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우리집 사육실장 연두가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감추고 있다.
"다녀왔어."
일부러 문소리를 크게 내며 현관에서부터 귀가 인사를 하자 작은 발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현관 안쪽 문의 불투명 유리 저 편에서 자그마한 녹색 그림자가 후다닥 거실 안쪽으로
향했다.
나는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고 현관의 안쪽 문을 열었다.
그제서야 연두가 맨발로 총총 뛰어온다.
[다녀오신 데스우]
"뭐하고 있었어?"
[우, 운치를 하고 있었던 데스요]
거짓말이다. 아까 넌 작은방에서 나왔다.
아마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황급히 거실 한구석의 실장용 변기에 운치를 해두긴 했겠지
만.
"어 그래? 혹시 속 안 좋으면 말해라."
[걱정해주셔서 감사한 데스.]
하지만 일단 넘어가준다.
연두의 입가엔 어색한 미소가 걸려있다.
아마 지금의 내 표정도 연두와 몹시 닮아있겠지.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나는 속아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두 너, 약속을 어기고 자를 낳았구나.
그렇지?
-당신이 잠든 사이에-
내가 귀가할 때마다 작은방에서 연두가 뛰어나오기 시작한 건 저번 주 월요일부터였다.
그날도 안쪽 문의 불투명 유리 뒤에서 허둥지둥 뛰어가던 뒷모습을 기억한다.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뭘 하고 있었는지도 묻지 않았다.
이혼하기 전 딸아이가 쓰던 방은 지금은 반쯤 창고가 된지 오래였고 안 쓰는 유아용품이나 장
난감, 아내가 쓰던 잡다한 물건들이 제법 있었으니까 그런 걸 뒤적이고 있었겠지 싶었다.
뭔가 수상한 점을 눈치챈 것은 지난 일요일, 즉 어제였다.
연두는 내가 하루종일 집에 있자 뭔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데에에... 주인님, 오늘은 안 나가시는 데스우?]
"일요일엔 일 안 한다니까. 나도 좀 쉬자."
[그, 그러셨던 데스. 죄송한 데스.]
"왜? 같이 공원 가서 카트 한바퀴 밀어줄까?"
[뎃! 아닌 데스. 괜찮은 데스.]
연두는 거실 바닥에서 자동차 놀이를 하면서 나를 흘끔흘끔 쳐다봤고 소파 위에 앉아 실장용
애니를 보면서도 벽걸이 티비의 유광 테두리에 비치는 나를 불안한 눈으로 훔쳐봤다.
그리고 그 시선은 아주 가끔씩, 닫혀 있는 작은방의 문을 향했다.
이쯤 되면 아무리 둔한 사육주라도 알 수 있다.
작은방에 뭔가 있으며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아한다는 걸.
그제서야 요 며칠간 이상했던 점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연두는 우리 집 문지방을 넘던 자실장 시절에 이미 훈육이 완료된 상태였기에 내가 실장채를
쥐게 할만한 짓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대단한 어리광쟁이였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틈만 나면 놀자고 보채는 그 모습이 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
기에 난 어리광에 한해서는 연두를 혼내지 않았다.
독립심이 높아지는 성체실장이 되고 나서부터 같이 놀아달라고 보채는 일은 줄었지만 내가 침
실에 들어가 있으면 따라들어와서 혼자 어설프게 뜨개질 세트를 만지거나 크레용을 쥐고 딸아
이가 쓰던 글씨연습장에 삐뚤빼뚤한 글씨를 따라그렸다.
내가 시야에 없으면 불안했던 것이다.
그런 녀석이 5일 동안 한 번도 내게 놀이를 보채지 않았다.
잘 시간이 되자 실장용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일 없이 거실 한 구석의 목제 실장 하우스
에 들어가서 문을 꼭 닫았다.
내가 슬슬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우면 몇 분 후 작은 맨발이 장판에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들
렸다.
이걸 5일씩이나 놓치고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밖에 없었다.
연두가 나 몰래 자를 낳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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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내가 연두를 기르며 실장채를 쥘 일이 거의 없었다고는 했지만, 전혀 없던 건 아니었다.
연두 녀석은 올해 봄에 뒷마당 쪽 베란다로 날려들어온 꽃가루를 눈에 찍어발라 임신한 적이
있었다.
깜빡 잊고 바깥 창문 걸쇠를 잠가두지 않은 탓이었다.
초록색으로 변한 눈을 들키지 않으려고 연두는 하우스 안에 틀어박혀 저장해둔 비상식을 먹으
며 이틀간 나를 피했다.
꽤 철저하게 숨길 생각이었는지 운치는 내가 잠든 사이에 몰래 해결했고 내가 집 안에서 눈을
뜨고 있을 동안은 태교의 노래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속아넘어갈 내가 아니었다.
연두가 임신하고 셋째날 밤, 나는 운치를 하러 나온 연두의 목걸이를 붙잡아 욕실로 향했다.
팬티를 벗긴 뒤, 눈을 가리며 저항하는 연두의 팔을 실장채로 때려 부러뜨리고 양쪽 눈꺼풀을
벌려서 빨간 식용색소를 넣었다.
몸부림치는 연두의 총배설구에서는 운치와 함께 다섯 마리의 엄지실장이 나왔다.
강제출산과 골절의 고통으로 축 늘어진 녀석 앞에서 나는 다섯 마리의 엄지를 집어들어 세면
대에 넣었다.
온수를 약하게 틀어 점막을 떼낸 뒤 연두에게 잘 보이도록 한 마리를 집어들어 내 손 안에 쥐
었다.
[레에! 마마 레치!]
내 손 안에서 연두를 내려다보며 팔을 흔드는 엄지 위로 다른 한 손을 덮어 서서히 감쌌다.
[레츄아앗! 아파요 레츄! 살려주세요 레츄! 마마앗!]
[데에엣! 주인님, 엄지를 살려주시는 데스! 살려주시는 데스!]
연두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부러진 팔을 힘겹게 치켜들어 싹싹 빌었다.
"안 돼. 약속이었잖아."
한 마리 한 마리 으깬 고깃덩이로 변해서 변기에 빠질 때마다 연두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오로로롱! 오로로롱!]
"이번엔 이걸로 넘어가지만 다음 번엔 널 공원에 버릴 거야."
괴로운 마음을 눌러삼키며 마지막 엄지를 으깬 뒤 변기물을 내리자 연두가 가슴을 누르며 엎
어졌다.
위석에 금이 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괴로워했기에 나는 연두에게 실장구급키트에 있던
위석활성제를 주사하고 진통제를 먹여 재운 다음 출근했다.
미움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귀가한 나를 맞이한 건 평소와 다름없는 연두였다.
연두와 나는 서로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했다.
오히려 그 일 이후로 연두의 어리광이 좀 늘어나기까지 했다.
자를 갖지 못하는 허전함을 나와의 유대로 달래려 했던 걸까.
그런데 왜 이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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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나는 연두의 저녁밥에 지효성 네무리를 두 알 갈아서 섞어넣었다.
네무리의 약효가 전신에 돌기 시작하자 연두의 눈이 끔뻑끔뻑 감겼다.
갑자기 쏟아지는 졸음에 눈을 비비며 저항하는 연두에게 조용히 웃으며 말을 걸었다.
"연두야."
[흐아아암... 네, 데스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그제서야 내 웃음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챘는지 연두가 감기던 적록색 눈을 번쩍 뜨며 놀
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쓰러지듯 잠들었다.
"일어났을 땐 공원일 거야, 연두야."
연두가 귀를 꼬집어도 반응이 없을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한쪽 귀에 링갈
의 이어폰을 끼고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안 쓰는 침대와 책상 위부터 벽장 안쪽과 방바닥까지 수북하게 쌓인 골판지 상자와 리빙박스.
여기 어딘가에 연두의 자가 숨어있을 터였다.
제일 위쪽의 박스부터 하나하나 내려놓고 점검하기 시작했다.
---
수색 한 시간째.
책상 위에 있던 상자 여섯 개와 침대 위에 있던 상자 여덟 개를 싹싹 뒤진 나는 이마에 흐르
는 땀을 닦으며 딸이 쓰던 침대 위에 적당히 드러누웠다.
아직도 찾을 짐은 썩어나게 많은데 아무 것도 나온 게 없었다.
[프니후-]
...라고 생각한 순간 들려온 희미한 울음소리.
인간의 청력이었으면 못 들었겠지만 실장석의 울음소리만 잡아내 증폭시키는 링갈 덕분에 들
을 수 있었다.
[막내 우지챠, 소리내면 들키는 레치!] [오네챠 목소리가 우지챠보다 큰 레츄!]
다만 소리가 난 방향을 알 수 없었다. 다시 눈에 힘을 주고 방 구석구석을 훑어보자 얇은 커
튼 뒤에서 작은 녹색 그림자가 비쳐보였다.
커튼을 옆으로 걷어내자 그곳엔 몸을 잔뜩 움츠린 엄지 실장 두 마리, 그리고 각각의 품에 안
겨 몸을 공처럼 말고 있는 구더기 실장이 두 마리 있었다.
그럼 그렇지.
자를 임신한 상태면 내게 들키니까 내가 없는 사이에 엄지와 구더기를 강제 출산하고 숨겨둔
거였나. 아마 자기 피를 썼겠지. 실장석의 회복력을 생각하면 베인 상처는 내버려둬도 세 시
간이면 감쪽같이 낫는다.
게다가 몸집이 작으니 숨기기도 용이했을 터.
내가 있을 동안 구더기의 관리는 엄지에게 맡겼을 거다.
점막과 운치는 내가 욕실에 설치해준 실장용 샤워부스에서 떼냈으려나.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가만히 있자 엄지 두 마리가 그제서야 도망치기 위해 침대 밑으로
달렸다.
어딜.
한 손에 엄지 한 마리씩, 덤으로 엄지가 껴안고 있는 구더기까지 네 마리를 순식간에 잡아올
렸다.
[레치이잇!] [레챠아앗!]
내 손가락을 향해 작은 이빨을 세우는 두 마리의 엄지 실장을 책상 위로 굴리자 구더기 두 마
리가 엄지들의 품에서 빠져나가 뒹굴었다.
[이런 프니프니는 싫어 레후!] [눈이 빙글빙글 레후!]
정신을 차린 엄지실장 두 마리가 가랑이에서 운치를 흘리며 책 사이에 숨으려 했지만 두건을
잡아 끌어냈다.
[닝겐상, 죄송한 레치! 금방 나가는 레치! 마마에게 돌아가는 레치!] [이거 놓는 레챠앗! 마마
앗! 마마앗!]
하하, 마마 말이지.
책상 위에 방치된 구겨진 종이컵에 구더기 두 마리를 담아두고 엄지들을 아무렇게나 쥐어 거
실로 나갔다.
"그래, 마마랑 같이 나가면 되겠네."
허리를 굽혀 두 마리를 연두의 옆에 슬쩍 떨어뜨렸다.
[레챠아앗! 이 아줌마는 누구인 레챠앗!] [내보내주는 레치! 나갈 거인 레치!]
"뭐?"
예상과는 달리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는 두 마리를 낚아채서 들어올렸다.
[마마가 밖에서 기다리는 레치! 보내주는 레치!] [운치나 먹는 레챠아앗!]
허공에서 투분하려는 오른손의 엄지실장을 멀찍이 들고 그보다 침착한 편인 왼손에 들린 언니
를 향해 물었다.
"무슨 소리야. 니네 마마 여깄잖아."
[이 아줌마는 마마가 아닌 레치! 와타치타치는 공원에서 온 레치!]
잠시 얼떨떨해있자 뒤늦게 연두의 목걸이를 봤는지 엄지실장이 황급히 말을 바꾼다.
[새, 생각해보니까 마마가 맞는 레치! 그러니까 와타치타치도 사육실장인 레치네? 주인님, 와
타치타치를 내려주시는 레치!]
안됐지만 한 박자 늦었다.
더 들을 것 없이 두 마리를 싱크대 안에 던져넣었다.
[주인님 레치! 왜 이러시는 레치!] [레츄아앗! 체아앗!]
다시 작은방으로 향했다.
종이컵 안에 있던 구더기 두 마리를 책상 위에 쏟은 뒤 바로 프니프니를 했다.
[레후! 닝겐상 프니프니 기분 좋은 레후!] [오네챠들보다 좋은 레후!]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있던 구더기 두 마리가 금세 헤롱거리는 표정으로 운치를 흘렸다.
"그래그래. 혹시 이 방에 어떤 아줌마가 들어온 적 없니?"
[노란 목걸이 한 아줌마가 매일 들어온 레후~] [벽에 들어간 레후~]
벽에 들어갔다는 건 벽장을 말하는 것이렷다.
즉시 프니프니를 그만두고 벽장을 열었다.
벽장 문을 열자마자 리빙 박스 위에 놓인 조잡한 분홍색 털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털뭉치에는
가느다란 두 개의 대바늘이 꽂혀있었다.
"뜨개질...?"
집어들자 털뭉치 밑에 있던 색바랜 종잇조각이 팔랑팔랑 떨어졌다.
종이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생일선물'이라고 써 있었다.
생일.
그러고 보니 내일이 내 생일이었구나.
나도 잊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뜨거워지는 눈가를 꾹꾹 누르며 털뭉치를 조심스럽게 원위치시키고 벽장 문을 닫
았다.
---
조금 전 언니 엄지는 자기들은 공원에서 왔고 마마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나는 뒷마당으로 난 베란다로 향했다.
안쪽 미닫이문을 열고 시선을 좌에서 우로 훑자 바깥 미닫이문이 아주 살짝 열려 있었다.
딱 엄지실장이 통과할만큼.
"탁아를 당했단 말이지..."
맨발인 채로 유리문을 활짝 열어 난간을 타넘었다.
잔디 위에 발을 디디자 방치된 텃밭 쪽에서 무릎까지 오는 작은 그림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조경수를 향해 뛰어갔다.
앞질러가서 배를 걷어차니까 [데푹!]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굴러갔다.
조경수 뒤에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비닐에 덮인 허름한 골판지 상자가 있었다.
상자를 그대로 들어올려서 녹슬어가던 바비큐 그릴 위로 가져가 탈탈 털었다.
부스러진 숯과 잿더미 위로 세 마리의 자실장이 떨어졌다.
뒤늦게 내 쪽으로 달려오는 친실장을 붙잡아 마찬가지로 그릴 안에 넣고 위에 철망을 덮었다.
뒤이어 부엌과 작은방에서 들고 나온 엄지와 구더기도 철망 사이로 밀어넣었다.
억지로 밀어넣자 엄지 두 마리의 양팔이 떨어져나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두 마리 엄지의 상처에 재가 달라붙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창고에서 찾은 액상 착화제를 꺼내서 바비큐 그릴 위로 모조리 부었다.
[닝겐상, 꺼내주시는 데스! 당장 나가는 데스!] [테챠아아앗! 테쟈아아앗! 콜록, 콜록!]
"하하하..."
마른 웃음을 흘리며 가늘게 꼰 신문지에 불을 붙였다.
그냥 발견했으면 아마 약간의 사료랑 들생활에 유용한 몇가지 쓰레기를 들려서 내보냈겠지만
너희들 때문에 죄없는 연두가 내쫓길 뻔했으니 용서할 수 없다.
철망 사이로 불붙은 신문지를 떨어뜨렸다.
[안 되는 데스! 자들만이라도 살려주시는 데스! 부탁인 데스! 제발...]
그 뒷말은 불꽃에 삼켜졌다.
단백질이 타는 악취와 끓어오르는 실장변의 냄새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나는 바비큐 그릴의 뚜껑을 닫아놓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
연두는 여전히 네무리에 취해 침까지 질질 흘려가며 자고 있었다.
딱한 녀석.
하지도 않은 일로 괜한 의심을 사서 버려질 뻔했다.
연두에게 미안한 동시에 연두를 믿어주지 못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담아 자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연두가 잠시 움찔하며 다리를 내
저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이라도 꾸는 걸까.
실장 하우스로 옮기려다 말고 그대로 담요를 덮어준 뒤 거실의 불을 껐다.
내일은 잔뜩 놀아줄게, 연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