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지능이 어설픈 실장석이라곤 하나 녀석들도 가끔은 훌륭히 도구를 활용한다.
실장석 중에서도 재주가 좋은 녀석들은 자연물을 가공해 인간의 도구와 유사한 물건을 만들기도 한다.
가장 흔한 건 아마도 우산이다.
비가 오면 녀석들은 종종 넓적한 이파리를 구해 줄기를 잘라 우산처럼 쓰고 다닌다.
인간의 생활용품 중에서도 우산의 기본 원리는 간단한 편이다.
비가 오던 날 인간이 무언가 머리를 덮고 다니는 걸 보고
그 모습을 흉내내며 저들도 이파리를 쓰는 것이다.
처음 이파리를 쓴 실장이 다른 개체의 눈에 띄면 우산이 들실장 사회 전체에 퍼지는 건 시간 문제다.
며칠 안 가 실장들은 저마다 굽은 이파리를 들고 공원을 쏘다닌다.
체온 조절은 생존의 기본이다.
비에 체온을 빼앗겨 죽는 짓은 아무리 벌레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파리 우산이 보급되면 그들은 드디어 우천에도 활동이 가능해진다.
여름의 장마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봄·가을의 얕은 비를 피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생존률은 높아진다.
먹이를 보급 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늘기 때문이다.
생존의 호기를 아는 개체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비교적 인간과 마주칠 일이 적은 우천의 날, 그들은 열심히 젖은 먹이를 찾는다.
운이 좋다면 새로운 꿀단지를 독차지 하리라.
이제 가랑비가 오는 날 달랑 가위 하나를 들고 공원에 들러보자.
따가운 빗소리에 귀가 무딘 실장들은 인간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살금살금 다가가 우산의 끄트머리를 잘라보자.
짧게 똑 끊어진 우산머리가 바닥에 떨어진다.
「데엣-! 데, 뎃-! 데-샤아아앗-!」
놀란 나머지 철푸덕 소리와 함께 녀석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추적추적 젖은 엉덩이가 기분나쁘겠지.
「데에엥-. 데에에에엥-.」
녀석도 기분의 문제로 끝내면 좋으련만.
모처럼 구한 음식물 쓰레기가 쏟아져 흐르는 걸 보고 녀석은 슬피 운다.
그리고 겁을 먹은 녀석은 이도저도 내팽개치고 새끼를 부르짖으며 달려간다.
손잡이만 남은 우산을 꼭 쥐고···.
생존의 철칙을 지키지 못한 대가는 혹독하다.
운이 좋다면 한나절 감기치레로 끝난다.
그러나 운이 나쁘다면 다시는 빗소리를 들을 수 없겠지.
어미를 잃은 새끼는 하루, 이틀 울먹이다 걸려 넘어진 의지를 이어받아 빗길을 나선다.
「테츄···! 테츄-!」 「테치이-. 테칫-.」
찰박찰박 물소리-.
가여운 동생과 하루라도 더 살아남기 위해.
그래서 비오는 날이면 서걱거리는 가위소리가 좀처럼 멎지 않는다.
흠뻑 젖은 자매의 서러운 울음이 빗소리에 녹아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무분별한 악플과 찐따 댓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