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거기 닌겐상!"
휴학하고 입대를 기다리고 있던 철웅이 영등포공원을 산책하다가 뒤에서 들린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와타치를 입양하는데스."
- 하아... 참피인가. 이 겨울에 용감하네.
"용감하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데스. 학대파에게 당해 집도 부서지고 식량도 다 거덜난데스."
- 미안, 나는 지금 그럴 여유가 없다. 널 입양해도 두어달 후에 군대가게되면 더이상 널 돌봐줄 수 없어.
"왜 닌겐상이 와타치를 돌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스까? 와타치가 닌겐상을 돌봐줄수도 있는거 아닌데스?"
- 뭔 소리야? 너 학대파에게 당하더니 미쳤구나? 아님 내가 미쳤나?
"둘 다인데스. 제정신인 닌겐이 들참피와 이렇게 계속 얘기를 나누겠는데스우?"
철웅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 그래. 군대 가기 전에 두어달이라도 나랑 살자. 그러면 겨울도 대충 지나겠고 너도 살 방법이 생기겠지.
그러고보니 평생 남한테 뭔가 도움을 주고 살아본 적이 없었구나. 그런데 그 첫 대상이 참피라니.
철웅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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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웅은 철책근무 중 사고로 두 발을 잃었다. 군대에서 다치면 개값도 못한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군대에서 철웅은 효용가치가 없어진 자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군은 철웅을 바로 제대시켜버렸고, 가족과 헤어진지도 오래고 마땅히 갈곳도 없던 철웅은 그나마 자기가 살아왔던 영등포로 돌아왔다.
어느 날 휠체어를 타고 영등포 공원을 산책하던 철웅은 예전의 그 참피를 만났다.
참피는 저으기 놀란 표정이었으나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닌겐상 돌아온 데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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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부터 참피는 철웅과 다시 같이 살게 되었다. 참피는 아무말없이 집안을 치우거나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참피는 잘 해주면 점점 더 기고만장 해 진다더니 이 참피는 그런게 없었다. 철웅에게 뭘 요구하는 것도 없고 밥은 철웅이 먹다 남긴 잔반으로 대충 해결하는 것 같았다. 어쩌다 장애인 재활원에서 맛난 것을 받아와서 같이 먹자고 불러도 참피는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철웅상이나 먹는데스. 많이 먹어서 빨리 발 재생해야 되는데스!"
- 인간은 발 없어지면 재생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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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면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올라 어쩔줄 몰라하던 철웅도 참피와 함께라면 금방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성질내지 마는데스. 그런다고 없어진 다리가 다시 생기지도 않는데스. 오히려 철웅상 자신을 불행에 몰아넣는거인데스. 와타치 학대파에게 집도, 자들도 잃고, 와타치도 더이상 자를 가질수 없게 되었지만 닌겐상 원망 않는데스. 와타치가 닌겐상 원망하고 살았다면 철웅상을 만날 수 있었겠는 데스우?"
철웅은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에서 지원하는 장애인 특별 대출로 중고 트럭을 사서 푸드트럭 밥차를 시작했다. 다행히도 밥차는 인기가 있었다. 자리도 자리지만, 거의 평생을 혼자 살아온 철웅은 음식을 빨리, 맛있게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와 쓰러질 듯 잠을 자면 어느새 아침이 되어있었고, 음식재료 준비할 때는 참피가 도와주어 더욱 수월했다.
철웅의 생활은 곧 안정을 찾게되었고 몇 년의 세월이 금방 지났다.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다. 수험생 시절부터 밥차를 애용했던 손님이었는데 시험에 합격했다고 다시 찾아온 것이다.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그 웃는 모습에 마음이 끌리곤 했었다.
집에 오면 참피에게 주저리주저리 그 아가씨 얘길 했고, 참피가 듣고는 오히려 코치를 해 주기도 했다.
"그럴때는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데스. 철웅상 발이 없다고 괜히 쫄 필요 없는데스. 밝고 자신있는 닌겐보면 없던 애정도 생겨나는법인데스. 참 못써먹을 수컷닌겐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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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웅은 참피가 가르쳐준대로 더욱 밝고 자신있게 그녀를 대했고, 결국 그녀와 인연이 닿게 되었다.
철웅이 어렵사리 결혼이야기를 꺼냈을 때 오히려 그녀가 기다렸다는듯이 받아들여 철웅은 날 듯이 기뻤다.
집에 돌아와 이 기쁜 소식을 참피에게 알려주고자 했으나 참피는 청소하다 떨어진듯, 탁자 아래 엎어져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요즘들어 참피의 건망증도 심해지고, 움직임도 예전같지 않다는것을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쓰러지다니. 저으기 당황스러웠다.
- 참피야, 이제 고생 그만하고 제대로된 사육실장으로 살아야지, 이러면 어떡해. 내가 너한테 빚진게 얼마나 많은데...
"오마에 실장석 수명이 어느정돈지도 모르고 같이 살았던거인데스? 역시 어쩔 수 없는 똥닌겐데스.
됐고, 다음 생에서 다 갚으란데스. 다음 생에도 꼭 만나 오마에 잔뜩 뜯어먹을거인데스. 테끅, 테끅."
참피는 철웅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굵은 두줄기 색눈물을 흘렸다.
"죽고 싶어도 덜 떨어진 오마에 놔두고 가기가 너무 불안하고, 맘아픈데스...
하지만 이제 오마에도 결혼하게 되니 그나마 한시름 놓은데스. 오마에 행복하고, 부디 자들로 세상을 가득가득 채우는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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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공원 한켠에 작은 무덤이 생겼다.
그까짓 참피새끼 한마리가 뭐라고...
이렇게 생각했지만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철웅은 가슴이 먹먹했다.
"참피와의 인연은 불행이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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