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며 본격적인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청록공원의 관리인 도석기는 순찰을 마치고 관리소로 돌아와 관절과 뼛속을 지독히 시리게 하는 한기를 내쫓았다. 그는 나이가 든 만큼 예전같지 않은 자신을 느끼며 창밖을 쳐다봤다. 이맘때가 되면 청록공원은 아름답게 꾸며진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경하러 오는 커플들로 붐빈다. 그는 즐겁게 사진을 찍고 구경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푸근하게 미소를 지었다.
“보기 좋구만…”
아내를 잃고 맞이하는 두번째 크리스마스이건만, 가슴 깊숙이 시려오는 외로움은 여전했다. 오히려 이전날보다 더욱 생생히 그의 폐부를 찔렀다. 서로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이들을 보고있자면 젊은 때 아내와의 모습이 떠올라 그 자상들을 치유해줬다.
“오빠 이거봐. 여기 트리 진짜 이쁘다.”
공원의 정가운데에 위치한 트리는 커플들이 사진을 찍는 필수 코스였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트리를 보며 도석기는 씁쓸함을 느꼈다.
“한 삼년만 젊었어도…”
크리스마스 트리는 업체에게 맡겨 꾸민다. 하지만 이외의 장식물들은 모두 관리원들의 손을 거친다. 도석기는 그런 장식물 작업에 있어서 단연 열심이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 트리는 도석기의 루돌프, 산타 장식이나 꽝꽝나무로 만든 일루미네이션에 밀려 2등신세였다. 방송국에서 나와 청록공원을 취재해가기도 했다. 전부 그의 솜씨가 한물가기 전의 이야기였다. 이제 그는 루돌프는 커녕 나무에 조명다는 것조차 힘에 붙였다.
그는 간간이 순찰을 돌며 공원 풍경을 지켜봤다. 순찰을 도는 그의 다리가 오늘따라 무거웠다. 나이때문일까 아니면 주위 풍경과 동떨어진 자신의 처지 때문일까.
홀로 찾아온 마지막 관객도 나간 깊은 새벽이 찾아오자 그는 바지를 털며 일어났다. 등유난로 옆에 둔 큰 마대를 열자 가득 찬 흙이 나타났다. 마대 속을 손으로 퍼본 그는 가득 담겨오는 흙을 보며 만족스런 웃음을 짓는다.
“이정도면 잘 녹았구만.”
그는 끙끙대며 마대를 끌고 나가 리어카에 실었다. 그리곤 쓰레기봉투들과 집게나 삽들을 더 챙기곤 리어카를 끌고 공원을 돌기 시작했다.
그가 이 추운 새벽에 나온 것은 다름아닌 구제작업을 위함이었다. 청록공원은 상당히 큰 공원인만큼 봄 여름 가을 간 구제작업도 체계적으로 이뤄졌으나 그럼에도 겨울까지 살아남는 실장석들이 많았다. 그런 실장석들을 그대로 뒀다간 봄이 찾아오면 순식간에 수가 늘어나기 시작해 공원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십상이었다. 실장석들은 공원의 적이었다. 운치굴을 만든다며 땅을 헤집어 놓고 관람객들에게 똥을 던지고 쓰레기들을 뒤엎고 심지언 그걸 공원으로 곳곳에 뿌려둔다. 어차피 봄이 되면 또다시 버려지거나 다른 공원에서 쫓겨난 실장석들이 오겠지만 적어도 피해를 줄이고자 겨울에 이렇게 관리원들이 나서 구제작업을 하곤 했다.
“여기 한 놈 있구만.”
능숙하게 도석기는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상자를 들어 털자 각종 쓰레기와 성체실장 하나가 떨어진다.
뎃? 데뎃?
자던 중에 갑작스레 날벼락을 맞은 실장석은 추위에 정신을 못차리며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실장석의 눈은 이내 상자를 접고 리어카에 실는 도석기의 눈과 마주친다.
데갸아악! 데샷!
“뭐여? 오늘 마수걸이가 왜이래? 꼴랑 하나야? 에잉…”
드문 일이다. 보통 겨울을 나는 실장석들은 자실장이 딸려있기 마련이다. 열심히 자신의 상자를 돌려달라며 데슷데슷하는 실장석의 모습따윈 도석기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실장도 겨울을 혼자 보내고 싶었던건 아니었다. 봄에 아이를 가졌다며 버려진 실장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실장을 다섯마리나 낳았다. 그 뒤 정말로 열심히 살았다. 익숙하지 않은 공원 생활에 생존하고자 온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산책나온 개에게 쫓기다가 막 먹이수집에 따라나오기 시작한 장녀를 미끼로 던져 잃었다. 여름에는 그렇게 주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지와 우지가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며 놀다가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들켜 감독으로 남겨둔 오녀는 물론 집까지 다 잃었다. 결국 연이은 구제작업 속에서까지 살아남은 건 자신과 차녀뿐이었다. 실장석은 아직도 차녀와 마지막까지 나눈 대화를 기억했다.
‘테뎃! 마마! 노예차들이 와타시타치들의 집 근처를 세레브하게 꾸미는테치! 분명 와타치를 공주로 맞이하려고 온 것인테치!’
‘조용히하는데스. 닝겐들의 눈에 띄었다가 집을 잃으면 겨울을 보내지 못하는데스.’
‘테에… 와타치를 위해 온게 아닌테치?’
‘아닌데스. 조용히하고 문 닫는데스. 찬바람 들어오는데스’
‘와타치 운치가 마려운테치…. 갔다오겠는테치.’
‘…’
‘차녀챠? 운치를 아직도 싸는데스? 거기서 뭐하는데스?’
‘테치… 마마! 와타치 저 세레브 불빛씨를 하나만 가져오는테치!’
‘멈추는데스!!’
그렇게 달려나간 차녀는 커플들의 발밑에서 구르다가 하수구로 밀어넣어졌다. 그날 밤 실장석은 하수구로 달려가 차녀를 애타게 불렀지만 쓰러진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차녀에게 자신이 사육실장 때 불렸던 이름을 선물로 주려고 했기에 그 이별은 더더욱 쓰라렸다. 아직도 실장석은 추위를 무릅쓰고 그 하수구로 가 반절은 얼어버린 차녀를 보곤 했다.
데게에에엑!
도대체 자신에게 이러는 이유가 뭔지, 실장석은 알 수가 없었다. 비통과 분노가 몸에 가득 차오르자 사육실장때부터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빵콘을 했다. 이런 추운 겨울에 옷에 빵콘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곤 본능에 따라 손을 집어넣어 운치를 한움큼 쥐었다.
“어림도 없다. 이놈아.”
하지만 도석기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투분의 징조를 눈치채자 마자 그는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하던 집게로 곧장 실장석의 안면을 푹하고 찔렀다. 데갸악 데갸악 고통스러워하는 실장석을 둔 채 도석기는 상자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모두 분리수거했다. 도석기는 투분을 맞을 수 없었다. 그의 후줄근한 관리원 제복은 여태까지의 경력을 상징하는 훈장이었으며 아내가 매번 다림질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추억이었다. 그런 옷에 세탁도 잘 안되는 운치는 용납되지 않았다.
“… 이제 노가다생활 안해도 된다고 제복 받아온 첫날 그렇게 울었지. 할멈이.”
갑작스레 급습하는 그리움에 도석기도 행동을 멈춘다. 이내 다시 손을 움직여 삽을 잡은 그는 마대에서 흑을 조금 퍼내 운치굴을 덮었다.
“혼자 살아서 그런가. 똥굴이 작아서 묻지도 못하겠구만.”
레햐아악!
운치굴에 있던 우지의 작은 비명이 들렸지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도석기에게 큰 의미를 주진 못했다. 그는 이어서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발작을 하던 실장석은 아직 죽진 않은 모양이었지만 더이상 움직이진 않았다. 도석기도 따로 건드리진 않았다. 리어카가 좁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치우고 나면 내일 아침 교대자가 다시 한번 실장석용 쓰레기 봉투를 들고 공원을 한바퀴 돌며 치우리라.
다음 상자는 찾는데 제법 걸렸다. 더욱이 도석기를 놀라게 한건 상자를 엎자 안에서 물이 쏟아지며 다리를 M자로 벌린 실장석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치이이이! 데챠아아아아악!
실장석은 더할 나위 없이 사납게 소리질렀다. 도석기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허. 이 미친놈이 겨울에도 새끼를 까는구만”
뒤따라 딸려나온 자실장들이 혼비백산하며 달아난다. 딱히 쫓진 않는다. 어차피 해가 뜨기 전에 얼어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장석이 겨울에 자식을 낳아 키우려고 했던건지 자실장들에게 먹이려 했던건진 모르지만 이젠 아무 소용없었다.
테긱
작은 비명이 들린다. 실장석이 출산을 시작했다. 도석기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작업을 멈추고 지켜본다. 실장석은 붉은 눈물을 철철 흘리지만 한번 열린 총구를 닫을 순 없었다. 꽝꽝 얼어붙은 맨 바닥에 첫 자실장이 나오자마자 부딪히며 죽어버린다. 연이어 나오는 엄지는 머리가 총구에서 나오자마자 찬바람에 눈동자가 검은색으로 변해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뒤이어 나오는 우지들도 마찬가지다. 그 모습을 보며 절규하는 실장석을 보면 먹으려던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오래 근무하다보니 별꼴을 다보는구만… 마수걸이가 엉망이더니 이거 보니 또 운수가 좋을 것 같기도 하네.”
도석기는 발로 적당히 실장석과 점막째로 얼어붙은 새끼들을 운치굴로 밀어넣는다. 이놈들은 제법 크게 운치굴을 파서 가능했다. 아직 도망치지 않은 자실장들도 밀어넣은 뒤 흙을 부어 메꿨다. 분리수거도 마치고 다음 상자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뜨기 전에 공원을 다 돌려면 부지런해야한다.
공원을 다 살펴볼때 쯤 마대의 흙도 거의 비어갔다. 이렇게 양이 딱 맞을 때면 괜히 기분이 좋다. 거의 삼십개가 넘는 집을 부쉈다. 다른 집들은 딱히 특이할 것 없는, 흔한 실장석 하나와 자실장 몇마리가 튀어나오는 집들이었다. 비슷한 광경을 계속 보며 도석기는 작업을 서둘렀다.
“이놈이 마지막이겠구만”
앞에 사무소가 보인다. 도석기는 발 밑의 집을 들어서 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실장석과 자실장들이 떨어진다. 그 중 가장 작은 놈이 벌떡 일어나 친실장에게 뛰어간다. 그러곤 마치 놈을 지키기라도 하듯이 팔을 벌리고 막아선다. 친실장의 몸이 안좋은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떨어져놓고선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한다. 자실장은 호소하듯 연신 울어댄다.
레치-레치레치-레치칫-
울음소리에 다른 자실장들도 친실장 곁에 모여든다. 다같이 레치레치하는 걸 보아 무언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다. 친실장은 힘없이 고개를 들어 도석기를 바라본다.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채로.
드문 모습은 아니지만 이번엔 유독 도석기의 가슴 한편에 다가왔다. 막내아들이 생각난 터이다. 막내아들은 자신을 정말 잘 따랐다. 노가다로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보낸 뒤에도 다른 녀석들은 아버지가 부끄러운지 잘 보려 하지 않았지만 막내만은 곧잘 애정표현을 했다. 취직하고 나서도 저녁마다 연락하곤 했다.
“그러고보니… 마지막으로 전화한게 언제더라.”
하지만 세월은 비켜나가지 않았다. 막내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돈 나갈 곳이 많아지고…. 살기가 각박해지자 자연스레 연락도 줄어들었다. 아내가 죽었을 때도 금방 돌아가야한다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불효자식이라는 자책감이 얼마나 가슴을 미어지게 했을까. 슬픔에 빠져 자식 위로도 못했던 자신이 괜시리 원망스러웠다.
그래. 이번 성탄절에는 휴가를 내자. 그리고 손주녀석들 선물까지 사서 막내녀석 집에 한번 가보자. 이사한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한번도 들러본 적이 없었다. 나름 배려한 것인데 아버지가 무관심하게 느껴지진 않았을까. 이번에 성탄절 보너스도 받았으니 아들내외에게 용돈도 주고 오자. 다른 자식들한테도 송금해줘야지. 아마 막내는 자신을 반가워하리라. 심성 고운 며늘아가도 웃으며 맞이할 것이다. 훌쩍 큰채로 달려오는 손주들 모습이 눈 앞에 그려졌다. 큰 녀석이 내년에 초등학교에 갈 나이구나. 내일 퇴근하자마자 백화점을 들러 책가방을 사야겠다. 생각하며 도석기는 운치굴로 소리지르는 참피모녀들을 밀어넣고 흙으로 메꿨다. 리어카를 끄는 그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청록공원에 햇빛이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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