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진이는 원래 들실장이였다.
정확히는 엄지실장이였다.
평소 자기를 괴롭히던 6녀가 야옹씨에게 분충짓 하다가 일가 전체가 휘말려 실각 당하게 되자 테엥 테엥 하고 울다가 지금의 주인이 불쌍하다 하여 데려왔다.
대부분의 실장석이 꿈에도 바라던 사육실장이 된 것이였다.
그리고 녹진이는 다시 들실장이 되었다.
사육실장의 금기인 자를 가졌기 때문이였다.
아니, 사실 주인은 거기까지는 봐줄려고 했다.
근데 그건 자실장 한두마리에 양충일 경우인 것이지 사육실장으로 살면서 호의호식 한 덕분에 영양 상태가 극도로 좋아 자실장을 열마리나 낳은데다가 죄다 분충이였다.
거기다 화룡정점으로 자식을 낳고 무슨 근자감에 빠져든건지 이를 꾸짖는 주인에게 고로시 후 이집내집 시전 하다가 위석 적출후 뒷마당에 끌려나와 온몸의 뼈가 다 부셔지도록, 그러나 죽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쳐맞았다.
"데, 데가아아악!!!! 손씨가! 발씨가!"
초고농축 활성액에 담겨진 위석과 그간 잘 먹고 살아온 덕분에 금새 달마에서 회복 되기 시작하는 녹진이. 맨 처음 주인에게 표출했던 반항심은 온데간데도 없이 그저 공포와 혼란만 남아있었다. 주인은 차가운 눈으로 이 은혜 모르는 벌레를 내려다 보았다. 자실장들은 얻어 맞지는 않았지만 똥노예라고만 생각했던 닝겐이 그 대단한 마마를 순식간에 줘패버리고 달마로 만들어 버리자 죄다 빵콘 하고 말았다.
"똥벌레 녹진이, 그간 누구 덕분에 잘먹고 살아왔건만 감히 주인한테 으르렁 거려?"
"자, 잘못한데스...! 주인사마!"
"난 너한테 자실장 한 두마리 정도만 허용 해줬어. 그런데 이게 뭐야? 10마리나 낳았네? 게다가 나를 노예로 생각 하는 분충들이네?"
"데, 데에에엑...! 주, 주인 켁!"
주인의 빠따가 녹진이의 이를 부수고 입안에 쳐박혔다.
"날 주인이라 부르지마. 왜냐면 넌 이제 사육실장이 아니기 때문이지."
주인은 버둥거리는 녹진이를 빠따에 힘을 줘서 눌러버리며 자실장들을 바라보았다. 건방지게 투분이나 하는 상분충들, 곧바로 처리 해버릴까? 생각 해봤지만 그렇게 해서는 성이 차지가 않았다. 사실 교육 안 받은 자실장이야 그냥 벌레이기에 별 생각은 안나지만 꽤씸하기로는 녹진이가 제일이였다.
즉, 주인은 어떻게 하면 녹진이에게 참교육을 시전 할 수 있을지 고민 하고 있었던 것이였다.
"금방금방 죽어버리는것들이니 죽여버리는건 일도 아닌데..."
"테에엥! 마마!"
"데겍! 데겍!"
이와중에도 자실장들은 녹진이에게 달라붙었고 녹진이는 고통 속에서도 자실장들을 걱정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주인의 뇌리에 좋은 생각이 스쳐지났다. 주인은 씨익 웃더니 녹진이 입에 쳐박은 빠따를 빼고는 품속에서 초고속 재생액을 퍼부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손발과 이빨을 재생하는 녹진이, 주인은 녹진이의 멱살을 붙잡고 잔인하게 속삭였다.
"자, 녹진이. 너는 이제부터 내 앞마당에서 살꺼야. 그리고 너는 거기서 고통스럽게 살아야 해."
"데, 데갸아아악....!"
녹진이의 주인의 잔인한 속삭임에 끝 모를 살의를 느끼고 다시금 빵콘을 하고 말았다. 주인은 목줄을 가지고 와 녹진이에게 채운 후 질질 끌고 갔다. 자실장들은 뭣도 모르고 울면서 따라갔다. 뒷마당과 앞마당의 연결을 차단하는 나무 울타리 문을 열고 앞마당으로 나오자 녹진이는 그제서야 주인집 문이 열릴때 얼핏 볼수 밖에 없었던 앞마당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었다.
앞마당에는 자그마한 닭장과 개집, 그리고 감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대문 너머에는 푸르른 논밭이 있었는데 바람이 한번 불어오자 순간 녹색의 물결이 수려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뒤로는 커다란 산이 웅장하게 서있었고 그 풍경에 녹진이는 고통도 잊고 순간 멍해졌다. 주인이 바닥에 깔고 정성껏 꽃과 야채를 심어놓은 뒷마당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옛날옛적 산실장으로 살아오던 실장석의 본능을 일깨워줬다.
"자아, 너는 이제 사육실장이 아니야. 마당실장이지. 좋게 생각하라고? 아예 들실장으로 사는것보다는 나으니깐."
콰악!
"데엑!"
주인, 아니 남자는 녹진이의 목줄을 작업 하는 동안 도망 못가게 난간 위로 아슬아슬하게 위로 묶어 올렸다. 목을 매다는건 아니고 까치발을 해야만 목줄이 더이상 쥐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덕분에 녹진이는 자연을 목도하게 된 감동은 온데간데도 없이 필사적으로 까치발로 서야 했었다.
그동안 남자는 창고에서 삽을 가져와 마당 한구석을 파냈다.
운치굴 할 구덩이, 그리고 적당히 세운 판자와 파낸 흙으로 지지대로 하우스를 대충 만들었다.
"자, 여기가 이제 니 하우스여."
남자는 쇠말뚝을 깊게 박고 거기에 목줄을 꽉 묶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기진맥진해진 녹진이는 그저 데에에엑 할 뿐이였다.
1일째,
녹진이는 위석이 초고농축 활성액에 담겨진 덕분에 얻어맞은 충격에서 금방 회복 하고 말았다. 녹진이는 흐리멍텅 해진 눈으로 남자가 식사라면서 바닥에 살짝 오묵하게 판 구덩이에 퍼부은 음식물 쓰레기를 보았다. 거기에는 이제 쓸모가 없어진 실장사료가 잘게 부셔져 있었다.
배려인가? 아니, 남자는 그냥 음식물 쓰레기랑 섞어서 주면 이 벌레들이 사료만 곱게 빼먹을까봐 그냥 잘게 부셔서 준 것이였다. 이틀전 저녁 이후로 아무것도 못먹었던 녹진이는 허겁지겁 음식물 쓰레기를 먹었다.
들실장시절 먹었던 익숙한 맛이였다. 아니, 그때 보다는 낫긴 했다. 그때는 마마가 음쓰 봉투에서 방치된지 좀 되어 쉰 냄새가 나는걸 얻어왔더라면 이건 말 그대로 그날그날 발생한 음식물 쓰레기니 상하지는 않았던 것이였다.
"오로롱..."
다만 전날 아침까지 사육실장으로 살다가 마당실장으로 추락하여 들실장이나 다름 없는 꼴을 하게 되니 자연스레 하늘과 땅과 운명과 전 주인을 원망하는 녹진이였다. 그러나, 아직 자신에게 희망은 남아있었다. 전날 아침 자신이 배 아파해가며 낳은 눈에 넣어도 안아플 귀여운 자식들이....!
철퍽!
"무능한 똥마마!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귀여운 아타시를 보필해야 하는데 감히 우마우마에 먼저 입을 대는 테치? 그 죄는 독라달마가 되어도 모자른 테치!"
일단 운치굴 노예는 필요한 것 같았다.
5일째,
녹진이와 자실장 9마리들은 이제 마당 생활에 완전히 적응 했다. 때는 6월, 햇살이 점점 따가워지고 있지만 남자가 흙과 판자로 대충 만든 하우스는 비바람과 햇빛 정도는 막아줬다. 게다가 흙벽에 몸을 기대노라면 기분 좋은 서늘함이 더위를 식혀주었다.
"테에에에엥... 마마.... 햇빛씨가 뜨거운테치... 꺼내주는 테치..."
운치굴 노예는 그런거 없이 직빵으로 햇빛을 맞아 노릇노릇하게 익혀져야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목줄에 묶인 녹진이와는 달리 자실장들은 자유로웠기 때문에 햇빛이 덜할때면 마당을 신나게 쏘다녔다. 몰론 태어난지 일주일도 안된 자실장 체력 한계상 5~6m가 다였지만. 어쨋든 자실장들은 삼삼오오 뽈뽈 흩어지며 각종 호기심들을 채워나갔다.
"테치, 이건 뭐인테치?"
"마마는 멍멍씨라 부른테치."
"멍멍씨?"
삼녀와 사녀는 어느새 개집까지 찾아가 눈 앞에서 졸고 있는 개를 쳐다보며 한 마디 했다. 늙은 개 땡구였다. 땡구는 남자의 친척이 기르던 사냥개였는데 멧돼지 사냥하다가 부상을 입게 되었고 사냥 활동에 나서지 못하게 되자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시골집에서 남은 여생을 요양하게 된 것이였다.
땡구는 처음에는 의기소침 했지만 평화롭고 조용한 시골 풍경이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오늘도 기분 좋게 햇살을 받으며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역전의 용맹한 모습은 온데간데도 없이 한없이 늘어진 모습이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분충 두 자매는 뭔가 생각난건지 키득거리며 땡구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테푸푸풋, 정말이지 멍청해 보이는 멍멍씨인테치."
"고귀한 아타시와는 달리 정말로 한심해 보이는테치!"
그렇게 비웃으면서 조잘거리자 땡구는 기분이 나빠졌다. 영민한 땡구는 눈 앞의 똥벌레들이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지만 대충 그 의도는 알 수가 있었다. 땡구는 조용히 그르렁 거렸다. 이쯤 되면 뭔가 심각하다는걸 깨달아야 했지만 자매들중에서 멍청하기로는 톱을 앞다투어 달리는 삼녀와 사녀는 그칠줄 모르고 계속해서 땡구를 조롱 했다.
"그르르릉...."
떙구는 이제 완전히 잠이 다 깼다. 두 눈은 떠지고 이빨이 드러났다. 몸을 반쯤 일으키자 삼녀와 사녀는 땡구가 예상 외로 크다는것을 깨닫고 살짝 빵콘을 했지만 오히려 더 기세등등하게 땡구를 모욕 했다.
"잘된테치! 오마에는 이제 아타시의 노예인테치!"
"고귀한 아타시를 섬기는거니 영광으로 알라는테치!"
삼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팬티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투분이였다. 그때, 때마침 낮잠에서 깨어난 녹진이는 멍하니 마당을 둘러보다가 삼녀와 사녀가 땡구 앞에서 멍청한 짓을 저지르는것을 보자 대경실색하며 달려나가려 했지만 목줄에 의해 금새 주저 앉았다.
"안된데스! 삼녀! 사녀! 당장 이리로 오라는... 데겍!!!!"
"컹!"
삼녀가 팬티 속에 손을 빼내려는 순간 땡구는 이제 더이상 못참고 삼녀의 상반신을 통째로 물었다. 삼녀는 뭐라 반응할새도 없이 그데로 절명했다. 땡구는 삼녀의 상반신을 뱉고 사녀를 보았다. 사녀는 잠깐 굳어있다가 도망치는대신 한 손을 볼에 가져다 대었다.
아양이였다.
땡구는 사녀를 잘금잘금 씹어댔다. 삼녀와는 달리 고통은 오래갔고 다른 자실장들은 즉시 빵콘 하여 마마에게 달려 오들오들 떨 뿐이였다. 한참 후 남자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올때 녹진이는 다른 자실장들을 끌어 안은채 통곡 하고 있었고 땡구는 갈기갈기 찢겨진 삼녀와 사녀의 시체를 보며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듯 씩씩 대고 있었다.
그걸 보며 남자는 대충 일의 전말을 깨달을수가 있었다.
"똥벌레놈들...."
보나마나 자실장 두마리가 땡구를 상대로 분충짓 하다가 참교육 당한거겠지.
"한심한 녀석들 같으니..."
남자는 삼녀와 사녀의 시체를 대충 대문 너머 길건너편에 있는 논두렁에 던졌다. 드렁허리나 미꾸라지들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땡구야, 소세지 줄테니깐 화풀어."
"헥헥헥헥!"
땡구는 소시지라는 말에 기쁜듯 꼬리를 훽훽 치면서 남자에게 재롱을 부렀다. 남자는 그런 땡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녹진이에게 다가갔다. 오로롱 거리며 대성통곡 하는 녹진이의 머리를 살짝 걷어차며 "식사시간이다." 라고 말하며 밥그릇용 얇은 구덩이에 음식물 쓰레기를 쏟아부었다.
그러고는 집 안에 잠깐 들어가더니 개 전용 소시지를 가지고 와 땡구의 입에 직접 물려주었다.
녹진이는 마침 배고팠던지라 고개를 박고 자실장들과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치우며 원망하는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색눈물이 투명한 눈물로 바꾼지는 오래였다.
25일째,
녹진이는 먼저 간 삼녀와 사녀를 떠올렸다.
"괘씸하고 멍청한 년들이였던데스."
생각해보면 멍청한 것들이였다. 땡구가 두 녀석들을 물어 죽인건 괘씸 했지만 두 녀석은 그러지 않아도 본인이 독라달마형에 처할 예정이였다. 왜냐하면 멍청한 주제에 식탐만은 많아서 감히 마마의 음식을 함부로 먹어치우는 괘씸한 것들이였으니깐.
몰론 삼녀와 사녀가 살아있었을때는 다른 자매들보다는 많이 먹기는 해도 자실장인 이상 먹어치우는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녹진이가 이런 생각을 하는건 이유는 다름 아니라 성장한 자실장들의 식사량 때문이였다.
"테에... 더 없는테치?"
음식물 쓰레기 양은 여전... 아니, 이제 더이상 분쇄 해서 섞어서 줄 사료가 없게 된 이상 양이 줄어들었는데 자실장들은 몸집이 더 커졌기 때문이였다. 마당에서 음식물 쓰레기로만 연명 하는데 왜 이럴까? 그건 다름이 아니라 남자가 준 음식물 쓰레기에는 비계라던가 껍데기라던가 야채의 잔뿌리나 시든 부분이라던가 밥알들이 있는데다가 특히나 영양만점 사료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자실장들은 다른 들실장에 비하면 무럭무럭 자랄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사료는 이제 둥이 났고 남자는 혼자 살았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 양은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결국 자매들은 한정된 식량을 가지고 매끼마다 자매들과 싸우거나 혹은 벌레나 지렁이를 잡아 먹어야 했었다. 녹진이? 목줄에 묶여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무슨?
결국 녹진이는 결단을 해야 했다.
"자들 들어보는데스."
"뭐인테치?"
"밥시간인테치?"
"벌레씨?"
"전 오녀처럼 운치를 먹는테치?"
"밥!"
"우마우마!"
"똥노예가 또 진상을 하러온테치?"
"그건 아닌데스."
그러자 곧바로 실망을 하는 자실장들, 그러나 이어진 녹진이의 말에 다들 환호작약 했다.
"실망하지 말라는데스! 우마우마씨가 어디 있는지 이 대단한 마마가 예견한데스!"
"우마우마!"
"그게 어디에 있는테치?"
"노예가 진상 하러 오는게 아닌테치?"
"그건 바로! 달걀씨인데스!"
녹진이는 닭장을 가리켰다. 몇마리의 닭들이 평소처럼 꼬꼬 거리며 사료를 쪼아 먹거나 달걀을 품고 있었다.
"자들은 달걀씨를 먹어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것은 딱딱하고 동근 껍데기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저절로 하얗고 노랗게 되면서 우마우마한 밥씨가 되는데스! 하얀색 살점은 보들보들, 따뜻했고 노란색 살점은 진하고 고소한 맛이였던데스!"
주인이 어쩌다가 해준 계란 후라이가 참 인상적인 모양이였나보다.
그러자 자실장들은 저도 모르게 침을 줄줄 흐르며 녹진이가 말한 달걀씨를 벌써부터 스시나 스테이크에 비견 되는 최상의 진미로 인식 하기 시작했다.
"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테레비씨에서 본 바로는 그 달걀씨라는것은 저 닭씨들이 품고 다니는것인데스!"
"그런테치?"
"근데 그 달걀씨는 어디에 있는테치?"
"닭장에 있는데스."
"닭장? 마마가 가르킨 저 닭씨들이 있는 곳 말인테치?"
"그런데스, 자들은 이제 달걀씨를 가져와야 하는데스."
그 말에 자실장은 아우성거렸다. 아니, 가져올거면 본인이 가져와야 해야지 왜 고귀한 자기들에게 시키는것인가? 정말이 괘씸한 마마가 아닐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마가 첫날에 솎아낸 전 오녀ㅡ현 운치굴 독라 노예ㅡ의 옷씨를 들고 팔랑거리자 툴툴거리면서 닭장으로 갔다.
"테에에... 아타시보다 큰 테치..."
"계속 꼬꼬 거리는 테치."
"정말 안으로 들어가야하는테치?"
달걀씨를 가지러갈때는 아무 생각이 안들었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게 되니 위압감이 장난 아니였다. 마마만큼이나 큰 덩치도 그러했지만 날카로운 발톱과 뾰족한 부리, 그리고 자신들을 향해 못마땅하게 쳐다보는듯한 그 두 눈까지. 태어난지 이제 한달 다되가는 자실장들이 함부로 범접 할만한게 아니였다.
"테챠아아앗! 무엄한테치! 닭씨는 아타시의 세레브한 미식을 방해하지 말라는 테치!"
육녀가 그렇게 소리지르면서 닭장문 사이로 들어갔다. 그러자 칠녀도 질새라 육녀를 따라갔는데 그걸 보고 다른 자매들은 '감히' 저 분충년들이 자기들을 빼놓고 달걀씨를 독점 하려는것처럼 보이자 따라가려 했다.
그래, 곧이어 닭장 안에서 육녀와 칠녀가 수탉의 무자비한 부리 쪼임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테게에엑!"
"텍텍!텍텍!"
수탉의 부리는 육녀의 뱃가죽을 손쉽게 뚫고 그 속에 있던 분대를 뽑아냈다. 육녀는 테에엑 하다가 분대를 뱉어낸 수탉이 재차 위석을 쪼아내자 그대로 절명 했다. 칠녀는 그것을 보고 빵콘 하면서 재빨리 돌아가려 했지만 달걀을 품고 있던 암탉이 칠녀가 자신의 앞을 지나가자 흥미 본위로 부리로 머리를 쪼아대자 곧바로 백치가 되어버렸다.
"하무라뾰... 루빠모... 메빠소..."
다섯명의 자매들은 그것을 보며 빵콘 했다. 수탉은 이제 흥분해서 홰치자 혼비백산 해져버렸다. 자실장들의 눈에는 저 두려운 닭씨가 금방이라도 얇은 철망을 뚫고 자신들에게 날아올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자매들에게 싸리빗자루가 한번 쓸고 지나갔다.
"아니 이 새끼들 왜 여기서 빵콘하고... 엉? 뭐야? 닭장안에 두마리나 들어갔네?"
남자는 가만히 자실장들을 쳐다보았다. 자실장들은 난데없는 싸리빗자루질에 경황이 없어 하는가운데 달걀 만을 울부 짖었다.
"달걀씨! 아타시의 세레브한 미식이!"
"똥닝겐! 당장 저 닭씨들을 해치워버리고 달걀씨를 아타시한테 대령하라는텕!"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남자는 싸리빗자루로 자실장들을 쓸어다니면서 꾸짖었다.
"아니 이 새끼들이 진짜? 감히 누구 밥을 넘보는거야? 보나마나 니놈들 애미가 시켰구만!"
"테갸아아악!"
"텟치! 텟치! 어지러운! 텟치!"
"테데뎃!"
"테에엑!"
"테챠아아앗!"
"데, 데에엑..."
자실장들은 싸리빗자루에 쓸리고 쓸려 마침내 녹진이 앞까지 쓸려나갔다. 남자는 감히 자신의 식탁에 올라갈 달걀 후라이를 노린 녹진이를 쳐다 보았다.
"데스웅~♥"
남자는 녹진이의 턱을 한번 후려쳤다. 녹진이와 자실장들은 벌로 그날 저녁을 밥빼기 당했다.
58일째,
그간 녹진이와 자실장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 두가지 발생했다. 땡별에 잘 못먹고 못마셔 죽을뻔한걸 때마침 일주일 정도 장마기간이 오는 바람에 땡별에 말라 죽을 걱정도 못 마실 걱정 없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남자가 몇년동안 미뤄왔던 냉장고 정리를 했기 때문이였다. 시골집에 가보면 알겠지만 냉장고가 기본 두대에 먹을게 넘쳐나는 시골 특성상 먹을걸 이것저것 선물 받기 마련인지라 혼자 사는 남자가 제때제때 못 해치워 냉장고에 집어넣고 잊어 버린게 부지수였는데 남자가 장마가 와서 밖에 일 못나가자 이 참에 냉장고 정리를 하였고 그 결과 먹지도 못할 것들이 넘쳐났다. 남자는 이걸 즉시 녹진이한테 짬처리 시켰다.
그동안 본의 아니게 굶주림에 시달렸던 녹진이들은 똥노예가 이제야 알아 모신다며(한대 얻어터졌다) 꾸역꾸역 먹어치웠지만 거의 장마기간인 일주일 넘게 배부르게 지낼수가 있었다. 몰론 일주일 지나자 눈에 띄게 줄어든 양을 보고 녹진이는 식량 통제를 하였다. 좀 오래 가는것들은 자기가 따로 보관하고 금방 상하는것들만 먹어치우게 했다.
그리고 금방 상하는 음식들을 다 먹어치우고 덜 상하는 음식들만 남게 되자 녹진이는 지난 두달 동안 실추되었던 마마로서의 위엄을 일주일 동안 되찾을수가 있었다.
"데숭."
"마마! 오늘도 아타시에게 일용할 양식을 나눠주셔서 고마운테치!"
"테치! 오늘도 아름답고 근사한테치!"
"뒤룩뒤룩 접힌 살은 마마의 위엄을 나타나는테치!"
"마마! 오늘도 전 오녀에게 운치를 퍼부어 위계질서를 바로 잡는테치!"
"마마가 내려준 우마우마 경단, 잘 먹겠는테치!"
식량 배분을 끝낸 녹진이가 한번 헛기침을 하자 자실장들은 앞다투어 녹진이에게 아부를 했다. 그리고 남자와 땡구는 그 꼴을 보고 참 한심하다고 생각 했다. 그때, 열어놓은 현관문을 통해 다음 뉴스가 흘려나왔다.
ㅡ예, 올해는 장마가 작년에 비해 비교적 짧게 끝난 대신 태풍이 조금 이르게 찾아올 예정인데요
ㅡ기상청의 예보에 따르면 내일 오후 7시 쯔음에 태풍이 한반도 남부에 상륙해서 그 다음날 새벽 3시에 강원도 방향으로 대각선으로 빠져 나간다고 합니다.
ㅡ일부 학자는 이러한 날씨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날씨가 정말 불규칙 해진 것이라 하였습니다.
"뭐?! 장마가 끝난지 이제 일주일 밖에 안됬는데 벌써 태풍이 와?"
남자는 기겁하면서 즉시 태풍을 대비 하기 시작했다. 개집이나 도구처럼 바람에 날라가기 쉬운 것들은 죄다 창고 안에 쳐박아 놓았다. 닭들도 대충 철망 같은 걸로 창고 안에다가 임시 닭장을 만들어 그 안에다가 집어 넣은 후 문을 굳게 닫고 그 앞에다가 모래주머니를 쌓아 튼튼하게 보강 했다.
"땡구는... 우리 집에 오자."
남자는 마지막으로 집 밖에 날라다닐만한 것들이 없는지 재점검 했다. 닭장처럼 설치형 시설은 아쉽지만 이번 태풍에 무사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만들때 시멘트랑 나무, 철망을 써서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태풍은 그런거 상관 없이 죄다 부셔버리니깐. 남자는 집 창문들을 굳게 닫기 위해서 집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녹진이네 하우스를 바라보았다.
대충 판때기를 박아넣고 흙덩어리를 치덕치덕 발라 만든 초라한 하우스, 태풍이 오면 100% 날라갈게 뻔했다.
"흐음..."
남자는 잠깐 고민하다가 남아도는 모래주머니를 녹진이네 하우스 주변에 쌓았다. 그리고 작년에 쓰다 남은 시멘트를 반죽 해서 통째로 판잣집 외벽에 부었다. 딱히 녹진이를 위해서는 아니였고 녹진이의 병신짓을 지켜보는게 재밌어서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였다. 무엇보다, 진짜로 녹진이를 위해서였더라면 이번 태풍이 올때 녹진이와 자실장을 집안으로 들이거나 창고 안에 들여놨어야 했다. 허나 남자는 그러지 않았다.
녹진이가 살아서 병신 짓거리를 해서 웃겨주면 좋긴한데 이번 태풍에 죽어도 상관 없다.
이게 남자 안에서 녹진이의 인식이였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남자는 녹진이에게 먹다남은 김치찌개를 주었다. 돼지고기 살코기가 서너점 정도 들어 있었는데 녹진이는 그걸 보자 부리나케 달려와 고기들을 씹지 않고 집어 삼켰다. 남자는 그런 녹진이를 보며 비웃더니 이내 한 마디 했다.
"죽기 싫으면 네 판잣집 안으로 들어가는게 좋을꺼야."
"데엑?"
"테챠아앗! 마마가 고기를 다 먹은테치!"
"난 김치쪼가리라도 상관 없는테치!"
"테치! 마마! 똥닝겐에게 다시 고기를 진상.. 테붓!"
"닝겐사마! 똥마마를 숙청하라는 테치!"
"닝겐! 나를 후원하라는 테치!"
녹진이가 남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은 것은 그날 저녁이였다. 갑자기 눈을 제대로 뜰수 없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이내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지다가 빗줄기와 바람이 몸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데에에에엑!!!"
남자가 이중삼중으로 쌓아놓은 모래 주머니는 물기를 머금고 더욱더 무거워져 비바람을 훌륭히 막아내고 있지만 천장은 막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녹진이는 속절 없이 비바람에 시달려야 했다. 다행인것은 모래주머니가 옆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나 잔해들을 막아주고 있다는 점이였지만 그걸 이해할 지능이 없는 녹진이는 그저 남자를 저주하면서 새끼들을 꼭 안았다.
"테챠아아아악!!!"
"일가실각인테치!"
"테르르아아아악!"
"테갸갸각!"
"이타이한테치!"
자실장들의 비명에 안되겠다 싶은 녹진이는 자리에 일어나 자실장들을 하우스 안쪽으로 들여놓고 자기는 바깥을 향해 등을 돌려 비바람을 대신 막아주기로 했다. 허나 일어서는 순간 강한 바람이 모래주머니를 타고 넘어와 녹진이와 자실장들을 하우스 안쪽 벽에 몰아 부쳤다.
"데갸아아아악!!!!"
"테벳!"
"텟치!"
"테에엥!"
"텍!"
ㅡ파킨!
막내인 십녀는 벽에 부딪친 충격을 못이기고 그만 파킨 해버리고 말았다. 녹진이는 울부 짖으려 했지만 입을 벌리는 순간 바람이 입안을 왕창 헤집어버려서 나오는건 괴상망측한 말이였다.
"데뿌와아오아와와와왕~!"
결국 녹진이는 바람이 약해져 버린 틈을 타서 겨우 겨우 몸을 돌려 자실장들을 감싸안을수가 있었다. 그렇게 녹진이는 태풍이 지나가 잠잠해지는 새벽이 올때까지 그대로 비바람을 등으로 맞아야 했다.
녹진이는, 버텨냈다.
다음날 아침, 남자는 창문을 통해 하늘이 맑게 빛나는 것을 보자 즉시 문을 열었다. 창고 문 앞을 가로 맞은 모래주머니를 치우고 문을 열자 닭들은 임시 닭장 안에서 얌전히 꼬꼬 거리고 있었다. 원래 있던 닭장은 그리 심하게 파손 되지 않았다. 끽해봤자 문 경첩이 약간 뜯겨나간 정도?
남자는 닭들을 원래 있던 위치에 돌려 보내고 개집도 꺼내놨다.
"멍!"
"그래, 땡구야. 너도 집이 좋지?"
남자는 태풍으로 지저분해진 마당을 쓸기 위해 싸리빗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한참을 열심히 마당을 쓸다가 문득 녹진이를 떠올렸다.
"아니, 내가 왜 이런 꿀잼을 놓친거지?"
마당 한구석에 있던 녹진이네 하우스로 가보니 판때기 천장은 진작에 뜯겨나갔다. 그리고 녹진이는 탈진한 모습으로 자실장들을 꼭 끌어 안고 있었는데 남자가 다가오자 힘 없이 울었다.
"데스우..."
가만히 살펴보니 다섯마리의 자실장 중 1마리가 죽어있었다. 남자는 피식 웃으며 한 마디 했다.
"그정도면 많이 살았네?"
"데샤아아아아아....."
녹진이는 으르렁 거렸지만 밤새 태풍에 시달린 녹진이의 입에 나오는것은 매가리 없는 울음 뿐이였다. 남자는 그런 녹진이와 자실장들을 위해 특별히 싹난 감자 한박스를 퍼부어줬다. 색눈물은 다시금 투명해졌다.
68일째,
한차례 큰 풍파를 겪은 녹진이네 하우스, 다행히 남자가 모래주머니도 치워주고 뜯겨나간 천장도 다시 보수해줬다. 그동안 그들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잠을 자다가 밥시간 되면 감자와 음식물 쓰레기를 먹었고 배부르면 운치를 싼 후 다시 잠을 잤다. 그렇게 열흘 가까이 지나자 녹진이와 자실장들은 기력을 되찾을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먼저 한 것은 내분이였다.
"테샤아아악! 더이상 못참는테치 무능한 똥마마!"
"뭐, 뭐라고 한데스?"
"오마에가 무능하기 때문에 아타시들은 굶주리고 목마르고 비바람에 시달려야 한 테치!"
"맞는테치! 뭐? 우마우마의 공정한 분배? 그거 다 똥닝겐이 마련해준거지 오마에가 주는건 아닌테치!"
차녀와 팔녀가 그렇게 대들자 녹진이는 마마로서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몸소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순간 차녀와 팔녀는 그럴줄 알았다는듯 쨉싸게 몸을 돌려 마당을 달려갔다. 녹진이는 쫒아가려 했지만 목줄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결국 녹진이는 씩씩 대면서 한 마디 했다.
"밖은 지옥인데스. 전 들실장으로 살아온 와타시가 보증 하는데스."
장녀와 구녀는 한심하다는듯 녹진이를 쳐다보았다. 허나 녹진이의 말은 맞았다. 차녀와 팔녀는 마당에서 살아온 나날이 지옥 같다고 생각 했지만 그것은 틀렸다. 아늑한 집안은 아니였지만 담벼락이 그들을 지켜주었고 관록 있는 사냥개 땡구가 고양이나 잡짐승이 함부로 집안에 들어오는걸 막아주었다. 거기에 매일매일 음식물 쓰레기이지만 먹을게 부족하나마 보충 되었으니 태풍 같은 재해가 아닌 이상 남자의 집, 벽 안은 그녀들을 지켜주었다.
"테치... 긴 풀씨인테치..."
"물씨가 많은테치!"
차녀와 팔녀는 시시덕 거리며 논밭을 구경 했다. 태어나서 두달 넘게 마당에서만 살아온 자실장들에게 마당 밖, 집 밖은 정말이지 신기한거 투성이였다. 팔녀는 신기하다는듯 논을 내려다 보았다. 정말로 많은 물들이 가득차 있었고 자신의 얼굴과 푸른 하늘이 비쳐졌다. 떡하고 입을 벌리다가 무언가가 물 밑에서 쏜살처럼 지나가자 테엣! 하고 놀랬다. 신기해서 손을 뻗다가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그만 논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풍덩!
"테에엣!"
"무슨 일인테치?"
"물에 빠진 테치!"
그 말에 차녀는 주변을 둘러보는걸 멈추고 즉시 팔녀에게 다가갔다. 팔녀는 물속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다.
"일어서지 못하겠는테치!"
"도와주겠다는테치!"
차녀는 즉시 논 속으로 들어갔다. 차갑지만 기분 좋은 시원함이였다. 차녀는 부르르 떨며 팔녀에게 다가갔다. 허나 다가갈수가 없었다. 차녀의 발이 진흙 속에 빠져버린 탓에 한 발자국 내딛으려 해도 진흙이 발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럴수 없던 것이였다.
"텟치! 텟치!"
설상가상으로 몸부림 칠때마다 몸이 진흙 속으로 잠겨들기 시작했다. 결국 목까지 물에 잠기고 나서야 두 자매는 서로 악다구니를 퍼붓기 시작했다.
"오마에 때문인테치! 오마에가 경솔하게 빠져버린 탓에 나도 이 꼴이 되버린테치!"
"헛소리 마라는 테치! 차녀는 오네 주제에 약하니깐 고귀한 아타시를 구하지 못했기에 이런 꼴이 되버린테치!"
"테샤아아악!!!"
"테샤아아아앗!!!!"
그렇게 서로 악다구니를 쓰는 와중에 무언가가 팔녀에게 다가갔다. 아까 팔녀가 논 바깥에 있었을때 보았던 무언가였다. 그것은 메기였다. 원래 여기 살던 메기는 아니였지만 이 밭의 주인인 농부가 친환경 농법을 시도 해본다고 풀어 버린 까닭에 여기 살게 되었다. 메기는 자신의 앞에서 부주의 하게 첨벙 거리는 두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몸의 절반 크기만한 생명체는 척 봐도 굼떠보였다.
"테, 테치?"
"이, 이게 뭔 테치? 긴긴씨 아닌테치?"
30cm 에 달하는 메기는 아무리 커봤자 15cm 도 안되는 자실장들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커보였다. 자신의 주변을 느릿하게 헤엄치고 있는 메기는 아무리 멍청한 자실장이라 할지라도 곧이어 벌어지는 슬픈 일을 짐작 할 수가 있었다.
"테, 테챠아아앗! 똥마마! 똥오네! 다, 당장 아타시를 구하라는 테치이이이읽?!"
결국 공포에 견디다 못한 팔녀가 발버둥치는 순간 메기가 그 입을 쩍 벌리고 팔녀의 상반신을 집어 삼켰다. 메기는 짓소산을 느꼈다. 맛있다! 메기는 곧바로 남은 하반신도 마저 먹어치웠다. 그러고는 넋나간 표정으로 아첨 하고 있는 차녀를 바라보았다.
"텟츙?"
공포심에 빠져 짓소산이 전신 끝까지 배출된 차녀는 더더욱 맛있었다.
230일째,
이제 완전히 겨울이 되었다. 남자는 핫초코를 호로록 마시면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 밖에는 따뜻한 털 스웨터를 입은 땡구가 추위를 느꼈는지 두꺼운 거적으로 외벽과 내벽을 두르고 입구는 이중 삼중 두거운 비닐 다발을 설치해서 바람을 막고 벽에도 열선을 깔아놔 따뜻한 개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그걸 보며 주변에 모래주머니를 쌓아 바람을 더 막게 해볼까? 생각해봤다. 닭장은 더더욱 보강해서 동사할 걱정은 안해도 된다.
"흠..."
남자는 마지막으로 녹진이네 하우스를 바라보았다. 구녀는 온데간데도 없다. 왜 없냐면 10월 말 감 수확시기때 어쩌다가 땅에 떨어진 홍시를 한번 맛보고는 아마아마를 맛보겠다며 설치다가 설익은 감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핏자국이 되고 말았던 것이였다.
남자는 그때 그 구녀의 시체를 감나무 밑에 묻어놨다.
애도의 의미는 아니고 비료라도 되라고.
철컥,
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온 몸을 으슬으슬하게 만든다. 세상은 온난화다 뭐다 해서 겨울이 더이상 따뜻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이런 산골짜기는 이야기가 다른법, 예년처럼 싸늘한 바람이 그를 반겨줬다. 남자는 녹진이에게 다가갔다.
녹진이는 얼어죽은 장녀를 앞에 둔채 어디선가 날라온 신문지를 이불 마냥 두른채 덜덜 떨고 있었다. 남자는 장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옷은 벗겨져 있었고 장녀는 한껏 웅크린 자세로 죽어 있었다.
"옷을 뺏었구나?"
"데에....."
사실 녹진이가 가지고 있는 자실장의 옷은 딱 하나 밖에 없었다. 첫날 바로 녹진이에게 투분 하며 대든 오녀의 옷 뿐이였고 태풍에 죽은 십녀는 아직 모성애가 있었던 녹진이가 손수 묻어준 탓에 그녀의 손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머지 자실장들은 죄다 녹진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죽었기 때문에 녹진이가 옷을 챙기지 못했다.
유일한 하나, 마지막 까지 살아남은 장녀를 빼고 말이다. 녹진이는 품안에 안긴 장녀와 오녀의 옷가지를 꼭 껴안더니 마침내 힘이 다 빠진 모양인지 벌러덩 뒤로 넘어졌다.
주르륵
남자는 닫을 생각도 못하는 녹진이의 입에 핫초코를 부었다. 혀에 달콤함이 느껴지고 목구멍 너머로 따뜻함이 느껴지자 전신에 활력이 돌아오는것을 느낀 녹진이는 흐리멍텅 해진 두 눈이 다시 또렷해졌다. 녹진이는 갑자기 미친듯이 쪼갰다.
작년 겨울 이후로 다시 맛을 보지도 못했던 핫초코를 마시게 되자 남자가 다시 자신을 사육실장으로 들인다는 착각에 빠진 것인가? 혹은 조금 기운이 돌아오자 자신이 장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아서 실성을 한 것인가? 둘 중 어떤 생각을 하고 있던 걸까?
한참을 웃던 녹진이는 갑자기 색눈물을 흘렸다. 빨갛고 푸르게 빛나는 아름다운 눈물을, 눈물은 한방울씩 흘려나가더니 이내 멈췄다. 녹진이는 마지막으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주인사마, 정말로 죄송한데스. 그리고 그때 와타시를 거둬줘서 고마웠던데스. 주인사마와 함께 했던 나날은 정말로 즐거웠던데스."
"오냐,"
잠시후 남자는 밥그릇용 웅덩이를 깊게 파냈다. 그는 거기에다가 제대로 된 사육실장복을 입은 녹진이와 장녀를 담요에 감싼채 묻었다. 녹진이가 아직 자실장 시절에 입었던 사육실장복을 남자는 어째선지 여태 가지고 있었다. 깊게 묻고 녹진이네 하우스를 허물어 그 위에 봉분 까지 만들어 놓은 남자는 운치굴에 갔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오녀가 운치가 발효하면서 나오는 열로 인해 이 강추위에도 아직까지 목숨을 연명 하고 있었다.
"야."
"테엣? 너, 너, 똥닝겐 잘만난테치! 어서 세레브하고도 고귀한 아타시를 궁전으로 모시라는테치!"
"니 마마랑 자매들 다 죽었다."
그 말에 오녀는 멍하니 있다가 이내 비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테치치치! 그 무능한 똥마마와 멍청한 자매들이 죽었다니 마땅한 결말인테치! 감히 이 고귀한 아타시를 이곳에 유배 시키다니 천번 죽어도 모자르는테치!"
"그러냐? 그나저나 너도 참 징글징글하다. 네 마마는 마지막에 정신 차렸는데 너는 아직도 그러냐?"
"아타시는 제정신인테치!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도 세레브한 아타시는 이 궁벽한 곳이 아니라 궁전에 살아야 하는 테치!"
"그래, 그래, 궁전에 살게 해주마."
"테치치치! 이제야 말귀를 알아 듣는테치!"
"지하 궁전에 말이야."
남자는 곧바로 삽을 들어 운치굴 구멍을 매꿨다. 여기까지 와놓고도 오녀는 참으로 징글징글 했다. 그러고보니 첫날 자신을 보자마자 먼저 투분 했던게 저 녀석이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해서 잘 모르겠다. 남자는 녹진이의 무덤을 향해 한 마디 했다.
"쟤는 진짜 안되겠다."
그때 어디선가 동의한다는듯 데스웅 하는 소리가 들린것 같았다. 바람 소리인가? 남자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 남자는 실장석을 일평생 다시는 기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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