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권(実装權)과 실장인 (세레브한에메랄드)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몇 가지 딜레마 중 '만약 물고기가 높은 지능을 지니고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생선 요리를 먹을 수 있겠는가?' 라는 딜레마가 있다. 물론 이제는 동네마다 한두군데씩은 꼭 있는 실장육 식당을 들어 '먹을 수 있다'로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어찌 되었든 이 딜레마를 근거로 수많은 실장석 애호가들이나 동물보호단체는 실석류들에게 인간과 대등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동물들을 뛰어넘는 어느 정도의 지위를 보장하는, 실장권(実装權) 또는 실석권(実石權)으로 불리우는 법적인 권리를 마련하려는 사회 운동을 펼쳐 왔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쓰레기나 쳐먹고 배설물이나 흩뿌리고 다니는 똥벌레들을 어떻게 인간과 비교할 수 있느냐며 인정하기 꺼려하겠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인간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능을 지닌 동물은 실장석을 위시한 실석류들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 초보적이지만 도구를 사용하는 문명 수준, 갓 태어난 저실장조차도 인간의 신생아보다는 월등한 지능 수준을 보인다는 점 등 실장석류는 지구상의 다른 동물과는 현격히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특징은 실장석류 중에서는 매우 낮은 확률이지만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변이를 하는 개체가 있다는 것이다. 흔히 실장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특유의 안구 색이나 모발의 색, 다소 뾰쪽한 귀의 모양 등을 제외하면 인간 여성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신체구조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하나같이 상당한 미인들이며 오히려 회복력 등 몇몇 부분에서는 실장석의 특징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 보통의 인간보다 우월한 신체능력을 자랑한다. 때문에 실장인들은 그 신체적 능력이나 미인계를 무기로 제한적이나마 인간과 대등한 인권을 인정받았고 양지 음지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들어 실장석 애호단체 등에서는 '실장석은 실장인의 씨앗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능성을 내포한 존재를 찢고 죽이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하는 점을 내세우며 실장권 확립 운동을 벌여 왔다. 개중에는 모든 실장석들에게 실장권을 전면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급진파도 있었고, 검증받은 브리더의 엄격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등록을 마친 소수의 사육실장에 한하여만 권리를 일부 인정하자는 타협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이 있을 때마다 실장석 보호단체나 애호가들은 '사회악인 똥벌레에게 권리를 인정하다니 어불성설이다. 실장석에게 실장권을 인정하려는 자들이 있다면 차라리 다 죽이고 우리도 동반자살을 선택하겠다'는 식의 어떤 이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였고, 결국 애호단체의 실장권 제정 시도는 지금까지 하나같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실장권을 인정하느니 자폭을 선택할 기세로 누구보다 격렬히 반대한 그들은 '학대파 똥닌겐'도 '공원의 하얀 악마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실장인들이었다.





실장석 애호단체의 임원이 '한때는 당신도 실장석이었으니 실장석을 구하는 데 힘을 보태 달라'며 실장권 제정운동에 도움을 요청한 것에 대해 실장인협회의 회장이었던 카오스 실장인이 대답하였다는 내용은 지금도 매우 잘 알려져 있다.

"어떻게 감히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그 따위 망언을 할 수 있는 거에요? 우리를 그런 똥내 뿌리는 들짐승과 같이 취급하다니 양심은 있는 거에요? 물론 우리 실장인들에게 과거 실장석의 기억이나 신체적 특징 같은 영향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인 거에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실장석의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살 때의 영향일 뿐이지 우리가 옛 실장석인 것은 아닌 거에요. 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생김새 하나하나는 물론이고 DNA 유전자 레벨부터 실장석과 다른 별개의 존재인 거에요! 우리가 한때 실장석이었다는 모욕적인 말은 똥거름에서 꽃이 피어난다고 해서 변기통에서 똥을 집어들고 꽃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거에요. 얼굴도 쳐다보기 싫으니 알아들었으면 꺼지는 거에요!"

이러한 실장인들의 태도에 실장석 학대파들이나 실장석 구제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행정관청들, 머리를 싸매며 갑론을박을 벌이던 법조계 등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실장인들의 눈치를 봐서 마지못해 더러운 실장석들에게 실장권을 인정해야 하나 싶었는데 정작 그 실장인들이 대놓고 자신들은 이전의 실장석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며 실장권의 근거를 박살내 준 것이었다. 애호단체들은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며 크게 반발했지만 실장인들 자신이 그렇다는데야 어쩔 수가 없었다.


더불어 실장인들은 실장인이 되기 이전 자신에게 죽을 만큼의 고문을 가하던 학대파 사육주를 평생의 은인이자 사랑의 대상으로 극진히 섬기는가 하면 실장인이 되자마자 실장석 시절 애지중지하던 실장석 자매의 모가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비틀어버리는 등 실장석의 연속이라 보기에는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고, 유전자 레벨부터 완전히 다르다는 이야기도 조사 결과 사실이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실장인들의 말을 억지로라도 믿어 주었다.



물론 실장인들의 이러한 해명을 납득하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이들은 실장인들의 이러한 태도가 흡사 제국주의 식민시대 때 식민제국 본토인들보다 식민지의 앞잡이들이 오히려 더 악질이었던 것처럼 자신들을 실장석과 철저히 분리하고 우월한 존재로 포장하여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실장인들의 정치적인 수작이라고 평하기도 했고, 혹은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를 철저하게 깔아내리고 학대하는 실장석의 종족특성이 극대화된 것이 실장인들의 실장석을 똥벌레 이하로 취급하는 행동이라고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펼치던 대표적인 학자인 두루마리대학교 토시아키 교수에 대해 전국실장인연합이 명예훼손 및 인종차별행위라며 소송을 걸어 승소한 이후로는 대놓고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토시아키 교수는 어디까지나 학문적 견해를 밝힌 것일 뿐이라며 자신을 변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뜯기고 대학의 강단에서도 퇴출되어야만 했다.   





아직까지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는 것이 실장석의 신체능력이지만, 어느 정도 밝혀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장석이 실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실장석으로의 자아를 완전히 포기하고 부정하기에 이르는 수준의 육체적, 정신적인 충격이 필요하다고 한다. 얼핏 봐서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장석이라는 생물은 행복회로로 대표되는 근거없는 나르시즘과 자기애로 똘똘 뭉친 종족이기에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사회생활 학교생활 잘하던 사람이 갑자기 자고 일어났더니 '나는 신이다! 인간을 포기하겠다!' 하고 길거리에서 칼부림을 하더니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수준의 정신병인 것이다. 애호파에 의해 길러지는 사육실장보다 학대받는 실장석들이 실장인이 될 확률이 훨씬 높은 것도, 실장인들이 실장석 시절을 철저히 부정하는 것도 이러한 영향이라 추측된다.

수많은 학대파들이나 실장석 사육기업은 실장인을 만들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실장석을 적록의 얼룩으로 만들고 있다. 사실 숙련된 학대사가 실장석 하나를 붙잡고 1대1로 수십 시간을 투자해 위석붕괴 직전까지 실장석을 몰아붙여도 실장석이 실장인이 될 확률은 1만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인간의 수명이 100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한 사람의 학대사가 인생을 통째로 바쳐 학대를 가해도 실장인 하나를 만들기 힘든 셈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1만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 확률를 두고 고작 스마트폰 게임의 데이터 그림 쪼가리에 수백만 수천만원을 때려박는 사람도 비일비재하고, 8백만분의 1의 확률를 놓고 수없이 많은 사람이 매주 오천원 만원씩 쏟아붓는 세상에서 많은 학대파들은 그 정도의 확률이면 충분히 해 볼만한 높은 확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금도 세상에는 하루 수 명의 실장인이 태어나고 그 십수만배의 이르는 실장석들이 실장권 따위는 무시당한 채로 죽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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