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켁켁! 콜록 콜록! 살려주시는 테치! 먹지 마는 테치!”
난생 처음으로 봉지 실장을 구매했다. 주 식용실장에서 최근 발매한 제품으로 독라 상태의 실장석을 진공 포장해서 팔고 있는 물건이다. 가격이 싼 편인지라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혜자 실장이라는 별칭까지 붙을 정도다. 별로 먹고 싶지 않았지만 최근 주머니 사정이 궁한지라 한 번 사봤다. 어쩌면 맛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실수를 했다. 죽은 놈으로 사려는데(이쪽이 더 싸다) 실수로 살아 있는 놈을 사버렸다. 다시 편의점까지 가기는 귀찮고 이걸 어쩐다.
봉지를 뜯으니 짭조름한 간장 냄새가 풍긴다. 간장에 절인지라 이거 한 마리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이 뚝딱이라더라. 뚝딱인지 아닌지는 먹어봐야 알 텐데 차마 산 녀석을 먹을 순 없다. 그건 내 취향이 아니다.
“제발 먹지 마는 테치! 와타시는 먹는 게 아닌 테치!”
이럴 줄 알고 일부러 죽은 놈을 사려고 했는데. 이거 실수했다.
“콜록 콜록!”
접시 위에 담긴 녀석이 연신 콜록거리며 검은 간장을 토한다.
“미안하지만 널 먹어야 할 거 같아. 저녁을 굶으면 잠이 잘 안 오거든.”
“죄송한 테치! 죄송한 테치! 하지만 살려주는 테치! 와타시는 한 번도 행복해본 적이 없는 테치! 이대로 죽으면 억울한 테치!”
밥을 먹으려는데 소시지가 막 날 뛰면서 날 먹으면 안 돼요! 라고 외치는 기분이다.
“먹지 말까?”
“그래주시면 고마운 테치! 주인님으로 모시는 테치!”
“딱히 널 기른다고 한 적은 없는데.”
“테에…….”
배가 고프니 뭐라도 먹긴 먹어야겠다. 어쩔 수 없이 비상식량을 꺼내기로 했다. 김이다.
참으로 기묘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식탁에서 김과 함께 맨 밥을 먹고 있다. 반찬은 김 뿐. 옆에 접시가 있지만 방금 산 봉지 실장이 담긴 접시라 그쪽으로는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배고픈 테치…….”
녀석은 배가 고픈지 작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약간의 밥을 덜어 녀석이 담긴 접시에 담았다.
“머, 먹어도 되는 테치?”
“응. 내가 주는 거니까 먹어.”
김도 반 찢어서 줬다. 차마 한 장을 통째로 주려니 아깝더라. 고작 김만 가지고 밥을 먹는다니. 이 얼마나 처량한 처지란 말인가.
“감사한 테치! 잘 먹겠는 테치!”
녀석은 통통한 손으로 밥덩이를 들었다.
“따뜻한 테치.”
그리고는 냠냠, 밥 알갱이들을 잘도 먹는다.
“우마우마한 테치!”
단순히 흰 쌀밥을 뿐이다. 그게 뭐가 맛있겠느냐만 저 녀석은 온 몸이 간장이 절여져 있는지라 절로 간이 배어서 맛있어졌나 보다. 사각 사각, 김도 뜯어 먹는다.
“아마아마한 테치! 이건 뭐인 테치!?”
“김이라는 거야. 잘 먹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아무 것도 못 먹은 테치. 오랜만에 먹는 밥인 테치.”
“무슨 일이 있었는데?”
“와타시는 가족들과 함께 있었던 테치. 근데 하얀 옷을 입은 닌겐들이 와서 와타시에게 아야아야한 행동을 한 테치.”
“어떤?”
“와타시의 배를 가른 테치. 와타시의 총 배설구에 아야아야한 짓을 한 테치. 이제 와타시는 자를 가질 수 없는 테치.”
“그래.”
한창 밥을 먹는데 녀석이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보인다.
“추운 테치…….”
독라 상태이기도 하고 방금 전까지 편의점의 냉장 진열대에 있던 녀석이다. 추울 만도 하다. 밥을 다 먹은 뒤 녀석을 잡고서 욕실로 갔다.
“주인님…… 아, 아니 닌겐사마 어디로 가는 테치? 닌겐사마 손 따스한 테치.”
녀석은 내 손의 온기가 기분 좋은지 혀로 할짝이며 테프프 웃는다. 솔직히 실장석이라는 거 그다지 안 좋아했다. 길을 거닐 때면 데스 데스 거리며 길막하는 것도 그렇고, 편의점을 갈 때면 방심하다간 강제로 탁아 당하는 것도 그렇고. 그런데 이 녀석을 보고 있자니 한 마리 정도는 길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야에 따스한 물을 받은 다음 녀석을 담갔다.
“테에!? 따, 따스한 테치.”
“너 지금 간장 냄새가 심하게 나니까, 일단은 씻자.”
직접 씻어줄까 했지만 녀석은 너무 작고 연약하다. 실수로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 직접 씻으라 했다. 어차피 저 녀석은 독라이니 씻을 곳도 거의 없겠지만.
“그나저나 이 녀석 운치 안 하네. 보통 따뜻한 물에 넣으면 긴장 풀려서 운치한다고 들었는데.”
운치를 하는 대신 녀석은 콜록거리며 간장을 토했다. 대체 안에다가 간장을 얼마나 쏟아부은 거람. 기껏 받아놓은 물이 흑색, 갈색으로 물든다. 그럴 때마다 물을 새로 받아주었다.
“꾸에엑.”
심지어 방금 먹은 밥까지 토해낸다.
“괜찮냐?”
“괘, 괜찮은 테치. 갑자기 많이 먹어서 그런 테치. 아무 문제 없는 테치. 그보다 물을 더럽혀서 닌겐사마에게 미안한 테치.”
“이 정도야 뭐.”
이 녀석은 꽤나 개념 실장인 것 같다. 한 번도 노예라고 한다거나 분충스러운 언행을 하지 않는다. 식용실장이 되기엔 퍽 아까운 녀석이다.
“한 마리 길러 볼까나.”
“테에에!?”
혼자 살다 보니 혼잣말이 늘었다. 녀석이 내 말을 듣고는 놀라서 나를 바라본다.
“기, 길러주시는 테치?”
긴가민가 하지만 그 동그란 눈동자 속에는 은근한 기대가 비치고 있다. 그 눈빛을 보아하니 차마 생각을 바꿀 수가 없다. 에이 씨, 모르겠다.
“사육실장이 돼 볼래?”
“테에에!? 사육실장 테치?”
“그래. 그 전부터 한 마리 길러보고 싶기는 했어. 너는 착하고 개념 있는 거 같으니까. 어때?”
“감사한 테치! 감사한 테치!”
녀석은 물에 참방참방 고개를 박으며 내게 절을 했다.
“야야. 그러지 마.”
“감사한 테치! 와타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던 테치!”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나랑 있으면 가끔은 행복할 거야. 아주 가끔은 말이지.”
“감사한 테치! 닌겐…… 아니, 주인님 테치!”
“이참에 이름도 정하자. 하루 어때?”
“이름 테치! 너무 좋은 테치! 와타치는 오늘부터 하루인 테치!”
그냥 기뻐만 해도 뭉클했을 텐데 녀석은 적녹색의 눈물까지 흘려대며 좋아라한다. 이거 참, 살면서 다른 누군가를 감동시켜 본 적이 있었던가 하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넌 이제부터 하루야. 나는 주인이고. 그거 잊으면 안 된다. 알았지?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하면 행복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잘 하자.”
“당연한 테치! 와타치 절대 이 행복을 놓치지 않을 테치! 겸손하게 지내는 테치! 착하게 지내는 테치!”
충분히 씻긴 뒤 마른 수건으로 녀석을 닦았다. 여전히 끅끅 거리며 간장을 뱉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양이 많이 줄었다.
“간장을 대체 얼마나 퍼먹인 거람.”
“하얀 닌겐이 입에 빨대를 꽂고 짜디 짠 걸 마구 먹인 테치. 먹기 싫었는데 강제로 먹인 테치.”
“나쁜 사람들이네.”
“그런 테치. 하지만 상관없는 테치. 이렇게 주인님을 만날 수 있었으니 된 테치.”
평소에 쓰지 않는 직사각형의 반찬통을 꺼냈다. 그곳에 하루를 담고 수건도 올려놨다. 한 쪽에는 한 숟갈 밥과 김 쪼가리도 얹어 놨다.
“배고프면 더 먹어도 돼. 오늘은 일단 여기서 자고. 내일 제대로 된 집을 만들어 줄 게.”
“이것도 충분히 좋은 테치! 와타치의 집이 생긴 테치!”
“착하네.”
검지로 녀석의 둥그스름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은 기분이 좋은지 테치 테치 거리며 바둥거리며 내 손을 잡으려 한다.
“늦었으니까 오늘은 일단 자자. 난 먼저 잘 게. 집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절대로 안 나가는 테치! 주인님, 잘 주무시는 테치.”
어차피 반찬통의 높이가 녀석보다 높아서 못 나올 거지만 혹시 모르니 미리 말해두었다.
“그래 그래. 흐아암. 참고로 나 잘 때 시끄럽게 떠들면 안 된다?”
“명심하는 테치! 주인님, 하루를 믿어주는 테치!”
녀석을 책상 위에 올려놨다. 내 방 말고는 따뜻한 곳이 없어서 차마 둘 곳이 없다.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하루야, 잘 자. 내일 보자.”
“테치! 테치!”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지킬 수 없었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하루는 죽어 있었다. 그것도 바닥에 떨어져서 죽어 있다. 내가 그렇게나 반찬통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건만. 내 말을 듣지 않아서 괘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이 녀석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식용으로 길러져서 사랑이라는 것도, 행복이라는 것도 누려보지 못 했는데. 이제야 조금이라도 맛을 볼까 했는데 죽어버리다니.
녀석은 이름처럼 단 하루만에 내 곁을 떠났다.
***
“배가 고파서 깬 테치.”
주인이 놓은 수건 안에서 따스하게 잠을 자던 하루는 뱃속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까 전에 밥을 먹기는 했지만 얼마 먹지 못 했고, 그 마저도 전부 토해버렸기 때문에 여전히 배가 고프다. 하루는 수건을 나와 구석에 놓인 밥을 손으로 집어먹었다. 배가 고프면 자다가도 깨는 건 사람이나 실장석이나 다를 바 없다.
“맛있는 테치. 달콤달콤하고 고소한 테치.”
흰 쌀밥이야 아무 맛도 안 날 테지만 하루에게는 처음 먹어보는 제대로 된 음식이다. 평소에는 싸구려 실장 푸드만 먹었으니까. 검은 종이 같은 것도 짭짤하니 맛있다.
“맛있는, 데보옥!”
어둠 속에서 밥을 먹던 하루가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토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분대를 제거했다. 때문에 소화 능력이 없다. 총 배설구도 지져서 막아버린지라 오갈 곳이 없어진 음식은 소화가 되다 말고 입 밖으로 도로 나와 버린다.
“데보로록! 오로록!”
위를 쥐어짜는 통증에 하루는 고통스러워한다. 단순히 토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설명 못할 기이한 통증이 하루의 가슴을 엄습한다.
“텟!? 뭐인 테치? 가슴이 뜨거운 테치?”
하루는 본능적으로 가슴을 더듬었고, 본능적으로 소중한 돌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는 식용실장이다. 그것도 산 식용실장. 산 식용실장은 먹거리 외의 용도를 찾는 사람들에게도 인기 상품이다. 가령 구매해서 학대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업체도 바보는 아니다.
싼 값에 학대용 실장을 팔 생각은 없다. 제품을 출하한 뒤 48시간이 지나면 보관해두었던 위석을 처리하여 산 식용실장을 죽게 한다. 이렇게 되면 학대 목적으로 식용실장을 산 사람은 또 돈을 낼 수밖에 없다.
“테에엑! 가슴이 아픈 테치! 왜 이런 테치? 죽어버릴 것 같은 테치!”
하루는 이미 편의점에 진열되고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곧 있으면 폐기 처분이 되거나 죽은 식용실장으로 코너가 옮겨질 운명이었다.
“테엑! 이대로 주, 죽을 순 없는 테치! 이제야 행복을 만난 테치……. 죽고 싶지 않은 테치!”
하지만 가슴을 칼로 후비는 듯한 통증은 도무지 가시지 않는다. 아무리 지능이 떨어지고 정보가 거의 없는 식용실장이라지만.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테에에, 안 되는 테치…… 죽고 싶지 않은 테치…… 살고 싶은 테치. 주인님이랑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은 테치…….”
죽음이 목전에 가까워지자 하루는 다급해졌다. 폴짝폴짝 뛰며 반찬통을 기어오른다. 간신히 통에서 기어나와 비틀비틀 책상 위를 걸었다. 방 안은 어두웠지만 멀지 않은 곳에 주인이 보인다.
“주인님 테치…… 도와주시는 테치…… 와타치는 행복해지고 싶은 테치…… 왜 불행해야 하는 테치? 억울한 테치.”
기어이 책상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테보옥!”
작은 자실장인지라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중상이다. 피투성이가 되어 팔과 다리가 부러진 하루는 손으로 주인을 향해 기어갔다.
“죽을 순 없는 테치…… 이제야 행복해진 테치…… 하얀 알갱이 맛있는 테치, 검은 종이 맛있는 테치이익……. 왜 이러는 테치!? 와타치는 충분히 불행했던 테치! 이만하면 된 거 아닌 테치!? 어째서 와타치의 행복을 막는 테치!”
주인의 편안하게 잠든 얼굴을 향해 뭉특한 손을 뻗는다. 달달 떨리는 손. 간절한 마음이 닿은 걸까? 주인이 음냐음냐 거리며 약간 반응을 보인다. 빽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하루는 참았다. 자고 있을 때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고 한 말이 이제서야 떠올랐으니까.
'살고 싶은 테치! 살고 싶은 테치익!'
파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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