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각형의 비밀 (ㅇㅇ(14.33))


 실장석붐이 꺼진지도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귀여운 실장석의 모습에 반해서 애완동물로 기르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뿐. 처음에 막 들어왔을 때엔 비싸던 링갈도, 점점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내려갔고 링갈의 보급은 곧 실장석의 본성이 들통나는것도 시간문제임을 의미했다. 그 시기에 맞춰서 많은 실장석들이 더이상 귀엽지 않은 성체로 커져갔다. 일본 본토에서도 보기 힘든 양충 사육실장을 머나먼 이국인 한국땅에서 발견하기란 당연히 더 어려운 일이었다. 수년간 체계적인 브리딩 시스템이 잡힌 일본에서조차 1000마리를 훈련시키면 양충이라고 부를 실장석은 10마리 내외가 나오는데, 이제 막 한국에 들어온 시점에서 대부분의 '사육 실장석'이 맞이한 결말은.. 다들 아는대로다. 링갈의 보급. 더이상 귀엽게 보이지 않은 성체실장들. 그렇게 유기된 유기 들실장들이 일으키는 문제들. 실장석 애완동물 붐은 그렇게 왔다가, 갔다. 아직도 실장석을 키우는 사람은 대부분 숨어서 실장석을 학대하는 학대파거나, 정말로 어렵사리 구한 양충을 구한 소수의 애호파 뿐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왜 알고 있을까. 차라리 모르는 입장이었으면 좋았을것을 오늘도 팔리지 않는 매물들을 바라보며 한숨짓는다. 한때 실장석 붐이 오면서 '이건 기회다!' 라고 생각해서 실장석 브리딩 기술을 배워서 실장샵을 차린 것 까진 좋았다. 처음 1년정도는 꽤나 수익이 났다. 하지만 실장 붐은 갑작스럽게 온 것 처럼 갑작스럽게 꺼졌다. 남은 실장석들은떨이가 되었고 내 가게, [미도리아]도 파리만 날리는 신세가 되었다. 요즘은 정말 가게를 닫고 다른 직종을 알아봐야 하나 싶기도 하다. 차라리 이 경험을 살려서 실장 구제반 같은데라도 들어가볼까.. 

[삐로리로링~]

 이 시간에 왠 전화가.. 발신자 표시에는 [준식]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떠 있었다. 나와 같은 동업자. 실장 브리더이자 실장펫샵의 주인. 오랜 친구이기도 한 녀석이다. 녀석도 요즘 가게를 관둘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데. 또 술이나 마시자는 약속이 아닐까 싶다.

"그래 무슨일이냐?"
[야! 창호야! 지금 시간 되냐?]
"대낮부터 또 술마시려고? 있다 저녁때 가자"
[아냐 임마! 지금 그럴때가 아니라고! 당장 우리 가게로 올 수 있냐?]

 평소에도 좀 다혈질이고 쉽게 언성을 높이는 녀석이지만 오늘따라 더 이상하다. 무슨 일이 있는걸까?

[일단 빨리 와바! 내가 개 쩌는걸 구했다고!]

[삐로링~]

 그 말만을 남기고 준식과의 통화는 끊어졌다. 녀석 성질머리 하고는 참. 뭐..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인 만큼 가는건 어렵지는 않지만.. 어차피 장사도 안 되는거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준식이네 실장펫샵에 가면서 2개나 간판을 내린 실장펫샵을 보았다. 둘 다 그래도 열려는 있던 곳이었는데.. 이 좁은 공간에 4개나 있는 실장펫샵이 실장 붐과 그 결말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어딘가 마음 한 편이 불편해졌다. 저 가게들처럼 우리 가게도 곧.. 아니다. 오늘은 그런 생각하지 말자. 적어도 오늘은. 준식이네 가게에는 금방 도착했다. 

"야 나 왔다. 무슨일이냐?"
"야 마침 잘왔다. 이거 한 번 봐봐"

 준식이 들고 온 것은 작은 투명 케이스였다. 실장석을 기를 떄 가장 평범하게 사용되는 케이스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잠들어 있는 한 마리의 자실장이 있었다. 겉모습으로는 특별할게 없어 보이는 모습이다. 

"고작 이거 보여주려고 그렇게 급하게 부른거냐?"
"한번 보라고"


 준식이 실장 훈련봉으로 자실장을 톡톡 치자 자실장이 금새 깨어났다. 자실장은 나와 준식을 보더니 잔뜩 겁을 먹은 듯 했다. 뭐. 여기까지는 어디서든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자실장이다. 

"일어났니? 이 분이 내가 아까 말 한 네 주인님이란다. 이제 사육실장이 된거야."

 어느샌가 링갈을 들고 온 건진 모르겠지만. 그보다 난 그런 이야기 들은적 없는데? 하지만 준식이 옆구리를 툭툭 치길래 일단은 뭔가 생각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안녕? 네 이름은.. 아차.."

 흔히들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산 실장석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실장석에게 이름은 무척이나 소중한 것. 사육실장의 증표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과의 위계관계가 확실하게 잡히지 않은 시점에서는 함부로 이름을 주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이름을 받았다고 금방 기고만장해져서 분충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냐 괜찮아. 하고싶은대로 해봐."

 옆에서 준식이 계속 부추긴다. 뭐지? 무슨 꿍꿍이지? 분충이라도 키우고싶은건가? 뭐.. 나야 알바 아니긴 하지만..

"음. 그래. 오늘부터 내가 네 주인이란다. 네 이름은 미도리가 좋겠구나. 안녕 미도리야"
[안녕하신테치. 와타치 미도리인테치? 감사한테치. 주인님]

 음. 보기 드문 양충이다. 뭐 이정도까지 키워내는 것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결국 중요한것은 지속. 온정을 베풀면 한없이 기고만장해지고, 그렇다고 학대만 하면 그건 애완동물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사이를 조절하는것이 어려운게 실장석이다. 

 꾸벅 하고 인사를 하는걸 봐서는 그래도 꽤나 교육이 되어있는 실장석인 모양이다. 요즘같이 실장석을 애완용으로 키우려는 사람이 드문 시기에는 보기 힘들긴 하지만.. 고작 이걸 보여주려고 부른건가?

"뭐.. 그래 미도리야. 넌 꿈이 뭐니?"
[테에.. 와타치는 주인님과 함께 행복하게 지낼 수 만 있으면 되는 테치]
"뭐 그래.. 자들을 가지고 싶다던가, 맛있는걸 먹고싶다던가 그런건 없고?"

 이건 흔한 함정용 질문이다. 여기서 낚이는 녀석들도 많다.

[와타치는 괜찮은테치. 주인님이 주시는거라면 뭐든지 좋은 테치. 자들도 주인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필요없는테치]

 하..? 이놈봐라. 짧긴 하지만 그래도 실장 브리더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나다. 이녀석은 뭔가 이상하다. 진짜 수십만 마리중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다는 선천적 양충인가? 준식이는 이걸 어디서 구한거지?

"자 미도리야. 이거 한 번 먹어보지 않을래?"

 어느새 사라졌다가 나타난 준식이 가져온 것은 로젠사에서 만든 초 고급 실장푸드 'JSS-08'이었다. 실장석의 영양 밸런스는 물론 맛과 향기, 식감까지 모든것이 퍼펙트한 실장푸드다. 다른 이름은 '분충제조기'. 이 푸드가 너무 맛있어서 한 번 먹게되면 다른 음식은 입에도 안 댄 다고 하는 전설 아닌 전설이 있는 그 푸드를 왜...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괜찮은테치. 와타치 오늘은 간식을 한 개 먹은 테치. 간식은 하루에 한 개 인 테치]
"괜찮아. 오늘은 주인님이랑 만난 첫 날이잖니? 주인님도 오늘만큼은 허락해주실거야."

 준식이는 JSS-08을 자실장 앞에 놓았다. 자실장은 테에.. 하는 표정으로 간식과 내 표정을 바라보았다. 아니.. 저걸 앞에 놓고도 저렇게 버틸 수 있단말이야? 

"음.. 어.. 먹어도 좋단다"
"감사한테치! 주인님 너무 좋은 테치!"

 허가가 떨어지자 자실장은 다소곳이 앉아서 실장푸드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보였다. 그렇게 푸드를 다 먹고나자 준식이 푸드를 한 개 더 꺼냈다. 

"어때. 한 개 더 먹을래?"
[테에.. 그래도 오늘은 벌써 2개나 먹은 테치.. 괜찮은테치]
"그래. 그럼 내일 또 먹자꾸나"
[알겠는테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시험삼아 선별한 양충 중에서 10마리로 테스트를 해도 전부 한 개만 먹어도 분충이 되었을 정도의 초 고급푸드다. 그걸..?

 입이 귀에 걸리도록 씨익 웃고있는 준식에게 다가가 물었다. 

"야.. 도대체.. 이건 뭐냐..?"
"큭큭큭. 천천히 설명해줄게 임마. 이 형님에게 감사해라. 넌 좋은 친구를 둬서 또 기회를 잡게 된거라고 큭큭큭"


 준식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가게 안쪽으로 데리고갔다. 마지막으로 뒤 돌아서 바라본 자실장은 졸린지 눈을 비비며 슬며시 옆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그 행동은.. 사전에서나 나올법 한 양충 그 자체였다. 






"그래서.. 저건 뭐냐?"
"그렇게 물어볼 줄 알았지. 봐라. 이게 내가 만들어낸 절대 양충 육성방법이다!!"

 준식의 가게 안쪽에서 본 것은 6개의 투명 케이스였다. 각 케이스에는 자실장이 한 마리씩 들어가있었고. 그 옆에는 자실장들의 위석으로 추정되는 육각형의 녹색 돌과 영양제같은 노란색의 액체가 담긴 통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실장 브리더의 모습이었다. 

"뭔데? 진짜 나 이 일 하고나서는 처음보거든 저런거??"
"이제부터 알려줄테니까 잘 봐봐"

 준식은 가장 왼쪽에 있는 케이스로 나를 데려갔다. 그 케이스에 있는 실장석은 좋게 말해도 '분충' 그 이상의 모습은 아니었다. 꼬질꼬질한 머리에 은연중에 전해지는 악취. 아마 들실장 수준이 아닐까. 링갈을 들고 있는것은 아니라 뭐라고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치프프픗 웃으며 싼 똥을 던지려고 하는 것을 보니 분충임에 틀림없다. 

"중요한건 그게 아냐. 그 옆을 봐"

 그 옆에는 위석과 활성제가 든 통이었다. 이게 뭐가 특별하단거지..?

"그건 실제로 특별할게 없는 일반적인 분충이야. 이제 그 다음 놈을 봐봐"

 그 옆에 있는 자실장은 어느정도 인간을 알고는 있는지, 내가 다가가자 잠깐 놀라기는 했지만, 결국 하는 짓은 방금 본 녀석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 위석도 별다를건 없었다. 음.. 자세히 보니 위석이 살짝 더럽다. 뭐지? 더 가까이 가서 보자, 육각형 위석의 한 쪽 면에 작은 금이 가 있는것을 보았다. 

  그 다음 녀석을 보러 갔더니 이번에는 좀 학대를 당한것인지, 옷도 여기저기 찢어져있고 미처 낫지 안은 생채기도 있었다. 실장석 교육에 학대는 꼭 필요한 내용이라 어쩔수 없긴 하지만.. 그게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니까. 도대체 준식이는 나에게 뭘 보여주고 싶은거지? 이 녀석의 위석은.. 역시나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금이 가 있었다. 이번에는 자세히 보니 이번에는 총 2개의 면이었다. 

 그 다음도.. 그 다음의 다음도.. 보면 볼수록 놀라운 광경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분충이었던 실장석이 점점 인간인 나를 두려워하다가, 에의바른 모습을 보이더니 마지막 녀석은 방금 본 자실장처럼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옆의 실장석의 위석은 점점 금이 가서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특히나 마지막 녀석의 실장석은 6개의 면 전부에 금이 가있어서 금방이라도 깨질것만 같았다. 모든 실장석을 다 관찰하고 난 후, 아직도 실실 웃고있는 준식에게 다가갔다. 

"창호야. 실장석의 몫숨은 몇 개 라고 생각하냐?"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처음엔 나도 무슨소린가 했지. 도시전설같은 건 줄 알았거든. 실장석에게는 목숨이 7개 있다는 말이 있어서 말이야.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일까? 진짜 우연하게 실장석으로 실험을 좀 하고 있었거든. 한 녀석에게 학대..가 아니라 교육을 하고 있었는데 평소처럼 행복회로에 빠진거지. 그러다 그녀석의 위석을 보게 되었는데 금이 가있더라고. 처음엔 우연인가 했는데, 같은 녀석에게 또 교육을 하다보니 또 행복회로에 빠졌는데, 위석이 더 금이 가있는거야. 그게 신기해서 몇 번 더 해보니까 이런 특징을 발견했지. 실장석의 몫숨은 7개다."

 너무나도 진지하게 말하는 준식의 모습에 대답하려는 생각조차 잊고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실장석에게 행복회로란 뭘까? 그저 분충성의 발현? 내 생각엔말이야. 실장석이 정신적으로 한 번 죽는거야. 너무 괴로워서 한 번 죽은 실장석이 행복회로를 굴려서.. 마치 긴급 제새동기처럼 말이지. 가사상태로 살아있다가 깨어나는거지. 그 충격은 위석에 남아서 금이 가는거고. 저 금은 뭔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더라. 그렇게 한 번.. 두 번.. 행복회로 = 죽음을 경험할 때 마다 실장석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위석에 새겨지는거지. 너는 몇 번이고 죽음의 위기를 겪었다. 남은 기회는 점점 사라진다..고 그렇게 6번의 기회를 전부 다 써버린 실장석은 그제서야 자신의 목숨이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거고."
"그럼 아까 처음에 본 그 녀석도?"
"그렇지. 6번 행복회로를 경험한 녀석이야."

 실장석.. 육각형 위석.. 행복회로.. 실장석과 7개의 몫숨..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로 혼란스러웠지만 방금 봤던 실장석들을 떠올리면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이건..

"그래. 기회지. '완벽한 양충'을 판매할"







 그 뒤로는 어떻게 됐냐고? 처음에는 입소문으로만 퍼져나가던 '완벽한 양충'을 값싸게 구매할 수 있다는 소문은, 제 2의 실장석 붐이 되었다. 마침 일본에서 개발된 실장 성장 억제제와 함께 성장하지도, 분충이 되지도 않는 실장석은 정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우리의 기업비밀을 위해서 실장석의 위석은 볼 수 없게 새까만 활성제에 담아다 판매했다. 심지어 그런 자실장의 수명은 평균보다 훨씬 짧아서 회전률도 좋았다. 얼마 안가 그 기업비밀을 로젠사에 넘긴뒤로는, 직접 실장펫샵을 운영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만한 돈이 생겼다. 나도. 실장도. 사람들도. 모두들 행복해졌으니 그걸로 된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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