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레후."
"뭐라고?"
"모르는레후!"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니?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며 나는 릴리를 살포시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릴리의 연약한 몸은 아주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서져버리니까. 하지만 여전히 손바닥 위에서 꼬물대며 모르는레후를 연발 외치는 광경에 나는 스스로의 정신이 멀쩡한지에 대해 진지한 고찰에 빠졌다.
"릴리야. 뭘 모르겠다는 거야?"
"몰라레후! 그리고 릴리는 뭐인레후! 모르는레후!"
밥을 먹다말고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고는 모르는레후! 만 주구장창 외쳐대고 있으니 아니 땐 굴뚝에 봉창 두드리는 소리였다. 대체 무엇을 모르겠다는 건지 그렇게 좋아하던 밥도 제쳐두고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 걸까? 나는 이 난감한 상황을 빠르게 타개하지 못하고 모르는레후라는 문장만 출력되고 있는 린갈의 화면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모르는레후... 모르겠는레후... 근데 모르는게 뭐인레후! 자꾸 모르는게 늘어나는레후!"
어쩐지 릴리의 상태가 이상한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으나 릴리가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하니 나도 모르는레후~ 가 절로 나온다. 몰라몰라. 밥이나 먹여야지.
"릴리야 밥 안먹어?"
"모르는레후."
"안 먹는다고?"
"모르는레후!"
뭔가 얼굴을 팍 찌푸리면서 모르는레후를 부르짖는 릴리의 모습에 사육 인생 처음으로 진절머리가 난다는 문장의 의미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안먹을 거라면 치워줄게.
"무슨 짓을 하는레후! 맛나맛나 왜 치우는레후! ...레후? 모르는레후. 근데 맛나맛나 어디간레후?"
"..."
릴리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에 확신을 가지고 나는 가만히 릴리를 사육장 위에 내려놓은 뒤, 릴리의 변화를 관찰하게 된 것이다.
-관찰 1시간 째-
"모르는레후... 레훼에에엥~ 왜 자꾸 모르는게 모르겠는레훼에엥~!"
"아! 알겠는레후! 모르는레후는 모르는레후! 대! 발! 견! 레후~♪"
아무래도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게 된 것 같다. 왠지 모를 흥미를 느끼며 나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러 자리를 떠났다.
-관찰 4시간 째-
"또 모르는게 늘어난레후... 이건 대체 뭐인레후? 맛있는 냄새가 나는레후. 그런데 맛있는 냄새가 뭐인레후. 모르는레후! 또 모르는게 늘어난레삐이이이익!!"
샤워를 마치고 남자친구와 한바탕 뒹구르고 난 뒤. 릴리의 상태가 더욱 악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되버린 것 같았다. 아니면 나를 인식하지 못할 만큼 릴리의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해졌던가. 뭐 애초에 이런 이과들이나 할 법한 행동은 내게 전혀 맞지 않고, 그냥 신경끄자.
"맛있는레후! 이것은 산해진미레후! 우지챠가 모두 먹어주는레후훙!"
내일 아침에 다시 확인하러 올까. 하품을 크게 내쉰 나는 슬슬 감겨오는 눈꺼풀의 무게를 지탱하며 내 방으로 돌아갔다.
-관찰 17시간 째-
늦잠을 자버렸다. 하긴 토요일이니까 상관없으려나. 나는 릴리의 상태가 얼마나 악화되었는지 궁금해져서 조심스레 릴리가 사육되고 있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우지챠가 밟고 있는 이 푹신푹신한 건 기분 좋은레후. 하지만 모르는레후. 왜 이곳에 푹신푹신이 있는레후? 기분은 왜 좋은레후? 모르는레후!"
뭘까. 릴리는 자신 주변의 모든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고뇌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우지챠의 사고능력으로 고뇌에 빠지는 것이 가능했던 걸까? 우지챠는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었다. 왠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배가 꼬르륵레후. 하지만 모르는레후. 왜 배가 꼬르륵하는레후? ...모르는레후!"
대충 여기까지만 보아도 릴리는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것을 천천히 잊어가고 있는게 분명했다. 하지만 망각과 동시에 릴리는 자신에게 과분한 사고력을 얻게 된 것이다. 모른다. 그래서 왜?
...지금은 모르겠다. 왜? 그것도 모르겠다의 연속일 뿐이지만, 분명 변화하고 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말이다.
잠들기 전까지만해도 사그라들었던 릴리에 대한 흥미가 급속도로 치솟기 시작했다.
-관찰 28시간 째-
"모르는레후… 배가 꼬르륵하는레후… 맛나맛나를 먹었던레후… 왜인레후? 적은레후….”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있는 릴리의 모습을 남자친구와 함께 관찰하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그런 릴리의 모습을 보며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있다. 아무래도 고장난 거 같은데, 새로 사줄테니 그냥 버리자고 말하는 그였지만 나는 어째선지 릴리가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맞이할까 궁금해졌다.
“오늘은 그만해. 힘들어.”
아무래도 질리는 모양인지 남자친구의 손이 슬그머니 내 가슴을 쪼물딱대기 시작했지만 가차없이 쳐내고 거부했다. 이미 충분히 만족했고, 릴리를 관찰하는 일이 더 큰 즐거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와의 교접도 거부하게 만들었다. 남자친구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혼자 침대에 누워버렸지만 내일 아침에 다시 풀릴 걸 알고있으니 다시 릴리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몰라, 모르는레후. 알 수 없는게 잔뜩레후. 주위의 모든 것이 모르는 것으로 가득찬레후. 어째서 우지챠가 이곳에 있는레후? 우지챠가 뭐인레후? 뭐인게 뭐인레후? 레후는 뭐인레후? 우지챠는 모르는레훼에에엥!”
“너는 내가 사온 애완우지챠고 우지챠는 실장석의 유아기 모습, 네가 궁금하는 것을 궁금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그리고 네 이름은 릴리야. 우지챠가 아니라.”
다소 답답할 정도로 모르는레후를 연발하는 릴리에게 질문의 대한 답을 최대한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릴리는 내 목소리에 크게 반응하더니 금세 멍한 얼굴을 짓다가도 이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온몸을 크게 흔들었다.
“레삐이이이이!! 뭐인레후! 누구인레후까! 인간씨인레후?! 대체 뭐인레후! 이 상황을 알 수 없는레후!!”
릴리는 발작이라도 일으킨듯 과민하게 반응했다. 결국 주인의 존재마저 잊어버린 걸까. 그럴거라 예상은 했지만 조금이나마 정을 줬던 애완동물에게 잊혀졌다는 것은 다소 씁쓸했다. 그래, 이제 이 아이는 릴리지만 릴리가 아니구나. 나는 조금 냉정하게 릴리였던 존재에게 속으로 이별을 고했다. 아직 24시간조차 지나지 않았지만 증세는 매우 심각하게 악화되어있었다. 그리고 릴리의 변화를 지켜보며 떠오르는 것은 인간 또한 겪을 수 있는 병의 모습이었다. 치매… 가족마저 잊고 자신의 신진대사조차 잊어 인간답게 사는 것조차 망각해버리는 무서운 질환. 릴리는 아마 실장석이 겪을 수 있는 치매의 모습을 단시간 내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
“인간씨가 뭐였던레후. 인간씨…? 인… 뭐… 레후… 레훼에에에에엥!!”
갑자기 울먹이다가 말을 않고 갑자기 울어버리는 릴리. 조금 당황했지만 릴리가 그동안 보여준 증세의 모습을 보아서 그다지 놀라진 않았다. 이것도 치매가 악화된 탓일까?
“레, 레휑… 레후…! 레… 레… 삐이이이이이이!!”
“…릴리?”
“삐이이익! 삐이이이이이!!! 이이이…! 렛!”
그 순간 뭔가 쩌적이며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릴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관찰 37시간 째-
아침부터 일어나자마자 내 허리를 붙잡고 엉기는 남자친구에게 못이겨 또 한 번 일을 치루고나서야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대충 몸을 씻어내고 지저분한 머리도 간단하게 손질했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간단하게 기초적인 화장도 했다. 남자친구가 갑자기 화장실 문을 열고 들이닥치자마자 원숭이마냥 허리를 맞대곤 꾹 눌러왔지만 예끼! 꿀밤을 한 방 먹이고 떼어냈다.
“아, 릴리…!”
남자친구를 내버려두고 화장실 밖으로 나서자마자 뇌리를 스치듯 릴리의 모습이 눈앞에 반짝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솜침대 위에 죽은듯 누워있는 릴리의 모습을 보고 잠깐이지만 모든 사고가 정지해버리고 말았다.
“…휴우…, 레휴우우….”
“뭐야, 살아있네?!”
분명 어젯밤 릴리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빠직거리며 유리창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고 아무 말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여겼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파킨! 같은 영롱한 소리는 나지 않았다. 실장석들은 죽을 때 반드시 영롱한 파열음이 울린다는 점을 떠올리고는 릴리의 기적적인 생존에 경외감을 느꼈다. 확실히 자세는 조금 불편해보이지만 릴리는 색─ 색─ 숨을 들이내쉬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간,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잠시 뒤척이던 릴리는 감았던 두 눈을 슬며시 뜨고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인간의 시선과 조심스레 마주쳤다.
“인간오네챠인레후…?”
“…응?”
릴리는 어제와는 다르게 다소 멍청한 표정으로 몸을 뒤척이고는 다시 흐리멍텅한 얼굴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항상 나와 일상을 보내왔던 릴리의 모습이었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곧 죽을 상처럼 단말마의 비명만을 내지르던 릴리가 아니었다.
“레후웅… 배가 꼬르륵인레후… 인간오네챠 밥 좀 주는레후….”
“어, 어? 으응… 잠시만 기다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나는 배고프다는 릴리의 요구에 따라 당황어린 얼굴로 다급하게 손을 놀렸다. 평소에는 전혀 주지않는, 정말 릴리가 귀여운 애교를 부릴때만 주던 특식을 꺼내었고 릴리가 몇 마리는 들어찰 법한 사료그릇에다가 별사탕과 실장푸드의 혼합 특식을 잔뜩 부어주었다. 어째서일까. 내 눈가에 약간의 이슬이 맺혔다.
“자, 맛있게 먹어.”
“고마운레후웅~”
릴리를 꼬물꼬물 특식이 담긴 그릇을 향해 기어가더니 이내 별사탕이 담긴 특식임을 깨닫곤 뺨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환희의 미소를 짓는다. 그리곤 곧 그릇에 얼굴을 쳐박고는 게걸스럽게 사료를 탐했다. 그것은 평소와 같은, 정말로 평소와 똑같았던 일상적인 식사.
“오네챠, 우지챠는 이제 알았던레후.”
“응? 갑자기 뭔 소리야.”
아직 반의 반도 비우지 못한 그릇에서 꼬물거리며 고개를 들어올린 릴리는 나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어보였다. 그 특유의 언청이 같은 입으로도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고 나는 조금 눈가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릴리는 웃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입을 움직인다.
“오네챠 덕분에 우지챠 살았던레후! 고마웠던레후!”
“응…? 무슨 말…….”
─파킨!
그렇게 릴리는 죽었다.
………
……
…
인간의 치매에 대입되는 실장석만이 앓는 질환, 짓소하이머 병.
병세의 진행이 매우 빠르고, 실장석 특유의 저능함 때문에 이 병을 앓아도 짓소하이머 임을 알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특히 구더기 같은 류는 아예 사고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 더욱 그러하다.
허나 릴리는 그것 하나 만은 잊지 않으려고,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기존에 알고있던 상식이 하나씩 머릿속에서 사라져가는 공허하면서도 끔찍한 감각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릴리는 계속 발버둥쳤다.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실장석 고유의 저급한 사고회로가 과부하를 일으켜 위석을 스스로 쪼개버릴 정도의 고통 속에서도 릴리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기억하려고 안달같이 집착했다.
그러했을 것이라고… 믿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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