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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대결

 

[뎃데로게~ 뎃데로게~ 뎃뎃뎃 뎃데로게~♪]

오늘도 공원에선 실장석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행복한 내일을, 스테이크와 스시와 콘페이토로 가득한 미래를 꿈꾸는 노래. 인간의 귀엔 그저 멱따는 소리를 좀 더 규칙적으로 질러대는 것뿐이지만, 실장석에겐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지금도 한 마리의 실장석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보통 노래를 부르는 건 자실장 정도로, 성체로 자라면 임신 중 태교할 때를 제외하곤 별로 부르진 않지만, 어째선지 이 실장석은 다 자란 상태에서도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실장석 주제에 삶이 즐거운 걸까, 아니면 자신의 노래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진 걸까.


“오호, 노래를 부르는구나?”

[뎃?]

한 남자가 노래실장에게 다가간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지만 눈엔 살기가 그득하다.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굳이 다가가고 싶지 않은 인상이지만 실장석이 인간의 표정과 속내를 구분할 리 만무하다. 동족의 피가 묻은 빠루를 들고 있어도 길러준다고만 하면 눈이 뒤집히는 놈들 아닌가.

이놈도 마찬가지다. 잠시 경계심을 갖지만, 곧장 이어지는 ‘올리기’에 곧 풀어지고 만다.


“정말이지 기막힌 노래인데? 너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녀석은 처음 봤는걸.”

[데프프프, 똥닝겐이 와타시의 진가를 알아본 데스. 그런 데스우, 와타시만큼 노래를 잘 부르는 놈은 이 공원엔 없는 데스. 이런 특별한 와타시를 데려가 키우는 건 어떤 데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닝겐은 정말 큰 실수를 하는 것인 뎃샤아아아!]

“하하, 자신감 넘치는걸. 마음에 들었어."


남자의 눈동자가 번뜩인다. 분충의 머리를 내려쳐 터뜨릴 셈인가?

아니다. 아직 아니다. 뭔가를 숨기고 있다. 노래실장을 내려다보던 그는 곧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이죽거린다. 모르긴 몰라도 실장석에겐 안 좋은 일이다. 애초에 사람과 마주한 실장석에게 좋은 일이란 좀체 없는 법이지만.


“그렇다면 노래로 대결을 해보자고. 네 노래에 감명 받게 된다면 난 네가 말하는 대로 집에 데려가 사육실장으로 키워주마.”

[정말인 데스우? 데프프프, 나중에 가서 후회하지 마는 데스. 똥닝겐은 분명 와타시를 데려가 키우게 해달라고 사정하게 되는 데스.]

“대신, 조건이 있단다.”

[데에?]

“내 노래를 듣고 한 번이라도 빵콘을 하지 말 것. 하면 그 즉시 넌 죽든 살든 내 맘대로 만들 테니까.”

[데프프프, 쉬운 일인 데스. 똥닝겐의 노래로는 운치는커녕 눈물도 흘리지 않는 데스.]

“그래? 그럼 약속한 거다?”

남자의 확언에 실장석은 이미 승리하기라도 한 듯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멋진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인간의 모습이, 그 뒤로 이어지는 스테이크와 스시로 둘러싸인 나날이 재생된다. 산더미처럼 쌓인 콘페이토를 씹으며 숨쉬듯 자를 낳는다. 하나 같이 예쁜 흑발실장들. 마마를 닮아 노래도 기가 막히게 부른다. 아름다운 합창이 노예인간을 거느린 집안에 드높이 울려 퍼진다.

그것은 뇌내에서 분출된 화학물질이 불러일으킨 망상. 망상은 행복감을 고양시키고, 불행한 실장석의 삶으로 피폐해진 정신을 안정시키는 한편 온몸의 생명력을 강화시킨다. 일종의 체내마약이라 할 수 있다. 온갖 험악한 환경에서도 실장석들이 끈덕지게 살아가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행복회로가 만능은 아니다. 때때로는 가장 피해야 할 순간에 발동되어 주인을 위기로 몰아세우는 것도 바로 이 행복회로인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같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실장석은 노래를 부른다. 목청이 찢어지도록.


[뎃데로게~ 뎃데로게~ 뎃뎃뎃 뎃데로게~ 뎃데로게 젯데로게 젯젯젯 젯데로게~♪]


지나가는 학대파가 없다는 게 놈에겐 행운이다. 듣는 순간 바로 허리가 분질러지도록 발차기를 날렸을 테니까. 남자도 들어주기 힘든지 얼굴을 조금 일그러뜨린 그 노래는 실장석들이라면 누구나 부르는 행복의 노래였다.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하여 태어나면 부족할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인간은 누구나 노예이며 잡아다가 세레브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기만의 노래. 콘페이토와 스시와 스테이크처럼 어째서 놈들이 태어날 때부터 아는지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 중 하나였다. 좀 더 생존에 유리한, 그러니까 인간과는 관계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대신 전수할 순 없는 걸까.

노래는 계속 이어졌지만 남자의 표정은 조금 일그러진 채 그대로였다. 물론 더 부드러워지지도 않았다. 한참을 부르고서 남자의 반응을 살핀 노래실장은 조금 골이 난 듯 했다.


[데뎃! 똥닝겐! 와타시가 고귀한 노래를 열심히 불렀는데도 박수 하나 안 치다니 졸렬한 데스! 아니면 와타시의 노래가 너무 감격스러워 굳어버린 데스? 뭔가 반응을 보이란 뎃샤아아아아!]

“아, 끝났니? 그럼 이제 내가 불러도 될까?”

[부르든지 말든지 마음껏 하란 뎃샤! 어차피 똥닝겐의 노래는 와타시에겐 아무런 감흥도 없을 것인 데스! 그러니 얌전히 와타시를 모실 준비나 하란 데스!]

“뭐, 졸렬하지도 감격스럽지도 않지만 말이지. 그럼 부른다.”


이번엔 남자가 노래를 불렀다. 그건 희곡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번쯤 들어봄직한 노래였다. 가사가 조금 다르긴 했지만.


「옛날에 임금님이 있었는데
실장석을 기르고 있었네
자기가 낳은 자식처럼
굉장히 사랑했지

어느 날 재단사를 부르니
재단사는 금방 대령했네
자, 실장석의 윗도리와
바지의 치수를 재라!

벨벳에다 비단 안감을 댄 옷을
실장석은 입었다네
저고리엔 리본에다
십자가도 달려 있고

금방 재상이 되어
커다란 훈장도 달았지
거기에다 자들도 궁중으로 들어가
벼락감투를 하나씩 썼다네

고관대작과 귀부인들은
그 바람에 두통거리,
왕비와 시녀들도
투분한 운치투성이

열 받아도 으깨서는 안 되고
내쫓아서도 안 되었다네」


[데프프프, 당연한 데스. 와타시는 응당 그런 세레브한 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는 데스. 똥닝겐이 생각보다 아첨을 잘하는 데스? 설마 노래로 와타시의 미래를 설명해줄 준 몰랐던 데스. 패배를 처음부터 인정한 데스? 좋은 자세인 데스. 그럼 이제 와타시를 데려가서 일단은 아와아와한 목욕을……]

“아직 후렴 안 끝났어.”

[데뎃?]


그리고 이어지는 후렴.


「우리들이야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바로 으깨서 죽여 버린다!」


으직-


[데뵤오오오오오오오오옥?!]


후렴과 함께 남자는 발을 들었다가 힘껏 짓밟았다. 짓밟힌 건 노래실장의 발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발등 전체가 짓이겨진 상황. 뒤로 발라당 넘어진 노래실장은 사지를 버둥거리며 빵콘을 했다. 눈물을 흘리며 고통에 울부짖는 그 모습을 보며 남자는 이제야 마음이 후련하다는 듯 쾌활히 웃었다.


“이런, 빵콘해버렸네. 그럼 얘기는 끝났지.”

[웃기지 마는 데스 똥닝겐! 오마에가 와타시의 다리를 아야아야해서 그런 데스! 반칙인 데스! 치사한 데스!]

“난 빵콘을 안 하면 된다고 했지 손을 안 댄다고 한 적은 없는 거 같은데. 뭐, 키워줄 생각도 없었지만.”

[데갸아아아아악! 이 똥닝겐이 와타시를 속인 데스! 당장 운치를 처발라서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뎃샤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러니까 똥벌레 멱따는 소리로 산책하는 사람 심기를 건드리면 못 쓰지… 멍청한 분충은 용서하지 않아요!”


남자의 노래가 이어졌다. 뒷일을 직감한 노래실장이 비명을 지르며 그만두라고 했지만… 사람도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낱 실장석 따위가 말로 사람을 막을 순 없는 노릇인 것이다. 후렴구가 반복되고, 남자의 발길질도 계속되었다.


「우리들이야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바로 으깨서 죽여 버린다!

우리들이야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바로 으깨서 죽여 버린다!

우리들이야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바로 으깨서 죽여 버린다!

우리들이야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바로 으깨서 죽여 버린다!」


네 개의 적록색 얼룩과 함께 달마가 된 노래실장은 데히, 데히 거리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 옷을 뜯어다 신발에 묻은 피와 체액을 대충 닦아낸 남자는 근처에서 기웃거리는 실장석들을 보며 말했다.


“이거 먹어도 된단다.”

[데갸아아아악! 그만두는 데스! 와타시는 먹는 게 아닌 뎃샤아아아아아악!]


남자가 등을 돌리자마자 달려드는 동족들을 보며 노래실장은 괴성을 질러댔지만, 말했잖은가, 사람도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실장석도 실장석의 말을 듣지 않는다. 도덕이라는 브레이크도 없는 판에 불구가 된 동족은 그저 맛 좋은 먹이일 뿐. 그렇게 노래실장은 한순간에 고깃덩이가 되어 동족들의 식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신이 이 공원에서 가장 고귀하다고 믿고 있던 놈의 입장에선 처참한 최후겠지만, 애초에 놈은 고귀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만과 무지로 명을 재촉한 평범한 들실장일 뿐이다.

동족의 혈육을 씹고 뜯는 실장석들은 좀처럼 맛볼 수 없는 고기의 맛에 흠뻑 취한다.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아지자 너나 할 것 없이 노래가 나온다. 마마의 마마, 또 그 마마의 마마로부터 위석을 통해 전해 내려온 행복의 노래.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한 데스~ 따뜻한 햇님이 있고 먹을 건 풍족한 데스~


[뎃데로게~ 뎃데로게~ 뎃뎃뎃 뎃데로게~ 뎃데로게 젯데로게 젯젯젯 젯데로게~♪]

“햣-하!”


몰려든 실장석들을 보고 난입한 학대파의 빠루가 머리 위로 내려쳐질 때까지, 노래는 이어졌다.


-끝-

***

여담으로 남자가 부른 건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노래인 레후
물론 원본은 실장석이 아니라 벼룩인 레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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