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물 때면 차녀는 늘 집안 한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붉은 해가 던지는 노을빛 석양이 차녀의 낡은 골판지 안을 드리울 때면 마치 어떤 신호를 받은 것처럼 차녀는 쪼르르 구석탱이로 달려갔다. 문을 등진 채 잠시 벽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발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온 테스. 이모우토챠..”
그러나 차녀는 대꾸를 하지 않는다. 아니, 쳐다보기도 싫다는 듯이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여전히 누런 벽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밥인 테스.”
마지못하다는 듯이 차녀는 몸을 일으켰다.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꼬르륵하며 분대에서 먹이를 달라고 요동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차녀는 장녀 언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입구로 쓰고 있는 한쪽으로 뻥 뚫린 골판지의 부분을 등지고 선 장녀의 모습은 여전히 볼품없었다.
듬성듬성 얼마 남지 않은 앞머리와 한쪽밖에 없는 뒷머리, 찢기고 헤져서 먼지투성이인 옷과 한쪽 밖에 없는 신발. 중실장치고는 굉장히 볼품없는 행색의 장녀 언니는 옷차림을 제외하고 단순히 얼굴만 봤을 때에도 실장석 기준으로는 못생긴 측에 속했다.
못생긴 장녀의 행색을 또 보자, 토라진 표정의 차녀는 오른손으로 장녀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가리켰다. 대화는 그쯤 하고 어서 밥이나 달라는 듯.
장녀 역시 이러한 취급에 익숙하다는 듯이 아무 말 없이 비닐봉지에 든 것을 바닥에 쏟았다. 오렌지 껍질 세 개와 반쯤은 모래가 섞인 삼각 김밥 찌꺼기.
중실장인데다 뒷머리가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자신으로서는 공원 여기저기에 보이는 성체 들실장들의 눈치를 피해 먹이를 제대로 모으는 것도 다소 힘에 부쳤다.
“테챱테챱...테챱테챱.. 테치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동생 차녀는 말라비틀어진 오렌지 껍질이 맛없다는 듯 억지로 입에 쑤셔 넣고 있었다. 어쨌든 배는 고팠기 때문이다.
장녀는 밥을 먹는 것도 잊은 채, 우두커니 앉아서 식사에 열중한 차녀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런 장녀의 시선을 차녀도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 언니와 눈이 마주치기는 싫었는지, 오히려 차녀는 마치 먹이를 먹느라 정신이 팔려 있다는 듯이 입을 하염없이 오물거리며 고개를 더욱 음식 쪽으로 숙여버렸다.
“맛없는 테치.”
쓰레기통의 역한 냄새가 뒤섞인 물기 없는 오렌지 껍질의 씁쓸한 식감은 아직 조금이나마 껍질에 달라붙어 있는 오렌지 과육의 상큼하고 달콤한 냄새마저도 지울 만큼 차녀의 입에 맞지 않았다. 제 언니가 얼마나 고생을 하며 오렌지 껍질을 모았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차녀는 손에 꼭 쥐고 있던 오렌지 껍질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채운 배를 쓰다듬으며 다시 구석 한 곳으로 가서 장녀를 등지고 드러누웠다.
그러나 한참 먹을 때여서 그런지, 차녀가 한 입 베어 물고 내던진 오렌지 껍질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그것이었다. 다른 2개는 이미 차녀의 분대 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차녀가 드러눕는 것을 확인한 장녀는 말없이 저 멀리 날아간 오렌지껍질을 주워왔다. 그리고 모래 섞인 삼각 김밥 잔해 옆에 앉았다. 그제야 장녀는 자신의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마마가 살아있을 때는 이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좀 더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차녀는 자신이 태어난 첫날에 마마의 밀크와 같이 먹었던, 새하얗고 부드러우면서 기다란 과일의 달콤한 맛을 잊지 못했다.
마마가 아직 계셨을 때에는 이처럼 고생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장녀가 자신의 머리칼을 잃어버렸던 그날 이후에도, 마마는 장녀를 독라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극심히 하나 남은 장녀를 보살펴주었다. 마치 잃어버린 동생들의 몫의 사랑도 모두 장녀에게 쏟는 듯이. 심지어 새로 어여쁜 동생이 태어난 뒤에도 못생긴 장녀를 버리지 않았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골판지 안에서 장녀와 차녀는 머릿속으로 그리운 그 존재를 떠올렸다.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그 성체실장을.
‘마마...’
갓 태어난 차녀를 조심스럽게 핥아 몸의 점막을 벗겨주던 마마는 차녀의 게슴츠레하게 뜬 두 눈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점막이 전부 사라진 후 자신이 자실장임을 증명하듯 차녀가 팔다리를 마구 휘젓자, 친실장은 차녀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두 팔로 높이높이를 해주었다. 자신보다 훨씬 큰 마마의 머리 위에서 화장실바닥을 바라보자 차녀는 무섭고도 즐거운 나머지 빵콘하여 친실장의 머리 위에 운치를 조금 흘렸다.
그러나 친실장은 그 운치마저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방실방실 웃으며 잠시 동안 차녀와 놀아주었다.
차녀와 함께 태어난 자매라고는 자신과 동생 구더기 세 마리.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마는 화장실을 나가기 직전에 구더기 동생 세 마리를 집어, 잽싸게 입에 넣고 와그작와그작 씹어 삼켰다. 차녀는 순간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마마가 자신을 가슴팍에 푹 감싸 안자 마마의 따스한 품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친실장의 젖을 찾아 더듬거렸다.
마마의 따스한 품을 느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녀는 친실장에 의해 바닥으로 내려왔다.
“여기가 마마가 살고 있는 하우스인 데스우.”
이번에 낳은 자는 오직 차녀뿐. 언니나 동생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차녀가 집으로 들어서자, 골판지 안에 앞머리가 뽑혀 몇 가닥 남아있지 않고, 뒷머리가 하나밖에 없는 이제 거의 중실장 크기에 가까운 자실장이 하나 있었다.
친실장은 차녀의 눈앞에 있는, 걸레짝 같은 옷을 입은 못생긴 자실장을 장녀라고 소개했다. 차녀는 자신이 집안의 ‘차녀’이며, 자신보다 먼저 마마에게서 태어난 언니가 있다는 사실도 같이 알게 되었다.
차녀의 등을 살짝 툭 치며, 친실장이 언니와 인사하라고 차녀에게 말했다.
‘저런 독라에 가까운 못생긴 녀석 따위와 인사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차녀였으나, 사이좋은 자매의 인사를 기대하며 자신을 향해 빙그레 미소짓는 자애로운 친실장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마마가 자신 때문에 슬퍼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마지못해 차녀는 자신보다 훨씬 크지만 꾀죄죄한 언니 앞으로 두서 발짝 다가가 잠깐 손을 올려 머뭇거리며 인사를 했다. 하지만 이내 뒤돌아 마마의 품으로 쪼르르르 안겼다. 장녀 언니가 자신을 향해 살짝 웃어봤다는 사실도 모른 채.
실장석은 외양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이는 위석에 각인된 본능 탓으로써, 다른 생물들과 달리 항상 ‘미용’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아름다움’은 실장석의 허영심을 채울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생존에 불리한 머리카락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도 이러한 것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사육실장들이 끊임없이 예쁜 옷이나 치장거리를 주인에게 요구하거나 들실장들이 사육실장을 습격하는 이유도, 반대로 독라나 이에 가까운 개체를 무시하고 비웃는 것도 상기한 본능에 따른 행동이다. 높은 허영심은 곧 상대방에 대한 우월감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특별히 높은 지위에 서서 다른 개체들을 내려다보기 좋아하는 실장석이 ‘세레브’를 갈망하는 데에는 이러한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차녀 역시 그저 자신의 위석에 각인된 본능에 따라, 장녀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자신과 달리, 여러 부분이 찢어서져 맨 살이 보이는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데다 뒷머리만 남은 이 분충은 확실히 노예라 불리는 독라에 인접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큰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소심한 장녀는 차녀가 대놓고 무시하거나 비웃어도 딱히 다른 말이나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마마가 없을 때면 차녀는 장녀를 언니 취급도 하지 않았고, 아예 말조차 걸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차녀는 마마를 슬프게 하는 것은 싫었기에, 친실장이 집에 돌아온 후인 저녁만큼은 그럭저럭 최소한 장녀에게 시비를 걸지는 않으려 노력했다. 해질녘에 돌아온 친실장은 장녀와 차녀를 모두 보배라고 말해주며 자신이 힘들게 구해온 먹이들을 아낌없이 둘에게 먹여주었다.
장녀가 ‘테에아’하고 벌린 입에 땅에 떨어진 것을 주어온 떡꼬치 한 조각을 조금 잘라서 입에 쏘옥 집어넣어주는 친실장을 보면서, 차녀는 이에 질세라 자신도 소리를 ‘테에아아아!’하면서 크게 내며 입을 찢어져라 벌렸다. 친실장은 차녀의 이런 행동도 귀엽다는 듯이 데프프픗 웃으며 이내 차녀에게도 남은 한 조각을 입에 쏘옥 집어넣었다.
우물우물 입을 놀리며 행복한 듯이 마마가 구해온 음식을 음미하던 차녀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마마는 추한 언니를 예쁜 자신과 동일하게 애지중지 여길까? 뒷머리만 떼버리면 머리카락이 아예 없어지는 저 독라 같은 장녀가 자신에게는 도저히 예쁘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친실장은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는 자라는 듯이 사랑스럽게 대하는 것일까?
모성애라는 것을 아직 모르는 어린 차녀는 도무지 친실장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잠에 든 장녀와 달리, 아직 어려 마마의 젖을 좀 더 먹어야 했던 차녀는 문득 친실장의 젖을 빨다가 아까 든 생각이 다시 나서 사랑하는 마마에게 물어보았다.
“마마.”
“왜인 데스? 사랑하는 와타시의 차녀챠?”
“마마는 왜 장녀 오네챠를 좋아하는 테치?”
“그게 무슨 소리인 데스?”
“장녀 오네챠는... 하나도 세레브하지 않은 테치. 추한 테치.”
직설적인 차녀의 발언에 다소 놀랐지만, 아직 어린 자가 생각이 미진한 탓이려니 생각하고 친실장은 상냥하게 차녀를 달랬다.
“가족에게 그런 말은 다메 데스, 차녀.”
“테에...”
“저 자는 마마가 처음 낳은 자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 데스.”
친실장은 부드러우면서도 슬픈 목소리로 장녀 언니의 사연을 차녀에게 털어놓았다.
장녀는 원래 친실장이 차녀 이전에 낳았던 자들 4마리 중에서 삼녀였다고 한다. 지금의 차녀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친실장의 슬하에서 뛰놀던 이 자들은 상냥한 마마의 비호 아래에서 무럭무럭 커갔다고 했다.
“그러나 장녀를 제외한 자들은 죽어버린 데스..”
친실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먹이를 수집한 후 골판지에 돌아온 친실장의 시야에 보인 것은 낯선 성체 실장이었다.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성체 실장의 손아귀에는 지금의 장녀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성체의 발밑에는 자실장의 시체 조각들이 끔찍하게도 붉은 피 웅덩이 속에 널려 있었다. 그리고 손 안의 자는 살기 위해 발악하듯 울부짖고 있었다.
‘그만하는 테챠아아아! 독라는 싫은 테챠아아아!’
친실장은 대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자신의 골판지 하우스가 습격당한 것이다.
‘데쟈아아아아아!’
장녀를 내팽개치고 달려든 성체 실장과의 혈투 끝에 친실장은 간신히 침입자를 내쫓아냈다. 하지만 손실은 너무나 컸다. 세 마리 자들은 이미 침입자의 뱃속에 들어가 버렸고, 하나 남은 자 역시 옷 여기저기가 찢긴데다 머리카락이라고는 왼쪽 뒷머리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차녀가 태어나기 불과 2주 전의 일이었다.
눈물지으며 자신의 자들의 이야기를 해주던 친실장은 차녀가 젖에 열중하느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품 안의 자를 데리고 골판지 밖을 나섰다.
“차녀챠, 저길 보는 데스.”
8월의 무더운 밤이었지만, 어둑한 밤하늘에 드문드문 박힌 새하얀 별들은 두 실장 모녀의 가슴을 맑게 씻겨주는 듯이 아름다웠다. 차녀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테에에...! 정말정말 예쁜 테치이!”
“저건 별이라는 것 데스.”
“정말 예쁜 테치! 마마...! 내려주는 테치! 내려주는 테치!”
차녀를 품에서 내려준 후, 친실장은 높은 밤하늘 위에 나란히 떠있는 세 개의 별을 가리켰다.
“아마 저것은 차녀챠의 죽어버린 오네챠들의 별인 데스.”
실장석들은 죽은 뒤에 그들의 위석이 밤하늘에 박혀 밝게 빛나는 별이 된다. 해님이 저물고 나면, 죽어버린 자들이 마마를 향해 웃는 것을 마마는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차녀는 신비로웠다. 하지만 이내 수긍했다. 마마가 낳았던 오네챠들이라면 반드시 아름다운 별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마는 정말로 아름다우니까. 기다랗고 바람결에 살랑살랑거리는 매끈한 밤색 머리칼과 깔끔한 옷, 포동포동한 하얀 피부가 별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정말 예쁘니까.
마마는 자상하다. 마마는 사랑스럽다. 그리고 자신의 마마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자신도 무럭무럭 자라서 언젠가 마마같은 성체실장이 되고 싶다. 차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제 친실장을 향해 방실방실 웃으며 여름밤의 풀벌레 소리와 쏟아지는 별들의 운치를 즐겼다.
다음 날 장녀 언니는 어엿한 중실장이 되었다. 친실장은 매우 기뻐했다. 차녀 역시 조금 있으면 못생긴 장녀 언니가 독립하기 때문에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므로, 기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집안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 날 저녁부터 친실장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장녀와 차녀가 배를 쫄쫄 굶으며 이틀이나 더 기다려봤지만, 마마는 왠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장녀가 골판지 밖으로 나서서 찾아보기로 했다. 차녀는 여전히 장녀가 미덥지 못했지만, 그래도 현재 집안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었기 때문에 조금 신경이 쓰였다.
한 시간, 또 한 시간.
장녀 언니는 돌아오지 않자, 차녀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공놀이를 해봐도 무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마마는 여전히 오지 않고, 그나마 하나 있는 언니마저 늦어지자 차녀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히끅..히끅...테에에...테에에엥..히끅..”
빨리 마마가 왔으면, 오네챠라도 왔으면 싶었다. 공을 내팽겨치고 안절부절못하며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차녀는 이제는 캄캄하고 좁은 골판지 하우스조차 무섭다고 느껴졌다.
매우 더웠지만 차녀는 그래도 골판지 밖을 나섰다. 아무래도 자신이 마중을 나가야겠다고, 이렇게 자신이 마중을 나왔으니 마마는 그 반독라 오네챠와 함께 곧 오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면서 골판지 하우스의 입구 앞에서 장녀가 넘어갔던 그 수풀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무서우리만큼 골판지 주변은 고요했다.
다급해진 차녀는 골판지 현관 앞을 이리저리 쏘다니기 시작했다.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가만히 있지를 못하였다. 무서움을 잊으려는 듯이, 골판지 하우스를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테에에에! 테챠아아아아!”
수풀을 보면서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바닥을 미처 보지 못하였다. 운치구덩이 경사면에 미끄러지고 만 것이다.
다정한 친실장이 운치구덩이를 만들 때 자들이 빠질 것을 걱정하여 그다지 깊지 않게 했던 까닭에 차녀는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 다만, 운치가 차녀의 키 높이까지 쌓여있던 것이 문제였다.
빠지지 않게 온 몸을 허우적대면서 차녀는 살기 위해 마구 몸부림쳤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행위는 전신의 힘을 더 빨리 소모하게하기 때문에 차녀의 죽음을 더욱 앞당길 뿐이었다.
차녀는 운치구덩이를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가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그와 더불어 자신을 발견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여기에 곧 빠져 죽어버릴 것임도 알아챘다. 패닉에 빠진 차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 뿐이었다.
“테챠아아아아아! 누가 좀 도와주는 테챠아아아아! 운치 구덩이에서 죽기는 싫은 테챠아아아! 테에에엡..! 테게에에에엙!”
“저런 테스!”
목구멍에 고약한 운치가 넘어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뱉고 있던 도중, 익숙한 손길이 자신의 몸뚱아리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제 옷이 더러워지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떨고 있는 차녀를 품안에 포근히 안아주었다. 차녀는 이렇게 따스한 품을 예전에도 한번 느꼈던 적이 있었다.
‘마마 테치..’
자신을 안은 실장석의 품을 꼬옥 달라붙었다. 토닥토닥 두드리기도 했다. 왜 이렇게 늦었냐고. 마마가 없는 사이에 별님이 두 번이나 왔다 갔다고. 너무 무서웠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차녀는 자신을 안아준 실장석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상냥하고 예쁜 마마의 얼굴은 없었다. 볼품없이 앞머리가 쥐어뜯기고 여기저기 옷이 찢긴데다 흙더미를 뒤집어 써 더러운 한 중실장의 얼굴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모우토챠.. 위험할 뻔했던 테스.”
“내려놔 테치! 어서 내려놔라 테치!”
마마가 아니었다는 실망감 때문이었을까? 차녀는 온 힘을 다해 장녀의 가슴을 퍽퍽 때리기 시작했다. 장녀는 갑자기 달라진 차녀의 태도에 화들짝 놀라서 차녀를 살포시 땅에 내려놓았다.
“어서 씻어야 하는 테스. 그러니 물을...”
“대답해 테치!”
차녀는 인상을 구기며 장녀를 향해 악을 쓰기 시작했다. 친실장처럼 따스했던 그 품이 장녀의 품 안이었다니, 인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장녀는 마마를 찾아온다고 했지만, 지금 장녀 곁에는 마마가 없었다. 마마가 없다니, 장녀 오네챠 뿐이라니. 저런 못생긴 중실장 말고 예쁜 마마를 보고 싶었다.
“어째서 오마에 따위가! 못생긴 장녀 오마에 따위가 있는 테치! 마마는 어디에 있는 테치! 어서 마마를 찾아오는 테치!”
“...차녀챠...히끅..”
“너 따위는 어찌 되도 좋다 테치! 어서 마마를 데려와 테치! 오마에 대신에 마마를 데려오는 테치! 마마는 어디에 있는 테챠아아!”
어린 자실장 동생의 발악에도 장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흘릴 뿐이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신 역시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투로 장녀는 차녀에게 슬픈 현실을 일러주었다.
“마마는... 마마는... 별이 된 테스!”
그 이후로 장녀가 친실장을 대신해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친실장이 그랬듯이, 아침 일찍 장녀는 먹이를 구하러 나선다. 차녀가 햇살에 눈이 떠질 때면 항상 장녀는 집에 없었다.
그리고 늘 해질녘에 돌아왔다. 마마의 것보다 훨씬 적은 먹이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면서,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을 나설 때보다 더 볼품없어진 행색을 이끌고.
차녀는 불만스러웠다. 마마가 있었을 때에는 더욱 맛있는 먹이를, 더 많이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못생긴 언니는 마마보다 추한 주제에 밥도 시원찮게 가져온다. 필요한 물품도 적게 가져와서 항상 생활의 곤란을 겪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지금 가장 노릇을 하고 있기에 적당히 참아주고는 있지만, 차녀는 마마의 빈자리를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피부로 와닿는 생활수준의 질적 하락이라는 것은 어린 차녀로서는 매우 짜증나는 것이었다.
“오늘도 이것뿐인 테치?”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먹이를 슬쩍 내미는 장녀의 손에서 탁 먹이를 낚아채면서 차녀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나 배는 고팠기에, 자신의 양 손으로 흙이 묻은, 떡볶이 국물 범벅인 파 한 조각을 꼭 쥐고 있었다. 먹이 자체가 모자랐기에 보존식은커녕 두 어린 실장이 먹을 양도 모자랐다. 그러나 차녀는 먹이를 요구할 때마다, 장녀는 어찌 되었든 차녀가 먹이를 달라는 대로는 그럭저럭 주고 있었다.
식사가 마치면 항상 차녀는 늘 누워있는 골판지 한 구석에 벌러덩 벽을 바라본 채로 누워버린다. 마마의 밀크가 먹고 싶었다. 비록 젖을 먹을 시기는 한참 지났지만, 친실장을 어린 나이에 잃은 상실감이 아직도 차녀로 하여금 젖을 찾게 만들었다.
어느 날 차녀는 집에 돌아온 장녀에게 마구 때를 썼다.
“마마의 밀크가 먹고 싶은 테치! 어서 밀크를 내놓는 테치!”
“...미안한 테스우. 차녀 이모우토챠. 오네챠는 아직 밀크가 나오지 않는 테스.”
“몰라 테치! 마마가 보고 싶은 테치! 마마를 돌려줘 테치! 오마에 따위는 마마와 다른 테치! 마마의 밀크를 줘라 테챠아아!”
“...히끅...히끅...”
스스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차녀는 골판지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뒤에서 장녀가 눈물짓고 있는 것 따위는 상관없었다. 어찌되었든 멀리 나갈 수는 없기에 차녀는 골판지 뒤편에 쭈그려 앉아 오늘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기로 했다.
차녀는 하루 중에서 이 순간이 가장 좋았다.
마마와의 추억을 되새김질 할 수 있는 이 순간. 하늘에 있는 별을 하나하나 세어볼 수 있는 그 순간.
그리고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마마와 만날 수 있는 이 순간.
여름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한 별을 바라보며 차녀는 그리움이 벅차오른다. 은하수 한 가운데에 있는 백조자리의 데네브라는 무미건조한 천문학적 명명 따위, 실장석으로서 알 리가 없다. 그저 저 별은 ‘마마의 별’이었다. 아니, 하늘에 올라 별이 된 ‘마마’그 자체였다.
“마마... 보고싶은 테치...”
높게 뜬 새하얗고 커다란 별의 영롱한 빛을 바라보며 차녀는 눈앞에 친실장이 아른아른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마의 밀크 맛, 마마의 할짝할짝, 마마와 함께 한 날, 그리고 마마의 따스한 품 안..
문득 차녀의 얼굴에 당혹감이 피어올랐다. 차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마마의 따스한 품을 상기하자, 며칠 전에 장녀가 운치 구덩이에 빠진 자신을 꺼내서 안아주었을 때 느꼈던 온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이럴 리 없는 테치.”
못생긴 장녀 언니 따위가 마마의 따스한 품을 가졌을 리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한 번 마마의 품 안을 떠올려봤지만, 여전히 떠오르는 것은 운치 범벅이 된 자신을 아랑곳하지 않고 꼭 안아주었던 어느 추한 중실장의 품 안의 느낌이었다.
“싫어 테치! 이게 아닌 테치!”
여태껏 항상 생각해왔었다. 지금 어쩔 수 없이 의존하고 있는 장녀 오네챠는 차녀의 기억 속에서 한층 더 아름다워지고 세레브해진, 자상한 친실장과는 모든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고. 못생기고 추한 오네챠따위, 마마를 절대 대신할 수는 없다고.
차녀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작은 조약돌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힘없이 툭 앞으로 내던졌다. 조약돌은 미약한 자실장의 힘 때문에 얼마 날지 못하고 떨어졌다.
스스로도 바보같았다. 마마를 떠올리며 자신이 싫어하는 오네챠의 품을 떠올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장녀의 품을 마마의 그것으로 착각했었던 것이 문득 차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잊어버리는 테치.”
차녀는 고개를 저었다. 못생긴 언니와 달리 아름다운 별이 된 ‘마마’를 그저 아무생각 없이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 골판지 안으로 들어갔다. 골판지 안에는 앞머리가 빠진 못생긴 얼굴에 적록의 눈물을 듬성듬성 묻힌 장녀가 바닥에 누운 채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차녀는 장녀의 얼굴을 잠깐 우두커니 보다가 자신의 자리인 골판지 한 구석으로 가서 다시 잠들었다.
며칠 후, 짧은 중실장 시기의 마지막에 다다른 장녀는 어느새 성체의 테가 점점 나기 시작했다. 몸집도 더욱 커져 차녀와 함께 있으면 마치 자매가 아닌 모녀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장녀가 성체에 가까워질수록, 차녀는 더욱 심통을 냈다. 마마와 비슷한 크기가 되어가는 장녀였지만, 외형은 기억속의 별처럼 아름다운 마마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차녀 이모우토챠, 보는 테스. 이제 오네챠도 곧 성체가 될 것 같은 테스. 기쁜 테스우!”
“...,성체가 되도 머리카락 없는 반독라인 테치.”
“....그럼 오늘도 갔다 오는 테스.”
장녀는 오늘도 집을 나섰다. 차녀는 뒷머리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장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흥 하고 콧방귀를 뀌고, 다시 자리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해질녘이 지나도 장녀는 오지 않았다. 차녀는 차츰 불안해졌다. 3일이나 마마가 오지 않았던 그때가 문득 생각났다. 그리고 마마는 별이 되어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장녀도 돌아오는 시기를 한참 넘기고 있었다. 이미 해는 저물었고, 평소처럼 어두운 흑판에 영롱한 몇 개의 별이 떠올랐다. 하지만 오늘 차녀는 별을 보러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갈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집안이 무서웠다. 하지만 차녀는 지금 두려움을 참고 견딜 수 있을 정도까지는 성장했기 때문에 칠흑같은 바깥으로 섵불리 나가지는 않았다. 밖은 위험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차녀는 필사적으로 벽을 바라보면서, 열대야의 무더위 속에서도 와들와들 떨며 간신히 어둠을 떨치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장녀는 오지 않았다. 차녀는 기다렸다. 어찌 되었든 장녀가 오는 시간은 해질녘이었기 때문이다. 늘 해질녘에 돌아왔던 장녀였기에, 그때까지는 한번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러나 차녀는 오늘도 저녁노을을 뚫고 돌아오는 장녀를 볼 수가 없었다.
“몹쓸 분충인 테치! 와타치가 아무래도 찾아보는 수밖에 없는 테치.”
차녀는 집을 나섰다.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이 직접 찾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보존식은 원래부터 없었고, 그나마 어제는 땅에 떨어진 송충이 두어 마리를 주워 먹었기에 간신히 공복의 괴로움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이마저도 없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배가 고팠다.
그러나 단순히 배가 고팠기 때문에 장녀를 찾아 나선 것은 아니었다.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차녀는 느끼고 있었다. 불안하기도 했고, 뭔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문득 친실장인지 장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품 안의 온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일단 장녀를 찾아야 했기 때문에 차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잡생각은 집어치우기로 했다. 이제 항상 장녀가 넘었던 수풀을 넘어야 한다. 벌써 해는 수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오늘도 오늘의 별이 살포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별 따위는 어찌되었든 좋았다. 지금은 그 못생긴 분충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차녀는 주먹을 꽉 지고, 용기를 내어 친실장의 품에 안겨 골판지 안으로 들어온 이래로 한 번도 넘어본 적이 없는 수풀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한발, 더 한발. 못생긴 중실장을 찾기 위해 앞을 내딛었다.
아직 어렸기에 사고가 미진한 탓일까? 공원은 넓다고 들었지만, 어찌되었든 오늘 안에 찾아볼 작정으로 차녀는 수풀을 힘차게 해쳐나갔다. 팔과 다리가 날카로운 풀의 옆면에 한두 번 살짝 베어서 조금 아팠지만, 차녀는 참고 수풀을 벗어났다.
그리고 차녀는 자신이 생각한대로 오늘 안에 장녀를 찾아볼 수 있었다.
수풀 바로 앞에 상반신밖에 남지 않은 한 중실장이 엎드려 있었다. 두 눈은 이미 탁한 색이었고, 고양이에게 습격당했는지 남아있는 상반신 여기저기가 할퀴어져있었다.
그 중실장의 앞머리는 뽑혀있어 몇가닥 남지 않은 상태였다. 뒷머리는 왼쪽 하나뿐이었다.
“테에....테에에...테에에...”
차녀는 장녀의 시체를 보자마자 마구 뒷걸음질 쳤다. 안 그래도 흉한 장녀가 피범벅이 되니 역겨울 정도로 더러워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장녀를 처참한 몰골로 만든 공원 그 자체가 무서워졌다.
황급히 뛰어가느라 수풀에 몸 여기저기가 살짝 베이는 것도 모른 채 차녀는 골판지를 향해 달렸다. 오늘따라 환한 달빛에 자신의 거처가 저 멀리에 또렷이 보였다. 차녀는 이제 유일하게 남은 자신의 의지할 곳을 향해 달렸다.
“테에에엔! 테챠아아아!”
바닥을 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앞의 골판지를 향해 달리던 차녀는 발밑에 있는 돌멩이를 보지 못하였다. 그대로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돌멩이가 있던 곳 근처에는 경사로가 있는 운치구덩이가 있었다. 발치의 돌멩이 때문에 균형을 잃고 왼쪽 앞으로 고꾸라진 차녀는 그대로 경사로를 따라 운치구덩이 안으로 굴러버렸다.
“테에에...테에에...테헤엑...”
운치구덩이 안의 운치는 성장한 차녀에게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자신의 키만큼 왔었던 쌓인 운치가 지금은 차녀의 가슴팍 언저리까지밖에 올라오지 않았다.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이전과 달리, 차녀는 충분히 쉽게 운치구덩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경사로를 따라 운치구덩이를 오르는 차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위석 깊은 곳에서 참아왔던 슬픔이 북받쳐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차녀는 터져 나오려 하는 울음을 입안으로 울컥울컥 삼켰다. 그저 눈물을 조금 흩뿌리면서 경사로를 기어오를 뿐이었다.
차녀는 운치범벅인 몸을 이끌고 간신히 운치구덩이를 빠져나왔다. 그런 차녀의 눈앞에 맨 처음 비친 것은 마마가 넘은 장녀 언니가 넘은 이후로 돌아오지 못했던 우거진 수풀이었다.
달빛을 받아 살랑살랑 은빛으로 넘실대며 바람에 따라 몸을 흔드는 수풀을 보자, 삼켜왔던 차녀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테에에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에엥”
미웠다.
자신에게서 마마를 뺏어간 저 수풀이. 마마를 돌아오지 않게 한 저 수풀 너머의 세상이.
“왜 와타시의 상냥한 마마를 죽인 테에엔!”
눈에서 적록의 눈물을 흘리면서 차녀는 근처에 있는 자갈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수풀을 향해 두세 걸음 다가가서 있는 힘껏 던져버렸다.
‘툭...’
예전보다는 훨씬 멀리 나갔다. 수풀 바로 앞에 자갈이 떨어질 만큼.
차녀는 이를 악물고 제 몸에 묻어있는 운치를 쓸어 담아 양 손으로 꾹꾹 뭉쳐댔다.
“왜 와타시의 장녀 오네챠를 죽인 테에엔!”
이번에는 더 가까이 수풀 쪽으로 다가가서 최대한의 힘을 주어 수풀을 향해 운치를 던졌다.
운치는 수풀 가장 바깥에 있는 긴 잡초에 맞아서 축 흘러내렸다.
그러나 온 힘을 다해 던진 나머지 차녀 역시 균형감각을 잃고 앞으로 꽈당 고꾸라져버렸다.
“테게엑... 테에에에엥”
‘저런 테스!’
문득 장녀오네챠가 자신을 걱정하는 소리가 차녀의 두 귀에 들렸다.
차녀는 화들짝 놀라 황급히 시선을 위로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곳에 장녀는 없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여름밤의 별들이 칠흑 같은 하늘을 수놓고 있을 뿐이었다.
문득 가장 환한 ‘마마의 별’이 차녀의 시선에 들어왔다. 자신의 장녀가 어떤 꼴이 되었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마마의 별은 오늘도 환하게 차녀를 향해 새하얀 빛을 비추며 웃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마마가 말했던, 자신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세 자실장 언니의 별이 마마와 함께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차녀는 나란히 있는 세 개의 별보다 한참 밑에 있는, 그래도 그 세 개의 별보다는 환한 별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순간 차녀는 이 별이 혹시 장녀오네챠의 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지긋이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장녀오네챠는 마마처럼 아름답게 밤하늘에서 빛을 발하는 ‘별’이 되어서는 안 되며, 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차녀의 두 눈에서는 서로 다른 색깔의 두 눈물이 밤의 어두운 흙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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