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파 죽이기 (ㅇㅇ(222.117))



어렸을 때 집에 가면, 아버지는 늘 그 실장석이란 것을 안고 있었다. 다섯 살때도 그랬고, 열살 때도 그랬었다. 열다섯과 스물을 넘길 때에도 아버지에게 안긴 기억은 없다. 그의 품은 늘 실장석의 것이었으니까.


웅철은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꽤 예전 생각인데도 벌써부터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이, 그 와중에도 아비란 인간을 다시 보리란 것에 자그마한 환희까지 있다는 게 스스로 환멸스러울 지경이었다.





"실장석을 말살하라! 말살하라!"

"우리는 인간이다! 저런 벌레 따위와는 살 수 없다!"


출근길을 따라 걸을 때면 늘 들리는 소리였다.

5년 전, 실장권이란 게 처음으로 정립되었을 때부터 들렸던 소리. 웅철은 근래들어 저 소리가 부쩍 커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실장권이 완전히 효력을 잃고 휴지조각이 되었을 때에도, 그리고 공공연히 애호파라는 작자들이 길거리에 끌려나와 두들겨 맞을 때도.

이제 애호파는 없다. 소수의 애오파만이 남아 집 안에서 간간히 사육실장이라 부르는 똥벌레들을 기를 뿐이다. 웅철도 그런 사람들까지는 구태여 말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말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제 아비가 그랬던 것처럼 가정이 파탄난 시점에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까, 아니면 그때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까.

실장석 관찰보다 재미있는 게 인간 관찰이었다.


"실장석은 잠재적 살인마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를 지킬 권리가 있다!"


아, 그러고보니 그 발단도 그랬었지.

실장석에 의한 유아 살인사건. 그 사건의 발단이 웅철의 아비가 길러낸 사육실장이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일이었다. 진작에 의절했던 웅철은 그 순간 선견지명이라도 가진 것처럼 평가받았다. 애시당초 애호파였던 아버지는 그 순간부터 나락으로 떨어졌고, 그 뒤는...


"자, 여러분. 이 시간에도 저 똥벌레들은 우리의 터전을 침입하고 있습니다. 마침 오늘 중으로 발표가 난다고 들은 바에 따르면, 드디어 실장석 구제법이 통과된 모양이더군요."


웅철은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들은 잠시 웅철을 애오파라 여겼는지 경계하다가, 이내 더할나위 없이 환하게 미소지으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들고온 가방 가득가득 채워져있는 코로리와 등에 달린 빠루가 그들이 가진 분노를 전력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저기 중앙공원에 들실장이 새끼를 깠다더군요? 원사육실장 출신이 나타났다던데."


학대파들이 실장석에 대해 가장 잘 알았던 것처럼 이들도 들실장에 대해 잘 알았다. 어디가 새끼를 까지 쉬운지, 코로리를 대기중에 살포할 때 어떤 농도가 적합한지, 그리고 살아남은 자실장들의 위석을 파괴하기 위해 적절한 주파수는 몇 헤르츠인지까지. 오죽하면 실장학과가 있었다면 교수는 너끈했을 것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사방으로 흩어지다 이내 귀를 쫑긋 세우고 한 곳으로 몰려가는 학살파를 보며 웅철은 작게 미소지었다.


웅철은 실장석이 싫었다.

비단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유 뿐만은 아니다. 그의 아비가 쓰레기같은 애오파였다는 이유도 아니었다. 그가 구제업자 일을 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집을 나와 잠시 했었던 구제업자 일은 나름 돈이 되었고, 그때의 그가 움직였던 건 의무감이지 짜증이 아니었다.

웅철은, 실장석이 싫었다.

사육실장을 기르다 그 본성에 충격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의 첫 사육실장은 드물다 못해 유일할 정도로 양충이었다. 위석에서 나오는 헛소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그가 몰랐던 실장석이란 생물에 대해 먼저 알려줄 정도로.


웅철은, 실장석이, 싫었다.


라임이라 이름을 붙여줬던 사육실장이 들실장에게 먹혔기 때문은 아니었다. 스턴건을 매번 들고다녔던 건 둘째치고, 라임은 어지간한 들실장의 두배는 컸다. 그때 구제업자였던 웅철과 가끔 대규모 구제가 잡혀 남는 돈이 생길 때마다 스테이크를 같이 먹었던 녀석은, 들실장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컸다.


웅철은 실장석이 싫었다.

길을 가다 탁아를 당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봉지를 묶으라 말하던 라임의 충고 이후론 한 번도 탁아를 당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길을 가다 투분을 당했거나, 아니면 애호파, 애오파에게 잘못 걸렸던 것도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애호파도 사람이었기에, 웅철에게 폐를 끼치며 날뛰던 사람들도 링갈 하나와 실취석 한 마리에 조용해지곤 했었다. 사육실장을 기르던 사람들이 아종이나 다른 동물에게 애호를 옮기곤 했다. 그렇기에 그는 애호파에게 악감정이 없었다. 멍청한 사람은 알려줘야 할 일이지, 미워할 게 아니었으니까.


웅철은 실장석이 싫다.

그것은, 그가 실장석이기 때문이다.





"이야, 오랜만이죠? 생물학적 아버지."

"...웅철이냐?"

"네, 뭐 맞습니다. 서웅철이 아니라 이제는 이웅철이지만요."


아비는 초라했다. 실장석 하나에만 매달려 인생을 바치던 그는 실장석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이제는 웅철이 이렇게 아비를 내려보고 있을 정도로.


"할 말 없습니까?"

"...풀어다오. 바깥의 미친 놈들을 막아야 해. 실장석들을 구해야..."

"그거 말고,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할 말 말입니다."

"있지. 있고말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어서 저것들을 막지 않으면...!"


뭘 기대했던 걸까.

비릿한 웃음과 함께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웅철은 잠시 아비를 내려보다가, 이내 손을 뻗어 리모컨을 꺼내들었다.


"그거 아십니까? 아버지가 팔았던 사육실장, 그러니까 시안 말입니다."

"그 녀석이 분충이었을 뿐이야! 모든 실장을 놈처럼 취급해서는 안되!"

"성급하시군요. 그러니까, 그 놈을 훈육한 게 저라는 겁니다."


아비의 눈이 크게, 더 이상 커질 수 없을만큼 크게 떠졌다.


"그리고 녀석들의 제 1본능은 이거지요. '인간의 말에 복종해라.'"


웅철은 오랜 기억을 떠올렸다.

실장권이란 게 완전히 파기된 방아쇠를.





"...알겠니? 마지막까지 잘 기억해주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하는 일이란다."

""""""하이레치!""""""


엄지 일곱 마리가 일제히 대답했다. 군대라도 되는 것처럼 일사불란한 대답에 잠시 오래된 기억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칼처럼 딱 잡힌 실장복의 각도와 자세가 거기에 구체감을 더했다.

'교육'의 성과라곤 하지만, 하나처럼 동시에 대답을 내뱉는 모습은 뭉클할 지경이었다.


"오늘은 너희 주인님이 오는 날이야. 옷도 잘 챙겨입으라 한 것도 그 덕분이란다."

""""""알겠는레치! 언제나 감사한 레치!""""""


미리 말하자면 교육은 말하는 걸 가르치지 않는다. 분충성이 높은 말은 제재하지만, 저런 말까지 하나하나 시키진 않는다. 그말인즉슨 이 엄지들은 전부 하나같이 감사한 마음으로 똑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웅철은 엄지들을 한 번 돌아보고, 이내 잠시 훈육소의 문을 걸어잠궜다. 팻말을 돌려 안에 아무도 없다고 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장 훈육소, 그의 아비가 세운 대기업에서 그리 낮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높은 위치도 아니었다. 하지만 웅철은 이곳에 만족했다. 정확히는 이곳이 아니면 안되는 일이 있었다.




라임은 웅철에게 많은 걸 알려주었다. 자신은 소중한 돌씨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을 하더라도 그게 들려오지 않았다고. 그때 위석이 잘 기능하지 않는 개체가 양충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 다음 웅철이 접한 정보는 뜻밖에도 학대파 커뮤니티에서였다. 죽지 못하게 하기 위해 행한 위석처리의 일환으로, '파킨'하고 영롱한 소리를 내며 죽는 실장석은 그 소리를 거꾸로 녹음해 들려주면 살아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활성제를 흡수하는 단면적이 늘어나 오히려 재생도 잘 하더라고, 학대파가 적어놓은 글.

웅철은 여기서 새롭게 발상을 떠올렸다. 그럼 엄지나 저실장 시절부터 위석을 한 번 깨트렸다가 되돌리면 어떨까. 환상 속에나 있다던 양충개체를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구제업자였던 그는 실장석을 싫어하지 않았지만,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구태여 빠루를 들고 학살을 일삼지도 않았지만, 들실장 하나하나에게까지 쓸데없는 애정을 쏟는 애호파는 당연히 아니었다.


'왜 이러는 데스! 와타시에게 하는 짓이 무슨 짓인지 모르는, 데갸아아아아악!!'

'...왜 살아있는 것인 데스? 그런 데스까! 똥닌겐 따위가 와타시를 죽일 수는 없었던...'


성체실장은 위석시술로도 분충기를 지울 수 없었다.

이미 위석의 말에 잠식되어 버렸거나, 아니면 그 위석의 말에서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이다. 전자는 흔히 분충이라 부르는 개체였고, 후자는 극소수의 양충이 여기 해당했다.

마찬가지로 중실장도 아웃. 오랜 시간동안 위석과 함께한 실장석들은 어느덧 거기 섞이거나 완전히 무시하거나로 갈렸다.


그럼 자실장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웅철은 실장석의 분충기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데 성공했다. 자실장과 엄지, 저실장에 한정한다고는 하지만.

우선 위석을 잘게 부수어 활성제에 넣고, 파킨 소리의 역재생 버전을 들려줌으로써 놈들의 숨이 붙어있게 만든다. 그리고 나서는 간단했다. 위석이 담긴 활성제에 전극을 꼽아넣고 원하는 행동로직을 입력하면 그만.

실장석은 평생을 위석의 명에 따라 살아간다. 분충이라 불리는 것들도 그렇고, 오히려 양충인 것들이 별종이었다. 따라서 그 위석이 내리는 명령을 바꾼다면 놈들은 양충, 어쩌면 전혀 색다른 분야에도 쓸 수 있다.


웅철이 가장 놀랐던 것은, 실장석의 매커니즘이 기계에 가깝다는 것이다. 로젠 사에서 만들어낸 인공생명체라고 했던가. 뇌를 완전히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는지, 놈들의 행동원리는 대부분 원 로직을 따라갔다. 그 로직을 저장하는 것이 위석이었고, 양충이라 불리는 놈들은 공상과학에서나 나오는 생각하는 기계에 가까운 것이다.

회장이 왜 그런 알고리즘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미 로젠 사 자체가 해체되고 실장석의 기술은 사장된지 오래였다. 그저 그들이 일군 것들이 남았을 뿐.


따라서 중요한 것은, 웅철이 훈육한 엄지는 어디까지나 뇌내로직에 따를 뿐이라는 것이다.





웅철의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우연히 애호파 아비 밑에서 태어났고, 우연히 쫒겨났으며, 우연히 실장석의 원리를 이해했다.

그러나 가장 큰 우연은 역시 그녀를 만난 것이었다.


"...그러니까, 아이를 죽이고 싶다고요?"

"네. 이런 말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술의 취기를 빌었는지, 아니면 그냥 웅철을 믿었는지는 모른다. 재벌가의 사모님이 웅철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은 우연이었다.

흔한 불륜 이야기를 들었다. 내연녀, 그리고 남편의 외도. 거기서 한 가지의 차이점이 있었다면 그 내연녀는 죽었고, 남편은 그 여자의 아이를 집에 데려와 키웠다는 것이다.


"이녀석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군요."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연 여러 개가 곂치고, 곂친 우연은 필연을 만들었다.


"...실장석?"

"네. 이래뵈도 사람의 말에는 절대적으로 복종합니다."

"그런 녀석이..."

"'어떤' 말이든지요."


사모님은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기르기엔 그녀 스스로가 지쳐있었다. 웅철로써는 그녀가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른다.





"자, 실장석들아. 이제 중요한 임무를 내릴 거야. 알겠지?"

""""""하이테치!""""""


그새 자실장으로 성장한 녀석들은 웅철의 말을 경청했다. 그들은 생명체보다는 기계에 가까웠다. 유용한 기계. 살인이건 방화건 뭐든 할 수 있는 그런 기계. 웅철은 이번 일이 끝나면 이 연구를 파기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기껏해야 5센티미터 남짓한 소인들이 테러에 쓰인다면 어떨까. 그러니 이게 마지막이겠지.


"이건 분충이라는 녀석이다. 일반적인 실장석에 가깝지."

"테에, 저러면 닌겐상들이 슬퍼하는 테츄."

"왜 저러는 테츄카? 스테이크보단 푸드를 먹어야 하는 게 아닌테치?"


실장석들의 반응은 이해할 수 없다는 쪽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이 녀석들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제 주인이 행복한 순간이니까.


"너희는 이걸 연기해야 해. 말해주는 순간에 딱 맞춰서."


그 순간이 언제일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웅철은 미련없이 사표를 써 냈다. 그가 이 회사에서 할 일은 다 한 셈이었다. 마지막으로 '애호선언'을 하게 한 시점에서 그가 할 일은 없었다.


'실장석에게도 권리를!'


그런 캐치프라이즈를 내건 순간, 그의 아비는 그의 어께를 툭툭 치며 미소지었다. 이제야 너도 실장석들에 대해 제대로 알아주는구나, 하며.

웃기지 말라고 해. 누가 너같은 줄 알아?


주식은 하락과 상승을 반복했다. 애호파와 학대파가 시장에서 싸우고 있는 게 보일 지경이었다. 이전까지 없는 수준으로 요동치던 주가는, 어느 순간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그 다음날 영아살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유명한 비디오다. 공중파에서까지 모자이크를 거칠지언정 고스란히 내보내진 비디오.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뜯어먹는 실장석, 그리고 이후에 그들의 말.


'테프프프, 역시 닌겐이라도 우지챠는 비상식인테치.'

'똥닌겐은 그것도 모르는 테츄카? 테퍄퍄퍄퍄퍄!"


세계가 분노했다. 영아살해는 금기 중의 금기가 아니었던가. 모르고 한 행위가 아니라 고의로, 그것도 양충 중의 양충이라 불렸던 실장석이 그랬다는 것은 경악을 넘어 분개를 불러일으켰다.

양충도 저런데, 분충이라면 어떨까. 투분과 탁아를 일삼는 것들은? 인간을 노예라 여기는 저것들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퍼져나갔다.

그들은 몰랐다. 로젠 사에서 집어넣은 매커니즘에는 인간에게 일정 이상의 피해를 끼칠 수 없도록 되어있다는 것을. 웅철의 개조실장이 아니고서야 토닥거리는 정도가 그들의 한계라는 것을. 원리상으로도 그들은 인간을 물어뜯을 수 없다. 로직 자체를 뜯어고친 웅철의 경우가 아니라면.


그러니 놈들도 행복하게 갔을 것이다. 그것들의 주인이 행복하니까.





"...그렇게 된 겁니다."

"말도 안돼. 네가, 어떻게 네가!"


웅철은 알고 있었다.

아비가 실장석을 버릴 리 없다는 것을. 그에게 알량한 위선을 채워주기에 실장석만한 게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가 수렁에 빠지리란 것도 알았다. 실장석 애호를 외치는 기업에 줄줄이 도산당하고, 마지막으로 아비가 사채업자에게 끌려갔다가 5억을 대가로 웅철에게 끌려왔다는 것도 미리 예측할 수 있었다.


"그거 아십니까? 학대파라는 친구들도 요새는 보기 드뭅니다. 그 친구들이 원했던 건 적당히 건방진 약자지 혐오스러운 살인마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서철웅 씨.


"그 친구들이 학대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한다 이 말입니다. 무슨 고문기술자라도 되는 줄 알았어요."


내가 왜 이 말을 하는 것 같습니까?


아비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걸 보고, 웅철은 비릿하게 웃었다.


"어디, 처음에는 독라달마부터 만들라고 했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보자, 인분충 새끼야.





웅철은 실장석이 싫다.

그것은, 그가 실장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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