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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힘



언젠가 남북 경수로 협력사업에 대한 책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 참여했던 기술자가 저술한 책인데, 공사기간 동안 우연찮게도 자신들을 감시하던 북한군 장교 몇 명과 친해져서 나중에 가면 서로 몰래 개인적인 이야기도 주고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북한 사람들과 인간적인 친분을 쌓으며 지낸 후 경수로 협상이 결렬되어 그 기술자는 남쪽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다 몇 년 후 우연하게 북한군 장교였던 사람 중 한 명이 탈북을 하게되어 또다시 둘은 남쪽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거기서 기술자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북한군은 경수로 협력사업 동안 우리측 기술자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물론 그 기술자 또한 그걸 예상치 못한 건 아니었기에 별로 놀랍지 않았지만 실제 경악한 건 그 감시 자체가 아니라 장교가 지나가듯 말한, 일상적인 상부 보고의 장면이었다고 한다.

‘[적]들은 오늘 XX구역의 공사를 끝냈습니다.’
‘[적] 기술자들이 YY공사 구역에 필요한 장비를 재배치해달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기술자 몇 명이 [적]들과 식사를 같이 했다고 합니다.’

정말로 일상적인 보고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한국 사람들을 ‘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떤 내용의 보고를 누구에게 하든 남쪽 사람은 항상 ‘적’으로 지칭되었다고 한다. 애초에 상부에서 그렇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저들은 ‘적’이다. 친근하게 보이고 실제로 친해졌을지 언정 병사들로 하여금 우리를 ‘적’이라 칭하게 함으로써 우리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들이 자신들과 인간적으로 더 소통하고 싶어도 ‘적’이라는 단어에 담긴 그 적개심이 그들에게 계속 주입되는 한,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기술자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 일화가 가장 소름끼쳤다고 저술했다.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말씀하십니까?”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듣던 청년이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냐는 듯 내게 물었다.

“생각해봐. 그 때 그 이야기와 지금 우리 상황이 비슷한 거 같지 않아?”
“예? 비슷…한가요?”
청년은 내 말에 살짝 고민한다. 아직 견습사원임을 나타내는 푸른색 이름표에는 ‘도시악’이라는 세 글자가 바래지 않은 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자네, 밖에선 저 벌레들을 뭐라 부르지?”
“어…”
“괜찮아. 여기 우리밖에 없잖아. 그리고 내가 책임자고. 벌점 안 줄 테니까 이야기해 봐.”
도시악은 내 말에 살짝 머뭇거리더니 입을 땠다.
“실장석, 혹은 참피라고 했습니다.”
“맞아. 저 벌레들의 정식 명칭은 ‘실장석’이지. ‘참피’는 멸칭이고.”
그게 어쨌냐는 도시악의 표정. 나는 천천히 입을 땠다.

몇십년 전 일본에서 ‘발명된’ 이 녹색 생명체들은 처음에는 기적의 생명체로 칭송받았다. 인간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 비록 링갈이라는 번역기를 통해서긴 하지만 인간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 이해불가능한 재생력까지. 만약 그대로라면 실장석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애완동물이자 무한정 고기를 조달할 수 있는 가축으로 사랑받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실장석의 뻔뻔한 본성이 밝혀진 이후 실장석들은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아니, 천덕꾸러기면 낫지, 완전히 유해조수급으로 떨어져 버려지고, 학대당하고, 죽어나갔다. 그래도 그 끝장나는 번식성과 재생력이 합쳐저 실장석은 공원 등지에 기생해서 끈질기게 버티고 살아나갔다.

그러던 중 실장석은 화물선이나 밀수등의 루트를 통해 기어이 국내에도 기어 들어왔다. 그리고 뭐, 안 봐도 뻔하게 대량으로 번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처럼 국내에도 그런 실장석을 전문적으로 때려잡는 업체가 생겼다. 바로 우리처럼.

하지만 구제직원도 결국 사람이다. 급여를 받은 만큼의 책임감으로, 혹은 드물지만 실장석들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고자 하는 의무감에서 이 일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살아있는 생물을 죽인다는 죄책감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닝겐상! 와타시타치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은 데스요? 와타시타치는 닝겐상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살았는데스! 음식도 산 속에서 캐 온 풀뿌리나 먹은 데스! 하루도 배불리 먹은 적이 없는 데샤아아아! 그래도 닝겐상에게 손 벌리지 않고 비루하게 먹고 사는 와타시타치를 왜 이리 참혹하게 죽이는 데스!!!!”
전에 산에 접한 공원에 살던 실장석들을 구제할 때 신입 구제직원이 들실장에게 들었던 절규였다. 결국 그 구제반원은 그 다음날 사표를 쓰고 나갔다.

구제업체는 늘 구인난에 시달렸다.

거기서 회사가 낸 아이디어는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실장석을 ‘벌레’라고 불러라.

다른 명칭은 절대 허가하지 않는다.

친실장이나 성체실장은 각각 큰벌레나 어미벌레.
중실장은 중간벌레.
자실장이나 엄지는 새끼벌레.
저실장은 말 그대로 구더기.

이렇게 부르는 게 기존과 무슨 차이점이 있나 싶지만 회사는 그렇게 부르라고만 할 뿐이었다.

링갈도 지참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 해충방역에 번역기가 왜 필요하냐는 논리였다.

몇몇 직원들은 반발했지만, 회사는 단호했다.

무심코 ‘실장석’이나 ‘참피’라는 말을 쓴 구제반원은 가벼울지라도 징계를 받았다. 투덜거림을 뒤로 한 체, 서서히 직원들은 ‘벌레’라는 명칭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 방침은 서서히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벌레라고 계속 부른다. 그러다가 동족식이나 자기 새끼를 노예로 만들기, 동족습격이나 등쳐먹기 같은 혐오스러운 모습을 보게된다. 그런 직원들의 뇌리에서 실장석들은 더 이상 존중해야할 생명체가 아니게 된다. 말 그대로 벌레가 된다. 이제 여기 구제직원들은 실장석은 더 이상 사람과 비슷한 생물체로 보지 않는다. 실장석은 그냥 벌레, 그것도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해충일 뿐이다.

해충은 구제한다.

벌레만 해도 징그러운데 해충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모기를 죽일 때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실장석을 죽이는 것은 그 정도일 뿐이다.

“우리는 언어를 참 가볍게 생각하지. 그게 무슨 대수냐 혹은 그런다고 뭐 달라지는 거 있냐는 식으로 말야.”
나는 다소 자조적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만 봐도 이렇게 바뀐 거 보면 말이지. 언어를 통한 인간의 인식 변화란 참 재미있지 않은가?”
내 말에 도시악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면서도 무언가를 속으로 생각하는 듯 되뇌이고 있었다.

[A-2구역에서 어미벌레 한 마리 찾았습니다.]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목소리 사이사이에 데갸아아악 하는 벌레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기질적이고 평안한 톤으로 보고했다.

“큰벌레 18마리. 오케이. 오늘은 이만 종료한다.”
나는 무전기에 대고 작업종료를 공지했다.

“그걸…제게 알려주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철수를 지시하는 내게 도시악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자네 국문학과 출신이라고 했지? 그걸 보고 문득 든 생각일 뿐이야.”
자자 얼른 퇴근합세 하고 나는 도시악의 어깨를 두드렸다. 뭐, 언어에 대한 일화니까 국문학과 출신이라서 그렇게 말을 건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신입들에겐 이 말은 한 번씩 다 해보곤 했다.

실장석들은 엄연하게 생명체다.

그걸 벌레라고

지칭하고,
인식하고,
조치를 취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고,


이 미친 행위를, 세뇌를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지, 나는 그에게 물어본 거나 다름없다.

뭐, 내일이면 알게 될 거다.

내일 내 책상에 사직서가 올려져 있을지 아닐지를 기대하며 나는 도시악을 데리고 직원들이 집결한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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