층부는 그나마 조금 사정이 낫다.
적당한 훈육을 거치고, 적당한 양충의 소질을 보이며, 적당히 인간을 두려워할 줄 아는 녀석들이 있는 곳.
30만 원대에 달하는 가족 패키지부터, 개별 수조를 받을 자격이 있는 훈육된 자실장들.
조금 좁기는 해보이지만, 안에는 급수대도 있고 덮고 잘 이불도 있으며 먹이도 실장 푸드가 공급된다.
좋은 곳이다.
그리고 고개를 젖혀야 볼 수 있는 최상층.
수조는 아크릴이 아닌 유리로 되어있으며, 커다란 수조 안에는 전용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바닥에는 푹신한 방석이 깔려 있으며, 습도와 온도 또한 시스템이 알아서 제어해준다.
VIP룸, 스카이 캐슬이라 부르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호화로운 전시장.
그곳에 녀석이 있었다.
유리 전시장 우측 하단, 금박이 입혀진 네임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혈통서 보유 / 전문적인 훈육 / 최고급 반려 자실장 / A+ 등급]
[\ 1,080,000]
혈통서니, 전문적 훈육이니, A+ 등급이니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이것만큼은 다르다.
가격, 녀석의 몸에 매겨진 가치는 무려 108만 원이었다.
'여기서 한 달 일하면 겨우 사겠는데.'
나는 녀석을 속으로 '백팔이'라고 불렀다.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가격이 백팔만 원이라 그랬다.
백팔이는 자신에게 매겨진 값어치가 결코 거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다른 녀석들과는 달랐다.
예를 들어 점심시간, 내가 사료통과 집게를 들고 카운터를 나서는 순간.
『똥닌겐!!!』
하고 발작을 하며, 그 먹이를 내놓으라 소리치는 하층부의 개체들은 물론,
『닌겐상, 와타시의 귀여운 자들이 푸드를 조금 더 원하는데스. 닌겐상, 푸드를 조금 더 주셔야하는데스.』
나름 훈육을 받았답시고 예의를 갖추지만, 그 내용 자체는 분충끼가 다분히 묻어나오는 중층부의 녀석들과도 달랐다.
내가 하층부와 중층부의 요구를 모두 무시하고, 평소 하던대로 급여를 마친 뒤 최상층의 유리 수조에 손을 뻗으면....
『테?』
백팔이는 유리 수조 안에 넣어둔 작은 고무공을 가지고 놀다가도, 살짝 놀라며 실장석용 테이블 앞에 가지런히 앉는 것이다.
그러고서는 비단 방석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상태로, 조용히 기다린다.
잡티 하나 없는 뽀얀 피부, 매일 스스로 빗질해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
주름 하나 없이 단정한 옷매무새.
녀석은 내가 비싼 고급형 실장푸드와, 실장석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콘페이토를 내려놓는 동안에도 덤벼들지 않았다.
보통의 실장석이면 지랄을 하며 밥에 달려들거나, 내 손에 매달려 아첨을 하면 자신을 사육실장으로 모시라고 헛소리를 했을텐데도 말이다.
놀라운 것은 백팔이의 시선이었다.
백팔이는 먹이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눈에는 묘한 자부심, 그리고 자존심이 들어있었다.
지금 나는 그 시절을 회고하며 그렇게 생각한다. 저 자존심, 자부심이야말로 백팔이가 다른 실장석과 달랐던 근본적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고.
달그락.
급여를 마치고 유리 수조에서 손을 뺐다.
그제야 백팔이가 움직인다. 허리를 곧게 펴며 일어나, 정확히 45도 각도로 나에게 고개를 숙인다.
『감사한테치. 항상 수고가 많으신테치.』
결코 큰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항상 감사 인사를 마치고 나서야, 백팔이는 조심스럽게 고급형 실장푸드를 두 손으로 조심히 잡아든다.
오물오물, 소리도 내지 않고 입가에 부스러기 하나 묻히지 않는 완벽한 식사 예절.
콘페이토 역시 게걸스럽게 핥지 않고, 입에 넣은 뒤 녹을 때까지 천천히 음미한다.
백팔이는 알고 있는걸까?
자신은 '생명'이기에 앞서 '상품'이라고.
그리고 자신이 비싼 상품으로서, 저 아래의 동족들과 다른 대우를 받는 이유는 바로 이 점 때문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철저히 예절을 지키면서, 동시에 그것을 해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걸까?
나는 잠시 백팔이의 식사를 지켜보다가,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얌전한 백팔이에게도 취미는 있었다.
『테, 테, 테히..』
조용하고 얌전하게, 그래도 확실하게.
백팔이는 노란색 고무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참 좋아했다.
같이 놀 상대가 없어 고무공을 혼자 굴리고, 혼자 유리 수조 벽에 던지는 정도였지만...
『테치..., 테츄...』
백팔이는, 그걸로도 충분히 즐거워했다.
그런 백팔이가 공놀이를 그만두게 만드는 일이 일어났었다.
백팔이가 위치한 가장 높은 유리 수조 실장의 맞은 편 아래.
백팔이의 시선으로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중층부의 커다란 아크릴 수조.
그곳의 입주민은, [행복한 실장 가족 / \ 368,000] 이었다.
친실장 하나와 자실장 둘, 그리고 엄지와 구더기 각각 하나로 구성된 실장석 일가.
그들은 겉보기에 꽤 화목해보였다.
아니, 겉보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꽤 화목한 가정에 드는 축이었다.
친실장은 틈이 날 때마다 자실장과 엄지를 차별하지 않고 무릎에 앉힌 채 머리카락을 빗겨주었다.
자식들은 그런 어미에게 몸을 비비며 행복하게 웃었다.
그러나 백팔이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행복한 가정이라기보단, '반드시 다 함께 팔려나가야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긴장감을.
어느 주말 오후, 커플 손님이 이 전시장 앞에 멈춰섰다.
"어머, 자기야, 여기 봐. 가족인가 봐, 옹기종기 모여있어. 귀엽다."
여자의 말에 실장석 일가의 눈동자가 잠시 빛났다.
기회가 온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자매들 사이에서는 소리 없는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모우토챠! 공놀이는 그만하고 이리 와서 춤을 추는테치!』
장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동생을 불렀다.
언젠가 마마의 가르침에 따라 연습한, 장녀와 차녀가 함께 추는 춤.
그것은 화목하고 단란해보이며, 동시에 인간들에게 애교도 부릴 줄 아는 그런 실장석으로 보이겠다는 전략.
가족끼리 이렇게 춤을 추며 웃는 모습으로 애교를 부리면, 메로메로된 인간은 반드시 가족 전부를 함께 데려갈 것이다.
하지만 차녀는 그런 장녀의 생각이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녀는 평소에도 은연 중에, 자신이 이 일가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차녀에게 장녀가 말하는 '전략'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묻어가려는 분충의 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싫은테치. 와타치는 공놀이가 좋은테치.』
단칼에 언니의 제안을 거절한 차녀는, 노란색 고무공을 아크릴 수조 벽에 던지며 놀기 시작했다.
『테?! 이모우토챠! 그래선 닌겐들이 와타치타치를 데려가지 않는테치! 어서 이리오는테치!!』
『싫다고 말한테치. 와타치는 공놀이가 좋은테치.』
차가운 반응에 장녀는 당황했다.
이러는 와중에도 인간들은 곧 우리의 눈 앞에서 떠날 채비를 한다.
저렇게 떠나간 인간은 자신들을 데리러 오지 않는다.
조급함이 장녀의 마음 속을 파고든다.
『이모우토챠!! 빨리 이리로 오는테치!! 가족끼리 화목한 모습을 보여야하는테챠!』
『싫다고 말하지 않은테치이!!』
차녀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가족과 함께, 단란한 모습을 보일 방법이 꼭 춤과 노래 뿐인가.
『공놀이도 다 함께 할 수 있는 테치!! 오네챠는 그런 것도 모르는테치?!』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차녀는 보란듯이 소리쳤다.
『보여주는테치!』
보여주겠다.
단란하고 화목한 모습은, 공놀이로도 연출할 수 있다.
반은 자격지심, 반은 언니를 향한 질시와 분노.
그리고 아주 약간의 우월감.
그러한 감정들을 담아, 차녀는 언니들의 싸움에 겁을 먹고 웅크린 엄지를 향해 공을 던졌다.
『이모우토챠! 받는테치이!!』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 때문에 다소 힘이 들어간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래봐야 자실장의 힘, 탄력은 있지만 결국 자그마한 고무덩어리에 지나지 않은 공.
본래라면 엄지가 맞더라도, 아파서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
그러니까 이건 정말로, 순수한 불행이었다.
『레?!』
엄지는 차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엄지의 녹색 눈동자에, 고무공은 정확하게 꽂혔다.
『레, 레, 렛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이 울려퍼진다.
엄지실장은 터져버린 눈동자를 두 손으로 부여잡은 채, 미친듯이 뒹굴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아픈레치이!! 아픈레치이!! 마마!! 마마아아아!!!』
탈분하는 것도 당연지사.
뒹굴거리다 어기적 기면서 친실장을 찾고, 또 다시 뒹굴거리는 엄지 때문에 수조 안은 순식간에 실장석의 배설물로 뒤덮여간다.
『이게 무슨 짓인 테치!!』
장녀는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라 차녀를 향해 달렸다.
차녀의 옆에 도착한 장녀는 있는 힘껏 팔을 휘둘러, 차녀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평소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은연 중에 자신을 무시하고 깔보는 것을, 장녀는 눈치채고 있던 모양이다.
『놓는 테챠아!! 고귀한 와타치의 머리카락을 건드리지 마는 테챠아!!』
차녀 역시 지지 않았다.
체급은 백중지세, 용호상박.
두 자실장은 서로 엉겨붙고 물어뜯고 두들기며, 추잡한 싸움을 시작했다.
당연히 이 둘도 싸움 중에 성대하게 빵콘하긴 마찬가지였다.
수조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피와 운치를 줄줄 흘리며 발작하는 엄지실장, 엉겨붙어 탈분하는 채로 물어뜯는 자실장 두 마리.
『데, 데, 데...!』
착하고 상냥하지만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친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싸움을 말리자니 고통을 호소하며 발작하는 엄지를 핥아줘야한다.
그렇다고 엄지를 핥고 있자니, 장녀와 차녀를 말리지 않으면 둘 중 하나는 죽을 것 같았다.
물론 무엇을 선택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나았다.
하지만 친실장은,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택해버렸다.
그저, 아크릴 수조의 벽으로 다가가 질색을 한 인간 커플을 향해서....
『데, 데스웅~. 닌겐상, 와타시타치를 사육실장으로 하면 매일이 행복한데스웅~』
하고 아첨을 떨 뿐이었다.
오래지 않아 커플 손님은 나를 불렀고, 소식은 곧 점장에게 들어갔다.
"내려, 걔들도."
"어디로 어떻게요?"
"다 큰 놈은 뒤로 보내고, 애들은 먹이용으로 보내."
점장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행복한 실장 가족 / \ 368,000]라고 적힌 네임택이 붙은 아크릴 수조를 통째로 들어냈다.
친실장은 가게의 뒷편으로 간다.
그곳의 임시 아크릴 수조에 독라 상태로 방치해뒀다, 나중에 업자가 수거해간다.
듣기로는 출산석을 만드는 공장에 팔린다고 한다.
남은 자실장 두 마리는 집게로 집어, 각각 다른 최하층 아크릴 수조로 보낸다.
파충류, 혹은 육식 어류를 위한 먹이용도로 실장석을 구매하는 손님들을 위한 수조였다.
그리고 수조를 세척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은 상처입은 엄지실장과 저실장을 바라본다.
엄지는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고 사육실장으로 삼아달라며 내 손가락에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
나는 조용히 그 둘을 집어들어, 가게 뒷편의 커다란 쓰레기통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 뒤는 나는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사소한 공놀이에서 시작한 파국을 백팔이는 담담하게 지켜보았다.
일가의 실각을 보고 조롱하지도,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지도 않았다.
변한 건 딱히 없었다. 백팔이는 여전히 최고가 자실장이고, 여전히 조신하고 얌전했다.
딱 하나, 이상하게도 백팔이는 그 뒤로 다시는 공놀이를 하지 않았다.
계절이 한 차례 지나갔을 때로 기억한다.
가게의 풍경은 그대로였지만, 백팔이의 위치는 달라져 있었다.
녀석은 조금 자랐다.
아직은 자실장이긴 하지만, 특유의 통통하고 앙증맞은 비율은 아니었다.
점차 팔다리가 조금씩 길어지며, 성체를 향해 착실히 나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얌전하고 조신한 최고급 자실장이었지만, '성장'이라는 감가상각은 피할 수 없었다.
백팔이는 최고층 유리 수조를 비워줘야 했다.
녀석은 이제 벽면 진열대의 한 칸 아래, 아크릴 수조로 내려왔다.
네임택의 숫자와 글씨도, 물론 수정되었다.
[혈통서 보유 / 전문 훈육 / 고급 반려 자실장 / A 등급]
[\ 890,000]
이제는 1,080,000 원이 아니었지만, 내 마음속에서 녀석은 여전히 백팔이였다.
그리고 백팔이가 떠난 유리 수조의 왕좌에는 새로운 주인이 들어왔다.
점장이 손수 입혀준 화려한 핑크색 실장복을 입은, 아주 작고 동글동글한 어린 자실장이었다.
[혈통서 보유 / 전문 훈육 / 최고급 반려 자실장 / A+ 등급]
[\ 1,200,000]
녀석은 소싯적의 백팔이보다 비쌌다.
점장이 직접 선정한 가격이니 이유야 있겠지.
신입은 오자마자 자신의 위치에서 백팔이를 내려다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치프픗.』
나는 그것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최고급 반려 자실장은, 모두 백팔이 같은 건 아니었던걸까?
아니나다를까, 새로운 왕좌의 주인은 가게 안의 실장석들을 마음껏 조롱하고 경멸하기 시작했다.
『치프픗! 와타치는 오마에타치와 다른테치.』
『똥닌겐! 이제 옷은 됐으니 스시를 가져오는테치!』
녀석은 다른 실장석을 조롱하다가 질리면, 유리 수조 벽면에 찰싹 붙어 나를 불렀다.
그 녀석의 조롱에 다른 실장석들은 분노하며, 심하면 아크릴 수조에 투분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백팔이는 달랐다. 백팔이는 조금도 분노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백팔이는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저 위에서 하던대로 올곧은 자세 그대로 일과를 보냈다.
이제는 비단 방석이 아니라 그저 아크릴 수조의 딱딱한 바닥이지만.
이제는 고급형 실장푸드가 아닌 그저그런 녹색의 실장푸드에, 콘페이토도 없지만.
불만 한 번,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여전히 깔끔하게 자기자신을 정돈했다.
하지만 녀석이 무릎 위 치맛자락을 쥐고 있는 뭉툭한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며칠 뒤, 가게 문이 열렸다.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은 중년의 여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전형적인 부잣집 마님.
"찾으시는 아이가 있으신가요?"
나는 친절해보이는 미소를 장착한 채 응대를 시작했다.
척 보아도 화려하고 세레브해보이는 인상에 가게 안의 실장석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건 백팔이도, 그리고 백팔이의 자리를 차지한 새로운 유리 수조의 신입도 마찬가지였다.
백팔이는 다른 실장석처럼 춤과 노래를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눈빛이 번뜩이긴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중년 여성 VIP가 자신의 아크릴 수조 앞을 지나칠 때, 정확한 타이밍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얌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나서 반가운테치.』
실장석치고는 놀라울 정도의 예의였다.
반면, 유리 수조의 실장석은 정반대였다.
녀석은 이미 브리더의 훈육을 모두 까맣게 잊어버린 채, 이 가게의 왕좌에 앉았다는 사실에 취해있었다.
『텟츄웅~! 세레브한 닌겐상에게 어울리는 사육실장은 고귀한 와타치 하나 뿐인 테치!』
신입은 유리 수조의 벽에 찰싹 달라붙어, 혀로 벽을 핥으며 아첨을 떨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씰룩 거리는 꼴에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내심 백팔이를 응원했다.
저런 싸구려에 천박한 애교보다는, 백팔이가 피를 깎는 노력으로 달성한 어떤 경지가 더 아름답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어머, 너 끼가 참 많구나?"
사모님께서는 5층 유리 수조의 벽에 달라붙어 엉덩이를 흔드는 자실장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어쩜 이렇게 활발하고 애교가 넘치니? 그래, 공주님이 되고 싶어?"
『치프프픗! 와타치는 이미 공주님인테치! 빨리 와타치를 이 좁고 불결한 곳에서 꺼내주는텟츙!』
VIP가 가게 최고가 물건에 관심을 보이자, 가게 안 쪽에서 점장이 바람처럼 튀어나왔다.
"안목이 탁월하십니다, 사모님. 이 녀석이 들어온 지 이제 하루 좀 지났습니다. 훈육할 때도 아주 훌륭했고, 혈통서도 있습니다."
"그래요? 딱 내 스타일인데."
그 뒤는 순식간이었다.
자그마치 120만원 짜리 물건이다.
입고 있는 옷은 물론, 수많은 사은품(실장석용 장난감과 실장푸드, 콘페이토)과 함께 녀석은 팔려나갔다.
그 녀석은 고급스러운 케이지에 담겨 가게를 떠날때에도, 백팔이를 향해 혀를 내밀며 웃었다.
딸랑.
손님과 그 분충이 나갔다.
나는 곁눈질로 백팔이의 눈치를 살폈다.
백팔이는 풀 죽어 있었다. 고개는 푹 숙여져있었다.
울거나 화를 내진 않았다.
대신, 무릎 위에 올라가있는 두 손이 부서질 듯 떨리고 있었다.
견디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자신의 방식이 맞다는데서 오는 확신을 재료로 버티는 모습이 아니었다.
인정하면 무너지기에, 그렇기에 인정하지 않고 버티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몰래 콘페이토 하나를 꺼내, 백팔이의 밥그릇에 슬쩍 넣어주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걸 먹지 않았다.
다음 날, 밥그릇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콘페이토를 내 손으로 치워줄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백팔이는 텅 비어있는 유리 수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걸로 기억한다.
다시 계절이 바뀌었다.
이제는 겨울이 되어, 백화점을 찾는 손님들은 저마다 롱패딩 혹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백팔이는 이제 자실장이 아니었다.
녀석은 완연한 성체가 되었다.
덩치는 커졌고, 어릴 적의 앙증맞은 외모는 사라졌다.
그렇다고 자를 만들어 일가를 꾸밀 수도 없으니, 녀석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친실장으로서의 가족애도, 자실장으로서의 귀여움도 없는 말 그대로 악성재고였다.
네임택도 없었다.
백팔이는 지금, 마리 당 팔만 구천원 하는 보급형 훈육 자실장 수조 안에 들어있다.
이제는 혼자 살지도 않는다. 이전보다 작아진 아크릴 수조 안에, 무려 두 마리의 동거실장이 있다.
"이제 다 컸네."
점장은 지나치면서 슥, 곁눈질로 백팔이를 바라보곤 말했다.
백팔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네."
나는 무심하게 집게를 들고 다가가, 백팔이를 집어들려다가...
"...아."
이제는 집게로 쉽게 들어올릴 사이즈가 아니라는 생각에 집게를 내려놓았다.
백팔이도 아마 알고 있었나보다.
녀석은 내가 들어올릴때 반항하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데에...』
그저 조용히, 내 팔에 매달려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백팔이의 새로운 집은 최하층이었다.
매장 문을 열고 들어와서 가장 구석에 가면, 최하층에 박혀있는 아크릴 수조.
그곳은 지옥이었다.
팔리지 못해 늙어버린 성체들, 분충끼가 극도로 심해 반품 당해버린 자실장들, 훈육 과정에서 탈락해버린 실패작들이 뒤엉킨 수용소.
바닥에 깔린 신문지는 이미 운치와 짓이겨진 실장석의 옷 조각으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디퓨저의 강력한 라벤더향이 아니었다면, 이 수조 하나만으로 가게 안을 악취로 뒤덮을 수 있었을 것이다.
[\ 1,780]
수조 앞면에는 성의 없이 찢은 A4 용지에 매직으로 쓴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백 팔만원에서 시작한 백팔이는, 여기까지 내려온 것이다.
『데프픗! 새로운 분충이 들어온데스!』
『테에에! 옷이 깨끗한 노예인테치! 내놓는테챠아!』
주변의 분충들이 게걸스레 백팔이에게 다가섰다.
녀석들의 몸에는 운치가 잔뜩 묻어있었고, 머리카락은 떡져 엉망진창이었다.
백팔이는 공포감과 본능적인 혐오감에 뒷걸음질 쳤다.
『데, 데에에...! 다가오지 마는데스!!』
그럼에도 녀석은 비명을 지르거나, 싸우지 않았다.
대신 녀석은 수조의 가장 구석진 모서리로 도망쳤다.
그리고서는 발뒤꿈치를 열심히 들어올렸다.
까치발이었다.
더러운 오물이 자신의 발바닥 전체를 덮는 걸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선 자신이 받은 교육에 어긋난다.
그 신념 하나로, 백팔이는 위태롭게 버티기 시작했다.
양손으로는 치맛자락이 바닥에 끌리지 않을까 필사적으로 치켜올렸다.
『오지마는데스...! 닿지마는데스!』
백팔이는 오물 속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처럼,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밤이 되었다.
다른 실장석들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기 위해 운치밭 위에서 서로 뒤엉켜 잠이 들었다.
하지만 백팔이는 그러지 않았다.
녀석은 앉을 수도 없었다. 앉는 순간 옷이 운치에 오염될테니까.
백팔이는 차가운 아크릴 수조의 벽면에 기댄 채, 까치발을 들고 서서 잠을 청했다.
퉁퉁 부어오른 종아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다음 날 청소 시간, 내가 청소 도구를 들고 다가가자마자 수조 안이 난리가 났다.
『똥닌겐!! 어째서 우마우마한 콘페이토를 가져오지 않은데스!!』
『고귀하고 세레브한 와타치를 빨리 사육실장으로 만들어주는테챠아아!!』
분충들은 아귀다툼을 벌이며 나에게 각자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백팔이와 눈이 맞았다.
"....."
처음이었다.
녀석은, 처음으로 눈빛을 통해 무언가를 강하게 나에게 바라고 있었다.
백팔이가 간접적으로라도 도움을 요청한 건 이게 처음이었다.
"....에휴."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잠시 고민하다가 깨끗한 휴지와 물티슈 몇 장을 뽑아 백팔이가 서있는 아래에 깔아주었다.
최소한 그 위에 앉기라도 하라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
백팔이는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고 그 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분충들이 백팔이의 휴지와 티슈를 뺏으려고 달려들 기세였지만, 내가 본보기로 한 놈을 패대기쳐주자 조용해졌다.
백팔이는 처음으로 울었다.
녀석의 두 눈에서 적록의 눈물이 뚝뚝 떨어져, 휴지 위를 적셨다.
며칠 뒤, 겨울인데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기분 나쁜 날이었다.
손님이 뜸한 시간, 가게 문이 거칠게 열렸다.
들어온 남자의 행색은 백화점에 어울려보이지 않았다.
푹 눌러쓴 모자, 무채색의 바람막이, 검은색 방한 마스크.
"어서 오세요."
남자는 나의 인사에 가볍게 고개만 끄덕인 뒤,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멍청한 실장석들이 사방팔방에서 자신을 데려가라며 아우성이었다.
남자는 그 분위기 자체를 즐기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다가 그는 곧 마음을 먹은 뒤, 구석에 있는 1,780 원짜리 아크릴 수조로 향했다.
『새로운 똥닌겐이 온테치?』
『데프픗! 이번에야말로 와타시를 사육실장으로 모시려고 온 데스?』
놈들은 서로 밟고 올라서며 남자에게 자신을 데려가라 아우성쳤다.
하지만 백팔이는 달랐다. 녀석은 여전히, 자신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지키는 걸 선택했다.
백팔이는 내가 갈아주고 있는 휴지와 물티슈 위에 다소곳이 서서, 남자를 향해 인사했다.
항상 그래왔듯, 45도의 정확한 각도로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어서 오시는데스. 만나서 반가운데스.』
소란스러운 수조 안에서 홀로 피어난 고고한 꽃.
남자의 시선은 백팔이를 향했다.
그 순간, 나는 불안함에 휩싸였다.
고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면, 그 남자는 학대용 실장석을 구매하러 온 게 분명해보였으니까.
백팔이를 아끼거나, 행복해졌으면 하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백팔이가 지금까지 자신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바친 노력과 인고의 시간이...
저런 것으로 보답받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내 기대가 무색하게도, 남자는 마스크 너머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백팔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남자는 수조 안으로 손을 뻗었다.
백팔이는 드디어 됐다는 듯, 황홀한 표정으로 사내의 손을 맞이하기 위해 두 팔을 벌렸다.
남자의 손이 백팔이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온 순간이었다.
후우욱─!
남자의 손, 소매 안 쪽, 손톱 사이사이.
모든 곳에서 배어 나오는 진한 냄새가 백팔이의 코를 찔렀다.
주인의 따뜻한 살 냄새와 달랐다.
진한 피비린내, 톡 쏘는 냄새.
죽어간 수백 마리의 동족들이 마지막 순간에 내지른 비명의 향기.
실장석은 바보지만, 생존에 있어서는 예민하다.
곧, 같은 냄새를 맡은 수조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학대파가 온데샤─!!』
『도망치는테치!! 도망치는테치!!』
아수라장 속에서, 남자의 손에 잡힌 백팔이의 두 눈이 떨렸다.
백팔이는 남자의 손에서 도망치기 위해, 생에 처음의 반항을 시작했다.
『시, 싫은데스...! 가지 않는데스...!』
그 모습을 본 남자의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똑똑하네, 재밌겠어."
남자는 도망치려는 백팔이를 붙잡아, 수조 밖으로 꺼냈다.
"계산해주세요."
안타깝게도, 그 때 나는 카운터를 보고 있지 않았다.
카운터에 있는 건 점장이었다.
점장은 곁눈질로 그들을 살피더니, 주저없이 계산을 시작했다.
남자의 팔에 붙들린 백팔이는 발작하기 시작했다.
『놓는데스!! 이거 놓으란데스!!』
백팔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분노와, 억울함이 각기 다른 색깔로 흐른다.
『이건 아닌데스!! 이건 아닌데스!! 와타시는 착하게 살았던데스!! 전부 참았던데스!!』
하지만 학대파 남자는 그 녀석의 비명과 발작을 배경음 삼아, 결제를 마쳤다.
저가용 실장석을 담는 포장 박스에, 백팔이는 내던져진다.
『브리더 상의 말을 어긴 적이 없는데스!! 자를 가지고 싶어도 꾹 참았던데스!!』
『콘페이토도 더 많이 먹고 싶었던데스! 스테이크도, 스시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던데스!!』
『닌겐상의 말을 모두 지킨데스!! 아첨하지도, 노래도 부르지 않은데스!!』
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박스의 날개가 접힌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백팔이는, 울부짖었다.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뿐인데스!! 전부 참고 견뎌낸데스!!』
『오늘 아침까지도 머리를 빗은데스!!』
『와타시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
박스의 뚜껑이 덮였다.
남자는 박스를 든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게를 나갔다.
그게 내가 본 백팔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얼마 안 가 알바를 그만두었다.
계절은 다시 돌고 돌아, 늦은 봄 초여름이었다.
나는 시내를 걷다가, 새로 생긴 대형 실장샵 앞을 지나게 되었다.
통유리 벽면 너머로, 꼭 내가 일했던 곳과 닮은 아크릴 타워가 보였다.
그 꼭대기, 유리 수조.
유리 수조인것까지 똑같아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들어 가게 안을 더 들여보았다.
꼭대기의 유리 수조에는, 과거의 백팔이를 연상하게하는 어린 자실장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녀석은 유리창 너머에서 내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보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우수 혈통 / 전문 브리더 훈육 / IC칩 내장 / 최고급 반려 자실장 / A+등급]
[\ 1,380,000]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그건 녀석이 아니라 백팔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유리창 너머로 째깍이는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너는 1,780원이 될 때까지, 그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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