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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실장 잔혹사



나는 저실장이 좋다.
정확히는 ‘저실장을 살찌운다.’라는 표현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 구절을 입안에서 굴려보면 어느새 머리 속에서는 운치굴 속에서 열심히 운치를 먹는 저실장들이 떠오른다. 눈을 감고 입을 벌려 레챱레챱 운치를 먹는 저실장들. 봄에 처음으로 생을 맞이한 미숙 구더기들은 이제 통통하게 살이 올라 그 중 가장 큰 저실장은 15cm에 육박한다. 운치를 먹고 나면 프니프니를 받는다. 형편이 조금 좋은 집은 엄지나 자실장 독라노예의 프니프니를 받고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저실장들끼리 서로 배를 부비거나 울퉁불퉁한 땅바닥을 기며 유사 프니프니라도 받는다. 그렇게 프니프니 타임이 끝나면 구석에 자리를 잡고 언젠가는 이 운치굴을 나가 마마와 같이 클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잠이 든다. 이런 나날을 보내며 하루하루 살찌워지는 저실장들을 떠올리면 내게 마치 약이라도 한 거 같은 몽롱한 기분 좋음이 몰려온다.
‘저실장을 살찌운다.’

‘저실장을 통통하게 살찌운다.’

‘여름가을동안 저실장을 통통하게 살찌운다.’

‘여름가을동안 저실장을 잘 먹여 통통하게 살찌운다.’
이 기분좋은 운율을 굴리며 걷다보니 어느새 내가 도착한 곳은 공원.
“있다.”

공원 안, 낮은 수풀 한 구석에 내가 찾는 것이 있었다.
오래된 나무 아래 성체 하나가 드나들 수 있는 구멍과 그 옆 두꺼운 종이로 덮힌 무언가. 실장굴과 운치굴이다. 일본에서는 실장석=골판지집이지만 노인분들이 종이를 다 수거해가시는 한국에서는 실장석들의 집이라고 하면 대개 이런 자연굴이나 조잡하게 판 굴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조차도 실장석들은 꼭 운치굴을 파 그 안에서 엄지와 저실장을 키운다.
들실장에게 삶이란 항상 죽음에 한쪽 발을 들여놓고 임하는 투쟁 그 자체. 먹이수급이나 집, 기타 생활용품을 인간의 묵인이나 자비에 의존해야 하는 들실장들의 특성 상 그들의 삶은 언제 어디서부터 갑작스레 붕괴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들실장들은 보통 엄지나 저실장은 자가 아니라 가축으로 키운다. 아무리 모성애가 강한 친실장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항상 모자라는 데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식량은 자신과 자실장들에게 배분하기만 해도 벅차다. 여름에 대비하고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수집하고 일해야 하건만 엄지나 저실장은 노동력으로조차 쓸 구석이 없다. 결국 엄지와 저실장은 자연스레 운치굴에 떨어져 운치를 먹으며 연명하게 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노동력으로써도, 식량으로써도 가치가 없는 엄지에 비해 저실장은 매우 뛰어난 가축이다. 아무리 실장석들의 소화능력이 좋지 않아 운치에 영양소가 많다 한들 운치는 더럽고 먹기 힘들다. 실제로 엄지들은 대다수가 운치를 거부하다 굶어죽거나 절망감에 돌이 깨져 죽어버린다. 하지만 저실장들은 그런 운치조차 좋다고 먹는다. 그리고 운치를 먹고 프니프니를 잘 받은 저실장들은 금방 토실토실하게 살이 잘 오른다. 그렇게 살이 오른 저실장들은 필요최소한의 근육과 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방으로 가득 차있다. 운치를 먹고 고기를 내 놓는 저실장은 실장석에게 기적의 육류 공급원이며 그렇기에 오늘도 많은 들실장들은 저실장들을 살찌우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데엣…데스데스데스!!”

내가 다가오는 걸 느낀 건지 실장굴에서 무언가 다급한 표정의 성체실장이 팔을 붕붕거리며 내게 다가온다. 아마 이 운치굴의 주인이겠지.
저리 가라.
나는 가벼운 사커킥으로 성체실장을 날려보냈다. 퍽 소리와 함께 약간은 묵직한 느낌이 발에 걸리고 곧 데엑! 하는 비명과 함께 들실장이 날아오른다.
“테에에? 테츄아!!”

“텟?! 테ㅊ…테에에에?!?!”

성체의 비명소리에 나무구멍에서 작은 실장 두마리가 나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까 그 성체의 자실장이겠지. 물론 그 놈들도 가볍게 차서 날린다. 갑작스러운 재앙에 두마리는 소리도 못 내고 금방 나무기둥의 얼룩으로 변해버렸다.
자 그럼 이제 고대하던 순간을 즐겨볼까. 나는 조심스레 두꺼운 종이를 들어올렸다. 역시나 운치굴이 맞았는지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냄새가 확 올라온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정말로 듣고 싶었던 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레흐? 레후~ 레후~”

꼬물거리는 밝은 색의 살덩어리. 녹색의 운치 덩어리들 사이로 내 손바닥만한 저실장이 빛의 도래를 깨닫고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귀에 꽂은 링갈의 전원을 올렸다.
“큰큰레후~ 마마나 오네챠와는 다른 레후.”

“안녕 저실장아? 나는 인간이라고 한단다.”

“닝겐상 레후? 마마가 말하는 걸 들어본 레후. 거대하다고 한 레후. 무섭다고 한 레후.”

사람의 무서움을 아는 걸 보면 이 굴 주인은 소위 말하는 분충은 아니었나보다. 그런다고 뭐가 바뀌는 건 아니지만.
“넌 어쩌다가 여기 들어가게 된 거야?”

내 물음에 저실장은 살짝 슬픈 얼굴로 대답했다.

“마마가 말한 레후. 우지챠는 너무 작아서 같이 살면 슬픈 일을 당할 수 있다고 한 레후. 그래서 여기서 운치 먹고 큰큰되라고 한 레후. 그러면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한 레후.”

“너 말도 다른 자매들은 없니?”

“처음에는 다른 오네챠나 이모토챠들도 있었던 레후. 하지만 그런 우지챠들은 마마의 손을 따라 나간 레후. 우지챠보다 운치 잘 먹어서 나간 게 분명한 레후. 우지챠도 운치 열심히 먹고 큰큰된 레후.”
스테레오 타입 같은 대답이다. 넌 너무 작아서 같이 살다간 슬픈 일을 겪을거다. 그러니 운치를 먹고 몸집을 불려라. 친실장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저실장은 필사적으로 운치를 먹고 스스로 살을 찌운다. 그리고 먹힌다.
아아, 사랑스럽다.
이제 곧 믿었던 어미와 자매들에게 먹힐 운명인 통통한 짐승. 그러나 그럼에도 그 바보 같은 사고력으로는 열심히 운치를 먹고 살찌면 손발긴긴씨가 되어 행복한 삶이 기다릴 거라 믿는 짐승.
“그런데, 닝겐상은 왜 온 레후? 우지챠 핀치인 레후?”

“하하, 나는 무서운 인간씨가 아니란다. 그 증명으로 네게 맛있는 걸 주마.”

“맛있는 거 레후? 운치보다 맛난 레후?”

맛있는 거란 내 말에 반응하듯 저실장은 마치 강아지같이 꼬리를 페타페타 흔든다.
“자, 이건 아주 맛있는 음식이란다. 어서 먹어보렴.”

나는 가지고 온 음식물 잔반을 운치굴에 조금씩 부었다. 잔반이라고 해도 사과껍질과 소보로빵 남은 것 등 저실장이 평소에 먹던 운치보다는 훨씬 고급음식이다.
“아마아마! 아마아마레후! 우지챠 실생 손해본 레후!”

예상대로 저실장은 사과껍질을 한 입 먹어보고는 곧바로 머리를 처박고 잔반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아무리 미각세포가 발달하지 않은 저실장이라도 쓰디쓴 운치와 달달한 사과의 차이를 모를 리는 없다. 그리 작지 않은 사과껍질을 금세 다 먹어버린 저실장은 곧 소보로빵 남은 것도 열심히 입에 넣기 시작했다. 거기서 나오는 레챱레챱 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울리는 구나. 나는 황홀감에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레햐햣 레챱레챱, 레햐햐햣.”

무엇이 그리 좋은지 저실장은 연신 웃으며 우걱우걱 먹어치운다.
“빵빵레후~”

즐겁게 식사를 마친 저실장은 돌아누워 말 그대로 빵빵한 배를 드러내며 만족감을 표했다.
“이제 프니프니 하는 레후.”

그렇게 말한 저실장은 평소처럼 셀프 프니프니를 하려 하는지 운치굴 바닥에 배를 대고 프니프니~하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레후?”

저실장은 멍청한 소리를 내며 의문을 표했다. 평소에는 운치를 먹고 나서 땅바닥에 배를 문지르면 프니프니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다르다.
“왜 프니프니가 안 되는 레후? 배빵빵레후. 그런데 프니프니 안 되는 레후.”
아아 이 멍청한 생물이 어찌 이리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평소에 먹던 운치는 수분으로 가득하니 저실장의 약한 소화능력으로도 셀프 프니프니 정도면 소화에 무리가 없었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고형물을 잔뜩 섭취한 저실장, 이미 셀프 프니프니 같은 어설픈 것으로는 분대가 촉진될 수가 없는 것이다.
“레? 아픈레후! 아픈레후!! 왜 이러는 레후?”

슬슬 분대에서 올라오는 더부룩함이 고통으로 화하는지, 저실장은 주변을 쳐다보며 다급하게 외쳐보지만 그에 화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고형식을 먹었으니까 말이야. 유사 프니프니로는 한계가 있지.”

거울을 안 봐서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 내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한 미소가 펼쳐져 있겠지.
그러는 동안에도 구더기의 뱃속은 꾸준히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프니프니! 프니프니! 마마! 오네챠! 프니프니해주는레후!! 죽는레후! 우지챠 죽는레후우!!”

구더기는 스스로 몸을 굽혔다 폈다 혹은 다시 땅바닥을 뒹구르며 유사 프니프니라도 해봤지만 그것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즐겁다.
통통하게 살찐 저실장이 필사적으로 온몸을 굽혔다 피며 프니프니를 외치는 모습에 황홀한 환희의 감정이 차오른다. 마치 뇌 속에 마약이라도 공급되듯 황홀한 자극이 전신을 타고 흐른다.
“마마! 오네챠! 닝겐상! 프니프니! 프니프니! 아픈레후! 아픈레후!”

저실장의 고통 가득한 외침이 운치굴을 가득 메운다. 살이 오른 저실장의 외침은 마치 옥쟁반에 담은 감로 같은 감미로움으로 내 귀를 덥친다.
“아픈레후! 살려주는레후!! 레후!! 레후!!!!!”

방금까지 색색의 눈물이 흐르던 저실장의 눈에서 이제는 검은색의 눈물이 흐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레삐야아아아아아아앗!!!!!!!!!!!!!!”
저실장의 단말마와 함께 꼬리 끝부분이 팡 소리와 함께 터진다. 구멍을 통해 터져나오는 운치가 마치 내 감정의 해방인 마냥 내 몸도 부르르 떨렸다.
떨린 몸을 진정하고 감정을 추스른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만이 내가 방금 느낀 감정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좋았어. 나는 가지고 온 화장지로 저실장의 시체를 감싸쥐어 올렸다. 내게 더할나위 없는 환희를 맛보게 해 준 존재다. 가는 길이라도 잘 수습해줘야지.
나는 저실장이 좋다.
그렇게 봄부터 열심히 키워 살찌운 저실장이 최후의 만찬을 먹고 환희와 고통속에 죽어가는 것이 좋다.
“데에? 데스데스?”
아, 일가실각한 빈 실장굴에 또 다른 성체가 접근하고 있다. 다음에도 또 재밌는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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