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사이언티스트



"데키키키키키키"

"데.....데뎃??"

스산한 웃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백설이의 눈에, 낮선 광경이 들어온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짐에 따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골판지다. 정확히 말하면 들실장들의 골판지 하우스. 최고급 사육실장인 백설이에게는 인연이 없어야 마땅한 그곳. 하지만 지금 백설이는 손발이 묶인 채 골판지 하우스 한가운데 내던져져 있다.

'데??? 여긴 어디 데스?? 와타시 납치당한 데스우???'

전신의 핏기가 싹 가시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납치당한 사육실장이 어떻게 될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백설이는 당황하며 움직일수 있는 목과 눈을 사용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록 골판지 하우스 안에 들어와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도면 아마도 냉장고나 장농 정도의 크기는 될 것이다. 사육실장 교육중에 보았던, 그리고 실장석으로서 본능적으로 그 크기를 알고 있는 일반적인 골판지 하우스보다는 몇배는 큰 사이즈이다.

"데키키키키키키"

다시 한번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 소름돋는 웃음소리에 백설이의 전신근육이 경직된다.

"오마에 사육분충, 이제 일어난 데스? 데키키키킷"

어둠 속에서 천천히 백설이를 향해 실장석 한마리가 아장아장 걸어나온다. 외견은 평범하지만 어디서 구했는지 사육실장용 안경을 쓰고 있고, 그 안경 너머의 눈은 알 수 없는 광기로 가득차 있다.

"치...친구상???"

하지만, 눈의 광기를 제외하면 그 얼굴은 백설이가 잘 아는, 소중한 친구의 그것이었다. 그 친구는 원사육실장으로, 선천적으로 눈이 나빠 항상 안경을 써야 했으며 잠시 안경을 잃어버리고 집안을 헤매다 불운하게도 꽃병 가까이에 가는 바람에 임신하게 되어 주인님의 분노를 사 버려졌다고 했다. 백설이는 우연히 공원 산책중 안경 실장과 만나 이 슬픈 사연을 듣고는 친구가 되기로 하였고, 우정을 키워왔다.

"그런 친구상이 대체 왜 와타시를 납치한 데스....정신차리는데스......"

그러나, 백설이의 간절한 호소를 들은 친구는 오히려 배를 부여잡고는 집이 떠나가라 웃기 시작했다.

"데키키키키키키!!!!! 데프프프프프픗!!!!!.......아직도 상황을 모르는데스? 그딴건 당연히 모두 거짓말인데스!"

"데......"

"와타시는 '이거'를 노리고 오마에의 친구인척 한 것일 뿐이었던 데스, 누가 사육분충 따위와 친구가 되는 데스우??? 데프프픅!!"

안경 실장은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머리, 안경 실장이 간접적으로 가리킨 백설이의 머리에는, 일반적인 실장석의 녹색 두건이 아닌, 하얀 헤드드레스가 덮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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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석은 특유의 단성생식에 의해 하나같이 모체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태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장석들 끼리는 외모의 좋고 나쁨을 가릴 수 있는 모양이지만, 인간으로서는 거의 외모의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런 실장석도 때로는 유전자의 장난에 의해 돌연변이가 태어난다. 그리고 이 경우 대개 실장석의 돌연변이는 조상, 즉 취성석(스이세이세키)의 형질이 발현된다.

백설이도 돌연변이 실장석이다. 그녀는 태어날때부터 실장석의 녹색 두건이 아닌 취성석의 하얀 헤드드레스를 지니고 있었다. 만일 들실장이라면 이런 특이한 모습은 주위의 질투 내지는 비웃음을 사고, 끝내는 린치당해 죽는 것으로 일생이 끝날테지만 백설이는 사육실장 농장의 출산석에게서 태어나 오히려 그 특이한 모습이 높게 평가되었고, 한층 정성스러운 훈육을 받아 엄청난 금액에 현재의 주인에게 팔렸다.

그렇기 때문에 헤드드레스는 백설이에게 있어서 위석만큼 중요한, 자신의 모든것이나 다름 없는 재산이다. 헤드드레스 덕분에 어미처럼 출산석이 되거나 분충 자매들처럼 학대용 싸구려 실장석이 되는 운명을 피하고, 마음씨 좋은 부자 애호파 주인을 만나 사육실장이 되고, 헤드드레스의 순백색에서 따온 '백설'이라는 훌륭한 이름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이걸 쉽게 내어줄수는 없다.

"치...친구상. 이건 안되는 데스, 이건 와타시의 소중소중한 보물인데스....굳이 가지고 싶으면 주인님께 말해 비슷한 것을 사주겠는 데스....."

그러나 안경 실장으로부터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딴건 필요없는 데스."

"데"

백설이가 얼빠진 소리를 낸다. 노리는 것이 이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와타시에게 필요한건 돌연변이의 결과물이 아니라 돌연변이의 근원 그 자체 데스."

"데....도련병???.....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데스...."

개념실장이라고는 하나 실장석은 실장석, 저능한 분충들보단 뛰어나지만 그래도 과학적 개념같은것을 이해할리가 없다. 그러나 안경실장은 다르다. 그쪽은 종의 한계를 뛰어넘은 천재. 생물학적 지식을 제법 가지고 있다.

"이걸 보는데스."

그렇게 말하며 안경 실장은 검은 천을 휙 벗겨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위석이다. 위석이 액체가 가득 담긴 커다란 유리병 안에서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보통의 위석과는 조금 다르다. 일반적인 위석이 녹색의 보석 모양을 하고 있다면. 이 위석은 마치 가시가 돋아난 듯이 삐쭉삐쭉한 모양새를 하고 있고, 그 가시들은 진홍색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게 와타시의 돌 데스. 이 밝게 빛나는 부분이 보이는 데스??"

자신의 위석을 스스로 빼내어 보관한다는데서 백설이는 공포감을 느꼈다. 미치지 않고서야 스스로의 몸을 갈라 위석을 일부러 빼낼 리가 없다. 그런데 안경 실장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 어조와 눈에 서린 광기의 불일치가 백설이를 두렵게 만든다.

하지만 안경 실장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것을 뛰어넘어, 평범한 실장석인 백설이에게는 이해할수 없는 기괴하고 혼란스러우며, 공포스럽기까지 한 이야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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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실장석의 위석은 전체가 진한 녹색의 광물질로 되어있다. 그러나 돌연변이가 일어난 실장석의 위석은, 변이가 일어난 부분이 진홍색으로 빛나는 특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안경 실장은 이 점에 주목했다. 돌연변이가 일어난 부분은 실장석이 아니라 취성석에 가까운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돌연변이 실장석의 위석에서 이렇게 변이가 일어난 부분만을 떼내어 합치면 하나의 온전한 위석, 아니, 취성석의 로자 미스티카를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돌연변이 실장석 하나 하나는 유전정보가 부족해 취성석의 옷만을 가지고 태어나거나, 약간 머리가 풍성하거나, 속눈썹이 있거나 하는 식으로 약간의 변화만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온전한 로자 미스티카를 재현한다면 온전한 손과 발,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조상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장석이 취성석의 모습을 되찾는 날, 인간은 실장석들 앞에 무릎꿇고 지구의 지배자는 실장석들이 되리라.

"그때부터 와타시는 오마에같은 돌연변이들을 찾아서 납치한 데스. 그리고 그놈들의 '소중한 돌'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난 부분을 쪼개, 미리 빼둔 와타시의 돌에 박아넣은 데스. 아프지만 아주 기분좋았던 뎃스웅♡"

"데데데덱데데덱........."

백설이는 이빨을 딱딱 부딪히며 공포에 떨고 있다. 백설이는 사육실장 교육이 시작된 이래로 한번도 빵콘을 한 적이 없었고, 그것을 자신의 작은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었으나, 상상을 뛰어넘는 안경실장의 이야기에 어느새 운치를 지려 순백의 팬티에 녹색 얼룩을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백설이의 잘못이라고 쉽게 말할수는 없을 것이다. 위석에서 변이가 일어난 부분만을 떼내어 취성석의 로자 미스티카를 재현하겠다는 계획은 인간으로 말하자면 여러 사람의 아름다운, 혹은 건강한 신체부위를 자르고 꿰매어 하나의 완전한 인간을 만들겠다는 발상이나 다름없다. 그런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계획을 광기에 찬 얼굴로 눈앞에서 이야기하고, 더구나 그 사악한 계획의 희생자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는걸 안다면 인간이라도 어지간히 강심장이 아닌 이상 오줌을 지릴것이 분명하다.

백설이는 점차 공포로 눈이 흐려져가기 시작했다. 회색빛으로 눈이 물들어간다는 것은 위석이 파킨하기 전에 나타나는 징조, 이대로라면 머지 않아 백설이는 위석이 깨져 죽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백설이의 입에 무언가가 쳐박힌다. 실장활성제가 든 병이다.

"오마에는 아직 죽어서는 안되는 데스, 와타시가 위석을 쪼개기 전까진 살아있어야 하는 데스. 데키키키키키"

강제로 실장활성제를 마셔 어느새 회색으로 물들어가던 눈이 적록의 빛을 되찾는다. 동시에, 과도를 든 안경 실장이 백설이의 배를 가르기 시작한다.

"오마에가 마지막인데스. 이제 머리부분만 있으면 완성인데스. 오마에같이 순진해 빠진 멍청이가 돌연변이라 정말 다행이었던 데스."

안경 실장은 갈라진 배 사이로 손을 넣어 내장을 휘저으며 위석을 찾고 있다. 백설이는 그 고통에 몸부림치며 소리지르지만,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악!!!! 데캬아아아아!!!! 주인님!!! 주인님!!!!! 살려주는데스으으!!!! 데에에에에엥!!!!!"

"아직도 똥닌겐을 찾는데스? 정말 못말릴 사육분충데스."

마침내 백설이의 배에서 위석을 찾아낸 안경 실장이 그것을 꺼내 자랑스럽게 들어보인다. 이미 눈물로 엉망이 되어 시야가 흐려진 백설이의 눈에도, 한쪽 끝이 붉게 빛나는 자신의 위석이 보인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다. 두 실장석은 서로 다른 이유로 위석을 응시하고 있다. 한쪽은 계획의 완성을 음미하듯이, 한쪽은 목숨이 끝나게 되었다는걸 직감하고서.

이윽고 안경 실장은 위석코팅제를 백설이의 위석에 바르고, 과도로 붉게 빛나는 부분을 긁어 떼어낸다. 배를 가를때 이상의 격통이 백설이를 덮친다.

"뎃훙~뎃츙~뎃데로게~젯데로게~"

그러나 갈라진 배에서 피와 내장을 쏟으며 몸부림치는 백설이를 옆에 두고서도, 안경 실장은 태연하다. 아니, 태연하다 못해 콧노래까지 부르며 즐겁게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실장석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한 칼질로 붉게 빛나는 부분을 떼어낸 안경 실장이, 유리병에 든 자기의 위석을 꺼내어 세워두고는 백설이에게 말을 걸었다.

"보이는 데스? 이제 오마에의 돌조각을 와타시의 돌에 박으면 모든게 끝나는 데스~"

그러나 이미 백설이에게는 대답을 할 기력조차 없다.

"데...데....."

"그럼 시작하는데스. 하나, 둘....."

"뎃훙!!♡"

"파킨!!!!"

백설이의 돌연변이 위석 조각이 안경 실장의 위석에 박혀 합쳐지는 순간. 백설이의 위석은 조각이 떨어져나간 부분부터 금이 가 마침내 파킨하고 말았다.

"데프프프프프.......이제 조상의 모습을 되찾는데스. 그리고 건방진 똥닌겐들을 지배하는 데스으으으!!!!"

골판지 하우스 안에 사악한 웃음이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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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뎃스웅~♡"

공원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던 A의 앞에, 꼬질꼬질한 독라 실장석 한마리가 나타나 아첨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본 A의 얼굴이 구겨진다.

A는 얼마 전 짓소코인 열풍 당시 퇴직금을 쏟아부었다가 그것을 전부 날리고, 간신히 건물 청소부 자리를 얻어 근근이 생활하는 참이었다. 물론, 그의 투자가 실패한 것이 실장석의 탓은 아니고, 오히려 실장석들도 짓소코인 열풍 당시 많은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중 하나일 따름이지만 A는 투자 실패 이후로 실장석을 보면 그 일이 떠올라 화를 주체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시발 똥벌레 새끼!!!"

그리고 지금 A의 앞에 나타난 독라도. 분노한 A에게 걷어차여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수풀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하~니미 요새 똥벌레들은 안경도 쓰고 다니네"

수풀에 나동그라진 안경 실장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니 고통을 즐기듯이 웃는 얼굴로 무언가를 웅얼거리고 있다. 독라가 된 데다가 온몸에 피멍이 들고 안경마저 깨지고 휘어진 그 모습은 인간을 지배하겠다며 호언장담하던 얼마 전과는 전혀 다른 비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안경 실장은 백설이의 위석을 빼앗아 자신의 위석에 박음으로서 취성석의 로자 미스티카가 완성되었다고 믿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하다. 생명과 유전자의 신비는 기껏해야 실장석 한마리가 가지고 놀 만큼 단순하지 않다. 서로 다른 개체의 유전정보를 한데 모아놓는다고 그것이 저절로 합쳐져 하나의 개체가 될 리가 없다. DNA레벨에서 정밀한 조작을 가하지 않고 단순히 위석을 다른 위석에 박아넣는다고 유전자가 융합되지도 않는다. 생명의 진화는 블럭이나 퍼즐놀이가 아니다.

하지만 안경 실장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못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안경 실장은 팔다리를 자르면 재생되는 과정에서 취성석의 팔다리로 재생될 것이고, 머리를 뽑으면 취성석과 같은 풍성한 머리가 다시 날 것이라고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끝없는 자해 속에서 자기 스스로 독라가 되어버린 안경 실장의 정신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완전히 미쳐버려 자신이 취성석이 되었다고 믿는 지경까지 와서는. 인간을 홀려 세상의 지배자가 되겠다며 아첨을 하고 다니다 이렇게 걷어차여 비참하게 땅바닥을 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뎃......데훙........닌겐을 메로메로시킨데스........이제 와타시의 노예닌겐 군대로 세상을 정복하는 데스우....."

골판지 하우스 안의 유리병에는 아직 안경 실장의 위석이 들어 있다. 안경 실장의 정신이 붕괴하여 자해를 시작한 이후로, 병에 들어있던 실장활성제는 급격히 소비되기 시작하여 이제는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활성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위석은 점차 탁해지며 금이 가기 시작한다. 백설이의 위석 조각을 비롯해, 안경 실장의 위석에 박혀있던 돌연변이 실장석들의 위석도 그 붉은 빛을 잃었다.

마침내, 위석 전부가 검게 변했다. 이제 곧 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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