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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실장 콘테스트



한 남자가 실장석을 데리고 사육실장 콘테스트 예비 심사실로 들어섰다. 실장석은 남자의 바 
짓자락을 붙잡은 채 방 안을 산만하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입을 헤 벌리고 콧물을 훌쩍이는 
그 얼굴에서는 한 조각의 지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긴 책상 뒤에 나란히 앉은 세 명의 심사위 
원이 시선을 교환하며 쓰게 웃었다. 
짧은 침묵을 깨고, 심사위원 한 명이 서류를 흘낏 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참가번호 44번 도시악 씨... 혈통서가 없네요?" 
"네. 지인한테 분양받았습니다. 이름은 초록이라고 해요." 
"아, 네...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요새 실장석들은 뜨개질에 그림 그리기에 요리, 곡예까지 
하는 녀석들이 수두룩해서요. 어지간한 재주로는 힘드실 겁니다." 
"아, 걱정마세요.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학대는 안 됩니다. 방송에 못 내보내요." 
"에이, 그런 거 안 해요, 안 해." 
남자가 웃으며 실장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 이 녀석, 사람 말을 할 줄 알아요." 
"예?" 
뒤로 삐딱하게 젖혀져있던 심사위원들의 상체가 일제히 앞으로 기울었다. 
"지금 그 실장석이 음성 조합 링갈 없이 자체적으로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겁니까?" 
"네, 링갈 없이요. 한국말뿐 아니라 영어도 조금 할 줄 압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남자가 씩 웃고는 자신의 실장석을 향해 물었다. 
"자, 초록아. 개개의 숫자 대신에 숫자를 대표하는 일반적인 문자를 사용하여 수의 관계, 성 
질, 계산 법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을 뭐라고 하지?" 
"대수!" 
세 심사위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저기요, 44번..." 
끼어드는 심사위원을 무시하고 남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잘했어! 그럼 영어를 해보자. 영어로 '낮'이 뭐지?" 
"데이(Day)!" 
"그럼 영어로 '저것'은 뭐라고 하지?" 
"댓(That)!" 
"잠시만요, 도시악 씨." 
심사위원이 재차 끼어들었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맞았어, 초록아! 자, 그럼 마지막으로, 한국어 사투리 하나만 해볼까? '아니오, 괜찮습니다.' 
를 충청도 사투리로 하면?" 
"됐수!" 
"그렇지!" 
그 문답을 끝으로 남자가 다시 심사위원석을 바라봤다.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보셨죠? 우리 초록이가 이렇게 대단하다니까요?" 
심사위원들은 헛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네... 참가번호 44번..." 
심사위원 한 명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탈락입니다." 
"예? 그게 무슨..." 
"나가시는 문은 오른쪽입니다. 45번! 들어오세요!" 
심사위원이 남자의 말을 자르고 서류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 단호한 태도에 남자는 말을 꺼 
내려다 말고 출구로 향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남자의 뒤를 아장아장 따라가던 실장석이 남자의 바짓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러게 사투리는 빼자고 하지 않았냐는 데스우..." 
그 입에서 흘러나온 건 틀림없는 한국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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