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읍. 숨을 들이쉰다.
"사육실장 할 놈들 모여라!"
확성기에 의해 온 생태공원에 울려 퍼진 그 외침은,꾸물꾸물 기어나오는 실장석들에게 초봄의 메마른 잔디가 녹색으로 물들기에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딱히 실장석이 물뿌리개의 힘으로 식물을 성장시킨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순수하게 무리지어 몰려오는 머릿수만으로 녹색 물결을 이뤄냈다는 거다.
대체 어디서 이만큼이나 살아남은 거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이곳은 인근 아파트 단지를 위해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야생 동물도 없고 기껏해야 고양이가 불운한 자실장을 물어가고 비둘기가 산책 나온 시민들이 뿌리는 뻥튀기를 두고 파닥이는 정도다. 꽤 넓은 공원 안에 마치 실장석보고 얼마든지 열매를 가져가라고 심어둔 것으로밖에 안 보이는 상수리, 마가목, 은행나무 따위가 뒤죽박죽으로 식목되어 있다.
어떤 애호파가 실장석을 대량으로 키우려고 이런 공원을 기획한 걸까. 하지만 괜찮다. 이 공원 둘레 한 바퀴를 빈틈없이 꽤 높은 철책이 둘러싸고 있다. 철책 틈 사이로 구더기나 엄지를 밀어넣어 영영 집에 돌아올 수 없도록 공원 밖에 내보내는 거면 모를까, 자실장이나 성체가 빠져나오지는 못한다. 공원의 출입구는 물론 두 군데 모두 24시간 열려 있지만 그 옆에는 각각 공원 관리인이 24시간 상주하는 관리실이 하나씩 있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건 자유지만, 나와서 아파트 단지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으름장을 놓는 게 관리인의 주된 일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는 확성기는 이 공원 관리실의 비품이다.
"그래그래. 빨리 모여라 실장석들아.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까."
실장석이 아무렇게나 공원을 나오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대량의 아사개체가 나오지도 않는 이 풍요로운 환경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챈 실장은 한 마리라도 있었을까.
사육실장 테스트 - 인내 -
그리고 현재, 내 발 밑에는 우글우글 녹색 파도가 한가득 몰려왔다. 바다의 파도는 밀려왔으면 밀려가는 게 순리이지만 실장석의 파도는 그렇지 아니하다. 발로 걷어차 몇 마리 밟는 건 간단하지만, 나는 학대파가 아니니까 그러지 않는다.
실장석들 사이에서 전설로 들려오는 괴담, 학대파. 안타깝지만 애초에 현대 문명 사회에서 동물을 학대하고 다닌다는 취미를 당당히 떠벌리고 다닐 수는 없다. 통계상 잡히는 학대파는 약 2%. 덧붙여 말해두자면 종교 계통의 정당 지지율이 그 정도 된다. 그 학대파 중 절대 다수는 아직까지 벌레를 죽이며 천진난만한 악의를 흩뿌리는, 선거권조차 없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기 때문에 무슨 날백수도 아니고 실장석을 허구한 날 학대하고 다니는 어른은 종교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보다도 희귀하다고 보면 된다. 식견과 교양이 있는 어른은 똥이나 흩뿌리는 포유강 실장석목 실장석과 생물들을 그냥 피해 다닌다. 아니면 팔다리를 자르고 옷과 머리를 태우는 이상한 짓을 할 시간에 재빨리 밟아 죽이고 시체를 아스팔트 바닥에 문질러 떼고 갈 길을 간다든지.
그럼에도 실장석 학대파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다 언론에다 자신들을 노출시키고 싶어하는 멍청한 단체들 탓이다. 개나 실장석, 고양이, 햄스터를 귀여워하느라 남의 나라에서 개를 먹는 것은 넷 게시판이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열심히 공격하는 주제에 애완용 뱀에게 먹이용 자실장을 먹이며 주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평범한 시민을 보고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학대파니 뭐니 길길이 날뛰는 편협한 놈들. 귀여운 포유류만 생명이고 나머지는 그냥 생물이다 이거지. 길 가는데 맥락도 없이 운치를 던지는 실장석처럼 짜증나는 부류의 인간들의 기준에 맞출 바에야 차라리 학대파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생기는 판이다. 학대파가 있어서 멍청한 단체가 생기는 게 아니라 멍청한 단체가 시끄러워서 학대파가 생긴다니, 인간의 사회도 사실 한 꺼풀 벗겨보면 실장석 수준만큼 엉망진창이다.
"너희들, 사육실장이 되고 싶나?"
발밑의 테츄테츄데스데스레치레치레후레후 소리가 훨씬 흥겨워졌다. 광란의 움직임에 어린 개체가 밟히거나 찢기거나 하는 일이 있지만 말리지도 부추기지도 않는다. 다음에는 자를 잃은 성체가 자를 잃게 한 성체를 공격하거나 위협한다. 소리가 더 커진다. 난장판이 되면서 실장석 개체들이 죽어나가, 발치에 어느 새 독라가 된 자실장 한 마리가 테츄테츄 바짓단을 붙들고 뭔가 애원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친이 지금의 소동으로 죽어서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독라가 되어서 살 수 없게 되었으니 네가 책임지고 고귀한 와타치를 키우라거나 뭐라 말하고 있겠지만 알아들어줄 의리는 없다. 나는 규정된 시간을 스톱워치로 재서, 이 소요사태가 제한된 시간 안에 소강되는지 아닌지를 지켜볼 뿐이다. 만약 소강되지 않는다면 확성기를 무리에 대고 크게 지른다. 확성기에 놀라서 파킨하는 놈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건 알 바 아니다. 누군가의 시체는 누군가의 식량이 된다.
시끄러운 자들이 있어서 이야기는 더는 못 하겠다. 해봤자 안 들을 거고. 내가 사육실장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도 끝까지 시끄러운 방해꾼들을 어떻게든 해라.
두 번 '시끄러운 자'를 강조하고 관리실 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 실장석들은 "뎃! 그게 누구인 데스! 시끄러운 분충은 나오는 데스!" 하고 외치겠지만, 분명 그게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는 생각은 죽을 때까지 하지 못한다. 그야 그렇지. 자신의 목소리에 듣기 거슬리고 시끄럽고, 그런 부정적인 수식어가 붙는다는 발상을 떠올릴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사육실장의 꿈이 '시끄러운 놈'에 의해 박살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분노한 무리가 즉각 무리에서 멍청한 자들을 솎아낸다. 애초에 현명할 듯한 놈들은 사육실장 이야기를 들으러 왔으면 조용히 경청할 자세를 취한다.
참고로, 진짜 현명한 녀석은 실장석의 무리 한가운데가 실장석 자신들에게 있어서 아주 위험한 장소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사육실장 이야기 따위에 목숨을 걸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칭 고귀하고 세레브하신 생물들께서는 이해하지 못할 거다.군자는 위험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알아서 살아가는 걸 내가 어떻게 건드릴 생각은 없다.
남은 시간 1분 28초, 27초. 아직 공원에 돌발적으로 발발한 국지전은 멈추지 않는다.
다시 말해두는데 나는 학대파가 아니다. 지금부터 하는 건 공원 관리인으로서의 일의 일환이다. 내 스스로의 감정이나 성향 따위와는 일절 관계없다. 나는 오히려 실장석을 보고 귀엽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시쳇말로는 애호파라고 분류될 족속일 것이다. 이 명칭 역시 어떤 편견과 독선에 취한 애호단체의 언론공작에서 비롯된 프로파간다에서 비롯된 것이라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대체할 다른 적절한 어휘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그래. 나는 애호파다.
이 사실을 덤덤하게 말했을 뿐인데 많은 사람들이 나의 발언을 믿지 않는다. 공원 관리인으로서 실장석의 갖은 면모를 실제 눈앞에서 지켜보는 일이 많기에 애호파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주장하는 놈들이 있다. 자기 자를 먹는다. 동족을 습격해 그 고기, 혹은 그 동족을 강제출산시켜 나온 자의 고기를 먹는다. 고양이나 까마귀는 무서워하는 주제에 그것보다 훨씬 거대한 인간을 자기 아래로 보고 노예라고 인식하는 저능한 개체도 있다.
근데 그래서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실장석 이외의 생물, 가령 햄스터들도 배가 고프면 자를 잡아먹는다. 동족도 먹는다. 배를 등과 바꿀 수는 없으니까. 심지어는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때는 인간도 인간을 실컷 잡아먹었다. 인간조차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면 이럴진대 설마 인간도 아닌 실장석목 실장석과의 생물체에게 윤리의식이나 모성애 따위를 기대하거나 강요하겠는가? 실장석 개체가 그 어처구니없는 동시에 불필요한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고 분충이라 매도하는 건 좀 불합리하지 않은가?
고양이나 까마귀 중 실장석을 애호하고 보호하는 개체는 없으므로 그나마 애호파라는 자가 존재라도 하기는 하는 인간을 보고 안전하다, 왜냐하면 자기보다 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비논리와 저지능은 어쩔 수 없다. 애초에 태생부터 지니지 못한 지성과 지능이 없는 존재에게 분노와 살의를 느껴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건가?
욕할 필요가 뭐 있고 괴롭힐 필요가 뭐 있고 학대파가 될 필요가 뭐 있는가. 실장석은 그렇게 살다 그렇게 죽는다. 물이 왜 아래로 흐르냐고 묻는 것, 산은 왜 해수면보다 높냐고 묻는 것과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러하니까 그러하다. 실장석은 자를 먹는다. 실장석은 동족을 먹는다. 실장석은 인간을 자기보다 아래로 본다.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귀납적 관측에서 비롯된 사건들에 입각한 가치중립적 추론, 명제이며 그 자체에 어떤 가치판단이 들어 있지는 않다는 것을 어째서 받아들이지 못하겠는가. 애초에 인간조차 아니라 존중해야 될 인격도 없고 법률로도 보호받지 못하는(실장석들이 자기들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들 자주 말하는데, 애초에 권리라는 말이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개념이 아니라 법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간다면 인간이 아닌 실장석들에게는 어떠한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것들이 자기들의 습성에 따라서 그렇게 살고 있는 건데.
객관적인 사실, 실장석은 자를 먹는다. 주관적인 평가, 실장석은 사랑스럽다. 이 두 개의 명제는 서로 어떤 모순도 일으키지 않고 병립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추가로 단언한다. 생명이 열심히 살기 위해 서로 물고 물리는 생존전략을 펴는 자그마한 생태계, 리얼 동물 다큐멘터리를 어떤 필름의 가공도 거치지 않고 가슴 따뜻하게 지켜볼 수 있는 이 공원 관리인직은 정말이지 좋은 직책이라고.
멍하니 있다가 스톱워치의 제한시간을 그만 십수 초 넘겨버렸다. 바닥을 보니 실장석들이 조용해졌다. 데갸아아 데갸아아 위협하며 소리를 지르다가 제풀에 지친 저체력 개체들이 조금씩 사그라지더니 반응이 일절 없이 침묵한 내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다. 그럼 슬슬 조용해져야지 아무렴. 1주일에 한 번, 벌써 네 번째 있는 사육실장 소집인데. 앞서 세 번의 자연적 솎아내기가 거쳐졌는데도 여기서 조용하지 않으면 진짜 학습능력이 없는 개체밖에 안 남은 거다.
관리인인 내가 솎아내는 일은 일절 없다. 관리인은 미술품의 전시를 지킬 뿐이지 미술품이 마음에 안 든다고 붓을 들어 거기에 획을 첨가하는 직업이 아니니까. 실장석들은 내가 확성기로 뭐라 지껄이든 사육실장 이야기를 들으러 오지 않아도 됐었다. 내가 들으라는 듯 확성기에 대고 투덜대며 관리인실로 돌아갔을 때 나를 비웃으며 그냥 해산했어도 됐다. 시끄러운 놈들 때문에 사육실장 이야기를 못 하겠다고 말했을 뿐, 시끄러운 놈을 죽이라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팔 lllll을 뜯어서 자기들끼리 먹어치우고 주제와 상황이 파악이 안 되는 저능한 희생자를 갖고 카니발을 벌이라는 지시는 일절 내리지 않았는데 이렇게 된 건 어디까지나 전부 실장석 자신들의 자유 의지에서 비롯된 결과다.
몇 초 넘어가긴 했지만, 뭐 아무래도 좋겠지.
"그래. 사육실장 이야기지. 나는 너희들 중 누군가를 사육실장으로 만들 생각이다."
데챠아아아! 츄아아아아! 벌써부터 행복해하는 놈들이 나온다. 당연하지.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것 또한 이 공원에 고용된 관리인의 일 중 하나니까. 아무리 상대가 인간이 아닌 실장석이라고 해도 함부로 속였다가는 목적물이 될 실장석이 나중에 절망으로 파킨하거나 해서 골치 아파지는 경우가 있으니까, 성의와 신의칙에 의거해 성심껏 이야기한다. 성심껏 이야기가 안 되는 개체는 앞선 3주간의 사육실장 예고 이후 얼추 솎아내졌다.
나는 이후로도 일절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무력해. 너희들 전원을 사육실장으로 만들 여력은 없어. 그래서, 시험을 준비했다. 이 시험을 통과한 실장석만 사육실장으로 만들 거야. 어중이떠중이를 전부 사육실장으로 만들고 싶진 않단다."
"왜인 테치? 인간씨는 가장 세레브한 와타치만 사육실장으로 만들면 되는" 지벳. 자실장 하나가 즉석에서 친에게 짓밟혔다.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는 멍청한 개체라서인지, 혹여나 자실장의 꾐에 빠져 내가 그 자실장만을 사육실장으로 만들어버릴까 하는 우려 탓인지, 어느 쪽이든 자실장 하나가 그렇게 없어졌다.
"아.... 자기 자를 죽일 건 없어. 시험에 통과한 실장석의 자도 전부 데려갈 거니까."
"꿀꺽. 데엣!"
친은 이미 머리를 한 입 뜯어먹은 자실장을 털퍽 떨어뜨리고, 입에 넣은 고깃조각은 마저 삼킨 뒤 오로롱 울었다. 별로 연기는 아닌 것같다. 조금이라도 나한테 잘 보이고 싶었더라면 자실장의 살점을 뱉었겠지.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예비 자실장 노예 후보가 하나 무의미하게 줄었기 때문에 울었을지도 모르고, 그것이 사랑했던 자기 자이든 뭐든 일단 죽었으니 음식이고 단순히 실장석에게는 음식을 한 번 입에 넣은 뒤에 뱉는 발상이 불가능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좋다. 여기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급의 슬퍼하는 연기를 펼쳐보여도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 건 내가 알 바 아니다. 나는 자기 자를 솎아내지 말라고는 안 한다. 자기 자를 먹지 말라고도 안 한다. 솎아내고 먹는다. 그것이 자연 그대로의 실장석 아닌가.
이런 귀엽고 덧없이 져 가는 자실장을 보면서 역시 똥벌레는 전부 죽여야 한다느니 시끄러운 놈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쥐나 모기, 바퀴벌레처럼 전염병의 매개체로서 인간에게 해악이 되는 것도 아니고 멧돼지나 들개처럼 인간의 목숨을 직접적으로 빼앗을 수 있는 맹수도 아니다. 실장석의 피해는 사실 들고양이나 까마귀 수준밖에 안 되지만, 들고양이나 까마귀를 전부 죽이라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구 위에 인간이 70억이나 있으니 어디 한 명쯤 있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내가 아는 한은 없다. 그런데도 인간에게 어떤 해악도 못 끼치는데 종 단위로 없애야 한다는 게 대체 무슨 영문인지 원.
아 물론 기수 미수 상관없이 똥을 던져오거나 유리를 깨고 침입해오는 개체를 특정해 밟아 죽이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멋대로 하라고 그래라. 그런 놈들은 살려서 보내봤자 인간이 만만하다는 인식과 함께 재범으로 돌아오니까.
"자, 너희들. 내가 필요한 걸 가지고 오는 동안 한 줄로 주루룩 서 보렴. 차례대로 서지 않으면 나도 상대하기 힘들단다."
관리실 안에 넣어 둔 냉장고에서 오세치 한 세트가 통째로 들어가는 찬합을 가지고 온다. 그러나 내용물은 인간이 1년에 한 번, 정월에나 먹는 그런 화려한 것이 아니다. 먹을 것의 냄새를 감지했는지, 어설프게 줄을 선 놈들이 일제히 몇 발짝씩 다가온다. 줄을 종대로 서지 않고 횡대로 선 탓에 아까 그 녹색 물결과 다를 바가 없다. 정말이지. "거기 가만히 있어." 한 마디 주의하고, 뚜껑을 열기 전에 당부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사육실장이 되려는 거지?"
"데스! 데스!"
"사육실장은 필요한 게 있으면 주인님이 가져다 주니까,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약탈하면 안 되지?"
"데? 데에스?"
두 번째 문장에 고개를 갸웃하는 개체가 나왔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남의 물건'이 존재했는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는 거다. 지금 고개를 갸웃한 건 분충이니까 사육실장 탈락이야. 라고 말해도 좋지만 그러지 않는다. 애초에 인간이 실장석을 키우는 건 귀여워해주고 응석을 받아주기 위함이 아닌가. 실장숍에서 한 마리를 사든 들실장 한 마리를 잡아오든 그 실장 입장에서는 인간의 거대한 힘 앞에저항할 수조차 없다. 사육실장은 한 마리도 빠짐없이 "길러짐 당해지고 있는"거다. 사육실장이 되고 싶어 아첨 자세를 취하며 "뎃스웅? 고귀한 자신이 길러져 주는 데스우!" 하면서 건방진 말을 하는 실장석들은, 사실은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한없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귀하다는 부분은 물론 제외하고.
너희들은 지금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 이외의 대부분의 자유를 속박하기 위해서 나에게 온 것을 이해하고는 있는 거겠지.
"남의 걸 훔치고, 죽이고 뺏고, 가져가고 하면서 멋대로 구는 실장석은 순식간에 독라로 버려지거나 살해당할 거야. 인간은 자기의 사육실장이 사육실장 실격인 분충이라고 알게 되면 한없이 무서워진단다. 고귀하지도 않고 세레브하지도 않은 주제에 날 속였어, 하면서."
"데에엣!"
안 훔치는 데스! 안 빼앗는 데스! 그렇게 외치고 있을 데스데스 울음소리가 울린다. 또 조용해지길 기다리긴 싫으니 확성기를 쥐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지금부터 사육실장 시험을 시작한다! 지금 내가 나눠주는 것을 내일까지 나한테 돌려주면 합격, 그렇지 않다면 불합격이다!"
그리고 뚜껑을 열고 가장 가까운 성체실장 한 마리에게 그것을 하나 내준다. 내주면서 반대쪽 손으로는 마커펜의 뚜껑을 따 두건에 한일자를 새겨 준다.
"데에에에에에엣!"
그것은 냉장고 속에서 차갑게 식어 있던, 소스가 잘 발려진 장어 스시였다. 전문점의 그것은 아니고 대형 마트에서 특가로 개당 80엔에 팔고 있던 물건이다. 다른 실장석들도 소리를 지른 실장의 손에 뭐가 들렸는지 깨달았다.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움직였을 거다. 실장의 물결이 우르르 몰려와 스시를 빼앗고 불행한 실장석 하나를 독라로 만들었다. 머리카락과 옷을 되찾으려고 헛된 노력을 하느라 생명을 불태우는 대신 뒤도 안 돌아보고 주먹질로부터 달아나는 걸 보니 어느 정도 지성이 있는 모양이다. 위안은 안 되겠지만, 지금 난투로 몇 마리는 확실히 죽을 거고 몇 마리는 너와 마찬가지로 독라가 될 거다. 남은 실장석들은 독라를 비웃으며 똥을 던지지만 그걸 쫓아가 확실히 노예로 만들기보다 스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인지 그것을 쫓아가지는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군. 다행히 실장석 전원이 싸우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나를 보고 빨리 스시를 달라는 놈들이 있다. 두 걸음 물러섰다. 난투의 무리는 줄의 후미가 되었다. 다음으로 앞에 나온 실장석에게 한 일자를 긋고 스시를 준다. 그러자 이번에는 빼앗길 수 없다는 듯이 다음 실장에게 줄 스시를 꺼내기도 전에 그것은 비닐봉지째 놈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그 기분 이해는 하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어처구니가 없다. 일단 한 일자를 가로지르는 한 획을 더 그어서 X표를 만든다. 이 녀석은 탈락. 누가 뭐라 해도 이 녀석은 탈락.
"자, 너는 탈락. 집으로 돌아가렴."
"데엣? 데데데데엣스! 뎃스!"
스시를 더 내놔라, 고귀한 와타시가 우마우마한 걸 먹는 건 당연하다. 어째서 와타시가 탈락이냐. 링갈을 안 봐도 뻔하다. "탈락한 놈이 계속 줄에 남아있어도 곤란하다, 다음 사람에게 스시를 줄 수 없잖아." 한 마디를 추가로 넣어주자 거의 척수반사로 옆 실장석이 탈락실장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런치를 즐긴 실장석이 잠시간 린치도 즐기고, 이러나 저러나 다음 사람에게 스시를 줄 수 없었던 나는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결국 탈락실장은 죽었다. 방금과는 달리 그녀는 왜 죽었을까. 아마도 스시 쟁탈전은 스시가 사라지면 폭력의 폭풍이 멈추지만 분충 소탕전은 분충이 사라져야 멈춘다는 목적의식의 차이가 있는지도 모른다. 아닐지도 모르고.
"스시를 먹지 않고, 나한테 돌려줘야 합격이야. 알고는 있지?"
"데엣스."
틀림없이 모른다. 방금 그 분충은 내 눈앞에서 먹어치웠기 때문에 들켰다. 만약 인간의 눈이 안 닿는 곳에서 먹는다면 똥닌겐은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사고의 흐름이 링갈에 읽히는 것 같다. 애초에 인간인 나는 손도 안 댔는데 말이지.
그게 사실은 읽히고 있다. 데프프프 거리며 중얼거리고 있으니까. 주위의 실장석의 시선이 굉장히 미적지근한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당사자 자신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비슷한 것을 생각했다가 주변의 분위기에 따라 데프프 웃다가 간신히 자신이 뭘 하려 했는지 깨닫고 뒤늦게 흠칫하는, 아마도 같은 생각을 이미 했던 놈도 보이고 반응이 아주 다채롭다. 그래도 나는 스시를 준다. 나중에 돌려주러 오면 그 때 자신이 80엔짜리 물건 하나도 되돌려주지 않는 것으로 미래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아서 깨닫게 될 테니까.
"또 받으러 줄 서도 의미 없어. 거기 너. 뒤에서 몰래 까먹고 모른 체 하려고?"
"데엣!"
어째서인 데스! 어째서긴 뭘 어째서야. 네 눈높이에서는 앞 실장의 뒤통수밖에 안 보이겠지만 내 높이에서는 네가 꾸물꾸물거리는 게 보인단 말이다. 두건에 두 번째로 가위표가 쳐진 놈이 아까처럼 얻어맞고 떠났다. 이번에는 나 아무 말도 안 했다. 실장석 사이에서 탈락자를 때려눕히는 건 불문율이 된 것 같다.
"데갸아아아!"
소리를 듣고 시선을 향해 보니, 자기 스시를 먹는 게 아니라면 괜찮다고 판단한 건지 스시를 받아 돌아가는 실장석 하나가 대기열의 후미에 있던 실장석 몇 마리에게 습격을 당하고 있다. 수는 이길 수 없어 스시를 빼앗겼지만 나는 개입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걸 보고는 안전한 스시라고 판단해서인지 그 근처에서 소규모 난투가 열린다. 스시를 빼앗긴 실장석이 내게 다가와 데스데스 양팔을 흔들며 새 스시를 요구했다.
"너는 내 스시를 내일 돌려줘야 하는데, 벌써 먹어버렸구나."
"데엣!"
아닌 데스! 아닌 데스! 와타시가 아니라 저 분충이 먹은 데스! 그런 거 모른다. 실장석이 스시를 받아가, 실장석이 스시를 먹은 건 사실 아닌가. 개인 간의 분쟁에 일일이 개입하자면 이론상 우주의 엔트로피가 완전평형이 되는 그 날까지 무한히 증식하는 실장석 특성상 정말이지 한도끝도 없다. 가위표를 쳤다. 벌써 누군가의 주둥이에 다 들어가 이미 밥풀조차 안 남은 약탈된 스시를 놓고 아직도 싸우고 있는 이 참에 도망쳐라. 아니면 얻어맞는다. 두건에 새겨진 표식에 실장석은 가만히 몸을 떨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여기에서 이탈했다.
다음 스시를 주려고 했더니 내가 시선이 다른 데 팔린 틈을 타 스시를 훔쳐먹는 놈이 하나 나왔다. 문답무용으로 가위표를 치고 방금 난투가 끝난 실장석 무리에 던져넣었다. 반쯤 남은 스시가 흙에 떨어지고, 싸움의 목적을 다시 찾은 무리 사이에서 데갸아아아 하는 흔한 비명이 들렸다.
실장석 개체수가 줄어들수록 일이 간단해져갔다. 어떤 실장이 미식축구 선수처럼 스시를 받자마자 안고 용감하게 내 발 밑을 지나 전력으로 내달려 이 자리를 뜨는 데 성공했다. 지금까지의 놈들은 인간인 나에게서 무심코 멀어지다가 뒤에 잔뜩 쌓인 실장석들에게 스시를 뺏겼지만, 방금 그 놈은 현명하게도 아무 짓도 안 하는 나를 향해 달렸다. 그 뒤에도 몇 놈이 그 선구자를 따라했다.
한 놈은 이러다가 스시 약탈의 기회를 놓칠 것 같아 다음 스시를 받으려는 실장의 뒷머리를 붙잡아뒀다가 내달리는 순간 앞 실장석이목이 뒤로 턱 꺾이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뒤로 구른 그 놈의 스시는 순식간에 스시가 아닌 것으로 화했다. 머리를 잡아당긴 놈이 방금 스시를 받은 놈의 뒤에 있었으니 다음 차례로 스시를 줬다. 방금 뺏은 전리품 스시에 더해 내가 새로 빌려준 스시를 받자 황홀해하며 그 자리에서 행복회로에 빠졌다가 그 뒷놈에게 뒤통수를 맞고 빵콘했다.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여하튼 스시를 전부 나눠줄 수 있었다. 뒷줄에서 투닥투닥 시끄럽던 놈들은 내가 반합을 정리하자 그제야 나에게 몰려와 뎃스뎃스 떠든다. 몰라. 스시는 이제 없어. 너희는 줄을 서기는커녕 남의 스시를 빼앗으려는 짓만 반복하면서 등록 선착순에서 밀린 거다. 단순히 운이 없었던 것조차 아니다. 너희가 자초했다. 그 놈들의 두건에 전부 가위표를 새기고 관리인실로 물러났다. 이 놈들이 여기 계속 있어봐야 아무 것도 못 얻는다고 알아채고 어디론가 떠났고, 나는 그 결말을 모른다. 스시를 내놓으라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투분이라도 했다가 밟히거나 뭐 그런 결말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알 게 뭔가. 탈락자에겐 일말의 관심도 없다.
이제 오늘은 야간 근무 교대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밖엔 할 게 없다.
한 실장석은 어떻게 온전한 상태로 확보한 스시를 골판지에 가져다 두었다.
"마마! 다녀오는 테치!"
"마마! 밥을 가져온 테치?"
친실장이 가져온 밥은 안타깝지만 인간의 것이다. 내일 이것을 돌려주고 사육실장이 되어야 한다. 당초에는 자들에게 그것을 설명하고 오늘은 밥을 참으라 할 셈이었으나, 골판지를 열고 사랑스러운 두 자를 보자마자 대차받은 물건은 친실장의 뇌내에서 증여받은 물건으로 둔갑했다. 즉시 스시를 뜯어 두 자에게 반으로 나눠준다. 자신은 손에 묻은 양념을 조금 핥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친실장은 자화자찬한다. 아, 이 와타시는 얼마나 현명하고 마음이 넓은가! 하지만 친실장에겐 불행한 사실로, 그 정도의 애정을 갖고 있는 개체는 친실장의, 혹은 일반적인 인간의 편견과는 달리 상당히 흔하고 널려 있다. 상당히 많은 실장석이 자와 자신이 동시에 위기에 처했을 시에 애정을 끊고 생존본능과 이성과 합리를 우선해 자기만이라도 살아남는 대신 멍청하고 미련하게도 자를 구하려다 자기까지 포함해 전부 죽는다. 자를 구하지 않는 실장석도 높은 확률로 같이 죽지만, 그래도 자를 구하려는 실장석보다는 많이 살아남는다. 그래서 결국 자를 구하지 않는 실장석이 자연선택되어 공원에 퍼진다. 이런 실장생에 자를 버린다고 분충이니 뭐니 알지도 못하고 속 편하게 지껄이는 인간이 많다는 사실에 양식 있는 애호파들은 불만을 품고 있다. 좀 더 실장석의 안전을 확보해서 애정 깊은 개체를 보호해야 합니다! 말은 맞는 거 같은데, 그 결과 지금 인간이 빌려준 스시 하나가 사라지는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인식이나 하고 있을까.
각설하고, 친실장이 나눠 준 스시는 장녀와 차녀가 남김없이 먹었다. 친실장은 자들이 츄아아아! 츄아아아! 하는 기쁨의 울음으로 골판지를 가득 채우자 행복감이 위석에 차오르는 걸 느꼈다. 양념 묻은 비닐까지 자들이 남김없이 핥아서 끈적해진 비닐을 소중히 접어둔다. 내일 자신과 자신의 자들은 이 비닐을 돌려주고 사육실장이 된다. 똥인간이 따질지도 모르지만 차분히 설명하면 된다. 자신은 고귀하다. 따라서 자신의 자들도 고귀하다. 고귀한 자들이 스시를 먹은 건 당연한 일이다. 인간노예는 와타시와 와타시의 자들이 싼 운치나 먹으면 된다. 너희들은 음식을 엄청나게 가지고 있다. 너희들이 가질 자격이 없는 것들이다. 그 인간노예는 학대파가 아니었던 것 같다. 알아듣게 설명하면 분명 인간노예는 복종할 것이다.
행복회로를 돌리는 친실장이 헤벌쭉 웃으며 침을 흘리는 그 둘레를 자실장 위성 둘이 테치테치 공전한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쓰레기가 아닌 음식에 이 이상 없을 행복을 표현하는 모습이다.
......그 행복이 내일 반드시 찾아올 절망이 도래하기도 전에 차단되는 것이 실장생이지만.
"테챠아아아! 더 먹고 싶은 테챠아! 맛나맛나를 더 가져오는 테챠아아!"
"뎃....! 내일은 사육실장이 되는 데스우! 이제 필요 없어진 보존식을 전부 꺼내먹어서 잔치를 여는 걸로 참는 데스우!"
"필요 없어진 테치? 필요 없는 걸 세레브한 와타치에게 먹일 셈인 테치? 똥마마나 먹는 테치!"
"이제 벌레랑 도토리는 이야 테치! 스시가 좋은 테치! 스테이크라도, 콘페이트라도 가져오는 테치 똥마마아앗!"
시간이 조금 지나 뭐 대충 그런 대화가 벌어진 후, 그 골판지에는 자실장 시체 두 구가 발기발기 찢긴 채 흩뿌려졌다. 별로 귀한 광경은 아니었다.
다른 골판지에도 힘껏 쥐고 오느라 조금 짓뭉개진 스시를 들고 돌아온 친실장이 있었다. 이 친실장은 처음부터 자에게 스시를 먹이고자 했다. 사육실장 같은 건 포기한다. 어차피 자를 가진 사육실장은 불행해질 뿐이다. 자신은 자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거지 자신만이 사육실장이 되어 행복해지려는 게 아니었다. 그럴 바에야 사육실장 따위는 포기한다. 애초에 그럴 거면 자만 사육실장으로 만들고 자신은 공원에 남는다는 발상을 떠올리면 좋으련만, 친실장의 목적은 자신이 자와 행복해지는 것이다. 자신은 행복해지지 못하는데 자만 행복해진다는 걸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당연히 그 선택지를 고르는 건 불가능하다. 다행히 그 선택지를 가르쳐줄 존재도 달리 없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걸 가르쳐줘 버렸더라면, 친실장은 틀림없이 이해조차 못할 것이다. 이해하려 하지조차 못할 것이다.
만일 이해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고르는 일은 이미 불가능하지만.
그녀가 골판지 상자를 기운차게 여는 순간 구더기 한 마리가 레후레후 웃으며 마마를 반겨주었다. 그뿐이다. 있어야 할 자실장은 한 마리도 없었다.
"데에에엣! 어떻게 된 일인 데수!"
평소에 제대로 가르쳐놨는데. 마마가 없으면 골판지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위험천만하게 골판지 밖으로 나와서 노는 대신 집 안에서 구더기를 가지고 두들기든지 어쩌든지 해서 놀라고 준비까지 해 뒀는데.그러나 친실장은 모른다. 평소에 자들이 구더기를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대신 여동생으로 생각해, 마마 몰래 구더기를 포함해 다 같이 나가서 놀며 스트레스를 경감했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일도 없이 끝났다. 어제까지는 자실장이 나가 논다 하더라도 바로 코앞에 골판지가 있는 거리에서만 놀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뭐가 다르냐면, 주변에 헐레벌떡 뛰어가는 아줌마나 얻어 터지고 비척비척 헤메이는 독라 성체실장이나 독라 자실장, 어디 멀리서 끊임없이 들려 오는 격투음, 각종 정보가 모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을 화제로 삼아 이야기했다는 부분이 다르다.
"아줌마! 그 스시를 내놓는 테치! 고귀한 와타시가 먹어 주는 테치! 덤으로 아줌마한테 길러져 주는 테치!"
"데갸아아아! 그 스시를 먹지 마는 데수우! 와타시는 사육실장이 되어야만 하는 데수우우우! 오로롱......!"
중구삭금, 허언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계속 들으면 사실이라 생각된다. 하물며 청자는 자실장, 언어가 통하는 생명체 중 속아넘어가기 지구 1위를 자랑하는 저지능의 존재들이다. 골판지 벽 너머로 스시의 정보가 계속 들려오자 5초 정도 참다 도저히 못 견딘 그녀들은 구더기 따위는 잊어버리고 골판지 집을 일제히 뛰쳐나갔다. 어디 멀거나 혹은 가까운 곳에서 테챠아아 하는 자실장의 비명이 들리는 가운데 구더기만 한참 태평하게 뽈뽈대며 텅 빈 집을 기어다니며 자신이 흘린 운치를 먹고,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고서야 지금에 이른다.
"구더기쨩! 오네챠들은 어떻게 된 데수!"
"우지챠 모르는 레후. 프니프니 해주는 레후."
페타페타 꼬리를 흔들며 생글생글 웃는다. 귀엽지만, 그냥 비상식량보다는 자실장이 더 귀여운 법이다. 도움이 안 되는 우지챠를 골판지에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온다. 자의 냄새가 난다. 그다지 멀리 가지는 않았다.
"장녀어어어! 차녀어어어! 어디인 데수! 들리면 말하는 데수우!"
"마...."
자그마한 단말마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친실장은 그 뒤에 이어진 뭔가가 깨지는 듯한 청명한 고주파를 들을 수 있었다. 4시 방향, 골판지 입구에서 등을 돌리자 거기에는 입 주위에 피칠갑을 한 독라가 한 마리, 그 손에는 육체의 4할 정도를 잃은 자실장이 한 마리 있었다.
"늦은 데스. 오마에의 자는 전부 먹은 데스."
"데샤아아아아!"
적이라고 판단한 친실장은 양 손을 바닥에 붙이고 위협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독라는 남은 자실장을 한 입 더 베어물 뿐 반응이 없다. 마치 실장석의 무력이 일절 통하지 않는 인간처럼.
"오마에, 스시를 받아온 데스네."
"뎃!"
황급히 스시를 등 뒤의 골판지 집에 감춘다. 그러나 독라는 친실장에게 한 걸음 더 평소 걷는 편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어째서지? 와타시는 지금 분명 스시를 감추었는데1 저 분충은 스시가 없는 줄 알고 돌아가야 하는데!
"어서 꺼지는 데샤! 와타시의 스시는 아무에게도 넘기지 않는 데샤아아! 오마에는 독라 주제에 와타시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데스까!"
"와타시도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독라가 아니었던 데스. 오마에들이 이렇게 만든 데스."
그렇다. 이 독라는 공원 관리인에게 처음 스시를 받고, 그 즉시 머리와 옷째 스시를 빼앗긴 첫 번째 성체실장이다. 제일 먼저 그 자리를 이탈해, 다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여기까지 와서는 마침 근처에서 적당히 놀고 있던 자실장을 죽이고 잡아먹어 체력을 회복했다. 자신을 먹을 다른 성체실장들은 죄다 남자 곁에서 스시를 받느라 아우성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처음에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가장 먼저 잡은 한 마리만 먹으려고 급급했지만 남은 자매들이 "와타치는 우마우마한 스시를 먹을 때까지 죽을 수 없는 테챠아아아!" 하고 외치는 바람에 홧김에 나머지 전부를 주먹으로 때려눕혔다. 부상당한 몸이었던지라 자실장 하나도 못 죽이고 죄다 기절밖에 못 시켰지만 별로 산 채로 먹는다고 소화를 못 시키는 건 아니다. 결과적으로는 평범하게 스시를 먹는 것보다 더 많은 영양과 열량을 얻을 수 있었지만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잡아먹을 수 있는 이웃집 자실장과는 달리 못 먹은 스시가 아른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몸이 회복될 때까지 움직일 수가 없었기에 독라는 지금 돌아온 친실장과 마주쳤다. 그리고 지금, 독라는 평온을 느꼈다.
"뭐인 데스, 이런 놈들한테 와타시가 독라가 된 데스. 웃기지도 않는 데스."
"데, 뎃?"
"보는 데스. 오마에는 그 자세를 취하면 와타시가 무서워하기라도 할 것 같은 데스?"
자연계에서 보통 피포식자가 취하는 생존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의태이다. 적이 자신을 알아채지 못하게 위장하고 들키지 않게 살아간다. 자벌레가 주로 그러하다. 또 하나는 위협, 경고색으로 자신을 공격하면 너도 무사하진 못할 거라는 표를 일부러 화려하고 뚜렷하게 남긴다. 무당벌레가 주로 그러하다. 포식자를 향한 경고의 표시는 보통 크고 화려하고 아름답다. 반면 실장석의 위협은 어떠한가. 크게 보이기는커녕 온통 움츠려서 벌벌 떠는 다리가 설 수조차 없어서 네 발로 땅을 짚어야 하고, 그마저도 겁먹은 티를 질질 내느라 엉덩이와 무게중심이 뒤로 팍 쏠려 있다. 이걸 보고 무서워하는 건 실장석처럼 지능이 낮은 생물뿐이다.
기실 위협이란 건 상대가 자신을 이길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비롯되는 행동이다. 자실장을 상대로 위협하는 성체실장은 없으며, 엄지나 저실장을 위협하는 자실장도 없다. 그냥 주먹으로 한 대 치거나 발로 밟으면 땡이다.
독라가 린치를 당했을 때는 스시를 빼앗는다는 같은 목표를 가진 실장석들이 많이 있었다. 수가 많으니 우리는 지지 않을 것이라 인식하고 위협을 하지 않고 집단으로 즉시 공격했다. 그렇게 죽을 뻔한 독라는 지금 일절 공포가 느껴지지 않는 낮은 자세를 보자 친실장이 위험한 존재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좋은 걸 가르쳐주는 데스. 오마에. 그 자세는 와타시가 로우킥을 차면 하이킥이 되는 자세인 데스."
한 발, 힘차게 면상을 걷어찬다. 팔꿈치나 무릎의 관절은 없지만 그 자체로 탄력이 있는 탱탱한 실장석의 육질은 문어나 오징어의 촉수 공격과 비슷한 위력을 낸다. 정면에서 걷어차여 얼굴이 함몰된 친실장은 뒤로 뒤집혔다. 독라는 한쪽 발로 친실장의, 다른 한쪽 발로 머리를 밟았다. 그 상태로 방방 뛴다. 실장석의 근육이 위력을 못 내도 중력이 위력을 내 준다. 내장과 뇌장이 엉망진창이 되어 친실장은 절명했다.
"이긴 데스."
이겼다. 자신은 이겼다. 이제 스시를 먹을 수 있다. 아니, 아니다. 이 스시는 먹는 게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스시를 먹고 와타시도 사육실장이 되어 주겠지만, 지금 자신은 독라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몸으로는 인간을 메로메로시킬 수 없다. 일단 트집 잡힐 일 없이 안전히 사육실장이 되고 난 뒤에 머리와 옷을 인간에게서 받고, 그 뒤에 스시와 스테이크를 즐기자.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은 노예다. 그렇게 생각한 독라가 주인 없는 골판지 문을 열었고.
"레후! 스시 우마우마한 레후! 마마 고마운 레후!"
유일한 희망이 끊긴 것을 목도하자마자 청명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골판지를 적셨다.
"마마아아! 먹지 마는 테치이이!"
"상냥한 마마로 돌아와주는 테에에에엥!"
뎃챱, 뎃챱. 어느 골판지에는 스시를 안전히 들고 오는 데까지 성공한 친실장이 자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이 스시를 내일까지 지켜야 하는 건 이해했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자기가 자는 사이에 스시를 훔쳐 먹으려는 자실장들이다. 배제해야만 한다. 살려서 쫓아내면 이 집에 스시가 있다는 걸 아는 이상 밤에 돌아와서 훔칠지도 모른다. 아주 꼼꼼하게 위험도를 견준 친은, 스시를 곁에 두고는 입구를 엉덩이로 틀어막고 앉아서 자실장을 한 마리도 빠짐없이 잡아먹기 시작했다.
"자는 또 낳으면 되는 뎃승. 와타시는 이제 사육실장이 되는 데스. 오마에들은 흑발의 자를 낳을 양분으로 다시 태어나는 뎃승."
"치이이이이!"
"뎃챱뎃챱. 맛있는 뎃스웅."
장녀의 머리와 옷을 벗기고 잘 씹어 삼킨다. 나무아미타불!
"챠아아아! 똥마마 이거 놔 살려치벳!
"뎃챱뎃챱. 식감이 쫄깃한 뎃스웅."
차녀의 머리와 옷을 벗기고 잘 씹어 삼킨다. 나무아미타불!
"레에에엥! 이제 보존식 안 훔쳐먹는 테치! 마마랑 같이 스시 먹고 행복하게 레벳"
"뎃챱뎃챱. 엄지가 처음으로 도움이 된 뎃스웅."
삼녀였던 엄지 노예의 머리와 옷은 옛적에 벗겨져 있고, 잘 씹어 삼킨다. 나무아미타불!
"뎃챱뎃챱. 양념이 달짝지근하고 살짝 매콤한 향이 나는 게 극상의....!"
장어 초밥의 포장을 벗기고 잘 씹어 삼켰다. 나무아미타불.
기세에 맡겨 근처에 있는 것을 일제히 먹어치우기 시작한 친실장은, 순식간에 모든 자와 더불어 스시를 잃었다. 그녀가 현실을 부정하다 부정하다 결국 오밤중에 파킨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와타시는 스시를 얻어야 하는 데스! 오마에의 스시를 가지고 닌겐상에게 가는 데스!"
"데갸아아아! 벌써 탈락해서 두 줄 그인 분충은 죽는 데스!"
이외에도, 탈락한 실장이 재기의 스시를 노리고 골판지에 침입하는 약탈전이 일어나질 않나.
"이 스시는 가문의 보배인 데스....... 절대로 먹지 않는 데스으. 특별한 날에 꺼내서 먹는 데스으."
어차피 내일이면 쉬어서 점점 썩어들어갈 스시를 보존식 사이에 아주 고이고이 쟁여두는 근면한 실장석이 나오지를 않나.
"마마는 죽는 테치!"
"데갸아아아!"
스시를 감춰둔 마마를 녹슨 못으로 찔러 죽이고 스시를 양 볼 가득히 베어물고 당장 내일부터 어떻게 살려고 하는지 궁금한 자실장 따위도 나오는 등, 아무도 모르지만 착실히 공원 실장석 개체수가 줄어간다.
익일.
"음? 저건......."
실장석 하나가 터덜터덜 공원 관리실로 향해온다. 스시를 가지고 온 놈이 있는 건가. 놀라운걸. 그 놈들은 이제 이 공원 관리실 한켠에 마련된 작은 수조에서 며칠 길러지게 된다. 구제가 끝날 때까지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새끼들과 함께 세 끼를 지급한다. 그 후 이른바분충들이 소멸한 공원에 전부 되돌려보낸다.
공원 관리인인 내가 애호 성향을 가지고 있어도, 애호파가 키보드를 들고 날뛰는 세상이라고 해도, 현실에서 투분, 악취 등의 피해가 미치면 일개 아마추어가 아니라 구청이 프로를 고용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몰살은 정해져 있다.
그나마 이 보호 조치가 취해지는 것이 애호파의 공로라면 공로겠다. 약품과 격벽과 인력을 동원해 온통 쓸어버리는 게 편하지만,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놈들은 살려둔다. 그 일환이 바로 이 사육실장 테스트다. 다시 공원에 되돌려준다는 사실에 실장석들이 격분해 흔히들 말하는 '분충화'가 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걸 또 보기 싫다고 죽이면 학대파랑 다를 게 뭔가. 게다가 죽이면 고용계약 위반이다. 나는 그 실장석들이 뭐라 하든 제대로 살려서 공원에 되돌려준다. 저 성체의 자들도 전부 책임지고.
너희들은 이 공원의 수목이 너희들의 식량이 될 만한 것들을 열매로 맺는 것만 심어져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관리인을 공원 입구 두 군데에 한 명씩 두고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는 있는지. 아마 모르겠지. 이 공원은 구청이 관리하는 자산이다. 너희들 역시 그 자산의 일부이며, 인간이 키우는 실장석을 사육실장이라고 칭한다는 정의에 따르면, 너희들은 너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사육실장이 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사육실장이 되어 보겠다고 아등바등 발버둥치는 꼴이 정말로 사랑스럽다.
"안녕, 실장석아."
지금 찾아온 실장석은 내 눈앞에 나오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인사인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고 두건에 넣어 둔 스시를 고개를 숙여 꺼낸 것뿐이다. 영업용 미소를 지은 나는 합격 축하의 한 마디를 건네려다, 문득 이상한 걸 발견했다.
"어, 너는 두건에 마크가 없네?"
"마크는 뭐인 데스? 와타시는 숲을 지나다가 이걸 발견해서 가지고 온 것뿐인 데스. 인간상의 것이 아닌 데스? 포장도 제대로 있는 데스. '음식물 쓰레기'가 아닌 것 같은 데스."
"아, 그렇구나. 확실히 여기서 분실물도 관리하지......."
놀랐다. 이 실장석은 어제 사육실장할 녀석 모이라고 했을 때 모이지 않은 실장인 모양이다. 모종의 이유로 스시만 남기고 실각한 일가가 있었는지 이 녀석은 어쩌다 멀쩡한 스시를 발견했던 모양이다. 그걸 자기가 꿀꺽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겠지만, 성실하게 여기로 찾아주러 온 게 아닌가.
"스시는 귀한 데스. 이걸 잃어버린 인간씨는 지금쯤 아주 슬퍼하고 있을 게 분명한 데스."
나는 애호파다. 있는 그대로의 실장석을 사랑한다. 자칭 애호파라는 놈들은 그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훈육이니 뭐니 하면서 인성이 개조된 실장석만을 귀여워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자들에게 분충 딱지를 붙인다. 안 되지. 안 될 말이다. 그런 건 사랑이 아니다. 그들도 내심 그것을 알고 있기에, 브리더의 감정 후 처음붙터 훈육이 필요없이 인간의 가치관에 들어맞는다고 판정된 개체는 놀랄 정도의 값이 붙는다.
이런 보물을 볼 수 있기에, 나는 이 일을 시작했다. 나는 성체실장 앞에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보고 언제나처럼 성실하게 말을 건넸다.
"너, 사육실장이 되어보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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