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폐증 판정을 받은 이후, 정말 오랜만에 천생산공원에 온 철웅은 정말 기묘한 것을 보았다.
다 해진 녹색의 누더기를 걸친, 사람같은 생물체 하나가 두 손에 안경 닦는 헝겊을 돌돌 말아 든채 공원의 벤치에 앉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뎃승 뎃승 거리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핸드폰을 켜서 보다가는 바로 시선을 다른데 둘 뿐이었다. 그러면 그 생물체는 또 다른 사람에게 찾아가 뎃승 거렸다.
엄마를 따라 공원에 온 어린이 하나가 핸드폰을 보더니 "엄마, 쟤 데려가고 싶어." 라고 말하자 그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는 "안돼! 지지야. 지지. 저런거 만지다가는 병걸려요." 하면서 아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황급히 가버리는 것이었다. 몇번이고 사람들에게 돌아다니며 뎃승거리던 그 생물체는 그만 자리에 주저 앉더니 무릎에 헝겊을 놓아두고 오로롱 오로롱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철웅은 호기심에 옆에 앉아있던 중학생쯤 되는 학생에게 물어보았다.
- 학생, 저게 뭐야?
- 아, 저거요? 참피예요.
- 그런데 왜 저러구 울고 있어?
- 네, 아까 제가 번역한 거 보여드릴께요.
그 학생은 핸드폰을 켜더니 링갈 화면을 철웅에게 보여주었다.
그 참피의 딸이 매우 아프게 되었으니 살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철웅은 그 순간 낳은지 며칠 되지 않아 죽어버린 자신의 딸이 떠올랐다.
군대를 제대한 후, 세상에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던 철웅은 일은 힘들지만 보수가 넉넉하다는 구미의 한 공장에 취직했고, 거기서 아내를 만났다.
그러나 아내와의 행복했던 시절도 잠시, 조산으로 낳은 첫딸은 인큐베이터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집에 데려왔으나 그후 사흘을 채 못버티고 떠나가버리고 말았고, 아내도 반쯤 정신을 놓은채 연락처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힘든 야간근무를 마치고 낮에는 아내를 찾아 수소문하던 몇달이 지난 후 아내마저 영원히 저세상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철웅은 그 때부터 미친 사람처럼 일만 했다. 모두 자기가 돈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일이라고. 자기가 모자랐기 때문에 사랑하던 사람 둘을 지킬수 없었노라고 자책하면서.
그러나 십여년의 혹독한 노동은 철웅의 몸을 갉아먹었고, 그동안 악귀같이 모아두었던 재산은 악착같은 노동의 댓가인 진폐증이 다 가져가 버리고 말았다.
이제 껍데기만 남은 철웅은 반지하 셋방에 살면서 몸이 조금 괜찮을 때에만 간신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죽지못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 쟤 내가 데려가야겠다.
- 네? 아저씨가요? 저거 산참피라 기생충이나 병이 있을지도 모른다구요.
- 괜찮아. 저 참피랑 얘기하려면 어떻게 해야돼?
- 잠깐만요. 아저씨 핸드폰 좀 줘보세요. 제가 링갈앱 깔아드릴께요.
학생이 깔아준 링갈앱으로 철웅은 그 산참피에게 말했다
- 울지마라. 네 딸의 병은 내가 고쳐주겠다. 네 딸을 이리 다오
산참피는 어둠속에서 빛을 본 듯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더러운 헝겊쪼가리를 철웅에게 내밀었다.
그 헝겊을 열어보니 조그마한 엄지참피 하나가 거의 말라붙어 있는 채, 초록색 옷 군데군데가 불룩 솟아나와 있는 것이었다.
철웅이 슬쩍 실장복을 들추자 그 안에는 커다란 진드기가 세마리, 작은 새끼 진드기가 대여섯마리 보였다.
아... 이런 이건 여기서 뗄수 없는데...
군대에서 짬고양이 몸에 붙은 진드기를 떼어본 경험이 있는 철웅은 이 진드기란놈들이 얼마나 지독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손으로 잡아 떼다간 머리만 남고, 그렇게되면 정말 뽑아내기 힘들어진다.

- 네 딸은 내가 집에 데려가서 고쳐주겠다. 여기서는 고칠 수 없어. 걱정하지 마라. 사흘 후에 네가 여기 오면 내가 네 딸을 돌려주겠다.
마마참피는 철웅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몇번이고 도게자를 했다.
철웅은 다 죽어가는 엄지를 집에 데려와서 십여년전 공장에서 쓰던 트위저를 찾아 진드기 대가리 부분을 깊숙히 잡고 살짝 잡아당겼다.
다행히도 진드기들이 배가 불렀는지, 엄지참피가 죽었다고 판단했는지 쉽게 떨어져나왔다. 진드기를 제거한 후 엄지 입에 빨대로 물을 담아 몇방울 넣어 주고 두루마리 휴지로 이불을 만들어 감아주었다. 혹시 깨어나면 먹으라고 누룽지맛 사탕 하나는 작은 접시위에 올려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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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치 레치 레에엥... 레에엥..."
철웅이 눈을 뜬 것은 다음 날 아침 해가 뜬지 한참이 지나서였다. 질긴 생명력이었다. 곧 죽을 것만 같았던 엄지참피는 빼빼 마른 몸이지만 살아서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철웅은 링갈앱을 켰다.
"마마 어딨는 레치? 와타치 무서운 레치. 레에엥..."
- 네가 너무 아파서 내가 고쳐줬다. 이제 안아플거다. 두 밤만 자고 몸이 다시 튼튼해지면 엄마에게 보내주겠다.
"동생 우지차도 아픈 레치. 내가 없으면 프니프니 못하는 레치. 빨리 가서 우지차 프니프니 해 주는 레치"
- 일단 네가 튼튼해져야 동생을 돌볼 수 있다. 밥을 먹고 물도 마셔라. 옷은 여기 내가 깨끗이 빨아 놓았으니 이걸 입어라.
엄지는 그때서야 상황을 이해했는지 철웅에게 도게자를 하고 철웅이 준 사탕을 핥기 시작했다. 눈물이 번진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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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에 가겠다는 철웅의 약속은 벌써 열흘째 지체되고 있었다. 엄지의 몸이 다 낫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흘 뒤 약속한 날에는 철웅의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였고, 그 다음날부터는 장마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철웅의 집은 해가 쨍쨍한 낮에도 컴컴한 반지하이므로 날짜가 가는 것을 알기는 어려웠지만, 엄지도 약속한 사흘이 훨씬 지났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오늘은 조그맣게 흐느끼는 소리까지 들렸다.
"레에에엥... 레에에엥..."
- 왜그러니 나래야. 어디 아프니?
죽은 딸에게 주고 싶었던 이름, 날개조차 펴지 못하고 떠나버린 딸이 너무 안타까워 불러주고 싶었던 이름인 나래라고 불리게 된 엄지참피는 다시 한번 도게자를 하고 철웅에게 말했다.
"닌겐상은 정말 고마운 분인레치. 와타치를 살려 주시고 매일매일 맛난 콘페이토도 주시는 분인 레치"
"하지만 와타치 마마가 생각나면 눈물이 나는레치. 마마 너무 불쌍한레치. 와타치 때문에 고생 많이 많이한 레치"
"와타치 오네챠 하나,둘,셋보다 많았던 레치. 벌레가 뜯어먹고 털많은 동물이 물어간 레치"
"와타치 뜯어먹는 나쁜 벌레가 마마도 뜯어먹는 레치. 귀여운 우지챠도 뜯어먹는 레치"
"밤이면 바늘달린 벌레가 날아와서 마구 마구 찌르는 레치. 마마짱과 우지챠 지금도 찔리는 레치"
"우지챠랑 마마 고생하는데 와타치만 아마아마한거 먹고있는 레치. 와타치 가슴이 아픈 레치"
몸도 괜찮아진 것 같고, 내일은 비도 잠깐 소강상태가 된다는 뉴스를 들은 철웅은 젊었던 시절 아내와 함께 갈 때 썼던 캠핑장비 중 남은 몇가지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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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산에 도착했으나 엄지는 자기 집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열흘만에 장마비를 맞고 쑥쑥 자라버린 나무와 풀들이 철웅의 어깨위에 올려진의 엄지의 눈에는 전혀 딴 세상 처럼 보였으리라.
보다 못한 철웅이 고개를 바닥으로 바짝 숙이고 거의 기다시피해서 헤메다 엄지가 어느 나무 뿌리 근처에 뛰어내려 "여기인 레치, 바로 여기인 레치"라고 소리지른 것은 한시간도 넘은 뒤였다.
생각보다 꽤 되는구나. 여기에서부터 공원 벤치까지 그 작은 발로 오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마짱, 마마짱"
엄지의 목소리에 나무뿌리에 있던 돌이 슬쩍 움직이더니 마마참피가 고개를 내밀었다. 건강해진 엄지를 보고 기뻐한 것도 잠시, 엄지 뒤에 서있는 철웅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채 도게자를 했다. 인간에게 둥지를 들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는 것을 마마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철웅은 캠핑 장비를 꺼내 버너에 불을 켜고 코펠에 물을 담아 그 위에 올렸다. 배낭에서 트위저를 꺼내 버너에 달궈 소독을 한 후 도게자를 한 채 떨고 있는 마마에게 말했다.
- 이리와 옷을 벗어라.
"닌겐상. 엄지를 살려주어 정말 고마운데스. 와타치를 괴롭혀도 좋으니 엄지와 막내 우지챠만큼은 살려주시는 데스. 오로로롱..."
철웅은 순간 자기가 학대파처럼 보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짓고 마마참피에게 말했다.
- 아니야. 걱정하지 마. 너를 도와주려는 거야. 나래랑 약속한 게 있거든.
철웅은 마마와 우지짱이 벗은 옷을 냄비 안에 던져 삶고는 마마의 몸을 둘러보며 트위저로 진드기들을 잡아 뽑아 내기 시작했다.
- 자. 이제 진드기들은 다 처리 했다. 소독약을 상처에 바를텐데 꽤 아플거야.
"데갸앗!" "레삐잇!"
바위 위에 널어두었던 옷은 잠깐 나왔던 햇빛에 금방 말랐다.
철웅은 다시 옷을 입혀주고서 마마에게 말했다.
"여기서 고생 많지? 나래는 내가 데리고 살려고 해. 그런데 나래가 엄마 걱정이 많으니 너도 같이 가는 게 어때?"
마마참피는 다시 도게자를 한 다음 말했다.
"닌겐상은 너무 고맙고 고마운 분인데스. 하지만 고마운분에게 실례를 끼칠수 없는 데스. 엄지챠만 거두어 주시는 것으로도 감사한데스"
- 하지만 나래는 아직 어리다구. 엄마가 보고 싶을 텐데.
"매번 달님이 둥그렇게 되면 와타치가 닌겐상네 집 근처로 가겠는 데스. 어디인지만 알려 주시는 데스.
- 알았어. 그럼 막내만이라도 데려갈께. 그게 나래한테도 좋을 거 같아서
"닌겐상 너무 너무 감사한 데스"
철웅은 가지고 왔던 진드기 기피제와 바르는 모기약을 마마에게 주고 엄지와 우지차를 데리고 산을 내려왔다. 참피가 오기에는 너무 먼 거린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철웅의 집이 있는 장소의 특징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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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도 가고, 가을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착한 엄지와 우지는 철웅의 반지하 셋방에서 철웅이 주는 사탕을 받아먹으면서 매일매일 잘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음력 보름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친실장을 맞이하러 해가 떨어지면 반지하 셋방 바깥으로 나가는게 매월 모두의 즐거운 행사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철웅도 가을이 깊어가면서 자신의 병도 깊어지는 것을 점점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해의 겨울은 이별처럼 불쑥 찾아왔다.
"와타치 닌겐상을 만나게 되어 정말로 행복한테치"
-...
"닌겐상 덕분에 우지차도 무럭무럭 자라서 곧 고치를 틀고 손씨 발씨가 생길거인 테치"
-...
"닌겐상, 와타치 더 씩씩하고 착한 아이가 될거인 테치"
-...
"이제 며칠만 더 지나면 달님이 둥그렇게 되는 테치. 와타치 마마짱을 만나면 닌겐상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또 얘기해 주겠는 테치"
-...
"닌겐상?"
-...
"닌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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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웅씨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사흘이 지난 후였다. 며칠째 반지하 현관문에서 통통통통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것을 앞집 꼬마가 수상쩍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발견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경찰이 왔다 가고, 시신이 옮겨졌다. 철웅은 연고가 없었기에 방안에 있는 기물들은 꺼내어져서 빠르게 처분되었다.
구청 직원들과 업체 사람들이 정리를 다 마쳤을 때는 짧은 겨울해가 져서 이미 어둠이 깔린 다음이었다.
- 여기 작은 자충이 하나 있네요. 이거 어떻게 하죠?
- 얘가 문을 두드려서 철웅씨 죽음을 알린 애구나.
- 불쌍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무연고 사망자의 참피는 살처분이야.
- 어휴... 불쌍하네.
직원은 종이 박스 안에 웅크리고 있는 참피를 꺼내 높이 들어 비닐봉지 안에 넣고 코로리 가스를 뿌렸다. 나래는 뿌옇게 된 비닐 봉지 안의 코로리 가스를 넘어 전봇대 뒤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마마를 보고는 반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하지만 마마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비닐봉지 안의 흰 가스. 마마참피가 몸서리를 치면서 인동공원을 떠나 천생산 공원으로 간 것은 마마의 마마와 오네차가 흰 가스가 들은 비닐봉지에 담겨 죽어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크리스마스에 들뜬 주민들은 밤새도록 오로롱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아침이 되어 전봇대 아래 얼어붙은 채 죽어 있는 참피 하나를 무심한 듯 보고 지나갈 뿐이었다.
1전봇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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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다녀왔습니다.
- 얘. 그거 뭐니?
- 이거? 참피 고치
- 어디서 났어?
- 비밀. 내가 키울거야
- 어서 갖다 버리지 못해?
- 지금 버리면 얼어 죽어. 얘 이름도 있어. 종이 박스에 "나래"라고 써 있던데.
옆집 소년은 우지챠의 고치를 두루마리 휴지에 살살 감아 책상 서랍 속에 넣고 어서 빨리 엄지로 태어나길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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