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켜진 원룸.
남자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오후 내내 직장에서 상사에게 잔뜩 깨지다가 여덟시가 넘어서야 겨우 해방됐다.
지친 심신을 달래려 회사 앞 포장마차로 들어가려던 남자는, 술잔을 기울이는 상사의 뒷모습
을 보고 그대로 뒷걸음질쳐서 편의점으로 향해야 했다.
맥주 몇 캔과 함께 간단한 씹을거리를 사서 공원 벤치에서 먹으려 했지만 마른 안주 봉지를
뜯자마자 냄새를 맡고 구름같이 몰려든 들실장들의 아우성에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봉지를 열자 보이는 건 똥범벅이 된 마른 안주 사이에서 테치테치 울음소리를 내는 작
달막한 자실장 두 마리.
구겨진 남자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두 마리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닌겐씨, 보는 테치~ 이모우토챠 정말 귀여운 텟츄~ 가족의 보배인 테치요~]
[치이이~]
언니 자실장이 부끄러워하는 동생 자실장을 팔로 안아 들어올리며 자랑하지만 남자의 귀엔 테
치테치 시끄럽기만 하다.
꽉 쥐어진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이마에는 핏줄이 돋았다.
말로만 듣던 탁아를 하필이면 이런 최악의 타이밍에 당하고 말았다.
편의점에서 나올 때 넣은 걸까.
아니면 공원 벤치에 앉아 잠시 허공에 대고 신세한탄을 하느라 비닐봉지를 옆에 내려놓았을
때 들어간 걸까.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지금 이 두 마리 똥벌레들이 자신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해줄 유일한 낙을 앗아가놓
고도 똥범벅이 된 채 태평하게 테치테치 울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 링갈을 작동시켰다.
"야, 야."
[막내 이모우토챠는 운치도 정말 귀엽게 하는 테치~ 그리고... 텟! 부른 테치?]
[텟치이!]
"니네가 알아서 들어온 거냐, 니네 마마가 넣은 거냐?"
[마마가 와타치타치를 넣어준 테치. 마마도 곧 가니까 메로메로 시켜서 귀엽다귀엽다 많이 받
으라고 한 테치요~]
[마마 츄앗!]
"그래, 마마도 온다고?"
[응 테치! 와타치타치한테 예쁜 흑발 이모우토챠들을 만들어 줄거라고 한 텟츄우~]
[이모우토챠!]
"어, 그래. 거기까지."
남자는 이를 부드득 갈며 편의점 봉투를 방 안쪽 벽에 튀어나온 못에 걸어놓고 현관으로 향했
다.
대롱대롱 흔들리는 봉투 입구에서 언니 자실장이 옆으로 누운 맥주캔을 딛고 머리를 내밀어
멀어져가는 남자의 등을 향해 계속 떠들어댄다.
[닌겐씨, 닌겐씨! 밥 우마우마 아리가또 테치. 그치만 너무 짰던 테츄. 물은 없는 테치카?]
[물 테치!]
"입 닥쳐! 닥치라고 씨발!"
[테챠아아앗!]
[츄아아아앗!]
고함소리에 놀란 두 마리가 비명을 질렀다.
빵콘하면서 맥주캔에서 굴러떨어진 언니 자실장은 잽싸게 여동생을 땅콩 봉지로 밀어넣고 자
신도 꿈틀꿈틀 파고 들었다.
[이모우토챠 큰일난 테치... 닌겐씨가 화난 테치... 와타치타치가 뭔가 잘못한 것 같은 테헤
엥...]
[화난츄아!]
여태 분위기 파악을 못하던 두 마리였지만 이제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벌벌 떨고 있
었다.
물론 남자는 그 광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매섭게 부릅뜬 두 눈은 마치 문 너머에 이미 친실장이 도착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납게 현관을
노려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예전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했던 학대파들의 영상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흘러갔
다.
너희들에게 지옥을 보여주마.
남자는 그렇게 다짐했다.
학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같은 끓어오르는 분노만 있다면 어떤 잔인한 짓이라
도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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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후.
봉투 속의 자매가 다시 흘끔흘끔 바깥을 내다보기 시작하고, 혼자 중얼중얼 욕설을 내뱉던 남
자가 의자에 앉아 막 담배를 입에 가져다 물었을 때.
-콩콩콩
작은 살덩이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현관을 울렸다.
[와타시의 귀여운 자들 냄새가 나는 데스우~ 문을 여는 데스우~]
[테에, 마마가 온 테치!]
[마마 테츄아!]
친실장의 목소리에 마음이 놓였는지 봉투 속 두 마리가 다시 테치테치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
했다.
"후우..."
남자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꺾어서 바닥에 버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피가 끓어오르고 심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꽉 쥐어짜이는 기분이었다.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남자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심호흡을 한다.
-콩콩콩콩콩콩콩콩콩!
[시치미 떼지 말고 썩 문을 여는 뎃샤아아!]
-벌컥
문이 갑자기 바깥쪽으로 열리자 문에 찰싹 달라붙어 마구 두들겨대던 친실장이 머리를 부딪히
고 꼴사납게 자빠졌다.
[데부웁]
[닌겐씨 테치!]
[큰 테치!]
[닌겐씨 집 넓은 테치!]
넘어진 친실장을 돌아보지도 않고 자실장들이 앞다투어 현관으로 달려들어왔다.
하나같이 누더기같은 실장복에 이것저것 얼룩을 묻히고 있었다.
타일이 깔린 현관과 방바닥 장판 사이의 낮은 단차를 낑낑대며 타넘어 집 안으로 들어오려는
세 마리를 남자가 발로 한 마리씩 밀어 뒤로 굴렸다.
[테삣]
[테븁]
[테엥]
세 마리가 각자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데이...]
방금 전까지 넘어져있던 친실장이 일어나며 몸을 툭툭 털었다.
그럭저럭 먹이를 잘 찾은 개체였는지 키가 남자의 허벅지까지 오고 살집도 제법 좋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찬 바람에 여기저기 터 있었고 옷과 맨살 어디에도 자들과 마찬가지로 꼬질
꼬질한 때와 얼룩이 묻어 있었다.
실장취와 더러운 옷감의 냄새가 남자의 코를 찔렀다.
[마마! 닌겐이 못 살게 구는 테치!]
[그런 테치! 와타치타치 집인데 못 들어가게 하는 테츄!]
[혼내주는 테치!]
[오마에타치 그러면 못 쓰는 데스. 닌겐을 만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 데스]
친실장이 다리에 달라붙어 칭얼대는 세 마리를 향해 근엄하게 말하더니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뎃수~웅]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목을 옆으로 기울이며 애교를 떨었다.
남자의 입에서 다시 부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오마에타치도 어서 애교를 하는 데~스. 마마처럼 귀엽게, 뎃수~웅]
[[[테, 텟츄~웅]]]
[뎃수~웅]
[[[텟츄~웅]]]
제 딴에는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겸해 닌겐을 메로메로 시켜보겠다고 취한 행동이었지만 화가
난 남자의 눈에는 그저 역겨워 보일 뿐이었다.
"지랄하네 씨발."
남자가 욕설을 내뱉으며 한발을 성큼 내딛었다.
[데뎃?]
험한 말에 놀란 친실장이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뺐지만 남자의 손이 더 빨랐다.
친실장의 두건을 거칠게 잡아당겨 방 안쪽으로 던지더니 자실장들도 발로 먼지쓸듯 안쪽으로
밀어내고 현관문을 닫아버렸다.
"야, 내가... 후... 지, 지금 기분이 존나... 후우... 좆같거든?"
고작해야 벌레같은 실장석을 상대로 말하는데도 말이 자꾸 더듬어져 나오고 숨이 찼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에 남자는 가슴을 누르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남자는 엎어진 상태로 정신을 못 차리는 친실장의 귀를 잡고 일으켜세웠다.
"니가 싸지른 똥벌레 새끼들이 내가 먹을 거에 똥을 싸질러놨단 말야."
한없이 좁아지고 일렁이는 시야 속에서 더러운 실장석의 모습만이 보였다.
"넌 오늘 죽었다."
[데에엣!]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낮춘 남자의 주먹이 뒷걸음질치는 친실장의 얼굴을 향해 내리꽂혔
다.
철퍽- 하고 과일을 으깨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해방
감이 퍼졌다.
친실장이 방바닥 위로 쓰러졌지만 남자의 주먹질은 그치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덱! 데겍! 데갸아악!]
"후우..."
몇 번인가 주먹을 내리친 뒤 남자는 손을 털며 일어섰다.
가벼운 현기증 같은 것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뜬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러운 기분
에 휩싸였다.
바닥에 넘어진 친실장의 얼굴은 처참했다.
피와 적록색 눈물로 칠갑이 된 뺨과 눈두덩은 울긋불긋 부어올라 있었고, 그 와중에 이마와
광대뼈는 함몰되어서 얼굴이 마치 찌그러진 감자처럼 변해 있었다. 벌어진 입 사이로는 부러
진 이빨이 피와 함께 흘러나왔고 늘어진 혓바닥은 반쯤 잘려 덜렁거렸다.
움찔움찔 경련하는 두 다리 사이에서 진한 초록색 액체가 흘러나와 방바닥 위로 번져나갔다.
그제서야 피비린내와 실장변의 악취가 코를 찔러왔다.
험한 꼴을 당한 친실장을 자실장들이 테에에엥 테에에엥 울며 몰려들어 감싼다.
세 마리 모두 팬티가 녹색으로 부풀어있었다.
[닌겐씨, 살려주는 테치! 마마를 그만 괴롭히면 좋은 테치!]
[와타치타치가 나가는 테치! 그만하는 테치!]
[테에에엥! 테에에엥!]
[오하헤챠히 이허하 혜쓰... 호하카느 제흐...(오마에타치 위험한 데스... 도망가는 데스...)]
남자가 그 광경을 멍하니 보는 사이, 친실장은 자실장들을 달래며 비틀비틀 일어섰다.
남자가 가만히 내버려두자 친실장은 무릎을 꿇고 도게자를 했다.
[사혀주히느 헤스... 와햐시의 챠드른 사혀쥬히느 테흐...(살려주시는 데스... 와타시의 자들은
살려주시는 데스...)]
[테에에엥! 마마 일어나는 테치! 도망가는 테치!]
[와타치도 도게자 하는 테치! 용서하는 테치!]
[테에에엥! 테에에엥!]
비록 뭉개진 발음이라 링갈로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친실장이 자들의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순간 아찔해졌다.
조금 전의 분노가 사그라들고 차가운 자기혐오가 밀려들었다.
이게 뭔가.
고작해야 몇천원짜리 술과 안주를 망쳤다고 저 조그마한 생물을 죽어라고 두들겨패고 말았다.
그까짓 안주 정도 나눠줘도 좋았을걸.
그냥 말로 타일러 보내도 좋았을걸.
이럴 것까진 없었을텐데.
시선을 가만히 방 안쪽으로 향하자 못에 걸어뒀던 편의점 봉투가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 나오려고 발버둥치는 거겠지.
"하아..."
남자가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이미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기분이 엉망이었다.
"야."
[헤엑!]
자신을 흘끔흘끔 올려다보다말고 다시 머리를 땅에 박으며 오들오들 떠는 친실장을 남자가 발
로 툭툭 건드렸다.
"일어나라."
[헤휴우...]
피와 적록색 눈물을 뚝뚝 떨구며 친실장이 몸을 일으켰다.
"니 더러운 새끼들 데리고 당장 꺼져. 알았어? 또 오면 그 땐 진짜 죽인다."
[캉햐항이아 혜흐...(감사합니다 데스...)]
친실장이 반쯤 잘려 덜렁거리는 혀로 자실장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핥아주는 동안 남자는 못에
걸어뒀던 편의점 봉지를 내렸다.
똥범벅이 된 맥주캔만 꺼낸 뒤 봉지를 그대로 친실장에게 건넸다.
"안에 남은 건 니네가 알아서 처리하고 다신 오지 마라."
친실장은 품에 끌어안았던 자실장을 내려놓고 봉지를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마! 마마앗!]
[테에에엥~ 마마 울퉁불퉁 테치... 못생겨진 테츄...]
봉지 안에서 친실장을 올려다 본 두 마리가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남자가 현관문을 열어주자 여섯 마리의 실장석 일가는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헷흐우...]
친실장이 남자를 향해 목을 숙여 인사 비슷한 동작을 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자들을 이끌고 걸어갔다.
초록색 그림자는 건물의 복도를 지나고 출입구를 빠져나가서 저 멀리 길 안쪽으로 아장아장
사라져갔다.
"하, 시발..."
문을 닫고 돌아선 남자가 원룸의 몰골을 보고 욕을 내뱉었다.
"청소는 시키고 보낼걸."
아무래도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
일주일 후.
얼굴이 희미하게 찌그러진 성체 들실장이 남자의 원룸 현관문을 두들겼다.
-콩콩콩
[주인님~ 문을 열어주시는 데스우~ 와타시인 데스우~]
-벌컥
들실장이 밖으로 열리는 문에 얼굴을 맞아 뒤로 넘어졌다.
기가 찬 듯한 남자의 얼굴이 더러운 들실장을 내려다봤다.
"너 뭐야? 미쳤냐? 왜 또 왔어?"
들실장이 부딪힌 이마를 문지르며 일어나 웃는다.
[데프픗, 운치밖에 할줄 모르는 자들은 놓고 온 데스우~ 이젠 고귀한 와타시만 키울 수 있는
데스우~]
친실장은 며칠간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저번에 와타시가 두들겨맞은 건 탁아한 4녀와 5녀가 운
치를 한데다 귀찮게 다른 자들까지 데려가서 그런 데스!' 라는 결론을 내리고 자들을 골판지
하우스째로 버리고 온 것이었다.
보호해줄 친실장이 없으니 지금쯤이면 다른 들실장들에게 잡아먹혔을 터였다.
"아... 그러셔?"
입가를 일그러뜨린 남자가 거칠게 손을 뻗어 친실장을 원룸 안으로 들이고 현관문이 닫혔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얼굴이 부어오른 독라실장 한 마리가 복도로 굴러나왔다.
"썩 꺼져."
그 한 마디와 함께 금속 여닫이문이 매정하게 쾅 닫혔다.
독라실장은 벌어진 입에서 혀를 내밀고 주저앉은 채, 굳게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
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밖으로 열려있는 원룸촌의 출입문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들어오자
독라가 목을 움츠렸다.
[데히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실장석의 A모양 입에서 바람이 새는 듯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든 걸 잃은 친실장은 주저앉은 모습 그대로 한참을 구슬피 울더니 비틀비틀 복도를 걸어나
가 거리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런 뒷모습을 배웅하듯 어느새 하얀 눈이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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