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슷...! 데슷...! 나오는 데스...!]
두 눈이 빨갛게 변한 임신 실장이 다른 성체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출산용 저수통으로 향하고 있다. 배는 크게 부풀어 올랐고, 점막과 체액이 섞인 찌꺼기가 다리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다.
[조금만 버티는 데스! 곧 도착하는 데스!]
[데헤엑, 데헤!]
저수통 앞에 도착하자, 임신 실장은 동족들에게 도움을 받아 저수통 양쪽 끄트머리에 다리를 걸치고 엉 곧이어 배에서 가벼운 통증이 일었고, 임신 실장은 그에 맞추어 힘을 주었다.
[데헤에에에엑!]
[견디는 데스! 머리가 보이는 데스!]
[힘내는 데스!]
퐁당-
점막에 싸인 첫 번째 자가 저수통의 얕은 물에 떨어졌다. 이윽고 두 번째, 세 번째의 자들도 뒤를 이어 태어났다. 하나같이 귀여운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탄생을 기뻐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친실장의 배는 좀처럼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 뒤에도 네 마리의 자들을 울컥울컥 내뱉었다.
[[[텟테레~♪]]]
[와타치를 낳아주셔서 감사한 테츄♪ 우선 와타치의 점막을 핥짝핥짝 해주시는 테치!]
[마마! 보고 싶었던 테치!]
[첫 식사로는 콘페이토를 원하는 테츄!]
태어난 것은 일곱 마리의 자실장이다. 건강 상태가 좋았던 덕에, 엄지나 구더기같은 미숙한 자는 보이지 않는다. 곁에서 응원하던 동족들이, 임신 실장에게 축하의 말을 보탰다.
[뎃스-웅! 다들 귀엽게 생긴 자인 데스!]
[데에에... 첫 출산 축하하는 데스!]
[오마에는 쉬고 있는 데스. 와타시들이 점막을 핥아주는 데스.]
[다들, 고마운 데스우...]
출산으로 인해 기력이 떨어져 당장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았지만, 임신 실장은 만면 가득 미소를 띄우고 동족들이 자신의 자들의 점막을 핥아주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자들은 점막을 핥아주는 오바상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다가도, 자신과 눈이 마주치면 방실거리며 웃었다.
아직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았지만 착한 자들일 것이 분명하다, 임신 실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여러 동족들이 거든 덕분에 점막은 시간 내에 무사히 벗겨졌다. 일곱 마리 자실장은 누가 먼저고 할 것 없이 서로 살가운 인사를 나누고는, 곧바로 임신 실장에게로 달려왔다.
[마마! 와타치가 장녀 테치! 쓰다듬어 주시는 테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테츄! 행복한 삶을 기대하는 테치!]
[와타치는 덩치가 작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테츄!]
각자의 감상을 테치테치 떠들어대는 자실장들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친실장은 말했다.
[자들, 낙원에 태어난 것을 환영하는 데스!]
확실히, 실장석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곳은 낙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의 위협이 없다. 동족식에 맛을 들인 표독스러운 동족도, 굶주린 까마귀 떼의 습격도, 학대파의 무차별한 학살 행위도 없다. 식량 문제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일생을 보내기에 턱없이 좁은 장소지만, 실장석들에게 있어서는 광활한 공터나 마찬가지인 넓이. 자실장의 속도로는 몇 시간은 걸어야 반대편에 도착할 수 있다.
하루 종일 가지고 놀아도 질리지 않는 장난감이 널려있으며, 심지어 소형 TV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시간에 맞춰 정해진 구역에만 가 있는다면 삼시세끼 맛있는 식사도 제공된다. 위생을 위해 곳곳에 실장석용 변소가 설치되어 있고, 노곤한 몸을 따뜻하게 풀어주는 욕탕도 있다. 콘페이토 봉지 역시 입구 근처에 놓여 있어서, 입이 심심할 때마다 집어먹을 수 있다.
입구 부근의 생활 구획은 하얀 타일이 깔려있지만, 그 바깥쪽은 인조 잔디와 나무들이 설치된 자그마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들실장들의 공원 생활에 환상을 품고 있는 일부 실장석들은 하루종일 그 곳에서 뒹굴기도 한다.
닝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임신을 원하는 실장석들에게 손을 들게 한다. 손을 든 실장석은 앞으로 불려나와 주사를 하나 맞는데, 주사를 맞으면 1시간 이내로 배가 부풀고 양 눈 모두 녹색으로 변한 임신 실장이 된다. 임신 기간은 굉장히 짧아서, 30분 이내로 눈이 붉게 변하고 진통이 온다.
출산 이후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닝겐이 와서 새끼들 중 한 마리만 남기고 모두 데려간다. 자신의 자를 데려가는 것에 거부감을 품는 실장석도 있지만, 수거된 자들은 부유하고 상냥한 사육주에게 입양된다는 닝겐의 설명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실장석은 기꺼이 자들을 내준다.
한편, 남은 한 마리의 새끼는 마마의 교육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 마마의 역할을 이어받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이 기이한 '낙원'은 거의 10년 가까이 유지되어오고 있었다.
[아마아마 테츄! 고급스러운 단맛이 마음에 드는 테츄!]
[혀에 착 감기는 맛인 테츄! 값비싼 고급품이 틀림없는 테치!]
10kg에 5만원 꼴인 싸구려 콘페이토를 핥으며 웃음짓는 자들을, 친실장은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지난 며칠 동안 이 장소에 대한 설명과, 자들이 곧 부유한 사육주에게로 가게 될 것이라는걸 설명했다. 자실장들은 마마와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에 낙담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기운을 되찾고 얼굴을 붉히며 세레브한 사육실장 라이프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와타치는 놀이공원이라는 곳에 가보고 싶은 테치. TV에서 데스랜드 개장 소식을 들었던 테츄.]
[와타치는 스테이크를 꼭 먹어보고 싶은 테츄. 우마우마한 감칠맛에 고급스러운 식감 테치♪]
[여기 있는 따뜻한 이불도 좋지만, 푹신거리는 침대에서 자보고 싶은 테츄..]
[이모토챠, 걱정할 것 없는 테치! 사육실장이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마마가 말해주었던 테츄.]
[테에?! 마마, 정말인 테치?]
[물론인데스. 특히 자들은 사랑스럽게 생겼으니 닝겐에게 듬뿍 귀여움을 받으며 길러질 것이 분명한 데스.]
[테에♪ 그럼 와타치는 애교로 주인사마의 혼을 쏙 빼놓는 테츄.]
삼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입가에 손을 가져갔다. 테츄-웅 하고 아양을 부리는 삼녀를, 친실장은 꽉 껴안았다.
[테에? 마마의 품 따뜻한 테츄..]
[자들은 정말로 귀여운 데스. 틀림없이, 멋진 사육실장이 될 것인 데스.]
그렇게 말하자, 자실장들은 환하게 웃으며 친실장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친실장도 마찬가지로 밝게 웃어보이고는, 자들을 안고 잔디 사이를 뒹굴었다.
온정이 넘치는 일가의 모습이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데스.]
불청객의 난입에, 친실장의 회상은 강제로 끝을 맺었다. 기분이 상한 친실장은 인상을 쓰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금세 표정을 풀었다.
[아, 큰할머니인 데스우?]
[그런 데스. 여전히 쾌활한 모습이 보기 좋은 데스.]
친실장이 큰할머니라 부른 실장석은, 이 장소에서 5년 가까이 살아온 최연장자이다. 전해지는 소문에 따르면 닝겐에게 천 마리에 달하는 자들을 위탁했다고 한다. 그 소문의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나이가 많다는 것 만으로 실장석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일정 이상으로 나이가 든 실장석들은 대부분 새끼들과 마찬가지로 닝겐들에 의해 부유한 사육주의 집으로 입양된다. 사실 닝겐에게 수거된 이후의 상황을 본 실장석은 아무도 없었지만, 이만한 대접을 받고있는 이상 닝겐의 말을 의심하는 개체는 없었다.
큰할머니라 불린 개체는, 특이하게도 나이가 든 이후에도 수거되지 않은 경우였다.
[와타시에게는 과분한 자들인 데스. 세레브한 사육실장으로 자라기를 바라고 있는 데스.]
[걱정할 것 없는 데스. 이제 첫 출산인 오마에가 그렇게 걱정한다면, 지금껏 자들을 보내왔던 와타시는 뭐가 되는 데스?]
[데에.. 역시 큰할머니씨는 말을 잘하는 데스.]
[살다보면 자연히 익히게 되는 데스.]
나이 때문일까. 흐릿한 눈을 지닌 그 노실장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피식하고 웃음을 내뱉었다.
[.....?]
[우리에게 있어서는 이 안이나, 바깥이나 마찬가지로 낙원인 데스.]
[데에.. 그건 그런 데스. 안에서는 먹을 것도, 친구도, 놀 것도 얼마든지 있는 데스. 자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데스. 밖에서도 친절한 닝겐상들이 와타시의 자들을 길러주시는 데스.]
[....와타시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줄곧 생각했던 데스.]
[무엇을 말인 데스?]
[이곳 바깥에 있는 동족들에 대한 생각인 데스우.]
[...그건, 들실장을 말하는 것인 데스?]
[그런 데스. 들실장들은 우리와는 달리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스.]
친실장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TV에 나온 들실장들의 모습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인조 잔디만 무성한 이 곳과는 달리, 진짜 초목이 우거진 '공원' 이라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직접 나무열매를 채집하고, 무성한 잔디 사이를 자들과 함께 뛰노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운치있는 삶이라고, 내심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친실장의 생각을 알아챘는지, 노실장은 즉시 말을 이었다.
[TV에 나온 모습이 들실장의 생활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인 데스. 와타시는 들실장 출신인 데스.]
노실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소매를 걷어 팔을 보여주었다. 친실장은 숨을 삼켰다. 노실장의 팔에는, 뚜렷한 흉터 자국이 남아있었다.
[마마의 사체를 빼앗겼을 때, 필사적으로 저항하다가 입은 상처인 데스.]
[데... 데?]
[들실장의 생활이라는게 그런 것인 데스. 언제 죽을지 모르고, 언제 상처입을지 모르는 불안한 생활 데스우.
까악씨나 멍멍씨는 우리를 보기만 해도 물어뜯으려고 하는 데스. 학대파라는 나쁜 닝겐들도 종종 공원에 들러서 수많은 동족을 죽이는 데스. 동족들도 하나같이 오랜 공원 생활로 잔혹하게 변해서, 서로의 살점을 탐하는 데스.]
[무서운 데스..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데스..]
혼란에 빠진 친실장을 가느다란 눈으로 바라보며, 노실장은 말을 이었다.
[게다가 자연도 우리의 편이 아니었던 데스. 여름의 쨍쨍한 해씨와, 겨울의 차가운 눈씨는 나약한 와타시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것인 데스. 수많은 동족이, 그 시기에 죽어나가는 데스.]
[데에에...]
[와타시는, 그렇게 살아가는 동족들을 생각하면 슬픈 기분이 드는 데스. 고작 울타리 하나가 사이에 끼었을 뿐인데, 우리와 들실장들의 생활은 완전히 정반대인 데스. 와타시는 공원 생활의 끔찍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데스. 정말로, 들실장들은 가여운 동족들인 데스..]
노실장의 어깨가 파르르 떨려왔다. 친실장은 노실장을 안고 진정시키듯, 다정하게 말을 꺼냈다.
[무슨 마음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데스.]
[값싼 동정이라고 욕해도 좋은 데스. 하지만 와타시는 들실장들을 떠올릴 때마다 비애를 느끼는 데스.]
[데? 비..애? 그게 무슨 말인 데스?]
[슬프고 슬픈 감정이라는 뜻인 데스.]
친실장은 멋쩍게 웃으며 잠시 고개를 돌렸다. 자실장들은 콘페이토를 다 먹고, 친실장이 대화를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멀뚱히 앉아 있었다. 장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장녀는 두 팔을 들고 붕붕 흔들어 보였다. 친실장이 팔을 흔들며 화답을 해주고 있자니, 노실장이 말을 이었다.
[이런 낙원에서 사는 우리는 모두 닝겐에게 감사해야 하는 데스. 와타시가 지금껏 와타시의 자들을 닝겐에게 넘겨준 것도, 와타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닝겐을 돕고 싶었기 때문인 데스. 와타시의 자들은 와타시와 달리 귀엽고 사랑스러우니, 분명 주인상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데스.]
[...큰할머니씨는 생각이 참 깊은 데스.]
노실장은 너털웃음을 터트리고는 말을 이었다.
[말이 길어졌지만, 와타시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 뿐인 데스. 첫째는 와타시들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 둘째는, 닝겐상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인 데스. 와타시는, 이 두 가지 감정을 줄곧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여기 머무를 수 있었던..]
[마마-아! 지루한 테츄. 대화는 언제쯤 끝나는 테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장녀가 친실장의 다리를 잡아끌었다. 당황한 친실장은 장녀를 떼어내고 노실장에게 사과하려 했지만, 노실장은 고개를 젓고는 할 말은 다 했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와타시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시는 데스우?]
[별거 아닌 데스. 첫 출산을 마친 동족들에게, 이따끔 해주는 조언일 뿐인 데스.]
[데에에.. 그런 데스...?]
멀어져가는 노실장의 뒷모습을 보며, 친실장은 새길 가치가 있는 대화였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낙원 밖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 들실장들에 대한 슬픈 감정도 치솟았다.
이런 감정을, 노실장은 비애라고 부르는 것일까.
[마마? 무슨 생각하시는 테치?]
[데? 아, 아무것도 아닌 데스.]
순진하게 웃는 장녀의 얼굴을 보면서, 친실장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다. 내일이면 영영 이별하게 되는 자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묵혀둔 옛날이야기를 하나 둘 떠올리면서, 친실장은 장녀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하얀 가운을 입고 위생 장갑을 낀 남자는, 하품을 하며 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라면 다른 직원 한 두명이 더 붙었겠지만, 오늘은 근무 일정이 절묘하게 어긋나 자신 혼자 작업을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복도에 놓인 케이지 하나를 집어들고 얼마간 걸어, <A20> 이라는 팻말이 붙은 문 앞에 도착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넓은 부지를 실장석 양식에 쓴다는 것은 조금 아깝다고 생각하며 남자는 문을 열었다.
[테치테츄 테치!]
[테츄-우 테치테에!]
[오로롱... 오로로롱...]
익숙한 광경이다. 서로 껴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이별을 슬퍼하는 자실장들과 친실장. 다른 실장석들도 옆에서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고 있다. 가볍게 헛기침을 하니 그제서야 남자의 존재를 깨닫고 화들짝 놀란다.
남자는 링갈을 켜고 말을 걸었다.
"안녕, 미안하지만 이별해야 할 시간이야."
친자는 그 말에 애써 울음을 참으며 마지막으로 격한 포옹을 나누었다. 친실장은 훌쩍이면서도, 자 한마리만 남겨두고 여섯 마리의 자들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는 테츄- 거리며 작별 인사를 하는 여섯 자실장을 조심스럽게 케이지에 담으며, 친실장이 끌어안은 자 하나를 가리키고 물었다.
"그 자가, 네가 기르기로 한 자니?"
[그런 데스... 칠녀는 아직 너무 연약해서, 밖에 나가면 다칠까봐 걱정이 되는 데스. 와타시가 데리고 살기로, 어제 미리 말해놓은 데스.]
"음, 그렇구나."
[마마! 보고 싶을 것인 테치!]
[반드시 훌륭한 사육실장이 되는 테치!]
케이지의 창살 밖으로 손을 뻗고 자실장들이 소리를 질러대자, 친실장이 끝내 울음보를 터트리며 크게 외쳤다.
[자드으으을! 행복해야 하는 데스우우우우! 닝겐상! 장녀는 특히나 영특하고 귀여운 아이니, 분명 훌륭한 사육실장이 될 수 있는 데스! 자들을 훌륭한 사육주에게 보내주시는 데스우! 잘 부탁드리는 데스우!]
남자는 친실장의 말에 잠시 멈칫 하고 케이지 안을 바라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물론이지!"
마마와 떨어졌다는 슬픔도 잠시, 자실장들은 비좁은 케이지 안에서 행복한 사육실장 라이프에 대해 활기차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이야기의 방향이 분충스러워지고 있는 와중에, 남자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 여기야."
[테에? 어두운 곳인 테치이..]
[여기서 기다리면 주인사마가 와주시는 테츄?]
남자는 말없이 웃으며 케이지에서 덩치가 작은 새끼 하나를 꺼내들었다. 선택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남자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며 애교를 부리는 그 녀석의 옷과 머리카락을 빠르게 제거하고, 목을 쥐어 비틀었다.
[.....?! 테.. 테헤엑..!]
[테에?! 이모토챠아아!]
자실장의 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머리는 적녹색 체액을 흩뿌리며 떨어져, 케이지 안에 안착했다. 자실장들은 테에테에 소리를 지르며 머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개중에는 피눈물을 흘리며 털썩 주저앉은 녀석도 있었다.
그럼 나야 편하지, 하고 남자는 녀석을 집어들었다.
[이럴 리가 없는 테치이.. 와타치들은 사육실장이 될 고귀한 존재라고, 마마가...]
흐리멍텅한 눈으로 무언가 지껄이고 있는 녀석의 목을 부러트리며, 남자는 기억을 더듬었다.
10여년 전, 모 대학에서 나온 한 연구 결과가 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고 성장한 실장석의 고기가, 모든 면에서 여타 식실장들에 비해 품질이 뛰어나다는 내용이었다.
연구 내용이 화제가 되자, 여기저기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란, 고급 식실장 생산하기' 프로젝트가 연이어 시행되었다. 남자의 회사 역시 당시 프로젝트에 착수해서, 꽤나 뛰어난 성적을 올린 곳 중 하나였다.
'낙원' 에서 수확되는 새끼들은 매주 1000마리를 상회하는 양이다. 고깃덩어리들은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로 운송되어, 여타 식실장 제품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값으로 팔린다. 회사 입장에서는 얼마 되지 않는 실장석들의 식비와 '낙원'의 관리비만 대준다면, 매주 돈더미가 굴러들어오는 수지맞는 장사인 셈이다.
[테챠아아아아아아-! 마마-아! 마마! 살려주는.. 테벳-]
"아, 그러고보니 A20 이라면 그 큰할머닌가 뭔가 하는 개체가 있는 방이었지.. 한 번 보고 올 걸 그랬나."
나이 든 노실장들의 자는, 식감도 맛도 여실히 떨어지는 B급 상품이다. 때문에, '낙원' 은 4세 이상의 실장석들은 쓸모가 없다고 판단해 지속적으로 처분하고 있다. 처분이라 해봤자, '완벽하게 올려진 희귀 상품!' 정도의 이름을 달고 학대숍으로 이동되는 것 뿐이니, 나름 인도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A20>에 사는 그 노실장만은 예외였다. 원래 공원에서 들실장 생활을 하던 녀석이 우연히 흘러들어온 모양인데, 아마 '낙원'의 생활에 감명을 받은 모양인지 다른 실장석들에게 닝겐에게 감사하라거나, 우리는 특별하다거나 하는 말을 끊임없이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덕분에 실장석들의 사기도 유지되고, 자실장 공급을 거드는 개체들도 늘어났으니 이득이 되어, 회사 측에서는 그 노실장을 살려주기로 한 모양이다.
[테.. 테에.. 옷이.. 머리카락이.. 테에에에엥!]
작업도 슬슬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다른 자실장들은 전부 해체했고, 친실장이 '특히 영특하고 사랑스러운 자' 라고 말했던 장녀밖에 남지 않았다.
장녀는 정신이 반쯤 나간 듯 무언가를 빠르게 중얼거리고 있다. 스트레스가 이 이상 쌓이면 굳이 '낙원'에서 일주일간 양육시킨 의미가 없으므로, 남자는 재빨리 목을 쥐었다.
[...마마는, 거짓말쟁이 테츄..]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장녀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에이씨, 파킨해버렸네.."
정신적 고통에 의해 파킨한 실장석의 고기는, 일반적인 들실장의 사체와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남자는 장녀의 사체를 마구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A20>의 노실장은 들실장들을 보며 비애를 느낀다고 말하고는 한다. 자신의 말로를 모르기에 그렇게 지껄일 수 있는 것이겠지.
적어도 실장석은, '비애'라는 말을 서슴없이 동족에게 쓸 수 있는 생물이 아니라고 남자는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남자 역시 서글픈 감정이 드는 것이다. 낙원 안이던, 밖이던 결국에는 마찬가지로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 이 가여운 생물에게, 일말의 동정을 주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약간의 비애를 느끼며, 남자는 실장석의 목을 꺾는다.
얼마 뒤, 끝끝내 학대숍으로 향하게 된 <A20>의 노실장은 오래 지나지 않아 죽었다.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건 남자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데헤에.. 강제로 낳은 자들이지만, 이번 자들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귀여운 데스... 너희라면 틀림없이 멋진 사육실장이 되는 데스우.. 슬픔 따위 없는 멋진 곳에서, 닝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사육실장이.....]
파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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