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에

 

요새 우리집 사육실장 연두가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감추고 있다. 
"다녀왔어." 
일부러 문소리를 크게 내며 현관에서부터 귀가 인사를 하자 작은 발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현관 안쪽 문의 불투명 유리 저 편에서 자그마한 녹색 그림자가 후다닥 거실 안쪽으로 
향했다. 
나는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고 현관의 안쪽 문을 열었다. 
그제서야 연두가 맨발로 총총 뛰어온다. 
[다녀오신 데스우] 
"뭐하고 있었어?" 
[우, 운치를 하고 있었던 데스요] 
거짓말이다. 아까 넌 작은방에서 나왔다. 
아마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황급히 거실 한구석의 실장용 변기에 운치를 해두긴 했겠지 
만. 
"어 그래? 혹시 속 안 좋으면 말해라." 
[걱정해주셔서 감사한 데스.]
하지만 일단 넘어가준다. 
연두의 입가엔 어색한 미소가 걸려있다. 
아마 지금의 내 표정도 연두와 몹시 닮아있겠지.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나는 속아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두 너, 약속을 어기고 자를 낳았구나. 
그렇지? 
-당신이 잠든 사이에- 
내가 귀가할 때마다 작은방에서 연두가 뛰어나오기 시작한 건 저번 주 월요일부터였다. 
그날도 안쪽 문의 불투명 유리 뒤에서 허둥지둥 뛰어가던 뒷모습을 기억한다.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뭘 하고 있었는지도 묻지 않았다. 
이혼하기 전 딸아이가 쓰던 방은 지금은 반쯤 창고가 된지 오래였고 안 쓰는 유아용품이나 장 
난감, 아내가 쓰던 잡다한 물건들이 제법 있었으니까 그런 걸 뒤적이고 있었겠지 싶었다. 
뭔가 수상한 점을 눈치챈 것은 지난 일요일, 즉 어제였다.
연두는 내가 하루종일 집에 있자 뭔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데에에... 주인님, 오늘은 안 나가시는 데스우?] 
"일요일엔 일 안 한다니까. 나도 좀 쉬자." 
[그, 그러셨던 데스. 죄송한 데스.] 
"왜? 같이 공원 가서 카트 한바퀴 밀어줄까?" 
[뎃! 아닌 데스. 괜찮은 데스.] 
연두는 거실 바닥에서 자동차 놀이를 하면서 나를 흘끔흘끔 쳐다봤고 소파 위에 앉아 실장용 
애니를 보면서도 벽걸이 티비의 유광 테두리에 비치는 나를 불안한 눈으로 훔쳐봤다. 
그리고 그 시선은 아주 가끔씩, 닫혀 있는 작은방의 문을 향했다. 
이쯤 되면 아무리 둔한 사육주라도 알 수 있다. 
작은방에 뭔가 있으며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아한다는 걸. 
그제서야 요 며칠간 이상했던 점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연두는 우리 집 문지방을 넘던 자실장 시절에 이미 훈육이 완료된 상태였기에 내가 실장채를 
쥐게 할만한 짓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대단한 어리광쟁이였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틈만 나면 놀자고 보채는 그 모습이 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 
기에 난 어리광에 한해서는 연두를 혼내지 않았다.
독립심이 높아지는 성체실장이 되고 나서부터 같이 놀아달라고 보채는 일은 줄었지만 내가 침 
실에 들어가 있으면 따라들어와서 혼자 어설프게 뜨개질 세트를 만지거나 크레용을 쥐고 딸아 
이가 쓰던 글씨연습장에 삐뚤빼뚤한 글씨를 따라그렸다. 
내가 시야에 없으면 불안했던 것이다. 
그런 녀석이 5일 동안 한 번도 내게 놀이를 보채지 않았다. 
잘 시간이 되자 실장용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일 없이 거실 한 구석의 목제 실장 하우스 
에 들어가서 문을 꼭 닫았다. 
내가 슬슬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우면 몇 분 후 작은 맨발이 장판에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들 
렸다. 
이걸 5일씩이나 놓치고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밖에 없었다. 
연두가 나 몰래 자를 낳았다는 것. 
--- 
앞서 내가 연두를 기르며 실장채를 쥘 일이 거의 없었다고는 했지만, 전혀 없던 건 아니었다. 
연두 녀석은 올해 봄에 뒷마당 쪽 베란다로 날려들어온 꽃가루를 눈에 찍어발라 임신한 적이 
있었다.
깜빡 잊고 바깥 창문 걸쇠를 잠가두지 않은 탓이었다. 
초록색으로 변한 눈을 들키지 않으려고 연두는 하우스 안에 틀어박혀 저장해둔 비상식을 먹으 
며 이틀간 나를 피했다. 
꽤 철저하게 숨길 생각이었는지 운치는 내가 잠든 사이에 몰래 해결했고 내가 집 안에서 눈을 
뜨고 있을 동안은 태교의 노래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속아넘어갈 내가 아니었다. 
연두가 임신하고 셋째날 밤, 나는 운치를 하러 나온 연두의 목걸이를 붙잡아 욕실로 향했다. 
팬티를 벗긴 뒤, 눈을 가리며 저항하는 연두의 팔을 실장채로 때려 부러뜨리고 양쪽 눈꺼풀을 
벌려서 빨간 식용색소를 넣었다. 
몸부림치는 연두의 총배설구에서는 운치와 함께 다섯 마리의 엄지실장이 나왔다. 
강제출산과 골절의 고통으로 축 늘어진 녀석 앞에서 나는 다섯 마리의 엄지를 집어들어 세면 
대에 넣었다. 
온수를 약하게 틀어 점막을 떼낸 뒤 연두에게 잘 보이도록 한 마리를 집어들어 내 손 안에 쥐 
었다. 
[레에! 마마 레치!] 
내 손 안에서 연두를 내려다보며 팔을 흔드는 엄지 위로 다른 한 손을 덮어 서서히 감쌌다. 
[레츄아앗! 아파요 레츄! 살려주세요 레츄! 마마앗!]
[데에엣! 주인님, 엄지를 살려주시는 데스! 살려주시는 데스!] 
연두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부러진 팔을 힘겹게 치켜들어 싹싹 빌었다. 
"안 돼. 약속이었잖아." 
한 마리 한 마리 으깬 고깃덩이로 변해서 변기에 빠질 때마다 연두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오로로롱! 오로로롱!] 
"이번엔 이걸로 넘어가지만 다음 번엔 널 공원에 버릴 거야." 
괴로운 마음을 눌러삼키며 마지막 엄지를 으깬 뒤 변기물을 내리자 연두가 가슴을 누르며 엎 
어졌다. 
위석에 금이 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괴로워했기에 나는 연두에게 실장구급키트에 있던 
위석활성제를 주사하고 진통제를 먹여 재운 다음 출근했다. 
미움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귀가한 나를 맞이한 건 평소와 다름없는 연두였다. 
연두와 나는 서로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했다. 
오히려 그 일 이후로 연두의 어리광이 좀 늘어나기까지 했다. 
자를 갖지 못하는 허전함을 나와의 유대로 달래려 했던 걸까. 
그런데 왜 이제 와서.
--- 
그리고 오늘. 
나는 연두의 저녁밥에 지효성 네무리를 두 알 갈아서 섞어넣었다. 
네무리의 약효가 전신에 돌기 시작하자 연두의 눈이 끔뻑끔뻑 감겼다. 
갑자기 쏟아지는 졸음에 눈을 비비며 저항하는 연두에게 조용히 웃으며 말을 걸었다. 
"연두야." 
[흐아아암... 네, 데스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그제서야 내 웃음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챘는지 연두가 감기던 적록색 눈을 번쩍 뜨며 놀 
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쓰러지듯 잠들었다. 
"일어났을 땐 공원일 거야, 연두야." 
연두가 귀를 꼬집어도 반응이 없을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한쪽 귀에 링갈 
의 이어폰을 끼고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안 쓰는 침대와 책상 위부터 벽장 안쪽과 방바닥까지 수북하게 쌓인 골판지 상자와 리빙박스. 
여기 어딘가에 연두의 자가 숨어있을 터였다. 
제일 위쪽의 박스부터 하나하나 내려놓고 점검하기 시작했다. 
--- 
수색 한 시간째. 
책상 위에 있던 상자 여섯 개와 침대 위에 있던 상자 여덟 개를 싹싹 뒤진 나는 이마에 흐르 
는 땀을 닦으며 딸이 쓰던 침대 위에 적당히 드러누웠다. 
아직도 찾을 짐은 썩어나게 많은데 아무 것도 나온 게 없었다. 
[프니후-] 
...라고 생각한 순간 들려온 희미한 울음소리. 
인간의 청력이었으면 못 들었겠지만 실장석의 울음소리만 잡아내 증폭시키는 링갈 덕분에 들 
을 수 있었다. 
[막내 우지챠, 소리내면 들키는 레치!] [오네챠 목소리가 우지챠보다 큰 레츄!] 
다만 소리가 난 방향을 알 수 없었다. 다시 눈에 힘을 주고 방 구석구석을 훑어보자 얇은 커 
튼 뒤에서 작은 녹색 그림자가 비쳐보였다.
커튼을 옆으로 걷어내자 그곳엔 몸을 잔뜩 움츠린 엄지 실장 두 마리, 그리고 각각의 품에 안 
겨 몸을 공처럼 말고 있는 구더기 실장이 두 마리 있었다. 
그럼 그렇지. 
자를 임신한 상태면 내게 들키니까 내가 없는 사이에 엄지와 구더기를 강제 출산하고 숨겨둔 
거였나. 아마 자기 피를 썼겠지. 실장석의 회복력을 생각하면 베인 상처는 내버려둬도 세 시 
간이면 감쪽같이 낫는다. 
게다가 몸집이 작으니 숨기기도 용이했을 터. 
내가 있을 동안 구더기의 관리는 엄지에게 맡겼을 거다. 
점막과 운치는 내가 욕실에 설치해준 실장용 샤워부스에서 떼냈으려나.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가만히 있자 엄지 두 마리가 그제서야 도망치기 위해 침대 밑으로 
달렸다. 
어딜. 
한 손에 엄지 한 마리씩, 덤으로 엄지가 껴안고 있는 구더기까지 네 마리를 순식간에 잡아올 
렸다. 
[레치이잇!] [레챠아앗!] 
내 손가락을 향해 작은 이빨을 세우는 두 마리의 엄지 실장을 책상 위로 굴리자 구더기 두 마 
리가 엄지들의 품에서 빠져나가 뒹굴었다. 
[이런 프니프니는 싫어 레후!] [눈이 빙글빙글 레후!]
정신을 차린 엄지실장 두 마리가 가랑이에서 운치를 흘리며 책 사이에 숨으려 했지만 두건을 
잡아 끌어냈다. 
[닝겐상, 죄송한 레치! 금방 나가는 레치! 마마에게 돌아가는 레치!] [이거 놓는 레챠앗! 마마 
앗! 마마앗!] 
하하, 마마 말이지. 
책상 위에 방치된 구겨진 종이컵에 구더기 두 마리를 담아두고 엄지들을 아무렇게나 쥐어 거 
실로 나갔다. 
"그래, 마마랑 같이 나가면 되겠네." 
허리를 굽혀 두 마리를 연두의 옆에 슬쩍 떨어뜨렸다. 
[레챠아앗! 이 아줌마는 누구인 레챠앗!] [내보내주는 레치! 나갈 거인 레치!] 
"뭐?" 
예상과는 달리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는 두 마리를 낚아채서 들어올렸다. 
[마마가 밖에서 기다리는 레치! 보내주는 레치!] [운치나 먹는 레챠아앗!] 
허공에서 투분하려는 오른손의 엄지실장을 멀찍이 들고 그보다 침착한 편인 왼손에 들린 언니 
를 향해 물었다. 
"무슨 소리야. 니네 마마 여깄잖아."
[이 아줌마는 마마가 아닌 레치! 와타치타치는 공원에서 온 레치!] 
잠시 얼떨떨해있자 뒤늦게 연두의 목걸이를 봤는지 엄지실장이 황급히 말을 바꾼다. 
[새, 생각해보니까 마마가 맞는 레치! 그러니까 와타치타치도 사육실장인 레치네? 주인님, 와 
타치타치를 내려주시는 레치!] 
안됐지만 한 박자 늦었다. 
더 들을 것 없이 두 마리를 싱크대 안에 던져넣었다. 
[주인님 레치! 왜 이러시는 레치!] [레츄아앗! 체아앗!] 
다시 작은방으로 향했다. 
종이컵 안에 있던 구더기 두 마리를 책상 위에 쏟은 뒤 바로 프니프니를 했다. 
[레후! 닝겐상 프니프니 기분 좋은 레후!] [오네챠들보다 좋은 레후!]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있던 구더기 두 마리가 금세 헤롱거리는 표정으로 운치를 흘렸다. 
"그래그래. 혹시 이 방에 어떤 아줌마가 들어온 적 없니?" 
[노란 목걸이 한 아줌마가 매일 들어온 레후~] [벽에 들어간 레후~] 
벽에 들어갔다는 건 벽장을 말하는 것이렷다.
즉시 프니프니를 그만두고 벽장을 열었다. 
벽장 문을 열자마자 리빙 박스 위에 놓인 조잡한 분홍색 털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털뭉치에는 
가느다란 두 개의 대바늘이 꽂혀있었다. 
"뜨개질...?" 
집어들자 털뭉치 밑에 있던 색바랜 종잇조각이 팔랑팔랑 떨어졌다. 
종이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생일선물'이라고 써 있었다. 
생일. 
그러고 보니 내일이 내 생일이었구나. 
나도 잊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뜨거워지는 눈가를 꾹꾹 누르며 털뭉치를 조심스럽게 원위치시키고 벽장 문을 닫 
았다. 
--- 
조금 전 언니 엄지는 자기들은 공원에서 왔고 마마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나는 뒷마당으로 난 베란다로 향했다.
안쪽 미닫이문을 열고 시선을 좌에서 우로 훑자 바깥 미닫이문이 아주 살짝 열려 있었다. 
딱 엄지실장이 통과할만큼. 
"탁아를 당했단 말이지..." 
맨발인 채로 유리문을 활짝 열어 난간을 타넘었다. 
잔디 위에 발을 디디자 방치된 텃밭 쪽에서 무릎까지 오는 작은 그림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조경수를 향해 뛰어갔다. 
앞질러가서 배를 걷어차니까 [데푹!]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굴러갔다. 
조경수 뒤에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비닐에 덮인 허름한 골판지 상자가 있었다. 
상자를 그대로 들어올려서 녹슬어가던 바비큐 그릴 위로 가져가 탈탈 털었다. 
부스러진 숯과 잿더미 위로 세 마리의 자실장이 떨어졌다. 
뒤늦게 내 쪽으로 달려오는 친실장을 붙잡아 마찬가지로 그릴 안에 넣고 위에 철망을 덮었다. 
뒤이어 부엌과 작은방에서 들고 나온 엄지와 구더기도 철망 사이로 밀어넣었다. 
억지로 밀어넣자 엄지 두 마리의 양팔이 떨어져나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두 마리 엄지의 상처에 재가 달라붙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창고에서 찾은 액상 착화제를 꺼내서 바비큐 그릴 위로 모조리 부었다. 
[닝겐상, 꺼내주시는 데스! 당장 나가는 데스!] [테챠아아앗! 테쟈아아앗! 콜록, 콜록!] 
"하하하..." 
마른 웃음을 흘리며 가늘게 꼰 신문지에 불을 붙였다. 
그냥 발견했으면 아마 약간의 사료랑 들생활에 유용한 몇가지 쓰레기를 들려서 내보냈겠지만 
너희들 때문에 죄없는 연두가 내쫓길 뻔했으니 용서할 수 없다. 
철망 사이로 불붙은 신문지를 떨어뜨렸다. 
[안 되는 데스! 자들만이라도 살려주시는 데스! 부탁인 데스! 제발...] 
그 뒷말은 불꽃에 삼켜졌다. 
단백질이 타는 악취와 끓어오르는 실장변의 냄새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나는 바비큐 그릴의 뚜껑을 닫아놓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
연두는 여전히 네무리에 취해 침까지 질질 흘려가며 자고 있었다. 
딱한 녀석. 
하지도 않은 일로 괜한 의심을 사서 버려질 뻔했다. 
연두에게 미안한 동시에 연두를 믿어주지 못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담아 자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연두가 잠시 움찔하며 다리를 내 
저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이라도 꾸는 걸까. 
실장 하우스로 옮기려다 말고 그대로 담요를 덮어준 뒤 거실의 불을 껐다. 
내일은 잔뜩 놀아줄게, 연두야.









탁아를 처음 당한 남자와 운 좋은 친실장



불 켜진 원룸. 
남자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오후 내내 직장에서 상사에게 잔뜩 깨지다가 여덟시가 넘어서야 겨우 해방됐다. 
지친 심신을 달래려 회사 앞 포장마차로 들어가려던 남자는, 술잔을 기울이는 상사의 뒷모습 
을 보고 그대로 뒷걸음질쳐서 편의점으로 향해야 했다. 
맥주 몇 캔과 함께 간단한 씹을거리를 사서 공원 벤치에서 먹으려 했지만 마른 안주 봉지를 
뜯자마자 냄새를 맡고 구름같이 몰려든 들실장들의 아우성에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봉지를 열자 보이는 건 똥범벅이 된 마른 안주 사이에서 테치테치 울음소리를 내는 작 
달막한 자실장 두 마리. 
구겨진 남자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두 마리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닌겐씨, 보는 테치~ 이모우토챠 정말 귀여운 텟츄~ 가족의 보배인 테치요~] 
[치이이~] 
언니 자실장이 부끄러워하는 동생 자실장을 팔로 안아 들어올리며 자랑하지만 남자의 귀엔 테 
치테치 시끄럽기만 하다. 
꽉 쥐어진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이마에는 핏줄이 돋았다. 
말로만 듣던 탁아를 하필이면 이런 최악의 타이밍에 당하고 말았다.
편의점에서 나올 때 넣은 걸까. 
아니면 공원 벤치에 앉아 잠시 허공에 대고 신세한탄을 하느라 비닐봉지를 옆에 내려놓았을 
때 들어간 걸까.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지금 이 두 마리 똥벌레들이 자신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해줄 유일한 낙을 앗아가놓 
고도 똥범벅이 된 채 태평하게 테치테치 울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 링갈을 작동시켰다. 
"야, 야." 
[막내 이모우토챠는 운치도 정말 귀엽게 하는 테치~ 그리고... 텟! 부른 테치?] 
[텟치이!] 
"니네가 알아서 들어온 거냐, 니네 마마가 넣은 거냐?" 
[마마가 와타치타치를 넣어준 테치. 마마도 곧 가니까 메로메로 시켜서 귀엽다귀엽다 많이 받 
으라고 한 테치요~] 
[마마 츄앗!] 
"그래, 마마도 온다고?" 
[응 테치! 와타치타치한테 예쁜 흑발 이모우토챠들을 만들어 줄거라고 한 텟츄우~] 
[이모우토챠!]
"어, 그래. 거기까지." 
남자는 이를 부드득 갈며 편의점 봉투를 방 안쪽 벽에 튀어나온 못에 걸어놓고 현관으로 향했 
다. 
대롱대롱 흔들리는 봉투 입구에서 언니 자실장이 옆으로 누운 맥주캔을 딛고 머리를 내밀어 
멀어져가는 남자의 등을 향해 계속 떠들어댄다. 
[닌겐씨, 닌겐씨! 밥 우마우마 아리가또 테치. 그치만 너무 짰던 테츄. 물은 없는 테치카?] 
[물 테치!] 
"입 닥쳐! 닥치라고 씨발!" 
[테챠아아앗!] 
[츄아아아앗!] 
고함소리에 놀란 두 마리가 비명을 질렀다. 
빵콘하면서 맥주캔에서 굴러떨어진 언니 자실장은 잽싸게 여동생을 땅콩 봉지로 밀어넣고 자 
신도 꿈틀꿈틀 파고 들었다. 
[이모우토챠 큰일난 테치... 닌겐씨가 화난 테치... 와타치타치가 뭔가 잘못한 것 같은 테헤 
엥...] 
[화난츄아!] 
여태 분위기 파악을 못하던 두 마리였지만 이제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벌벌 떨고 있 
었다.
물론 남자는 그 광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매섭게 부릅뜬 두 눈은 마치 문 너머에 이미 친실장이 도착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납게 현관을 
노려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예전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했던 학대파들의 영상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흘러갔 
다. 
너희들에게 지옥을 보여주마. 
남자는 그렇게 다짐했다. 
학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같은 끓어오르는 분노만 있다면 어떤 잔인한 짓이라 
도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 
10분 후. 
봉투 속의 자매가 다시 흘끔흘끔 바깥을 내다보기 시작하고, 혼자 중얼중얼 욕설을 내뱉던 남 
자가 의자에 앉아 막 담배를 입에 가져다 물었을 때. 
-콩콩콩 
작은 살덩이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현관을 울렸다. 
[와타시의 귀여운 자들 냄새가 나는 데스우~ 문을 여는 데스우~]
[테에, 마마가 온 테치!] 
[마마 테츄아!] 
친실장의 목소리에 마음이 놓였는지 봉투 속 두 마리가 다시 테치테치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 
했다. 
"후우..." 
남자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꺾어서 바닥에 버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피가 끓어오르고 심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꽉 쥐어짜이는 기분이었다.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남자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심호흡을 한다. 
-콩콩콩콩콩콩콩콩콩! 
[시치미 떼지 말고 썩 문을 여는 뎃샤아아!] 
-벌컥 
문이 갑자기 바깥쪽으로 열리자 문에 찰싹 달라붙어 마구 두들겨대던 친실장이 머리를 부딪히 
고 꼴사납게 자빠졌다. 
[데부웁] 
[닌겐씨 테치!] 
[큰 테치!]
[닌겐씨 집 넓은 테치!] 
넘어진 친실장을 돌아보지도 않고 자실장들이 앞다투어 현관으로 달려들어왔다. 
하나같이 누더기같은 실장복에 이것저것 얼룩을 묻히고 있었다. 
타일이 깔린 현관과 방바닥 장판 사이의 낮은 단차를 낑낑대며 타넘어 집 안으로 들어오려는 
세 마리를 남자가 발로 한 마리씩 밀어 뒤로 굴렸다. 
[테삣] 
[테븁] 
[테엥] 
세 마리가 각자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데이...] 
방금 전까지 넘어져있던 친실장이 일어나며 몸을 툭툭 털었다. 
그럭저럭 먹이를 잘 찾은 개체였는지 키가 남자의 허벅지까지 오고 살집도 제법 좋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찬 바람에 여기저기 터 있었고 옷과 맨살 어디에도 자들과 마찬가지로 꼬질 
꼬질한 때와 얼룩이 묻어 있었다. 
실장취와 더러운 옷감의 냄새가 남자의 코를 찔렀다. 
[마마! 닌겐이 못 살게 구는 테치!]
[그런 테치! 와타치타치 집인데 못 들어가게 하는 테츄!] 
[혼내주는 테치!] 
[오마에타치 그러면 못 쓰는 데스. 닌겐을 만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 데스] 
친실장이 다리에 달라붙어 칭얼대는 세 마리를 향해 근엄하게 말하더니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뎃수~웅]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목을 옆으로 기울이며 애교를 떨었다. 
남자의 입에서 다시 부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오마에타치도 어서 애교를 하는 데~스. 마마처럼 귀엽게, 뎃수~웅] 
[[[테, 텟츄~웅]]] 
[뎃수~웅] 
[[[텟츄~웅]]] 
제 딴에는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겸해 닌겐을 메로메로 시켜보겠다고 취한 행동이었지만 화가 
난 남자의 눈에는 그저 역겨워 보일 뿐이었다. 
"지랄하네 씨발."
남자가 욕설을 내뱉으며 한발을 성큼 내딛었다. 
[데뎃?] 
험한 말에 놀란 친실장이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뺐지만 남자의 손이 더 빨랐다. 
친실장의 두건을 거칠게 잡아당겨 방 안쪽으로 던지더니 자실장들도 발로 먼지쓸듯 안쪽으로 
밀어내고 현관문을 닫아버렸다. 
"야, 내가... 후... 지, 지금 기분이 존나... 후우... 좆같거든?" 
고작해야 벌레같은 실장석을 상대로 말하는데도 말이 자꾸 더듬어져 나오고 숨이 찼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에 남자는 가슴을 누르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남자는 엎어진 상태로 정신을 못 차리는 친실장의 귀를 잡고 일으켜세웠다. 
"니가 싸지른 똥벌레 새끼들이 내가 먹을 거에 똥을 싸질러놨단 말야." 
한없이 좁아지고 일렁이는 시야 속에서 더러운 실장석의 모습만이 보였다. 
"넌 오늘 죽었다." 
[데에엣!]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낮춘 남자의 주먹이 뒷걸음질치는 친실장의 얼굴을 향해 내리꽂혔 
다.
철퍽- 하고 과일을 으깨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해방 
감이 퍼졌다. 
친실장이 방바닥 위로 쓰러졌지만 남자의 주먹질은 그치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덱! 데겍! 데갸아악!] 

"후우..." 
몇 번인가 주먹을 내리친 뒤 남자는 손을 털며 일어섰다. 
가벼운 현기증 같은 것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뜬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러운 기분 
에 휩싸였다. 
바닥에 넘어진 친실장의 얼굴은 처참했다. 
피와 적록색 눈물로 칠갑이 된 뺨과 눈두덩은 울긋불긋 부어올라 있었고, 그 와중에 이마와 
광대뼈는 함몰되어서 얼굴이 마치 찌그러진 감자처럼 변해 있었다. 벌어진 입 사이로는 부러 
진 이빨이 피와 함께 흘러나왔고 늘어진 혓바닥은 반쯤 잘려 덜렁거렸다. 
움찔움찔 경련하는 두 다리 사이에서 진한 초록색 액체가 흘러나와 방바닥 위로 번져나갔다. 
그제서야 피비린내와 실장변의 악취가 코를 찔러왔다.
험한 꼴을 당한 친실장을 자실장들이 테에에엥 테에에엥 울며 몰려들어 감싼다. 
세 마리 모두 팬티가 녹색으로 부풀어있었다. 
[닌겐씨, 살려주는 테치! 마마를 그만 괴롭히면 좋은 테치!] 
[와타치타치가 나가는 테치! 그만하는 테치!] 
[테에에엥! 테에에엥!] 
[오하헤챠히 이허하 혜쓰... 호하카느 제흐...(오마에타치 위험한 데스... 도망가는 데스...)] 
남자가 그 광경을 멍하니 보는 사이, 친실장은 자실장들을 달래며 비틀비틀 일어섰다. 
남자가 가만히 내버려두자 친실장은 무릎을 꿇고 도게자를 했다. 
[사혀주히느 헤스... 와햐시의 챠드른 사혀쥬히느 테흐...(살려주시는 데스... 와타시의 자들은 
살려주시는 데스...)] 
[테에에엥! 마마 일어나는 테치! 도망가는 테치!] 
[와타치도 도게자 하는 테치! 용서하는 테치!] 
[테에에엥! 테에에엥!] 
비록 뭉개진 발음이라 링갈로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친실장이 자들의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순간 아찔해졌다. 
조금 전의 분노가 사그라들고 차가운 자기혐오가 밀려들었다.
이게 뭔가. 
고작해야 몇천원짜리 술과 안주를 망쳤다고 저 조그마한 생물을 죽어라고 두들겨패고 말았다. 
그까짓 안주 정도 나눠줘도 좋았을걸. 
그냥 말로 타일러 보내도 좋았을걸. 
이럴 것까진 없었을텐데. 
시선을 가만히 방 안쪽으로 향하자 못에 걸어뒀던 편의점 봉투가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 나오려고 발버둥치는 거겠지. 
"하아..." 
남자가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이미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기분이 엉망이었다. 
"야." 
[헤엑!] 
자신을 흘끔흘끔 올려다보다말고 다시 머리를 땅에 박으며 오들오들 떠는 친실장을 남자가 발 
로 툭툭 건드렸다. 
"일어나라."
[헤휴우...] 
피와 적록색 눈물을 뚝뚝 떨구며 친실장이 몸을 일으켰다. 
"니 더러운 새끼들 데리고 당장 꺼져. 알았어? 또 오면 그 땐 진짜 죽인다." 
[캉햐항이아 혜흐...(감사합니다 데스...)] 
친실장이 반쯤 잘려 덜렁거리는 혀로 자실장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핥아주는 동안 남자는 못에 
걸어뒀던 편의점 봉지를 내렸다. 
똥범벅이 된 맥주캔만 꺼낸 뒤 봉지를 그대로 친실장에게 건넸다. 
"안에 남은 건 니네가 알아서 처리하고 다신 오지 마라." 
친실장은 품에 끌어안았던 자실장을 내려놓고 봉지를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마! 마마앗!] 
[테에에엥~ 마마 울퉁불퉁 테치... 못생겨진 테츄...] 
봉지 안에서 친실장을 올려다 본 두 마리가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남자가 현관문을 열어주자 여섯 마리의 실장석 일가는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헷흐우...] 
친실장이 남자를 향해 목을 숙여 인사 비슷한 동작을 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자들을 이끌고 걸어갔다. 
초록색 그림자는 건물의 복도를 지나고 출입구를 빠져나가서 저 멀리 길 안쪽으로 아장아장 
사라져갔다. 
"하, 시발..." 
문을 닫고 돌아선 남자가 원룸의 몰골을 보고 욕을 내뱉었다. 
"청소는 시키고 보낼걸." 
아무래도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 
일주일 후. 
얼굴이 희미하게 찌그러진 성체 들실장이 남자의 원룸 현관문을 두들겼다. 
-콩콩콩 
[주인님~ 문을 열어주시는 데스우~ 와타시인 데스우~] 
-벌컥 
들실장이 밖으로 열리는 문에 얼굴을 맞아 뒤로 넘어졌다.
기가 찬 듯한 남자의 얼굴이 더러운 들실장을 내려다봤다. 
"너 뭐야? 미쳤냐? 왜 또 왔어?" 
들실장이 부딪힌 이마를 문지르며 일어나 웃는다. 
[데프픗, 운치밖에 할줄 모르는 자들은 놓고 온 데스우~ 이젠 고귀한 와타시만 키울 수 있는 
데스우~] 
친실장은 며칠간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저번에 와타시가 두들겨맞은 건 탁아한 4녀와 5녀가 운 
치를 한데다 귀찮게 다른 자들까지 데려가서 그런 데스!' 라는 결론을 내리고 자들을 골판지 
하우스째로 버리고 온 것이었다. 
보호해줄 친실장이 없으니 지금쯤이면 다른 들실장들에게 잡아먹혔을 터였다. 
"아... 그러셔?" 
입가를 일그러뜨린 남자가 거칠게 손을 뻗어 친실장을 원룸 안으로 들이고 현관문이 닫혔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얼굴이 부어오른 독라실장 한 마리가 복도로 굴러나왔다. 
"썩 꺼져." 
그 한 마디와 함께 금속 여닫이문이 매정하게 쾅 닫혔다. 
독라실장은 벌어진 입에서 혀를 내밀고 주저앉은 채, 굳게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 
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밖으로 열려있는 원룸촌의 출입문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들어오자 
독라가 목을 움츠렸다. 
[데히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실장석의 A모양 입에서 바람이 새는 듯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든 걸 잃은 친실장은 주저앉은 모습 그대로 한참을 구슬피 울더니 비틀비틀 복도를 걸어나 
가 거리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런 뒷모습을 배웅하듯 어느새 하얀 눈이 내려앉고 있었다.







어느 자실장의 애교



실장석이 애교(아첨)를 떤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부 애호파들은 이걸 두고 오직 인간에게 맞춰 적응해 온, 인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랑 
스러운 생물 운운하는 개좆까는(이런, 실례) 소리를 지껄여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장석의 애교 대상은 실로 다양하다. 
우연히 마주친 인간이나 말이 통하는 같은 실장석끼리는 물론이고 자신을 덮치려는 까마귀나 
고양이 등의 천적부터 시작해서 손이 닿지 않는 나무 열매나 꽃, 먹기엔 너무 맵거나 짠 음 
식, 인간의 집에서 살아주려는 자신을 가로막는 유리창, 건너기엔 너무 넓고 깊은 도랑, 자신 
들을 두렵게 하는 천둥소리, 가차없이 내리꽂히는 한여름의 태양까지 그 대상은 인간과 동식 
물, 무생물과 자연현상을 가리지 않는다. 
횡단보도도 아닌 도로가에서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멈춰달라고 한참 애교를 부리더니 잠시 차 
가 안 오는 사이에 애교 포즈 그대로 건너편을 향해 뛰어가다가 깔려죽은 놈이나 추운 겨울날 
골목길 위에서 단체로 하늘을 향해 뎃수웅~ 텟츄웅~ 거리다가 선 채로 얼어죽은 들실장 일가 
를 본 사람도 제법 된다고 한다. 
하여간 조금만 관찰해도 알 수 있는 사실도 모르면서 애호한다고 설쳐대는 얼치기 애호파들 
대가리 수준을 알만하다 하겠다. 참으로 인간의 탈을 쓴 분충 쉐리들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몸통 어딘가에 위석을 감추고 있지 않을까? 한번 째보고 싶어진다. 
이런, 사설이 길었다. 
이야기를 되돌리자. 
하여간, 그런 다양한 애교 가운데 좀 특별한 케이스를 관찰했기에 여기에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 
작년 가을에 나는 인근 공원 안쪽 오솔길 위에 관찰 카메라와 실장용 링갈마이크를 설치했다. 
인간이 지나다니며 난 그 길은 실장석에겐 제법 넓었고 위로 높이 솟은 수풀은 하늘에서 까마 
귀 같은 포식자가 덮쳐올 때 숨을 곳이 되었기에 통행량이 제법 있었다.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화면을 뭔가 지나갈 때까지 계속 바라보고 있을 수도 없고 배터리 문제 
도 있었기에 난 모션 센서가 달린 카메라를 달았다. 움직임이 있을 때만 알림을 보내며 화면 
을 띄우고 자동 녹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나중에 녹화된 영상만 확인해도 됐지만 마침 한가한 주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컴퓨터를 켜두고 
알림 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띠링- 하며 녹화 신호가 울렸다. 
책을 덮은 뒤 화면을 바라보자 오솔길을 굽어보도록 설치된 카메라 아래를 자실장으로 추정되 
는 작은 실장석이 아장아장 뛰어가고 있었다. 뛰어간다고는 해도 팔을 흔드는 정도가 격해진 
것일 뿐 속도는 걸을 때와 많이 차이가 나지 않았다. 
화면에 들어오고나서 열 걸음쯤 갔을까. 실장석이 중간에 돌부리에 걸려 털퍼덕 엎어졌다. 
[테체엥] 
엎어진 상태에서 옆으로 반바퀴 데굴 구르더니 발목을 부여잡는다. 카메라를 조작해 광학 줌 
을 당기자 오른발에 신은 초록색 구두 바로 위, 즉 발목 부근이 보랏빛으로 변한 채 뒤틀려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가랑이 사이의 팬티에서 초록색 얼룩이 번져가는 것도. 
[테, 테, 테갸아아아아악!] 
스피커에서 새된 비명이 흘러나왔다. 기능키를 눌러 대상 초점화를 실행했다. 이제 저 실장석 
이 움직이는 대로 카메라가 쫓아갈 것이다.
[마마~ 마마~ 테에에엥~ 티에에에엥~] 
잠시 마마를 찾으며 적록색 눈물을 흘리더니 통증이 좀 가라앉았는지 일어서려고 한다. 하지 
만 부상당한 오른발이 쑤시는지 다시 주저앉으며 발목에 뒤틀림을 더한다. 
[텟뺘아아아아아아!! 아야아야 테치! 아야아야 테치!] 
다시 발목을 붙잡고 뒹굴었다. 비명소리가 잦아들고 링갈마이크는 자실장의 테에-테에-하는 
숨소리만을 전달했다. 자실장의 얼굴은 적록색 눈물과 노란 빛이 도는 투명한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가랑이 사이의 초록색 얼룩이 땅에도 묻어나왔다. 
[아야아야 테츄... 아야아야가 너무한 테치이...] 
중얼거리며 일어서더니 다시 넘어진다. 이번엔 아까처럼 오른발에 많은 체중을 한번에 실은 
게 아니었는지 발목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파보였다. 발목 부근이 덜 
덜 떨리고 얼굴에는 다시 적록의 눈물이 흘렀다. 
[치이... 츄우...] 
자실장이 잠시 호흡을 고르더니 상체를 일으켜 바닥에 앉았다. 다친 오른발은 가랑이쪽으로 
당긴 채였다. 앉은 자세 그대로 소매로 눈물과 콧물을 슥슥 닦는다. 뭘 하려는 걸까? 
[테, 텟츄웅~] 
자실장이 한 손을 턱에 대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 애교? 이 상황에서? 지나가던 인간이나 다른 실장석이라도 발견한 건가 싶어 황급히 광 
학 줌을 최대한 뒤로 물렸지만 화면에 비치는 건 없었다.
"뭐야." 
중얼거리며 다시 줌 인. 
[텟츄웅~ 아야아야하지 않는 테츙~ 와타치에게 메로메로인 테츙~ 아야아야 그만하는 테츙~] 
자세히 보니 자실장은 자신의 오른쪽 발목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숙인 채 말을 걸 
고 있었다. 맙소사. 저 녀석 지금 자기 다리에 대고 아프지 말라고 애교를 부리고 있는 거야? 
[츄우~ 착하다착하다 테츄~ 옳지옳지 테츄웅~] 
앉아있는 사이 통증이 가라앉았는지 자실장이 다시 일어섰다. 왼발에 체중을 최대한 실어 깡 
총거리며 오른발은 끄트머리만 세워 나아간다. 착지할 때마다 가랑이 사이에서 물기 있는 녹 
색 가루가 후드득후드득 떨어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체중 배분에 실패했는지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더니 아까보다도 심하게 쓰 
러졌다. 
[테켁] 
자실장이 다시 탈분하면서 팬티가 불룩해졌다. 자실장은 잠시 그대로 엎어진 채 어깨만 위아 
래로 오르내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감도를 최고로 높인 링갈마이크가 씨근덕거리는 자실장의 
숨소리를 생생하게 포착했다. 몹시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몸을 굴려 하늘을 향해 눕더니 소리를 지른다. 
[테챠아아아아아아-!!] 
포식자를 불러들이는 건 아닐까 절로 걱정되는 음량이었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던 자실
장이 일어나 앉더니 근처에 굴러다니는 돌을 주웠다. 
그리고는 
[왜 말을 듣지 않는 테체아!! 오마에 같은 똥다리는 고귀한 와타치의 다리가 아닌 테챠앗!!] 
이라고 외치며 자신의 오른쪽 무릎 아래를 내리찍었다. 
[테뵤오오오오옥!!] 
자실장이 고통에 눈을 뒤집으며 가랑이 사이에서 물같은 운치를 흘렸다. 허리를 뒤로 젖히며 
손에 들린 돌을 내던진다. 잠시 발광하더니 다시 다른 돌을 집어들고 악에 받쳐 외쳤다. 
[아야아야해도 소용없는 테치! 오마에 같은 똥다리는 솎아내는 테치!] 
그러더니 이를 악물고 몇 번이고 내리찍어 기어이 무릎 아래의 다리를 끊어냈다. 
[테히이... 꼴 좋은 테치... 그러게 아야아야 말라고 할 때 아야아야 그만뒀어야 하는 테치이... 
끝까지 똥다리였던 테치...] 
중얼거리며 잘려나간 오른쪽 정강이를 손으로 찰싹찰싹 때린다. 
흠... 발목이나 무릎 아래나 아픈 건 엇비슷할 것 같은데 왜 이번엔 멀쩡한 걸까? 분노가 아 
픔을 억눌러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손에 묻은 끈적끈적한 체액을 혀로 핥아 닦아내던 자실장의 눈이 살짝 크게 떠졌 
다. 저런 눈을 본 적이 있었다. 동족의 고기맛을 본 들실장의 눈이었다. 
[텟츄웅~]
행복한 콧소리를 울리더니 곧 잘린 다리를 집어들어 열심히 갉아먹기 시작했다. 
[테츄~ 역시 고귀한 와타치의 다리는 맛도 좋은 테츄~] 
너 아까는 똥다리니 뭐니 하지 않았냐... 
한참을 그렇게 갉아먹는 녀석의 앉은자리 주변으로 어느새 적록색 얼룩이 넓어지고 있었다. 
절단면에서 흘러나온 피와 체액이었다. 
저대로 몇 분만 더 있으면 실혈사할 것이다. 하지만 자실장에게 그런 지식은 존재하지 않았는 
지 다리에 입을 처박고 계속 자신의 살을 뜯어먹기 바빴다. 녀석은 잘린 다리에서 살점이 다 
사라진 뒤에도 연신 뼈를 핥짝이고 있었다. 
만면에 행복한 미소를 띄운 녀석의 상체가 갑자기 뒤로 기울었다. 
[츄앗?] 
자실장은 한 손을 땅에 짚어 상체를 바로 세우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대로 땅에 등을 대고 
드러눕는다. 
[테... 테치이...] 
한쪽 팔엔 다리뼈를 껴안은 채, 다른 한 팔과 멀쩡한 다리를 버둥거려 일어나려고 애쓰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화면 속에서 자실장의 눈이 점점 탁해져갔다. 
이유는 모르지만 죽음이 엄습해오는 것만은 확실히 느꼈는지, 자실장의 얼굴이 공포에 사로잡 
혔다.
[치에에엥~ 체에에엥~] 
눈에서는 적록색의 눈물을, 입에서는 울음소리를 흘리며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을 낭비한다. 
그러던 자실장의 울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곧 죽음을 맞이하는 건가 싶어 화면에 얼굴이 가 
득차도록 최대한 광학 줌을 당겼다. 죽음의 순간 이 녀석들의 눈이 뿌옇게 변해가는 걸 자세 
히 보고 싶었다. 
그런데 자실장의 얼굴이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행복회로 가동 중인 걸까. 
[텟츄웅~] 
비음 섞인 울음소리와 함께 화면 속 자실장의 얼굴이 다시 갸웃했다. 설마... 
광학 줌을 살짝 뒤로 빼자 파들파들 떨리는 오른손이 애처롭게 턱에 붙어있었다. 
[텟츄웅~ 귀여운 와타치는 죽지 않는 테츙~ 와타치는 메로메로인 테츙~] 
정신이 멍해졌다. 화면 속의 자실장은 죽어가는 자기 자신에게까지 죽지 말라며 애교를 부리 
고 있었다. 
[텟츄웅~ 츄앗, 츄우... 테... 치이...] 
그걸 마지막으로 자실장의 경련이 그치고 스피커가 침묵했다. 
난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화면을 끄고 커피를 마시러 부엌으로 향했다.
---------- 
나는 이 관찰로부터 실장석이란 자기 자신에게도 죽음의 순간까지 애교를 떠는, 보고 있는 쪽 
이 슬퍼질 정도로 멍청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고 얼마 안 가서 학대파로 전향했다.








한여름날의 꿈



주인이 출근하여 집을 비운 금요일 오전. 
사육실장 미도리는 작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데에에... 이건... 권총 아닌 데스우?" 
자들과 함께 배불리 실장푸드를 먹고 운치를 한 뒤 구더기쨩에게 손수 프니프니까지 완료. 
점심 시간이 될 때까지 자들을 재워놓고 그 사이 실장 전문 채널이라도 시청할 요량으로 거실 
로 뒤뚱뒤뚱 걸어나온 미도리의 눈에 비친 것은 카펫 위에서 오전의 햇살을 반사하며 빛나는 
은백색의 권총이었다. 
권총. 주인님이 틀어준 닝겐용 티비 프로그램에서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다. 
손잡이 근처의 까딱까딱을 당기면 힘세고 나쁜 닝겐들이 우수수 쓰러져나가는 무서운 물건이 
었다. 
"이게 왜 여기 있는 데스..." 
미도리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은색의 흉기를 향해 다가갔다. 
손가락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돌기가 달린 뭉툭한 손을 이리저리 놀려 권총을 들어올렸 
다. 
"무거운 데스..."
꽉 채운 급수통 정도의 무게일까. 한쪽 팔로 드는 건 힘들었기에 두 팔로 끌어안는다. 
총구가 몸통을 향할 때마다 흠칫흠칫 몸을 뒤로 빼며 이리저리 돌리더니 용케 조준에 성공했 
다. 
"분명 이렇게 하는 것이었던 데스야." 
뎃수웅뎃수웅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자세를 잡아본다. 
짧은 팔다리에 퉁퉁한 몸매, 거기에 권총을 엉거주춤 끌어안은 채 자세를 취해본들 그닥 폼도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기괴해보일 뿐이었지만 미도리의 상상 속에서만큼은 자신도 티비 
에 나오던 강인한 암컷싸움닝겐(여전사)이었다. 
양손에 권총을 들고 울퉁불퉁 무섭게 생긴 수컷 닝겐을 제압하던 모습에 자신을 겹쳐보며 미 
도리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갔다. 
"그 암컷 닝겐은 결국 수컷 닝겐과 자를 만드는 일을 했던 데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총배설구가 느슨해지는 느낌이었다. 미도리의 팬티가 살짝 축축해졌다. 
"데에에... 그럼 와타시도 주인님과..." 
미도리의 볼이 절로 붉어진다. 
"마마, 뭐하는 테치?" 
"데갸악!" 
자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차녀의 목소리가 어깨 너머로 들려오자 미도리는 품에 안은 권총을 
엉겁결에 꼭 끌어안았다. 
당연한 수순으로 손 끝에 걸려있던 방아쇠가 조여졌다. 
파앙! 챙그랑! 
권총의 격발음과 창유리의 파열음은 거의 동시에 울렸다. 
"데에에에엣!" "테챠아아앗!" 
미도리와 차녀의 머리 속이 동시에 새하얘졌다. 
큰일난 데스! 유리창을 깨고 만 데스! 이를 어쩌면 좋은 데스! 미도리는 끌어안고 있던 권총을 
내던졌고 
뭔 테치! 방금 뭐가 일어난 테치! 차녀는 큰 소리에 놀란 나머지 탈분해버리고 말았다. 
"마마 방금 그건 뭐인 테치! 왜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유리창이 부서진 테치!" 
"마마도 모르는 데스우! 그보다 차녀, 왜 안 자고 나온 데스! 놀라서 쏘고 말지 않았냐는 데 
스! 이를 어쩌면 좋은 데스! 주인님께 또 이따이이따이를 당하고 마는 데샤앗!!" 
야구공만한 뇌를 풀가동시킨 결과 '차녀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면 와타시는 무사할 것인 데 
스!' 라는 지극히 실장석스러운 결론을 내린 미도리였지만 차녀는 그런 친실장의 질책은 아랑 
곳하지 않고 다른 것만을 보고 있었다. 
"차녀! 혼날 땐 마마를 똑바로 보는 데샤앗! 흠씬 두들겨 맞고 싶은 데스? 독라가 되고 싶은 
데스?"
"마마, 그건 권총 아닌 테치?" 
"뎃" 
속사포처럼 데스데스거리던 친실장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움찔한다. 
"데에... 그, 그런 데스우! 매우 위험한 물건인 데스! 그런데 차녀는 이걸 어떻게 아는 데스?" 
"와타치, 똥닝겐이 보는 티비를 같이 본 테치. 악마같은 닝겐도 이거 한방이면 죽음이었던 테 
치." 
"똥닝겐이라니 무슨 말버릇인 데샤앗! 주인님에게 그런 말 쓰면 안 되는 데스! 우리를 길러주 
시는 고마운 분인 데스!" 
"마마는 바보인테치! 매일 특식을 바치지 않는 노예는 똥닝겐으로 충분한 테치!" 
"주인님 앞에서 그런 말 하면 이따이이따이를 당하는 데스! 차녀는 깨진 유리창만으로도 얼마 
나 이따이이따이를 당할지 모르는 데스!" 
이미 미도리의 머리속에선 유리창=차녀가 깬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실장석의 근력을 고려하 
면 차녀의 전신 근육을 쥐어짜도 방아쇠를 당기는 건 무리일 터임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행 
복회로 가동의 산물이었다. 
"왜 와타치가 이따이이따이를 당하는 테치! 똥닝겐 따위 그 권총으로 해치워버리면 되는 테챠 
앗!" 
"데에엣?!" 
차녀의 충격적인 발언에 미도리의 머릿속 실타래가 복잡하게 헝클어졌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깔리고 분을 이기지 못한 차녀가 씩씩거리는 소리만 거실 바닥에 쏟아진 
다. 
'데에에... 주, 주인님을 해...치우는 데스우?' 
그렇다. 이것만 있으면. 
적록색 눈을 홀린 듯이 뜬 미도리가 바닥으로 내던졌던 권총을 향해 다시금 몸을 굽혔다. 
밀어도 때려도 꿈쩍하지 않던 저 단단한 유리창을 한번에 깨뜨려버린 이 권총만 있으면. 
이것만 있으면 데코핀도 실장채도 두렵지 않다. 
주인님을 이길 수 있다. 
아니, 똥닝겐을 해치울 수 있다. 
그 생각이 머리 속에서 번뜩인 순간, 미도리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변했다. 
"데픗, 데픗, 데프프프픗!" 
비어져나온 웃음에 입매가 느슨해지고 곧 얼굴 근육 전체가 흉하게 이지러졌다. 
"데캬캬캬캬캬캬캬캿!" 
닝겐에게 거두어져 사육실장이 되기 전 들생활을 하던 자실장 시절부터, 마마의 분대 안에서 
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올라가 실장석이라는 종의 DNA 자체에 깊게 새겨진 분 
충성이 눈을 떴다.
"테에... 마마 무서운 테츄..." 
돌변한 친실장의 모습에 차녀가 불안에 빠졌지만 미도리의 안중엔 이미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 데스! 와타시는 이제 자유인 데스!' 
죽은 친실장의 옆에서 울던 자신을 거두어 엄격히 훈육하고 지금까지 길러준 은혜. 
출산 금지라는 규칙을 깨고 충동적으로 총배설구에 꽃을 문질러 자를 임신했을 때 너그러이 
출산을 허락해준 은혜. 
매일의 끼니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특식. 자신과 자들만을 위한 별실. 외출 시에도 틀어놓는 
냉난방. 지금도 자신과 자들의 몸에 둘러져있는 핑크색 고급 사육실장옷. 
이 모든 것이 미도리의 머리 속에서 지워져갔다. 
"그런 데스. 이걸로 똥닝겐은 와타시 일가의 노예가 되는 데스." 
미도리에게 있어 이 은백색 권총은 닝겐의 머리에 들이대고 협박하면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주 
는 만능의 물건이었다. 이 역시 티비에서 본 적이 있었다. 
똥닝겐은 분명 깜짝 놀라서 탈분하고는 알아서 스테이크와 스시를 가져다 바칠 것이다. 
"역시 차녀는 와타시를 닮아 영리한 데스. 와타시의 계획을 꿰뚫어본 데스." 
미도리는 방금 전까지 보인 얼빠진 모습과 전혀 맞지 않는 말을 태연스레 늘어놓으며 자신의 
자를 상대로 한껏 허세를 부렸다.
권총을 한쪽 팔로 끌어안고는, 다른 손으로 차녀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는다. 
"테에? 그럼 마마의 특식은 와타치가 먹어도 되는 테츄?" 
영문은 잘 모르겠지만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아진 차녀가 그에 걸맞는 포상을 요구해왔다. 
"얼마든지 먹어도 되는 데스. 오늘부터는 매일매일 특식인 데스야." 
그렇게 말한 미도리는 권총을 다시 양팔로 고쳐안더니 손끝으로 슬라이드를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었다. 
그 날 저녁. 
"미도리, 다녀왔다." 
"늦은 데스." 
미도리는 평소와는 달리 어정쩡한 꼴로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어 미안미안. 일이 많아서. 대신 오늘은 오는 길에 컵케익을 좀 사왔다." 
남자는 한손에 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사육실장의 투정을 순순히 받으며 다른 한손으로 컵 
케익 봉지를 내밀었다. 
"잘 먹고 알아서 치워야 한다?"
"또, 똔닝게흔." 
달콤한 컵케익 냄새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발음이 새고 말았다. 
"응?" 
링갈 어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인지, 남자가 핸드폰을 귓가에 가까이 대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똥닝겐, 이라고 한 데스." 
"뭐?" 
툭, 하고 컵케익 봉지가 떨어졌다. 
남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미도리의 입으로부터 거의 1년 반만에 나온 단어였다. 
"두 번 말하지 않으니까 잘 듣는 데스, 똥닝겐." 
"너 지금 뭐라고..." 
남자의 말을 자르듯 미도리가 바로 옆의 신발장으로 향했다. 
신발 사이에 끼워뒀던 은백색 권총을 낑낑대며 양팔로 끌어당겨 품에 안은 뒤 자신에게 총구 
를 향하는 그 모습을 남자는 멍하니 지켜볼 따름이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는 오마에가 더 잘 알거라고 생각하는 데스."
"그런 테치! 이따이이따이한 테치!" 
뒤에서 지켜보던 세 명의 자실장들 가운데 차녀가 쪼르르 튀어나와 말을 보탰다. 
"오마에는 똥닝겐치고는 제법 말이 통한 데스. 그러니 너그러운 와타시가 목숨은 살려주는 데 
스. 와타시 일가의 집노예로 삼아주는 데스." 
"미도리..." 
남자의 눈에는 당혹감과 노여움, 그리고 슬픔이 어려있었다. 
"매일매일 특식을 바치는 데스! 그리고 밤에는 마라노예가 되어 와타시의 밤시중을 드는 데스! 
데프프픗!" 
"테에에엣! 마마는 어른인 테치! 엣찌인 테치!" 
차녀가 양손을 모으고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데프프픗, 그럼 복종의 맹세로 와타시의 총배설구에 입을 맞추는 데스. 지금 당장인 데스!" 
약간의 운치와 애액 탓에 초록색으로 물든 고간을 앞으로 내밀며 미도리가 선언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남자가 잠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잔머리 굴리지 않는 데스! 두번 말하지 않는 데샤앗!"
이윽고 남자가 후련해진 얼굴로 고개를 들더니 핸드폰의 링갈 어플을 종료시키고 주머니에 넣 
었다. 
그리고는 미도리를 향해 몸을 숙였다. 
수컷의 땀냄새가 진하게 풍겨오자 미도리의 사타구니가 다시 움찔거리며 젖은 팬티에 애액을 
더해갔다. 
"데, 데에에... 와타시가 입을 맞추라고 하긴 했지만 어지간히 밝히는 노예인 데스우... 데프-" 
뿌드득. 
남자의 손이 미도리의 앞머리를 쥐어뜯었다. 
"-프픗?" 
이마를 덮친 낯선 감각이 꽃밭에 있던 미도리의 정신을 현실로 되돌렸다. 
얼굴을 붉히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던 미도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데샤아아아아앗!!!" 
분노한 미도리가 양손으로 끌어안은 권총을 붕쯔붕쯔 휘둘렀다. 
"똥노예에에!! 이게 뭐하는 짓인 데샤아아앗!!"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뒷머리마저 뜯어버린다.
"데갸아아아아악!!! 와타시의 세레브한 머리카락이이잇!! 죽이는!! 죽여버리는 데샤아아앗!!!" 
파앙! 파앙! 파앙! 
실장석의 근력과 신경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연사속도로 쏟아낸 총알은 빗나가는 일 없이 전탄 
남자의 몸에 명중했다. 
하지만 남자는 눈썹 한번 까딱하지 않고 핑크색 두건과 실장복, Midori라고 쓰인 노란 명찰을 
갈기갈기 찢어나갔다. 
"데에에엑?!! 왜 쓰러지지 않는 데스우!! 왜 이따이이따이하지 않는 데스우!!" 
공포와 분노에 찬 미도리의 눈에서 적록색 눈물이 줄줄 흘렀다. 
채 30초도 안 걸려 미도리를 깔끔하게 독라로 만든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데... 데에에..." 
"테챠아앗! 테챠아앗!" 
미도리는 방금 전까지 위세좋던 모습은 간데 없이 멍청하게 데에에 거리고 있었고 차녀는 이 
미 탈분하여 뒹굴며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아, 맞다." 
남자가 다시 상반신을 굽혔다. 
그리고는 자신이 지난밤 수리하다가 깜빡 잊고 거실에 놓아두었던 가스충전식 BB탄 권총을 
미도리의 품에서 빼앗았다. 
"데, 데샤아앗!! 당장 돌려주는 데샤아앗!! 그건 와타시의 보물인 데샤앗! 도둑!! 도둑인 데샤 
앗!! 강도인 데샤아앗!! 신고하는 데샤아아앗!!" 
정신을 차리고 달려드는 미도리의 배에 아직 구두를 벗지 않은 남자의 발차기가 꽂혔다. 
"데뷋!" 
미도리는 기묘한 소리와 함께 현관에서 거실까지 초록색 운치 자국을 끌며 굴러갔다. 
소파에 부딪혀 정지하더니 입에서는 노란 위액과 함께 반쯤 소화된 실장푸드를, 총배설구에서 
는 초록색 운치를 토해낸다. 
남자는 줄곧 무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더니 구두도 벗지 않고 거실로 걸어들어갔다. 
뚜벅. 뚜벅. 뚜벅("치벳!"). 뚜벅. 뚜벅. 
거실 바닥을 타고 전해져 고막을 울리는 발소리에 처음 훈육을 받을 때의, 아니 그 이상의 공 
포가 미도리를 엄습했다. 
"데... 데이..." 
분대가 뒤꼬이는 고통과 적록색 눈물로 일그러져 핑핑 도는 시야 속에서 남자의 무표정은 지 
금까지 보아왔던 어떤 화난 표정보다도 무서웠다. 
미도리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한쪽 손을 얼굴에 갖다대고는, 
"데... 뎃수웅~♡"
본능적으로 아양을 떨어버리고 말았다. 
남자는 변함없는 무표정으로 그 꼴을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걷어차일 때 입은 대미지를 회복하지 못한 미도리는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을 수밖에 없 
었다. 
덜컹덜컹, 하고 서랍을 여닫는 소리. 
부스럭부스럭, 하고 무언가를 찾는 소리. 
쿵, 하고 무거운 것이 바닥을 치는 소리. 
위이이잉- 하고 드릴의 상태를 점검해보는 소리. 
카가가각- 하고 무언가 썰려나가는 소리. 
실장석의 상상력만으로도 남자가 대충 뭘 준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그런 소리들이 잔혹한 
사형 선고가 되어 미도리의 귀로 쏟아졌다. 
잠시 후, 남자가 방에서 나왔다. 
말끔한 양복과 구두를 후줄근한 훈육용 차림으로 갈아입은 채였고 한손에는 주황색 공구 상자 
를 들고 있었다. 
"데에에엣!!"
양손을 모아서 싹싹 비는 흉내를 하는 미도리의 목덜미를 남자가 거친 손으로 움켜쥐었다. 
독라가 되어 공중에서 사지를 버둥거리며 가랑이 사이에서 녹색 운치를 뚝뚝 흘리는 마마의 
모습을 장녀와 삼녀가 테에에엥 테에에엥 울며 따라간다. 
하지만 미도리의 눈길과 말은 자신의 뒤를 울면서 따라오는 자실장들이 아닌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 
"주인님데스! 자들이 우는 데스! 달래주시는 데스! 와타시를 내려주시는 데스!" 
죽음의 공포 앞에선 자신의 배로 낳아 기른 자들마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한 재료에 지나지 않 
았다. 
그런 미도리를 무시한 채 남자가 향한 곳, 그리고 그 뒤를 졸졸 따라온 자실장들이 도착한 곳 
은 욕실 앞이었다. 
욕실. 
피가 흐르고 살점이 떨어져 나와도 금방 흘려보낼 수 있는 곳.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독라의 입에서 다시금 사죄의 말이 터져나왔다. 
"주인님 데스!! 와타시가 잘못한 데스!! 다시는 그러지 않겠는 데스!!" 
"테에에엥~ 마마를 괴롭히지 마는 테치! 놓는 테치!" 
"에잇 테치! 이얍 테치! 이거나 먹어라 테치!" 
작은 손으로 남자의 바짓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는 장녀와 남자의 발목을 투닥거리던 삼녀의 위
로 남자의 맨발이 떨어져내렸다. 
"테벳" "지잇" 
두 마리는 순식간에 으깨져 바닥의 얼룩이 되었다. 
끼이익- 
욕실문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미도리의 사죄와 변명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와타시는 좋은 사육실장인 데스!! 절대 그럴 마음이 없었는 데스!! 그런 데스! 차녀!! 차녀인 
데스!! 차녀가 부추긴 데샤!! 차녀에게 협박당한 데샤앗!! 데, 데겍, 데갸아아아아악!!!" 
하지만 이미 핸드폰의 링갈을 꺼버린 남자의 귀에는 의미없는 울부짖음에 지나지 않았다. 






주인님 가게



목을 파고드는 찬바람에 절로 두건을 고쳐매게 되는 어느 늦가을. 
후타바 공원 근처에 작은 가게가 생겼다. 
가게라고는 하지만 간판 같은 건 없다. 
다만 건물 벽면 위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낮시간마다 
<사육실장이 될 수 있는 가게입니다~ 누구나 환영합니다~ 콘페이토~ 스시~ 스테이크~ 푸드~ 
세레브~ 아와아와~> 
라는 전자합성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학대파들이 휩쓸고 간지 얼마 지나지 않은 탓에 어느 하나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지만, 며칠 
씩 계속해서 들려오는 달콤한 말에 굴복한 건지 한 마리의 친실장이 자들을 데리고 조심스럽 
게 문 앞으로 향했다. 
친실장이 뭉뚝한 손을 문 앞으로 가져다대자 미처 노크를 하기도 전에 문이 스르륵 옆으로 미 
끄러져 열린다. 
"데스우?" 
의아해하며 발을 내딛는 친실장을 따라 자실장들도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은 바람만 
없을 뿐 온도 자체는 바깥과 다를 것 없이 제법 싸늘했다. 
마지막 한 마리가 문을 통과하자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마마, 와타치타치 이제부터 사육실장인 테치?" 
"그, 그런 것 같은 데스." 
"근데 왜 주인님이 안 보이는 테치?" 
"마마도 모르는 데스..." 
가게 안은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공간이었다. 천장에는 형광등과 스피커만이 덩그러니 붙어있 
고 방금 전 들어온 자동문과 마주보는 벽에 다른 문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주인님 가게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부디 여기서 사육실장의 꿈을 이루고 나가시길 바 
랍니다.> 
"테챠아앗!"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예고없이 전자합성음이 흘러나오자 겁많은 6녀가 빵콘하고 말았다. 
무미건조한 음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설정된 문장을 읊어나갔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원하는 주인님을 고를 수 있습니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 좋은 주인님 
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둘 이상의 실장석이 같은 주인님을 고르는 건 가능하지만 한 실장석이 
두 명 이상의 주인님을 한 번에 고를 수는 없습니다. 또한, 한번 앞으로 가면 다시 뒤로 돌아 
올 수 없습니다.> 
실장석을 배려한 건지 느릿느릿한 말투로 설명이 이어졌다. 
<그럼, 즐거운 쇼핑 되십시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스피커 특유의 지직거리는 대기음이 끊기고 안쪽 벽에 달려있던 문이 스 
르륵 옆으로 열렸다.
"데에..." 
조심조심 문가로 향한 실장석 일가의 눈에 방 하나가 보였다. 구조는 지금의 방과 별 다를 바 
없었지만 한쪽 벽에는 불꺼진 액정화면이 붙어있고 그 옆에 모서리가 둥근 상자 비슷한 것이 
놓여있었다. 건너편 벽에는 또다른 문이 있었다. 
"여기서 주인님을 만나는 데스우?" 
스피커를 향해 묻지만 대답은 없었다. 
"데이..." 
친실장이 자실장들과 같이 아장아장 문턱을 넘자 다시 문이 닫히고 이번엔 벽에 붙은 스피커 
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첫번째 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데스우?" 
<여기서는 우마우마한 밥을 주고 아와아와한 목욕을 시켜주는 주인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스피커가 말을 멈추고 벽에 붙어있던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화면에서는 사육실장이 녹색 실장푸드를 볼이 미어져라 먹고 있는 모습과 세면대에서 몸을 씻 
는 모습이 흘러갔다. 주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화면 한구석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 
고 있었다. 
"테에에! 와타치도 우마우마 원하는 테치! 아와아와 해주는 테치!"
한 자실장이 화면을 향해 달려들었다가 강화유리에 부딪혀 바닥을 뒹굴었다. 
"테챠아앗! 누구인 테치! 왜 막는 테치!" 
"삼녀, 이건 티비라고 하는 물건인 데스. 저 너머로는 닝겐상이라도 해도 갈 수 없다고 들은 
데스." 
분에 차서 울부짖는 자실장을 친실장이 조곤조곤 달랬다. 
<이 주인님에게 길러지시겠습니까?> 
모서리가 둥근 상자에 붙어있던 격자형 뚜껑이 덜컹 열렸다. 상자의 정체는 실장석 운반용 케 
이지였다. 
"테에에! 들어가는 테치! 길러줘도 좋은 테치!" 
"와타치가 먼저인 테치!" 
"잡아당기지 마는 테치!" 
<아니면 앞으로 가시겠습니까?> 
그 말과 함께 벽에 붙어있는 다른쪽 문이 열렸다. 
"오마에타치, 잘 생각하는 데스. 이 앞으로 가면 더 좋은 주인님이 있는 데스." 
"테치이?" 
"다른 주인님은 분명 방금 전보다 더 우마우마한 걸 주고 더 아와아와 해주는 데스." 
케이지 입구 앞에서 아웅다웅대던 자실장들이 급선회하더니 이번엔 문을 향해 달렸다. 친실장 
도 종종걸음으로 뒤를 따라갔다.
친실장이 마지막으로 들어서자 두번째 방의 문이 닫혔다. 이번에도 벽의 스피커에서 음성이 
나왔다. 
<두번째 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기에서는 좀 더 우마우마한 밥을 주고 아와아와한 목욕을 시켜주며 핑크색 실장옷을 사주 
는 주인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벽에 붙은 화면에서 핑크색 옷을 입은 사육실장이 알록달록한 푸드를 먹는 모습, 욕조 안에 
얕게 채워진 물에서 거품목욕을 하는 모습이 지나갔다. 
"테에엣!" 
<이 주인님에게 길러지시겠습니까?> 
케이지 문이 열렸지만 이번엔 아무도 앞으로 향하지 않는다. 
<아니면 앞으로 가시겠습니까?> 
덜컹, 하고 문이 열렸다. 
"데스!" 
"테치!" 
실장석들이 문을 향해 뛰어갔다. 세번째 방에 들어선 일가의 뒤에서 자동문이 닫혔다. 
<세번째 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기에서는 매우 우마우마한 밥을 주고 아와아와한 목욕을 시켜주며 더욱 아름다운 핑크색 
실장옷을 사주는데다 매일 놀아주는 주인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영상은 아까보다 조금 길었다. 프릴이 달린 핑크색 옷을 입은 사육실장이 콘페이토가 섞 
인 푸드를 집어먹는 모습, 주인과 같은 욕조에서 거품 목욕을 하는 모습, 방에서 주인과 공을 
주고받으며 놀고 있는 모습이 지나갔다. 
<이 주인님에게 길러지시겠습니까?> 
화면이 꺼지고 케이지 뚜껑이 열렸지만 들실장 일가는 다음 문장이 흘러나오기도 전에 네번째 
방의 문을 향해 달렸다. 
문이 닫히고 다시 전자음이 흘러나왔다. 
<네번째 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기에서는 가장 우마우마한 밥을 주고 아와아와한 목욕을 시켜주며 화려한 실장옷을 사주는 
데다 매일 놀아주는 건 물론, 밤에는 듬뿍 사랑해주는 주인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실장드레스를 갖춰입은 실장석이 전용 탁자 위에 놓인 스테이크를 집어먹는 모습, 실장석 사 
이즈의 도자기 욕조에서 몸을 씻는 모습, 짓소카를 타고 넓은 방 안을 빙글빙글 도는 모습, 
불꺼진 침대 위에서 주인과 입을 맞추는 실루엣, 검은 머리카락의 자실장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는 모습이 지나갔다. 
"데에에에엣!" 
잔뜩 흥분한 친실장이 콧김을 뿜으며 케이지를 지나쳐 다음번 문을 향해 뛰어갔다. 
"마마 치사한 테치!"
"같이 가는 테치!" 
"마마가 발정난 테챠앗!" 
마지막 자까지 헐레벌떡 따라들어오자 문이 저절로 닫혔다. 전력질주한 탓에 모두들 헐떡이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실장석들이 화면 앞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하지만 영상도 음성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왜 티비가 안 나오는 데스우?" 
"여긴 어떤 주인님이 있는 테치?" 
"다른 문이 없는 테츄우..." 
벽에 붙은 스피커를 향해 말을 걸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무룩해진채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깜빡거리더니 이내 불이 들어왔다. 
"테에! 나오는 테치!" 
흥분한 실장석들이 화면에 가까이 달라붙었다. 어떤 굉장한 우마우마와 아와아와가 있을지 눈 
을 빛내면서. 
하지만 적록색 눈에 비친 건 기대와는 다른 광경이었다. 
화면 안에서 들실장으로 추정되는 지저분한 실장석 일가가 작은 방 안을 어지러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홉 마리 모두 부풀어오른 초록색 팬티를 질질 끌고 있었다. 
잠시 후 방의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려던 자실장을 
짓밟은 것을 시작으로 방 안의 실장석들을 한 마리씩 잡아죽이기 시작했다.
화면 앞의 실장석 일가는 넋이 나간 모습으로 학살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화면 곳곳에서 실장석들이 빠루와 토치에 파괴당하고 죽어갔다. 무음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화 
면 너머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실장의 머리가 터져나가 
는 것과 동시에 영상이 일시정지됐다. 
그제서야 일가 전원이 빵콘했다. 
"테챠아아아앗!!" 
"왜 이런 걸 보여주는 테챠아앗!" 
"주인님은 어디인 테치! 푸드! 스테이크! 스시! 내놓는 테챠아아앗!" 
방금 지나간 학살 영상에 실장석들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모두들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영리한 장녀가 친실장의 옷깃을 꾹꾹 잡아당기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마... 티비에 나온 여기... 지금 와타치타치가 있는 방... 아닌 테치...?" 
"뎃" 
한순간, 일가 전원이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데에에에에?!!" 
"테에에에에?!!" 
부륏부뤼륏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의 팬티가 한층 더 부풀어올랐다. 
"나가는 테치! 도망가야 하는 테치!"
"문이 열리지 않는 테치! 어쩌면 좋은 테치!" 
"테츄웅~ 어서 열리는 테츄웅~ 와타치를 내보내는 테츄웅~" 
"뎃! 오마에타치도 어서 애교하는 데스! 뎃스웅! 뎃스웅! 뎃스으우우우우우우우웅!!!" 
"테츙!테츙!테츙!테츙!" 
실장석들이 미친듯이 손을 턱에 붙였다 떼며 머리를 까딱이지만 몇십번, 몇백번을 반복해도 
문은 꿈쩍하지 않는다. 
<치지지지- 끼이이이잉-> 
줄곧 침묵하던 스피커에서 갑자기 전자음이 울렸다. 
"테챠아아앗!" 
"데샤아아악!" 
아첨에 여념이 없던 일가 전원이 날카로운 소음에 귀를 붙잡으며 빵콘했다. 
<마지막 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전자음은 여전히 차분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이 방은 실장석의 욕심엔 끝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여기까지 온 분 
충들은 모두 지옥으로 가시길.> 
그 말을 끝으로 닫혀 있던 자동문이 열리고 손에 빠루를 든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End- 

--- 
<남편을 파는 가게>라는 유머 패러디인 데스... 






사육실장 콘테스트



한 남자가 실장석을 데리고 사육실장 콘테스트 예비 심사실로 들어섰다. 실장석은 남자의 바 
짓자락을 붙잡은 채 방 안을 산만하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입을 헤 벌리고 콧물을 훌쩍이는 
그 얼굴에서는 한 조각의 지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긴 책상 뒤에 나란히 앉은 세 명의 심사위 
원이 시선을 교환하며 쓰게 웃었다. 
짧은 침묵을 깨고, 심사위원 한 명이 서류를 흘낏 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참가번호 44번 도시악 씨... 혈통서가 없네요?" 
"네. 지인한테 분양받았습니다. 이름은 초록이라고 해요." 
"아, 네...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요새 실장석들은 뜨개질에 그림 그리기에 요리, 곡예까지 
하는 녀석들이 수두룩해서요. 어지간한 재주로는 힘드실 겁니다." 
"아, 걱정마세요.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학대는 안 됩니다. 방송에 못 내보내요." 
"에이, 그런 거 안 해요, 안 해." 
남자가 웃으며 실장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 이 녀석, 사람 말을 할 줄 알아요." 
"예?" 
뒤로 삐딱하게 젖혀져있던 심사위원들의 상체가 일제히 앞으로 기울었다. 
"지금 그 실장석이 음성 조합 링갈 없이 자체적으로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겁니까?" 
"네, 링갈 없이요. 한국말뿐 아니라 영어도 조금 할 줄 압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남자가 씩 웃고는 자신의 실장석을 향해 물었다. 
"자, 초록아. 개개의 숫자 대신에 숫자를 대표하는 일반적인 문자를 사용하여 수의 관계, 성 
질, 계산 법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을 뭐라고 하지?" 
"대수!" 
세 심사위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저기요, 44번..." 
끼어드는 심사위원을 무시하고 남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잘했어! 그럼 영어를 해보자. 영어로 '낮'이 뭐지?" 
"데이(Day)!" 
"그럼 영어로 '저것'은 뭐라고 하지?" 
"댓(That)!" 
"잠시만요, 도시악 씨." 
심사위원이 재차 끼어들었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맞았어, 초록아! 자, 그럼 마지막으로, 한국어 사투리 하나만 해볼까? '아니오, 괜찮습니다.' 
를 충청도 사투리로 하면?" 
"됐수!" 
"그렇지!" 
그 문답을 끝으로 남자가 다시 심사위원석을 바라봤다.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보셨죠? 우리 초록이가 이렇게 대단하다니까요?" 
심사위원들은 헛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네... 참가번호 44번..." 
심사위원 한 명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탈락입니다." 
"예? 그게 무슨..." 
"나가시는 문은 오른쪽입니다. 45번! 들어오세요!" 
심사위원이 남자의 말을 자르고 서류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 단호한 태도에 남자는 말을 꺼 
내려다 말고 출구로 향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남자의 뒤를 아장아장 따라가던 실장석이 남자의 바짓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러게 사투리는 빼자고 하지 않았냐는 데스우..." 
그 입에서 흘러나온 건 틀림없는 한국어였다.







노래 대결

 

[뎃데로게~ 뎃데로게~ 뎃뎃뎃 뎃데로게~♪]

오늘도 공원에선 실장석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행복한 내일을, 스테이크와 스시와 콘페이토로 가득한 미래를 꿈꾸는 노래. 인간의 귀엔 그저 멱따는 소리를 좀 더 규칙적으로 질러대는 것뿐이지만, 실장석에겐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지금도 한 마리의 실장석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보통 노래를 부르는 건 자실장 정도로, 성체로 자라면 임신 중 태교할 때를 제외하곤 별로 부르진 않지만, 어째선지 이 실장석은 다 자란 상태에서도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실장석 주제에 삶이 즐거운 걸까, 아니면 자신의 노래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진 걸까.


“오호, 노래를 부르는구나?”

[뎃?]

한 남자가 노래실장에게 다가간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지만 눈엔 살기가 그득하다.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굳이 다가가고 싶지 않은 인상이지만 실장석이 인간의 표정과 속내를 구분할 리 만무하다. 동족의 피가 묻은 빠루를 들고 있어도 길러준다고만 하면 눈이 뒤집히는 놈들 아닌가.

이놈도 마찬가지다. 잠시 경계심을 갖지만, 곧장 이어지는 ‘올리기’에 곧 풀어지고 만다.


“정말이지 기막힌 노래인데? 너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녀석은 처음 봤는걸.”

[데프프프, 똥닝겐이 와타시의 진가를 알아본 데스. 그런 데스우, 와타시만큼 노래를 잘 부르는 놈은 이 공원엔 없는 데스. 이런 특별한 와타시를 데려가 키우는 건 어떤 데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닝겐은 정말 큰 실수를 하는 것인 뎃샤아아아!]

“하하, 자신감 넘치는걸. 마음에 들었어."


남자의 눈동자가 번뜩인다. 분충의 머리를 내려쳐 터뜨릴 셈인가?

아니다. 아직 아니다. 뭔가를 숨기고 있다. 노래실장을 내려다보던 그는 곧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이죽거린다. 모르긴 몰라도 실장석에겐 안 좋은 일이다. 애초에 사람과 마주한 실장석에게 좋은 일이란 좀체 없는 법이지만.


“그렇다면 노래로 대결을 해보자고. 네 노래에 감명 받게 된다면 난 네가 말하는 대로 집에 데려가 사육실장으로 키워주마.”

[정말인 데스우? 데프프프, 나중에 가서 후회하지 마는 데스. 똥닝겐은 분명 와타시를 데려가 키우게 해달라고 사정하게 되는 데스.]

“대신, 조건이 있단다.”

[데에?]

“내 노래를 듣고 한 번이라도 빵콘을 하지 말 것. 하면 그 즉시 넌 죽든 살든 내 맘대로 만들 테니까.”

[데프프프, 쉬운 일인 데스. 똥닝겐의 노래로는 운치는커녕 눈물도 흘리지 않는 데스.]

“그래? 그럼 약속한 거다?”

남자의 확언에 실장석은 이미 승리하기라도 한 듯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멋진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인간의 모습이, 그 뒤로 이어지는 스테이크와 스시로 둘러싸인 나날이 재생된다. 산더미처럼 쌓인 콘페이토를 씹으며 숨쉬듯 자를 낳는다. 하나 같이 예쁜 흑발실장들. 마마를 닮아 노래도 기가 막히게 부른다. 아름다운 합창이 노예인간을 거느린 집안에 드높이 울려 퍼진다.

그것은 뇌내에서 분출된 화학물질이 불러일으킨 망상. 망상은 행복감을 고양시키고, 불행한 실장석의 삶으로 피폐해진 정신을 안정시키는 한편 온몸의 생명력을 강화시킨다. 일종의 체내마약이라 할 수 있다. 온갖 험악한 환경에서도 실장석들이 끈덕지게 살아가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행복회로가 만능은 아니다. 때때로는 가장 피해야 할 순간에 발동되어 주인을 위기로 몰아세우는 것도 바로 이 행복회로인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같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실장석은 노래를 부른다. 목청이 찢어지도록.


[뎃데로게~ 뎃데로게~ 뎃뎃뎃 뎃데로게~ 뎃데로게 젯데로게 젯젯젯 젯데로게~♪]


지나가는 학대파가 없다는 게 놈에겐 행운이다. 듣는 순간 바로 허리가 분질러지도록 발차기를 날렸을 테니까. 남자도 들어주기 힘든지 얼굴을 조금 일그러뜨린 그 노래는 실장석들이라면 누구나 부르는 행복의 노래였다.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하여 태어나면 부족할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인간은 누구나 노예이며 잡아다가 세레브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기만의 노래. 콘페이토와 스시와 스테이크처럼 어째서 놈들이 태어날 때부터 아는지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 중 하나였다. 좀 더 생존에 유리한, 그러니까 인간과는 관계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대신 전수할 순 없는 걸까.

노래는 계속 이어졌지만 남자의 표정은 조금 일그러진 채 그대로였다. 물론 더 부드러워지지도 않았다. 한참을 부르고서 남자의 반응을 살핀 노래실장은 조금 골이 난 듯 했다.


[데뎃! 똥닝겐! 와타시가 고귀한 노래를 열심히 불렀는데도 박수 하나 안 치다니 졸렬한 데스! 아니면 와타시의 노래가 너무 감격스러워 굳어버린 데스? 뭔가 반응을 보이란 뎃샤아아아아!]

“아, 끝났니? 그럼 이제 내가 불러도 될까?”

[부르든지 말든지 마음껏 하란 뎃샤! 어차피 똥닝겐의 노래는 와타시에겐 아무런 감흥도 없을 것인 데스! 그러니 얌전히 와타시를 모실 준비나 하란 데스!]

“뭐, 졸렬하지도 감격스럽지도 않지만 말이지. 그럼 부른다.”


이번엔 남자가 노래를 불렀다. 그건 희곡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번쯤 들어봄직한 노래였다. 가사가 조금 다르긴 했지만.


「옛날에 임금님이 있었는데
실장석을 기르고 있었네
자기가 낳은 자식처럼
굉장히 사랑했지

어느 날 재단사를 부르니
재단사는 금방 대령했네
자, 실장석의 윗도리와
바지의 치수를 재라!

벨벳에다 비단 안감을 댄 옷을
실장석은 입었다네
저고리엔 리본에다
십자가도 달려 있고

금방 재상이 되어
커다란 훈장도 달았지
거기에다 자들도 궁중으로 들어가
벼락감투를 하나씩 썼다네

고관대작과 귀부인들은
그 바람에 두통거리,
왕비와 시녀들도
투분한 운치투성이

열 받아도 으깨서는 안 되고
내쫓아서도 안 되었다네」


[데프프프, 당연한 데스. 와타시는 응당 그런 세레브한 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는 데스. 똥닝겐이 생각보다 아첨을 잘하는 데스? 설마 노래로 와타시의 미래를 설명해줄 준 몰랐던 데스. 패배를 처음부터 인정한 데스? 좋은 자세인 데스. 그럼 이제 와타시를 데려가서 일단은 아와아와한 목욕을……]

“아직 후렴 안 끝났어.”

[데뎃?]


그리고 이어지는 후렴.


「우리들이야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바로 으깨서 죽여 버린다!」


으직-


[데뵤오오오오오오오오옥?!]


후렴과 함께 남자는 발을 들었다가 힘껏 짓밟았다. 짓밟힌 건 노래실장의 발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발등 전체가 짓이겨진 상황. 뒤로 발라당 넘어진 노래실장은 사지를 버둥거리며 빵콘을 했다. 눈물을 흘리며 고통에 울부짖는 그 모습을 보며 남자는 이제야 마음이 후련하다는 듯 쾌활히 웃었다.


“이런, 빵콘해버렸네. 그럼 얘기는 끝났지.”

[웃기지 마는 데스 똥닝겐! 오마에가 와타시의 다리를 아야아야해서 그런 데스! 반칙인 데스! 치사한 데스!]

“난 빵콘을 안 하면 된다고 했지 손을 안 댄다고 한 적은 없는 거 같은데. 뭐, 키워줄 생각도 없었지만.”

[데갸아아아아악! 이 똥닝겐이 와타시를 속인 데스! 당장 운치를 처발라서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뎃샤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러니까 똥벌레 멱따는 소리로 산책하는 사람 심기를 건드리면 못 쓰지… 멍청한 분충은 용서하지 않아요!”


남자의 노래가 이어졌다. 뒷일을 직감한 노래실장이 비명을 지르며 그만두라고 했지만… 사람도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낱 실장석 따위가 말로 사람을 막을 순 없는 노릇인 것이다. 후렴구가 반복되고, 남자의 발길질도 계속되었다.


「우리들이야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바로 으깨서 죽여 버린다!

우리들이야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바로 으깨서 죽여 버린다!

우리들이야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바로 으깨서 죽여 버린다!

우리들이야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바로 으깨서 죽여 버린다!」


네 개의 적록색 얼룩과 함께 달마가 된 노래실장은 데히, 데히 거리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 옷을 뜯어다 신발에 묻은 피와 체액을 대충 닦아낸 남자는 근처에서 기웃거리는 실장석들을 보며 말했다.


“이거 먹어도 된단다.”

[데갸아아아악! 그만두는 데스! 와타시는 먹는 게 아닌 뎃샤아아아아아악!]


남자가 등을 돌리자마자 달려드는 동족들을 보며 노래실장은 괴성을 질러댔지만, 말했잖은가, 사람도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실장석도 실장석의 말을 듣지 않는다. 도덕이라는 브레이크도 없는 판에 불구가 된 동족은 그저 맛 좋은 먹이일 뿐. 그렇게 노래실장은 한순간에 고깃덩이가 되어 동족들의 식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신이 이 공원에서 가장 고귀하다고 믿고 있던 놈의 입장에선 처참한 최후겠지만, 애초에 놈은 고귀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만과 무지로 명을 재촉한 평범한 들실장일 뿐이다.

동족의 혈육을 씹고 뜯는 실장석들은 좀처럼 맛볼 수 없는 고기의 맛에 흠뻑 취한다.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아지자 너나 할 것 없이 노래가 나온다. 마마의 마마, 또 그 마마의 마마로부터 위석을 통해 전해 내려온 행복의 노래.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한 데스~ 따뜻한 햇님이 있고 먹을 건 풍족한 데스~


[뎃데로게~ 뎃데로게~ 뎃뎃뎃 뎃데로게~ 뎃데로게 젯데로게 젯젯젯 젯데로게~♪]

“햣-하!”


몰려든 실장석들을 보고 난입한 학대파의 빠루가 머리 위로 내려쳐질 때까지, 노래는 이어졌다.


-끝-

***

여담으로 남자가 부른 건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노래인 레후
물론 원본은 실장석이 아니라 벼룩인 레후








실장향

 

실장향이란 물건이 있다. 스프레이처럼 생긴 게 실장석에게 뿌리면 근처에 있는 다른 실장석들이 몰려와서 잡아먹는다는 희한한 물건이다,

원래 일반 샵에선 무슨무슨 법 때문에 판매가 제한되어 있지만, 지인을 통해 운 좋게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그냥 꺼라위키식 카더라처럼 과장된 소문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공짜로 얻은 거니까 실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데스웅~?”

“테츄웅~?”

“레츄웅~?”

“레후~”

마음먹기가 무섭게 웬 실장 일가가 내 앞에서 아첨을 떤다. 성체 하나, 자실장 하나, 엄지 하나, 구더기 하나. 뭔가 딱 본보기 같은 구성이다. 사람 앞에서 함부로 나대지 말란 거 못 들었는지, 그러고도 지금까지 어찌어찌 새끼 까고 살아남았다는 생각 같은 건 집어치우고, 일단 실험 개시다.

푸쉭-

“데뎃?”

“텟!”

“레칫!”

“레히!”

뭔가 반응도 하나같이 판에 박은 게 마치 꺼내놓은 마트료시카 인형 같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데에…”

“테에?”

“레치…”

“레후?”

아, 저 새끼들 눈 돌아갔어.

잘 보니 서로서로 보는 눈빛이 제 피붙이 보는 게 아니라 맛 좋은 고기 보는 눈빛이다. 친실장은 벌써 입에서 군침 흘리고 있고, 먹이사슬 최하위인 구더기만 아무것도 모른 채 레후거리며 프니프니 해달라고 배를 뒤집고 있다. 엄지가 그걸 집어 든다. 혹시… “레뺫!” 거 시발 말하자마자 이 꼴이냐.

“레츙~”

행복한 얼굴로 구더기의 배를 베어 무는 엄지. 입에 적록색 피를 묻히며 열심히도 파먹는다. 구더기는 더 견디지 못하고 파킨해버렸고, 그게 무슨 출발신호라도 되는지 놈들은 실장 마트료시카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구더기를 먹은 엄지를 자실장이 들어다 머리를 물어뜯는다. 뇌가 으스러져 빵콘을 하고 팔다리를 파닥대는 와중에도 입에서 구더기를 놓지 않는다. 한편 자실장은 그대로 친실장에게 들어 올려져 하반신부터 먹힌다. 한 입에 허리 아래가 사라진 놈을 친실장은 탈탈 털어 분대와 내장의 남은 부분까지 입에 넣는다. 그러고는 남은 자식들의 잔해를 마치 보쌈 먹듯 한 입에 집어삼킨다. 워우.

그렇게 흐뭇한 얼굴로 제 자식들을 와구와구 씹는 놈을 놔두고 나는 공원을 나왔다. 놈 등 뒤로 열댓 마리는 되는 놈들이 비슷한 얼굴로 기다리는 걸 봤으니.

일단 효과가 탁월한 건 직접 봤고, 대체 뭔 성분이기에 이런 효과를 내는 걸까. 화학 성분 같은 거면 인체에 유해할 테니 경고문이라도 붙어 있겠지만 그런 것도 없고.

그래서 지인-같은 학과의 선배다. 소문난 학대파라나-에게 물어보니 뜻밖의 답변이 날아들었다.

“아, 실장향? 그거 순 사카린 덩어리야 덩어리.”

사카린?

“응. 실장석들 단 거에 좋아 죽잖아. 일단 입에 넣으면 못 멈추게 아예 존나 단 걸로 채워놓은 거야. 그 식용 스프레이하고 비슷한 거지.”

근데 그거 가지고 애들이 옵니까?

“반은 사카린이고 반은 실장석에게서 추출한 페로몬이지. 너 그거 알지? 실장석들은 개체마다 특유의 냄새가 있어서 그거 가지고 지 새끼들 구분하고 탁아한 것도 찾아낸다고.”

그렇죠.

“그런데 이게 연구해보니까 날 때부터 구더기거나 가을 때 태어난 놈들은 냄새 성분이 약간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뭐라더라, 그런 냄새를 가진 놈은 친실장도 지 자식이라기 보단 먹을 걸로 보게끔 된다던데. 그래서 여간 애정 깊은 놈이 아니면 비상식으로 쓰는 거래.”

그건 처음 들었네요. 그럼 그 성분이란 게?

“응, 그 냄새 성분을 압축해서 사카린 분말이랑 섞은 거지. 그래서 냄새에 이끌려 와서 한 입 먹어 보니 존나 맛있다, 이런 구조란 거지.”

고작 그런 걸로 효과가 나다니 뭔가 웃기네요.

“실장석이야 다 그러니까 뭐.”

그렇게 새로운 지식을 하나 얻었다. 

그 전에 내 몸에 뿌리고 공원에 나가서 반응을 보는 게 좋겠다.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해보는 게 제일이니까.








전설

 

“텟, 마마! 저기 보는 테치! 세레브한 물건이 잔뜩 쌓여 있는 테치!”

“데에…”

어느 실장 친자가 공원을 거닐다 무언가를 발견했다. 사람도 들어갈 너비의 구덩이에 온갖 실장용품이 그득하게 쌓여 있었다. 분홍빛 사육실장복이며 실장핸드백, 실장리본까지, 들에서는 가재도구를 다 내다팔아도 구하지 못할 물건들이 산더미를 이루는 걸 보고는 자실장은 눈이 돌아갔다. 그러나 친실장은 왠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분명 세상의 보물인 와타치를 위해 똥닝겐이 준비해놓은 선물 세트가 틀림없는 테츙~ 어서 가서 마마 것도 주워오는 테치!‘

“그만두는 데스 장녀.”

“테에?”

“저기는 ‘슬픈일 구덩이’인 데스. 들어가면 안 되는 데스.”

자실장은 불만과 의문이 반반 섞인 얼굴로 친실장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의 보물인 자신이 가면 안 될 이유가 뭐가 있다고? 저렇게 빛나는 보물들이 대놓고 손길을 기다리는데? 그런 자실장의 마음을 읽었는지 친실장이 구덩이 건너편을 가리켰다.

“데프픗, 버려진 주제에 얼씬대다니 분대가 부은 데스. 이 공원의 철칙을 듬뿍 맛보여주는 데스웅~”

“데갸아아아앗! 그만두는 데스! 와따시의 세레브 옷에 손댔다간 닝겐노예가 가만 안 있을 것인 데샤아아아!”

“똥닌겐이 오마에를 걷어차고 침 뱉는 것까지 다 봤는데 어디서 구라를 치는 데수? 오마에는 특별히 독라형 추가인 데스!”

“데갸아아아아아!”

거기에선 공원 동족들의 버려진 사육실장 린치가 한창이었다. 짓밟고, 후려패고, 운치를 바르고, 리본을 뜯어내고, 머리털을 뽑고, 핸드백을 빼앗고, 옷을 벗기고… 전형적인 공원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달랐다.

“오마에가 아무리 울부짖어봐야 똥닝겐은 쳐다도 안 보는 데스~ 분명 다른 분충을 데려다 흑발의 자를 만들 것인 데스웅~”

“똥닝겐은 오마에를 지켜주지 못하는 데스! 그 증거로 오마에의 물건은 모두 ‘슬픈일 구덩이 행인데스~”

“그만두는 데스! 닝겐노예가 봉헌한 와따시의 세레브 인생이…!”

공원 실장들은 사육실장에게서 압수한 물건들을 자기들이 나눠 갖는 대신 ‘슬픈일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심지어 엉덩이를 까고는 거기다 운치를 싸는 놈도 있었다. 자실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저 귀한 것들을 저렇게 다루지? 공원 실장들이 독라가 된 전 사육실장을 어디론가 끌고 갈 때까지도 자실장은 그 한 가지 의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장녀에겐 아직 이 공원의 비밀에 대해 말해준 적이 없었던 데스. 그러니 지금부터 이야기해주는 데스.”

자실장을 도운 건 친실장이었다.

친실장은 구덩이 끄트머리에 다가가서 주저앉았다. 자실장도 친실장에게 다가가 그 품속에 안겼다. 마치 자기 전 콘페이토와 스테이크에 대한 아름다운 전설을 얘기해줄 때와 마찬가지로, 친실장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오래 전 일인 데스. 마마도 마마의 마마에게서 들은 데스. 마마의 마마도 그 마마에게서 들었던 데스. 하여간 너무 오래된 일인 데스. 그래서 진짠지 가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 정도도 오래된 일인 데스.

그때도 이 구덩이는 있었다고 하는 데스. 하지만 이런 세레브한 물건 따윈 없었던 데스. 다만 공원 동족들이 분충을 던져 넣었다고 하는 데스. 그래서 언제나 울부짖는 소리만 들렸다는 데스.

그때 어느 사육실장이 이 공원에 왔다고 하는 데스. 왜 왔는진 아무도 모르는 데스. 단순히 길을 잃은 데스? 임신해서 버려진 데스? 싫증난 닌겐에게 버려진 데스? 학대파에게서 도망쳐 나온 데스? 아니면 스스로 박차고 나온 데스? 아무도 모르는 데스. 그저 왔다고만 하는 데스.“

“치프픗, 분명 못생겨서 버림받은 게 분명한 분충인 테치.”

“그럴 지도 모르는 데스. 하지만 그 자는 평범한 분충이 아니었던 데스.

그 누구보다 크고 강했던 데스. 독라노예로 삼으려 한 놈은 독라노예로 만든 데스. 자판기로 만들려 한 놈은 달마가 된 데스. 그렇게 공원 모두를 제패한 데스. 보스가 된 데스.“

“보스테치?”

“보스인 데스.

그리고 보스가 된 날, 그 사육실장은 공원의 동족들을 모두 데리고 이 구덩이로 온 데스. 그리고 그때까지 입고 있던 사육실장복을 모두 구덩이에 내던진 데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는 데스.

‘푸드도 콘페이토도 필요 없는 데스. 사육도 세레브도 필요 없는 데스. 아양 떠는 분충의 물건은 모두 벗어던지는 데스.’

보스는 그렇게 말한 데스. 닝겐의 쓰레기로 연명할지언정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이 더 낫다고 했던 데스. 자기가 버림받아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차라리 들실장으로 사는 게 더 나은 처지여서 그랬던지는 알 수 없는 데스.

신기하게도 보스의 말은 잘 지켜진 데스. 아마도 공원을 잘 이끌어서 그랬던 것 같은 데스. 버려진 사육분충들도 옷과 물건을 구덩이에 던지고는 공원의 일원이 된 데스. 그렇게 한동안 공원은 평온해졌던 데스.“

“테에에…”

“하지만 보스가 죽고 나서부터는 어딘가 달라진 데스. 아양 떠는 분충도 다시 생겨나고 자를 들이밀다 일가실각하는 분충도 다시 생긴 데스. 하지만 구덩이는 그대로 있는 데스. 달라진 건 구덩이로 오는 놈들인 데스.

더 이상 스스로 옷을 벗어 던지는 분충은 없는 데스. 이제 동족들은 장녀가 본 것처럼 사육분충이 보이는 대로 이 곳으로 붙잡아 오는 데스. 옷을 벗기고는 조롱하는 데스. ‘똥닝겐에게 빌어보는 데스웅~ 오마에를 구해줄 노예는 어디에도 없는 데스웅~’ 대부분 버려진 분충들이라 독라노예로 끝장나는 데스.

그래서 여기가 ‘슬픈일 구덩이’인 데스. 처음엔 ‘닝겐 따윈 필요 없는 데샤악!’하고, 지금은 ’똥닝겐은 와따시를 구하지 않고 무엇하는 데샤악!‘하는 소리가 가득해서 그런 데스. 여기 물건들엔 그 분충들의 독기가 그대로 서린 데스. 그래서 아무도 손대지 않는 데스. 오마에도 손대면 안 되는 데스.“

“너무 어려운 테치. 와타치 잘 모르는 테치.”

“손대지 말라는 것만 알아들으면 되는 데스.”

친실장은 그렇게 끝맺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너무 흘렀고, 해는 어느새 중천에 가 닿았다. 굳이 땀을 빼고 싶지 않았기에 친실장은 집으로 향했고 자실장은 그런 친실장을 달음박질로 쫓았다. 친자의 등 뒤로 독라노예가 된 사육실장의 구슬픈 비명만이 은은히 울려 퍼졌다.

“오로로롱! 똥닝겐은 세레브한 와따시를 구하지 않고 어디서 뭐하는 데스! 오로로롱!”





------

워해머 소설 번역을 보고 쓴 데스

워해머엔 엘다라는 이름의 귀쟁이 외계인 종족이 있는 데스

이들은 잘 나가던 시절엔 자기들이 신보다 위대하다 생각하곤 신상을 모조리 구덩이에 처넣은 데스

그러다 폭싹 망하고 나선 무능한 신 따윈 필요없다며 다른 종족의 신상까지 걷어다 구덩이에 처넣은 데스

정말이지 실장석 같은 마인드가 아닌 데스웅? 데프픗







심심풀이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실장석 가족을 보았다. 성체 하나, 자 셋, 엄지 하나. 들실장치곤 산아 제한을 잘하는 놈인가.

친과 자들이 집인 듯한 골판지 박스 앞에 모여 앉아 떠들고 있다. 뭘까, 공원에서 관리를 소홀히 한 건가, 아니면 이놈들이 대범하게 구는 걸까. 대놓고 사람 눈에 띄면 결과는 그리 좋지 않을 텐데.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하고 넘어가기로 하고, 뭘 하고 있나 싶어서 봤더니 엄지를 둘러싸고는 막 머리를 쓰다듬는 중이었다.

[데스~ 데스 데슷~ 뎃스웅~ 데스 데스야~]

[테치치치…… 텟치! 테치테치~ 텟츄~웅~]

[렛츄~웅~]

[보에~ 보에 보에~]

오호, 집안의 막내를 귀여워해주는 중인가. 고양이가 새끼를 핥아주는 것과 비슷하겠지만, 저놈들은 어중간하게 사람과 닮은 탓에 뭔가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든단 말이지.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친실장이 먼저 알아보고는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러고는 내 앞에 서더니 막 떠들기 시작한다.

[데스! 데스데스! 데스, 데스뎃스웅! 데샤아아아아앗!]

링갈이 없어서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보나마나 먹이를 달라든지 길러달라든지 그런 말이겠지. 실장석이 인간에게 관심을 두는 건 대개 그런 이유 때문이니까. 그런데 이것들은 왜 인간이 자기들보다 풍족하고 강하다는 걸 알면서도 꼭 후자만 까먹고 다니는 걸까. 지능으로 따지자면 훨씬 모자란 비둘기들도 사람이 다가서면 일단 피하고 보는데.

[뎃스웅~ 데스데스! 데프픗…….]

한참을 지켜보려니 친실장이 갑자기 자들 사이로 들어가서는 엄지를 데리고 나왔다. 그러고는 번쩍 들어 올려 나에게 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엄지는 나를 보고 [렛~츄웅~]하고 애교를 떨고 친실장은 데프프프 하고 웃는다. 으흠, 얼마나 귀여운 아이냐, 우리 중에서도 가장 귀엽다, 데려가서 키워보지 않겠느냐, 대략 그런 표현인가. 만약 데려가겠다고 하면 덤으로 나머지도 다 데려가 달라고 할 테고.

일단 엄지를 집어 들었다. 친실장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서 침을 튀기며 웃고, 자들은 그런 어미 근처에 몰려 막 테치테치 거리고 있다. 행복회로가 발동한 건가? 아마 놈들의 머릿속에선 흔히 말하는 세레브한 생활상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있을 것이다. 손가락에 잡힌 엄지도 어미와 같은 상황인지 똥을 흘리며 웃고 있다. 자기가 원할 때마다 행복한 망상에 잠길 수 있다니 편리한 놈들이다. 마약 중독자도 아니고.

물론 망상에 젖어 사니 불행이 다가와도 모르는 거겠지만.

신속히 엄지의 두건을 벗기고, 옷을 잡아 뜯고, 머리를 뽑은 다음 친실장 앞에 놓아주었다. 친이고 엄지고 둘 다 아직 행복회로가 끝나지 않았는지 여전히 웃고 있을 따름이지만, 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일제히 엄지의 몰골을 보고, 그 다음엔 나를 보고, 다시 엄지를 본 다음, 그제야 일제히 빵콘을 하며 자지러진다.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어이쿠, 세 마리밖에 안 되는 데도 이런 소리라니. 그러나 효과는 확실해서, 있지도 않은 스테이크의 산에서 구르고 있던 듯한 친실장이 곧 정신을 차렸다. 놈은 엄지의 상태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음 장면은 너무나도 뻔했기에 난 등을 돌리고서 갈 길을 갔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렛츙? 레? 레…… 레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네 발자국쯤 걸었을 때에야 등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하하하.

***

오늘도 어제와 같이 공원에서 산책 중이었다. 문득 그 실장석들 생각이 나서 어제와 같은 길로 가기로 했다.

골판지 박스는 건재했다. 확실히 이 근처엔 학대파가 없어서 저렇게 무방비한 놈들도 오래 살아남는다. 물론 성가시게 구는 놈은 관리인이 집게로 채가서 그렇게 막나가는 놈도 잘 없다만. 그나저나, 그놈들은 어쩌고 있을까.

좀 더 다가가자 놈들이 보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빙 둘러 모여 있었다. 어제의 불행으로 상처받은 가족을 서로 보듬는 건가 했지만, 자세히 보니 내가 너무 물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설마 했지만, 너무 식상한 결과라 말도 안 나왔다.

[데스! 데스 데스! 데샤아아아앗!]

[테프프프프…… 테치 테치!]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잇?!]

친실장과 자들이 엄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애정 표현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험악한 표정으로 뭐라 짖고 있다. 분명 독라가 된 막내를 매도하고 있는 거겠지. 혐오와 경멸이 흠뻑 묻어나서 실장석이 아닌 나라도 눈치 챌 정도였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다.

자실장들은 팬티에서 녹색 똥을 듬뿍 퍼다가 엄지에게 바르고 있다. 놈들은 자기보다 하등하거나 노예인 개체에게 똥을 칠하는 걸로 우위를 표한다고 들었다. 머리와 옷이 없어진 정도로 가족에서 노예인가. 가족이 적으로 돌변한 상황에서 엄지는 생기 넘치는 모습 대신 빛이 사라진 눈으로 벌벌 떨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성체도 못 견딜 판국에 어린 엄지가 버텨낼 리는 만무하다. 그나마 치이이이잇, 츄와아앗 하며 반항인지 애걸인지 반복하고 있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들은 체도 안 한 채 린치에 열중하고 있다. 얼마 못 가 죽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지의 비명을 뒤로 하고 갈 길을 갔다. 힘내렴.

***

며칠 뒤 다시 그 길로 산책을 나섰다. 골판지 박스는 여전히 자리에 있었고, 실장석 가족들도 거기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내가 다가갔을 때엔 막 식사가 끝났는지 다들 배를 두드리며 길 위에 뻗어 있었다. 행인이 없어서 그런지 외식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식사 자리가 좀 지저분했다. 특히 적록색 얼룩과 뼈로 보이는 조그마한 파편들이 눈에 띄었다. 세어 보니 엄지가 보이지 않았다. 과연, 가족이라도 독라가 되면 그런 꼴을 당하는지.

입에 적록색 얼룩을 묻힌 채 데스데스거리던 친실장은 나를 보더니 자들에게로 다가가 한 놈을 집어들고 왔다. 그리고는 저번에 했던 것처럼 내밀었다. 자실장도 나를 보며 애교를 떨었다.

[텟츄~웅~]

허참.

옷만 달리 입었다고 알아보지도 못하는 건가.

헛웃음을 참고는 자를 집어 들었다. 이번엔 친실장은 물론 나머지 자들도 모조리 행복회로를 돌리는지 멍하니 웃고만 있었다. 그 틈을 노려 집어든 자실장의 옷을 벗기고 머리를 뽑아 버렸다. 놈은 갑작스런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테치테치 거리기만 했다. 조심스레 친실장 옆에 놓아두고는 나머지 것들도 모조리 독라로 만들었다. 자, 이제 예전의 엄지와 같은 꼴이 된 자기들을 보며 놈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놓인 자실장은 가족들을 둘러보더니 그 자리에서 똥을 지리고 말았다. 더 지켜볼까 하다가 그냥 뒤돌아서서 갈 길을 갔다. 그런데 주위에서 하나둘 씩 다른 실장석들이 나타나 그 가족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독라로 변한 걸 보고 행동에 나선 모양이다. 가족끼리도 그리 가혹한 처분이라면, 원래부터 남인 놈들은 어떤 짓을 할지 상상도 안 간다.

얼마 안 가 등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저번에 들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처절한 소리였다. 뭔가 고기 씹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역시 산책은 심신에 좋은 것이다. 더불어 약간의 심심풀이도.



-끝-





탁아

 

어느 성체 들실장과 자실장 하나가 풀숲에 숨어 뭔가를 훔쳐보고 있었다.
골판지 집을 나서는 친실장과, 몰려나와 배웅하는 자들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마마는 먹을 걸 구하러 가는 데스우. 장녀는 이모토챠들 잘 돌보고 있는 데스.]

[알겠는 테츄! 귀여운 이모토챠들은 와따시가 지키는 테츄!]

[마마, 오늘도 맛난 거 가득가득 가져오는 텟츄웅♡]

[레에에에엥, 좀 더 놀아주고 가는 레체에에엣]

실장석이 사는 곳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아침의 풍경.
그러나 그걸 노려보는 두 쌍의 눈동자는 심상찮은 분위기를 띄고 있다.

[저 분충의 행동거지를 잘 보고 들어두는 뎃승.]

[하이 텟치.]

친실장이 멀리 떠나는 걸 지켜본 뒤, 둘은 풀숲 사이로 몸을 감췄다.


친실장은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운 좋게 살점이 많이 남은 생선뼈를 발견한 것이다.
매운탕을 끓였다가 쉬어서 버린 것이지만, 상했든 썩었든 별 탈 없이 먹어치우는 실장석에겐 어디까지나 좋은 먹이다.

[마마 온 데스~]

그러나 친실장이 골판지 집으로 들어왔을 때 본 광경은......

[테츄아아아아아아악! 아픈 테츄! 먹지 마는 테츄!]

[데프프, 잘 먹고 잘 자란 자라 그런지 진미인 뎃승. 좀 더 맛있어지게 천천히 먹어주는 뎃승~]

피와 내장으로 흠뻑 젖은 골판지 안,
그리고 들실장에게 다리부터 뜯어 먹히는 중인 자신의 자.
멍청히 굳었던 것도 잠시, 격분한 친실장은 비장의 무기인 대못을 꺼내들고 달려든다.

[데갸아아아아아악! 당장 자를 내려놓는 데스 분충!]

마치 어느 고오오급 시계의 사이보그 사무라이가 ‘류진노 켄노 쿠라에!’를 외치며 선질풍참을 갈기는 듯한 기세.
그것에 눌렸는지 들실장은 대못이 팔을 스치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먹던 자를 던지고는 그대로 밖으로 달아났다.
친실장은 얼른 자를 살핀다. 피범벅이 된 채 다리 하나를 비롯하여 곳곳의 신체가 뜯겨나갔다.

크기와 냄새를 통해 친실장은 가까스로 그것을 ‘장녀’라고 인식했다.

[마마, 마마인 테츄...?]

[정신 차리는 데스 장녀! 이게 어찌 된 일인 뎃샤아아아아!]

[테에에에에.... 왠 아줌마가 와서 이모토챠들 다 잡아먹어버린 테츄... 와따시는 특별히 맨 마지막에 먹어준다고 괴롭히며 놀았던 테츄... 죄송한 테츄... 오네챠들 지킨다고 했는데 못 지킨 테츄...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엥!]

[그나마 오마에라도 살아남아 다행인 데스! 오로로롱, 오로로롱!]

확실히 다른 자실장과 엄지가 모조리 잡아먹힌 건 큰 손실이지만, 적어도 성체가 될 확률이 제일 높은 장녀가 살아남은 건 천만다행인 일이다. 실장석 특유의 강력한 재생력이 뒷받침 되면 장녀가 당한 중상은 잘 먹이기만 해도 며칠 이내에 나으리라.
그러나 들실장에게 당한 이상 여기에 더 머무르는 건 위험한 일이다.

[집을 옮기는 데스. 여긴 위험한 데스...]

그날 밤, 친실장은 보존식량과 포갠 골판지를 들고 장녀를 업은 채 다른 곳으로 떠났다.

등에 업힌 자가 운치를 조금씩 바닥에 흘리는 건 그녀로선 알 길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로부터 두어 달이 지나, 장녀는 몸이 나은 건 물론 중실장이 되어 테스 하고 울게 되었다.
새로운 자들도 낳아서 예전보다 오히려 가족이 많아졌다.
친실장은 먹이 조달 겸 독립 교육을 위해 장녀를 대동하고 다녔다. 그리하여 장녀는 근처의 지리와 위험요소들을 익히게 되었다.

그날도 친실장은 장녀를 데리고 먹이 조달을 나설 생각이었다.

[차녀챠는 문을 굳게 닫아걸고 마마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리는 데스.]

[알겠는 테치! 마마와 장녀 오네챠 잘 다녀오시는 테치!]

[다른 이모토챠들은 차녀 이모토챠 말 잘 듣고 있는 테스. 착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아마아마한 콘페이토라도 어떻게든 얻어다 주겠는 테스.]

[테에! 콘페이토테치!]

[와따치도 먹고 싶은 레츄!]

그렇게 떠들썩한 배웅이 막 끝나려는 순간, 풀숲을 헤치고 뭔가가 나타난다.
친실장은 대경실색했다. 예전에 자신의 자들을 거의 모두 먹어치웠던 그 들실장이었던 것이다.

[데프프, 이번에도 맛난 분충들을 많이 만들어둔 데스우? 이번에도 신세 좀 지는 뎃승.]

[웃기지 마는 데샤아아아아앗! 오마에는 이번에야 말로 와타시가 직접 요절을 내주는 데스!]

[테에에에엥! 마마, 저 아줌마 무서운 테체아아앗!]

[자들은 모두 들어가는 데스! 장녀! 오마에는 예비용 보검을 들고 따라오는 데스! 이모토챠들의 원수를 갚을 기회인 뎃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친실장은 무기를 몇 개 더 구했으며 장녀에겐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휘두르는 법까지 가르쳐놨다.
이번에야말로 그 교육이 빛을 발할 때다. 저 분충을 독라달마자판기노예로 만들어 죽은 자들의 원한을 풀리라,
친실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원수 말인 테스?]

푹-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

[원수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던 테스.]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장녀가 자신을 찌르기 전까진.

[테프프, 솔직히 기다리기 지쳤던 테스. 와타시는 마마가 어느 들분충에게 당해 화장실 노예가 되지 않았나 생각했던 테스.]

[데프픗, 와타시도 오마에가 멍청한 짓을 해서 솎아내진 건 아닌가 생각했던 뎃승... 다행히 둘 다 지금까진 무사했으니 잘 된 데스야~]

[데, 데뎃?!]

친실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장녀와 저 원수가 서로 친자인 것처럼 군단 말인가?
이모토챠들을 모조리 먹어치우고 자기도 거의 먹을 뻔했던 분충을, 어째서......?

눈알을 디룩디룩 굴리는 그 꼴을 보며 비웃던 들실장이 입을 열었다.

[아직 이해 못한 것 같으니 친절히 설명해주는 뎃승. 오마에의 자는 장녀 포함해서 그날 이미 모조리 와타시가 먹어치운 뎃승. 오마에가 장녀라 생각하며 애지중지 길렀던 자는 사실 와타시의 자였던 뎃승. 오마에의 분충 자들을 훔쳐보며 행동거지를 흉내 내게 시킨 뎃승. 고기에서 짜낸 즙 좀 묻히고 연기 좀 한답시고 속아 넘어가다니 바보 아닌 뎃승? 조금만 주의 깊게 살폈다면 분명 다른 점이 보였을 것인 뎃승.]

[데쟈아아아아아......]

그동안 원수의 자를 애지중지 길렀다는 충격적인 폭로에 친실장은 행복회로를 돌릴 틈도 없이 머릿속이 망가져버렸다.
그 꼴을 지켜보던 장녀는 테프픗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마에의 운치 냄새 나는 분충들을 이모토챠라고 부를 때마다 토할 뻔한 테스. 하지만 오늘부로 모두 끝난 테스. 그래도 지금까지 키워준 건 매우 감사한 테스. 말하자면, 오마에와 오마에의 분충들은 모조리 와타시의 독립 기념 선물 노예란 말인 테스!]

[데프프, 과연 와타시의 자라 실수 없이 끝낸 뎃승. 자, 어서 독립 기념 선물 보따리를 풀어헤쳐 보는 뎃승~]

중실장은 대못을, 들실장은 심신 고루 망가진 친실장을 질질 끌며 골판지 집으로 들어갔다.
곧 안에서 자실장과 엄지들의 비명소리가 퍼졌으며, 그 이후로 친실장의 가족들 중 골판지 밖으로 살아서 나온 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뻐꾸기는 탁란을 하여 제 새끼를 다른 어미새가 키우게 한다.

실장석도 비슷하게 탁아를 한다. 다른 게 있다면 뻐꾸기가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상대에게 사기를 칠 때, 실장석은 자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능력의 소유자에게 어설프게 판돈을 걸었다가 목숨 포함해서 모두 날려먹는다는 점이지만.

그러나 실장석의 카오스인자가 발현했는지, 놀랍게도 뻐꾸기와 비슷한 수준의 발상을 떠올리는 데 성공한 실장석이 생겼다.
그 실장석은 몇 년의 생애 동안 위와 같은 행위를 몇 번이고 반복하여, 공원 절반 이상을 자신의 자로 채우는 데 성공했다.
보통의 실장석들이 그와 비슷한 행위를 입에 담기가 무섭게 목숨을 잃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놀랄만한 성과인 셈이다.

비록 정기 구제 때 발각당해 빠루의 한 줌 핏물로 맺히는 결말을 맞았으나 그 들실장은 비교적 행복하게 갔다.
미리 파놓은 탈출구를 이용해 그녀 태생의 실장석 다수가 도주하였고, 그들 대부분이 친실장의 탁아 노하우를 익혀 놓았던 것이다.

그들은 실장석의 세계를 점령해갈 것이다. 식물보다 느리지만, 제국처럼 광활하게.



-끝-






낙원의 비애

 

[데슷...! 데슷...! 나오는 데스...!]

두 눈이 빨갛게 변한 임신 실장이 다른 성체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출산용 저수통으로 향하고 있다. 배는 크게 부풀어 올랐고, 점막과 체액이 섞인 찌꺼기가 다리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다.

[조금만 버티는 데스! 곧 도착하는 데스!]

[데헤엑, 데헤!]

저수통 앞에 도착하자, 임신 실장은 동족들에게 도움을 받아 저수통 양쪽 끄트머리에 다리를 걸치고 엉 곧이어 배에서 가벼운 통증이 일었고, 임신 실장은 그에 맞추어 힘을 주었다.

[데헤에에에엑!]

[견디는 데스! 머리가 보이는 데스!]
[힘내는 데스!]

퐁당-

점막에 싸인 첫 번째 자가 저수통의 얕은 물에 떨어졌다. 이윽고 두 번째, 세 번째의 자들도 뒤를 이어 태어났다. 하나같이 귀여운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탄생을 기뻐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친실장의 배는 좀처럼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 뒤에도 네 마리의 자들을 울컥울컥 내뱉었다.

[[[텟테레~♪]]]

[와타치를 낳아주셔서 감사한 테츄♪ 우선 와타치의 점막을 핥짝핥짝 해주시는 테치!]
[마마! 보고 싶었던 테치!]
[첫 식사로는 콘페이토를 원하는 테츄!]

태어난 것은 일곱 마리의 자실장이다. 건강 상태가 좋았던 덕에, 엄지나 구더기같은 미숙한 자는 보이지 않는다. 곁에서 응원하던 동족들이, 임신 실장에게 축하의 말을 보탰다.

[뎃스-웅! 다들 귀엽게 생긴 자인 데스!]
[데에에... 첫 출산 축하하는 데스!]
[오마에는 쉬고 있는 데스. 와타시들이 점막을 핥아주는 데스.]

[다들, 고마운 데스우...]

출산으로 인해 기력이 떨어져 당장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았지만, 임신 실장은 만면 가득 미소를 띄우고 동족들이 자신의 자들의 점막을 핥아주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자들은 점막을 핥아주는 오바상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다가도, 자신과 눈이 마주치면 방실거리며 웃었다.

아직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았지만 착한 자들일 것이 분명하다, 임신 실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여러 동족들이 거든 덕분에 점막은 시간 내에 무사히 벗겨졌다. 일곱 마리 자실장은 누가 먼저고 할 것 없이 서로 살가운 인사를 나누고는, 곧바로 임신 실장에게로 달려왔다.

[마마! 와타치가 장녀 테치! 쓰다듬어 주시는 테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테츄! 행복한 삶을 기대하는 테치!]
[와타치는 덩치가 작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테츄!]

각자의 감상을 테치테치 떠들어대는 자실장들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친실장은 말했다.

[자들, 낙원에 태어난 것을 환영하는 데스!]




확실히, 실장석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곳은 낙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의 위협이 없다. 동족식에 맛을 들인 표독스러운 동족도, 굶주린 까마귀 떼의 습격도, 학대파의 무차별한 학살 행위도 없다. 식량 문제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일생을 보내기에 턱없이 좁은 장소지만, 실장석들에게 있어서는 광활한 공터나 마찬가지인 넓이. 자실장의 속도로는 몇 시간은 걸어야 반대편에 도착할 수 있다.

하루 종일 가지고 놀아도 질리지 않는 장난감이 널려있으며, 심지어 소형 TV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시간에 맞춰 정해진 구역에만 가 있는다면 삼시세끼 맛있는 식사도 제공된다. 위생을 위해 곳곳에 실장석용 변소가 설치되어 있고, 노곤한 몸을 따뜻하게 풀어주는 욕탕도 있다. 콘페이토 봉지 역시 입구 근처에 놓여 있어서, 입이 심심할 때마다 집어먹을 수 있다.

입구 부근의 생활 구획은 하얀 타일이 깔려있지만, 그 바깥쪽은 인조 잔디와 나무들이 설치된 자그마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들실장들의 공원 생활에 환상을 품고 있는 일부 실장석들은 하루종일 그 곳에서 뒹굴기도 한다.

닝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임신을 원하는 실장석들에게 손을 들게 한다. 손을 든 실장석은 앞으로 불려나와 주사를 하나 맞는데, 주사를 맞으면 1시간 이내로 배가 부풀고 양 눈 모두 녹색으로 변한 임신 실장이 된다. 임신 기간은 굉장히 짧아서, 30분 이내로 눈이 붉게 변하고 진통이 온다.

출산 이후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닝겐이 와서 새끼들 중 한 마리만 남기고 모두 데려간다. 자신의 자를 데려가는 것에 거부감을 품는 실장석도 있지만, 수거된 자들은 부유하고 상냥한 사육주에게 입양된다는 닝겐의 설명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실장석은 기꺼이 자들을 내준다.

한편, 남은 한 마리의 새끼는 마마의 교육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 마마의 역할을 이어받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이 기이한 '낙원'은 거의 10년 가까이 유지되어오고 있었다.




[아마아마 테츄! 고급스러운 단맛이 마음에 드는 테츄!]
[혀에 착 감기는 맛인 테츄! 값비싼 고급품이 틀림없는 테치!]

10kg에 5만원 꼴인 싸구려 콘페이토를 핥으며 웃음짓는 자들을, 친실장은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지난 며칠 동안 이 장소에 대한 설명과, 자들이 곧 부유한 사육주에게로 가게 될 것이라는걸 설명했다. 자실장들은 마마와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에 낙담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기운을 되찾고 얼굴을 붉히며 세레브한 사육실장 라이프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와타치는 놀이공원이라는 곳에 가보고 싶은 테치. TV에서 데스랜드 개장 소식을 들었던 테츄.]

[와타치는 스테이크를 꼭 먹어보고 싶은 테츄. 우마우마한 감칠맛에 고급스러운 식감 테치♪]

[여기 있는 따뜻한 이불도 좋지만, 푹신거리는 침대에서 자보고 싶은 테츄..]

[이모토챠, 걱정할 것 없는 테치! 사육실장이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마마가 말해주었던 테츄.]

[테에?! 마마, 정말인 테치?]

[물론인데스. 특히 자들은 사랑스럽게 생겼으니 닝겐에게 듬뿍 귀여움을 받으며 길러질 것이 분명한 데스.]

[테에♪ 그럼 와타치는 애교로 주인사마의 혼을 쏙 빼놓는 테츄.]

삼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입가에 손을 가져갔다. 테츄-웅 하고 아양을 부리는 삼녀를, 친실장은 꽉 껴안았다.

[테에? 마마의 품 따뜻한 테츄..]

[자들은 정말로 귀여운 데스. 틀림없이, 멋진 사육실장이 될 것인 데스.]

그렇게 말하자, 자실장들은 환하게 웃으며 친실장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친실장도 마찬가지로 밝게 웃어보이고는, 자들을 안고 잔디 사이를 뒹굴었다.

온정이 넘치는 일가의 모습이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데스.]

불청객의 난입에, 친실장의 회상은 강제로 끝을 맺었다. 기분이 상한 친실장은 인상을 쓰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금세 표정을 풀었다.

[아, 큰할머니인 데스우?]

[그런 데스. 여전히 쾌활한 모습이 보기 좋은 데스.]

친실장이 큰할머니라 부른 실장석은, 이 장소에서 5년 가까이 살아온 최연장자이다. 전해지는 소문에 따르면 닝겐에게 천 마리에 달하는 자들을 위탁했다고 한다. 그 소문의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나이가 많다는 것 만으로 실장석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일정 이상으로 나이가 든 실장석들은 대부분 새끼들과 마찬가지로 닝겐들에 의해 부유한 사육주의 집으로 입양된다. 사실 닝겐에게 수거된 이후의 상황을 본 실장석은 아무도 없었지만, 이만한 대접을 받고있는 이상 닝겐의 말을 의심하는 개체는 없었다.

큰할머니라 불린 개체는, 특이하게도 나이가 든 이후에도 수거되지 않은 경우였다.

[와타시에게는 과분한 자들인 데스. 세레브한 사육실장으로 자라기를 바라고 있는 데스.]

[걱정할 것 없는 데스. 이제 첫 출산인 오마에가 그렇게 걱정한다면, 지금껏 자들을 보내왔던 와타시는 뭐가 되는 데스?]

[데에.. 역시 큰할머니씨는 말을 잘하는 데스.]

[살다보면 자연히 익히게 되는 데스.]

나이 때문일까. 흐릿한 눈을 지닌 그 노실장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피식하고 웃음을 내뱉었다.

[.....?]

[우리에게 있어서는 이 안이나, 바깥이나 마찬가지로 낙원인 데스.]

[데에.. 그건 그런 데스. 안에서는 먹을 것도, 친구도, 놀 것도 얼마든지 있는 데스. 자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데스. 밖에서도 친절한 닝겐상들이 와타시의 자들을 길러주시는 데스.]

[....와타시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줄곧 생각했던 데스.]

[무엇을 말인 데스?]

[이곳 바깥에 있는 동족들에 대한 생각인 데스우.]

[...그건, 들실장을 말하는 것인 데스?]

[그런 데스. 들실장들은 우리와는 달리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스.]

친실장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TV에 나온 들실장들의 모습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인조 잔디만 무성한 이 곳과는 달리, 진짜 초목이 우거진 '공원' 이라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직접 나무열매를 채집하고, 무성한 잔디 사이를 자들과 함께 뛰노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운치있는 삶이라고, 내심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친실장의 생각을 알아챘는지, 노실장은 즉시 말을 이었다.

[TV에 나온 모습이 들실장의 생활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인 데스. 와타시는 들실장 출신인 데스.]

노실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소매를 걷어 팔을 보여주었다. 친실장은 숨을 삼켰다. 노실장의 팔에는, 뚜렷한 흉터 자국이 남아있었다.

[마마의 사체를 빼앗겼을 때, 필사적으로 저항하다가 입은 상처인 데스.]

[데... 데?]

[들실장의 생활이라는게 그런 것인 데스. 언제 죽을지 모르고, 언제 상처입을지 모르는 불안한 생활 데스우.

까악씨나 멍멍씨는 우리를 보기만 해도 물어뜯으려고 하는 데스. 학대파라는 나쁜 닝겐들도 종종 공원에 들러서 수많은 동족을 죽이는 데스. 동족들도 하나같이 오랜 공원 생활로 잔혹하게 변해서, 서로의 살점을 탐하는 데스.]

[무서운 데스..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데스..]

혼란에 빠진 친실장을 가느다란 눈으로 바라보며, 노실장은 말을 이었다.

[게다가 자연도 우리의 편이 아니었던 데스. 여름의 쨍쨍한 해씨와, 겨울의 차가운 눈씨는 나약한 와타시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것인 데스. 수많은 동족이, 그 시기에 죽어나가는 데스.]

[데에에...]

[와타시는, 그렇게 살아가는 동족들을 생각하면 슬픈 기분이 드는 데스. 고작 울타리 하나가 사이에 끼었을 뿐인데, 우리와 들실장들의 생활은 완전히 정반대인 데스. 와타시는 공원 생활의 끔찍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데스. 정말로, 들실장들은 가여운 동족들인 데스..]

노실장의 어깨가 파르르 떨려왔다. 친실장은 노실장을 안고 진정시키듯, 다정하게 말을 꺼냈다.

[무슨 마음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데스.]

[값싼 동정이라고 욕해도 좋은 데스. 하지만 와타시는 들실장들을 떠올릴 때마다 비애를 느끼는 데스.]

[데? 비..애? 그게 무슨 말인 데스?]

[슬프고 슬픈 감정이라는 뜻인 데스.]

친실장은 멋쩍게 웃으며 잠시 고개를 돌렸다. 자실장들은 콘페이토를 다 먹고, 친실장이 대화를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멀뚱히 앉아 있었다. 장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장녀는 두 팔을 들고 붕붕 흔들어 보였다. 친실장이 팔을 흔들며 화답을 해주고 있자니, 노실장이 말을 이었다.

[이런 낙원에서 사는 우리는 모두 닝겐에게 감사해야 하는 데스. 와타시가 지금껏 와타시의 자들을 닝겐에게 넘겨준 것도, 와타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닝겐을 돕고 싶었기 때문인 데스. 와타시의 자들은 와타시와 달리 귀엽고 사랑스러우니, 분명 주인상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데스.]

[...큰할머니씨는 생각이 참 깊은 데스.]

노실장은 너털웃음을 터트리고는 말을 이었다.

[말이 길어졌지만, 와타시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 뿐인 데스. 첫째는 와타시들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 둘째는, 닝겐상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인 데스. 와타시는, 이 두 가지 감정을 줄곧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여기 머무를 수 있었던..]

[마마-아! 지루한 테츄. 대화는 언제쯤 끝나는 테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장녀가 친실장의 다리를 잡아끌었다. 당황한 친실장은 장녀를 떼어내고 노실장에게 사과하려 했지만, 노실장은 고개를 젓고는 할 말은 다 했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와타시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시는 데스우?]

[별거 아닌 데스. 첫 출산을 마친 동족들에게, 이따끔 해주는 조언일 뿐인 데스.]

[데에에.. 그런 데스...?]

멀어져가는 노실장의 뒷모습을 보며, 친실장은 새길 가치가 있는 대화였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낙원 밖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 들실장들에 대한 슬픈 감정도 치솟았다.

이런 감정을, 노실장은 비애라고 부르는 것일까.

[마마? 무슨 생각하시는 테치?]

[데? 아, 아무것도 아닌 데스.]

순진하게 웃는 장녀의 얼굴을 보면서, 친실장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다. 내일이면 영영 이별하게 되는 자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묵혀둔 옛날이야기를 하나 둘 떠올리면서, 친실장은 장녀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하얀 가운을 입고 위생 장갑을 낀 남자는, 하품을 하며 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라면 다른 직원 한 두명이 더 붙었겠지만, 오늘은 근무 일정이 절묘하게 어긋나 자신 혼자 작업을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복도에 놓인 케이지 하나를 집어들고 얼마간 걸어, <A20> 이라는 팻말이 붙은 문 앞에 도착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넓은 부지를 실장석 양식에 쓴다는 것은 조금 아깝다고 생각하며 남자는 문을 열었다.

[테치테츄 테치!]
[테츄-우 테치테에!]

[오로롱... 오로로롱...]

익숙한 광경이다. 서로 껴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이별을 슬퍼하는 자실장들과 친실장. 다른 실장석들도 옆에서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고 있다. 가볍게 헛기침을 하니 그제서야 남자의 존재를 깨닫고 화들짝 놀란다.

남자는 링갈을 켜고 말을 걸었다.

"안녕, 미안하지만 이별해야 할 시간이야."

친자는 그 말에 애써 울음을 참으며 마지막으로 격한 포옹을 나누었다. 친실장은 훌쩍이면서도, 자 한마리만 남겨두고 여섯 마리의 자들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는 테츄- 거리며 작별 인사를 하는 여섯 자실장을 조심스럽게 케이지에 담으며, 친실장이 끌어안은 자 하나를 가리키고 물었다.

"그 자가, 네가 기르기로 한 자니?"

[그런 데스... 칠녀는 아직 너무 연약해서, 밖에 나가면 다칠까봐 걱정이 되는 데스. 와타시가 데리고 살기로, 어제 미리 말해놓은 데스.]

"음, 그렇구나."

[마마! 보고 싶을 것인 테치!]
[반드시 훌륭한 사육실장이 되는 테치!]

케이지의 창살 밖으로 손을 뻗고 자실장들이 소리를 질러대자, 친실장이 끝내 울음보를 터트리며 크게 외쳤다.

[자드으으을! 행복해야 하는 데스우우우우! 닝겐상! 장녀는 특히나 영특하고 귀여운 아이니, 분명 훌륭한 사육실장이 될 수 있는 데스! 자들을 훌륭한 사육주에게 보내주시는 데스우! 잘 부탁드리는 데스우!]

남자는 친실장의 말에 잠시 멈칫 하고 케이지 안을 바라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물론이지!"



마마와 떨어졌다는 슬픔도 잠시, 자실장들은 비좁은 케이지 안에서 행복한 사육실장 라이프에 대해 활기차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이야기의 방향이 분충스러워지고 있는 와중에, 남자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 여기야."

[테에? 어두운 곳인 테치이..]
[여기서 기다리면 주인사마가 와주시는 테츄?]

남자는 말없이 웃으며 케이지에서 덩치가 작은 새끼 하나를 꺼내들었다. 선택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남자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며 애교를 부리는 그 녀석의 옷과 머리카락을 빠르게 제거하고, 목을 쥐어 비틀었다.

[.....?! 테.. 테헤엑..!]
[테에?! 이모토챠아아!]

자실장의 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머리는 적녹색 체액을 흩뿌리며 떨어져, 케이지 안에 안착했다. 자실장들은 테에테에 소리를 지르며 머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개중에는 피눈물을 흘리며 털썩 주저앉은 녀석도 있었다.

그럼 나야 편하지, 하고 남자는 녀석을 집어들었다.

[이럴 리가 없는 테치이.. 와타치들은 사육실장이 될 고귀한 존재라고, 마마가...]

흐리멍텅한 눈으로 무언가 지껄이고 있는 녀석의 목을 부러트리며, 남자는 기억을 더듬었다.

10여년 전, 모 대학에서 나온 한 연구 결과가 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고 성장한 실장석의 고기가, 모든 면에서 여타 식실장들에 비해 품질이 뛰어나다는 내용이었다.

연구 내용이 화제가 되자, 여기저기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란, 고급 식실장 생산하기' 프로젝트가 연이어 시행되었다. 남자의 회사 역시 당시 프로젝트에 착수해서, 꽤나 뛰어난 성적을 올린 곳 중 하나였다.

'낙원' 에서 수확되는 새끼들은 매주 1000마리를 상회하는 양이다. 고깃덩어리들은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로 운송되어, 여타 식실장 제품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값으로 팔린다. 회사 입장에서는 얼마 되지 않는 실장석들의 식비와 '낙원'의 관리비만 대준다면, 매주 돈더미가 굴러들어오는 수지맞는 장사인 셈이다.

[테챠아아아아아아-! 마마-아! 마마! 살려주는.. 테벳-]

"아, 그러고보니 A20 이라면 그 큰할머닌가 뭔가 하는 개체가 있는 방이었지.. 한 번 보고 올 걸 그랬나."

나이 든 노실장들의 자는, 식감도 맛도 여실히 떨어지는 B급 상품이다. 때문에, '낙원' 은 4세 이상의 실장석들은 쓸모가 없다고 판단해 지속적으로 처분하고 있다. 처분이라 해봤자, '완벽하게 올려진 희귀 상품!' 정도의 이름을 달고 학대숍으로 이동되는 것 뿐이니, 나름 인도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A20>에 사는 그 노실장만은 예외였다. 원래 공원에서 들실장 생활을 하던 녀석이 우연히 흘러들어온 모양인데, 아마 '낙원'의 생활에 감명을 받은 모양인지 다른 실장석들에게 닝겐에게 감사하라거나, 우리는 특별하다거나 하는 말을 끊임없이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덕분에 실장석들의 사기도 유지되고, 자실장 공급을 거드는 개체들도 늘어났으니 이득이 되어, 회사 측에서는 그 노실장을 살려주기로 한 모양이다.

[테.. 테에.. 옷이.. 머리카락이.. 테에에에엥!]

작업도 슬슬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다른 자실장들은 전부 해체했고, 친실장이 '특히 영특하고 사랑스러운 자' 라고 말했던 장녀밖에 남지 않았다.

장녀는 정신이 반쯤 나간 듯 무언가를 빠르게 중얼거리고 있다. 스트레스가 이 이상 쌓이면 굳이 '낙원'에서 일주일간 양육시킨 의미가 없으므로, 남자는 재빨리 목을 쥐었다.

[...마마는, 거짓말쟁이 테츄..]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장녀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에이씨, 파킨해버렸네.."

정신적 고통에 의해 파킨한 실장석의 고기는, 일반적인 들실장의 사체와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남자는 장녀의 사체를 마구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A20>의 노실장은 들실장들을 보며 비애를 느낀다고 말하고는 한다. 자신의 말로를 모르기에 그렇게 지껄일 수 있는 것이겠지.

적어도 실장석은, '비애'라는 말을 서슴없이 동족에게 쓸 수 있는 생물이 아니라고 남자는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남자 역시 서글픈 감정이 드는 것이다. 낙원 안이던, 밖이던 결국에는 마찬가지로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 이 가여운 생물에게, 일말의 동정을 주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약간의 비애를 느끼며, 남자는 실장석의 목을 꺾는다.

얼마 뒤, 끝끝내 학대숍으로 향하게 된 <A20>의 노실장은 오래 지나지 않아 죽었다.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건 남자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데헤에.. 강제로 낳은 자들이지만, 이번 자들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귀여운 데스... 너희라면 틀림없이 멋진 사육실장이 되는 데스우.. 슬픔 따위 없는 멋진 곳에서, 닝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사육실장이.....]


파킨-








그들을 보고 오늘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무 것도 모르고 블랙기업에 취업해 격무에 시달리며 건강도, 대인관계도 갉아먹힌 지난 1년.
마침내 참지 못하고 사표를 낸 것이 지난 주였다.

자신감도 체력도 떨어질대로 떨어져, 나는 휴식 겸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계절에 맞춰 흩날리는 낙엽을 보며, 난 새삼 내 처지를 되새겼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같은 낙오자를 받아준 곳은 그 회사 뿐인데, 그런 곳마저 내치고 나와버린 나는 대체..

서서히 가라앉는 기분을 환기시키려 애써 공원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데, 독라 들실장들이 눈에 띄었다.

데슷- 거리며 플라스틱 스푼 같은 것으로 땅을 파고 있는 그 모습에 흥미가 일어 나는 휴대폰의 링갈 앱을 키고 말을 걸었다. '다들 열심히 일하는 데스-' 뭐 이런 말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데슷, 데슷!]

뭐야, 진짜 데슷거리는 거였어?

"다들 열심이네."

[데? 닝겐상인 데스? 와타시타치에게 무슨 볼일인 데스?]

"땅을 왜 파고 있는지 궁금해서."

[와타시타치는 고용되어 노동을 하고 있는 데스]

"고용?"

[그런데스. 땅을 파면 그 대가로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받는 데스.]

호오, 실장석 세계에 급여라는 개념이 있었을 줄이야. 고용주는 꽤나 똑똑한 양충인 것 같다.

만들어진 땅굴을 봤더니 꽤나 거대한 크기로, 왠만한 골판지 하우스보다는 더 클 듯 싶었다.

"대단하네. 일에 불만은 없어?"

[데에..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데스..]

어쩐지 독라 들실장들의 표정이 흐려졌다.

괜스레 그 표정이 신경쓰여 캐물어보니 사실 할당량도 많고, 보상도 턱없이 적어 그리 좋은 일은 아니라고 한다. 자신의 키높이의 두 배가 넘는 땅을 파고도, 주어지는 것은 기껏해야 두 끼를 간신히 채울 수 있는 양의 식량과 신문지를 접어 만든 조잡한 잠자리 뿐이라나.

[하지만 이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독라인 와타시타치는 살아갈 수 없는 데스..]

"......이런 씨발...."

[데?]

"너희를 고용한 녀석을 좀 만날 수 있을까?"

[그거야 어렵지 않은.. 아, 저기 오는 데스.]

덩치 큰 성체 실장석 한 마리가 독라들에게 걸어왔다. 손에 든 것은 끝이 뾰족한 나뭇가지이다.

[오마에타치, 지금 게으름 피는 데스? 식량을 받기 싫은 데스?]

[아, 아닌 데스!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데스!]

녀석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나뭇가지를 쳐들고 독라들을 매질하기 시작했다.

[와타시가 보기에는! 아직도! 할당량이 한참이나 남은 데스! 해가 지기 전에 끝내라고 했던 말기억나지 않는 데스?]

[데벳! 데벳! 데에엥! 와타시타치는 최선을 다한 데스, 오로롱..]

"그만해라."

[오마에는 뭐인.. 데? 닝겐상?]

"그래 닝겐상이다 이 좆같은 분충 새끼야. 이 싸가지 없는 새끼가 같잖게 닝겐 흉내를 내? 그것도 시발 회사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 앞에서 블랙기업 흉내를? 넌 오늘 뒈졌다."

[데베에엣?!]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한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겨내자 녀석은 땀을 삐질삐질 흘려대며 몸을 바짝 엎드리고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와타시가 잘못한 데스! 하지만 와타시도 어쩔 수 없었던 데스! 땅 위의 집은 안전하지 못해서 흙씨를 파고 집을 지으려 했는데, 와타시 혼자만으로는 무리인 데스! 게다가 와타시는 굶어죽어가던 이 독라들을 살려준데스! 보상씨가 적은건 사실이지만, 와타시의 식량까지 안배하면 그게 최선이었던 데스!]

기관총처럼 말을 연달아 내뱉는 녀석을 보니, 내가 괜히 감정이입을 심하게 했나 싶어 조금 화가 가라앉았다. 거기에다, 형식이야 어쨌든 이 녀석이 저 독라들을 살려준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하기야 뭐.. 알겠어, 이번에는 봐줄게."

[....?! 정말인 데스?]

"그래. 대신 조건이 있다. 우선 보상 및 처우 개선에 대해.."

퍽, 소리와 함께 고용주 실장석의 머리가 깨져나갔다. 뒤에서 돌을 주워든 한 독라가 고용주의 머리를 강하게 가격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벙쪄 뭘 어쩌지도 못하고 바라보는 나에게 독라들이 말을 걸었다.

[고마운 데스, 닝겐상! 닝겐상이 보검을 없애준 덕분에 기습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스!]

보검이라는건 아까 튕겨냈던 나뭇가지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

"너희, 이 녀석 죽이면 안되는거 아니었어?"

[데? 어째서인 데스? 저 똥주인은 와타시타치를 지겹도록 괴롭힌 데스. 절대 용서할 수 없었던 데스.]

"지금 가을이잖아."

[그게 무슨 상관인데스?]

"저 녀석이 주는 것만 받아먹고 있던 너희가, 이제 와서 어떻게 월동 준비를 해? 겨울이 가까워져서 식량 다툼도 치열할텐데, 가뜩이나 너희는 독라라서 근처에만 가도 린치당할걸?"

[데.. 데에..]

[데베에에에에에에에엑?!!!!]

[생각하지 못했던 데스! 핀치의 예감 데스! 이제 어떡하면 좋은 데스?! 오로롱, 오로롱..]

울고불며 난리치는 독라들을 뒤로 하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이 공원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암울함이 가득했던 내 가슴속에 희망이라는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그래, 시발 저딴 머저리들도 취업을 했는데.."

나는 적어도 저 바보들보다는 유능하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해야할 것은 그대로 주저앉아 절망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든 새로운 활로를 찾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리라.

살아갈 힘을 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나는 타오르는 석양을 바라보고 미소지었다.










부디, 꽃처럼



- 무얼 그리 빤히 보는거니?


남자는 뭇내 무시하지 못하고 자실장에게 물었다.


그저 공원 벤치에 앉아 캔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한대 피우고 싶었을 뿐인데


왠 꾀죄죄한 자실장 하나가 멍하니 자기 얼굴만 쳐다보고 있으니.




키워달라고 조르면 걷어차기나하고 먹을걸 달라고 조르면 담뱃재나 털어줄텐데


어째 그냥 입을 헤 하고 벌리고는 자신을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대답할 생각이 없는건지 자실장은 그저 멍한 표정 그대로 단춧구멍 같은 눈을 떼지못하고 있었다.




- 거참.. 싱거운 녀석.




















조금 이르지만 남자는 재킷을 꺼내어입고 공원을 향했다.


아직 가을 초엽이지만 아침엔 입김이 나올 수준으로 서늘할 때가 있으니까.


평소대로 한바퀴 산책을 마친 뒤 다시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막 커피의 캔을 따려는데 어제의 그 자실장이 꾸물꾸물거리며 다가온다.




- .......




무언가 부탁을 하려는걸까.


손을 등뒤로 돌려쥐고 꾸물거리는 모습에 남자는 피식 웃었다.




- 너구나. 요즘 자주 만나네.


- 테..


-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거니?





남자의 말에 한참을 머뭇거리던 자실장이 뒷춤에 감추었던 꽃을 한송이 꺼내어 내민다.




- 받아주었으면 하는 테츄..




남자의 눈썹이 비죽 올라갔다.



커피를 한모금 달라고 한다던지, 날이 추우니 보살펴주었으면 한다던지 정도를 예상했지만



꽃을 내밀며 말을 걸 줄은 생각 못했다.







- 흠... 왜지?


- 닌겐상을 얼마전부터 지켜본 테츄.. 다른 사람들은 항상 밝게 웃고 우마우마한 것을 먹으며 걸어다니는데 닌겐상은 항상 아야아야한 뜨거운 막대불만 마시고 달콤씁쓸만 마시는 테츄.. 항상 어두운 얼굴 테츄..


- 그런데 꽃은?


- 와타치가 가장 좋아하는 꽃 테츄. 언제나 보면 기분 좋아지는 테츄. 닌겐상이 가졌으면 좋겠는 테츄. 와타치처럼 기분 좋아졌으면 하는 테츄.




남자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참을 멍해졌다가 바들바들 떨고 있는 자실장의 손에서 꽃을 빼어든다.




- 그래..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도 모르겠다.


- !!




자실장의 얼굴에도 화알짝 꽃이 피어오른다.


자신의 마마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미소. 자신도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감정으로 피어난 것.




- 그런데 이런 걸 받았으니 나도 무언가 돌려줘야겠구나. 무얼 갖고 싶니?




자실장의 미소가 곤란한 얼굴로 변한다. 무언가를 돌려받기 위해 한 일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바라고 한 일도 아니었다.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주었으면 하는 테츄. 그러면 와타치의 가슴이 이야한 테츄. 왜인지 아픈 테츄.




- ....닌겐상이 활짝 웃어주었으면 하는 테츄.


- 그래. 돌려줄 것이 있어서 기쁘구나.




남자가 조금 쓸쓸한 눈빛이지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주자 자실장의 얼굴이 다시 미소로 피어난다.











그후로도 많은 날 남자는 아침마다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캔커피를 마셨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옆에 자실장 하나가 앉아있다는 것.



- 그때 왜 나에게 꽃을 주고 싶었던걸까?


- 와타치도 잘 모르는 테츄. 여기가 두근두근 시키는 대로 한 테츄. 열심히 테츄.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길게 한숨을 내쉰 남자가 조금 안쓰럽게 웃었다.




- 니가 준 꽃의 이름은 민들레란다. 꽃의 높이는 너의 두배쯤 될까.


- 테.. 예쁜 이름 테츄.


- 줄기도 얇고 키는 높아서 너로썬 따기 힘들었을거야. 힘들게 힘들게 잡아당겨 꽃을 땃겠지.


- 그런 테츄. 힘낸 테츄.


- 보통은 말야. 그렇게 말도 안되는 일은 다들 하지 않는단다.





자실장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아직 작은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 오직 사랑에 빠진 사람만 그런 일을 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일.



자실장의 얼굴이 화악하고 달아오른다.


모르던 감정의 이름을 그것을 알게 해준 사람이 알려주었다.




- 난 알고 있단다. 한 때 나도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한 적이 있거든.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일.




자실장의 눈이 조금 슬퍼진다.




- 너만한 자실장이 혼자 꽃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었을테고 그 줄기를 타는 일도 굉장히 힘들었을거야. 넌 굉장히 헌신적이고 솔직한 마음을 가진 좋은 아이라고 생각이 드네.





남자의 칭찬에 자실장의 슬펐던 눈에 조금 기운이 돌아온다.

좀더 커피를 마신 뒤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데 자실장이 의외의 말을 꺼낸다.




- 지금 와타치처럼 닝겐상이 슬픈 얼굴을 했던 이유는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테츄?




생각치도 못했던 풍부한 감정의 언어에 남자가 놀란다.




- 글쎄. 사랑을 잃어서 슬픈 얼굴을 한건 아니란다. 다만 생각이 많아서야. 공원을 아침마다 걷는 이유도 슬픈 얼굴을 한 이유도.


- 어려운 테츄..



남자는 피식 웃으며 자실장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후 담배에 불을 붙여 깊이 한번 빨아들인다.




- 그렇다면 하는 테츄! 와타치와 사랑하는 테츄! 닌겐상 항상 웃게 해주는 테츄!




순수함.

여느 미사여구나 현혹의 말을 단 하나도 곁들이지 않은,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말.




남자 자신도 한 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지금 자실장의 마음을 거절해야할 말을 하기 난처해진다.


담배 연기 한줄을 길게 뽑아낸 뒤에 남자는 힘들게 이야기를 꺼냈다.




- 사랑은 그렇게 냉큼 내밀어 이루어지는게 아니란다. 두 사람의 마음이 같을 때 고백은 대답을 얻어 말 그대로 '이루어'지는 거지.


- 닌겐상은 와타치가 싫은 테츄...?


- 싫지 않아. 싫다면 이렇게 나란히 앉아 너와 이야기할 이유도 없겠지. 넌 아주 좋은 아이야.


- 테... 슬픈 테츄.. 와타치 슬픈 테...




남자는 울고 있는 자실장의 옆에 앉아 한참을 침묵을 지키다 이야기를 꺼낸다.




- 옛날에 말이야, 마을을 지키는 용맹한 기사가 있었단다. 모두가 믿고 따랐고 누구나 동경하는 사람이었지.



마마에게서나 듣던 옛날 이야기.

옛날 이야기를 아주 좋아하는 자실장은 눈물을 닦으면서 귀를 쫑긋 세운다.




- 그런 용맹한 기사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단다. 그것은 그 마을 성주님의 딸이었어. 성을 감싸고 있는 장미덩굴의 장미만큼 아름답고, 그 가시만큼 아픈 사람이었지.

나날히 커져가는 마음을 남자는 참고 참다, 결국 어느날 밤 그녀가 나와있는 창가 앞에 무릎꿇고 앉아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어.



- 테... 그래서 어떻게 된 테츄?



- 그녀는 거절했어. 그녀의 눈에 그 남자가 용맹한 기사임은 중요치 않았던거야.

정확히는 눈에 차지도 않았던거지. 그렇지만 기사는 포기하지 않았단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겠느냐고 그녀에게 물었던거야.

건넛산 들끓는 화염의 강 성난 용의 목을 베어다 드리면 내 마음을 받아주겠소,

혹은 아랫산의 어두운 굴, 난쟁이들의 보화를 얻어오면 내 마음을 받아주겠소,

그것도 부족하다면 제일 가는 높은 산 가장 아름다운 꽃을 꺾어바치면 내 마음을 받아주겠소.

하고 말이야.




자실장은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어 눈을 초롱초롱 빛낸다.



- 하지만 그녀는 다소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지. 진귀한 공물이나 보화보다는 마음을 증명하라고 말이야.자신의 창가 앞에 앉아 꼼짝도 않고 100일을 버틴다면 그 마음을 받아주겠다고 한거지.

기사는 우직하게도 그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갔어. 비가 오면 젖고, 눈이 오면 잠자코 얼어붙으며 광풍이 불어도 바위처럼 꿈쩍도 않았지. 심지어 독충과 벌레가 자신의 갑주 안을 기어도 말이야.

그렇게 99일째가 되고 아침이 밝기전, 기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단다.



- 테?!? 어째서 테츄!??! 왜 일어나는 테츄아!??!



- 글쎄.. 잘 생각해보렴.



남자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자실장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돌아섰다.



이제 더 이상은 마음이 아파 보고 싶지 않은 뒷모습.



결국 자실장은 말도 안되는 일을, 오직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을 꺼낸다.





- 와... 와타치도!! 와타치도 이 자리에서 100일을 버티는 테츄!! 반드시 테츄!!





남자는 피식 웃으면서 뒤돌았다가 더 이상은 웃을 수 없게되었다.

여느 실장석들처럼 값싼 허풍이거나 가치없는 언어를 가진 사람들처럼 가벼운 말이 아니었음을 자실장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 진심이로구나.



- 그런 테츄!!



- ...어떤 일이 있어도?



- 그런 테츄!!



- 내가 너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 반드시 해낼 테츄!!






남자는 그대로 등을 돌려 공원을 빠져나갔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입을 꾹 닫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는 자실장을 뒤로 하고.





그렇게 어둑어둑해지려던 공원에 남자는 다시 나타났다.


모든 실장석들이 초가을의 저녁 추위에 오금을 떨며 박스에 꽁꽁 숨은 것과는 달리


가로수 아래에서 희미한 조명을 받으며 조그마한 몸뚱아리를 바들바들 떨며 자실장은 아직도 서있었다.




- 정말 100일이나 서있을 샘이니. 그건 미련한 짓 이야.




턱이 떨려 한마디 대답조차 하기 힘들어보이는 갸냘픈 모습.


남자는 한참 달을 올려다보다 말을 꺼냈다.





- 너는 그 이야기의 기사처럼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지 않아.


하지만 깨지지 않는 마음이 있으니 괜찮은 테츄


- 너는 그 이야기의 기사처럼 비와 눈, 바람을 견딜 수 없어.


비님도 눈님도 바람님도 피해주실 테츄.


- 독충이나 벌레에 물려도 괜찮은거야?


괜찮은 테츄. 당신을 위해서라면 괜찮은 테츄.








남자는 커다란 상자를 하나 꺼내어 자실장의 앞에 내려놓았다.



- 하루.



남자의 알 수 없는 말에 자실장이 덜덜 떨리는 고개를 들어올린다.



- 이 상자에 들어가 하루를 땅 속에 묻혀 버틴다면, 그 고독과 두려움을 겪은 뒤에도 여전히 나를 미워할 수 없다면.. 그 마음의 절반을 받아줄게.



- 저...절...반...테...츄....?



- 사랑을 받아주지는 못할테지만..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을 말이야.






남자가 무모한 짓은 그만하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절반의 대답에 자실장은 얼어붙은 볼을 눈물로 서서히 녹이며 남자의 손에 스러지듯 기댄다.


말도 안되는 짓,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


남자는 자신의 자실장에게 해주었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 너처럼 조그마한 몸으로 여기 서있다간 내일 한나절이나 버틸까.





남자는 자실장을 소중히 상자에 넣어 공원의 가장 따듯한 목의 땅을 파 집어넣었다.


한나절 동안 자실장으로썬 견디기 힘들었을 모진 풍파 때문이었는지 자실장의 잠든 숨소리가 상자 밖으로 세어나온다.


남자는 그에 응답하듯 상자의 뚜껑을 톡톡 노크했다.





- 활짝 피어나렴. 처음 보여줬던 미소처럼 말이야.














얼었던 몸이 녹으며 따스하게 떠오르는 느낌이 든다.


자실장은 꿈을 꾸고 있었다.


기사가 사랑했던 장미처럼 아름답고 가시처럼 아팠던 그녀처럼,


자신도 소중한 마음을 품고 흙 속에서 싹을 틔워 아름답게 피어나는 꿈을.





보드랍고 따듯한 흙에 쌓여 막 묻히기 전


누군가가 뚜껑을 톡톡톡하고 두드려 자상한 목소리로 해주었던 말처럼



피어나리라.



100일을 아파할 것에 마음이 쓰여 돌아와


증명의 고통을 따듯한 잠자리로 바꾸어준 그 사람의 상냥함을 위해서.


꼬옥 피어날 것 임을.


흡사, 아니 아마도 기도와도 같은 말을 주문처럼 읊조리며.
















































한편 남자는 군대에 갔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