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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기너즈 럭

 

 “자 줄서요 줄서~ 다 할 수 있으니까 새치기하지 말고 줄서~ 줄 서지 않는 분충은 용서하지 않아요.”

공원에는 늘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거나 산책을 하는 실장석이 많지만 한 곳에 모여 있는 실장석을 보기는 드물다. 더욱이 질서를 지키며 줄을 서는 실장석이라니 전문 브리더가 교육하는 게 아니라면 들실장들이 줄을 서는 일은 없다. 줄을 선 실장석들은 떠들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데 손을 보니 저마다 저실장을 한 마리씩 들고 있다. 끝없이 늘어선 줄 앞에는 낚시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가 나무 막대기를 들고 줄을 세우고 있다.

“야! 내가 새치기하지 말라고 했지. 풍당아 쟤는 끌어내라.”

주인의 명령을 들은 성체실장 풍당이는 눈치를 살살 보며 새치기를 한 실장석을 냅다 집어 패대기친다. 바닥에 닿은 충격으로 품에서 벗어난 저실장은 하늘을 난다고 좋아하다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쇼크사로 죽는다.

“데샤아아아아! 간신히 한 마리 구한 구더기가! 오로롱 이 날만 기다렸는데 이럴 수는 없는 데스 오로롱.”

울거나 말거나 줄을 선 다른 실장들은 쌤통이라며 비웃는다. 일을 마친 풍당이는 주인 곁으로 돌아가 가득 쌓인 구더기를 한 마리 집어 먹는다. 남자는 다시 맨 앞에 선 실장석을 내려다  본다.

“넌 오늘만 네 번째네. 구더기는 어디서 구해온대?”
“다 수가 있는 데스우. 어서 슬롯을 돌리게 해주는 데스우.”


구더기 잘 받았다. 실장석이 내민 구더기를 풍당이가 받고 풍당이는 코인을 준다. 코인을 받아든 실장석은 숨을 고르며 슬롯머신에 천천히 코인을 넣는다. 코인이 땡그랑하며 들어가자 실장석은 있는 힘껏 스틱을 내린다. 

“가는 데샤아아아아아아!!!”

슬롯 세 칸이 빙글빙글 돈다. 체리, 포도, 7. 여러 그림이 빠르게 돌아간다. 슬롯을 돌린 실장석은 침을 튀기며 7을 외친다. 지켜보던 실장석들도 고개를 내밀고 본다. 오늘은 과연 행운의 777이 나올 것인가. 슬롯이 느려지며 첫 번째 칸이 멈춘다. 7. 시작은 좋다. 실장석은 상모돌리기를 하며 남은 두 칸도 7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두 번째 칸도 역시 7. 여기까지 오니 실장석들은 집단으로 괴성을 지른다. 슬롯을 돌린 실장석은 숨넘어갈 듯 쳐다본다. 남자는 싱글벙글하며 실장석들을 보고 풍당이는 구더기를 으적이며 한심한 눈으로 실장석을 쳐다본다. 드디어 세 번째 칸이 멈췄다. 체리.

“데...데...데샤아아아아아아!!! 말도 안 되는 데스! 세레브한 와타시한테 어째서 777이 나오지 않는 데스! 이건 똥닝겐의 농간인 데스! 똥닝겐이 7씨가 나오지 않게 슬롯씨를 협박한 게 분명한 데스! 데스웅~ 슬롯씨는 와티시의 애교에 메로메로되어 7을 돌려주는 데스웅~”
“응 끝났어. 77에 체리면 콘페이토 세 알이네. 근데 방금 나보고 똥닝겐이라 했지? 분충은 용서하지 않는다.”


남자는 막대기로 입을 잘못 놀린 실장석을 내리친다. 성체실장이라도 힘껏 내려친 막대기에 머리를 맞으니 머리가 음푹 파인다. 뇌가 으깨진 실장석은 같은 자리를 빙빙 맴돌며 하무라뾰 무라뾰 메뺘쇼라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다만 줄 서있는 놈들이 이미 자판기감으로 점찍었으니 무사히 살아남을지는 모른다. 다른 실장석들은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 본전도 못 찾은 들실장을 비웃는다.

“치프프~ 분충이 돌리니 슬롯씨가 화난 테치. 아타치가 돌리면 777이 아니라 777 할아버지도 나오는 테치.”
“자실장 주제에 건방진 데스. 777은 와타시가 이미 접수한 데스. 눈앞에 777이 뜨는 모습이 선히 보이는 데스.”


남자는 지들끼리 웃고 떠드는 실장석들을 쳐다보며 웃음을 짓는다. 일본에서 기념품으로 미니 슬롯 머신을 살 때만 해도 이리 재밌는 짓을 할 수 있는지 몰랐다.



슬롯 머신도 한두 번이지 777이 나온다고 대박이 터지는 것도 아니라 남자는 금방 질렸다. 어느 날 풍당이한테 777이 나오면 간식을 두 배로 준다고 농담으로 말했다. 그날 뭔가 자꾸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남자는 풍당이가 눈이 퀭해진 채 슬롯 머신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간신히 말리고 간식을 두 배로 주고 풍당이를 잠재운 남자는 문득 들실장한테 슬롯 머신을 돌리게 하면 어떨지 생각했다.

바로 다음 날 남자는 슬롯머신을 챙겨들고 풍당이와 함께 공원으로 갔다. 풍당이 대신 저를 키우는 영광을 준다는 들실장 몇 마리를 막대기로 후려치고 남자는 미니 슬롯머신에 대해 설명했다. 슬롯을 돌리면 세 칸에서 다른 그림이 나온다. 같은 그림이 나올수록 좋은 선물을 줄이며 특히 777이 나오면 상상도 못할 만큼 어마어마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 번 돌리려면 저실장 한 마리를 가져오면 된다.

물론 말만 해서 알아먹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풍당이가 시범을 보였다. 처음에는 학대파의 장난이라 생각하고 경계했고 분충들이 몰려들었지만 분충한테는 응징을 하고 학대파가 아님을 몸소 보여주었고 특히 말한 대로 보상을 철저히 주었기 때문에 곧 공원에 사는 들실장치고 슬롯 머신을 돌리지 않은 실장은 없었다. 처음에는 들실장이 몰려든다고 사람들이 애호파라 욕하기도 했고 신고가 들어왔지만 곧 실장석이 질서에 맞춰 슬롯머신을 돌리는 모습은 공원의 신기한 명물로 등극했고 오히려 저실장을 돈으로 받으니 번식력 억제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나와 남자는 ‘후타바 카지노 마스터’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남자는 콘페이토 한 알에 아등바등하는 들실장을 보며 재미를 얻었고 들실장들은 본전이라도 저실장으로 평소에 꿈도 못 꾸는 콘페이토를 얻으니 일거양득이요 미묘한 관계지만 공생이라 부를 만했다. 남자는 2주에 한 번 일요일 아침에 왔다. 처음에는 시간을 모르던 실장석들도 해씨가 14번 째 뜨는 날 남자가 온다고 학습했다. 그리고 이번 일요일도 남자는 어김없이 왔다.

“자 다음 놈. 풍당이한테 구더기 주고 코인 받아.”
“데...와타시는 이번이 처음인데 어떻게 하는 것이 데스우?”
“처음이면 친절히 설명해줘야지. 풍당아. 시범 보여줘.”


풍당이는 코인을 넣고 스틱을 내려 슬롯을 돌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장석은 코인을 조심스레 넣고 스틱을 내린다. 눈으로 쫓기 힘들 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슬롯. 이 실장석은 뭐가 좋은지는 모르고 다만 그림이 같아야 좋다는 것만 알았다.

 첫 번째 칸이 멈춘다. 7. 오늘은 7이 자주 나오네. 두 번째 칸이 멈춘다. 7. 첫째 칸과 둘째 칸이 잇따라 7이 나오면 콘페이토 하나다. 이 실장석은 처음 한 것치고 운이 좋다. 비기너즈 럭이라고 하는 게 있다던데 이 실장석은 처음 돌린 게 행운인 듯하다. 셋째 칸이 멈췄다. 7. 야 대단하네. 777이라니. 운 되게 좋다. 응?

“주인사마. 777인 데스우...777이 나온 데샤아아!”

남자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해 슬롯을 집어 든다. 777. 정말 777이다. 처음 샀을 때 밤새도록 돌려도 777은 딱 한 번 나왔다. 귀하디 귀하신 몸인 777이 오늘 처음 돌린 실장석 앞에 납셨다. 그야말로 비기너즈 럭의 산 표본이다. 다른 실장석들은 제 눈을 의심하다 곧 질투와 시샘에 사로잡혀 단체로 소리를 지르고 정작 장본인은 뭐가 뭔지 몰라 멀뚱히 서 있다.

조용히 해! 남자가 호통 치자 실장석들이 잠잠해진다. 남자는 슬롯을 내려놓고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축하해. 처음 돌렸다고 초심자 패키지 통 크게 주네. 777은 안 나올 줄 알고 아직 상품을 안 정했는데.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 받아라. 777 상품이다.”

남자가 가방에서 꺼낸 건 남자 발만 한 크기의 봉다리다. 검정색이어서 안이 보이지 않아 남자는 손수 안에서 내용물을 꺼낸다.

“이거 다 콘페이토야. 가족끼리 먹어도 몇 주는 먹을 걸.”
“데? 이게 와타시 것인 데스우?”
“응. 777 상품이야. 이 정도는 들고 갈 수 있지?”


들실장이 겉에서 봉지를 만지자 콘페이토의 질감이 느껴진다. 꿈인가 싶어 볼을 쭈욱 땅긴다. 아프다. 꿈이 아니다. 실장석은 공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다.

“데퍄퍄퍄퍄퍄퍄!!! 콘페이토 데스우! 콘페이토인 데스우! 저 많은 콘페이토가 젠부 와타시 것인 데스우!”

콘페이토 한 봉지를 줘도 어차피 대량으로 사서 얼마 안 한다. 남자는 더욱 흥미진진한 슬롯에 몰입한다. 실장석이 봉지를 들고 가기 전에 남자가 막대기를 두드려 다른 실장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 내가 가면 쟤네 꺼 뺏을 생각하는 놈들 분명 있을 거야. 만약 다음에 왔는데 쟤네가 죽어 있거나 콘페이토를 뺏겼다. 이 공원에 사는 놈들 다 죽을 각오해.”

남자가 진지한 눈빛으로 공원을 훑어보자 방금까지 어떻게 해야 잘 뺏었다 소문이 날까 고민하던 실장석들은 아쉬워하며 혀를 찬다. 자 다음 놈. 슬롯은 계속 돌아가고 행운의 실장석은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간다.

“뎃데로게~ 자들~ 마마가 돌아온 데스우~ 선물도 가져온 데스우~”
“어서 오는 테치 마마. 보고 싶었던 테치.”


친실장은 몸이 약할 때 자를 낳아서 셋밖에 낳지 못했고 막내는 엄지였다. 주변에서는 엄지는 자가 아니니 운치굴이라고 했지만 마음이 약한 친실장은 차마 엄지를 내치지 못했다. 그나마 자가 적은 덕에 배를 곯는 일은 없었지만 들실장이 늘 그렇듯 넉넉하게 끼니를 챙겨주지는 못했다. 늘 배고파하는 자들한테 미안해 한 친실장은 오늘에서야 비로소 진짜로 마마다운 일을 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대견했고 뿌듯했다.
“마마가 가져온 걸 보는 데스우.”

“테햐하하하~ 이 많은 콘페이토는 대체 뭐인 테치?”
“테에에에엥~ 꿈 아닌 테치? 아타치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는 테치~”
“꿈이 아닌 데스우. 정말로 마마가 받아온 것인 데스우. 기념으로 한 알씩 먹는 데스우.”

친실장은 자들한테 한 알씩 주고 저도 한 알을 집어 들었다. 잘 먹겠는 데스우~ 자실장들은 콘페이토가 커서 할짝이며 단 맛에 눈물을 흘렸다. 친실장은 그래도 덩치가 있어 한 입에 삼킬 수 있지만 귀하신 콘페이토한테 감히 결례를 범할 수는 없어 공손히 천천히 핥았다. 혀를 타고 드는 단맛이 뇌에 닿더니 곧 온몸에 퍼져나갔다. 이제까지 먹은 맛없는 먹이나 말 그대로 아무 맛도 안 나는 먹이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세레브한 맛을 내는 콘페이토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 콘페이토는 사라졌고 집이 온통 눈물 바다였다.

“테에에에엥~ 이런 맛은 실생에서 처음인 테치~ 아타치 이제까지 살길 잘한 테치~”
“모두 아타치타치가 착하게 살아서 하늘이 내린 선물이 레츄.”
“아타치 하나만 더 먹어도 되는 테치? 마마 부탁하는 테치~”
“물론인 데스우~ 하지만 아껴 먹어야 하니 오늘은 이게 마지막인 데스우.”


실장석들은 콘페이토를 하나씩 더 먹었고 또 눈물 바다를 만들며 먹었다. 잠들 때까지 자들은 배고프다는 말을 하지 않고 곤히 잠들었다. 친실장도 이리 편히 잠들기는 처음이었다. 잠자리를 눈물 바다 때문에 오히려 축축했지만 메말랐던 마음에 단비가 내려 싱그러워진 느낌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평소처럼 먹이를 구해도 배는 풍족히 먹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엄지도 어엿한 자가 될 테고 자들은 다른 실장보다 빠르게 성체실장이 되어 독립할 것이다. 친실장은 어느새 자실장들이 친실장이 되어 자실장의 자실장을 데려오는 꿈을 꾸었다. 이제 힘든 삶은 끝이다. 친실장 앞에 놓인 미래는 콘페이토처럼 참 새하얀 미래였다.



“맛없는 테치. 콘페이토 먹고 싶은 테치...”

장녀는 힘없이 밥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욱 풍족했지만 반응은 전보다 나빠졌다. 콘페이토를 받은 지 보름이 지났다. 친실장이 극한의 절제력으로 콘페이토는 하루에 두 알로 제한했기 때믄에 콘페이토는 아직 충분했다. 친실장도 먹고 싶었지만 좀 더 미래를 내다보았다. 곧 여름이 다가오면 먹이를 구하기 힘들어지고 보존식도 빠르게 상한다. 콘페이토는 상하지도 않고 보존하기도 쉽기 때문에 친실장은 콘페이토를 비상식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자실장들한테 콘페이토는 별미를 넘어 이제는 당연한 식사가 되었다. 자실장의 눈에 검정 봉다리는 콘페이토가 끊임없이 나오는 화수분이었고 왜 친실장이 식사량을 제한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친실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설명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자실장들은 여전히 친실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친실장은 콘페이토를 또 구하기로 했다. 이미 한 번 777이 납신 몸이다. 제가 콘페이토가 필요하다면 슬롯은 다시 777이 나올 거라 믿고 친실장은 보존식으로 만들려던 구더기 한 마리를 들고 슬롯으로 갔다.

그 날 수확은 꽝이었다. 친실장은 보존식 하나만 손해 보고 돌아왔다.

“마마. 콘페이토 가져온 테치?”

“좀만 더 기다리는 데스. 곧 마마가 배불리 먹게 해주는 데스우.”

오늘은 운이 좋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분명 나올 것이다. 아직 콘페이토는 많으니 오늘은 기분 내서 3개를 먹어볼까. 이제는 익숙해져 한 입에 집어넣고 입안에서 굴리며 친실장은 봉지가 넘칠 만큼 콘페이토가 많이지는 상상을 하며 웃었다.



“아쉽네. 77에 포도야. 콘페이토 세 알 받아가.”
“포도 배 체리. 과일 가게구만. 꽝이야. 다음엔 잘 나오겠지.”
“체리 키위 체리. 수미상관 구조네. 수미상관 구조는 콘페이토 한 알이야. 본전치기네.”



“어째서 777씨가 안 나오는 데샤아아아아! 와타시 이번이 13번째인 데스! 슬롯씨가 잘못 된 거 아닌 데스? 한 번 확인해야 하는 데스!”
“시끄러운 데샤! 와타시는 얼마나 많이 돌렸는지 자판기가 말라 죽어버린 데스! 일 끝났으면 비키는 데샷!”

친실장은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친실장은 자판기가 없었다. 슬롯머신 때문에 공원은 자판기로 난리였다. 친실장네는 남자가 건드리지 말라고 엄포를 놨기 때문에 안전했지만 다른 집은 일가족이 통째로 자판기가 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친실장도 자판기를 구해보려 했지만 힘세고 머리 좋은 다른 실장들이 다 가져갔기 때문에 친실장 몫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친실장은 물물교환을 했다. 콘페이토 한 알에 저실장 한 마리를 바꿨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는데 친실장과 마찬가지로 다른 실장들도 777로 대박을 터트릴 생각만 했기 때문에 쉽사리 구더기랑 콘페이토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이따금 바꾼 구더기는 잘 모아두었고 오늘 다 쏟아 부었다. 슬롯을 13번 돌려 얻은 건 고작 콘페이토 5알. 반타작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8알을 자들한테 먹일 걸하고 친실장은 후회했다. 친실장은 털레털레 오늘 밥을 구했다.

“자들. 마마가 온 데스. 오늘은 밥을 조금밖에 못 구한 데스.”

장녀도 둘째도 막내도 친실장이 가져온 밥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자들은 천장을 보며 콘페이토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엄지가 벌떡 일어나 친실장을 노려보았다.

“더는 못 참는 레츄! 아타치 마마가 콘페이토를 배불리 먹게 해준다고 해서 무려 해씨가 40번이나 나오는 때까지 기다린 레치! 근데 이게 뭐인 레챠아악! 그 많은 구더기는 다 가져가서 엿 바꿔먹는 레챠앗! 마마 혼자서 구더기랑 콘페이토 바꿔서 다 먹고 오는 거 아닌 레치! ”

노력도 몰라주고 철없는 소리만 하는 자실장한테 친실장은 크나큰 실망감을 느꼈다. 평소였다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오늘은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친실장은 감정을 억누르며 최대한 좋게 타일렀다.

“마마를 믿고 좀만 더 기다리는 데스. 배불리는 아니지만 오늘은 콘페이토를 가져온 데스. 사이좋게 나눠먹는 데스.”
“싫은 레챠아아아! 저걸로는 간에 기별도 안 되는 레츄아! 이제 쓰레기 밥은 먹기 싫은 레츄아아앙! 빨리 콘페이토 더 가져오는 레챠악! 콘페이토 콘페이토 콘페이토!!!”


엄지는 조용해졌다. 친실장은 주먹으로 엄지를 내리쳤다. 남들보다 잘 먹어 곧 자실장이 되었을 엄지는 머리가 사라졌다. 갑자기 변한 친실장을 보고 장녀와 둘째는 사태를 파악하고 조용해졌다.

“진작에 이웃상의 말을 들었어야 한 데스. 엄지는 자가 아닌 데스. 지금까지 저 쓰레기 같은 것에 콘페이토랑 밥을 넣어주었다고 생각하니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데스. 오마에타치도 밥 먹기 싫은 데스?”

“아닌 테치. 감사히 먹겠는 테치. 아 우마우마한 테치~ 콩나물 줄기랑 과자 부스러기 맛있는 테치~”

누가 보아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아니었지만 지친 친실장은 대충 넘기고 밥은 입에도 안 대고 잠들었다.

꿈에서 친실장 주위에는 슬롯이 잔뜩 있었다. 친실장이 건들지도 않았는데 슬롯이 멋대로 돌아가더니 모두 777이 떴다. 코인을 넣는 데서 콘페이토가 쏟아져 나왔다.
콘페이토인 데스~! 콘페이토가 비처럼 쏟아지는 데스~! 이제 그만 나와도 좋은 데스~! 데? 어째서 멈추지 않는 데스? 똥슬롯은 와타시의 말을 듣는 데샤아아! 그만...그만 나오는 데스...숨을 못...쉬는...데....


“데샤아아아아앗!!! 데엑...데엑...기분 나쁜 꿈인 데스. 물...물이 어디 있는 데스...데?”

뒤척이던 친실장의 머리에 무언가 닿았다. 밤이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 촉감. 분명 콘페이토였다. 밤눈에 적응한 친실장은 콘페이토를 봉지 한 쪽이 찢어져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안에서 나는 천박하고 추잡한 소리를 들었다.

“테햐아아아아~ 여긴 천국인 테치~ 이렇게 많이 있는데 마마는 욕심쟁이인 테치~ 이 천국에는 마마도 못 오는 테치~ 젠부 아타치 것인 테치~ 아타치가 다 먹어버리는 테츄아~”
“오마에. 지금 무슨 짓인 데스?”
“테? 마마? 깬 테치?”


친실장이 깰 줄은 몰랐는지 장녀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오른쪽 뺨에 손을 갖다 댔다.
테츙~!
테벳



다음 날 아침 친실장은 남은 콘페이토를 긁어모았다. 조그만 몸으로 어찌나 많이 먹었는지 3분의 1이 사라졌고 그나마 남은 것도 장녀가 운치를 그 자리에서 지리며 먹는 바람에 남은 반이 운치범벅이 되었다. 콘페이토는 귀한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버릴 수 없었지만 운치가 묻으면 비상식으로서 의미가 사라진다. 눈물을 머금고 운치가 묻은 콘페이토도 전부 버리니 남은 콘페이토는 보존식 상자에 담을 만큼 적어졌다. 입이 두 개로 줄어들었지만 이 정도면 더 이상 끼니마다 콘페이토를 먹지 못한다.

“둘째는 듣는 데스. 이제 둘째가 장녀인 데스. 오마에의 전 오네챠가 콘페이토를 죄다 먹어치우는 바람에 이제 콘페이토를 아껴야 하는 데스. 겨울이 올 때까지 콘페이토는 봉인인 데스.”
“테...그럼 이제 콘페이토 못 먹는 테치? 테...”


둘째는 친실장을 잘 따랐다. 차마 뭐라 불평은 못하고 시무룩해하니 보는 친실장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친실장은 전보다 더욱 열심히 밥을 구했고 조금이라도 쓸모 있어 보이는 물건이라면 닥치는 대로 주워서 다른 실장들한테 구더기를 받고 바꾸었다. 보름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모은 구더기는 20마리. 이 정도로 모았는데 설마 777이 안 나올까. 친실장은 운치굴에 가득한 구더기를 보고 마음을 놓았다.

“내가 다른 놈들은 구별 못해도 이제 너는 알아보겠다. 오늘 되게 많이 왔는데 결과가 어찌 시원찮아. 풍당이한테 콘페이토 하나 받아가.”
“이럴 수 없는 데샤아아아아!!! 20번인 데샤! 20번을 했는데 어떻게 한 번도 안 나오는 데샤아아!”
“안 나오는 사람은 20번이 아니라 2000번을 돌려도 안 나오지. 애초에 너 말고 777이 나온 실장이 없어. 네가 되게 운이 좋았던 거야.”
“그 운 여기서 다시 한 번 보여주겠는 데스! 한 번만...한 번만 다시 돌리게 해주는 데스! 20마리나 주었으니 한 번 쯤은 그냥 돌리게 해줘도 되지 않는 데스?”
“난 자선 사업하려고 있는 거 아니다. 풍당아 끌어내.”


친실장은 풍당이한테 질질 끌려가는 그 순간까지 슬롯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부귀영화를 안겨줄 슬롯이 눈에서 멀어져 갔다. 바닥에 엎드려 오로롱 우는 친실장은 슬롯에서 들려온 환호성에 고개를 들었다.

777이 있었다. 행운의 들실장은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하며 그 자리에서 데에엥하며 울었다. 이야 말하자마자 한 번 더 뜨네. 777이 떴으니 콘페이토 한 봉다리야. 모두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그 때 누군가 행운의 들실장한테 돌진했다. 친실장은 보검을 꺼내 들실장의 목을 꿰뚫고 보검을 비틀어 목을 찢었다. 행운의 들실장은 목숨까지 보전하는 행운은 누리지 못했다. 달려드는 풍당이한테 친실장은 마구 보검을 휘두르며 이미 죽은 들실장을 마구 발로 밞았다.

“오마에 잘못인 데샤! 오마에가 내 777을 가져간 데샷! 도둑 분충은 보검을 맞고 죽은 데샤아아! 정당한 대우인 데스! 도둑의 최후인 데스! 아니 똥닝겐 잘못인 데스! 똥닝겐이 한 번만 더 하게 해주었다면 777은 와타시의 품에 들어왔을 것인 데샤! 똥닝겐은 와타시의 천벌을 맞고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는 데샤아아아!”

독기 서린 눈으로 달려드는 친실장. 남자는 벌레 보는 눈으로 막대기를 들어 친실장을 후려쳤다. 저 멀리 날아간 친실장은 다리가 부러졌지만 기어서 남자한테 다가왔다. 남자는 친실장이 오지 않아도 되도록 친절하게 친실장 쪽으로 갔다.

“내가 777 나온 놈 건드리면 어떻게 된다고 말했잖아. 넌 죽었다.”

남자는 딱 한 대 세게 내리쳤다. 살점이 사방으로 튀며 친실장은 곤죽이 되었다. 그러면서 일부러 머리는 때리지 않아 의식은 있게 했다.

“아 기분 잡쳤네. 풍당아. 오늘은 이만 가자. 아 저 분충 때문에 진짜. 이 짓도 그만 둬야 하나.”

남자랑 풍당이는 짐을 챙겨 떠났고 순서를 기다리던 실장석들은 보름 동안 기다린 일이 물거품으로 돌아가자 차마 남자한테 뭐라고 말은 못하고 이미 반시체가 된 친실장을 마구 때렸다.

“오마에는 공원의 수치인 데샤! 슬롯 닝겐이 다음부터 안 오면 어떻게 보상할 것인 데샤아!”
“오마에가 병신 짓만 안 했어도 와타시도 오늘 777이 나왔을 데샤! 괘씸하니 더 맞는 데샤!”


이미 온 몸의 감각이 사라져서 아무리 맞아도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친실장은 마지막 순간에 집에 홀로 남겨 둔 전 둘째 장녀가 떠올랐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과분할 만한 행운이 찾아온 게 잘못이었을까. 비기너즈 럭은 행운이 아니라 끝없는 늪으로 빠지게 유혹하는 미끼인지도 모른다. 감당하지 못하는 행운은 다른 모습을 한 불행이었다. 친실장은 이 놈이라도 먹어야겠다고 머리를 집어든 들실장을 본 것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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