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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보고 오늘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무 것도 모르고 블랙기업에 취업해 격무에 시달리며 건강도, 대인관계도 갉아먹힌 지난 1년.
마침내 참지 못하고 사표를 낸 것이 지난 주였다.

자신감도 체력도 떨어질대로 떨어져, 나는 휴식 겸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계절에 맞춰 흩날리는 낙엽을 보며, 난 새삼 내 처지를 되새겼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같은 낙오자를 받아준 곳은 그 회사 뿐인데, 그런 곳마저 내치고 나와버린 나는 대체..

서서히 가라앉는 기분을 환기시키려 애써 공원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데, 독라 들실장들이 눈에 띄었다.

데슷- 거리며 플라스틱 스푼 같은 것으로 땅을 파고 있는 그 모습에 흥미가 일어 나는 휴대폰의 링갈 앱을 키고 말을 걸었다. '다들 열심히 일하는 데스-' 뭐 이런 말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데슷, 데슷!]

뭐야, 진짜 데슷거리는 거였어?

"다들 열심이네."

[데? 닝겐상인 데스? 와타시타치에게 무슨 볼일인 데스?]

"땅을 왜 파고 있는지 궁금해서."

[와타시타치는 고용되어 노동을 하고 있는 데스]

"고용?"

[그런데스. 땅을 파면 그 대가로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받는 데스.]

호오, 실장석 세계에 급여라는 개념이 있었을 줄이야. 고용주는 꽤나 똑똑한 양충인 것 같다.

만들어진 땅굴을 봤더니 꽤나 거대한 크기로, 왠만한 골판지 하우스보다는 더 클 듯 싶었다.

"대단하네. 일에 불만은 없어?"

[데에..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데스..]

어쩐지 독라 들실장들의 표정이 흐려졌다.

괜스레 그 표정이 신경쓰여 캐물어보니 사실 할당량도 많고, 보상도 턱없이 적어 그리 좋은 일은 아니라고 한다. 자신의 키높이의 두 배가 넘는 땅을 파고도, 주어지는 것은 기껏해야 두 끼를 간신히 채울 수 있는 양의 식량과 신문지를 접어 만든 조잡한 잠자리 뿐이라나.

[하지만 이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독라인 와타시타치는 살아갈 수 없는 데스..]

"......이런 씨발...."

[데?]

"너희를 고용한 녀석을 좀 만날 수 있을까?"

[그거야 어렵지 않은.. 아, 저기 오는 데스.]

덩치 큰 성체 실장석 한 마리가 독라들에게 걸어왔다. 손에 든 것은 끝이 뾰족한 나뭇가지이다.

[오마에타치, 지금 게으름 피는 데스? 식량을 받기 싫은 데스?]

[아, 아닌 데스!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데스!]

녀석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나뭇가지를 쳐들고 독라들을 매질하기 시작했다.

[와타시가 보기에는! 아직도! 할당량이 한참이나 남은 데스! 해가 지기 전에 끝내라고 했던 말기억나지 않는 데스?]

[데벳! 데벳! 데에엥! 와타시타치는 최선을 다한 데스, 오로롱..]

"그만해라."

[오마에는 뭐인.. 데? 닝겐상?]

"그래 닝겐상이다 이 좆같은 분충 새끼야. 이 싸가지 없는 새끼가 같잖게 닝겐 흉내를 내? 그것도 시발 회사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 앞에서 블랙기업 흉내를? 넌 오늘 뒈졌다."

[데베에엣?!]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한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겨내자 녀석은 땀을 삐질삐질 흘려대며 몸을 바짝 엎드리고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와타시가 잘못한 데스! 하지만 와타시도 어쩔 수 없었던 데스! 땅 위의 집은 안전하지 못해서 흙씨를 파고 집을 지으려 했는데, 와타시 혼자만으로는 무리인 데스! 게다가 와타시는 굶어죽어가던 이 독라들을 살려준데스! 보상씨가 적은건 사실이지만, 와타시의 식량까지 안배하면 그게 최선이었던 데스!]

기관총처럼 말을 연달아 내뱉는 녀석을 보니, 내가 괜히 감정이입을 심하게 했나 싶어 조금 화가 가라앉았다. 거기에다, 형식이야 어쨌든 이 녀석이 저 독라들을 살려준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하기야 뭐.. 알겠어, 이번에는 봐줄게."

[....?! 정말인 데스?]

"그래. 대신 조건이 있다. 우선 보상 및 처우 개선에 대해.."

퍽, 소리와 함께 고용주 실장석의 머리가 깨져나갔다. 뒤에서 돌을 주워든 한 독라가 고용주의 머리를 강하게 가격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벙쪄 뭘 어쩌지도 못하고 바라보는 나에게 독라들이 말을 걸었다.

[고마운 데스, 닝겐상! 닝겐상이 보검을 없애준 덕분에 기습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스!]

보검이라는건 아까 튕겨냈던 나뭇가지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

"너희, 이 녀석 죽이면 안되는거 아니었어?"

[데? 어째서인 데스? 저 똥주인은 와타시타치를 지겹도록 괴롭힌 데스. 절대 용서할 수 없었던 데스.]

"지금 가을이잖아."

[그게 무슨 상관인데스?]

"저 녀석이 주는 것만 받아먹고 있던 너희가, 이제 와서 어떻게 월동 준비를 해? 겨울이 가까워져서 식량 다툼도 치열할텐데, 가뜩이나 너희는 독라라서 근처에만 가도 린치당할걸?"

[데.. 데에..]

[데베에에에에에에에엑?!!!!]

[생각하지 못했던 데스! 핀치의 예감 데스! 이제 어떡하면 좋은 데스?! 오로롱, 오로롱..]

울고불며 난리치는 독라들을 뒤로 하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이 공원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암울함이 가득했던 내 가슴속에 희망이라는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그래, 시발 저딴 머저리들도 취업을 했는데.."

나는 적어도 저 바보들보다는 유능하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해야할 것은 그대로 주저앉아 절망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든 새로운 활로를 찾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리라.

살아갈 힘을 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나는 타오르는 석양을 바라보고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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