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쿼리쉬)


그 놈의 운명은 타고난 작은 비극이었다.

애호파들이라고 하는 작자들덕분에 지어진 작은 건물은 시의 귀퉁이에, 웬만큼 신경 써서 확인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을만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흔히들 보건소라고 부르지만, 그 이름은 기만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살육장이 장소의 용도에 어울리는 좀 더 직관적인 이름일 것이다. 사육실장을 공원에 유기하면 안된다는 조례의 연장으로 지어진 건물은 사실은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기존에 창고로 쓰던 컨테이너를 조잡하게 개보수한 것에 불과했다.

내가 그곳에서 근무하게 된 것은 다소 행운이 작용한 일이었다. 공고를 보게 된 것은 우연이었고, 그 공고를 보기 며칠 전 그 전까지 일하던 파트타임에서 잘린 것도 우연이었다. 찬 물 더운 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나는,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일에 자원했다. 첫 출근에 바로 공고되어 있는 조건보다는 상황이 열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한 사항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버려지는 사육실장을 회수하고, 보호하고 필요하다면 그것들을 죽이는 일이다. 실제로는 그것들을 죽이는 게 주 일과가 되는 것은, 퍽 아이러니한 일이다. 길러지는 사육실장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음에도 다른 동물들과 별개로 실장석만을 '보호'하는 이 기관이 아직도 유지되는 것은 애호파들의 후원덕분이니까. 지원을 받고자 하는 공공기관과 알량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쓰잘데 없는 곳에 돈을 쏟은 애호파의 이해가 맞은 덕분에 불쌍한 소시민 하나는 하루 벌어 먹고살 만큼의 직장을 얻게 되었으니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더라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살아있는 생명을 매일같이 죽여야 할지도 모르는 일에 마음의 부담감을 가질지도 모른다. 다행이라면 다행히도 나는 그것들을 죽이는 데에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세간에서 흔히들 말하는 학대파라는 족속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나는 그것들에게 벌레 이상의 감흥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처롭게 다리를 떨며 약에 죽어가는 벌레를 보아도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듯, 내게 실장이란 그저 그런 존재에 불과했다.


그 날도 다른 날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무료한 날이었다.

그 날 보건소에 찾아온 것은 여자 한 명이었다. 특이할 점이라면 날이 더웠음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는 점이었을까.

중년의 여자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쓰듯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이 눈에 더 뜨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검은 차양막같은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쓴 여자는 나에게 종이로 된 작은 상자를 넘기며 부디 이것을 조용히 처리해달라 일렀다.

처음에는 영 수상쩍은 그 모양새에 거절하려고 했지만 그가 내게 슬쩍 내미는 묵직한 흰 봉투는 내 마음에 미련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목구멍을 기어 오르는 욕망을 꾹꾹 눌러 담으며 말했다. "이러시면 안됩니다. 절차를 제대로 밟아서 등록해주셔야 저희가 처리가 가능합니다. 이렇게 나오시면 저희가 곤란해져요."

짙게 태닝된 선글라스 밑의 눈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내 마음 속의 갈등을 읽은 것이다. "별 거 아닌 사육실장 처리예요. 그냥… 그냥 다른 이들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고 싶을 뿐이에요."

"어차피 지금 여기에는 당신 말고는 없잖아요?"

알량한 지원금으로 어설프게 지어진 건물에는 CCTV는 커녕 변변한 에어컨도 없었다. 그리고 사실 짹짹대는 녹돼지들의 째지는 비명을 듣는 게 일이 아니라면, 일이라고 할 만한 일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하루에 두 명씩 교대 근무를 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한 명은 두 시간 후에야 돌아올 것이다. 나를 감시할 만한 사람은 내 자신의 양심뿐이었다.

그의 말이 맞다면 작은 상자에 들어있는 실장석은 기껏해야 자실장에 불과할 것이다. 자실장석를 처리하고 깨끗하게 치워버리는 것은 약품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나는 앞으로 얼마간의 나의 삶의 윤택함과 본 적도 없는 실장석의 목숨의 무게를 재고 있었다. 셈이 어렵지는 않았다. 내가 그것을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상자에 들어있는 참피의 목숨이 몇 시간 연장되는 것 이외에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 주인에게 버려진 (혹은 버려질 예정인) 사육실장의 생명을 고작해야 몇 시간 연장해주는 것은 자비와도 거리가 멀었다.


여자는 나에게 재물로 양심을 팔기를 요구했고, 나는 그 거래에 응했다.

여자가 도망치듯 보건소에서 나간 후, 나는 상자를 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동료가 오기 전에 그것을 처리하고 마치 없었던 일처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차마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미 팔아버린 양심이 나를 추궁하듯 찔러대는 것 같았다. 마치 제우스에게서 상자를 받은 판도라가 된 기분이었다. 이것을 열면 인간의 죄악들이 모두 빠져나가 인간을 해할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작은, 그렇지만 예상할 수 있을 법한 반전이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언젠가는 선물 상자로 쓰였을 부드러운 녹색의 종이 상자에는 솜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안에 든 참피가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을 수도, 아니면 단순히 그것이 이동 중 깨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였을 수도 있었다. 그 가운데에 눈을 감고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자실장의 머리칼은 검은 색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어찌된 영문인지 시나리오가 머릿 속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나의 마음 속이 요동치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배를 씨근대며 자고 있는 자실장석은 피부 또한 새카만 색을 띄었다. 그리고 그것 뿐이었다. 그것이 입고 있는 녹색의 원피스는 여느 들실장이나 사육실장이 입은 것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색이었다.

아마도 그 여자는 세간에 떠도는 같잖은 루머에 낚인 불운한 사람이겠지.

언젠가 사육실장 붐이 돌 때 찌라시나 별 의미없는 루머들을 진실처럼 왜곡해서 방영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실장석에 대한 루머에 대해 내보낸 적이 있었다. 머리가 검은 참피는 인간과 참피가 교배해 낳은 새끼다, 라는 것이 그것의 요지였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대중은 항상 그렇듯 자극적인 정보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보에 대한 정정이 돌았지만 그것이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릿 속에 박힌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애석한 점은 머리칼이 검은 참피가 적지만 실제 존재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대중들이 믿고 싶어하는 비인륜적인 행위의 결과물이 아니라 환경적인 요인, 특히 실장석 모체의 영양 상태에 따라 태어나는 놈들이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돌연변이던가. 어쨌든 확실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피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외모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체내의 멜라닌 색소가 많을 뿐, 그리고 다른 놈들보다 조금 더 건강할 뿐, 녀석들은 어딜 봐도 평범한 참피에 불과했다.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만 아니었다면 인간에게는 외모가 특별하다며 예쁨 받았을지도 모르는 놈들은 인간들의 최고의 기피 대상이자 멸시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는 사육실장이 흑발의 실장석을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이혼을 당하는 사례도 있었다. 머리를 많이 굴리지 않아도 시나리오는 머릿 속에 그려졌다. 그의 남편이거나 아들이거나, 그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둘 중 하나였겠지.

어쩌면 그 또한 이러한 뒷배경을 알고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그들이 더 신경 쓰는 것은 본인들이 알고 있느냐 모르냐가 아닌 주위의 시선일 테니까. 끔찍한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이러한 불운의 요소는 아무도 모르게 처리해버리는 것이 낫다.

처음으로 인간의 손에 운명이 좌지우지 되는 실장석에게 동정심이 들었다. 그것은 그저 태어난 죄밖에 없는 것이다. 놈의 어미도 그것이 그렇게 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실장석의 인식 범위 밖에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인간의 행동 또한 그랬다. 그것들은 저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로 이용 당하고 죽는다. 그러나 알량한 동정심은 자비로 연결되지 못한다. 이것을 다른 곳에 살려 풀어주거나 입양이라도 하는 것은 내 자신의 명예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 잠깐 느낀 감정을 위해 행동하기에는 위험이 너무 컸다. 그런 반면에 그것을 죽이는 것은 쉬웠다.


잠들어 있는 것을 손바닥에 올리자 체온때문인지 그것은 눈을 떴다. 여느 참피와는 달리 갈색을 띈 구슬같은 두 눈동자는 잠에 취해 멀거니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제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렸지만, 그것은 개의치 않고 내 손 위를 돌아다니며 테치거리며 떠들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칼에 손가락을 올려 가만히 쓰다듬자 그것은 눈을 감고 기분 좋게 손가락에 엉겨 들었다. 치이, 치이… 작게 울음소리를 내며 손가락의 감촉을 만끽하는 녀석의 머리를 나는 돌연 붙잡아 돌렸다.

기분 좋은 울음소리가 째지는 비명으로 변하는 것은 삽시간이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오래 가지 않았다. 페트병의 뚜껑을 돌리는 정도의 저항감이 있고 나서 그것의 머리는 몸으로부터 깔끔하게 분리되었다. 부러진 척추가 머리에 연결된 채로 달랑이고 있었다. 동족의 것과 다르지 않은 붉은 피가 녹색의 원피스를 검게 적셔 들였다.

옷에 피가 묻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나는 그것의 사체를 변기에 넣고 뚜껑을 닫은 다음 흘려 보냈다. 물 내려가는 소리에 잠깐의 갈등도 함께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종이 상자는 해체해 분리수거 통에 버렸다. 묵은 숙제를 끝낸 기분으로 나는 의자에 앉았다.








내 손에 남아있는 끈적한 피를 지우는 것을 기억해낸 것은 의자에 앉아 졸던 나를 깨운 동료가 내 손에 묻은 피를 보고 질겁했을 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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