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의욕을 잃은 채, 실장은 나무둥치에 기대 앉아 있었다.
나무그늘은 그 얼굴에 드리운 수심을 더욱 짙게 만들고 있었다.
나뭇잎이 얼굴로 떨어지자, 실장은 그것을 떨쳐내며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면, 다른 실장들이 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하늘에서 흔들거리는.
모두들 새끼줄, 고무줄, 케이블타이 따위에 목이 매여있었다. 마치 농번기에 알차게 열린 열매들 같다.
며칠 전엔, 나무에 실장석 대신 진짜 열매가 매달려 있었다. 실장들은 단내에 이끌려 모였고, 며칠동안 나무 밑에서 열매에 닿을 방법을 찾으려고 아우성쳤다.
헛짓이었다. 놈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근처에 사는 행인과 마주칠 때까지.
싸움이 벌어졌다. 선을 먼저 넘은 것은 실장석들 쪽이었다. 굶주림에 총기를 잃은 그들은, 똥인간 모가지따위 단번에 꺾어버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날의 유일한 생존자는, 오늘 그 장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퀭한 눈으로 매달린 동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테치테치 떠드는 소리에 실장은 고개를 내렸다.
나무그늘 근처에, 독라 자실장 무리가 나타났다. 실장의 기척은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실장은 헛웃음을 지으며 메마른 입술을 떨었다. 위험한 곳인 줄도 모르는 어린 것들.
자실장들은 주저앉은 채, 모가지가 꺾일 기세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침을 흘려대는 것이 무언가를 기대하는 투였다.
[테, 장녀챠, 정말로 밥이 생기는테치?]
[그런테치. 오늘은 서로 먹지 않아도 좋은테치.]
[슬픈 일은 이제 싫은테치…]
아마도 자매들인 듯 했다.
초췌한 실장의 눈가가 경련했다. 묻어두려 했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래, 놈에게도 자매는 있었다. 사랑하는 자매. 며칠 전 농부의 손에 잃어버렸다.
그 둘은 일가에 남은 마지막 생존자들이었다. 각박한 생활 속에서 선택권은 적었다.
그 둘은 집 찾기도, 먹이 구하기도 같이 했다. 감나무 앞에서도 놈들은 같이 있었다.
이젠 놈 하나 뿐이었다.
이윽고 밧줄 하나에서 시체가 떨어졌다. 말라붙었다가 비를 맞은 시체는, 머리와 목이 분리되며 허물어졌다. 홍시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고깃덩이가 터졌다.
자실장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체에 달려들었다.
[고기! 고기테치!]
[비키는 테치이 - !]
[테히! 삼일만의 먹을거인 테치!]
[챱챱 - 과연 오네챠인 테치! 대단한 테치!]
[다들 천천히 먹는테치.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테치.]
파리새끼들마냥 시체에 달려든 자매들과 달리, 자실장 하나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주변을 경계하듯 두리번거리며.
[적당히 먹고, 오늘은 다들 물러나는테치. 분명, 내일이나 모레에도 떨어질 것인 테치.]
그러나 자실장은, 어두운 나무그늘 안쪽은 살피지 못했다.
[무서운 닌겐상이 왔다 갔으니, 찾아올 닌겐도 실장도 며칠간은 없는 테치.
하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 ]
[늦은데스.]
자실장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늦었다는 말은 정말이었다.
먹고, 황급히 싸고, 또 쳐먹던 자실장들이 비로소 너무 조용함을 깨달은 것은,
그래서 뒤를 돌아본 것은, 이미 첫째가 발끝까지 먹히고 나서의 일이었다.
도망은 무의미했다. 며칠을 굶고서 과식한 자실장들은 몸도 가누기 힘들었다. 추격전은 길지도 격렬하지도 않았다. 고요 속에서 위석이 깨지는 소리가 몇 번 더 울렸다.
입 안에서 푹푹 터지는 살코기를, 실장석은 씹는 둥 마는 둥 하며 황급히 삼켰다.
열심히 자실장 고기를 입에 욱여넣던 실장석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데스. 차녀. 도망치기 쉽게 조금 떨어져 있는데스.’
그 날 자매가 남긴 마지막 말을,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데스? 일단 닌겐에게 감을 따라고 시키면 - ’
‘잠자코 듣는데스. 꼭 기억해둬야 할 말인데스.
만약 오늘 와타시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리고 식량을 구할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다면…’
[부디 다시 나무 밑으로 와보라던. 그 말을…]
가을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오열하는 실장의 옆으로, 또 한번 몸뚱아리가 떨어졌다.
굶주린 실장이 거부하기 힘들 만큼 진한 냄새를 풍기며.
[이젠… 알겠는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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