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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 훈육

 

예비 사육실장의 훈육.
실장업계 관계자에게 이만큼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며 지긋지긋한 말이 또 있을까.

거의 모든 실장석은 잠재의식 속에서 인간과 함께 살기를 원하지만, 인간에게 용납되려면 그 속의 '분충성'이란 본능을 억누르거나 감춰야 한다. 그것을 이해시키든, 억지로 몸에 배게 만들든 해서 애호용으로 적합하게 교육된 실장석을 만드는 것이 훈육이다. 말뿐이라면 쉽지만 지금껏 수많은 숍과 개인 브리더들이 온갖 방법을 연구하였음에도 완벽한 훈육법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언젠가 실장석은 주인의 기대를 배반한다. 최고급 세레브 사육실장도, 떨이판매 싸구려 실장도 마찬가지다. 실망한 주인은 다시는 실장석을 기르지 않고, 고객층도 점점 축소되는 판국이라 훈육 단가 맞추기도 힘들고, 더 분충화하기 쉬운 어설픈 훈육 실장들이 시장에 나오는 악순환의 고리가 펼쳐진다. 점점 거세지는 고객들의 항의에 대응해 보증기간 동안 동급의 사육실장을 교환해주는 숍도 생겼다. 실장석이 소모품 취급당하는 날도 멀지 않아보인다.


그러나 이런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는 숍이 있다. 모시에 위치한 실장석 전문점 ""이 그곳이다.
""의 사육실장은 타 업체에 비해 고객 만족도가 월등히 높고, 이곳에서 판매된 사육실장의 평균 수명, 자손 여부, 재방문율 등 모든 수치가 업계 최고를 가리키고 있다. 판매하는 사육실장의 수는 매우 적은데, 그럼에도 가격이 합리적으로 책정되어 있어 전국의 애호파들이 번호표를 뽑고 찾는 곳이 되었다.

""의 성공 비결은 바로 다른 곳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미래 주인의 사육 방향에 대한 맞춤 훈육에 있었다.


"데후우웁~!!"


"텟테레~"

막 태어난 건강한 자실장들을 직원이 한마리씩 상자에 옮겨담는다. 전용 출산석으로부터 자실장을 얻는 것은 다른 숍과 동일하다.

"이번에도 귀여운 아이들이네~ 배고프지? 자 맛나맛나 먹을 시간이에요~"

아무 이유 없는 칭찬은 그때부터 '올리기'가 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훈육 중에는 절대 금기이다. 또한 음식에 대한 자각이 없는 갓 태어난 자실장에게는 가장 낮은 등급의 푸드부터 먹이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직원은 진성 애호파나 할법한 멘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친 다음 최고급 스테이크맛 푸드를 자실장들에게 건넨다.

테챱테챱..."우마우마한 테챠!! 태어나길 잘한테치!!"
"치프프... 고귀한 와타치에게 어울리는 첫식사인 테치."
"조금 짠 테치... 아마아마가 좋았을 테치, 하지만 배고프니 먹는 테치."

저마다 떠들면서 생애 첫 식사에 집중하는 자실장들. 여기까지는 이곳의 평가 기준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정신없이 한 알을 다 먹은 자실장들은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듯 아까 다정한 말을 해주고 푸드까지 준 닌겐상을 찾는다. 그것을 확인한 직원은 다시 또 한알씩을 건넨다. 자실장들이 푸드를 원할 때마다 아낌없이 주면서, 그 개수를 표시한다.

"자꾸 먹어도 맛있는 테치! 또 또 먹고 싶은 테치!!"
"또 이맛인 테치.. 닌겐!! 더 우마우마한 먹이를 준비하는 테치!"
"테.. 배부른 테치. 이 밖엔 뭐가 있는 테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개체간의 차이가 명확해진다. 이미 배가 빵빵하게 불러 일부를 빵콘해 흘렸으면서도 계속해서 푸드를 요구하는 분충이 있는가 하면, 더 못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쉬운 듯 바닥에 흘린 푸드를 핥기에 여념이 없는 개체도 보인다. 대부분은 식곤증에 못이겨 아무렇게나 누워 잠들어 있다.

직원은 이 가운데서 세알 이하만 먹은, 그저 앉아 있거나 먹는 것보다 호기심이 우선인 듯 작은 상자 안을 돌아다니는 몇마리를 다른 상자에 옮겨담는다. 그리고 자실장들이 든 상자는 "최고급"이라는 문패가 붙은 방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첫 선별이 끝났다.


일반적인 사육실장 선별은 태생적 분충과 지능이 낮은 개체를 걸러내며 마지막까지 모든 테스트를 통과한 자실장을 최고급으로 치는 계단식 훈육법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은 반대다. 그들은 먼저 최고급 사육실장이 될 개체를 골라낸 다음 마지막까지 훈육이 안 되는 분충을 끝으로 선별을 마친다.

욕망 덩어리인 실장석에게 처음부터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 당연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건방져지기 마련인 자실장 중에서, 드물게 요구하지 않는 개체를 먼저 골라낸다. 천성적으로 느긋하고 겸손해서건, 무엇이 훌륭한지 구별할 지능이 없어서건 상관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것만으로 '최고급 실장'이 될 자격을 갖추었으니까.

최고급 실장은 실장석이 원하는 것은 아낌없이 사줄 수 있는 주머니가 넉넉한 고객이 사간다. 이들에게 어울리는 자실장은 사실 귀엽고 티없는 외모와 발랄하되 온순한 성격이면 족하다. 똑똑한 자실장에게 괜히 이것저것 가르쳐봐야 그곳에서는 아무 필요가 없다. 혹독한 훈육을 견뎌왔을 수록 사육되는 행복한 생활에 긴장이 풀어져 분충화하는 강도가 세다. 지능이 비상할 수록 금방 자신의 세레브한 대접과 다른 실장석의 차이를 이해해 오만방자해진다. 차라리 일반적인 기준에서 조금 떨어지는 실장석이 나을 수 있다는 소리다. 응석이 심해도, 울보여도, 똥을 다소 못가려도 애호파는 이해해주니까.

그래서 최고급 실장의 훈육비용은 사실상 0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것이 높은 마진으로 이어진다.

이 방법으로 선별된 최고급 사육실장은 사육주에게 다른 만족감도 선사한다. 다른 곳에서 '세레브 사육실장'으로 길러진 자실장은 긴 훈육 끝에 감정 자체가 메말라 정숙하기는 하지만 살아 있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거나, 이미 상당 부분 성장해 어린 자실장을 원하는 고객의 니즈에 부합하지 않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곳의 최고급 실장은 최소한의 건강 검진과 간단한 배변 교육을 마치고 바로 판매하므로, 아직 이조차 제대로 나지 않은 갓난 자실장의 활발한 귀여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반대로 그다지 여유있지 않은 계층의 고객에게 필요한 사육실장은 똑똑해야 한다. 태어난 이 세상은 생각만큼 상냥하지 않고, 주인에게 길러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주제넘게 과한 요구를 해서는 안된다, 잘못하면 버려질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처음의 선별에서 탈락한 개체들은 혹독하게 배울 것이다. 점점 푸드의 등급과 환경이 나빠지고, 불만을 표하면 표하는대로 대우는 내려간다. 그와중에 되풀이되는 체벌과 본보기 처형. 가장 낮은 등급까지 떨어진 자실장들은 "올렸다 떨어뜨리기"의 극한을 맛보았기에 쉽게 분충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그들을 사갈 주인들도 그다지 '올려줄' 형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쪽의 자실장들도 평판이 좋다. 좀처럼 불평하지 않고 말을 잘 들으며 똑똑하다는 것이 "" 출신 중간급 이하 자실장들의 대체적인 평이다. 물론 주인의 사정에 의해 갑자기 키울 수 없게 된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지만, "" 에서 구입한 사육실장이란 사실이 분양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애호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자실장을 구입한 사람들도 만족한다고 한다. 이렇게 꼼꼼하게 행복과 반대되는 생활을 해온 자실장을 싸게 구할 수 있는 곳은 없다나.


오늘도 "" 한쪽의 훈육방에서는 최하급 자실장의 서러운 흐느낌이 들려온다.

"테에엥... 사육실장은 언제 될 수 있는 테치... 따끔따끔은 싫은테치.. 나가고만 싶은테치.. 이제 밥투정 안하는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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