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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지다


가을은 풍요롭다.
물론 이것은 사람에게나 해당하지 실장석에게 있어서 가을은 봄이나 여름과 같다. 그저 날씨가 좋은 시기. 하지만 잘못된 정보로 아직까지 수없이 많은 실장석들은 가을은 풍요롭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 중 하나의 이야기 이다.


푸른하늘이 펼쳐진 가을. D시의 공원은 겨울에 대비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실장석들로 바글거렸다. 이때 만큼은 동족식도 거의 하지 않고 심지어 동족식을 하는 개체가 발견되면 본능적으로 주변의 성체실장들이 모여 동족식 개체를 집단린치, 고기밥으로 만들정도 였다.

가을의 공원은 다른의미로 풍요롭게 변한다. 공원 거리와 화단엔 엄지와 자실장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낙엽을 모으고 있으며 성체실장들은 안전해진 공원에 안심하고 평소보다 몇시간을 더 투자해 먹이를 구한다.

일반적으로 가을에 낳은 새끼, 즉 추자는 인간이 보기엔 노동력이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처참하다. 노동력을 수치로 표현한다면 성체실장이 20.
자실장이 7.
엄지실장은 3.
저실장은 1.

하지만 없다싶이한 추자들의 노동력도 숫자앞에선 나름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실장석들은 어떻하면 겨울을 잘 보낼수 있을까 몸으로 겪으면서 퍼트렸다. 7,3짜리 노동력도 10마리, 20마리가 움직이면 상당하게 변한다. 추자들은 태어나서 몇일 안가 노동을 하지만 친실장의 거짓에 넘어가 하루마다 친실장에게 누가 더 도움(노동)을 주었는지 서로 비교하고 뽐낸다. 일등은 친실장의 ‘착한아이(친실장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부드럽게 칭찬하는 행위)’. 태생적으로 관심에 민감하기에 어린 실장석들에겐 그야말로 최고의 보상이다. 때론 경쟁이 심하게 과열되어 싸우거나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왕왕존재하지만 숫자가 많다보니 친실장도 서너마리가 죽어도 신경조차 쓰지않는다.

나름 경험이 풍부한 성체실장은 추자들의 머리카락과 옷을 빼앗는다. 어차피 노동만을 위해 태어난 녀석들이다. 실장석에게 하드한 노동을 하루종일 하게된다면 금방 몇주 지나면 옷과 머리카락은 헤지고 뜯어져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나름 옷과 머리카락이 멀쩡한 녀석들과 갈등이 생겨 서로 다투고 싸우다 불구가 되어 노동을 할수가 없게 된다.

“오늘은 와타치가 착한아이 받는 레치!”

팬티한장만 입은 엄지실장 한마리가 꼬물거리며 일어나 힘차게 외쳤다. 누구할거 없이 반독라이기에 차별이 생기지 않으며 오히려 반독라라서 서로간의 결속력이 생긴상태. 심지어 밖에서 일하는 다른 동족들도 반독라이기에 아무렇지도 않다. 옷과 머리카락을 빼앗겼을땐 무척 힘들었지만 집 천장위에 나뭇가지에 걸린 새것같은 깨끗한 옷을 보며 마마에게 잔뜩 착한아이 받아 옷을 돌려받을 생각이 가득했다. 엄지는 열린 뒷구멍으로 나가 팔을 앞뒤로 붕붕 두어번 흔들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 비록 오네챠들과 달리 몸이 작고 힘도 약하지만 엄지들 사이에선 자신이 가장 우수하다.

뛰어난 눈썰미로 낙엽과 마른풀쪼가리를 잘찾고 간혹 죽은 벌레들도 발견하기에 오네챠들 사이에서도 인기만점. 제대로 일도 못하는 다른 엄지들은 그저 구더기 프니프니말곤 할줄아는게 없지만 자신은 다르다. 구더기 프니프니말고 다른 일들을 할수있기에 자실장과 친실장에게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느낄수가 있었다.

엄지실장이 이쯤오게되면 구더기 프니프니와 돌보기는 몹시 하찮게 느껴진다. 유일한 존재의 이유인 구더기 돌보기를 통한 삶의 연장을 구더기가 아닌 다른 쓸모를 표출시킬수 있기에 엄지의 콧대와 자만심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와타치는 다른 레치. 와타치는 특별한 레치!”

마르고 가는 풀 한개를 질겅거리며 이빨로 끊어 한손에 들고 휘적이며 걷는다. 지금까지 수백번은 왔다갔다한 길이다. 보잘것없는 실장석이지만 그래도 수십마리가 풀과 낙엽, 작은 돌멩이를 치우며 다닌 길은 제법 정돈되어 걷기 편하게 변했다. 그래봤자 인간이 보기엔 위쪽에 길게 자란 풀숲으로 풀밭과 다를바가 없지만 크기가 작은 실장석들은 은연중에 체감을 하고 있었다.

이 일가는 다행히도 춘자가 없었다. 예전에 친실장이 말하길 ‘불행한 사고’로 더 큰 오네챠들이 죽었다고 한다. 그 덕분일까. 들실장들이 먹는 일반적인 먹이가 아닌 똥과 잡초, 약간의 음식물쓰레기를 섞어 만든 먹이를 잘 버티며 먹는다. 춘자가 없어 제대로된 음식물쓰레기는 친실장이 독식하지만 감히 친실장에게 불만을 토하는 개체는 없었다. 엄지는 자실장도 똑같은걸 먹기에 딱히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춘자가 있다면 옛날옛적에 춘자와 추자사이의 간극으로 인한 불화가 찾아왔으리라.

“오늘은 엄청난걸 도전하는 레치! 오늘은 반드시 밥을 찾아내서 마마에게 착한아이 소리를 듣는 레치!”

의욕과 자신감이 가득한 엄지는 선선한 바람을 맞이하며 힘차게 걸었다.

엄지는 자신이 조금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자실장인 오네챠나 동생인 이모토챠들과 달리 찾는것을 잘했다. 다른 오네챠나 이모토챠들은 보고도 지나치는걸 캐치할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몸이 작아 결국 자실장인 오네챠에게 말해 자신이 찾은 값진 것들은 항상 오네챠들의 몫이 되어 벌써 두번이나 착한아이를 빼앗겼다. 더이상 양보할수가 없다. 엄지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알아낸것이 있다. 낙엽, 종이, 마른 풀 같은것도 중요하지만 친실장에게 착한아이를 받을수 있는 것은 바로 ‘밥’을 구하는 것이라는걸. 실제로 무거운 곤충사체를 옮길수 없기에 자실장인 오네챠에게 말해서 옮긴뒤 그것을 옮긴 오네챠는 그날 착한아이를 받았다. 하지만 의미있는 크기의 곤충사체는 무겁고 크다. 자신은 옮길수 없다.

“아닌 레치....딱 하나, 있는, 레치..!”

엄지는 일주일전 친실장이 들어보고 만져보라던 실장푸드와 콘페이토를 기억해냈다. 실장푸드와 콘페이토는 놀라울정도로 가볍고 엄지인 자신이 두개나 들수있는 크기였다. 친실장은 날이 추워지면 이렇게 모은 맛나고 값진 밥을 추운 바람이 사라지기 전까지 집안에서 행복하게 다같이 먹을거라 하였다.

“할수있는 레치!”

친실장은 춘자도 없고, 전부 다 반독라에 먹는것도 다 똑같은걸 주어서 이번 겨울나기는 성공적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누가 알았을까.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것이 비수가 되어 자신을 찌를것이라는 걸.


엄지는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구두가 피에 젖어 축축할 정도지만 엄지는 아픔을 모르고 걸었다. 그렇게 걷자 엄지의 눈엔 거기서 거기같던 수풀들이 사라지고 신세계가 펼쳐졌다.

-빨리 일하는 데스! 오마에들은 노예인 데스!
-마마아! 마마아! 이상한 아줌마한테 잡혀버린 테치! 옷도, 머리카락도 빼앗겨 버린 테챠아! 도와주는 테치! 구해주는 테치이!
-인간씨 푸드와 콘페이토를 주는 데스! 아니면 와타시를 대신 길러...데보릿!
-레챠아! 오네챠 와타치 먹는게 아닌 레치! 와타치 먹지 마는 레치!
-테프프...고기..고기가 있는 테갸아아! 아줌마는 누구인 테짓!
-누구 맘대로 이런 시기에 동족식을 하는 데스?
-인간씨! 똥인가아아아아안!! 당장 서라는 데스! 당장 멈추는 데스! 와타시를 버리는 것은 세계의 손실...주인님! 주인님 제발 와타시를 버리지 말아주는 데스으——!! 제발 와타시도 같이 데려가주는 데스! 데에에엥! 데에에에에엥! 오로롱~!
-시발 똥벌레 새끼들 봄여름가을 아주 지긋지긋하게 새끼를 치는 구나. 죽여도 죽여도 끝이없어! 끝이! 다 뒈져라 햣-햐!
-모두 도망치는 테챠아! 미친 인간이 날뛰는 테-깃

그것은 지금까지 본적없는 광경이였다. 일하는 놈, 아첨하는 놈, 싸우는 놈, 우는 놈, 도망치는 놈, 애원하는 놈 그야말로 모든것이 이곳에 있었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공원 중앙 분수지역은 인간과 실장석이 빚어낸 혼돈으로 가득했다. 피와 살점이 사방에 튀기는 살벌한 곳 바로 옆에선 구름같이 한 인간을 둘러싸고 봉지에 손를 넣고 뿌리는 것을 줏어 먹거나 옷과 두건안에 넣는 광경이 있었다. 머리가 으깨져 빵콘한 성체실장 총구로 점막에 쌓인 구더기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바닥에 질척이는 살점과 똥을 먹기위해 구더기실장들이 꿈틀거리며 뭉쳐있었다.

엄지실장은 한참을 보다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본능이 가면 죽는다는 것을 속삭이고 있었다. 실제로 눈에 꽤 보이던 엄지들의 숫자는 급속하게 없어지고 자실장과 성체, 아무것도 못하는 구더기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구해야 하는 레치. 마마아게 착한아이 받는 레치!”

엄지는 손에 힘을 꾸욱주며 혼돈의 장소로 몸을 내던졌다.




“...레..”

엄지는 부어올라 잘보이지 않는 시야도, 뜯어져 사라진 한쪽 팔도 상관없었다. 엄지의 다른 팔엔 소중하게 꼬옥 안은 실장푸드 한개가 존재했었다. 비록 푸드는 똥과 피에 젖어있었지만 푸드는 푸드. 변하지 않는다. 엄지는 솟구쳐오른 성취감과 행복감에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 굉장한 데스! 엄청난 데스! 오마에! 이리오는 데스. 오늘은 오마에가 받는 데스!”

“레챠아! 해낸 레치! 한 레치! 해냈다 레치!”

엄지실장은 친실장이 오는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올수 있었다. 실장푸드를 안고. 친실장은 고작 엄지주제 그 무시무시한 중앙분수대에서 푸드를 가져온 엄지를 무척이나 칭찬했다. 실장푸드는 귀하다. 가볍고 보존력이 엄청나며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하다. 피와 똥이 묻었지만 뭐 어떤가.

“...그런 데스. 그런 방법이 있는 데스.”

친실장은 집안을 보았다. 춤추며 이야기를 하는 짝팔 엄지와 그런 엄지를 보며 자실장들과 다른 엄지들은 눈을 빛내며 듣고 있었다.

“내일은 전부다 엄지를 따라서 푸드를 모아오는 데스. 그저 자실장 2개, 엄지 1개씩만 가져오면 거기서 모은 나머지 푸드들은 먹던 버리던 알아서 하는 데스. 가져온 것들에겐 예외없이 착한아이를 해주는 데스.”

“”네 테치(레치)!””

다음날 짝팔 엄지를 선두로 자실장들과 엄지실장들은 길을 나섰다. 그들의 눈엔 흥분과 자신감, 의욕이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친실장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추자들을 기다렸다. 다음날도 돌아오지 않자 친실장은 깨달았다. 추자들은 다 죽었고 다시 추자를 낳기엔 시간이 안된다는 것을. 목표한 보온재의 양은 한참이나 남았고 보존식도 아직 반도 못채웠다.

“-데프프..이제 와타시는 끝난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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