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주) 두루마리에서 새롭게 시도하는 실장 인화 공장. 경기도 양평의 백만평 부지에 만들어진 이 곳은,
공장이라는 이름과 달리 기계나 건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줄지어 있는 무릎 높이의 나무박스들에는 실장석들이
하나씩 살고 있으며, 급수시설과 실장석들이 모여 서로 사교의 시간을 가지는 광장이 여러 군데 있다.
그렇다, 실장 인화 공장이란, 실장석들에게 주거를 제공해 주며, 인화 고치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설이다.
"데에... 해씨가 벌써 나와주신 데스"
아침 배식시간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성체실장, 집 한쪽 구석에 있는 운치굴로 가 모닝 운치부터 한다.
'뿌지직'
'철푸덕'
"데퍄아~"
운치굴에 사는 노예들이 운치에 맞아 깨어난 모양이다. 저 놈들은 닌겐들이 시킨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저열한 것들이다.
저런 것들에 비하면 와타시는 얼마나 세레브한가. 라며 치프픗 웃어준다.
이곳의 운치굴은 인간에 의해 공동으로 관리된다. 인간이 시킨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경고가 누적되거나, 다른 실장석과 싸우면
독라가 되어 운치굴 행이다. 한번 운치굴에 들어가면 끝.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 어느 실장석이나 운이 나쁘면 운치굴 행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실장석은 자신이 그렇게 될거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다.
성체실장은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켠다. 인화공장의 넓은 부지를 실장석들이 걸어서 돌아다닐 수는 없어 내부 이곳저곳에 실장열차가
다닌다. 8시가 되면 식당으로 향하는 실장열차가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아직은 시간이 남아있지만, 옆집의 실장석은 아직 한밤중인
모양이다.
"이웃상! 이웃상! 일어나는데스. 밥먹을 시간인 데스"
정말, 매번 저렇게 와타시가 깨워 줘야 한다니, 이웃상도 글러먹었다. 저렇게 게을러서야 어떻게 세레브한 실장인이 될 수 있겠는가.
가벼운 우월감에 빠져있는 중에 이웃실장이 일어나 문을 열었다.
"이웃상 안녕하신데스? 매번 이렇게 신세를 져서 미안한 데스"
"우리사이에 별말을 다하는 데스. 빨리 밥먹으러 가는 데스"
성체실장은 이웃실장과 함께 실장열차를 타러 간다. 드넓은 인화 공장의 실장 거주구에는 대략 만마리의 성체 실장석들이
거주하고 있고, 거주구는 다시 스무개의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장열차는 각 거주그룹별로 운행하고, 공동식당 역시 그룹별로
운영되기에, 지능이 낮은 실장석이라도 잘못하여 다른 그룹의 구역으로 섞여들어가는 일은 없다.
좀 이른듯한 시간에 공동식당에 도착한 성체실장과 이웃실장. 익숙하게 공동 식판을 하나 꺼내들고는 배식대에서 푸드를 덜어
담는다. 시중에서 파는 먹기좋은 큐브모양의 푸드가 아닌, 건조시킨 음식물 쓰레기를 잘게 부숴 반죽한 것이지만, 양은 제한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두 실장은 늘 앉는 좋은 자리를 골라잡고는 주변 실장석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데챱데챱
푸드를 조금씩 입에 집어넣었다.
"소식 들은데스? 분수대 앞집이 어젯밤 인화한 모양인데스"
"정말인데스? 분수대 앞집이면 오마에보다 한참 늦게 들어오지 않은 데스?"
"그런데스. 그런 한심한 분충도 인화하는데 와타시는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데스. 세레브한 와타시가 아직까지 실장석인것은
전 세계적인 손실인데스"
"오마에, 말조심하는 데스. 분수대 옆집도 오늘 아침에 그런소리 하다가 닝겐노예에게 투분하고 운치굴로 간 데스"
아무래도 이웃이 인화하자, 질투심에 날뛰다 운치굴로 들어간 모양이다. 인화 공장에서는 딱히 예의범절을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실장석을 해치거나 투분하는 개체는 곤란하다. 각각의 실장석들은 언젠가 인화할 가능성을 가지기 때문에,
동족을 죽이는 실장석은 공장 전체에 해가 된다. 또한 연구에 따르면, 동족식을 하는 개체나 자가 있는 개체는 인화할 확률이
현저히 낮아진다. 때문에 인화 공장 안에서 정도 이상의 분충들이나 자를 가지는 개체들은 배제된다. 전자는 독라가 되어
지하의 운치굴 노예가, 후자는 개체수 조절을 위한 출산석이 된다.
"다들 조용히 하는 데스. 시작하는 데스"
누군가가 소리치자 다들 떠들던걸 중단하고 식당 한쪽 구석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바라본다. 그곳에서는 지적이고 세레브한
실장인 주인공이 수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받으며 고난을 헤치고 행복을 찾아간다는 실장석들이 좋아할 법한 드라마를 방송한다.
일찍 일어난 성체실장이 자리잡은 명당자리는 스크린 앞의 가장 잘 보이는 자리. 여기 모인 모든 실장석들은 이 드라마에 빠져
내가 실장인이 된다면 저런 생활을 하리라 꿈꾼다. 드라마가 시작되면 식당은 조용해지고 간혹 푸드를 입에 넣고 씹는 소리만이
들린다. 개중에는 푸드 먹는 것도 잊고, 닫히지 않는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르는 것도 모르고 멍하니 드라마에 빠져있는 녀석들도 있다.
"에메랄드상 부러운데스. 와타시도 에메랄드상 처럼 되고싶은 데스"
"와타시도 빨리 고치를 만들면 좋겠는데스. 그나저나 오늘 작업은 어디인 데스까?"
"모르겠는데스. 와타시는 운치작업만 아니면 좋은데스"
"와타시도 푸드작업이면 좋겠는데스"
드라마가 끝나는 11시에 이들은 작업장으로 이동한다. 이만한 실장석들을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기엔 아쉽다. 그렇기에 여기
실장석들은 푸드로 가공될 음식물 쓰레기에서 먹을 수 없는 것 - 비닐조각이나 플라스틱, 유리등을 골라내는 작업이나, 운치굴에서
반죽되고 발효된 운치를 비료로 판매할 수 있도록 둥글게 뭉치거나 포대에 담는 작업에 동원된다. 즉, 그들이 먹는것과 싸는것에 대해
일정부분 자신들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당연히 실장석들은 푸드 작업을 선호하기에 거주그룹별로 돌아가며 작업을 맡고,
어느 그룹이 어떤 작업을 하게될지는 일정을 정하는 인간들 외에는 알지 못한다.
성체실장이 속한 그룹은 오늘 푸드작업에 할당된 듯, 그들이 탄 실장열차는 푸드공장으로 향했고, 눈치빠른 성체실장은 이를
눈치채고 환성을 질렀다.
"럭키인 데스. 오늘은 푸드작업인 데스"
"푸드작업인 데스? 오늘도 꿀빠는 데스"
열차가 공장에 도착하자 실장석들은 앞다투어 공장에 들어간다. 줄지어 늘어선 컨베이어 벨트에 하나둘씩 자리를 잡는데
여기서도 명당자리가 있다. 바로 컨베이어 벨트가 시작되는 부분. 부지런한 성체실장과 그에 끌려온 이웃실장도 여기 자리를
잡았다. 이내 벨트가 움직이며 음식물 쓰레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실장석들은 부지런히 거기서 먹을 수 없는 것들을
골라내 자기 앞에 있는 수거함에 담았다.
"우마우마한 동그랑땡인 데스"
또한 이것이 실장석들이 푸드작업을 선호하는 이유. 건조시키고 맛이 뒤섞여있는 푸드에 비해 가공전의 음식물 쓰레기에는
기름진 음식이나 과일 부스러기같은 맛난 것들이 있다. 간혹 이런것들이 보이면 중간에 먹어치우거나 꼬불쳐 뒀다가 간식으로
먹기도 한다.
"오늘도 수고한 데스"
"치프픗. 역시 푸드작업이 꿀인데스. 내일도 푸드작업이면 좋겠는 데스"
오후 4시가 되면 짧은 작업시간은 끝나고, 단체로 샤워를 한다. 친한 실장들끼리 데샤데샤 즐겁게 떠들어대며 서로를 씻겨준다.
그 다음은 저녁식사 시간. 아침과 마찬가지로 드라마를 보며 푸드를 먹고는, 실장열차를 타고 거주구획으로 돌아온다. 이후로는
자유시간. 일찌감치 자기 집으로 들어가 잠을 자거나, 광장에 나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과중한 노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먹을것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대부분의 실장석들은 광장에 나와 있다. 뭐, 또한 이들이 광장으로 나와있는 이유중 하나는
광장에 있는 대형 TV에서 실장인 드라마를 방송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식사 시간때 봤던 내용의 재방송이지만, 집안일 다 끝낸
주부처럼 이들은 생각없이 드라마에 빠져든다.
"이웃상, 이웃상은 실장인이 되면 뭐부터 할 생각인 데스?"
"와타시는 좋은 남편상을 만나 자를 만들고 싶은 데스"
"오마에는 그런데스.. 하긴, 실장인이 되면 자를 만들 수 있는 데스"
성체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있는 이들은 자를 만들 수 없다. 때문에 여기서는 자를 가진다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제약도 실장인이 되면 상관없다.
"오마에는 뭘 하고싶은 데스?"
"와타시는 세레브한 삶을 살고싶은 데스. 먼저 샤넬 핸드백이랑 테치카 마법의 성을 구입할것인 데스. 대기업 회장이 되어
수많은 닝겐 노예들을 거느리면서 살거인 데스"
물론 진짜 인간도 그렇게 살기는 힘들다. 게다가 테치카 마법의 성은 살 수 있는 집이 아니다.
"오마에는 꿈이 큰 만큼 훌륭한 실장인이 될거인 데스."
하지만 실장석들이 그런걸 알 리 없다.
이윽고 밤이 늦어지고, 실장석들은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오늘 하루의 일과가 끝나게 된다.
"이웃상, 이웃상, 아침인 데스. 일어나는 데뎃!"
다음날, 성체실장은 언제나처럼 이웃실장을 깨우러 가다가 인간들이 와 있는 것을 보았다. 인간이 오는 것은 둘중 하나,
낙오자가 생겼거나, 누군가가 인화고치를 만들었을 때이다. 두사람이 같이 온걸 보니 이번엔 후자이다.
"여어, 보다시피 이녀석이 고치를 틀어서, 우화실로 옮기려고 왔다."
성체실장은 믿을 수 없었다. 세레브한 와타시는 아직 그대로인데 어째서 저녀석은.. 나보다 한참 늦게들어온 주제에,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던 녀석이, 나보다 먼저 고치를 만들다니.
"데엥... 이웃상..."
분하고 억울하여 두 눈에서 피눈물이 나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난동을 부리기라도 하면 운치굴행이다. 억울한 마음을 꾹 참으며
성체실장은 눈물만 흘렸다.
"친구였나보구나. 너무 슬퍼하지 말라구, 너도 조만간 고치를 만들면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물론, 직원은 이녀석이 왜 우는지 알고있지만 좋게 말했다. 실장석의 인화조건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강렬한 희망이 인화의 요건이라는 것이 현재까지의 정설이다. 공장 내 여기저기에서 실장인 드라마를 틀어주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이고, 성체실장의 이러한 감정들 역시 인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저녀석도 운이 좋으면 내일 고치를 틀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질투의 감정을 모른척 한다.
"자, 난 이만 이녀석을 옮겨야 해서.. 영차"
둘이 힘을 합쳐서 인화고치를 들어올려, 인화고치 운반용 열차에 싣는다. 열차는 이들을 인화공장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소위, '우화실'로 운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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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웅 과장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동기 너도 수고했다. 오늘은 두개나 나왔네. 풍작이구나."
"그런데 저 녀석들, 인화고치가 어떻게 되는지 알까요?"
"알 리가 있겠냐.. 알면 저렇게 고치 만들려고 애쓰지도 않겠지.."
"그렇겠죠. 그나저나 인간은 참 잔인하네요. 아무리 실장석이라지만..."
'우화실'에 들어온 인화고치는 우선 따뜻한 물로 세척작업을 하게 된다. 다음, 고치의 매듭이 시작되는 부분에 도로리 용액을 바른다.
인화고치는 실장석의 카오스 파워의 집합체이다. 실장석을 녹여버리는 도로리 조차도 매듭을 부드럽게 하는게 고작이다. 이렇게
매듭을 부드럽게 만들어 풀어내면 뻥 뚫린 구멍속으로 우화중인 실장석의 생명의 수프가 보인다. 관을 삽입하여 내용물을 전부
빨아낸다. 개중에는 이미 만들어지기 시작한 손이나 발같은 기관들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부수어 같이 빨아낸다. 과거 이 실장석의
수프는 극도의 보양식으로 여겨져 비싼값에 거래되기도 하였으나, 위생이 불분명한 인화 공장의 고치에서 나온 수프는 푸드의
첨가물로 재활용될 뿐이다. 뭐, 인화고치 안의 수프를 먹은 실장석들은 다시 인화고치를 만들 가능성이 높아지는 잇점도 있고...
내용물을 다 빨아내 텅빈 고치는 실을 뽑는 기계에 들어가 연한 녹색빛이 도는 하얀 실뭉치가 되고, 다시 실장비단으로 재탄생된다.
인화고치가 구더기고치와 다른 점은, 카오스 파워에 의한 고치의 강화이다. 인화고치는 실장석 카오스 파워의 결정체이다.
초기상태의 인화고치에서 카오스 파워는 고치를 보호하기 위해 실에 집중되어 있다가, 우화가 진행됨에 따라 본체로 이동하고,
고치의 강도는 낮아진다. 이는 인화한 실장인이 고치를 찢고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바꿔 생각하면, 초기의
고치에서 뽑아낸 실의 강도는 거미줄의 수백배는 될 정도로 튼튼하다. 게다가 뛰어난 내열성, 내부식성을 가진 신소재로,
항공우주 산업에서부터 고위층 인사를 위한 방탄, 방검복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는, 그야말로 최고의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실장 인화 공장은 바로 이 인화 고치 비단을 얻기 위한 시설이다. 이곳에 있는 수많은 실장석들은 오늘도 세레브한 실장인의
삶을 꿈꾸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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