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이라는 건 명의가 복잡하게 꼬여있어서 어지간하면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반면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던 집은 명의가 간단해서 금방 결론이 난다. 문중 재산에 관심을 가지기엔 너무 많은 추한 꼴을 봤던 부모님은 친척 모임에서 생각없이 몇 마디 던지고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던 시골집을 넘겨받았다. 은퇴도 했겠다. 그 집에서 아주 살 생각으로.
등기까지 끝낸 날, 우리 가족은 모두가 내려와 시골집을 한 번 청소하기로 했다. 나와 동생은 계속 도시에 살 거지만 부모님은 신변 정리가 끝나면 내려가신다고 하니 이때가 아니면 모두 내려갈 시간이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는 시골집은 한 두 달 정도 비웠다고 크게 바뀌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언제 왔냐고 묻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마당을 지나 어머니와 아버지가 집 안을 둘러보는 동안 나와 동생은 창고에 뭐가 있는 알아보라는 말에 열쇠를 받아들고 뒷마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평소엔 못 듣던 소리를 들었다.
"테엥! 인간씨인 테치!"
"어, 뭐야?"
뒷마당엔 실장석 가족이 한데 모여 놓고 있었다. 나도 오랜만에 보는 실장석에 놀랐지만. 그쪽도 적잖이 놀랐는지 온가족이 담벼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데엑! 왜 나갈 수가 없는 데스?"
"마마가 낀 테치!"
"평범하게 일가실각레후?"
"태평하게 말하지 마는 테스! 구더기챠!"
다소 황당한 느낌이 드는 실장석 가족을 본 나와 동생은 잠시 굳어있었다.
"야, 밖에 나가서 저 녀석 못 도망가게 도로 밀어넣고 담벼락 구멍 막고 와."
"아, 왜."
"그럼 니가 저거 만질래?"
"그건 싫지."
어미가 금방 빠져나갈 거 같은 느낌인지라 빨리 가라고 보낸 뒤. 뒷마당 구석에 있는 목장갑과 무 담던 플라스틱 바구니를 꺼냈다. 어미에게 매달려 테치레후 거리며 우는 자식들부터 하나하나 집어 바구니에 넣은 뒤 중실장 쯤 되는 녀석이 안에서 넘어뜨리지 않게 옆을 돌로 받치고 비료포대로 덮었다. 귀가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대니 어미도 뭔가 잘못된 걸 느꼈는지 낀 머리를 도로 빼려고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계속 낑낑대는 걸 당겨줘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형, 넣을 테니까 잡아!"
"어."
하낫 둘, 하는 소리가 나더니 곧 퐁 하며 어미가 굴러나왔다. 감촉이 좀 그랬지만 이 녀석까지 바구니에 넣고. 아까는 안 보였던 뚜껑을 꺼내 끼워 잠궜다. 울음 소리가 시끄러워서 두 번 툭툭 찼더니 조용해졌다.
"잡았어?"
"어. 구멍은 다 막았지?"
"응."
"그럼 이제 창고 치우자."
동생 오는 동안 창고 문을 열고 있는데. 앞마당 쯤 오던 녀석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어우! 이건 또 뭐야!"
"뭔데?"
"나와봐!"
아니 일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또 뭘 봤나 싶어 앞마당으로 갔더니. 가관이 따로 없었다.
"얘네들은 또 뭐야?"
"몰라, 마루 밑에 아주 살림을 차렸는데?"
실창석 하나에 자실창 하나, 또 실홍석 하나에 자실홍 하나. 무슨 길고양이도 아니고 이런 게 집에 가득 있담. 동생은 난감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어쩔래?"
"어쩌긴."
박스는 두 개 더 있었다.
'가만히 안 있으면 그대로 던져버리겠다'고 엄포를 넣자 셋 다 조용해졌다. 안에서 무슨 서류 가지고 입씨름중인 부모님에겐 조금 있다 이야기하기로 하고 창고에 뭐가 있는지 진짜 확인하러 들어갔다.
예상대로 창고엔 농약 살포기 같은 농기구 정도였다. 박스에 든 것도 녹슨 호미 같은 거 정도였고. 아마 나이가 드셔서 정리 못한 것이겠지. 그래도 선반은 딱히 못 쓸 건 아닌 거 같아 나중에 꺼내기 좋게 다시 정리한 뒤 대충 사진을 찍어두고 앞마당으로 나왔다. 부모님도 대충 정리가 되셨는지 대청에서 아까 내가 내놓은 박스 셋을 보고 있었다.
"저게 뭐냐?"
동생이 말을 안 했군. 그새 어디로 갔지? 아무튼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귀찮은 듯 손을 내젓고 들어가셨다. 아니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지.
그러고보니 저 실장석들이 왜 굳이 뒷마당에 들어왔는지 궁금해서 다시 뒷마당을 살폈다. 처음엔 보이지 않았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열매가 달린 상수리나무 가지와 감나무 가지가 뒷마당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너무 주워먹고 못 빠져 나간 거였군. 구멍도 애매하게 작았던 거 보면 개나 다른 동물들이 파 놓았던 것일수도 있고.
이후 이런 일이 또 생기길 바라진 않아서, 근처의 돌로 다시 구멍을 틀어막았다. 근처에 골판지 같은 건 보이지 않고 똥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니 아마 집은 멀리 있고, 여기까지 밥을 구하러 온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니더라도 굳이 물어봐야 하나 싶긴 하다.
시키는 대로 뒷마당에 뭐가 있는지 사진도 찍었고 해서 대청에 앉아 바구니 셋을 바라봤다. 도시 공원이라면 이때쯤 되면 벌써 관리인이 한 많은 생을 끝냈겠지만. 굳이 여기서도 그래야 할까. 조금 고민이 되긴 한다. 뭐 잠깐 동안 심심파적은 되겠다. 링갈을 켜서 볼륨을 높였다.
"너네들, 여기서 먹을 건 좀 구했냐?"
"도토리 많이 구한 테치!"
"말하지 마는 테스!"
"테에엥..."
실창석은 어떨까. 대답이 조금 늦었다.
"밥 주던 사람씨가 없어져서 힘들었던 보쿠. 도토리를 저 실장들이 다 가져간 보쿠."
"네 것도 아니지 않은 데스?"
흠. 실홍석은 별로 말하고 싶은 기분은 아닌지, 자식을 끌어안고 불만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그러고보니 말이지.
가방을 뒤져보니 전에 탕비실에서 챙겨놓고 까먹은 녹차 티백이 조금 있었다. 그걸 흔들어보이자, 냄새가 거기까지 닿았는지 자실홍이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이것도 먹긴 먹는구나. 티백 포장을 까서 바구니 틈으로 넣어줬다. 그러자 실장적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먹을 거 필요한데스!"
"너네는 도토리 챙겼잖아. 그거 우리 집 건데?"
"데에... 인간씨 없는 집 아니었던 데스?"
"아니."
진짜 놀랍지만. 그제서야 사태가 파악이 된 건지 파랗게 질린 어미 실장석이 납죽 엎드렸다.
"죄송한데스! 몰랐던 데스! 아무도 없어서 빈 집인 줄 알았던 데스! 그래도 여기 운치를 싸진 않은 데스!"
"테츄츙!"
링갈에 문자가 뜨자마자 자실장이 소리높여 똥을 싸 버렸다. 히이이 소리를 내며 어떻게든 똥을 치워보려고 하지만. 답이 나오나. 덕분에 심란해졌다. 옆 실창석이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산실장이 되어서 부끄럽지도 않은 보쿠?"
"뭐?"
"저 실장들은 산실장인보쿠, 그런데도 여기까지 내려와 도토리를 챙기는 악질인 보쿠."
"아닌데스! 아닌데스! 돼지씨가 너무 많아서 잠시 도망 온 것인 데스!"
내려오면서 언뜻 마을에 집채만한 멧돼지가 들어와 도사견도 둘 치어죽이는 바람에 엽사를 불러 세 마리나 불러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돼지씨가 겨울집씨를 두 개나 먹어치워 도토리가 너무 모자랐던데스. 이것만 가져가면 다신 오지 않는데스..."
"야, 진짜 산실장이 맞아? 어떻게 알아?"
"냄새로 아는 보쿠. 인간씨 푸드 냄새보다 이끼와 도토리 냄새가 더 많은 보쿠."
흠. 뭐 전문가가 그렇다면야. 냄새가 엄청나게 나는 바구니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뚜껑을 열고 옆으로 넘어뜨리자 일가족이 데구르르 굴러나왔다. 자실장 하나는 그 와중에도 저실장이 다칠새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덕분에 똥범벅이 되었지만.
"데에에! 잘못한데스!"
"알았어, 알았으니까. 다신 오지 마라. 구멍도 막았고."
"데. 진짜 보내주는 데스? 마을에 왔는데 때리지 않는 데스?"
"귀찮다. 다시 오면 약 뿌릴 거니까 얼른 가서 늬들끼리 살아라."
그러자 그 일가족은 정말 고맙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다 떨어진 비료봉투에 담은 도토리를 끌고 산 쪽으로 사라졌다.
정말 안 보일 때까지 기다린 뒤 마당에 돌아왔더니 아버지가 얼굴을 찌푸리고 대청에 서 있었다.
"야, 이게 무슨 냄새냐?"
"실장석 똥이요."
"그건 알지. 그게 왜 여기서 나는데?"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언제?"
아, 젠장. 안 듣고 계셨군. 귀찮음을 무릅쓰고 다시 설명하니. 안 죽이고 보낸 건 잘했는데 다시 올까 싶어 걱정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흠. 그러면야.
"그럼 저기 있는 애들 키우면 될 텐데요. 실장석하고 사이 나쁘다는데요."
"쟤네들은 냄새 안 나냐?"
"실장석보다 훨씬 낫죠. 거기다 강아지랑 다르게 말도 통하고."
두 달 후, 부모님은 진짜 시골로 내려가셨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단 핸드폰을 잘 다루셔서 이런저런 사진을 곧잘 보내오는데. 그때 키우겠다던 실창과 실홍 사진도 섞여 있었다. 실창은 밤에, 실홍은 낮에 집을 지킨다며 지금까지 실장석이 한 번도 집에 쳐들어온 적이 없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나는 다행이라고, 곧 큰 눈이 온다니 조심하시라고 답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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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씨가 전부 없어진 테치! 이제 안심인 테치!"
"쉿, 그래도 조심해야 하는 데스. 언제 인간씨가 올 지 모르는 데스."
"왜인테치?"
"이곳은 선-산-이라는 산인 데스. 춘자가 중실장이 될 떄쯤 인간씨들이 와서 둥근 흙무더기 앞에 푸드를 놓고 가는 데스."
"푸드를 주는 좋은 닝겐인 테치?"
"아닌데스. 푸드를 놓고 가기 세 밤 전에 웽웽소리씨를 몰고와 풀씨의 목을 전부 자르는 데스. 그때 들키면 실장석의 목도 전부 잘리는 데스. 게다가 푸드를 먹으려는 실장석은 인간씨가 가차없이 죽이는 데스."
"무서운테치!"
"그러니 더 깊은 곳으로 가는 데스. 인간씨는 오르지 못하는 곳으로 가는 데스."
"마마는 똑똑한테치! 마마랑 같이 가는 테치!"
"현명한 자인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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