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프레젠트. (포지티브)

 
1.

볕이 쨍쨍한 가을 날이다. 나는 땀을 쏟으며 고역을 치르고 있다.

“아이고, 허리야···.”

그러나 마음만은 편안하다.

평소에 앉은뱅이로 살던 가구들이 때는 이때다 싶어 제 무게를 뽐낸다. 거 참 무겁구만···.

허리가 휘겠다고 호소하자 집사람은 엄살 말라고 핀잔을 준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밝다.

오늘은 이삿날이다. 아둥바둥 살아온 우리 가족도 드디어 꿈에 그린 듯한 집에 살 수 있다.

짐을 마루에 내리고 둘러본다. 교외의 마당 딸린 집···. 정말 행운이다.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쉰다. 멀찍이 도로와 논밭이 보인다. 어릴적 보아온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흐뭇하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찾아왔다. 외지로 발령이 나고 한 때는 기러기 아빠가 될 각오를 굳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누구도 흩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내도 나도 방법을 찾아 사방팔방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이 집은 뜻 밖의 수확이었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알게 된 주인은 나와 대학 동문이었고, 그는 마침 천천히 집을 넘기려고 생각 중이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여러가지 조율을 통해 우리는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는 나보다 여섯 살 연상의 선배였는데 넉살 좋은 그는 우리와 마음이 꼭 맞았다.

몇 번의 교류 후, 그는 흔쾌히 우리와 계약했다. 그는 원래 생각하던 시기를 앞당기면서 까지 우리의 일정에 맞춰주었다.

고마움을 표하는 우리에게 그가 부탁한 일은 하나 뿐이었다.

'소중히 가꿔온 마당의 정원을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

아, 가끔 귀국하면 술이나 한 잔- 이라는 말도 함께. 그 말을 남기고 그는 훌쩍 해외로 떠났다.


그럭저럭 짐을 나르고 나는 마당을 둘러 보았다. 그는 마당에 텃밭을 가꾸고 화초를 길렀다.

꽃과 풀들은 가지런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성스레 기른 듯한 식물들이다.

그 모양이 나도 대번 마음에 들었다. 편안한 풍경이다. 함께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한다면 아이들도 좋아하겠지.

정면을 모두 살피고 모퉁이를 도니 한 켠에 키가 작은 수목 서너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무슨 나무일까.

가까이 다가가 보니 희고 작은 봉오리가 달렸다. 이건 차나무인가···? 그런데 갑자기 이파리가 스륵스륵 흔들린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산뜻한 색체가 눈에 띄었다. 빨간 천가지가 꾸벅꾸벅 움직인다.

“다와?”

세상에···. 실홍석이다. 이거 참 드문 일이다. 실홍석은 번식률이 낮아서 보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나는 시선을 낮췄다. 교외라곤 하지만 야생실홍이 재주 좋게 차나무 곁을 찾아온 게 신기했다.

실홍은 다와다와 말을 붙여온다. 언짢거나 두려워 하는 기색은 없지만 갑자기 나타난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은 듯 보였다. 눈을 맞추자 실홍의 파란 눈이 반짝 빛났다.

나는 급히 아들녀석을 불렀다. 실홍이 있다고 말하니 아들 뿐 아니라 딸아이와 아내도 차나무 곁으로 모였다. 딸아이는 실홍이 귀엽다며 방방 뛰었다.

아들은 요리조리 자기 폰을 만지더니 실홍석용의 링갈을 준비해줬다. 실홍은 차분히 우리 가족을 번갈아 살펴보고 있었다.

“좋아, 이제 알아들을 수 있어.”

「안녕하신 다와. 인간씨가 이 정원의 주인이신 다와?」

나는 아들이 보여준 링갈의 번역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태 보아온 링갈의 번역에 정중한 말씨가 쓰여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도 몹시 신기하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실홍에게 우리가 이 집에 이사해 왔음을 알렸다.

「와타시는 얼마 전에 이 정원을 찾아낸 다와. 산에서부터 향기로운 냄세를 따라온 다와.」

그렇군···. 이전에 방문 했을 때 확실히 실홍석 같은건 보이지 않았다. 텃밭을 망치는 실장석이 가끔 있다고 들은거라면 또 모를까.

「예쁜 정원에는 주인 인간씨가 있는 다와. 하지만 이곳에는 없었던 다와. 그래서 와타시가 벌레를 잡고 있던 다와.」

실홍은 눈을 빛내며 이야기한다. 영특한 녀석이다. 식물과 더불어 사는 실홍석의 입장에서 꽃과 풀이 많은 이 집 마당은 지나치기 어려운 장소였을 것이다.

또한 드물게 차나무가 심어진 마당이다. 실홍이 열을 올려가며 관리를 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마침 비어있던 정원. 선배가 집을 비우고 우리가 이사오기까지 정원은 잠시 방치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그런 정원을 지켜온 거다.

「하지만 역시 주인씨가 있었던 다와. 와타시는 다시 돌아가는 다와···.」

실홍은 아쉬운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은 링갈을 읽고 있는 우리를 등지고 차나무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돌아간다는 링갈의 번역을 읽은 딸아이가 때를 썼다. 귀여운 실홍이 집을 찾아왔는데 금세 떠난다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딸아이는 아내에게 실홍을 집에서 살게 하자고 말했다. 아내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으음···. 좋아.

“괜찮지 않을까. 이 실홍석이 우리집이 마음에 든다면 말이야.”

딸아이는 환호했다. '아빠, 최고!' 같은 요즘 들어 듣기 힘들었던 말을 거리낌 없이 한다. 허허, 참.

그렇지만 딱히 딸아이의 기분만으로 결정하고자 한 일은 아니다. 들실홍이 자생 차나무를 가꾸며 살아간다는 말은 들은 적있다.

초식동물에 가까운 들실홍은 얌전히 나무를 지킬 뿐, 온순한 생물이다. 더불어 이 실홍은 이미 텃밭 관리에 익숙한 듯 하다. 

모처럼 넓은 마당을 갖게 되었다. 함께 할 반려동물이 한 마리 쯤 있었도 좋지 않을까?

내 설명을 들은 아내는 좋은 생각이라고 수긍했다. 아들녀석도 좋다고 말했다. 그럼 남은건···.

“다와, 다아왓?”

그대로 마당에서 지내는 게 어떻냐는 내 말에 실홍은 놀란 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양갈래 머리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그래도 되는 다와? 기쁜 다왓! 인간씨 정말 감사한 다와.」

링갈에는 곧 승락의 메세지가 떴다. 그렇게 실홍은 우리 마당에 머물게 되었다.

후후, 누가 더 어린건지···. 차나무 곁을 사뿐히 걷는 실홍 주위에서 딸아이는 빙글빙글 춤췄다. 


수 일이 지나 우리는 새 집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특히 딸아이는 마당을 곧잘 뛰놀았다.

도시에 살 무렵에는 바깥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아이였지. 환경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좋은 일은 거듭 일어난다고 했던가. 운 좋게 얻은 이 집에 드물게도 실홍이 머문 건 정말 그 말대로다.

딸아이는 실홍에게 코코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코코는 매일 같이 마당을 뛰노는 딸아이와 금세 친해졌다.

차나무나 텃밭의 식물을 돌보다가도 딸아이가 말을 걸면 다와다와 인사했다.

딸아이의 관심이 조금 귀찮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코코도 그게 나름 즐거운 듯 보였다.

오늘도 둘은 함께 마당 정원을 돌본다. 보기 좋다.




2.

가을이 깊어진 어느 날 저녁, 나는 퇴근길에 특별한 선물을 사 들고 귀가 중이었다. 바깥 활동이 잦은 코코가 쌀쌀해지는 바람에 지지 않도록 두터운 숄을 구매했다.

마당에서 일하면서도 스스로 청결을 유지하던 코코에게 새삼 새 옷을 사준다는 게 멋쩍긴 했다.

그렇지만 모처럼 딸아이와 잘 지내주는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날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당했다. 그 일은 귀가길에 있는 변두리 구멍가게 자판기 앞에서 일어났다.

퇴근길에 나는 종종 그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았다. 다른 곳에서 팔지 않는 제품이 그 자판기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오래된 자판기 기종을 바꾸지 않고 쓰는데 아직 음료수는 제대로 보내온다고 말했다.

하여간 그 맛을 볼 수 있는 게 주변에서 그 곳 뿐이라 오가는 길에 자판기의 단골이 된 거다.

문제는 그 점에 있었다. 내가 항상 그 자판기 앞을 머문다는 사실을 늘 지켜보던 녀석들이 있었으니···.

그 날도 나는 자판기 앞에서 평소와 같이 음료를 뽑았다. 나는 한 손에 포장을 뜯지 않은 작은 숄을 자랑스레 흔들며 길을 걸어왔다.

특별히 종이봉투에 담거나 포장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거기까지 하는 건 너무 남사스러웠기에···. 그러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깔끔하게 수놓인 기성품 실석용 숄. 그것을 나풀나풀 흔들고 왔으니 당연히 그 물건에 눈독을 들일 도둑들이 있기 망정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안일하게 물건을 자판기 앞에 내려놓았다. 서류 가방과 함께.

동전이 자판기 투입구에 톡하고 떨어진다. 모든 건 일상의 풍경과 같았다.

그리고 나는 캔을 뜯고, 자판기를 등진 채, 멀리 논밭 너머로 지는 해를 아련히 지켜보는 영화 같은 일을 즐기고 있었다.

어휴···. 하여간 물건이 사라진 걸 알아 챈 건 뜯은 캔을 모두 들이키고 난 뒤였다.

서류가방 위에 있던 비닐 포장된 숄은 그야말로 감쪽 같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으나,

역시 마무리가 허술한 녀석들답다. 신나서 테칫테칫 뒤뚱거리며 수확이 끝난 논밭을 지나는 녹색 벌레가 석양에 비추면 눈에 띄지 않을리가 없지.

도망칠 때 마저 나에게 다가올 때 만큼의 조심성을 발휘하는 건 녀석들에겐 불가능한 모양···.

정장을 입고 흙으로 내려가는 건 조금 싫었지만 어찌 하겠는가, 나는 멀리 보이는 녹색 점을 뒤쫓았다.

“테프프픗. 테칫 테치잇.”

“테챠아아앗! 테챠아악!”

물건을 훔친 건 자실장들이었다. 자매쯤 되어 보이는 자실장 세 마리는 자꾸만 투닥거리며 천천히 논밭을 가로질렀다.

한 녀석이 포장 된 숄을 붙잡아 들면 다른 녀석들은 아웅거리며 빼앗으려 들었다. 훔친건 좋았지만 저마다 숄을 독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웃기는 놈들. 그 물건은 제깟 놈들이 입을 게 아니다. 나는 열이 뻗친 채 녀석들에게 다가갔지만 자실장들은 저들끼리 테칫거릴 뿐 나의 접근을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그대로 조용히 자실장들을 쫓아 반대편 두렁에서 녀석들의 집으로 보이는 골판지 박스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자식들의 소리를 들었는지 골판지 박스에선 성체 한 마리가 기어나왔다.

“데슷 데스우. 뎃···.”

그리고 역시나 친실장으로 보이는 그 녀석은 쫓아오던 나를 알아봤다. 

“데, 뎃, 데샤아아아아앗!”

나는 그 웃기는 몰골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자 아들이 설치해준 링갈을 실장석 용으로 돌렸다.

「오마에타치 미친데슷? 닝겐을 불러 들이면 어쩌자는 데샤앗! 오마에타치는 똥벌레인 데샤아아앗!」

「테에···. 텟, 아닌 테츄! 아닌 테츄 마마! 와타치는 몰랐던 테츄! 테에에엥.」

「테에에엥. 닝겐상이 어째서 여기 있는 테챠. 테에에엥.」

숄을 들고있던 한 녀석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나를 보고 놀라 친실장에게 뛰어들었다.

「뎃, 그건 또 뭐인 데수! 호오, 어디서 이런 세레브한 옷을 구한 데수? 이건···. 오마에는 똑똑한 자인 데숫. 오늘부터 와타시가 입는 데스. 데프프프픗.」 

「그건 와타치가 구한 세레브인 테챠! 똥마마가 훔쳐입는 건 용서 못하는 테챠아앗!」

숄을 빼앗아 들려는 친실장과 기를 쓰고 붙잡는 자실장. 가관이다.

“그래, 그건 안되겠는데 똥벌레. 그 물건은 내 것이거든.”

일가는 나를 돌아본다. 조금 전까지 숄에 마음이 팔렸던 둘도 다시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데, 뎃 니, 닝겐상의 물건이었던 데수까? 미, 미안한 데수. 자들이 어려서 저지른 일인 데수. 목숨만은 살려주는 데쑤.」

자실장들은 도게자를 하려드는 친실장의 그림자로 숨어든다. 친실장은 숄을 품안에 안은 채 엎드리려 하고 있다.

내놓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나는 쪼그려 앉아 손을 뻗어 흔들었다. 피곤하니 어서 내놓으라는 표시였다.

친실장은 멍하니 내 손과 포장된 숄을 번갈아 봤다. 그러더니.

「가, 감사한 데수. 친절한 닝겐상. 와타시타치는 집으로 돌아가보는 데수. 오마에타치 이제 된 데수. 집으로 가는 데쑤.」

녀석은 겁먹은 표정으로 숄을 손에 쥔 채 박스로 향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기가막힌 모습에 얼이 빠져 돌아가는 녀석들을 지켜보았다.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야 그 상황에서 훔친 물건을 들고 안전히 돌아가겠다고 말 할 수 있는 걸까.

아니다. 아니야. 이게 정상이다. 내가 그 동안 코코와 대화에 빠져 실석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실장들의 행태를 잠시 잊고 살았을 뿐.

링갈의 번역은 틀리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녀석들에게 걸맞는 방법은 과연 대화가 아니다.

나는 돌아가는 실장일가를 앞질러 박스에 다가섰다. 녀석들은 또 다시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데에, 닝겐상 무슨일인 데수. 와타시타치는 이제 집에···.」

뻥! 나는 박스를 힘껏 걷어찼다. 뭉툭한 골판지의 감각이 발등에 걸리고 박스는 찢어지며 하늘을 날았다.

「데샤아아아아앗! 똥닌겐! 이게 무슨 짓인 데샤아아아앗!」

친실장은 울부짖으며 날아간 박스로 뛰어갔다. 그 와중에도 숄은 놓지 않았다. 자실장들은 심히 당황한 듯 그 자리에서 굳었다.

아마 제 집을 순식간에 수 미터 날려버리는 인간의 압도적인 완력에 놀라 지려버린듯 하다.

「테에에엥! 사녀챠!」 

한 마리 만큼은 제 동생을 찾으며 친실창을 쫓아 달렸다. 박스 안에 새끼가 더 있는건가.

아무래도 좋다. 나는 물건을 회수하러 왔을 뿐이니. 그치만 그런 어이없는 작태를 보인다면 실력행사를 할 필요가 있기 마련이지.

나는 친실장이 아직도 집착하는 내 물건을 되찾으러 날아간 박스로 다가갔다. 주욱 찢어진 박스에서 봉투며 페트병이며 플라스틱 조각이며 여러가지가 쏟아져 흩어져있었다.

「오로롱 오로롱. 집이 망가진 데수! 오로롱 오로롱.」

“얌전히 물건을 내놨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지. 어서 내 물건을 내놓아라.”

친실장은 제 손에 쥐고 있던 숄을 바라봤다. 이런, 비닐이 개판이 됐다. 안의 물건은 괜찮으려나.

그러나 내가 다가가도 친실장은 물건을 내놓으려는 기미가 없었다. 대신 숄의 자수를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내놓으라는 말이 안들리나? 네 자들을 한 마리씩 밟아 죽여볼까?”

자실장들은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저마다 테챳거리며 친실장을 쏘아 붙였다.

「테에엥 마마 어서 줘버리는 테츄! 와타치 죽고 싶지 않은 테츄! 테에엥」

그럼에도 친실장은 더욱 어이 없는 말을 꺼내는 데···.

「무, 무슨 말인 데수! 닝겐상 아까 와타시에게 세레브를 들고 가보라고 손짓 하지 않은 데숭! 이건 와타시의 세레브인 데수! 약속을 지키는 데쑤!」

나는 주저앉아 울고 있던 친실장의 한 쪽 다리를 살포시 짓눌러버렸다. 다리는 별 느낌 없이 산산히 으깨져 흙 밭의 자국이 되었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앗! 와타시의 발씨가!」

하염없이 다리를 부여잡는 친실장. 나는 그 옆에 놓인 숄을 집어 들었다. 친실장은 고통에 다리 근처를 문지르면서도 시선은 내 손을 향했다.

「데에···.」

입을 벌리고 눈물을 흘리며 멀어져가는 물건을 바라보는 친실장. 제 기억을 날조해가며 이 물건에 집착할 이유가 녀석에게 있는걸까?

아마도 실장석 특유의 허황된 욕망에 불과하겠지.

나는 돌아서서 다시 귀가길에 올랐다. 테에엥, 데에엥 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귀에 거슬려 나는 재빨리 그 곳을 벗어났다.

다행히 포장이 조금 더러워졌을 뿐 숄은 하나도 망가지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코코는 딸아이와 함께 마루에 앉아 작은 컵에 차를 마시고 있었다.

컵은 딸아이가 준비해 준 물건이었다. 코코는 자신에게 컵이 생기자 매우 감격했다.

저녁 무렵의 티타임을 즐기는 코코에게 나는 더러운 포장을 뜯어 치우고 숄을 선물했다. 

내 선물을 받은 코코는 「정말 고마운 다와. 주인 인간씨. 장미같이 예쁜 옷이 다와!」라고 뛰듯 기뻐했다.

딸아이는 코코의 시착을 도왔다. 딸아이도 코코의 몸에 딱맞고 어울린다며 엄지를 치켜들어 나를 칭찬했다. 

마루에 웃음 꽃이 피었다. 훈훈한 저녁이었다.




3.

그 뒤로는 그럭저럭 평안한 날들 뿐이었다. 코코는 집에 완전히 녹아들어 새 가족이 되었다.

나도 아내도 딸아이와 놀아주고 마당도 잘 가꾸는 코코가 마음에 들었고, 딸아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들녀석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 이야기하곤 했지만 오며가며 코코와 익숙하게 대화했다.

실홍석은 정말 영물이다. 나는 어렴풋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생물종과 크게 다투지도 않으며 제 할 일을 하고 적절한 공생 관계를 유지할 줄 안다.

특히 다른 실석류인 실장석과 비교한다면 실홍석은 그야말로 요정에 가까운 생물이었다. 천성적인 우아한 말씨와 행동거지, 단아한 외견.

이런 생물이 자를 그다지 낳지도 않은 채, 산에서 홀로 고독과 평온을 지키며 다도를 즐긴다. 참 그럴듯 하게 만들어진 설화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코코는 지금 여기 있다. 설화가 아닌 현실에서 우리 가족과의 생활을 기쁜듯 누리고 있다. 나는 그 모습에서 왠지모를 뿌듯함과 평안을 느꼈다.  


그런 평화롭던 어느 날이었다. 가을이 거진 다 지나갈 무렵 나는 코코의 숄을 훔치려든 실장 일가를 다시금 마주쳤다.

일가는 다 헤진 옷으로 세찬 바람을 맞고 있었다. 어느 모로 봐도 겨울이 오면 얼어죽을 법한 꼴이었다.

녀석들은 전과 달리 자판기 근처가 아닌 우리집에 가까운 논밭의 모퉁이를 추적추적 걷고 있었다.

나는 마침 이른 귀가 중이었는데 녀석들은 나를 알아봤는지,

「테에에엥 마마 무서운 닝겐상인 테츄 테에에엥」

그러 소리를 남기고 멀찍이 도망가버렸다. 내가 무섭다면 우리집 근처에 둥지를 틀지 않으면 좋을 것을.

집에 들어서니 코코가 어째서인지 문을 지키고 있었다.

“다왓? 다와아.”

사람이 드문 곳이라 딱히 문을 지킬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귀가 인사와 함께 그 이유를 물어봤다.

「다녀오신 다와, 주인 인간씨.」

코코는 손을 모아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는,

「실장석들이 정원을 넘보길래 흠씬 두들겨서 내쫓은 다와.」

코코는 가슴을 내밀며 자랑스레 말했다. 아무래도 실장 일가가 우리집 텃밭을 노린 모양이었다.

코코가 말하기를 며칠 전부터 정원을 향해 묘한 시선이 느껴져서 문 근처를 살폈다고 한다. 그랬더니 실장석 몇 마리가 자꾸 눈에 띄었다고.

녀석들은 계속해서 우리집 문을 살피며 기회를 넘봤다고 한다. 그러다 우리 가족이 모두 외출한 틈을 타 마당에 침입했지만 그곳에는 코코가 있었던 것.

나는 코코를 칭찬했다. 코코는 끄덕이고 차나무를 돌보러 돌아갔다.

저녁 나절에 아들이 돌아왔다. 아들녀석에게 그 일을 얘기하자, 아들은 코코에게 다가가 목에 걸려있던 작은 기계를 가져왔다.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기록 기능이 딸린 휴대용 링갈이라고 한다. 혹시 코코가 낯선 이와 대화할 일이 있을까 싶어 준비해줬다고 아들은 말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녀석도 코코를 아끼는구만···. 아들은 노트북을 가져와 기록을 열어 보여줬다.


「당신들, 정원에 무슨일인 다와?」

「텟, 마마 붉은 녀석이 있는 테츄웅!」「아무도 없는게 아니었던 테치!」

「데, 데 왜 붉은 녀석이 여기 있는 데스···.」

「이곳은 인간씨의 정원인 다와. 이곳을 어지럽히면 용서 할 수 없는 다와. 어서 나가는 다와.」

「마마 배고픈 테츄. 붉은 녀석을 때려눕히는 테츄! 저기 아마아마 보이는 테츄!」

「자들···. 물러서는 데쑤. 저 녀석은 쉽지 않은 데수. 잘못하면 죽는 데샤.」

「···.」

정적. 잠시 뒤 어수선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테에에에에엥! 배고픈 테츄!」「 어째서 우마우마 먹으면 안되는 테츄! 테에에엥 못참겠는 테츄!」

「풀은 이제 싫은 테츄 테에에엥!」 「저렇게 우마우마 많은데 왜 우리는 못먹는 테츄! 테에에엥-」

「다왓?」

「잠깐 차녀쨩 기다리는 데쑤! 가면 안되는 데···. 데샤아아아앗!」「테에에에엥.」

「화단에 손대지 마는 다왓! 작은 주인씨가 정성껏 기른 것인 다왓! 당신, 혼나는 다와아아.」

「테에에에에엥-」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막무가내인 자실장을 코코가 잘 막았는지 화단은 깨끗했다. 저런 말도 안통하는 벌레를 상대한 코코도 참 고생이다.

아들이 말하기를 저 들실장들은 아마도 다시 찾아올 것이란다. 겨울 날 준비를 하는 일가가 풍성한 텃밭을 두고 다른 티끌을 모을 리가 없으니.

만일 녀석들이 다시 찾아와도 코코에게 쫓겨날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그런다는 게 실장석이란 놈들이겠지.

돌아오는 휴일 오후, 나는 코코와 함께 실장석 일가를 소탕하기로 했다.

집 앞을 얼쩡거리는 실장석이 있다는 게 굉장히 불쾌했기에 우리가 직접 나서 녀석들을 멀리 내쫓기로 했다.

딸아이도 코코와 함께 외출하고 싶어했지만 숙제부터 마치라는 엄마에게 붙잡혔다. 대신 왠일인지 아들녀석이 이런저런 장치를 들고 따라 나섰다.

우리는 이전에 내가 일가를 보았던 논밭 모퉁이로 가보았다.

길을 따라 전봇대만 줄줄이 늘어선 그곳에 실장석의 그림자는 없었지만, 주변을 뒤지니 녀석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 되었다.

주변을 십여분 뒤져, 우리는 녀석들의 집으로 보이는 구멍을 발견했다. 얕은 두렁의 끝을 파내고 볕단과 비닐 따위로 지붕을 만들고 입구를 막은 거처였다.

저번에 내가 차버린 골판지 하우스의 환경에 비하면 단연 허술해 보였다. 급조한 집이라서 그런건가.

나와 아들이 살피기에는 굴이 너무 낮고 어두워 코코가 안쪽을 살피기로 했다. 아들은 코코에게 자그마한 손전등을 넘겨줬다.

코코는 양손으로 등을 들고 굴속으로 들어갔다. 굴의 안쪽에서 다와다와하는 말씨가 들리는 게 무언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잠시 뒤 코코는 양갈래 머리로 구더기를 안고있는 엄지 한 마리를 연행해 나왔다. 코코는 바둥거리는 엄지를 들어올려 우리에게 보여줬다.

「이 아이밖에 없는 다와.」

「레뺘아아아아악! 마마! 레에에엥- 어디있는 레츄. 레에에엥-」

엄지 녀석은 허공에서 팔을 허우적거렸다. 들고있던 구더기는 떨어져 머리를 부딛혔는지 작게 레에, 레에- 거리기만 하고 조용했다.

「그런데 주인 인간씨, 안쪽에 이런 물건이 있었던 다와.」

머뭇거리던 코코는 뜻 밖의 물건을 우리에게 넘겼다.

코코의 숄을 살 때 샵에서 본 것과 비슷한 류의 작고 동그란 명찰이었다. 흠집이 많이 난 한 면에는 '미도리'라고 적혀있었다.

그 친실장은 원사육실장인건가. 아들은 아무래도 그런 듯 하다고 말한다. 

하기야 녀석은 묘하게 인간에게 쉽게 타협했다. 처음 둥지에 다가갔을 때, 적어도 겉으로는 제 자식들의 범행이 잘못 되었음을 인정하고 도게자까지 하려고 하였으니 말이다.

그건 인간의 두려움을 잘 알고 있는 실장이기에 그랬던 것일지도.

멍청한 분충에 불과했다면 숄에 눈이 먼 채 나에게 덤벼들어 한 줌 덩어리가 되었을 법도 한데, 녀석은 이상한 꾀를 부리기까지 했다.

꾀가 아니라면 집착이라던가···.

하지만 지금은 일가 소탕이 우선이다. 나는 쾌적한 생활을 원한다.

아들녀석이 발버둥치는 엄지를 심문하기로 한다. 어떻게 할까 궁금해서 가만 지켜봤는데, 아들은 회유책을 쓰려는 모양이었다.

아들은 별사탕 한 알을 엄지의 눈높이에 맞춰 들고 꾀어내기 시작한다.

엄지는 '콘페이토' 라는 말에 울음을 그치고 아장아장 아들의 손가락을 따른다. 그러다 갑자기 아들은 사탕을 감춘다.

「렛! 어디간 레치? 콘페이토 사라진 레치···? 레에-」

「닝겐상 콘페이토 주는 레츄? 와타시 아마아마 먹는 레츄?」

아들은 교섭한다. 마마와 언니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면 콘페이토를 주겠다고.

엄지는 고민한다.

「레···. 마마는 오네챠들이랑 밥을 구하러 간 레치. 저어 쪽에 우마우마 가득하다고 한 레츄···. 닝겐상 콘페이토 주는 레츄.”

엄지는 제가 아는 정보를 토해내고 아들의 손가락을 잡으려 통통 뛴다. 아들은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다 다 죽어가는 구더기 옆으로 사탕을 떨궜다.

「레엥? 우지챠···? 우지챠! 우지챠 정신차리는 레챠아아앗! 레에에에엥.」

우리는 정보를 종합해서 다음 행동을 의논했다. 그럼 어떻게 할까···.

링갈에「닝겐상! 우지챠를 살려주는 레츄! 레에에엥-」하는 메세지가 찍혔지만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엄지는 하염없이 울었다.

녀석이 말한 저쪽이란 대충 우리가 걸어온 방향이었다. 드문드문 민가와 길이 있는 쪽이다. 아니면 구멍가게 주위에서 쓰레기라도 주우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코코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 바지깃을 살짝 집고 흔들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건가?

「주인 인간씨, 아무래도 정원이 걱정된 다와.」

아뿔싸···. 녀석들이 오늘 구한다는 식량은 우리집 텃밭 채소를 말하는 건가···?

큰일이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바깥'에 있을 녀석들을 잡아 소탕하겠다는 생각은 했어도, 엇갈려 우리 집 텃밭으로 향할 수도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않았다.

게다가 하필 오늘은 코코도 밖에 나와있다. 딸아이는 안쪽 방에서 숙제 중, 아내는 뒷마당에서 빨래 중···. 그야말로 빈마당 털이가 아닌가.

“다-왓?”

나는 코코를 안아들고 집을 향해 달렸다.




4.

숨을 몰아 내쉬며 도착한 마당은 역시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녹색 벌레들은 뛰어들어온 나를 보고 흠칫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니, 닝겐상이 어째서 벌써 돌아온 데스. 분명히 붉은 녀석을 버리러 나가는 걸 본 데쓰···.」 

난잡하게 풀을 잡아 뽑던 자실장들도 친실장 주위로 모여든다. 한 녀석은 똥을 지려 나자빠진다. ···. 더럽다.

나는 코코를 마당에 내려줬다. 코코는 화가 난 듯, 위압감을 뿜어내며 실장들에게 다가섰다.

「당신들, 와타시는 분명히 말했던 다와···. 다음에 또 정원을 어지르면 그땐 정말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다와.」

「오, 오마에는 멍청한 데씃! 어째서 닝겐의 음식을 지키는 데쑤? 그 닝겐도 언젠가 오마에를 버릴 게 분명한 데쑤!」

코코는 멈칫한다. 버린다고···?

친실장은 멈춰 선 코코를 보고 기세를 올린다.

「그런 똥닌겐들의 편에 서는 오마에는 똥멍청이인 데쑤! 와타시는···. 와타시는 더 이상 닝겐에게속지 않는 데수! 들에서 자를 가득가득 낳아 행복하게 사는 데쑤!」

「똥멍청이인 테츄!」 「멍청한 테츄!」

자실장들도 가세한다. 작은 녀석들은 덜덜 떨면서도 기세를 올린 어미를 따라 욕지거리를 입에 담는다.

녀석들의 비난에 코코는 발걸음을 때지 못했다. '버린다'는 말에 반응한걸까···.

코코는 살짝 우리를 뒤돌아본다. 본 적 있는 표정이다. 코코를 처음 만났을 때 떠나려던 코코가 차나무를 쓰다듬으며 보여준 표정.


그치만,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고개를 흔들고 코코에게 보란듯 웃어주었다.

표정이 풀린 코코는 다시 돌아서서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하는 다와. '버려'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다-와. 와타시는 주인 인간씨의 정원에 살기를 허락 받은 다와.」

「주인 인간씨가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면 와타시는 떠나는 다와. 그리고 와타시가 떠나고 싶어도 와타시는 떠나는 다-왓.」

「하지만 그러지 않는 다와아. 와타시는 이 정원이 너무 좋은 다-왓.」

친실장은 코코의 반론을 듣고 입을 벌린 채 말을 잃었다. 같은 실석류이지만 제 처지와 코코의 처지, 그리고 둘의 사고는 너무나도 다르다.

그 모습을 본 멍청한 자실장들은 「마마?」「마마 왜 그러는 테츄! 어서 멍청이를 때려 눕히는 테츄웃!」따위의 말을 늘어놓으며 친실장의 속을 긁었다.  


우리는 녀석들의 포위망을 좁혀나갔다. 실장들은 뒷걸음질 치다가 담벼락에 등을 맞대고 서게 되었다. 어떻게 혼을 내줄까···.

주머니를 만지니 차고 딱딱한 물건이 손에 잡혔다. 꺼내보니 아까 둥지에서 주운 작은 명찰이다. 그래 참, 그렇지···. 

코코는 양갈래를 팔랑이며 싸울 준비를 하고있다. 나는 낮게 앉아 코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코코, 잠깐만.”

그리고 친실장 앞으로 명찰을 던져뒀다. 친실장은 익숙한 물건이 내 손에서 나오는 걸 보고 당황한 듯 보였다.

“'미도리'가 네 이름인가 보군. 과연···.”

미도리는 명찰을 주워들고 부들부들 떤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듯, 눈물을 흘리고 입가를 잘근잘근 씹으며 명찰을 어루만졌다.

“인간에게 속지 않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인간이 없으면 살 수 없나보군. 네 녀석이 버려진 이유를 잘 알겠다.”

「데샤아아아앗! 똥닌겐···! 닥치는 데샤아앗···!」

'미도리'는 몸을 숙여 나를 위협한다. 그러고는 온갖 욕지거리를 우리에게 퍼부었다. 양안은 눈물이 줄줄 흐른다.

자실장들은 극한의 분노를 내뱉는 어미가 무서운듯 담벼락에 바싹 붙어 「테에엥」 거리고 울기만 한다.

“그런 주제에 사육실장의 꿈은 버리지 못했는가. 명찰은 버리지도 못하고, 남의 옷에 집착하는 꼴이라니 우습구만.”   

'미도리'는 옷이라는 말에 반응해 코코의 숄을 들여다 본다. 그렇지, 그 옷이다. 네 녀석이 그토록 멍청한 머리로 꾀를 내면서까지 집착한 옷.

코코는 「다-왓?」거리며 숄에 강렬한 시선을 쏘아대는 '미도리'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나는 '그럴 일이 있었어.' 라고 코코에게 말했다.

“하지만 정신 차려라. 네 녀석은 더 이상 '미도리'가 아니야. 한 낱 멍청한 들실장일 뿐이ㅈ···.”

녀석은 갑작스레 움직였다. 내 말을 듣던 친실장은 화를 참지 못하고 코코에게 덤벼들었다.

“다와아아앗? 다-와앗?”

떠밀려 오는 고깃덩이에 코코가 밀쳐졌다. 갑자기 거리를 좁히는 녀석에게 코코도 놀랐는지 트윈테일이 반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데에···에에엥···.」

「테에엥- 마마 일어나는 테츄! 테에엥」 「어서 저 녀석을 때려 눕히는 테츄. 테에엥- 마마!」

코코는 친실장을 가뿐히 때려 눕혔다. 평소의 우아한 몸짓과 다른 격렬한 움직임이었다.

마치 인파이팅 스타일 격투선수처럼 펀치 한 방, 한 방에 무게를 실어 친실장을 가격했다. 어설픈 친실장의 태클과는 차원이 달랐다.

친실장을 때려 눕힌 코코는 '훗' 하고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승리를 자랑스러워 했다.

아들녀석은 재밌는 장면이라도 봤다는 듯이 박수를 짝짝 울렸다. 그만해 그거 북녁의 죽은 독재자 같잖냐···.

하여간 그 날의 소동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딸아이는 마당의 소리에 뒤늦게 뛰쳐나왔는데, 흙이 묻은 코코의 옷을 탁탁 털어주며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코코는「아무 일도 아닌 다와. 작은 인간씨, 주인 마님이 말씀하신 '숙제'는 다 끝마치신 다와?」하고 다시 우아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딸아이는 그 말에 얼굴을 찡그리며 숙제를 해야겠다고 돌아갔다.

그 사이에 우리는 실장일가를 모조리 체포했다.

아들녀석이 말하기를, 녀석들을 함부로 죽여서 내다 버리면 안되겠지만 옷을 벗기고 머리털을 뽑아 보내면 어디선가 나타난 동족이 녀석들을 처리해 줄거라고.

덤으로 녀석들의 둥지도 철저히 헤집어 놓았다. 혹시 다른 벌레가 자리잡으면 안되니까. 어디로 갔는지 엄지와 구더기 사체는 이미 사라졌다.

얻어맞아 퉁퉁 부은 와중에도 친실장은 계속해서 발버둥 쳤다. 옷을 벗기고, 머리를 뽑을 때 어찌나 고생을 했는지.

그러다 아들녀석은 좋은 방법이 있다며 명찰을 주워왔다. 그리고 녀석의 눈 앞에서 명찰을 뽀각 소리나게 조각냈다.

친실장은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잠잠해졌다.

어미를 찾는 자실장들의 새된 목소리가 조금 시끄럽긴 했지만 작업은 금세 끝나서 우리는 녀석들을 먼 곳에 내다 버렸다.

멍한 표정의 친실장을 끌어안고 우는 자실장들. 우리는 그 독라 일가의 모습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ep.

코코의 도움으로 텃밭의 청소와 복구는 금방 끝났다. 

지금은 딸아이가 코코와 함께 마루에서 쉬고 있다. 나는 둘의 곁에 가서 앉았다.

코코는 작은 찻잔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자신이 돌본 차나무에서 입맛에 맞는 잎을 차로 만든 모양이었다.

조용하다. 가끔 코코가 홍차를 홀짝이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마당은 가지런히 정돈되어있다.

차나무가 사락사락 바람에 흔들린다. 코코는 살며시 웃으며 차나무를 바라봤다.

코코는 말했다. 자신은 나의 허락이 있어서 이 마당에 머문다. 그리고 자신 또한 이곳이 마음에 들어 이 마당에 머문다.

사려깊은 말이다. 어디까지나 자신을 '객'으로 여기고,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코코는 머문다. 우리 모두 코코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고, 아마 코코도 우리를 좋아하기 때문이겠지.

기분 좋은 관계 그리고 평안이다.  

“코코, 그러고보니 정말 잘 싸우더라. 격투 선수인 줄 알았어.”

「그, 그건 아닌 다-왓! 오해인 다와···.」

「주인 인간씨, 참 짓궂은 다-와···.」

우리의 대화에 따라오지 못한 딸아이만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의문을 표했다.

코코는 웃으며 나를 토닥토닥 때렸다.

가벼운 바람이 우리 곁을 스쳤다.

코코와 우리의 일상은 언제까지고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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