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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실장, 인생



이것은 내가 집 근처 공원에서 저번주 3일간 겪은 일이다. 원래 일기를 쓰는 습관은 없지만,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으므로 굳이 수고를 무릅쓰고 기록을 남겨놓고자 한다.


그날은 봄꽃이 화사하게 핀 날이었다. 마침 회사의 정기연차소진일이 금요일이었던지라 생각치 못하게 연속 3일 휴일이 되었기에 나는 집 앞의 공원에 산책 겸 나가서 걷고 있었다.

집앞 공원은 실장석이 상당히 많이 살고 있다. 실장석이 동물보호법의 대상이 되면서 공원과 같은 대중적인 공간에서의 학대파 활동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실장석에게 마냥 좋은 건 아니어서 예전처럼 분충짓을 했다간 공원 관리인 등이 제압 후 소각처분 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보호법 개정 이후 수많은 학대파와 분충이 사이좋게 끌려가고 지금 남은 건 분충과 양충의 선을 적당히 지키고 있는 놈들이다.

그렇기에 공원은 실장석의 숫자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정비가 잘 되어있어 사람들의 힐링스팟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그날도 그런 변함없는 날이 될 터였다.

단, 하나의 요소만 제외하고.

중앙광장에는 수많은 들실장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작당모의라도 하는지 연신 자기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데스데스거린다.

그러던 중 수근거리던 성체 하나가 지나가던 다른 실장석들을 비웃으며 크게 외쳤다.
“데퍄퍄퍄퍄! 저 멍청한 것들을 좀 보는 데스우. 이 캡만 잘 이용하면 얼마든지 세레브한 삶을 즐길 수 있는데 저 멍청이들은 뼈빠지게 노동을 하는 데스요.”
지나가던 실장들 중 누군가는 욱하는 표정으로 놈을 바라보고 다른 누군가는 별 병신 다 보겠네란 표정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놈들은 그저 데…하는, 어쩌면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눈으로 방금 자신들을 비웃은 놈을 바라봤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놈의 손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는 게 더 옳을지도.

“저게 뭐야?”
뭔가 호기심이 솟았다. 공원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실장석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들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하지만 비록 졸업한지 오래라고는 하지만 나도 관찰파의 일원이었던 몸. 나는 방금 무리에서 나와 뎃승뎃승 뛰어가는 – 어디까지나 실장석 입장에서 – 녀석 하나를 붙잡았다.

“데엑?! 닝겐상, 와타시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데스까?”
녀석은 이 공원 실장석 답게 나를 보고도 놀라거나 하진 않았다.
“아, 잠깐 뭐 하나만 물어볼 게 있어서.”
“데에…와타신 지금 너무 바쁜 데스요. 그게…”
나는 사람들 몰래 콘페이토 하나를 꺼냈다.
“자, 이 정도면 시간이 날려나?”
녀석은 콘페이토를 보고는 주변을 살피더니 데프프 웃고는 콘페이토를 받아들었다.
“말이 잘 통하는 닝겐상 데스네. 그래, 뭘 알고 싶으신 데스우?”

“방금 전 어떤 놈이 ‘캡’이 있으면 세레브하게 살 수 있다고 했지? 그게 뭐냐?”
내 질문에 성체는 별거 아니라는 투로 데스우 하며 머릿두건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놈의 손에 들린 것은 플라스틱 병뚜껑이었다.
“이게 캡? 이게 뭐길래?”
고작 이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세레브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놈은 데프프프 웃으며 내게 답했다.
“데프픗, 닝겐상도 흥미가 생기는 데스? 며달전에 한 닝겐상이 와서는 자나 구더기를 이 캡으로 교환해준 데스.”
“이걸로? 이건 아무 쓸모가 없잖아?”
난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구더기나 자는 단순히 자식이 아니다. 여차하면 잘 말려 월동 보존식으로 쓸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자 녀석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닝겐상은 멍청한 데스! 그 닝겐상이 자나 구더기로 바꿔준 이 캡을 가지고 있다가 해님과 달님이 몇번 뜨고 진 다음에 다시 주면 콘페이토와 스시, 스테이크로 바꿔주는 데스.”

“뭐?”
금시초문이다. 그 사람은 왜 그런 쓸데없는짓을 하지? 신종 애호파인가? 내 의문은 더 커지기만 했다.

“원래 이 캡은 구더기 한마리 가격인 데스. 하지만 이 캡이 우마우마한 음식과 방한용품등과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다른 분충들이 이 캡을 웃돈을 주고 사들이는 데스.”
커져가는 내 의문과는 반대로 성체녀석은 신이 나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 캡이 지금은 구더기 20마리급 가격이 된 데스야. 조금 더 있으면 더 올라갈 것인 데스. 이 차이를 잘 활용하면 구더기와 각종 보존식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데스네.”

어 이거 완전 코인이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사람 혹시 애호파가 아니라 실험파나 학대파인거 아냐?

“아니 그러면 그 사람이 다시 안 오면? 어쩌려고 그래?”
나는 앞에 있는 놈이 도대체 뭘 믿고 이러는 지 궁금했다.
“데프프프, 맞는 데스요. 그럴 가능성도 있는 데스.”
어? 이놈 의외로 똑똑한가? 나는 솔직히 조금 놀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왜 이 캡을 가지고 있는 거지?

“하지만 이미 몇 번 그 닝겐상이 캡과 우마우마한 음식 혹은 월동용품과 바꿔줬던 데스. 그리고 다른 분충들은 그걸 본 데스.”
녀석은 머리를 돌려 주변을 살핀 후 아까와는 다르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다른 분충놈들이 그걸 본 이상 이 캡의 가치는 쭉쭉 올라갈 것인 데스네. 물론 언젠가는 그 닝겐상이 안 오거나 이걸 휴지조각이라고 할 수도 있는 데스.”
음음 그래서?
“그리고 세레브한 와타시는 캡이 휴지조각이 되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는 데스요.”
성체놈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역시 이 패턴인가…뭐, 내가 상관한다고 해서 이 놈이 캡을 포기할 거 같지는 않다. 게다가 고작 실장석 하나 구하자고 내가 노력을 기울일 필요는 없을 거 같기도 했고. 운이나 빌어주자.
“뭐, 넌 상당히 똑똑해 보이니까. 잘 해봐라.”
“데프픗, 어떤 데스요 닝겐상? 이 똑똑한데다 세레브한 와타시를 사육으로 만들어 볼 생각 없는 데스?”
똑똑하단 말 취소. 그냥 분충이었네.

내 얼굴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 것을 느꼈는지 성체실장은 농담인 데스 하고 손사래를 치더니 ‘거래장’으로 달려갔다.

이거 뭐랄까, 흥미가 생기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나는 그 녀석 외에도 캡을 거래하는 성체 몇몇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실장은 3캡, 엄지는 2캡, 구더기는 1캡으로 교환된다.
캡은 나눠준 사람이 왔을 때 음식과 월동용품으로 교환 가능하다.
교환 시세는 그때그때 다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100캡을 모은 실장은 초 세레브 사육실장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거래소역할을 하고 잇는 중앙광장에서는 성체들이 모여 활발하게 캡을 거래하고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운 좋은 자실장등이 어디선가 캡을 가져와 육포나 기타 용품으로 바꿔보려고 했다가 안 보이는 데서 성체들에게 고스란히 캡과 몸뚱이를 헌납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거 뭔가 재밌을 거 같다. 적어도 이번 주말은 심심하진 않겠군. 나는 그 모습을 뒤로 하면 내일 또 오자고 생각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공원은 아비규환이 펼쳐져 있었다.

“설마설마 했더니 벌써냐…”
나는 혀를 찼다.

공원 여기저기는 분노한 실장석들의 투분질과 드잡이질로 운치와 시체가 널려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관리되던 골판지 집들도 어느새 찢어발긴 곳이 많았고 그런 골판지 집 곳곳에 자실장, 엄지, 구더기의 시체가 피칠갑이 되어 넘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비명을 질렀고 공원 관리인들이 뛰어와 상황을 수습해보려 했지만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실장석들을 패대기쳐본들 나머지의 발광을 막지는 못했다.

“데…데에…닝겐…상…”
그리고 나는 운이 좋았는지 아니었는지 중앙광장 근처 풀숲에서 어제 처음 봤던 그 똑똑이 실장석을 만날 수 있었다.

비록 놈의 하반신은 무수히 물어뜯긴 자국과 함께 사라져 있어 그리 오래 이야기하진 못하겠어도 말이다.

“그…똥닝겐이 왔던 데스. 캡은 상환이 안된다고 선언한 데스…너희는 속았다고 한 데스…”
녀석은 그 말을 끝으로 숨을 거뒀다. 녀석의 시체 앞에는 대량의 플라스틱 병뚜껑이 흩어져 있었다. 아마 그 사람이 와서 이걸 휴지라고 선언하기 전까지도, 어쩌면 그 이후로도 이걸 소중하게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건 녀석의 희망이요 꿈이요 장래에 펼쳐질 세레브한 삶의 매개체였을 것이다. 아마 다른 모두에게도 그랬을지 모른다.

꿈은 그렇게 허무하게 붕괴되었다.


마지막 일요일. 공원은 조용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구청에서 불렀을 구제반과 재수없게 일요일 당직이 걸린 공무원들이 들릴 듯 들리지 않을 듯 욕지기를 하며 집게로 여기저기 널린 실장석 시체를 담는 것만 빼면 조용했다. 하긴 어제 그런 사태가 벌어졌으니 휴일이고 뭐고 구청장 목 날아가기 싫으면 긴급 구제를 해야겠지. 구제반이야 특근수당에 휴일수당까지 쳐서 받겠지만 공무원 아재는 좀 불쌍하구만.

뭐, 인분충일지 구제열사일지 모를 사람이 일으킨 사건은 잘 유지되고 있던 공원 들실장들의 대량 구제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양반은 잘 즐겼으려나 몰라.

그런데 약간의 아쉬움에 공원을 둘러보던 나는, 문득 멀리 풀숲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걸 보았다.

녹색의 두건과 흰 턱받이. 실장석이다. 아직 살아있는 놈이 있었구나. 나는 구제반원들 눈을 피해 설렁설렁 그 풀숲으로 다가갔다.

“이봐, 실장석.”
“데에?!”
“쉿!”
진짜 실장석이 맞았다. 그것도 성체. 다 죽은 게 아니었구만? 나는 흥미가 생겨 친실장에게 물었다.
“넌 여기 사는 실장석인가?”
“데에…그런 데스요 닝겐상.”
그 성체실장은 잠시 내 눈치를 보더니 내가 구제반도 아니고 별 다른 해를 끼칠 거 같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내 말에 대답했다.
“용케도 저 혼란상에 휘말리지 않았군 그래?”
“저 캡 말인 데스까? 마마는 항상 와타시에게 말한 데스. 와타시타치는 멍청하다. 그러니 딴 길을 쳐다보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인 데스.”
“자기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한 거 치고는 현명한 마마였군.”
“와타시도 그렇게 생각하는 데스요. 하지만 와타시는 그런 마마의 발치에도 못미치는 데스. 그래서 마마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그냥 일하고 살았던 데스.”
“너 말고 다른 일가는 있나?”
내 질문에 살짝 긴장하는 성체실장. 하지만 곧 할 수 없다는 듯 대답한다.
“잘 모르지만 아마 이웃상 몇 개 일가는 살아남아 있는 걸로 아는 데스우. 다들 캡 이런 건 모르겠고 일만 할 줄 아는 일가인 데스.”
결국 끝에 살아남는 건 평범하게 일상을 살고 일하던 놈들뿐이었던 걸까?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어올라왔다.

“과연. 캡이니 뭐니 하는 거에 열광한 한심한 놈들과 달리 역시 세상은 열심히 일하는 자들이 살아남는 법이지.”
“데이, 맞는데스. 하지만 와타시도 저 분충들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 데스우.”
음? 조금 의외의 반응이다. 한심한 놈들이지만 이해는 간다? 나는 흥미반 의아함반으로 녀석에게 물어보았다.
“이해가 간다고? 그저 누가 봐도 사기에 자발적으로 뛰어든 놈들이잖아?”
실제로 내가 가장 처음에 본 분충이 딱 그런 놈이었고.
“맞는 데스. 실제로 몇몇 이웃상은 닝겐상이 벌이는 사기라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뛰어든 데스요. 하지만…”
녀석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데에 하며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고 탈출구도 없는, 팍팍해져가는 삶에 한줄기 구원의 동앗줄 같은 것이 내려온다면 어느 누가 혹하지 않겠는 데스까?”

“하지만 지금이 살기엔 더 낫지 않나? 이젠 공공장소에서 너네를 학대하는 것도 벌금을 물어서 학대파들도 공공연하게 돌아다니진 않잖아?”
“맞는데스요 닝겐상. 그런 것만 보면 분명히 와타시타치의 삶은 마마나 마마의 마마 때보단 훨씬 나아진 데스네.”
친실장은 살짝 웃었다. 실장석이 동물보호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면서, 공공장소에서의 학대행위는 이제 과태료, 심하면 서로 연행될 수 있는 사안이 되었다. 학대파들은 음지로 숨어들었고 적어도 대놓고 분충짓을 하지 않는 한, 실장석들은 갑작스러운 일가실각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는 거 같은 데스. 분명 객관적으로는 더 좋아진 게 맞는데 오히려 삶의 질은 퇴보하는 느낌인 데스우.”
성체는 데스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마나 마마의 마마 가 살아있을 시절에는 학대파가 햣하 하기도 했지만 애호파 닝겐상들이 와서 먹이를 뿌린 적도 많았다고 한 데스.”
애호파의 실장푸드 뿌리기 말이군. 학대파의 학대행위가 동물보호법에 의해 처벌받게 되었듯이 애호파들의 푸드뿌리기도 생태계 교란 및 실장석 개체수 조절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동물보호법 위반에 들어가게 되면서 먹이를 뿌리는 애호파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 때는 누구든 열심히 노력하면 단란한 일가를 꾸릴 수 있었다고 했던 데스. 자 서넛은 물론 엄지와 우지쨩들도 자식으로 키웠다고 했던 데스네.”
지금은 그저 가축 취급이지만.

“마마도 그 때엔 다들 성실하게 살았다고 한 데스요. 집집마다 활기가 넘쳤고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고 한 데스. 처음 독립하면 집을 구하지 못해 임시로 지은 토굴에 살 지언정 노력하면 금방 집도 구하고 자도 기를 수 있었다고 한 데스.”
혼란의 시대는 성장의 시대이기도 하다.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지만 그만큼 뭔가 할 수 있는 빈틈이 많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삶은 풍요로워졌다고 하는 데스. 하지만 와타시타치가 마마나 마마의 마마때처럼 살기 위해서는 더 가열차게 일해야 하는 데스네. 시작점은 안정되었을지언정 모두가 희망하는 삶은 구름 위로 가버린 데스우…”
친실장은 웃었다. 체념의 웃음. ‘오늘도 살아가는 데스!’로 상징되는 실장석 나름의 가열찬 삶을 살아감에도 더 나아질, 아니, 오히려 더 떨어지지만 않으면 다행인 삶이 계속되는 나날이 녀석으로 하여금 그런 웃음을 짓게 만들었을까?

나는 가져간 건빵 한 봉지를 친실장에게 나눠주었다. 뭐, CCTV도 없는 구석이고 구제반이나 공무원들도 이런 구석자리로는 잘 오지 않는다. 친실장은 연신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고는 새끼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읏샤, 나도 내일 출근 준비해야지.”
누가 듣는지도 모를 혼잣말을 하며 나도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월요일, 출근해서 컴퓨터를 키고 내가 본 가장 첫 화면은 전세계 시총 2위를 자랑하던 코인이 한순간에 98%가 폭락했다는 기사였다. 발행자는 잠적했고 해당 코인은 상장폐지 되었다고 한다.

그 누구도 뭐라 말하진 않았지만 사무실에는 한탄과 소리 없는 비명만이 가득했다. 우리 부서는 괜찮은 듯했지만 옆 부서 몇몇 자리는 아직 출근하지 않았는지 비어있다. 저긴 분명 차대리 자리였지 아마?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에이, 이거 메커니즘이 폰지사기란 걸 누가 모릅니까? 하지만 폰지사기라는 게 밝혀지기 전에 나오면 되요.]
저번주 목요일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차대리는 그렇게 말했다.

윤차장은 노후자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성주임은 결혼자금이 필요하다 했었고, 강사원은 파이어족을 준비한다 했었을 거다. 임대리는 학자금 대출을 갚고 싶다 했었으며 양과장은 애들 학원비와 나중에 애들 유학보낼 비용을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각자의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생각했을 때 찾아온 동아줄이 내려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걸 잡았다.

희망없는 세상에서 그들은 희망을 잡았다.

“뭐랄까, 친실장. 네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멍청하게 월급만 쳐다보고 살았던 나만 살았어. 그런데 나는 당장 살았지만 이제 서서히 침몰할 미래밖엔 없네.”

그리고 행복한 사람은 아마…아무도 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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