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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수도권 공단의 나름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공단도시 S시


이곳에도 어김없이 사계절은 찾아온다. 그렇다는 것은 생명체들에게 있어 최대의 위기인 겨울 또한 이곳에 둥지를 튼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혹독하고 영원할 것만 같은 추위도 한풀 꺾이고 봄꽃이 봉우리를 튼 4월. 여러 생명체가 봄의 도래를 반기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봄을 만끽하는 생명체가 있었으니,


“데에스! 자들은 얼른 나오는 데엣!!”


바로 실장석이다.


“텟테레!”
그 특유의 탄생찬가가 울려퍼지고 드디어 첫번째 새끼가 점막에 쌓인채 어미의 총구에서 튀어나온다. 친실장이 섭취한 영양을 제법 잘 받아먹은 건지, 첫 자부터 크기가 제법 크다.


“오로롱 장녀인 데스. 드디어 와타시도 마마가 되는 데스.”
꽤 튼실해 뵈는 장녀를 보고 친실장이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레후~ 마마! 할짝할짝 해주시는 레후우!”
“뎃?!”
그렇게 감격에 취할라는 찰라, 친실장은 장녀의 다급한 외침을 듣고 화들짝 깨어난다. 흙을 살짝 파 낸 뒤 비닐을 깔고 물을 부은 임시 웅덩이에서 바둥거리는 장녀를 친실장이 급하게 꺼내고는 점막을 취하기 시작한다.


“테햐! 마마 고마운 테치! 와타시 우지챠가 되는 줄 알은 테치!”
점막을 취하자 구더기 형상의 장녀는 완전한 자실장의 형태가 되어 자신 앞에 있는 마마에게 인사했다.
“오로롱 장녀 반가운 데스. 아직 이모토들이 나와야 하는 데스. 장녀는 잠시 여기서 기다리는 데스야.”
장녀가 건강한 자실장으로 나와준 것에 대한 감격도 잠시, 친실장은 장녀를 곁에 내려놓고 다시 한번 힘을 주기 시작했다.


“텟테레!”
그 뒤로도 5번의 텟테레! 소리가 더 들리고 나서 친실장의 한쪽눈은 녹색으로 돌아왔다. 친실장은 나온 순으로 하여 차녀부터 열심히 점막을 취해주었고 마침 장녀도 친실장을 도와 동생들의 점막을 핥았기에 친실장의 새끼들은 모두 본연의 형태로 나올 수 있었다.


“오로롱 자들이 모두 잘 태어난 데스우. 이게 행복인 데스.”
자실장 4마리에 엄지 한마리 그리고 우지챠 한마리까지 모두 6마리의 새끼들. 태어나 처음으로 만끽하는 세계가 신기한지 새끼들은 연신 테치테치 레치레치 레후레후 조잘거리기에 바쁘다.


“자 다들 집으로 가는 데스.”
친실장의 선도 하에 새끼들이 줄을 맞춰 따라간다. 애초에 집으로 쓰는 굴 근처에 출산장을 만든지라 집까지는 자실장의 걸음으로도 1분이 안 걸리는 거리다.


“여기가 와타시의 집인 테치?”
“굉장한 테치! 세레브한 테치!”
“골판지가 아닌 레치?”
“집인 레후. 기쁨의 프니프니를 바라는 레후~”


집으로 쓰는 굴을 보는 새끼들의 감상평. 그 와중에도 골판지를 언급하는 엄지 5녀를 보면 한국에 정착한지 30년이 넘어도 여전히 실장석들의 본능 레벨에는 집 = 골판지라는 인식이 박혀있나보다. 


“여기에는 골판지 상자는 없는 데스. 그래도 세레브한 집인 데스야. 자들은 어서 들어가는 데스네.”
“하이테치!”


친실장 혼자 쓰기엔 살짝 넓은 굴이었지만 새끼들까지 들어가자 금세 굴은 가득찬다. 아침만 해도 외로움과 고독함이 남아있던 굴은 어느새 생명의 활기로 넘쳐 흘렀다.


새끼를 낳을때도, 다 낳고 나서도 느꼈던 바지만 친실장은 새끼들이 가득 들어찬 굴을 보고 다시 한번 감격에 젖었다. 죽음과도 같았던 한기에 덜덜 떨며 생명의 위협을 견뎠던 건 바로 이러한 행복을 맞보기 위함이었다.


이제 더 이상 괴로움은 없을 것이다. 태어난 자들은 여름을 넘기고 가을에 중실장이 되어 독립할 거고 그걸 반복하다보면 언젠가 이 산 공원은 자신의 자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마마.”
“뎃? 장녀. 무슨 일인 데스우?”

그렇게 행복에 젖은 친실장의 상념을 중단시킨 것은 장녀의 칭얼거림이었다.
“배 고픈테치.”
“맞는 테츄. 배씨가 꼬르륵 하는 테츄우.”
친실장은 아 맞다!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생각해봤더니 자식들은 태어나서 아직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이다.
“데에, 자들은 이리로 오는 데스. 태어나서 첫 밥을 먹는 데스요.”
친실장의 말에 6마리의 새끼들이 좋아서 방방 뛰며 친의 곁으로 온다.


첫 식사로는 모유를 먹인다. 특히나 이 시기의 모유는 초유라고 하여 새끼들의 성장과 면역형성에 필요한 호르몬이 뜸뿍 들어있다. 그래서 새끼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초유를 갈구하게 된다.


“레에엥! 와타치는 어려서 마마젖 잔뜩 먹어야 하는 레츄!! 오네챠들 그만 먹고 내려오는 레치!!!”
장녀와 차녀, 삼녀와 사녀 순으로 모유를 먹이고 있자니 엄지인 5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울음을 터트렸다.


“데에, 5녀는 어리광쟁이인 데스. 조금만 기다리는 데스. 마마의 젖은 끝도 없이 나오는 데스야.”
그런 엄지의 이유있는 땡깡조차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친실장. 


대부분의 들실장들이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인해 엄지와 우지는 자의든 타의든 운치굴에 넣어 비상식으로 기르지만 이 친실장은 그런 엄지조차 자식으로 길렀다.


그 이유는 이곳이 의외로 실장석들이 살기에 나쁘지 않은 환경이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기계돌아가는 소리와 화학약품이 섞인 냄새가 가득한 이곳 공단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의외로 녹지가 상당히 있는 편이다. 애초에 바다를 매립해 만든 계획도시였던 이곳은 주거지구와 공업지구를 나누는데에 그리고 공단지구 사이사이에도 숲이나 공원을 조성하여 구획을 나누었고 매립지 끝으로 가면 예전에는 섬이었던 곳에 야트막한 언덕도 있어 제법 녹음이 우거진 느낌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녹지 중에 예전에는 섬이었지만 지금은 간척으로 육지와 이어진, 52번섬이라고 불리는 포구에 붙은 이 언덕공원에는 실장석 수십일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곳은 서쪽은 52번섬 주택가 빌라촌과 맞닿아 있고 동쪽은 공단초입인 곳으로 빌라촌 특성상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현관앞에 놔두는 경우가 많아 밤중에 몰래 음식물 쓰레기를 얻기 편하다. 게다가 S시 주거구역하고는 거리가 있어서 학대파들도 굳이 이곳까지는 찾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러다보니 애호파들도 오지 않아 푸드나 방한용품을 얻을 수도 없긴 하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엄지에 막내 우지챠까지 젖을 충분히 먹고 새끼들은 어느새 춘곤증인지 낮잠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데프픗 웃는 친실장.
‘오늘이나 내일까지는 젖을 먹인다 해도 슬슬 먹이를 구해놔야 될 거 같은 데스.’
코츄~코츄 숨소리를 내며 자는 장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친실장은 의지를 다졌다.


이튿날, 친실장은 새벽부터 일어나 어렵게 구한 편의점 봉투를 들고 밥구하기에 나섰다. 이제는 위에 있는 상표도 흐려진 이 비닐봉지는 일가의 가보이다. 
“이놈의 동네는 비닐봉지 구하기가 하늘의 콘페이토 따기인 데스.”
200ml짜리 우유 하나만 사도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일찌감치 비닐봉지 제한에 들어섰다. 친실장의 이 비닐봉지도 낡았지만 다시 구하려면 보존식 10일치는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걷던 친실장은 다른 성체 실장을 보고는 반갑게 인사한다.
“안녕하신데스요 고목나무상.”
“안녕하신데스 이웃상.”
근처 오래된 고목나무 밑에 사는 이웃이다. 둘은 독립한 중실장때 서로 마주하여 지금껏 서로 협력하며 지내고 있었다. 


“출산은 잘 된 데스? 와타시는 첫끗발이 개끗발이었던 데스. 첫번째가 실한 자라 좋아했더니 7마리 중 엄지가 4마리나 나온데스.”
고목나무상이라 불린 이웃도 어제 출산을 했나보다. 그런데 7마리나 나았다면서도 엄지에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는 거 보면 이 실장은 아무래도 엄지를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

“와타시는 중박은 친 데스요. 6마리 중 자가 4마리, 엄지 하나에 우지 하나인 데스.”
“데에, 부러운 데스네.”
“엄지는 어떻게 할 것인 데스까?”
“물어볼 게 있는 데스? 쓸모없고 시끄러운 주제에 자기는 연약한 존재이니 보호받아야 한다, 마마의 젖은 전부 자기들꺼다, 세레브성을 내놓아라 등등 되도 않는 소리를 치길래 어제 이미 싹 다 독라로 만들어서 운치굴에 처박은 데스.”
“분충들인 데스.”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친실장.


“그런데 이웃상. 요즘 조심해야 할 거 같은 데스.”
“뎃? 무슨 일 벌어진 데스?”
출산과 가족 이야기를 하던 중 고목나무에 사는 친실장이 갑자기 뜬금없이 저런 이야기를 했다.
“못 본 데스까? 요즘 저기 깡깡건물씨들에서 도망쳐온 분충놈들이 많아진 데스.”
무슨 이야긴가 했더니 공단지역에서 이주해 온 실장들에 대한 이야기인가 보다.
“아, 와타시도 몇몇 일가를 본 데스. 그런데 무슨 문제있었던 데스네?”
“그 분충놈들이 며칠 전 밥 구하는 데에서 행패를 부리다 맞아 죽은 모양인 데스야. 봉지를 아무렇게 흐트러트리고 그걸 본 닝겐에게 콘페이토와 스테이크를 내놓으라고 소리쳤다는 데스.”
“데에에에?!”
친실장은 깜짝 놀랐다. 이건 안 좋은 소식이다. 지금까지 이 공원 실장석들이 많이는 아니어도 안정적으로 밥을 구해온 것은 가급적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훼손시키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점이 컸다. 빌라촌 주민들도 실장석의 존재는 알았지만 별 탈이 없으니 지금까지는 묵인해왔던 것이다.


“이러다가 와타시타치에게도 일이 생기는 거 아닌가 모르겠는 데스. 그ㄹ…”
갑자기 고목나무 친실장은 넋두리를 하다말고 멈춰섰다.
“데? 고목나무상? 왜 그러는 ㄷ…”
친실장도 갑작스러운 이웃의 행동에 당황했다가 자신 앞의 광경을 보고 말을 잊었다.




하얀 벽


높은 하얀 벽이 자신들 눈 앞을 가로막고 있다.


“데?”
두 실장석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멍청한 소리를 냈다. 여기는 공원 출입구. 여기를 지나면 빌라촌이다. 하지만 오늘은 빌라촌의 그 익숙한 모습 대신 하얀 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인 데스? 이게 도대체…”
“와, 와타시도 모르겠는 데스요. 이건 무슨…”


놀란 것은 자신들뿐만이 아닌지 옆 수풀 속에도 뎃? 하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이웃상. 다른 곳으로 한 번 가보는 데스.”
“그러는 데스.”
당황하던 둘은 일단 다른 입구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분명 오늘 저곳에 무슨 공사가 있었을 것이다. 다른 곳은 평소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막힌…데스.”
친실장은 자신들을 막아서는 흰 벽을 보고 힘없이 말했다. 그 흰 벽은 공원을 따라 주욱 늘어서 있었다. 마치 이곳을 봉쇄하는 마냥. 


도대체 왜?


“일단은…돌아가는 데스 이웃상. 해님씨가 가고 내일 해님씨가 뜨면 이 벽은 없어져 있지 않겠는 데스까?”
고목나무 친실장의 말. 친실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집으로 돌아갔다. 안 돌아간들 뭐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하루가 더 지나도 그 벽이 없어지는 날은 오지 않았다. 단지 하루를 보냈을 뿐이지만 공원 내 실장석들은 극한의 허기를 느꼈다.


"마마...배고픈 테치..."
"데에..."
장녀가 굶주린 배를 잡고 친실장을 불렀지만 친실장도 멍청한 소리만 내고 있을 뿐.


보존식은 겨우내 먹어치웠고 봄은 탄생의 계절이기에 되는 데로 먹을 뿐 비축분은 없다. 게다가 갓 태어난 자실장들은 그야말로 먹성의 악마들. 신체 성장과 유지에 동시에 열량이 필요한 새끼들은 심지어 골판지도 뜯어먹을 기세가 된다.


그런 상황에서 찾아온 기아는 단 하루만 진행되었을 뿐임에도 공원의 실장석 전체를 죽음의 공포로 내 몰았다.


다음날에도 벽은 여전하다.


"똥 벽씨는 와타시에게 매로매로 되어서 길을 열어주는 데스웅~"
"데갸아아아!! 와타시의 세레브한 자들이 굶고 있는 데샤아아!!! 당장 비키란 데스요! 비키란 데스아아아!!!"
"이건 현실이 아닐 것인 데스. 현실이 아닌 데스야..."
아첨하고, 위협하고, 현실도피를 하고.


그러나 그런다고해서 자신들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결국, 그날 또 모든 이가 굶는다. 


“장녀, 우지챠…6녀를…먹는데스요.”
친실장의 일가는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장녀 포함 자실장들은 이제 울 힘도 없다. 막내 구더기는 운치를 먹다가 그 마저도 없어 이미 혀를 빼 물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숨을 내 쉬고 있다. 


친실장은 결국 나지막한 목소리로 막내의 운명을 선언했다.


“마마! 그건…”
“장녀!”
“텟?!”
친실장의 결정에 무언가 말하려던 장녀가 친실장의 호령에 동작을 멈춘다.
“먹는 데스. 다른 방법이…없는 데스.”


친실장은 장녀로 부터 등을 돌리고 일어섰다. 자신의 두 눈에서 흐르는 이 물은 무엇일까. 아직도 나올 물이 남아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친실장에게 소득은 없었다. 막내 구더기가 있었을 토굴 구석에 갔을 때, 남은 것은 산산히 흩어진 우지챠의 포대기 조각들과 입에 적녹의 체액을 잔뜩 묻힌 5녀 엄지였다.


“레? 레에?”


“5녀…오마에…”


“마, 마마! 아닌레치. 와타치 너무 배가 고팠던 레츄! 그랬는데 막내가 우마우마해 보였런 레치. 와타치를 매로매로 시키려는 분충이 틀림없었던 레치!”
되도 않는 소리를 변명이랍시고 더듬거리며 내뱉는 엄지를 친실장은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그래서, 오마에. 우지챠를, 막내를…먹은 데스?”
“레…와, 와타치가 분충을 먹어 물리친 레치! 그런 레치! 마마, 분충을 물리친 아타치를 칭찬해주고 상으로 콘페이토를 주는 레츄웅~”
피뭍은 입으로 독사의 아첨이 나오자 친실장은 순간 이성을 잃었다.
“자매를 먹는 건 분충인 뎃샤아!!! 죽는 데스!! 오마에 같은 분충을 살려둔 게 잘못이었던 뎃샤아아아!!!!!”


친실장의 사정없는 주먹질이 엄지에게 내리 꽂힌다.
“렛! 마마! 와타치! 죽는 레츄! 죽는 레ㅅ!!”
“죽는 데스! 죽는 데스아!!!!”
자기도 단 몇초전에 막내를 먹자고 한 주제에 친실장은 엄지 5녀를 이제는 숫제 바닥에 몇 번이고 패대기 치며 소리를 질렀다.


“마마! 그만두는 테치! 5녀 이미 죽어버린 테치이!!”
친실장은 장녀의 외침에 그제서야 자신의 손에 잡힌 5녀를 바라보았다. 손에 잡힌 상반신을 제외하면 형체도 없이 뭉개진 5녀. 분노는 어느 정도 가셨지만 남은 건 결국 막내가 자매에 의해 잡아먹혔고 그 5녀마저도 자신이 죽인 상황.


“자매를 죽인 자는 분충인 데스…자들, 이거라도…먹는 데스요…”
그날 남은 일가는 5녀를 나눠먹었다.


이틀 후, 4녀가 굶어죽었다. 누구보다 마음씨 착한 자였건만 굶주림 앞에서는 선함은 의미가 없었다. 그날은 4녀를 먹었다.


그 다음날에는 3녀가 죽었다. 이미 5녀를 먹을 때부터 가슴을 부여잡고 아파했던 자였다. 파킨 소리와 함께 죽은 3녀는 검은 눈물로 얼굴이 뒤덮혀 있었다. 그날은 3녀를 먹었다.


그렇게 또 다음날이 왔다. 해씨가 이미 중천에 걸려 있지만 친실장의 둥지에 움직임은 없었다.


“데히이익!”
친실장은 이제 발작적으로 튀어나오는 딸꾹질 같은 비명을 질렀다. 빵콘이라도 해서 이 고통을 줄이고 싶건만 먹은 것이 없는 총구에서는 방귀조차 나오질 않는다.


배고프다. 친실장은 몇번째인지 모를 생각이 또 떠오르자 미칠 것만 같았다. 며칠 연속으로 자기 자식들을 먹었지만 비쩍 마른 새끼들의 고기는 먹어본들 간에 기별은커녕 입가심도 안 되었다. 


서럽다! 어떻게 겨울을 버텼는가! 무엇 때문에 그 모진 세월을 겪었는가! 다 세레브한 실생을 살기 위해서였다. 이 춥고 운치만도 못한 계절을 버티고 나면 분명 그 끝에 찾아올 봄의 제전을 맞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런데 이 상황은 도대체…


“장녀…미안한데스.”
“테ㅎ…”
이미 장녀는 콘페이토별에 한 발을 걸치고 있다. 말을 다 잇지 못한 장녀를 입에 넣으며 친실장은 적녹의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어미가 자신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뻔히 알면서도 장녀는 저항할 기력조차 없이 테…소리만 반복할 뿐이었다.


콰직!


이빨과 이빨이 말라붙은 살붙이를 짖이기며 서로를 맞잡는다. 분명 입 안에 퍼지는 것은 향긋해야 할 고기의 맛이건만 왜 이리 슬프고 토할 것 같단 말인가?


“테히히힣. 테히히히히.”
무어가 그리 좋은지 어미에게로 돌아가는 장녀를 보며 차녀가 웃는다. 이미 빛을 잃어 회색에 가까운 두 눈을 뜬 차녀는 그저 계속 웃었다. 웃고 웃고 또 웃는다.


파킨!


상반신이 없어진 장녀의 질긴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차녀의 위석도 같이 깨졌다. 친실장은 그저 말없이 입 안의 고기를 씹었다. 한때 엄지와 구더기를 포함해 6식구가 행복을 노래했던 곳에 이제는 다 말라죽어가는 실장석 한마리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파킨!


그 다음날. 유리깨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굴 속에 살아있는 존재는 없었다.



실장석을 구제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어느 때일까?


누군가는 강렬한 추위에 실장석이 숨 쉬기만 해도 생존을 위협받는 겨울이라고 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작열하는 태양이 실장석을 비롯한 모든 것을 익혀버리는 여름이라고 할 지도 모른다.
아니면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월동준비만 망쳐도 일가실각 특급을 태우는 가을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장석에 대한 모든 것을 파는, 실장석과 애호물품 심지어 구제업에조차 발을 걸치고 있는 ㈜로젠의 10년차 과장, 도시악은 다르게 생각했다.


“그래서, 밥 사준다고 부르더니 한다는 소리가 그거냐?”
S시 신도시 상가거리의 한 고기집. 다섯 남자가 한 테이블에 모여 북적이는 가운데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는 도시악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 철웅은 도시악의 설명에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생각해봐라. 나름 괜찮은 방법 아니야?
도시악은 고기를 한 점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비록 계절을 타긴 하지만 여러군데서 동시다발적으로만 실행할 물자와 인력만 있으면 이것만큼 좋은 구제방법이 없다니까?”
“아니, 뭐 이론적으로는 좋은 방법이긴 해. 그런데 그 유용성을 증명할 방법은 있는 거야?”
이번에는 철웅 옆에 앉은 곱상한 남자, ‘아기토’가 물었다. 어째 대학생때와 외모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그는 몇 년 전 행정고시에 합격해 지금은 S시의 당당한 5급 공무원이 되었다.
“물론이지. 시범 케이스로 한 공원에서 구제를 할 거야. 거기서 증명이 되겠지.”
“공원에서 구제를 한다? 너네 회사에서 하는 거냐?”
봄임에도 연신 비오듯 땀을 흘리며 고기를 집어먹던 풍체 좋은 남자, ‘오벨릭스’가 말했다. 유통계 굴지의 대기업 ㈜샤를로떼 물류팀 과장이 된 이 남자는 외모는 조금 삭았지만 풍체는 대학교때보다 더 커졌다.
“아니! 내 개인적으로 할 거야. 회사에서 하면 승냥이들이 많단 말이지.”
“승냥이라…하긴 회사에 그런 놈들이 간혹가다 보이지.”
도시악의 말에 맞장구치는 작은 체구의 남자, ‘아스테릭스’. 역시 대기업인 뉴월드의 계열사 뉴월드푸드에서 재직하다 퇴사하고는 부친의 인력사무소를 물려받아 소장으로 전직한 그는 회사 재직 당시에 뭔가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눈에 쌍심지를 켰다.


“뭐 여하튼 좋다 이거야. 너 개인이 공원을 구제한다는 거부터 말이 안 되는 거 같은데 그건 어쩌려고 이러냐?”
철웅이 상황을 정리하며 말한다. 솔직히 로젠이 아무리 대기업이고 거기서 지사장 아버지를 둔 과장이 아무리 끗발이 좋다고 한들 솔직히 그걸로 일개 개인이 공원 하나를 구제하는 정도의 영향력은 없다고 봐야 한다. 


영 못미덥다는 철웅의 표정에도 도시악은 방긋방긋 웃는다. 아 이놈이 이렇게 웃을 때는 뭔가 대형사고를 치기 직전인데…철웅이 문득 지금 여기 모인 멤버들의 면면을 돌아봤다. 시청공무원, 유통회사 과장, 가구회사 과장 그리고 인력사무소 소장까지. 그제서야 철웅은 도시악의 의도를 파악하고 얼굴을 감싸쥐었다.


“바로 그러니 네 녀석들 도움이 필요한 거지.”
어우씨 불안한 낌새는 왜 틀린 적이 없냐… 철웅은 파악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며칠 후.


“와 미친 이게 되네?”
“그럼, 누가 고안했는데.”
반쯤은 어처구니없어하는 네 남자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의 도시악. 


시청 공무원 아기토가 허가를 내주고 가구회사 재직자인 철웅이 벽 세울 폐기재료를 조달해줬으며 물류회사 직원 오벨릭스가 그걸 수송할 차량을 섭외해주는, 거기에 아스테릭스의 사무소에서 온 일용직 노동자들까지 더해지니 완벽한 대(對) 실장석 포위망이 하루아침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벌어진 구제 아닌 구제는 며칠 안되어 깔끔하게 성공했다.


아스테릭스네 일용직들이 마대자루에 시체를 수거한다. 살아있는 실장석도 있었지만 어차피 움직일 힘조차 없는 놈들. 저항다운 저항조차 못한체 마대에 차곡차곡 쌓일 뿐이다.



실장석들에게 봄은 곧 출산의 계절. 겨우내 극한의 고독과 생존의 위기를 경험한 실장석들은 봄이 되자마자 새끼를 밴다. 그리고 그렇게 임신한 실장석들은 안 그래도 식욕에 제한이 없는 놈들이 새끼에게 줄 영양을 위해서라도 뭐든 먹을 수 있는 것은 전부 먹어 치우게 된다. 분충이든 양충이든 지금 이 시기에는 보존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식량을 구하는 데로 실컷 먹는다. 겨울은 멀다. 보존식 모으기는 새끼를 낳고 성장시킨 다음 해도 늦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2주 정도의 임신기간이 지나고 실장석들은 새끼를 낳는다. 생태계 최하부를 이루는 약하디 약한 놈들. 그렇기에 실장석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자식을 많이 낳아 그 생존성을 끌어올리려 한다. 5마리는 기본이고 8마리, 10마리도 낳는다. 


“자, 그럼 문제. 그렇게 새끼 낳은 놈들이 식량을 못 구하면 어떻게 될까?”
도시악의 말. 
“닥치는 데로 먹어 치우느라 보존식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상황. 늘어나버린 입. 차단된 먹이수급. 이 조건이 모두 겹쳐지면?”
“카니발리즘이로군.”
아기토의 말. 도시악은 대답대신 웃으며 가볍게 손뼉을 친다.
“구더기가 더 작은 구더기를 먹고, 엄지는 큰 구더기를 먹으며, 자실장이 그런 엄지를 먹을테고, 결국 친실장이 자실장을 먹겠지.”
아스테릭스도 한마디. 다섯 남자들의 시선이 봉쇄된 공원을 향한다. 간간히 들려오는 실장석들의 비명소리가 아스테릭스의 말을 증명하듯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렇게 먹은 후에는 자기들끼리 잡아먹을거고 말이야.”
철웅도 공원을 바라보며 한마디 얹는다. 하지만 그 직후 무언가 의문을 담아 그는 도시악에게 질문을 건넸다.
“하지만 이건 꼭 봄이 아니라도 통할 방법 아니냐? 굳이 봄에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철웅의 말에 도시악이 공원 한쪽을 가리켰다.
“이 계획의 핵심은 스피드야. 여름이나 가을에는 똑 같은 방법을 써도 친실장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나지.”
도시악의 손끝에는 성체 한마리가 무언가를 먹어 치우고 있었다. 자신들을 여기 가둔 인간 다섯명이 빤히 보고 있어도 그저 눈 앞의 먹이를 혹여 빼앗길까 먹는 데만 집중하는 놈의 손에 들린 건 자실장이었다. 엄지보다 약간 더 큰 정도의 자실장.
“저거 저놈의 장녀야. 깜찍하지?”
“과연. 그런 거였군.”
네 남자는 납득했다. 봄에 갖 태어난 새끼들은 먹은 것이 별로 없어 키도 작고 몸도 말라 있다. 그 말인 즉 슨 친실장이 기아에 시달려 새끼들을 먹어 본들 살도 별로 없어 삐쩍 마른 고기조각 몇개를 먹는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여름만 되어도 잘 먹은 놈들 중에는 벌써 중실장 초입에 들어가는 놈도 생겨. 가을이면 말할 것도 없지. 그런 놈을 먹으면 친실장의 생존시간이 더 늘어나는 거야. 그렇다는 건 우리가 들여야 하는 봉쇄기간이 더 늘어난다는 셈이지.”
어떤 기업이 안 그러겠냐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게다가 공원 봉쇄가 길어지면 결국 시민들의 불편과 그에 따른 민원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 봄이다. 이거군?”
오벨릭스가 감탄했다.
“그렇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는 놈들이 새끼까지 잡아먹고 버티다 자기들끼리 잡아먹는데 걸리는 시간이 많아봐야 4일. 그리고 그 후 약해질 데로 약해진 놈들을 우리가 싹 수거하는 게 하루.”
“합계 5일이면 완벽에 가까운 구제가 되는 건가? 경제적이네.”
“일요일 자정에 시작해서 그 다음주 금요일 저녁이면 구제가 끝나. 그러면 주말에는 공원을 시민들에게 개방할 수 있는 거지.”
“이거 진짜 잘만 되면 지자체에서 좋아할 수밖에 없겠는데?”
“우리야 좋지. 굳이 우리가 안 들어가서 죽여도 되니까.”
철웅의 말에 아기토가 답한다. 실장석들을 하도 빠르게 많이 죽여서 학살의 아기토라 불리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생명을 해치는 걸 싫어하는 남자다. 게다가 공무원들도 사람이다. 생명체를 죽여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잘 없는 것이다. 그게 아무리 민폐 덩어리 똥벌레라곤 해도 말이다.


“게다가 현재 구제라고 하면 거의 일주일 넘게 잡아먹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 방법이면 총 비용도 줄어서 관청이라면 안 좋아할 수가 없어.”
도시악은 씨익 웃었다. 철웅도 화답하듯 웃었다. 역시 이 미친놈은 대학때부터 싹수가 보였다니까. 이건 정말 실장석이라고 하는 생물의 뼛속까지 파고든 놈이 아니면 생각도 못했을 방법이다. 



실험을 끝낸 도시악은 상부에 실험보고서를 올렸다. 곧 회사 차원에서 4군데 공원에 추가 실험이 전개되었다. 결과적으로 봄이 가기 전에 전국 수많은 공원에서 이 구제법이 실행되기 시작했다.


봄은 생명 탄생의 계절이다. 혹독한 겨울을 끝내고 새로이 맞이하는 생명이 움트는 계절. 


실장석에게도 봄은 번식과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는 계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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