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

사육실장 미도리가 점점 분충성을 드러내자 철웅은 결단을 내려야 될 때가 다가왔음을 느꼈다.
미도리를 처음 만났던 영등포공원에 미도리를 데려온 철웅은 말했다.

- 안되겠다. 미도리. 오늘로 너와 난 남남이다. 가라. 난 널 더이상 감당 못하겠다.

그 말을 들은 미도리는 처음엔 똥닌겐 노예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협박하며 걷어찼지만, 철웅의 태도가 더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는것을 알게되자 비굴한 표정으로 계속 애교를 떨어보다가 그것마저 통하지 않자 마침내 울부짖기에 이르렀다.

"철... 철웅상, 이 추운 겨울에 아무것도 없이 밖에 나가면 와타치는 살 수 없는데스. 예전의 정을 봐서라도..."

- 저기 까만 골판지 상자 보이지? 예전의 정을 봐서 내가 만들어 논 거다. 수건 한장이랑, 물통 하나, 그리고 운치굴도 넉넉히 파 놨다. 저기서 겨울 나라.

"그래도 먹을거 하나 없이..."

- 자. 이 상자 받아라. 이게 내 마지막 선물이다. 단, 골판지하우스 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운치굴 안에다 놓고 열어봐라.
너 나랑 같이 살 때는 내 말 더럽게 안들었지만, 이 마지막 말 만큼은 꼭 들어야한다.

"데..."

철웅이 떠나버린 자리를 망연자실한 눈으로 쳐다보던 미도리는 선물받은 상자를 들고 골판지하우스를 향해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런데, 박스가 움직이고 안에서 무슨 소리까지 들리는 것이 아닌가. 미도리는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걸까.
아직 골판지하우스에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철웅도 가벼렸으니 상자 안쪽을 살짝 쳐다봐도 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들았다.
미도리가 조심조심 상자를 열어 안을 들여다 보려는 순간, 갑자기 상자가 열리면서 자실장들이 튀어나왔다.

"어서 빨리 도망가는 테치! 아까 그 닌겐상이 와타치다치가 저 오바상 겨울나기용 운치굴노예랑 구더기자판기로 쓰여질거라고 했던 테치!"

자실장들이 다 도망가버린 빈 상자안 구석에는 작은 우지 한마리만 남아 꼬물거리고 있었다. 허탈함에 빠져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던
미도리의 눈에 우지의 포대기에 쓰여진 철웅의 익숙한 글자가 들어왔다.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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