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힌 실장 (실화석)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참피들이 돌아다닌다. 곧 있으면 다가올 춥고 혹독한 겨울을 위해 녀석들은 뭐라도 하나 얻어갈 수 없을까

하며 추수가 끝난 논을 돌아다닌다.


우리 동네에서는 이때 돌아다니는 참피들을 잡아다 삭혀 먹는다. 시골에서 사는 참피들은 인간의 논밭에서 야채나 곡식을 훔쳐먹거나

산열매를 따다 먹기에, 음식물 쓰레기를 주로 먹고 사는 도시의 참피와는 달리 먹기에 나쁘지 않다.

하지만 삭힌 참피는 그런것과는 차원이 다른 호불호가 있다. 처음 귀농을 했을때는 어떻게 이런걸 먹나 경악을 했지만, 지금은

삭힌 참피 하나면 탁주 한사발이 술술 넘어간다.

먼저 논밭에서 잡아온 참피를 한번 씻어줘야 한다. 오늘 하루 잡힌 놈만 일곱 마리. 한 마리는 찌개에 넣어 먹기로 하고 나머지

여섯 마리로 삭힌 참피를 만든다.

우선 우리에서 한 마리를 꺼내 부엌으로 가져온다. 챰피들을 다듬는 과정을 다른 참피들에게 보여주면 안된다. 물론 짓소산인가

머시긴가를 많이 나오게 하려면 보여주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랬다간 서로 난리 발광을 하다 손발이 떨어져나가기 일쑤다.

녀석이 손안에서 데프픗 소리를 내며 팔다리를 마구 휘젓는다. 좀이따 먹으려고 차려놓은 밥상을 가르키며 뭐라고 데스데스

짖어대지만 무시한다. 어짜피 생각할 줄 모르는 미물이 짖는거다.

싱크대에 올려놓고 몸뚱아리 아래에 붙은 하얀 껍데기를 벗기자 녀석이 데프픗 하며 기분나쁜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찬물을

틀어주니 웃음은 이내 비명으로 변한다.재빨리 솔로 구석구석을 닦아준다. 팔다리에 작은 상처들이 남지만, 이래야 좀더

잘 익는법이다. 이때 이놈들을 싸고 있는 초록색 껍데기가 찢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삭힌 참피라는건 껍데기를 씌운 채로

삭히기 때문에 세제도 쓰지 않는다.

다 씻긴 참피는 대개 오로롱 오로롱 소리를 내며 양쪽 눈에서 적록색의 각각 다른 색 눈물을 흘린다.이 다음엔 똥빼기를 한다.

우선, 작년에도 썼던 휴지심만한 굵기의 플라스틱 파이프를 가져온다. 초록색 껍데기의 아랫부분을 들추자, 여성의 음부와

비슷하게 생긴 그것이 드러난다. 내가 껍데기를 들추자 이녀석은 다시 데스데스 짖어대지만, 신경쓰지 말고 아까 준비한 파이프를

구멍에 찔러넣는다.

[데갸악~]

파이프는 슬슬 돌려보며 참피의 뱃속에 밀어넣는다. 이때 내장이 상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파이프를 돌릴 때 마다 뎃승거리며

콧김을 내뿜는게 기분나쁘지만 거기 신경쓰다 작업을 망치면 안된다.

파이프를 다 박았다면 참피의 주둥이를 수도꼭지에 대고 내장을 씻어낸다. 파이프가 제대로 박혔다면 물을 틀 때 녹색의 참피똥이

같이 흘러나온다. 계속 물을 흘려 더이상 똥이 나오지 않으면 다된거다.

이렇게 작업을 마친 참피는 파이프를 받침대삼아 서늘한 곳에 널어 하루정도 물을 말린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참피 살이

물러지고 나쁜 맛이 난다.


물기를 말린 참피들은 철망 위에 파이프를 고정시켜 세워둔다. 2열종대로 세워놓은 녀석들이 단체로 오로롱 오로롱 울어대는

모습은 퍽이나 괴상하다. 이놈들 위에 잘게 썰은 볏짚을 부어준다. 참피들의 목이 잠기고, 입이 잠기고, 적녹의 눈물이 흐르는 눈이

잠기고, 이내 머리까지 잠긴다.

이때 볏짚은 녀석들의 머리 위로 다시 녀석들의 키만큼만 부어준다. 너무 많이 부으면 참피녀석들이 압사할 수 있다. 이제 남은건

이대로 기다리며, 볏짚이 줄어들면 보충해주기만 하면 된다.

볏짚속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참피녀석들은 처음엔 가만히 울고만 있지만, 이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주변의 볏짚을 먹어치운다.

물론 참피의 소화기관이 질긴 볏짚을 소화시키진 못하고 대부분이 똥에 섞여 아래로 떨어진다. 이렇게 똥과 섞인 볏짚은 더

발효시켜 퇴비로 쓴다.

한편,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참피녀석들은 닥치는대로 주변의 볏짚을 쓸어모아 입으로 밀어넣는다. 이 과정에서 참피의

우레탄 몸뚱아리는 볏짚에 쓸려 상처나고 낫고를 반복한다. 이렇게 하면 참피고기에 짓..머시기가 생겨 더 맛있어진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실장석의 땀과 볏짚에 들어있는 미생물이 상처로 들어가며 고기를 발효시킨다. 이것이 참피고기를 더 부드럽고

쫀득하게 만들어 주며, 삭힌 참피 특유의 향미를 더해준다.


보통 한달정도 지나면 더이상 똥이 나오지 않는 파이프가 하나둘 생긴다. 이건 삭힌 참피가 다 되었다는 신호다. 똥이 나오지 않는

녀석을 파내보면 강한 냄새를 풍기며 가사상태에 빠진 참피가 나온다.

머리에 달린 털뭉치를 뜯어내고, 몸을 감싼 초록색 껍데기도 벗겨낸다. 팔다리에 묻은 지푸라기는 깨끗이 털어내고 파이프를

꺼내면서 배를 갈라 내장을 깨끗이 긁어낸다.

팔다리는 생긴 그대로 동글게 썰어낸다. 고통에 가사상태에서 깨어난 것인지 작게 치이..하고 울지만 녀석은 옴짝달싹 못한다.

위석을 빼내 술독에 담그고, 남은 몸통을 썰어낸다. 수평방향으로 허리에서 목까지 얇게 썰어준다. 뼈가 있지만 물렁뼈보다도 무른

뼈는 써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팔 한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초장에 찍어 입에 넣는다. 크으~ 엄청난 실장취에 코가 뻥 뚫린다. 여기에 탁주 한모금 마시니 입안에

머물던 실장취가 시원하게 쑥 내려간다.

다음은 뱃살. 참피에게 지방이 가장 많이 쌓여 돼지비계와도 같은 쫀득한 맛을 준다. 이걸 묵은지에 싸 먹으니, 묵은지의 시큼하고도

깊은 맛과 참피 고기의 쫀쫀한 맛이 어우러져 들어온다. 여기에 또 탁주 한사발. 캬~

한점 두점 먹다보니 머리만 남았다만 이게 또 별미다. 매콤한 양념을 더해 실장 머리찜을 한다. 눈에서 검은 물이 나오지만 이건

오징어먹물 같은거라 먹어도 되는거다.

실장 머리찜을 그릇에 옮겨담자 코를 찌르는 실장취. 이게 또 술을 부르는 맛이다.

실장찜 한점에 탁주 한잔. 긴긴 겨울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무분별한 악플과 찐따 댓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