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성체 들실장과 자실장 하나가 풀숲에 숨어 뭔가를 훔쳐보고 있었다.
골판지 집을 나서는 친실장과, 몰려나와 배웅하는 자들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마마는 먹을 걸 구하러 가는 데스우. 장녀는 이모토챠들 잘 돌보고 있는 데스.]
[알겠는 테츄! 귀여운 이모토챠들은 와따시가 지키는 테츄!]
[마마, 오늘도 맛난 거 가득가득 가져오는 텟츄웅♡]
[레에에에엥, 좀 더 놀아주고 가는 레체에에엣]
실장석이 사는 곳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아침의 풍경.
그러나 그걸 노려보는 두 쌍의 눈동자는 심상찮은 분위기를 띄고 있다.
[저 분충의 행동거지를 잘 보고 들어두는 뎃승.]
[하이 텟치.]
친실장이 멀리 떠나는 걸 지켜본 뒤, 둘은 풀숲 사이로 몸을 감췄다.
친실장은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운 좋게 살점이 많이 남은 생선뼈를 발견한 것이다.
매운탕을 끓였다가 쉬어서 버린 것이지만, 상했든 썩었든 별 탈 없이 먹어치우는 실장석에겐 어디까지나 좋은 먹이다.
[마마 온 데스~]
그러나 친실장이 골판지 집으로 들어왔을 때 본 광경은......
[테츄아아아아아아악! 아픈 테츄! 먹지 마는 테츄!]
[데프프, 잘 먹고 잘 자란 자라 그런지 진미인 뎃승. 좀 더 맛있어지게 천천히 먹어주는 뎃승~]
피와 내장으로 흠뻑 젖은 골판지 안,
그리고 들실장에게 다리부터 뜯어 먹히는 중인 자신의 자.
멍청히 굳었던 것도 잠시, 격분한 친실장은 비장의 무기인 대못을 꺼내들고 달려든다.
[데갸아아아아아악! 당장 자를 내려놓는 데스 분충!]
마치 어느 고오오급 시계의 사이보그 사무라이가 ‘류진노 켄노 쿠라에!’를 외치며 선질풍참을 갈기는 듯한 기세.
그것에 눌렸는지 들실장은 대못이 팔을 스치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먹던 자를 던지고는 그대로 밖으로 달아났다.
친실장은 얼른 자를 살핀다. 피범벅이 된 채 다리 하나를 비롯하여 곳곳의 신체가 뜯겨나갔다.
크기와 냄새를 통해 친실장은 가까스로 그것을 ‘장녀’라고 인식했다.
[마마, 마마인 테츄...?]
[정신 차리는 데스 장녀! 이게 어찌 된 일인 뎃샤아아아아!]
[테에에에에.... 왠 아줌마가 와서 이모토챠들 다 잡아먹어버린 테츄... 와따시는 특별히 맨 마지막에 먹어준다고 괴롭히며 놀았던 테츄... 죄송한 테츄... 오네챠들 지킨다고 했는데 못 지킨 테츄...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엥!]
[그나마 오마에라도 살아남아 다행인 데스! 오로로롱, 오로로롱!]
확실히 다른 자실장과 엄지가 모조리 잡아먹힌 건 큰 손실이지만, 적어도 성체가 될 확률이 제일 높은 장녀가 살아남은 건 천만다행인 일이다. 실장석 특유의 강력한 재생력이 뒷받침 되면 장녀가 당한 중상은 잘 먹이기만 해도 며칠 이내에 나으리라.
그러나 들실장에게 당한 이상 여기에 더 머무르는 건 위험한 일이다.
[집을 옮기는 데스. 여긴 위험한 데스...]
그날 밤, 친실장은 보존식량과 포갠 골판지를 들고 장녀를 업은 채 다른 곳으로 떠났다.
등에 업힌 자가 운치를 조금씩 바닥에 흘리는 건 그녀로선 알 길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로부터 두어 달이 지나, 장녀는 몸이 나은 건 물론 중실장이 되어 테스 하고 울게 되었다.
새로운 자들도 낳아서 예전보다 오히려 가족이 많아졌다.
친실장은 먹이 조달 겸 독립 교육을 위해 장녀를 대동하고 다녔다. 그리하여 장녀는 근처의 지리와 위험요소들을 익히게 되었다.
그날도 친실장은 장녀를 데리고 먹이 조달을 나설 생각이었다.
[차녀챠는 문을 굳게 닫아걸고 마마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리는 데스.]
[알겠는 테치! 마마와 장녀 오네챠 잘 다녀오시는 테치!]
[다른 이모토챠들은 차녀 이모토챠 말 잘 듣고 있는 테스. 착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아마아마한 콘페이토라도 어떻게든 얻어다 주겠는 테스.]
[테에! 콘페이토테치!]
[와따치도 먹고 싶은 레츄!]
그렇게 떠들썩한 배웅이 막 끝나려는 순간, 풀숲을 헤치고 뭔가가 나타난다.
친실장은 대경실색했다. 예전에 자신의 자들을 거의 모두 먹어치웠던 그 들실장이었던 것이다.
[데프프, 이번에도 맛난 분충들을 많이 만들어둔 데스우? 이번에도 신세 좀 지는 뎃승.]
[웃기지 마는 데샤아아아아앗! 오마에는 이번에야 말로 와타시가 직접 요절을 내주는 데스!]
[테에에에엥! 마마, 저 아줌마 무서운 테체아아앗!]
[자들은 모두 들어가는 데스! 장녀! 오마에는 예비용 보검을 들고 따라오는 데스! 이모토챠들의 원수를 갚을 기회인 뎃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친실장은 무기를 몇 개 더 구했으며 장녀에겐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휘두르는 법까지 가르쳐놨다.
이번에야말로 그 교육이 빛을 발할 때다. 저 분충을 독라달마자판기노예로 만들어 죽은 자들의 원한을 풀리라,
친실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원수 말인 테스?]
푹-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
[원수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던 테스.]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장녀가 자신을 찌르기 전까진.
[테프프, 솔직히 기다리기 지쳤던 테스. 와타시는 마마가 어느 들분충에게 당해 화장실 노예가 되지 않았나 생각했던 테스.]
[데프픗, 와타시도 오마에가 멍청한 짓을 해서 솎아내진 건 아닌가 생각했던 뎃승... 다행히 둘 다 지금까진 무사했으니 잘 된 데스야~]
[데, 데뎃?!]
친실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장녀와 저 원수가 서로 친자인 것처럼 군단 말인가?
이모토챠들을 모조리 먹어치우고 자기도 거의 먹을 뻔했던 분충을, 어째서......?
눈알을 디룩디룩 굴리는 그 꼴을 보며 비웃던 들실장이 입을 열었다.
[아직 이해 못한 것 같으니 친절히 설명해주는 뎃승. 오마에의 자는 장녀 포함해서 그날 이미 모조리 와타시가 먹어치운 뎃승. 오마에가 장녀라 생각하며 애지중지 길렀던 자는 사실 와타시의 자였던 뎃승. 오마에의 분충 자들을 훔쳐보며 행동거지를 흉내 내게 시킨 뎃승. 고기에서 짜낸 즙 좀 묻히고 연기 좀 한답시고 속아 넘어가다니 바보 아닌 뎃승? 조금만 주의 깊게 살폈다면 분명 다른 점이 보였을 것인 뎃승.]
[데쟈아아아아아......]
그동안 원수의 자를 애지중지 길렀다는 충격적인 폭로에 친실장은 행복회로를 돌릴 틈도 없이 머릿속이 망가져버렸다.
그 꼴을 지켜보던 장녀는 테프픗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마에의 운치 냄새 나는 분충들을 이모토챠라고 부를 때마다 토할 뻔한 테스. 하지만 오늘부로 모두 끝난 테스. 그래도 지금까지 키워준 건 매우 감사한 테스. 말하자면, 오마에와 오마에의 분충들은 모조리 와타시의 독립 기념 선물 노예란 말인 테스!]
[데프프, 과연 와타시의 자라 실수 없이 끝낸 뎃승. 자, 어서 독립 기념 선물 보따리를 풀어헤쳐 보는 뎃승~]
중실장은 대못을, 들실장은 심신 고루 망가진 친실장을 질질 끌며 골판지 집으로 들어갔다.
곧 안에서 자실장과 엄지들의 비명소리가 퍼졌으며, 그 이후로 친실장의 가족들 중 골판지 밖으로 살아서 나온 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뻐꾸기는 탁란을 하여 제 새끼를 다른 어미새가 키우게 한다.
실장석도 비슷하게 탁아를 한다. 다른 게 있다면 뻐꾸기가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상대에게 사기를 칠 때, 실장석은 자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능력의 소유자에게 어설프게 판돈을 걸었다가 목숨 포함해서 모두 날려먹는다는 점이지만.
그러나 실장석의 카오스인자가 발현했는지, 놀랍게도 뻐꾸기와 비슷한 수준의 발상을 떠올리는 데 성공한 실장석이 생겼다.
그 실장석은 몇 년의 생애 동안 위와 같은 행위를 몇 번이고 반복하여, 공원 절반 이상을 자신의 자로 채우는 데 성공했다.
보통의 실장석들이 그와 비슷한 행위를 입에 담기가 무섭게 목숨을 잃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놀랄만한 성과인 셈이다.
비록 정기 구제 때 발각당해 빠루의 한 줌 핏물로 맺히는 결말을 맞았으나 그 들실장은 비교적 행복하게 갔다.
미리 파놓은 탈출구를 이용해 그녀 태생의 실장석 다수가 도주하였고, 그들 대부분이 친실장의 탁아 노하우를 익혀 놓았던 것이다.
그들은 실장석의 세계를 점령해갈 것이다. 식물보다 느리지만, 제국처럼 광활하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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