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가 돌아오지 않는 테스…”
중실장 정도로 뵈는 실장석이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걱정스레 말을 꺼냈다.
비가 온다. 푹푹 찌던 늦여름이었다면 은혜의 손길이었을 것이 완연히 겨울로 들어가는 이 시기에는 사신의 낫질보다도 더 소름 끼친다.
그것은 이 산이라 부르기 힘든 언덕배기도 온다. 명칭은 공원이지만 그저 동네의 언덕 하나에 체육관과 운동장을 지어 놓고 지역 주민들의 산책길 정도로만 쓰는 언덕. 그 언덕 산책로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숲, 그리고 그 중 한 그루의 나무 밑에 있는 토굴에는 한 실장석 일가가 살았다.
친실장과 중실장 하나, 자실장 셋, 그리고 저실장이 둘.
친실장이 꽤나 수완이 좋은지 토굴 안에는 박스가 장판 마냥 깔려있고 드러난 나무 뿌리가 가려주지 못하는 곳에는 군데군데 비닐이 둘러쳐져 빗방울이 들어오는 걸 막고 있었다.
“오네챠, 마마는 아직인 테치?”
중실장 옆에서 아직 자실장 크기의 실장석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말을 건낸다. 중실장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마 조금 늦어지는 모양인 테스. 들어가서 이모토들과 더 놀고 있는 테스.”
안에서는 작은 자실장 두마리가 저실장들을 프니프니하며 놀고 있었다.
동생을 들어보내고 장녀는 무심하게 추적추적 비가 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닝겐에게 잡히기라도 한 거 아닌 테스까…”
닝겐.
무서운 그 이름. 실장석을 잡아가고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악마. 장녀는 친이 닝겐에 대해 가르쳐준 것을 상기했다.
[자들, 잊지마는 데스. 절대로 닝겐들에게 가까이 가면 안 되는 데스.]
친은 가족이 다 모일때가 있으면 늘 그렇게 가르쳤다.
[닝겐들은 와타시타치를 보면 잡아서 죽이려고 하는 데스. 그 자리서 죽이지 않아도 초록 봉투씨에 넣어버리거나 하면 그 안에서 굶어죽거나 무서운 철컹철컹씨에 들어가서 갈려죽는데스.]
그러면서 친은 두 팔을 들고 아래위로 맞부딫히며 철컹철컹하는 소리를 내고 그것을 본 자실장들은 공포로 몸을 떨었다.
[마마, 그래도 친절한 닝겐상도 있지 않은 테치?]
[친절한 닝겐상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닝겐들이 더 많은 데스. 게다가 삼녀, 오마에가 봤을 때 그 닝겐이 친절한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데스?]
사녀의 물음에 친실장은 엄한 얼굴로 답했다.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되는 데스. 먹을 것을 준다든지 착해보인다든지 하는 이유로 그 닝겐을 의심없이 따라갔다가 돌아오지 않게 된 동족들을 많이 본 데스.]
[마마, 그래도 그 오바상들은 사육실장이 되어서 안 돌아온 거 아닌 테치?]
이번에는 차녀가 묻는다. 실장석들의 빈약한 상식선에서는 그렇게 판단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럴리는 없는 데스.]
하지만 친실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와타시는 본 데스. 사육실장이 되었다고 희희낙락했던 동족들은 갈갈이 찢긴 채로 녹색 봉투씨에 담겨 있었는 데스.]
마치 그때 그 광경이 재현되기라도 한 듯 친실장은 몸을 부르르 떨며 몸서리 쳤다.
[와타시는 절대! 절대 닝겐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인 데스. 와타시는 똑똑한 마마의 가르침을 받은 데스. 그렇기에 와타시는 닝겐에게 굴복하지 않을 정도로 똑똑한 데스!]
친은 단호하게 말했다.
장녀는 잠시 눈을 감는다. 객관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장녀는 스스로가 그리 현명하거나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마마의 반 정도는 될까? 아마 그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더하진 않을 것이다. 친도 늘 장녀는 왜 그리 우둔하냐며 혼내고는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장녀는 하지 말아야 할 짓에는 손을 대지 않고 살아왔다. 자신은 멍청하다. 우둔하다. 그래서 어떤 유혹이든 접하게 되면 넘어가 버릴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그런 유혹의 눈에 들지 않게 살아야 한다. 만약 접하더라도 어떤 마음도 먹지 말고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오네챠, 마마 안 오는 테치?”
상념에 잠겨있던 장녀를 깨운 건 차녀와는 다른 동생의 목소리. 삼녀다. 아마 구더기 프니프니도 끝내고 더 할 게 없어진 탓이겠지.
“와타시가 한번 찾아보겠는 테스. 삼녀는 차녀와 같이 문을 잠그고 있는 테스.”
삼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안으로 쪼르르 들어간다. 장녀는 그 모습을 보며 씩 웃고는 옷깃을 여미고 산을 내려갈 준비를 했다. 친이 이렇게까지 늦는 경우는 잘 없다. 똑똑한 마마인 만큼 무슨 일이 생겼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한 번 찾으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장녀 오네챠, 와타시도 가도 되는 테치?”
어느새 나온 차녀가 걱정스레 물어본다. 장녀는 고개를 저었다.
“차녀는 이모토챠들과 구더기를 돌보는 테스. 삼녀와 사녀는 아직 어려서 혹시라도 문을 제대로 못 잠그거나 할 수 있는 테스.”
만약 와타시가 잘못되면 오마에가 그때부터 장녀인 테스,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장녀는 굳이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늘 위험이 도사리는 실생이지만 그걸 지금 상기시켜 불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느덧 내리던 가을비는 부슬비같이 변했다. 그런 부슬비라도 실장석의 누추한 옷은 충분히 적실 수 있다. 젖은 옷에서 서서히 에워오는 추위에 떨면서도 장녀는 마마와 같이 몇번 내려가본 길을 따라 산 밑으로 조금씩 내려갔다.
이윽고 다가온 산의 초입. 장녀는 망설였다. 마마와는 여기까지만 와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밖은 닝겐의 영역이다. 이곳을 나가면 어떤 위험과 유혹이 있을지 모른다.
자신은 거기에 저항하며 마마를 찾아올 수 있는가?
장녀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마마를 찾지 못하면 일가실각이다. 경험많고 똑똑한 친이 없으면 남은 중실장과 자실장들로서는 절망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판사판이다. 장녀는 한 발을 내딛었다.
다행스럽게도, 산 입구를 나간 지 얼마되지 않아 장녀는 친을 찾을 수 있었다. 친은 살아있었다! 그것도 멀쩡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듯 증표같이 생긴 무언가를 쥐고는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마마!”
장녀는 가쁨과 반가움에 친을 불렀다.
“덱?! 오마에 장녀…어떻게 여기 온 데스까?”
장녀는 순간 당황했다. 친의 얼굴에 띈 표정은 반가움이 아니다. 의아함과 당황스러움이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간신히 자신을 찾아온 자식을 만날 때 지을 얼굴은 아니다.
“마, 마마. 여기서 뭐하시는 테스. 어서 돌아가는 테스. 이모토챠들이 기다리는 테스.”
장녀는 간신히 감정을 수습했다. 마마도 너무 놀라서 그런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배신하듯 친은 장녀의 청을 거부했다.
“오마에만 돌아가는 데스. 와타시는 안 가는 데스.”
“마마?”
왜? 어째서?
장녀의 마음을 읽었는지 친실장은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와타시는 사육실장이 된 데스.”
사육실장!
그 말에 장녀는 가슴에서 환희가 들어차는 느낌을 받았다. 그 어떤 실장이 이 말에 두근거리지 않을 수 있을까?
들실장의 삶은 늘 고단하다.
자나 깨나 습격 등지에 떨며 잠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삶.
배고프지 않게 먹을 수 있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삶.
추울 때는 동사의 위험에 직면하고 더울 때는 말라죽을 위험에 노출된 삶.
콘페이토는커녕 단 것이 무엇인지도 한 번 먹어보지도 못하고 끝나는 삶.
이 모든 것이 사육실장이 되면 해결된다.
하지만,
“하지만 마마. 마마는 언제나 닝겐상이 사육실장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 믿지 말라고 한 테스.”
장녀는 친이 늘 강조하듯 말한 것을 기억했다. 닝겐은 영악하고 변덕스럽다. 그러니 절대로 가까이하지 말아라.
“데프픗. 와타시는 똑똑한 데스. 이 닝겐상이 애호닝겐인지 아닌지 정도는 딱 봐도 알 수 있는 데스야. 게다가,”
그러나 평소 자신이 하던 말을 스스로 부정하며, 친은 양손을 허리에 짚으며 뽐내듯 말했다.
“만약에 학대닝겐이라고 해도 어떻단 말인 데스? 와타시는 그런 닝겐조차 애호닝겐으로 만들 수 있는 데스. 마마에게서 전수받은, 그리고 와타시가 살면서 갈고 닦은 스킬만 있으면 능히 그럴 수 있는 데스.”
초승달 눈을 뜨며 웃는 저 존재는 정말로 자신의 친이 맞는가? 자신의 지식을 믿어 의심없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는 친실장은 더 이상 장녀가 알던, 마마가 아니었다.
“오마에같이 한심한 실장은 못 하는 데스. 하지만 와타시는 할 수 있는 데스.”
“마마…”
망연자실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장녀를 보고 친은 다시 한번 비웃듯 데프프픗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친실장은 곧 정색을 하더니 차갑게 읊조렸다.
“닝겐은 자가 있으면 귀찮다고 한 데스. 그래서 와타시는 자가 없다고 한 데스. 그러니…”
친의 표정이 급격하게 험악해진다.
“어서 저리 가는 데스! 다시는 와타시 눈 앞에 나타나지 마는 데스. 오마에든 다른 자든 나타나면 모르는 들실장이라고 하고 죽여버릴 것인 데스!”
눈에 불똥이 튄다고 하는 게 이런 것일까?
“마마, 절대로 닝겐들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한 건 마마인 데스…”
장녀는 절망감에 몸부림치며 다시 한번 친을 설득하려 애원했다.
“와타시는 다를 것인 데스! 와타시는 할 수 있는 데스! 뭘 보는 데스까? 천한 들실장 따위가 닝겐노예를 얻은 사육실장을 감히 굽어보는 데스? 어서 썩 꺼져라 데스!!”
친은 이제 숫제 네발로 땅을 짚고 위협했다. 실장석의 저 위협자세는 진심으로 상대방을 해치려 할 때 나오는 자세다.
장녀는 터져나올 거 같은 울음을 삼키며 산을 향해 뛰었다.
사육실장은 친자간의 정도 간단하게 내칠 정도의 유혹이란 것인가…그 똑똑하다가 자부했던, 그렇기에 절대 닝겐상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했던 마마조차도 저럴 정도로 그게 그리도 좋단 말인가?
장녀는 소리죽여 오열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네챠!”
장녀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흠칫 몸을 떨며 정신을 차렸다. 차녀다. 차녀가 왜 여기에? 장녀는 주위를 둘러본다.
“오네챠, 무슨 일인 테치요?”
집이다. 그리운 집이다. 차녀가 있고 다른 가족들이 있는 집이다. 아마 정신없이 뛰어오면서 집까지 온 모양이다. 장녀는 크게 한숨을 내 뱉었다. 안도일까 아니면 절망일까? 아니, 둘 다겠지…
“오네챠, 마마는 어떻게 된 테치?”
말없이 한숨을 내 쉬는 장녀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낀 건지 차녀의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차녀…마마는…”
장녀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씁쓸한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닝겐에게 발각된 테스. 아마...”
차마 말을 잊지 못했지만 차녀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비록 그 의미가 장녀가 본 것과는 다른 것이었겠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와타시도 간신히 도망쳐 온 테스…와타시도…간신히…”
장녀는 목이 매이는 것을 느꼈다. 적녹의 눈에서 흐르는 것은 아마도 빗물이겠지. 차녀의 눈에도 두줄기 색색의 빗물이 흐른다. 집 안에는 비도 오지 않고 그 물에 색깔은 더더욱 없으련만. 두 자매는 그렇게 서로를 마주보고 잔혹한 현실을 마주했다.
남겨진 4자매의 운명은 그야말로 혹독 그 자체였다.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한다는 지식이 없어서 친으로부터 짬짬이 전수받은 지식과 그나마 남아있는 보존식을 먹으며 버텼다.
하지만 결국 그 모진 추위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사녀가 동사했다. 부족한 들의 삶 속에서도 착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였건만 운명의 신이라는 작자는 자는 동안 사녀의 생명을 거두어 버렸다. 겨울의 땅은 실장석의 손으로는 도저히 팔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해서 자매들은 마치 풍장 마냥 보이지 않는 곳에 사녀의 시체를 올리고 다른 동물들이 처리해줄 것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사녀와 특히 친했던 삼녀는 그날 울다가 까무러칠 뻔했다.
차녀는 먹이를 구해보려 빌라촌까지 내려갔다가 운행하던 차에 깔려 죽었다. 보존식이 동이 나자 장녀와 차녀가 각각 반대 방향으로 내려갔다가 차녀가 변을 당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벽시간대에 치인 데다 그 직후 비가 와서 차녀의 존재를 씻어 내려버렸다. 그래서 그 누구도 그 언덕에 실장석이 사는 지는 몰랐다. 하지만 희미할지언정 냄새는 남는다. 남아있는 냄새로 차녀가 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렸다는 것을 안 그날 장녀와 삼녀는 차녀의 시체조차 건지지 못했음에 하루 종일 오열만 했다.
저실장 두 마리는 새해가 밝았을 무렵 사이좋게 굶어 죽었다. 비록 자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족같이 여기며 살았기에 저실장들의 표정은 아사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해맑기 그지없었다. 장녀는 그들의 포대기를 벗기고는 한 마리를 말없이 삼녀에게 내밀었다. 땅은 여전히 얼어붙어 딱딱하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구멍을 팔 체력조차 아껴야 한다. 둘은 피눈물을 흘리며 저실장을 먹었다.
그렇게 구차한 삶이라도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던 두마리는 끝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했다.
어느 새벽 언덕 근처에 위치한 빌라촌. 이제 간신히 봄의 해가 고개를 내밀고 아직 쓰레기 수거차조차 움직이지 않는 시간대지만 그런 시간임에도 두 뭉치의 그림자가 무언가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네챠, 이걸 보는 테스. 밥으로 할 만한 게 많이 있는 테스.”
두 뭉치 중 하나, 이제는 중실장으로 성장한 삼녀가 조용히 장녀를 부른다.
“대박테스. 어서 봉지에 옮겨담는 테스.”
삼녀가 가리킨 봉지를 보며 장녀가 작게 환호한다. 어둡지만 그럼에도 음식물이 가득 찬 것이 보일정도로 빵빵한 봉지. 둘은 능숙한 손길로 봉지의 묶음을 풀어헤치고 가져온 다른 봉지에 음식물 쓰레기를 옮겨 담는다.
“며칠간은 밥 걱정은 없겠는 테스 오네챠.”
“그런 테스.”
음식물 쓰레기를 옮겨 담으면서 두 자매는 힘든 줄 몰랐다. 겨우내 지옥 같은 삶을 살아온 자매에게 음식물 쓰레기는 진수성찬이다.
“그럼 이걸 옮겨 담고 있는 테스 삼녀챠. 와타시는 생활용품이나 이런 걸 조금 더 찾아보는 테스.”
장녀는 가지고 온 다른 봉지를 피며 말했다.
“알겠는 테스요 오네챠. 하지만 조심하는 테스.”
“알겠는 테스.”
자신을 걱정해주는 삼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장녀는 조용히 발을 떼며 주위를 살폈다.
“음? 뭐인 테스까? 저건…”
무언가 큰 봉지가 있다. 어쩌면 저기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호기심에 다가가던 장녀는 그러나 희미한 빛이 알려주는 봉지의 색을 본 순간 숨을 삼켰다.
녹색의 봉지.
그것은 예전에 친이 알려주었던 봉지였다. 실장석을 폐기하는 봉지.
그리고 그런 봉지의 용도를 증명하듯 녹색봉지 안에는 독라에 달마, 그것도 모자라 석녀에 온 몸이 멍들고 찢겨 있는 성체가 들어있었다. 그 주변에는 역시나 찢긴 포대기와 우지챠들의 조각이 같이 있는 걸 보면 강제출산도 당한 것 같다. 살아있는 우지챠들도 있었으나 그저 살아만 있을 뿐. 소리 없는 외침만이 가득하다.
“심한테스…절대 닝겐들에게 가면 안 되는 테스.”
분명 모진 학대를 당했겠지. 장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순간, 죽은 줄 알았던 성체의 눈알이 희미하게나마 움직여 장녀를 쳐다봤다. 그 모습에 장녀는 놀라 소리를 지르며 쓰러질뻔 했지만 간신히 입을 틀어막고 다리에 힘을 주며 버텼다. 소리를 질러 존재를 들키면 실각이다.
그 성체는 분명 살아있었다. 생명의 반응은 그리 크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있었다. 아마 봉지에 담겨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어제 밤에 담겨 나온 게 아닐까?
놀람도 잠시 장녀는 조심스레 봉지로 다가갔다. 함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이 주변에 자신들 외에 동족이 있었단 사실이 장녀의 행동을 지배했다.
봉지 가까이 다가가자 어떤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다. 잘 보니 녹색 봉지의 묶인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냄새였다. 동족식도 시킨 건가, 평소 같으면 그리 심하지 않은 실장취가 이렇게 두꺼운 봉지 틈새로 흘러나오는 걸 보면 닝겐은 이 성체에게 동족, 아니면 정말 심하게도 이 성체가 낳은 자식들을 도로 먹였을 수도 있다. 장녀는 닝겐의 그 잔인함에 다시 한번 치를 떨었다.
그런데 이 냄새, 왠지 모르게 친숙하다. 분명 어디선가 맡은 적이 있는 냄새인데…
냄새??
마마다! 장녀는 순간 놀라서 가져온 봉지를 떨어트렸다.
마마다. 확실하다. 봉지 입구가 꽉 묶여있어 희미할지언정 분명 마마의 냄새다. 자신들을 버리고, 다른 동족은 안 될지라도 자신은 누구보다도 닝겐의 무서움을 잘 알정도로 현명하기에 닝겐을 현혹시킬 수 있다며 호랑이의 아가리에 뛰어든 마마다.
“…”
“…”
온 몸이 성한 곳이 없는 성체실장이 장녀를 바라보고 있다. 한쪽만 남은 그 공허한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이미 몇번을 울었다 말랐는지 모를 그 녹색의 와디(사막에 있는 건천. 우기에만 물이 흐름)에 녹색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와디에 내리는 물과 달리 생명의 물은 아니었다.
장녀는 그런 친을 그저 담담하게 바라봤다.
친실장은 무엇이라도 말하려는 건지 입이 벙긋거린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아니, 뭔가 말하려고 했어도 두꺼운 초록빛의 비닐에 가로막혀 들리지 않았을 거다.
“이 녹색봉지는 무엇인 테스? 우마우마한 냄새가 나는 테스야.”
어느새 삼녀가 장녀 곁으로 다가오더니 말을 건낸다.
“삼녀차, 돌아가는 테스. 저건 와타시타치를 가두는 무서운 봉지인 데스. 게다가 가져가도 너무 두꺼워서 찢지도 못하고 힘만 드는 테스.”
“테에, 아까운 테치”
말과는 다르게 미련없이 돌아서는 삼녀. 오늘의 수확은 충분하다. 그 봉지 속 내용물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둘은 조용히 보금자리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앞장서는 삼녀의 뒤를 보며 장녀는 아까 친이 무언가 말을 하려던 것을 떠올렸다.
무슨 말이었을까? 너희는 절대로 나처럼 되지 마라? 아니면 잘못했으니 구해달라? 그것도 아니면 자기를 구해서 낳아준 은혜를 갚아라?
장녀는 피식 웃었다. 이제와서 구해줄 마음도 없었지만 애초에 구하고 싶어도 구할 방법도 없었다. 하지만 예전에 친실장이었던 그 존재가 뭐라 말했든지 간에 하나는 확실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 테스. 마마도 현명했지만 결국은 실장석이었던 테스… 그저, 그저 와타시는 다를 거라는 믿음으로 파멸하는 평범했던 실장석이었던 테스.”
장녀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비가 오려나? 구름이 짙어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장녀는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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