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레후- & 외전


어느 야트막한 언덕 너머의 작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작고 조용한 찻집이 하나 있었다. 대형 주거 단지인 아파트촌과 상가밀집지역인 중심가를 잇는 자그마한 오솔길 중간에 위치한 이 찻집은 그리 크지도 않았고,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도 아니었기에 찻집 주인 혼자서 운영하는 작은 카페에 불과했다. 하지만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딱 적당한 거리, 적당한 위치에 있었던 탓에 하루하루 가게를 유지해 나갈 만큼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한때는 찻집 주변에도 상가가 여럿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인접한 곳에 대학교가 설립되면서 상가의 중심이 학교 입구 근처로 이동해 언덕 너머로 사라져버렸고, 뒤이어 주거지역마저도 언덕 아랫길에 아파트가 대규모로 건설되면서, 본래 살고 있던 사람도, 물건을 구입하러 오던 사람들도 언덕 아래나 언덕 너머로 썰물처럼 사라져갔다. 그리고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구 상업지구였던 이 장소는 시대에 뒤처진 흑백텔레비전마냥 빠르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그러져갔다.

예전에는 이 근방이 온통 술집과 모텔로 가득차 있어, 찻집 주인이 되려 관청에 민원을 넣곤 했었건만, 지금은 민원은 커녕 오는 손님도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적었고, 그나마도 출퇴근 시간에나 드문 드문 손님이 올 뿐, 그 외의 시간대에는 인적조차 거의 없어져 있었다. 마치 사하라 모래사막 한가운데에 외로이 떠 있는 오아시스처럼. 찻집은 다 망해가는 구 상권 중심 시가지의 삼거리 대로변에서 홀로 남아 한여름의 뙤약볕을 버티며 서 있었다. 물론 대로변에는 여전히 건물들이 남아 있었다. 한때 찬란했던 과거를 회상하듯이 주변에 대로 사이로 경쟁하듯 겹겹이 늘어선 모텔과 술집, 그리고 기타 여러가지 상가들이 여전히 즐비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람이 없었다. 주인도, 손님도, 지나가는 시민도 없었다. 그저 "임대" 라는 플랜카드만 조용히 창틀에 붙어 나부낄 뿐, 활기찬 분위기와 도떼기 시장바닥같은 떠들석함은 오래전에 사라진 후였다. 이제 사막처럼 고요하고 삭막해진 대로변에는 오로지 이 찻집만이 어두컴컴한
뒷골목길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마냥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찻집의 주인은 다른 이들이 모두 이곳에서의 장사를 접고 떠났음에도 여기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날수 없었다고 해야 하리라. 찻집의 점주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이렇게 바뀐 풍경이 그저 좋았다. 점주부터가 씨끄러운 주점의 주정뱅이의 고함소리와 모텔의 아녀자들의 교태섞인 웃음소리에 귀가 시달리다시피 했던지라 모든 이가 아파트촌이나 언덕 너머의 대학가로 이사할 때 조차도 점주는 갑자기 급변한 이 분위기를 그저 마냥 좋아했다. 애시당초 점주가 찻집을 연 것 자체부터가 돈벌이 목적도 아니었던 것도 컸다. 이미 노후를 위한 충분한 돈은 벌어두었고, 그저 사람이나 만나면서 조용히 찻집을 방문한 손님들과 세월 지나가는 이야기나 하면서 느긋하면서도 심심하지 않은 적당히 바쁜 나날을 즐기며 살고싶은 마음에 평소 열고 싶었던 찻집을 시작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다름아닌 자신의 아내였다.


자신의 아내는 커피 바리스타이자, 바텐더였다. 점주 역시 커피라면 웬만한 전문가에 지지 않을 만큼 실력이 남달랐지만, 아내가 타 준 커피는 그 어느 것 보다도 가장 농후하고 가슴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곤 했다. 그걸 흔히 콩깍지가 씌였다고 하는 거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점주는 자신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대부터 찻집을 대대로 이어온 소위 '장인'의 반열에 드는 가문이었다. 뭐, 한국에서는 기껏해야 '다방싸리 주제에 커피하난 잘 타네' 소리나 듣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나름 대대로 이어지는 비법이라던지, 커피나 차에 대한 정성만큼은 대단했었다. 물론 자신의 아버지 대에서 그 대는 끝나 버렸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커피에 대해서는 알만큼 알았다고 자부할 정도로 자신했었다.

그러나 아내를 처음 보았던 동해안 어느 해변 근처의 바다에서 도저히 정취라고는 느끼기 힘든 해변의 추위 속에서 맛본 커피 한잔의 맛은 그가 여지껏 맛보았던 그 무엇보다도 따뜻했고 정겨운 맛이었다. 그렇기에 점주는 그 해가 가기 전에 고백에 성공했고, 아내를 곁에 둘 수 있었다. 그렇게 아내와 함께 하던 그 시절은 참 행복했다. 그 시절엔 돈을 잘 벌지도 못했고 허구헌날 회사에서 야근하기 일쑤였기에 아내가 일하러 곧잘 나가던 바로 이 찻집에 직접 방문했던 것은 15년에 걸친 아내와의 결혼생활동안 겨우 네다섯번이 될까말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집에 돌아올 때마다 아내가 타는 커피의 향을 문밖에서부터 맡으며 오늘 밤에 마실 커피는 어떨지 상상하는 것은 정말 가슴뛰는 즐거움이었고, 남자의 삶의 활력소가 되곤 했었다.


그런데 아내가 사십대의 나이가 되었을 무렵, 우연히 받은 건강검진에서 위에 암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발견했을 때는 이미 때가 너무나 늦어, 이미 수술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전이된 상태였다. 뒤늦게 치료를 시작했지만 아내는 더이상 커피를 마실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아내는 종종 점주가 돌아올 때마다 아픈 내색도 하지 않고 웃음을 지으며 커피를 타주곤 했다. 거듭된 암 치료에 의해 머리카락은 죄 없어지고 여기저기 검은 반점이 생긴 얼굴이었지만, 커피를 타는 것만은 멈출수 없었던 듯, 자신이 마실수는 없어도 커피를 타는 것은 계속 하려고 했다. 그때부터인가, 점주가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가 운영하던 찻집을 대신 운영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집에서는 아내에게 가르침을 받고, 아내가 따라주는 커피를 마셨고, 회사 대신 찻집으로 출근해서 손님을 상대로 아내가 하던 일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혹시라도 기적이 오길 바라면서, 아내와 점주는 얼마 안 남은 세월 동안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안으면서 매일매일을 지냈지만, 결국 아내는 마흔 다섯의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아내가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않던 원두 분쇄기안에는 채 갈지도 못한 원두가 가득차 있었다. 점주는 이것을 가게 벽면에 매달아 두어 장식품마냥 걸어 두곤
했었다.


아내가 죽던 그날 밤, 세상에서 영원히 그 존재가 지워져 가던 그 시간에 점주는 숨이 꺼져가는 아내의 손을 꼭 맞잡고 침대에 같이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오래 서로 말없이 누워 있던 그 때, 아내가 시선을 위로 향한 채 조용히 뭔가를 말했다.


"처음 커피를 건넷을 때가 기억나? 정말 지독하게 추운 날이었고, 가게도 접으려던 판인데 웬 천둥벌거숭이같은 남자가 들이닥쳐서는 커피 한잔을 거칠게 주문했었던 거 말이야."

"그래. 그랬던 적이 있었지. 하지만 난 천둥벌거숭이가 아니었는데...?"


하지만 아내는 점주의 소소한 저항에는 상관하지 않고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사실 그 때는 그냥 뭐랄까 생각이 없었어. 하지만 뭐랄까, 커피를 타는 내내 그 천둥벌거숭이같은 남자를 보는데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아졌달까. 그랬어. 곱게 갈은 원두를 96도의 온도로 끓인 물을 1분 가량 기다려 적정 온도가 되기를 기다리는데 귀에서 찰랑찰랑 보글보글 거리는 포트 안의 소리가 밖에서 창문을 두들기는 윙윙 하는 거센 바람 소리와 어우러져서 마치 오페라를 듣는 듯했어. 오페라는 어릴적에 텔레비전에서 딱 한번 본게 전부였지만...... 저기, 듣고 있어?"

"응. 듣고 있어."


점주는 잠시 고개를 돌려 싱긋 웃고는 이제는 앙상해져 뼈만 남은 아내의 손을 한층 꼬옥 잡고, 아내의 다른쪽 한 손에 꼬옥 쥐고 놓지 않는 작은 핸드타입형 원두 분쇄기를 슬쩍 건너다 본 점주는,이내 채근하는 아내에게 계속 듣고 있다면서,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커피 원두를 계속 갈면서, 원두가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내며 갈리는 소리랑, 밖에서 들리는 해변의 거친 파도 소리, 뒤쫓듯이 이어지는 바람소리가 어우러져서 왠지 모를 여운을 느끼게 해줬어. 그건 정말이지 뮤지컬과도 같았어. 주변의 시간과 공간이 멈춘듯이, 갑자기 고요해지면서 뭐랄까 자신만의 공간으로 빨려들어가듯 휘몰아치면서 갑작스레 감정의 폭풍이 몸 속에서 몰아치는 거야....... 정말 꿈같은 일이었어......정말로 대단한 일이었지. 그리고 그 감정의 절정 속에서 커피를 타서 당신에게 건네주었을 때.... 당신의 그 표정은 이세상 어느것 보다도 값진 것이었어..... 그래서 난 결정했던 거야. 그 표정을 계속 보고 싶다고... 오래오래 백년해로 하면서 사이좋게 늙을 때까지 보고 싶었어....."


점주는 아내와 같이 누운 채,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었다. 그리고, 자신도 닥쳐오는 감정의 격류에 몸을 맡긴 채, 한동안 그렇게 누워 있다가, 아내에게 가만히 말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거야."

"........."

"여보?"



아내를 잃은 후, 점주는 아내와 살던 집을 팔고, 세간살이도 대부분 처분하고, 땅도 처분하고는 아내가 찻집을 열었던 바로 이 자리에 2층 옥탑방을 증축했다. 그리고 아내가 남긴 유일한 것을 버팀목 삼아 찻집을 열어 버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사실, 점주에겐 평생을 놀고 먹고도 남을 돈이 있었다. 가문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땅을 처분한 것만으로도  더이상 일을 할 필요가 없었건만, 점주의 귓가에는 아내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자신과 백년해로를 맺게 된 이유가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점주 역시 아내가 느꼈던,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알려주었던 그 느낌을 한번 자신도 느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점주는 5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켰다. 세월에 휩쓸려 사라져 가는 유령 상권 중심가에서 점주는 오늘도 찻집의 문을 열기 위해 가게로 통하는 원형 계단을 내려와 이제는 때가 덕지덕지 묻어 세월의 흐름을 짐작할 만큼 낡아빠진 문을 열어젖히고는 문 앞에 걸린 CLOSE 문구가 적힌 팻말을 뱅그르르 돌려 OPEN으로 바꿨다. 그리고는 가게의 문 옆에 걸린 쇼윈도 수준의 통유리 창문에 걸린 4자 어항속에 얼굴을 들이밀고는 어항 속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다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짓고는 카운터 안쪽에 비치한 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갈색으로 감도는 열대어용 사료였다. 기본적으로 실지렁이와 깻묵 등을 뭉쳐서 만든 사각형의 작은 조각 몇개를 꺼낸 점주는 하품을 쩍쩍 내어가며 가게의 대형 쇼윈도에 배치된 4자 수조로 다가갔다. 4자 수조 안은 일반적인 열대어 수조처럼 고운 모래가 깔려 있었지만, 물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어디선가 꺾어온 듯한 잡풀이 바닥에 깔려 잡다한 풀과 잔디가 가득 심어져 숲을 만들었고, 4자 수조의 한켠에는 마치 어린아이가 소꿉장난을 하다 버린 듯한 모양새로  조잡하게 버려진 듯한 과자 상자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한마리의 우지챠가 방긋방긋 웃으면서 레후~  레후~ 라며 점주를 향해 울고 있었다.

"그래. 간밤 내내 잘 잤나보구나? 레후야."

남자는 수조 안에 있는 먹이통에 열대어용 사료를 가득 채워넣고, 급수기도 확인해보다가 동이 터오는 아침 햇살이 서서히 정오의 낮으로 되어가면서 주변을 서서히 환하게 물들어가기 시작하자 점주는 으드드드드 하고 기지개를 편 다음 수조 옆에 있는 테이블이 딸린 의자에 앉아 수조를 바라보면서 상념에 잠기었다.


처음에 아내가 죽고나서 이 찻집을 운영했을 때는 참 바빴었다. 밤이고 낮이고 항상 주변은 손님과 커플로 가득했고, 정말 눈코뜰 새 없이 바빴었다. 단골들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그때 가서야 비로소 아내가 연중 무휴에 가깝게 일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정말 기가 막혀서 어리둥절할 지경이었지만, 점주는 그래도 아내가 했던 방식을 고치지 않고 아내가 운영하던 그 시절 그 때와 똑같이 이 찻집을 혼자서 운영해 왔었다. 하지만 이곳도 이제 예전같지 않았다. 부산을 떨며 새벽같이 몰려오던 손님은 뚝 끊겼고, 그나마 예전부터 오던 단골만이 가끔씩 들릴 뿐이었다. 명절이고 휴일이고 다 반납하고 회사보다 더 독하게 매일매일 열었던 이 찻집도 이제는 일주일에 딱 3일만 문을 열고 있었다. 오늘은 그 3일 중에 첫날인 금요일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오랜만에 꿈 속에서 아내를 마지막으로 보고 같이 말을 나눴던 그 오래된 기억을 비디오 레코더로 다시 뒤로감기해서 플레이해보듯 아내와 말을 나눴었다. 5년이나 되었는데도 매년 이맘때, 아내가 세상을 등진 이날만 되면 어김없이 꿈 속에서 나오곤 했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점주는 괜히 울적해져서는 상념에 빠지고는 했다. 한여름의 성가실 정도로 쓰르라미 쓰르라미 울어제끼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점주는 가만히 눈을 감으며 속삭였다.


'여보야. 언제쯤이면 나도 당신이 느꼈던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 같아?'


점주는 아무도 없는 가게 안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지만 대답이 있을 턱이 없었다. 이미 죽고 없는 아내가 답할리 없건만 점주는 매년 이맘때, 꿈에서 아내를 볼 때마다, 이렇게 자리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며 가만히 눈을 감곤 했다. 점주는 애초에 뭔가를 기르는 성격은 아니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조차도, 사랑했지만 일상사에 무심한 나머지 아내가 운영하던 찻집에 고작 다섯손가락도 채 안될 정도밖에는 찾아가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아내가 자신을 내조하는 것에 감명을 받을 지언정, 직접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어필하지는 못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하루아침에 아내도 아닌 것을 돌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아내가 죽고 처음 찻집을 운영할 때, 이 4자 어항에 있던 것은 열대어들이었다. 하지만 점주의 무관심과 아내를 잃은 슬픔때문에 관리에 소홀했고, 무더운 여름날을 견디다 못해 열흘도 안돼 모두 폐사해 버렸다. 하지만, 점주는 그 때마다 마치 무엇에 홀린것마냥 새로운 물고기로 수조를 채워나가곤 했다. 이제는 아내가 없는 세계에서 홀로 남아 살아가야 하는 공포와 압박감이 그에게 무언가 대체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점주는 매번, 새로운 물고기를 들여올 때마다 외로움은 수그러들었지만, 정작 점주가 물고기를 유지하는 기간은 한달이 채 안되기 일쑤였다. 본래 열대어나 물고기란 것은 꾸준히 청소도 해줘야 하고, 관리도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지금 그가 하는 것은 그저 아내가 생전에 유지했던 그대로 이 공간은 유지하기 위해서 물고기를 키울 뿐이었기에 더 그랬던 점도 있었을 지도 모른다. 허나 인간은 누군가와 같이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익숙한 생물이다. 처음부터 혼자 살아왔다면 모르지만, 이미 한번 평생의 반려를 경험해버리면 결코 혼자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법이었다.

그렇기에 남자는 비어버린 마음을 채우려는 듯, 계속해서 새로 물고기를 들여오곤 했다. 허나 그러한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도 몇년이 지나자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져 버틸만 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오늘처럼 아내가 죽은 이맘때를 경계로 몇일 정도는 아무나 끌어안고 펑펑 울고 싶어질 만큼 쓸쓸해지는 때가 있었다. 아마도 아내와의 마지막 사별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 한 일년에 한주 정도는 울적해지리란 것을 점주는 아내가 남긴 찻집을 운영하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내를 잃고 혼자 산 지 어언 5년. 이제는 외톨이에 익숙해질만도 한 세월이건만 점주의 마음 속은 항상 어둡고 쓸쓸했다. 익숙해진다는것은 그런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익숙해져서 무뎌질 뿐이었다. 점주는 종종 자신의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고독과 쓸쓸함을 빗질하듯 치우려 했지만, 그 고독과 쓸쓸함은 실체가 없는 무언가였다. 무게도 체온도 형태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존재했다. 그렇기에 치워지지 않았다. 치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치울 방법조차 모른 채 매년 이맘때마다 꿈속에서 보이는 아내의 마지막 대화를 꿈꾸면서 버티기를 반복하는 것을 매년 연례행사마냥 치르던 나날들을, 파도가 모래를 쓸어가듯이 어둡고 탁한 실체 없는 고독과 쓸쓸함의 존재를 마치 빗질하듯 치워준 것이 바로 레후였다.

점주가 레후를 처음 만난 것은 벌써 1년전의 일이었다. 장마가 거의 끝나가던 어느날의 평범한 저녁이었다. 일요일 밤까지 자리를 붙들고 나가지 않는 단골손님을 쫓아내듯 몰아내고는 지친 몸을 끌고 문을 닫고 냉장고를 열었다가 딱히 먹을 것이 없는 현실에 살짝 허탈해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언덕 아래의 아파트촌 근처에 자리잡은 마트에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대로 옆 길가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는 실장석을 발견했었다. 자전거를 멈추고 다가가보니 실장석은 마치 무언가를 토해낸 흔적을 길게 남기고는 콘페이토를 두손에 꽉 쥔 채로 죽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얼마 지나지 않는 곳에 무언가에 뜯어먹힌 듯한 새끼 실장석이 한마리 있었다. 보나마나 어미는 독이 든 콘페이토를 먹고 죽었을 테고, 그런 어미를 붙잡고 울던 새끼는 길가의 들고양이에게 저녁거리가 된 모양이었다. 점주는 눈살을 찌푸리고는, 들실장 일가가 죽어 있는 곳을 피해 가려고 자전거를 들어서 인도로 옮기려고 했다. 바로 그 때, 남자의 귓가에서 낮고 아련하게 들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를 더듬어 바닥을 살피자, 놀랍게도 새끼 한마리가 살아서 울고 있었다. 이미 죽어버린 어미 옆에서 계속해서 레후-레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작은 새끼. 항간에서 우지챠라고 부르기도 하고, 구더기라고 부르기도 하는 생물이 어미를 찾으며 울부짖고 있었다.


점주는 문득 무슨 생각인지 걸음을 멈추고, 그 우지챠를 손수건에 가만히 싸서 들어올리고는, 자신의 앞주머니에 조심스레 넣었다. 그리고는 자전거를 타고 찻집에 돌아가서는, 손님들이 다 가고 없는 빈 테이블 위에 우지챠가 들어있는 손수건을 내려놓고는 살며시 펼쳤다. 그러자 거기에는 눈을 감고 울다 지친 나머지 잠든 우지챠가 코슈-코슈 코울림을 내며 잠들어 있었다. 점주는 한동안 그것을 살피며 생각에 잠기었다. 보통 일반인이라면 실장석을, 그것도 자실장도 아니고 한갓 우지챠를 데리고 올 생각은 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하물며 들실장이라면 더더욱 그랬을 터였다. 세균의 온상이니 뭐니 하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실장이나 엄지실장이라면 혹 모를까, 벌레에 가까운 우지챠를 그런데서 데리고 올리는 절대로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점주에게는 조금 달랐다. 길가에서 허무하게 일가실각당한 가족의 모습이, 자신의 아내를 허무하게 잃었던 모습과 살짝 겹쳐 보였던 탓에, 점주는 보통 사람이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우지챠를 데려와서는 이렇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두 눈은 꼭 감기어 있었지만 얼마나 울었는지 뺨이 새빨갛게 되었고, 아직 지우지 않은 색눈물자국이 땟국물에 얽혀 이리저리 냇가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잠은 들었건만 여전히 숨쉬는 와중에도 어딘가 무서운 꿈이라도 꾸듯이 자꾸만 들썩이며 레후우 레후우 내뱉는 소리가 한데 모여 남자의 귀를 어지럽혔다.





어미는 독살당하고, 자실장인지 엄지실장인지 모를 자매들은 들고양이의 밥이 되는 참변을 연속으로 겪고도 살아남은 우지챠를 보면서 문득 점주는 무언가를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내가 구해낸 이 작은 우지챠, 그리고 내가 구하지 못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내가 죽음이 목전에 다가올때까지 그냥 아무것도 모른 채 보고만 있었던 나. 이 두가지가 서로 비교되면서 점주는 스스로 이것을 비교하는 것 부터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 해도 점주는 이 우지챠를 버릴 수는 없었다. 누가 보면 싸구려 위안이라고 부를 지도 모르지만, 점주는 결심을 굳히고는 이녀석을 키워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녀석의 이름은 레후라고 지었다. 레후-레후 하고 울던 목소리를 따서, 마치 집에서 키우던 똥개를 멍멍이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그렇게, 작디 작은 우지챠 한마리와, 아내를 잃고 방황하며 외로워하던 중년남자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점주도 이 작은 우지챠가 자신의 위안거리가 되리라곤 생각하진 않았다. 그저 자신이 부인을 지키지 못한 채 떠나보내고 외로이 혼자 남았듯이, 일가가 전멸한 채 홀로 외로이 남아 울던 작은 생명체를 지나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저 데리고 있다가 죽으면 예전부터 키우고 버리고를 반복했던 열대어들과 큰 차이 없는 그런 존재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우지챠를 처음 주워온 날로부터 며칠간은 단조로운 일상만이 무심하게 지나갔다. 점주는 찻집을 여는 날에는 손님을 기다리며 청소를 하고 재료를 다듬곤 했고, 찻집을 열지 않는 평일에는 그저 가끔식 수조 안을 흘낏 보고 먹이나 좀 채워주고 말 뿐인 하릴없이 평범한 날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점주가 매일 아침마다 먹이와 물을 갈아 주면서 '레후야 잘 잤니~' 하는 말에 우지챠가 서서히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둘의 관계는 서서히 가까워져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모르겠다는 듯 반응을 보이거나, 놀라서 정말 듣던 대로 엄청나게 큰, 자명종이 울리는 거에 버금가는 고음의 비명소리를 내기 일쑤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서로가 서로의 낯이 익어가면서 우지챠는 남자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매일 아침 점주가 고개를 내밀 때마다 다소곳이 앉은 채로 고개를 들어 방긋 방긋 웃기 시작했다.


점주는 예전에, 단골 손님들로부터 이 희한한 생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사람이랑 비슷한 얼굴을 한, 자그마하지만 사람 말을 대충이나마 이해한다는 희한한 생물들. 몇몇 손님들은 똥벌레라 부르며 보이는 족족 쳐 죽여야 한다고도 했지만, 몇몇은 개들도 불쌍한 놈들이라며 대부분은 더럽고 쓸모없지만 가끔 아주 가끔 드물게 애완동물로 삼아봄직한 개체가 나오기도 한다는 듣는 것만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그 생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점주는 그 이야기가 그냥 술김에 나오는 허풍으로만 들렸었다. 애초에 말이 통한다는 것도 믿기 힘들었기도 했고.....하지만 지금 이렇게 대해 보니, 사람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단골 손님 중 하나가 말해주기로는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려면 린갈인가 뭐시기를 써야 한다고 했지만, 구태여 애완 동물에게 그런것을 쓰는 것은 영 내키지가 않았다. 말이 통한다고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자신만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아서 아내가 그 지경이 되도록 몰랐겠는가? 그것을 떠올리자, 점주는 더더욱 린갈인지 뭔지를 쓰는 것이 더 싫었다. 점주는 그저, 말이 통하면 통할수록 오히려 상대를 알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린갈을 쓰지 않고 그냥 대했다. 사람들이 우지챠라고 부르는 이 하찮고
작은 생물에게 남자는 우지챠가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을 반길 때부터 매일 아침 수조를 열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마치 예전에 자신의 마누라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이것저것 늘어놓듯이, 남자는 매일 아침마다 전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담소하듯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물론 이 작은 아이가 그것을 이해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우지챠는 점주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단 한번도 시선을 놓치지 않고, 마치 갓난아기가 부모의 말에 그저 행복해하며 시선을 쫓듯, 점주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중간 중간 레후-레후 거리면서 마치 점주의 잡담에 어울리듯 울음소리를 내곤 했다. 그렇게, 중년 남자는 외로움을 어느정도 달래고, 쓸쓸함을 마음 한구석에서 치워내는 듯이 보였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지나 겨울을 넘기고 다시 봄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 점주의 찻집도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되었다. 오는 이 없이 단골만 듬성 듬성 찾아오던 이 작은 찻집에 봄이 새싹을 틔우듯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거대한 수조 안에서 혼자 노는 꼬마 우지챠의 모습에 가게를 착각하고 오는 손님들이 대다수였다. 손님들은 대부분 찻집이 아니라, 실장샵인줄 알고 들어왔다가, 들어온 김에 자리 하나를 꿰어 차고는 얼결에 시킨 커피를 맛보고는 한명 두명 슬그머니 단골이 되어갔다. 점주는 알지 못했지만, 몇년째 우직하게 자리를 잡고 커피를 팔면서, 생전에 아내와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사별의 이야기였던 처음 자신과 만났던 동해안의 그 카페에서 아내가 커피를 타면서 느꼈던 그 생생한 감정과 감동을 자신도 똑같이 느껴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끈기있게 커피를 타온 결실이, 비로소 지금에 와서야 빛을 본 셈이었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의외의 장소에 의외로 제법 대단한 찻집이 있다' 는 소문이 소문을 이어주고, 그렇게 만들어진 단골들이 단골을 만들어 줌으로서, 점주의 찻집은  아내가 세상을 등지기 전, 항상 사람이 들끓었던 그 시절로 다시한번 돌아갔다. 점주는 이제 3일만 일하지 않았다. 예전에 아내가 운영하던 시절처럼, 연중 무휴로 일했고, 바쁜 홀 업무를 위해서 직원도 하나 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점주의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앙금이랄지, 못다한 한이라고 해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이제 찻집은 아내가 살아있던 그 시절마냥 찬란하게 빛나고, 항상 사람이 끊이지 않는 장소가 되었지만 정작 자신은 아내가 죽기 전, 자신이 마누라에게 반했던 그 때에, 카페에서 자신에게 줄 커피를 타면서 느꼈던 그 감각만큼은 공유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찻집에 매일같이 손님이 끊이지 않을 수록, 손님들이 매번 따봉을 외치며 엄지를 들어줄 때마다, 점주는 웃음짓는 얼굴 뒤로 끝없는 절망과 우울함이 더욱더 커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여름이 되어 다시 아내의 기일이 찾아오자, 점주는 커피를 타면서 뜻모를 소리를 중얼대기 시작했다. 커피를 갈면서, 마치 주문을 외우듯, 웃는 얼굴로 그때의 그 기분을 나도 느끼게 해달라며 소곤소곤 혼잣말을 뇌까리듯 외우곤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손님들은 더더욱 이전보다 풍미가 좋다며 난리였건만 정작 자신은 그 때의 아내가 느꼈다던 그 감정을 더더욱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마음 속 깊이 탄식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점주는 아내가 하던 이 찻집을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가끔씩 고민하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수조의 작은 우지챠가 자신을 위로하듯 점주를 바라보면서 수조 유리벽에 머리를 찰싹 붙인 채, 무어라 옹알옹알 입을 놀리며 웃음지었고, 그것을 보는 점주는 그때마다 소소하게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그 생각을 접곤 했다.


"나 참, 쪼끄마한 게 말이야. 벌써부터 주인을 위로하려고 하는 거냐? 레후야."


남자는 이 자그마한 우지챠에게 어이가 털린 듯한 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수조의 유리벽을 검지손가락으로 튕기듯, 따악 하고 때렸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 발생한건지 어안이 벙벙한 채 두리번거리는 우지챠를 보다가, 다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조금만 더 해보면 결말이 언젠가는 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점주에게 자신이 바라마지 않는 그것을 얻는 날은 없었다. 어느덧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다시금 1년이 지나 6년째로 아내의 기일을 맞은 점주는 아무도 없는 빈 홀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언제나 항상 기일에는 아내를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 일찍 잠에 들었던 점주였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생각이 없다는 듯, 수조 안에서 레후 레후 하면서 자신을 보려고 애를 쓰며 유리에 얼굴을 문대고 있는 우지챠를 보면서,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제 점주의 마음 속은 걷잡을 수 없이 슬픔에 가득 차 있었다. 마치 태풍 속의 나뭇잎마냥 정처없이 마음속을 이리저리 휘젓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좀 슬프고 외로워도 티 내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어차피 아내가 하던 그 시절처럼 찻집을 일으키지도 못했기에, 아직은 좀더 연습이 필요한가 보다 하고 스스로를 위안할 수도 있긴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오는 손님들마다 정말 훌륭하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런 손님의 칭찬에 기분도 좋았거니와, 아내가 말했던 그 감정을 나도 이제 곧 느낄 수 있을 때가 왔다며 기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훌륭한 커피라고 칭찬해도, 자신은 아내가 말했던 그때의 그 광경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잠시 한숨을 내쉬던 점주는 다시 한번 더 마음을 바로잡고, 커피를
타보기로 했다. 잘 볶은 원두를 골라, 분쇄기에 넣고는 마음 속 깊이 여보를 생각하며 천천히, 동시에 정성을 담아 핸들을 돌렸다. 원두가 갈리는 소리가 조용한 가게 안을 조용히 울리었고, 점주는 그 소리의 반향을 들으며 차츰차츰 마음을 가라앉혀 갔다. 수년간 익숙해진 동작을 반복하면서 점주는 조금이나마 부담이 덜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침내, 원두를 다 갈은 점주는, 미리 끓여두어 적절하게 알맞은 온도를 유지한 물을, 곱게 갈은 커피 가루에 전체를 살짝 적시듯이 원형을 그리며 부어주고는, 약간의 시간- 삽사십초 정도를 기다리는 블루밍 작업을 거쳤다. 커피의 이산화탄소를 증발시켜 다양한 향을 끌어내는 이 기법은, 점주가 여태까지 심혈을 기울여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그만의 비법이었다. 신선하고 잘 갈아진 커피가 푸짐하게 부풀어 오르자, 점주는 지금부터라는 듯 두 눈을 얇게 저미듯 뜨고는 한번 더 천천히 물을 부어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필터에 물이 넘치지 않을 정도의 양으로, 그리고 그 물이 거의 다 지나갈 무렵, 물이 필터를 완전히 통과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물을 부어 마무리하고서는 커피잔에 커피를 따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컵을 테이블에 올리고는 아직도 자신을 보려고 애를 쓰는 수조 안의 우지챠를 바라보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레후야. 어쩌냐... 아무래도 글른 것 같구나. 아내가 말했던 그 감동이란게 뭔지 여전히 느낄 수가 없구나. 마법이라도 걸려야 하는 걸까?"


점주는 문득 툭 하고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에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아내가 마지막으로 끝까지 쥔 채로 손에서 놓지 않았던, 커피 분쇄기 속에 들어 있던 갈아보지 못한채 남겨졌던 원두 꾸러미가 항상 걸려 있던 벽에서 떨어져 바닥위를 또르르 굴러가 흩어졌다. 아무도 없는 홀 안에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점주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던 생각과 염원들이 나사 빠진 너트마냥 사방으로 흩어지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더는 싫다. 더는 기다리는건 질렸다고 점주는 생각하면서,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한 그 커피를 조금 더 목 뒤로 넘겼다. 손님들이 그렇게나 칭찬하던, 그 방법 그대로 만든 커피건만, 자신에게는 너무나 썼다. 그 쓴맛을 모두 목구멍으로 넘기고는, 점주는 마치 모든것을 다 내려놓은 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 이 찻집도 그만 닫을 때가 되었나부다. 레후야......더는 할 수가 없구나."


점주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서는 계속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음을 깨달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아내가 느꼈다는, 웬 천둥벌거숭이에게 커피를 만들어 주던 그 카페에서 느꼈다는 오페라같기도 하면서, 뮤지컬을 보는 듯 했다는 그 감각과 감동을 느낄 날이 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점주는 그러기엔 자신은 너무나 지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건만 그저 마음속 깊이 눈물이 넘쳐 흘러서, 어쩐지 울고만 싶은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레후- 레후 하는 소리에 섞여, 레뺘아앗 레뺘아아앗 하고 크게 짖는 소리가 두번 들렸다. 우지챠를 처음 데려온 다음 날 깜짝 놀라 지르던 그 때, 서로가 서로의 낯이 익기까지 몇번의 그 낯설었던 접촉을 끝으로 우지챠는 말귀를 알아듣는 듯이, 두번 다시 레뺘아앗 하고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그 때 들었던 우지챠의 비명 소리가 두번 연속으로 들리자, 점주는 그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엎드려 있던 테이블에서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나서야, 자신이 밤새 테이블 위에 엎드려서 잠이 들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점주는 의자에서 일어나 수조를 향해 고개를 돌려보았다. 수조 너머에서 비추어지는 것은 여느때와 마찬가지의 새벽이었다. 그리고 점주가 멍한 눈으로 새벽의 조용한 아침 빛줄기가 스며나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또다시 우지챠가 레후~ 레후~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점주를 부르는 듯이.

"왜 그러니 레후야. 평소답지 않구나."


점주는 우지챠가 있는 수조를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의 낯을 익숙하게 여길 때부터, 우지챠는 새벽이 다가오면 점주보다도 먼저 일어나서 작은 소리 한번 내지 않고 그저 얌전히 점주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착한 애였다.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일은 없었을 텐데, 무슨일일까 하고 점주가 우지챠가 있는 수조 안을 들여다보자, 우지챠는 레후- 레후 거리면서 한바퀴 뒹구르르 구르더니 점주를 보고 한번 방긋 웃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거리가 보이는, 창문쪽 방향의 수조 유리 벽에 쪼르르 기어가 붙어서는 마치 무언가를 보라는 듯, 작은 돌기같은 팔로 수조 벽을 연신 두드리며 레후~ 하고 길게 울었다.





처음에는 점주는 무엇을 하는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변은 갑자기 일어났다. 수조와 맞닿은 우지챠의 몸 전체가 주황빛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곧 이어 수조 전체가, 아니 수조를 넘어 가게 전체에 주황빛 귤색 같은 빛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뜻 모를 이변에 점주는 자신도 모르게 가게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가게만이 아니라, 이 거리 전체가, 아니 내가 딛고 있는 이 세계 전체가 온통 주황색 귤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점주는 처음으로 아침 노을을 보면서 온몸을 뚫고 지나가는 전율을 느꼈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이토록 장엄하고, 따듯하고, 가슴 깊숙히 심장을 두들기는 듯한 아침 노을을 본 적이 있었을까? 점주는 문득, 자신의 눈이 시리도록 아프면서도 이 감각이 굉장히 어딘가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점주는 그것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자신의 가게 창문에 겹쳐져, 수조 벽을 작고 앙증맞은 두 팔로 토닥이면서 레후- 레후 외치는 우지챠를 바라보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가게로 돌아가, 수조 안의 우지챠를 처음 여기로 데려왔을 때처럼, 손수건에 조심스럽게 싸서 자신의 윗주머니에 잘 넣고는 가게 현관 앞에 아예 의자를 끌어다 놓고 차츰차츰 해가 뜨면서 사라지듯 엷어지는 아침 노을을 바라보았다.


점주는 그것을 보면서, 숨이 막힐 듯한 감각에 그만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었다. 이제는 이 찻집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이 황량한 대로변 곳곳에 퍼지는 귤빛과, 그런 귤빛 노을을 쓸어가듯이 뒤에서 천천히, 그리고 위엄있게 떠오르는 여름 태양을 바라보면서, 점주는 문득, 무언가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것을 다시한번 찾아냈음을 알았다. 자신이 찾아 헤맸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점주는 비로소 알수 있었다. 지난 육년간, 내가 찾아 헤맸어야 하는 것은 커피를 내리는 방법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내가 느꼈던 그 감각, 그 감동을 느끼는 것 그 자체를 찾아 헤맸어야 하는 것이었다. 아내에게 있어서 가장 가슴 뛰고 좋아했던 것이 커피를 남편에게 타 주는 것이었듯이, 자신도 그러한 것을 찾아 헤맸어야만 했다. 점주는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스스로가 정말 바보같아져서 눈물을 살짝 흘리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감동이 아내가 느꼈던 그때의 그 감각일 것이었다. 거기에는 오페라도 뮤지컬도 필요 없었다. 그저 자신을 그렇게나 사랑해주고, 그 순간 순간을 즐기며 살아왔던 아내가 지금 이 순간, 모든것을 포기하고 그만두려는 때에 이렇게 장엄한 아침햇살 속에서 자신에게 음악을 연주해 주고 있었다. 점주는, 아니 남자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흐르도록 내버려
둔 채로 고양되는 감정에 몸을 맡기며 잠시동안 떨었다.


그리고, 거기에 호응하듯, 앞주머니 안의 우지챠도 낮게- 그리고 리듬을 타듯이 레후-우- 레후-웅 소리를 내며 노래부르듯 울었다. 그것을 들은 남자는 모든것이 홀가분해졌다는 듯이, 의자에서 일어나서 평소처럼 으드드드 기지개를 펴면서 수조 안에 우지챠를 처음 데려왔던 그 때마냥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입을 열었다.


"자 이제 가게를 열 준비를 해야겠지. 레후야?"


그리고는 남자는 양팔을 한바퀴 돌려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가게 안을 그득 그득 채운 투명한 귤빛 넘치는 공기를 모조리 들이마셔 주겠다는 듯 새벽의 신선한 공기를 폐 한가득 들이마셨다. 그러자, 남자의 몸 안은 예전과 다르게 활력이 넘쳐흐르는 듯했다. 남자는 기분 좋다는 듯, 우지챠에게 말을 이었다.


"레후야. 네 덕분에 아무래도 이 아저씨가 마법에 걸린 모양이구나. 아무래도 가게를 닫기엔 너무 일렀던 게 아닐까 싶어
지는구나."

"뭐랄까."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나 회포를 푼 것과도 같다고 해야 하려나? 네가 그 말을 이해하리라곤 생각지는 않는다만."


그리고는, 남자는 우지챠가 대답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찻집 안으로 걸어들어가 바닥에 흩어졌던, 정말로 소중하게 간직했던 아내의 그 원두를 비로소 한데 모아 두손으로 쥐고는 부엌 찬장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상당히 오래 된, 꽤나 낡은, 아내가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놓지 않았던 그 원두 분쇄기였다. 남자는 오래 써서 익숙한 자신의 분쇄기를 찬장 속에 고이 모셔 두고는, 아내의 그 작은 원두 분쇄기에 아내가 고이 갖고 있던 원두를 넣고 커피콩을 갈기 시작했다. 여보야,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남자는 행복하게 웃으면서, 동시에 울면서, 그렇게 원두를 갈고 있었다.






▶친구레후 - 외전 -  "refurefu"(레후레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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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주가 우지챠를 주워왔던 그날 밤이 지나고, 아침 해가 솟아오를 무렵, 마마를 잃고, 자매도 잃은 일가의 최후의 일인이 되어버렸던 우지챠는 낯선 풍경에 어리둥절하며 깨어났다. 우지챠는 하룻밤 내내 잠들어 있었지만, 그것을 인지하지는 못하고 그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떳다고만 생각했다. 그렇기에 난데없이 바뀐 풍경에 어리둥절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
"여긴 어디레후-"


당황한 우지챠의 입에서 생뚱맞게 질문이 튀어나왔지만, 그것을 답해줄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지챠는 잠깐 눈을 깜박이다가 죽어버린 마마와 자매를 기억속에서 간신히 끌어내고는 다시한먼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던 우지챠는 배씨가 꼬륵꼬륵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그제서야 자신이 이틀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먹을 것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배씨 꼬륵꼬륵 견디기 힘든레후- 배고픈 레후-"


한참을 그렇게 주변을 살피던 우지챠는 문득 코에 스치는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지친 몸을 이끌고 꾸물꾸물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사람 기준으론 고작 5센티미터에 불과한 거리를 그야말로 전력으로 기어간 우지챠는 간신히 고소고소한 냄새가 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소고소씨인 레후? 밥인레후?"


그것은 우지챠의 얼마 안되는 실생 속에서도 난생 처음보는 것이었다. 갈색의 실뭉치 같은것이 잔뜩 뭉쳐, 네모네모 사각씨로 벽돌마냥 굴러다니는 그것은 전날 밤 몇달전에 폐사해버린 거북이용 사료를 밥 대신 넣어준 것이었지만, 우지챠 입장에서는 난생 처음 보는 물건인지라 먹지도 못하고 먹는것인지 아닌지조차 몰라서 그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맴돌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배씨가 더는 못참는다는 듯이 꼬륵꼬륵 소리가 아니라 꽈릉꽈릉 울리기 시작하자, 우지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보기에도 단단해 보이는 그 네모네모 상자씨를 입을 아앙 크게 벌려 씹어보기 시작했다.


"이....이건 뭐인레후!! 꼬기인레후? 꼬기인레후우웅!!"





우지챠의 혀로 전해지는 그 맛은 여태까지 맛본 그 어느것보다도 강하고, 감미롭고, 감칠맛이 돌았다. 우지챠는 태어나 단 한번도 고기는 고사하고 우마우마한 것은 거의 입에 대본적이 없었기에, 꼬기가 뭔지는 몰랐다. 그러나 마마가 자신이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자기보다 뒤처져 태어났던 이모토챠 구더기를 데리고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슬픈일이 있었는데스우-" 라고 말하고 난 뒤에, 자신에겐 주지 않던 진흙을 뭉친 듯 보이는 흙색이 감도는 경단을 먹던 오네챠들이 자랑하듯 꼬기인테치~ 하는 소리를 들었던 우지챠에게 있어서는 처음으로 맛보는 맛의 감동에 그것이 못내 염원하던 꼬기맛이라고 생각되어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뭐, 실제로도 우지챠가 맛나게 '꼬기 마싯는 레훙~♪' 을 연발하며 먹고 있는 거북이 사료의 주성분을 살펴보면 실지렁이와 깻묵인건 사실이니 동물성 단백질이 아니라곤 말못할 테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우지챠는 그저 이것이 소문으로만 듣던 스테키가 아닐까 하고 그 작은 귀를 팔랑거리며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미각의 폭풍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어코 자기 몸만한 거북이 사료 한 덩어리를 다 먹어치운 우지챠는 태어나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배가 터질것만같이 팽팽하게 부풀어올라 동산만해진 배를 작은 돌기같은 손으로 통통 두드리며 포만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배 부른 레후- ♬ 꼬륵꼬륵 안나는 레훙-♬"


그렇게 만복감에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던 우지챠는 짧은 돌기 네개를 붕붕 휘두르면서 음정, 박자가 하나도 안 맞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지챠는 불렀던 배가 다소 꺼지자, 다시 한번 죽어버린 마마와 오네챠들이 기억에서 떠올랐다. 우지챠는 그 작은 몸을 웅크려 불안한 듯 똬리를 틀고는 꼬기 맛에 정신이 팔려 잠시 잊었던 조금전의 의문을 다시한번 떠올렸다.


"여긴 어디인 레후..?"


우지챠는 그 작은 머리를 돌려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우지챠의 시야로는 너무나도 광대하고 넓은 공간으로밖에는 인식되지 않았다. 바닥은 새하얀 모래 알갱이로 가득했고, 가끔 드문드문 우지챠보다 크고 높은 나무들이 숲지대를 군데 군데 이루고 있었으며, 새하얀 모래밭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사실 우지챠가 있는 곳은 몇달전 폐사했던 물고기들이 살았던 4자 어항이었지만, 작은 우지챠에게는 그야말로 끝없이 펼쳐진 들판처럼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우지챠는 대뜸 자기 머리 윗쪽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너무나 놀란 나머지 큰 소리로 외쳤다.


"호오. 정신이 들었나 보구만."

"레빠아아앗!"


남자는 갑자기 터져나온 우지챠의 비명소리에 두 귀를 꼭 막으며 말했다.


"와. 손님들이 실장석 애들 소리 크다고 했을때는 그냥 그래봤자겠거니 했더니 장난이 아니구마야. 이거 놀라게 했다간 제대로 곤욕 치르겠네. 허허"


그리고는, 벌벌 떨면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작은 우지챠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랴. 머 어차피 강아지 하나 기른다 생각하고 키울텡게, 소리만 지르지 말그라. 그리고 이름은...뭐, 레후레후 거리니까, 레후라고 해두자꾸나. 그럼 이따가 또 보자. 나도 일을 할 시간이라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우지챠는 고개를 들어 두 눈을 깜박깜박거리면서 고개를 살풋 갸웃하며 말했다.


"우지챠 키워주는 레후? 그런데 우지챠는 강아지씨가 아닌 레후. 그리고 왜 인간씨가 레후레후 하는 레후? "


하지만, 실장 린갈이 없는 남자에게는 그저 레후 레후 짖는 소리로만 들렸기에 그 질문에 대답이 돌아올 일은 없었다. 우지챠는 남자가 말한 내용을 이해해 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우지챠는 답을 낼 수가 없었다. 키워주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기뻐할 일이었건만, 그 뒤의 말들은 이해 불가능의 영역을 한참이나 벗어나는 것들이었다. 결국 우지챠는 남자가 말한 내용의 반의 반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 인간이 자신을 키워준다는 것. 실장석이라면 누구나 꿈꾸어 마지 않는, 행복의 바로미터이자 염원에 가까운 것. 사육우지가 된다는 것이었다. 우지챠는 잠시 동안, 기쁨에 몸을 떨며 기적과도 같은 행운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리고 그렇게 우지챠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매일 매일 잠들 때마다 야옹씨의 공격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항상 따듯한 온도가 계속 유지되었고, 밥과 물도 충분했다. 우지챠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배불리 먹은 적도 없었고, 한가로이 잠든 적도 없었다. 매일매일 쫓기고, 쫓겨나고, 밥을 뺏기는 나날만 계속되었고, 종국에는 살고 있던 집조차 부서져서 엄지의 품에 안겨 마마와 함께 들판을 배회해야 했다. 하루 밤, 하루 낮, 다시 하루 밤 동안 집도 밥도 없이 이리저리 헤매이던 모녀가 간신히 얻은 콘페이토는
마마의 목숨을 삽시간에 앗아가 버렸고, 엄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최후를 맞았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마마의 시체 옆에서 울다가 목숨이 다할 것이었건만, 좋은 인간씨를 만나서 사육우지가 되는 기적을 얻고는 이렇게 부족함 없는 삶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지챠는 한가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실장석들이 주변의 관심을 원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원래부터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동물. 그것이 바로 실장석이었다. 물론 그런 실장석 중에서도 갓난 아기와도 같은 우지챠에겐 그런 본능보다는 먹고 자는 기본 욕구가 더 강한 데다, 일반적으로는 이런 기본 욕구는 고사하고 당장 살아서 가족의 일원으로 남는 것 부터가 넘사벽인지라 그러한 관심을 받고 싶은 욕구는 일반적인 우지챠에게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찻집의 수조 안에서 키워지는 우지챠는 여건이 달랐다. 항상 먹이는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남자가 물고기가 폐사했다는 걸 잊고는 물만 빼놨지 전기 히터는 켠 채로 냅두는 바람에 수조 안은 항상 포근한 봄날씨 같은 온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물론 밖은 폭염 지옥이었지만, 찻집 안은 항상 에어컨이 돌아갔기에 우지챠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상태로 잠들 수도 있었다. 이처럼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었기에 한동안은 정말 행복함을 느꼈지만, 그렇기에 우지챠는 더욱 더 불안해했다.


4자 어항은 우지챠가 보기엔 끝도 없는 광활하고 큰 공간이었다. 그런 곳에서 오로지 혼자 있는, 그것도 얼마 전에 일가를 모두 잃어버린 기억을 가진 우지챠로서는 가족의 품이 그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매일 아침, 동이 터 올 때마다 남자가 수조 안에 고개를 들이밀고는 "잘 잤냐 레후야~" 라고 불러주었고, 그것이 계속되면서 레후야~ 하고 부르는 것이 자신을 부르는 것임을 알아듣고는 매일 아침마다 남자를 기다리며 일찍부터 꼬리를 흔들면서 남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곤 하는 착한 우지챠였지만, 그럼에도 이 넓디 넓은 공간에 오직 혼자서 하루 낮, 하루 밤을 꼬박 보내야 하는 것은 아직 어린 아이인 우지챠에겐 너무나도 힘들고 슬픈 일이었다.


"혼자는 싫은 레후... 아무도 없는 레후..?"


우지챠는 매일 매일, 남자가 나타나는 유일한 시간대인 새벽때마다 남자의 관심을 갈구하고, 웃음짓고 애교를 부렸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 짧았기에 이 작은 아이는 남은 23시간 이상을 혼자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감내해야만 했다. 남자가 내려놓은 아침밥을 먹고 나면, 일반적인 우지챠라면 코츄 코츄 잠이 들게 마련이건만, 이 아이는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넓디 넓은 수조를 꾸물꾸물 사방으로 기어다니면서, 있을 리 없는, 아니 있을 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찾아 길을 헤맸다.


"우지챠 나쁜 닝겐상도 좋은 레후...나쁜 오바상도 상관없는 레후.... 우지챠 너무 외로운 레후---!"


벌써 며칠 내내 먹고 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수조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던 우지챠는 아무리 사방을 기어다녀도 자신이 목적한 것을 이루지 못하자 절망과 혼자라는 두려움에 그만 왈칵 눈물을 흘리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우지챠가 외친 목소리가 수조의 유리면을 부딪히고 또 부딪혀 나가면서 약하게 메아리를 내며 반사되었다. 그것은 우지챠가 낸 목소리였지만, 이 어린 우지챠는 그것이 자신 외의 또 다른 누군가가 약하게 소리를 낸 것처럼 들렸다.


"거기 누구 있는레후---!! 뭐라고 말좀 해보는 레후---!!"




하지만 그것은 우지챠의 메아리. 메아리가 스스로 대답을 해줄 리가 없다. 그저 그것이 메아리란 것을 모르는 우지챠는 결국 피곤과 실망이 겹쳐, 비틀비틀 먹이가 있는 잠자리로 돌아온 우지챠는 똬리를 튼 채로 잠이 들고 말았다.








한참을 잤을까, 이미 해가 지고 밤이 될 무렵, 남자는 가게 문을 닫고, 평소처럼 2층의 옥탑방으로 사라질 무렵, 이제는 아무도 없는 찻집 안의 수조에서 우지챠는 잠에서 깨었다. 점주가 수조의 형광등을 꺼주고 갔어야 하지만, 안그래도 물고기를 몇번이나 폐사시킬 정도로 뭔가를 잘 보살피는 것은 영 서투른 사람 답게, 종종 이렇게 형광등 불을 켜놓고 가는 일도 흔했다. 그래서일까, 우지챠는 평소처럼 "낯씨가 긴긴 레후- 오늘은 밤씨 안오는 것인 레후?" 라고 옹알거리면서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열고, 물가로 가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목씨 시원시원한 레후-"


갈증이 해소되고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자 우지챠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여전히 혼자라는 것을 자각하고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있는 동안 우지챠는 매일 밤마다 울음을 터뜨리거나, 수조 안을 정처없이 방랑하곤 했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알았기에 따듯한 모래 위에 누워서 자신보다 조금 더 작은 둥근 자갈 위를 부비부비하는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우지챠는 잘 몰랐지만 외로움씨와 쓸쓸씨가 너무나도 많아져서 슬픔을 참기 어려울 때면, 이렇게 자갈위에 걸터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배를 문지르면 잠시나마 외로움과 쓸쓸함이 덜해지는 것을 어느 때부터인가 알았다. 물론 그것은 실장석의 유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프니프니였지만, 태어난지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집이 없어지고, 엄지에게 업혀 마마와 도망쳐 다니다가 어미와 오네챠를 모두 잃어버렸던 이 작은 아이에겐 그 무엇도, 그 어떤것도 가르침을 받은 것이 없었다. 보통은 태어난지 하루 정도 지나서, 젖을 먹든 운치를 먹든 밥을 먹고, 그것이 소화되기를 기다려서 엄지가 배를 문지르며 프니프니 하는 레치~ 하고 달래줌으로서 처음으로 그것이 프니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 마련이었건만, 태어나 집과 오네챠와 어미를 모두 잃은 우지챠에게는 아무도 그것이 프니프니라는 걸 알려줄 대상이 없었다.


그저 가슴속의 돌씨가 속으로 '슬프면 배를 문지르는 레후~ 그러면 기쁜레후~ 행복레후~' 하는 마음 속 울림에 따라 배를 문지를 뿐. 한참을 그렇게 배를 부비어 약간의 쾌락을 얻은 우지챠는 돌에서 내려와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수조 유리벽 너머 차도로는 저 멀리 맞은편으로 산과 작은 둔덕, 그리고 들판이 엿보였지만, 우지챠가 그것을 알아차리기엔 수조 유리벽이 너무나 두꺼워서 수조 너머에 뭐가 있는지 그 작은 눈으로는 제대로 알아차리기도 힘들었다. 그저 그녀에게는 벽이 가끔 알록달록 빛이 나고, 얼룩이 지곤 한다는 것만이 유일하게 인지하는 부분일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것도 마냥 신기했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저 평소와도 같은, 밤이 되면 보여지는 풍광에 지나지 않았다.우지챠는 그런 수조의 유리벽에 다가가, 뭔가를 원하듯, 수조 벽에 머리를 기대어 누웠다가, 다시금 몸을 돌려 유리벽과 마주했다. 그리고 그 순간, 우지챠는 깜짝 놀라 제자리에서 펄쩍 튀어올랐다.


"레후- 뭐인 레후!! 오마에 누구인 레후웃!"





우지챠는 일순,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우지챠를 보며 경계했다. 하지만 상대 역시 자신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웃 하기만 할 뿐,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우지챠는 한동안 상대를 바라보다가 조금씩 앞으로 기어가보았다. 그러자, 눈앞의 우지챠도 똑같이 한걸음 한걸음 다가왔다. 우지챠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누구인 레후. 몇날 밤과 몇날 낮을 계속 돌아다녀도 아무도 없었는 레후.'
'하지만 바로 앞에 동족이 있는 레후.'




그렇게 작은 머리로 닿지 않는 돌기로 머리에 손을 대려고 바둥거리며 생각에 잠긴 우지챠는, 문득 돌씨가 자신의 마음속에 전하는 울림을 깨닫고, 자신이 바라마지 않던 하나의 가능성을 머리에서 떠올리고는 방긋 웃음지으며 크게 말했다.


"혹시...친구상인 레후...?"


그러자, 반대편의 우지챠도 잘 들리지 않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작은 입을 옹알거리면서 웃음지었다. 그 소리는 너무나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히 "친구상인 레후-" 라는 소리란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만 기뻐서 우지챠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리면서 웃으며 소리쳤다.


"기쁜레후! 친구상이 온 레후! 친구인 레후! 행복한 레후!!"


그러자, 반대편의 우지챠도 기쁘다는 듯, 똑같이 모래 위를 구르며 신나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도 데구르르 구르던 우지챠는 한참을 옆으로 구르다가, 친구상을 부르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눈 앞에서 머리를 들고, 방긋 웃음짓는 친구상을 보고는 마치 홀린듯이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우지챠의 행동에는 한가지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밥을 먹고, 주변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이 되거나, 밖이 흐려져서 어두컴컴해질 때마다, 수조 안이 환하게 형광등이 켜져 있으면 유리벽을 지긋이 바라보며 수다를 떨듯 레후 레후 거리거나, 유리벽에 얼굴을 붙이고는 부비거나 웃음지으며 머리를 기대는 것들이었다. 점주가 보기에는 그것은 마치, 우지챠가 점주에게 애교를 부리거나, 점주를 향해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외로움에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간 우지챠가, 두꺼운 4자 어항의 유리벽이 반사한 빛의 허상을, 친구상으로 착각해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즉, 수조안에서 유리를 통해 바깥을 보기도 힘들 정도로 우지챠에게 너무나 두꺼운 수조 유리벽은 수조 밖에 환한 동안엔 수조에서 밖으로 나가는 빛과 바깥에서 방안으로 들어오는 빛의 세기가 비슷해서 우지챠의 허상이 벽에 맺히지 않지만, 밤이 되거나 영업이 끝나가서 수조 밖이 깜깜해지면, 결과적으로 수조의 빛이 유리벽 밖보다 강해지기에, 수조안의 물체에서 나온 빛의 반사량이 바깥에서 들어온 빛의 투과량을 넘어서게 되면서, 두꺼운 수조의 유리가 마치 거울처럼 보이게 되는 것인 셈이었다. 즉, 그것은 그저, 우지챠 자신의 모습이 빛의 반사율에 의한 유리의 성질에 의해 비쳐보인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허상임을 깨닫기에는 우지챠는 너무나 어렸다. 그나마 밖의 풍경이라도 볼 수 있으면 나았으련만, 이제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린 우지챠의 빈약한 시각능력은 4자 어항의 두꺼운 유리벽 너머를 보는 것조차 힘겨웠다. 때문에 우지챠는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혼자서 버텨야만 했다. 마마도, 오네챠도, 친구도 없이 말이다. 물론 아침마다 새벽이 되면 점주가 나타나 자신을 살펴봐주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우지챠는 그럴때마다, 가만히 점주를 바라보면서, 생긋 생긋 웃음지으며, 점주가 뭐라뭐라 이야기하는 것을 잘 알아듣기 어렵더라도 마냥 그 소리를 들으며 좋아했지만, 우지챠가 그것으로 외로움을 덜어내기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아니 짧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 24시간 중, 고작 10여분 남짓한 점주와의 대화 아닌 대화시간은 마치 고독에 몰린 이 작은 어린 생명에게는 그야말로 신이 내려준 감로와도 같은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일반적인 우지챠라면 쿨쿨 세상모르고 잠들 시간에, 점주가 주워온 우지챠는 새벽부터 일어나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점주와의 접촉을 기대하며 오기만을 기다리는 이상행동을 보일 정도로 우지챠는 외로움에 떨었다. 하지만 점주는 그저 벌써부터 영특하니 주인을 알아본다고만 생각했기에, 우지챠의 이상행동을 전혀 캐치하지 못하고 방치했다. 때문에, 우지챠는 외로움에 지친 나머지, 눈앞에 나타난 허상을 자신의 모습이 비추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친구씨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레에엥... 우지챠 그동안 혼자라서 너무너무 슬펐는 레후. 친구상도 그랬던 레후?"

"렛훙~ 구더기짱 그런거 잘 모르는 레후. 그러는 우지챠는 왜 혼자였던 레후?"

"우지챠는 태어나자마자 집씨가 사라진 레후... 하루 밤이 지나고 낮이 넘도록 밥도 못먹고 도망다녔던 레후. 하지만 마마는 검은색 콘페이토를 먹고 잠들어 버리고 엄지 오네챠는 야옹씨에게 잡아먹힌 레후...지금은 인간씨가 키워주지만 그것도 자주 오지 않는 레후웅...."

"레에에...그런 일이 있었던 레후? 그래서 우지챠가 슬픈 얼굴을 하고 있던 것인 레후?"

"슬픈 얼굴이 뭐인레후...?"

"웃지 않는 얼굴이 슬픈 얼굴인 레훙~♬"

"우지챠는 잘 모르겠는 레후. 어려운거 힘든레후..."

"그럼 구더기짱이 웃는 얼굴을 보여주겠다는 레후! 잘 보라는 레훗! 이런 세레브한 미소가 인간씨를 메로메로하게 만드는 레훙~"

"레에에....이렇게 말인 레후?"


우지챠는, 눈앞에 보이는 친구상의 표정을 따라잡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어쩐지 표정은 잘 되지 않는 듯, 친구상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러자, 친구상이 다시한번 우지챠를 독려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해보란 레후. 자 이렇게, 한번 더 이렇게 해보란 레후~"

"이젠 어떤 레후? 잘된 레후웃?"


우지챠는, 친구상의 말대로 두 눈을 꼬옥 감고, 친구씨가 말해준 대로 얼굴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친구씨가 기쁜듯이 대답했다.


"좋은 미소인 레후!!"





처음에는 우지챠도 눈앞에 나타난 새로운 친구씨가 누구인지 몰라 경계했지만, 너무나도 오래 혼자 방치된 탓에 쌓였던 쓸쓸함에 그 경계도 쉬이 무너졌고, 자신의 목소리가 유리벽에 반사되어 울릴 뿐인 자그마한 반향음을 친구씨의 목소리라고 착각하면서, 점점 그 허상은 실체가 되어 가기 시작했다. 바깥이 칠흑처럼 어두워지고, 주인이 깜박하고 곧잘 수조 등을 켜두고 2층으로 돌아가면, 우지챠는 밤늦도록 시간가는 줄 모르고 친구씨와 이야기하며 지내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유리벽에 맺힌 허상을 향해 판토마임 연극을 하는 어릿광대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유리벽에 반사된 자신의 허상을 친구씨라고 구체화하고, 실체라고 믿으면서, 그러한 우지챠의 소망에 따라, 위석 역시 그것에 발맞춰 우지챠의 감각과 지각을 슬그머니 곡해하고, 휘어지게 만들었다.


"어떤레후? 나도 이제 웃을 수 있게 된 레후?"

"아주 예쁜레후! 하지만 어딘가 나사가 빠진 바보같은 웃음처럼 보이는레후... 아! 프니프니! 프니프니를 하면 미소가 보다 자연스럽게 지어질 것인 레후우!!"

"픠니픠니? 프니프니? 그게 뭐인레후?"

"레에에에에에에에엣!!! 우지챠는 프니프니가 뭔지도 모르는 레후? 어떻게 그게 뭔지도 모르고 태어난 레후! 말도 안되는 레후우웃!!"

"역시 우지챠는 마마가 낳은게 아닐지도 모르겠는 레후..."

"레에...? 마마가 낳지 않았는 데 태어나는 우지챠도 있는레후? 구더기짱 어려운거 잘 모르는 레후. 하지만 마마 없이 태어나는 우지챠는 없는레훗!"

"그런레후? 역시 우지챠는 머리가 나쁜레후. 그래서 마마도 엄지오네챠도 지키지 못한 레후... 나는 나쁜 아이인 레후..."

"그런 생각하지 마라는 레후! 그런 우울한 생각은 프니프니로 전부 날려버리는 레뺘아앗! 냉큼 누우라는 레뺘아!"


구더기짱은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는 우지챠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 작디작은 돌기로 쿵- 하고 수조가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세게 부딪혀 우지챠를 뒤로 발라당 넘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우지챠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지챠는 나쁜 아이가 아닌레후! 우울한 생각은 하지 마란 레후우!"

"레엥.. 이마가 헤롱헤롱 하는 레후... 우지챠 폭력은 다메다메한 레후우... 레뺫? 뒤집어져 버린 레에에에엥..."


우지챠는 그만, 친구씨가 처음 내지른 매콤한 핵주먹맛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어버버한 표정을 지으며 허둥지둥 눈알을 굴렸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친구씨가 우지챠의 배 위로 아둥바둥 올라타고는 조용하고, 그 누구보다도 우지챠를 위하는 따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진정하는 레후. 그리고 잘 보고 음미하는 레훗. 이게 바로 정진정명. 일도양단의 필살 뽕맛나는 프니프니인 레훙!!"

"레뺘앗? 뽕맛이 뭐인레... 레에에에에에~~ 레후우우웅~~레힝~♪"


우지챠는 처음으로 느끼는, 친구상의 배씨에서 배씨로 전해지는 따듯한 체온이 그대로 느껴지는 뽕맛나는 프니프니에 흠뻑 빠지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우지챠는 자신의 배씨가, 마치 모찌처럼 폭신폭신 부드러워지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속으로 '모찌가 뭐인레후?' 하고 작은 의문을 표했지만 곧이어 따라잡듯 몰려오는 분대가 빵빵하게 눌리면서 느껴지는 배설의 쾌감을 느끼면서, 그만 저도 모르게 살짝 뷰릿 하고 똥을 지렸다. 우지챠는 이제, 눈앞의 친구상이 진짜로 있는 존재인 것마냥, 서로 뺨을 부비부비하기도 하고, 배를 번갈아 꾹꾹 누르기도 했다. 그것은 사실 수조 밖에서 보기엔 우지챠 혼자서 수조 유리벽에 뺨을 문대고 부비거나, 열심이 돌기같은 짜리몽땅한 손으로 유리벽을 열심히 토닥이거나 밀거나, 혹은 수조 바깥을 향해 무언가를 계속 가리키고 손짓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미 유리벽에 맺힌 허상이 친구씨라는 것을 완전히 믿어버린 이 가엾은 우지챠에게는 현실과도 다름이 없었다.


"레뺘....이런 프니프니 처음인 레후....이게...바로....뽕맛이란 레후우웅....♨"

"우지챠는 프니프니 많이 받아야 하는 레후. 그리고 열심히 싸고 많이 먹는 레후.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레후. 그래서 엄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레후!"

"엄지챠가 되면 뭐가 좋은레후...?"

"엄지챠가 되면 좀더 인간씨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할수 있는 레후! 그리고 더 많이 사랑받을 수도 있는 레훗!"


우지챠는 엄지가 뭔지 잘 몰랐지만, 그걸 또 물어봤다가 저번처럼 또 친구상의 핵펀치를 맞을까봐 차마 묻지 못하고는, 친구상이 그저 좋다니까, 더 많이 사랑받을 수 있다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상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분고분 대답했다.


"그런레후...?"

"당연한 레후! 세레브한 엄지챠가 되면 인간씨가 우지챠를 더욱더 좋아해줄 것이 분명한 레훗!"

"그럼.....그럼 우지챠....엄치챠가 되길 소망하면 더이상 혼자가 아니게 되는 레후?"


그말을 들은 구더기짱은, 잠시 으음- 하고 먼산을 보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는, 이내 작은 팔을 붕붕 휘두르며 말했다.


"당연한 레훗~ 우지챠에게 인간들이 메로메로되고 스테키랑 스시도 먹여줄거인 레후!"


그 말을 들은 우지챠는, 문득 스시가 뭐인레후~ 메로메로가 뭐인레후~ 하고 작은 의문을 가졌다. 이 순수한 우지챠, 정확하게는 태어난 이후 마마에게도 엄지에게도 전혀 무언가를 가르침받은 적이 없어 태내에서 나온 그 상태 그대로의 완전한 순수함만을 간직하고 있던 우지챠는 스시도 메로메로도 무엇인지 대체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구더기짱이 말한게 무슨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우지챠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되묻고 싶었지만, 그렇게 또 반문했다가 친구상의 핵주먹이 날아올까봐 우지챠는 그 의문을 도로 삼켰다. 친구상의 핵주먹은 너무너무 아야아야했다. 그래서 우지챠는 조용히 고개만 가로저으며 말했다.


"잘 모르겠는레후...하지만 우지챠 그런거 원하지도 생각해본적도 없는레후...."


그러자 구더기챠는 눈을 크게 깜박거리면서, 되물었다.


"그럼 우지챠는 대체 뭘 하고싶은 레후?"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은 하나였다. 우지챠가 늘 소망하고 또 소망했던 것. 그것을 우지챠는 입을 열어 밖으로 꺼냈다.


"우지챠는 그저 친구상을 가졌으면 하는 레후..."

"구더기챠가 있지 않는 레후?"

"하지만 구더기챠는 낮에는 없는레후. 낮씨가 사라지고 밤씨가 되어야 간신히 고개를 내미는레후. 밤에는 졸려서 오래오래 놀지도 못하는 레후... "

"레에에에....똥닝겐이 그런걸 준비해줄 수 있는지는 구더기짱도 잘 모르겠는 레후..."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우지챠는 두 눈망울에 그렁그렁 눈물방울을 글썽이며 울먹 울먹 거리기 시작했다.


"레에에엥. 레엥... 역시 우지챠는 혼자였던 레후..."


그리고, 결국 터져나오는 울음을 견디지 못해, 주르륵 빨강 초록 색눈물을 뚝뚝 흘리는 우지챠. 그것을 바라보던 구더기짱은 작은 돌기같은 오른손을 마치 주먹을 쥐는 듯한 모양새로 위로 불끈 치켜들고는 조용히 말했다.


"그런 나쁜 생각 하지말라고 했지 않는 레후? 구더기짱의 매콤한 핵주먹맛을 또 보고 싶은 레훗?"

"에꿉. 에큽. 안 우는 레후! 우지챠 나쁜 생각 안하겠는 레후!!"


우지챠는 애써 눈물을 꼬리로 훔치며, 똬리를 틀고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던 구더기챠는 방긋 하고 웃으면서 어느 때 보다도 더 따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 생각, 혼자라는 생각으로 떨지마는 레후. 우지챠에겐 이 구더기짱이 항상 있는 레후."

"레에? 구더기짱은 외톨이 우지챠랑 계속 함께 있는 레후?"

"당연한 소리지 않냐는 레후. 본래부터 한몸이나 다름없었다는 레후."

"레후? 한몸이나 다름없었다니 그건 뭐인 레후? 구더기짱 몸이 갑자기 흐릿해지는 것 같은 레후?"


구더기짱이 방긋 웃으며, 한몸이나 다름없었다는 말을 하자, 우지챠는 어쩐지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돌씨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울림이 난다고, 불현듯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눈앞의 친구씨가, 친구상이 어쩐지 흐릿 흐릿해지고 뒤에서 환한 노란빛이 감도는 것을 보며 당황하며 말했다.


"구더기짱 이상한 레후! 갑자기 빛이 감도는 레후! 친구상 몸씨도 흐릿흐릿 사라지는 것 같은 레후우!!"

"우지챠 이제는 괜찮은 레후. 구더기짱은 우지챠에게 프니프니도 해주고 운치도 나눠먹고 싶었던 레후. 구더기짱은 우지챠가 너무나 좋은레후. 하지만 이제 된 레후. 마법이 풀린레후. 풀릴 때가 된거레후."

"가지마는 레뺘! 친구씨 사라지지 마는 레뺘아아아앗!!"




우지챠는 이제는 꼬리씨부터 차츰차츰 지워지듯, 공중에 흩날리듯 사라져 가는 구더기짱을 바라보며 전에 없이 큰 소리로 크게 비명을 질렀다. 사라져가는 구더기짱은 등에 후광이 비춰 날리듯 노란 빛 덩어리를 사방으로 장엄하게 흩뿌리면서 서서히 하늘로 떠오르듯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우지챠는 너무나 슬퍼서, 처음 남자가 자신의 뒤에서 나타났을 때처럼 큰 소리로 연거푸 비명을 지르며 구더기짱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구더기짱을 잡으려고 몸씨를 자그마한 돌기로 잡고, 부빌 때마다, 우지챠는 어쩐지, 왠지 모르지만 이전과 다르게 부드럽고 따뜻한 친구상의 몸씨가 아니라 마치 벽인 것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감각이 느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조용히 현실을 부정하듯 울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레에엥....즐거웠던 레후...하지만 가지마는레후!!.. 레에에엥.."

"레에? 우지챠 이상한 레후~ 우지챠 울면서 웃어버리는 레후~"

"울면서 웃는레후?"

"그런레후. 그러니 괜찮은레후. 이제 우지챠는 울수도 웃을수도 있게된 레후. 꿈도 의지도 스스로 가질수 있게된 레후. 그러니까 구더기짱은 이제 필요없는 레후."

"구더기짱은 우지챠가 싫은레후?"

"아닌레후. 원래부터 한몸이었다고 말했잖는 레후. 아니면 또 구더기챠의 핵주먹 맛을 보고싶은 레후?"


그러자 우지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닌레훗! 우지챠 알아들은 레훗!"

"그럼 된 레후. 잊지 마는 레후. 구더기짱은 우지챠 안 잊는 레후. 우지챠도 날 잊지 마는 레후...."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구더기짱은 완전히 사라져, 새하얗고, 샛노란 빛무리가 되어 마치 눈가루가 하늘에서 흩날리는 모양새마냥, 저 멀리 멀리 사라져 흩어졌다. 그리고, 우지챠는 예전과 똑같은, 처음에 왔던 때랑 똑같은 크고 두꺼운, 그래서 우지챠의 작고 빈약한 눈으로는 밖을 제대로 보기 힘든 유리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영영 사라져버린 구더기짱의 모습을 찾다가, 이내 우지챠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눈물을 애써 억누르면서, 벽에 머리를 기대고는 몸을 떨었다. 그렇게 한동안 우지챠는 사라진 구더기챠를 그리워하면서 유리벽을 짧은 팔로 토테토테 두들기며 레후 레후 거리기만 하고 잇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우지챠는 무언가 몸이 두둥실~ 뜨는 부유감과 함께, 처음 인간씨에게 데려와지던 전날 밤. 죽은 마마 옆에서 울다가 깜빡 졸았을 때 느꼈던 어딘가 익숙한 내음과 조심스럽게 감싸안아지는 마치 마마가 처음 태어난 날 품어주던 감각과 비슷한 감각과 함께, 어딘지 모르게 두근 두근 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감았던 두 눈을 떳다. 그러자, 자신이 있던 곳이 아닌 생경한, 굉장히 높은 곳에 있다는 걸 알고, 깜작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자신이 인간씨의 손에 들려져서, 뭔가 굉장히 아마아마하고 보들보들한 천에 싸여져서는, 인간씨의 가슴에 있는 작은 공간에 넣어지자, 우지챠는 고개를 빼꼼 하고 내밀어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우지챠의 눈 앞에 여지껏 한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 우지챠에게 다가왔다. 마치 구더기챠가 사라지면서 준 선물인것마냥 눈 앞에 보이는 하늘 모두가 주황빛으로 물들어 크게 요동치듯 번져갔다. 그리고, 저 멀리 아련하게 동그란, 그러나 너무나 눈이 시리도록 붉은 진홍색에 가까운 노란 빛이 구체를 이루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빛은, 작고 빈약한 우지챠의 두 빨강 초록 눈에 명확하게 각인되어, 작은 우지챠로 하여금 크나큰 감동의 물결 속으로 휩쓸리게 만들었다.


우지챠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것이, 저 동그라미씨가 친구상이 하늘로 간 거라고 , 하늘로 돌아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이미 죽었던 어미가, 상냥하지만 자신을 업고 달리고, 마마가 죽고 난 후에도 나뭇잎을 가져다 덮어주다 야옹씨에게 물려간 엄지 오네챠가 하늘에서 외로움에 떠는 자신을 위해 친구상을 보내주었던 것이라고 우지챠는 굳게 믿고 있었다.


"우지챠 믿는 레후. 이제 나쁜 생각 안하는 레후. 우울한 마음 안가지는 레후"

"우지챠 이젠 강하게 사는 레후. 항상 웃음 짓고 활기차게 살겠는 레후."

"친구상이 언제고 다시 오는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는 레훙!"



우지챠는 가슴 깊에 전해져오는 구더기짱의 이야기를 잊지 않겟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쁨에 가득차 레후 레후 하고 지저귀듯이, 정말 오래간만에 정말로 새가 지저귀듯 레후 레후 울음을 부드럽게 내었다. 그러고는 인간씨가 자신을 들어올려 뭐라뭐라 말하며 내려놓자, 우지챠는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처음에 말한 내용은 잘 안 들렸다. 아무래도 남자가 우지챠에게 말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평소 하듯이 수조 위에서 지나가듯 말한 내용이었기에, 우지챠에게는 그냥 인긴씨가 평소처럼 아침인사를 했다고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하는 말은 몇마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법에 걸렸다. 친구랑 만났다. 같은 단어들을 우지챠는 작은 귀와 머리로 어렴풋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우지챠는 작은 뇌로 그것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하지만 남자의 말은 어리디 어린 이 아이에겐 아직 너무나 어려워서 잘 몰랐다. 아니 애초에 우지챠 스스로부터가 친구상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으면서 감격에 떨고 있었기에 인간씨가 하는 말을 제대로 주의깊게 듣지 못한 점도 있었다. 그랬기에, 우지챠는 마법에 걸렸다. 친구랑 만났다. 이 두가지 말만 간신히 알아들은 채, 안돌아가는 머리를 애써 부여잡고 끙끙대다가, 그 작은 머리를 살풋 옆으로 갸우뚱 기울이며, 누구에게 묻는지 모를 질문을, 이미 사라져 버린 남자를 향해서, 소리높여 외칠 수밖에 없었다.



"친구레후~?" "친구가 마법인레후~?"

"인간씨랑 친구레후~? 그런레후~?"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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