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도리를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5년 전, 20년만의 한파가 몰아닥친 겨울의 일이었다.
편집자와의 술 약속이 갑자기 취소된 바람에 하릴없이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려는 찰나, 웬 꾀죄죄한 실장석 하나가 자실장 하나를 안아들고 내게 다가온 것이다. 오리털 파카로 막아도 베일 것 같은 칼바람을 실장석의 같잖은 옷가죽 한 장으로 버틴다는 건 어불성설이건만, 그 실장석은 곧 파킨사할 듯 파들바들 떨면서도 제법 예의를 갖춰서 인사하는 게 아닌가. 세상엔 애호파도 학대파도 있다지만 난 굳이 말하자면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쪽이어서, 그 조그만 게 대체 무엇을 하려고 내 앞을 막나 하고 시큰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원래는 자식을 키우는 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이번 겨울은 너무나 추워 버티기 힘드니 날이 풀릴 때까지만 잠시 맡아달라는 말이었다. 몰래 탁아를 시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개념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말투까지 실장석치고는 꽤 정중한지라 혹시 원사육실장인가 하고 살펴봤지만 인식칩도 이름표도 없고 옷도 전형적인 들실장의 것인 걸 보면 그런 건 아닌 듯했다. 혹시나 하고 이번엔 자실장을 살폈다. 간혹 분충들이 자기 자식을 학대해놓곤 살려달라며 자작극을 벌인단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실장은 이미 죽어 있었다. 사람도 못 견디는 추위를 친실장의 품속이라 한들 미약한 자실장이 버틸 리가 없었으니. 그렇게 일러주자 친실장은 소리도 못 지르고 그 자리에 엎어져 버렸다. 아, 파킨사했나 싶었지만 기절했을 뿐 아직 살아 있었다. 그냥 두고 가려니 왠지 마음에 걸려 집에 데리고 와 버렸다. 그 실장석이 미도리였다.
미도리는, 정말 보기 드문 개념실장이었다. 따뜻한 물로 씻기고 마른 걸레로 덮어주자 곧 정신을 차린 다음 한 것이 자식의 죽음을 애도하기 앞서 목숨을 구해준 내게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것이었을 정도로.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자신이 무엇을 하는 게 신상에 이로운지 잴 수 있는 실장석은 거의 없으며, 때문에 매 초마다 몇 마리씩 죽어나가고 있는 게 놈들의 현실인 걸 놓고 보면 그와 같은 태도는 정말 희귀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운도 기가 막히게 좋았다. 적어도 학대파가 아닌 날 찾아 왔으니. 흥미가 돋은 난 미도리를 키우기로 결심했고, 4년 뒤 불행한 사고가 생기기 전까지 우리는 한 집에 살았다. 불쌍한 미도리, 눈깔사탕을 한 입에 삼키면 안 된다고 그렇게 일렀건만.
미도리와 함께 지내면서 난 보통 실장석을 기르는 집에선 거의 하지 않을 짓을 종종 했다. 그동안 살면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물론 미도리가 그만한 지성을 가진 흔치 않은 실장석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에 앞서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자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미도리는 내 엉뚱한 시도에 훌륭하게 보답해주었다. 언젠가 미도리는 공원 방향으로 이상한 옷을 걸친 인간들이 몰려가고 난 다음이면 으레 바람에 비명과 피냄새가 섞여 오는 일을 다섯 번은 겪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미도리가 말한 건 2년에 한 번씩 있는 공원구제임이 분명했고, 그 말에 따르면 그녀는 최소 10년은 넘게 살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명할 뿐만 아니라 오래 살아왔기도 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오래 살고 그만큼 많은 걸 보고 들었기에 현명해졌다는 게 맞겠지만. 태어나자마자 죽는 경우도 부지기수인 들실장의 삶에 비하면 그녀는 정말 천운이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오래 산 탓인지 미도리는 종종 내게 믿지 못할 이야기를 하곤 했다. 확실히 1년마다 세대가 바뀌는 실장석의 특성상 오래 살면 살수록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되리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도 미도리가 언젠가 내게 해주었던 걸 기억을 되살려 받아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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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시가 아직 엄지에 불과했던 때의 일인데스.
그땐 와타시도 마마와 오네챠, 이모토챠, 우지챠와 함께 공원에서 살고 있었던 데스. 그땐 그래도 먹이 구하기가 쉬워서 지금처럼 다들 고생하면서 살진 않았던 데스. 다만 그 공원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던 데스.
굉장히 큰 실장이 하나 있었던 데스. 공원의 두목실장이었던데스. 정말이지 커서, 닝겐사마의 허리까지 올라오는 놈이었던 데스. 붕쯔붕쯔를 하면 닝겐사마들도 슬금슬금 피할 정도였데스. 덩치만큼 포악해서, 마음에 안 들면 때려눕히곤 사지를 뽑아버렸던 데스. 다들 당해내지 못해서, 먹을 게 풍부해도 놈에게 바치느라 온종일 굶어야 했던 데스. 게다가 놈은 동족식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놈이었던 데스. 보통은 어쩔 수 없이 하거나 갈 데까지 간 놈들이나 하는 걸, 놈은 마치 콘페이토를 먹듯이 해치웠던 데스. 와타시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오네챠들도, 놈에게 먹혔던 데스.
놈에게도 자실장들이 있었지만 둥지에다 꽁꽁 숨겨두고 언제나 우지챠 한 마리만 데리고 다녔던 데스. 그 우지챠도 무지막지 큰 놈이었던 데스. 뱃속에 있을 때 같이 있던 엄지와 우지챠를 몽땅 먹어 치우고 태어난 놈이라 다들 수군거렸던 데스. 우지챠 주제에 독라 노예를 거느릴 정도로 건방졌던 데스.
다들 그 놈만 보면 치를 떨었던 데스. 하지만 이길 수 없어서 다들 숨죽이고 살았던 데스. 겨우 비축한 비상식량을 빼앗기고, 자실장과 엄지가 잡아먹히고, 우지챠는 큰 우지챠에게 잡아먹히고, 대들면 팔다리가 뽑혀 자판기가 되거나 독라노예가 되는 매일매일이었던 데스. 다들 언제까지 이리 사나 하고 거의 파킨사 직전에 몰려 살았던 데스.
그날까지는 데슷.
어느 날 공원 입구에 웬 독라가 나타났던 데스.
우리 구역의 놈은 아니었던 데스. 분명 다른 데서 쫓겨나 여기까지 흘러온 놈이라고 다들 수근거렸데스. 희한한 건 독라인데 뭘 걸치긴 했다는 것이데스. 얼룩덜룩한 턱받이를, 몇 겹이고 허리에다 두른 놈이어서 다들 희한하게 보고 있던데스.
이윽고 다른 실장이 그 독라에게 다가가서 타일렀던 데스. 분명 매우 마음씨 여린 실장이었던 데스. 여기엔 아주 흉악한 놈이 살고 있어서 머무를 데가 못 되니 차라리 도망가는 게 좋을 거라고 했던데스. 보통 독라를 보면 노예로 삼으려 들거나 자판기로 만드는데 말이데스. 그런데 그 독라는 가만히 듣다가 별안간 이렇게 외치는 게 아닌데스?
‘이 곳에서 가장 강한 놈을 데려오는 데스!’
마치 화난 닝겐사마가 외치는 것처럼 커다란 목소리였던 데스. 옆에서 듣고 있던 몇이 바로 빵콘해버릴 정도였던 데스. 그러자 소리를 들었는지 몇몇 분충이 나뭇가지를 들고 달려왔던데스. 건방진 독라를 자판기로 만들어버려야 한다고 했던데스. 무서워서 와타시는 마마 뒤로 숨었던 데스.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데스.
독라가 손을 내지르자 나뭇가지를 들고 달려든 분충의 몸에 구멍이 나버렸던 데스. 다른 한 놈은 팔을 휘두르자 머리가 한 바퀴 돌고는 그대로 파킨해버렸던 데스. 그러자 다른 분충들이 모두 빵콘해서 흩어져 버린데스. 와타시들은 보고도 믿을 수 없어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데스. 그러자 독라가 먼저 이쪽으로 다가왔던 데스. 마마는 독라가 와타시를 해코지할까봐 꼭 껴안은 데스. 그렇지만 독라는 와타시한텐 관심이 없었데스. 다만 이렇게 말한 데스.
‘이런 친피라론 부족한데스. 가장 강한 놈을 데려와라는 데스.’
마마는 어떤 면에선 무모했던데스. 어쩌면 두목실장을 몰아낼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했던데스. 실패하면 일가실각이지만, 걸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던 데스. 그래서 독라를 두목실장의 둥지 앞에 데려갔던데스. 독라는 둥지 앞에 오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던 데스.
‘가장 강한 놈은 이리 나오라는 데스. 나오지 않으면 겁쟁이 분충일 뿐인데스.’
어느새 구경하러 나온 일가가 그 기세에 모두 빵콘해버린데스. 이윽고 두목실장이 큰 우지챠와 함께 나온데스. 하지만 붕쯔붕쯔도 없이 그저 데스스스 웃기만 했던 데스. 하기야 독라 주제에 감히 닝겐사마도 가까이 않는 자신에게 덤빈다는 게 기가 찼을 것인데스.
‘데스스스, 멍청해보이는 독라데스. 자판기로 쓰면 딱 좋을 것 같은 데스.’
옆의 우지챠도 거들었데스.
‘멍청한 레후. 오마에는 마마의 붕쯔붕쯔만 봐도 빵콘해버린레후. 여기서 그만두면 특별히 와따시의 프니프니 노예로 삼아주는 레후. 목숨을 건질 유일한 방법인 레후.’
하지만 독라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다가갔던 데스. 그러자 두목실장 앞으로 몇몇 분충들이 나선데스. 닝겐사마들도 그렇지만, 힘센 자 곁엔 언제나 아양을 떨어서 콘페이토 조각이라도 챙기려는 분충들이 있는데스. 놈들도 그런 부류였던 데스. 자그마치 열둘이나 됐던 데스. 놈들도 두목실장을 믿고 다른 실장들의 식량을 뺏던 놈들이었던데스. 놈들이 한꺼번에 덮쳤던데스. 우린 분명 독라가 금방이라도 갈기갈기 찢겨서 고기가 될 거라 생각했던데스.
정확히 반대였던 데스. 덤벼들었던 분충들은 하나 같이 어디가 부러지거나 구멍이 나서 쓰러졌던 데스. 대략 눈 세 번 깜빡이자 열두 놈이 모조리 쓰러진데스. 이건 닝겐사마께 거짓 없이 전하는 진실인데스.
그 모습을 보자 두목실장도 조금 두려워졌는지 약간 물러났던데스. 하지만 두목이 고작 독라에게 밀려서야 체면이 서지 않았던 데스. 결국 두목실장은 붕쯔붕쯔로 위협하며 독라에게 다가갔데스. 손을 뻗어서 매번 하던 것처럼 팔을 뽑으려 했던 데스.
독라가 더 빨랐던 데스. 뻗은 팔을 잡아서 비틀어버린 데스. 이상한 소리와 함께 두목실장의 팔이 풀잎처럼 덜렁거렸데스. 그와 같은 소리는 언젠가 학대파가 찾아와 이웃의 실장의 목을 비틀어 뽑을 때 났던데스.
한 번도 그렇게 다쳐본 적이 없는 두목실장은 데샤아아아악 하고 울부짖으며 뒹굴었던데스. 그러자 독라가 그 위로 올라타고는 두목실장의 얼굴을 연신 갈겼던데스. 얼마나 세게 갈겼는지 한 번 갈길 때마다 얼굴이 안으로 쑥 들어가는데스. 피범벅이 되어서 눈이 물들어 강제출산이 되어버린데스. 뎃데레- 하고 두목실장이 우지챠를 쉴 새 없이 쏟았지만 독라는 멈추지 않았던 데스. 독라가 손을 멈췄을 땐 공원의 모든 실장들이 모여 구경하게 되었고, 두목실장의 머리는 목 위에서 사라져 있었던 데스.
큰 우지챠는 ‘마마가 핀치레후. 세레브한 와타시는 독립하는 레후-’하면서 도망가고 있었던데스. 독라는 그마저도 보내지 않았던 데스. 꼬리를 낚아채고는 땅바닥에다 세게 내리쳤데스. ‘레뺫-’하고 우지챠의 눈알이 튀어나간데스. 그걸로 두목실장의 시대가 끝장난데스. 독라는 두목실장의 시체에서 턱받이를 뺏들고는 허리에다 매달았데스. 그제야 와타시들은 독라가 다른 여러 곳의 두목실장을 끝장냈다는 걸 깨달은 데스.
제일 먼저 그 전날 자실장을 잡아먹힌 실장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던데스. 그 뒤에 이어 모두가 두목실장의 시체에 달려들었던데스. 복수의 시간이었던 데스. 시체는 금방 뱃속으로 사라지고 갓 태어난 우지챠들도 간식이 된데스. 두목실장의 집도 털린 데스. 자실장들도 모조리 끌려나와 모두의 식사로 전락한 데스. 닝겐사마의 말로 하면 인과응보인 데슷?
하지만 독라는 시원찮은 표정이었던 데스. 다른 실장들이 둘러싸고 모두의 보물이라고 치켜세웠지만 기뻐하는 기색이라곤 보이지 않았데스. 와타시는 궁금해 하다가 문득 독라의 팔을 봤던 데스. 독라의 팔 끝엔 조그만 상처가 나 있었던 데스. 아마 두목실장이 죽기 전에 마지막 발악으로 물어뜯었던 게 분명한 데스. 독라도 그걸 보고 있었던 데스. 그러곤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데스.
‘아직 수행이 부족한 데스...’
독라는 그 길로 공원을 떠났고, 두 번 다시 볼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데스.
이 이야기는 모두 참인 데스. 와타시가 보장하는 데스.
이 이후에 공원은 평화로워졌지만 얼마 못 가 또 위험한 일이 생겼던데스. 마마가 공원을 버리고 와타시를 데리고 나와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건 바로 그 때문인데스.
그 이야기에 대해 듣고 싶은 데스?
그렇다면 내일 아마이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달라는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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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미도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내게 해주곤 했다.
오늘 같이 바람이 차가운 날이면 으레 그때의 기묘한 이야기들이 떠오르곤 하지만, 다른 이야기들을 꺼내는 건 다음 기회에 미루도록 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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