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희는 간만에 사육실장 미도리를 데리고 마트에 장을 보러 나왔다.
평소에 장을 보러 나와도 얌전히 따라다니던 녀석이 오늘은 어째서인지 온몸이 들쑤시는 것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미도리 왜그래? 장보는 동안에는 얌전히 있어야지"
[주인사마... 와타시 저 샴푸가 가지고 싶은데스... 사주면 안되는데스까?]
철희는 미도리가 뜬금없이 샴푸 타령을 하자 뭔소리인가 하고 시야를 밑으로 향했다.
아뿔사. 마트 녀석들이 아주 교활한 상술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람의 시야가 잘 가지 않는 매대 하단부에 실장석 전용 물품을 배치하고, 그곳에 소형 디스플레이판을 설치해 실장석을 유혹하는 광고 영상을 재생시키고 있었다.
광고 영상의 소리도 인간의 귀가 있는 높이에는 잘 들리지 않고 실장석에게만 겨우 들릴 수 있도록 음량까지 조절해 놓았다.
"이런 약아빠진 새끼들...."
철희가 당했다는 생각에 부들부들 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자, 역시나 마트에 처음 온 다른 사육주들도 철희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데샤아아앗!!!! 똥주인!!!! 당장 와타시에게 저 세레브 드레스를 사주는데샤아앗!!!!!!!]
저쪽에서는 살이 제대로 오른 살찐 분충새끼가 빵콘을 하며 자기 주인에게 드레스를 사달라고 ㅈㄹ발광을 하고 있었다.
"이제 여기 마트는 올 곳이 아니구만 에휴"
철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목줄에서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미도리 녀석이 이번에 작정을 한 듯이 비장한 표정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야 미도리 그만 가자니까!"
[주인사마가 샴푸를 사주기 전에는 이곳에서 절대 움직이지 않는데스!]
"니가 샴푸가 뭐에 필요한데?"
[저 실장샴푸를 쓰면 와타시의 머리카락이 더욱 풍성해진다고 하는데스! 닝겐의 샴푸와는 달리 실장석에게 맞는 샴푸를 써야한다고 하는데스!]
미도리가 하도 결연하길래 철희는 고개를 숙여 그 샴푸를 집어서 확인하고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아니 시발 겨우 100미리 들어있는게 2만원? 장난하나"
[하지만 와타시가 그 샴푸를 쓰면 그만큼 청결해지고 주인사마도 더욱 쾌적해지는데스!]
철희는 너가 독라가 되는게 제일 쾌적하다는 말을 하려다가 겨우 삼켰다.
"그래 샴푸 사줄게. 대신 이번 1번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 1달 동안 스테이크는 없다. 이 샴푸는 그만큼 비싼 제품이야"
[스...스테이크 데스까...? 알겠는데스! 와타시 샴푸를 선택하는데스!]
일요일마다 주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스테이크도 포기하다니. 그만큼 샴푸를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큰 것 같았다.
"그래 알았다. 대신 약속은 꼭 지켜라"
철희는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실장샴푸를 카트에 집어 넣었다.
샴푸 껍데기에는 실장인이 모델로 나와 따봉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미도리는 자신도 샴푸를 쓰다보면 실장인이 될 수 있다는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을거라 철희는 생각했다.
그렇게 철희와 미도리는 장보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마트에서 사온 짐을 풀고 철희가 샴푸를 꺼내주자 미도리는 샴푸를 들고 화장실로 뛰어가 샤워를 시작했다.
[뎃데로게~ 뎃데로게~]
"저새끼 내가 그 돼지 멱따는 노래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또...."
마음 같아서는 당장 줘패고 싶었지만 아까 생각한 계획이 있기에 그냥 참고 넘어갔다.
샤워가 끝난 미도리는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거울로 확인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뎃데로게~ 거리며 춤까지 추고 있다.
"일단은 더 참자...."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 3일 후 -
미도리는 샴푸를 산 이후, 매일 샤워하는 재미로 실생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샴푸를 너무 많이 사용하여 벌써 양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것이었다.
[데에... 샴푸씨가 어째서 벌써 반밖에 남지 않은데스? 이건 사기인데샤앗!]
미도리는 철희 들으라고 괜히 목소리를 키워 말하며 샴푸통을 집어 던졌다.
-푹- -주르륵-
[데에에엣?????]
미도리는 그저 샴푸 하나 더 사달라고 시위할 목적으로 통을 던지는 소리만 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던져진 샴푸통의 뚜껑이 열리며 안에 있던 샴푸가 바닥에 흥건히 흘러버렸다.
[데갸아아앗!!!! 샴푸씨는 다시 통 속에 들어가는데스!!!!]
미도리는 열심히 자신의 손으로 샴푸를 통에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마찰 때문에 거품이 생길 뿐 흘러버린 샴푸는 통에 다시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게 왜이러는데스!!! 다시 통으로 들어가는데샤앗!!!]
미도리가 자꾸 데샷 데샷 소리를 질러대자 화가난 철희가 화장실로 왔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너 오늘 밥빼기 당해볼래?"
[주인사마.... 와타시의 소중한 샴푸씨가.....]
미도리의 옷과 화장실 바닥은 샴푸거품으로 가득했다.
"어쩐일이냐? 간만에 화장실 청소를 다하고ㅋㅋㅋ 수고했다"
철희는 미도리의 다음 말도 듣지 않고 바로 샤워기를 켜 샴푸 거품을 흘려보냈다.
[데... 데에에.. 데에에에에에에에엥 데에에에에에엥]
미도리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 녀석 ㅈㄴ 시끄럽네. 야 이거 새 샴푸니까 이제 이거로 씻어. 앞으로 리필은 없다 알겠냐?"
[샴푸!!!! 새로운 샴푸인데스!!!! 감사한데스 주인사마!!!!]
철희는 어떤 상자에서 통을 하나 꺼내 미도리에게 건내주었다.
그 통에는 '세균 박멸! 초강력 항균 핸드워시'라고 써있었다.
하지만 핸드워시도 향긋한 냄새를 풍겼기에 미도리는 샴푸와 핸드워시를 구분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사용하였다.
- 3일 후 -
[데에에엥!!!! 데에에에에엥!!!! 어째서 와타시가 독라가 된데스!!!! 이건 꿈인데스!!!! 데에엥!!!!!]
미도리가 핸드워시를 샴푸라 생각하고 사용한지 3일 후
미도리의 머리카락과 실장복은 녹아서 없어져버렸다.
실장석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실장복과 머리카락은 수 많은 미생물로 구성이 되어 있다.
그런데 세균박멸용 세제를 사용하면 해당 미생물들이 모두 사멸하면서 조직이 망가져버린다.
때문에 사육주들에게 항균세제는 절대 금기시 된다.
"여 미도리~ 주인인 나의 청결을 위해 드디어 그 더러운 털쪼가리들 다 없애버렸구나! 역시 너는 최고의 사육실장이야~ 아하하하하하하하~"
[오로롱~ 오로로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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