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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기봉이

 

얼마 전부터 집 근처에서 홀로 울고 있던 자실장을 주워와 기르고 있다. 나를 애호파 기분을 내고 싶은 얼치기나 수틀리면 괴롭힐 예비 학대파라고 부르고 싶겠지만 오해는 말길. 이래봬도 인터넷에서 실장석에 대한 지식은 전부 찾아봤고 이녀석에 필요한 건 제대로 사주는 주인이란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녀석의 가장 큰 특징, 내가 데리고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 이 자실장은 맨발이다.

길가에서 테에엥 테에엥 울고 있는 자실장을 발견한 나는 그날따라 호기심이 발동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넘어져서 한쪽 신발을 잃어버렸고, 당연히 잘 걷지 못하게 된 자실장을 친실장은 매몰차게 버려두고 떠났다는 것이다. 솎아내기라던가, 제대로 살 수 없게 된 새끼를 버리는 것은 들실장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아무튼 없어진 신발을 찾아줄 길도 없고 다른쪽 신발까지 벗긴 뒤 나는 이녀석을 길러주기로 했다.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이 선택은 뜻밖에도 도움이 되었다.


아침해가 밝았다.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놓아둔 자실장용 침대에서 녀석이 부스스 눈을 뜬다. 텟치텟치 소리가 들리고 나는 부엌에서 부드럽게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기봉아, 나와~ 아침 먹어야지."

코도 없다시피한 놈에게 그런 이름이라니 너무하지 않냐 싶지만 그래도 맨발에 딱 어울리는 어엿한 사육실장의 이름이다. 기봉이는 잠시 테에.. 한숨쉬더니 이윽고 결연하게 발걸음을 뗀다.

텟치 텟치

기봉이가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은 자기 침대 주변 매트를 깔아놓은 범위까지다. 자실장의 부드럽고 약한 맨발이 딱딱한 바닥을 딛을 때마다 충격이 그대로 전달된다. 저절로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기봉이.

"늦게 오면 1분에 한알씩 빼는 거 알지?~"

테엣!!

당황한 기봉이의 발걸음이 빨라지지만 동시에 발에 가해지는 충격도 강해진다. 저절로 눈물콧물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어떻게든 앙다문다. 아하핫. 귀여워.

기진맥진한 기봉이가 밥그릇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식사를 끝마쳤다. 그래도 밥은 줄이지 않았다.

"맛있게 먹어~"

"테..테츄웅..."


내가 설거지를 하고 이를 닦는 동안 헐떡이는 호흡을 진정하고 식사를 마친 기봉이. 빨갛게 부어올랐던 발도 약간 가라앉은 듯하다.

"그럼 화장실 가야지?"

"테.. 그런 테치..."

실장석을 키우는 데 있어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녀석들에게 나는 특유의 체취다. 하지만 이것은 사육 환경에 따라 크게 개선될 수 있다. 좁은 수조 안에 먹이그릇과 화장실을 전부 넣어두면 냄새가 안 날 수가 없다. 운동량도 부족해진다. 그래서 나는 기봉이가 집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하되 밥은 꼭 부엌에서, 용변은 꼭 화장실에서 보도록 교육했다. 이부자리와 밥그릇과 화장실이 서로 거의 비슷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건 덤이다.

"테... 운치 나올것 같은 테츄.. 참는 테츄... 아직 멀은 테츄..."

아까보다도 괴로운 표정으로 한발짝 한발짝 힙겹게 내딛는 기봉이. 가다가 나와버리면 전부 도로 핥아먹는 벌이 기다리고 있다. 남들은 손발을 꺾는다는데 나 정도면 정말 온건하지 않나?

기봉이 녀석, 다 와가니 거의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고 있다. 힘내라.

"테츄~웅... 테.. 어째서 이만큼밖에 안 나오는 테츄..."

그야 가다가 힘을 너무 써서 소화해버린 탓이겠지. 그리고 기봉이의 여정은 아직 안 끝났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할텐데.


"그럼 갔다올게~ 얌전히 있어."
"테츄웅..."

호기심 많고 활동적인 자실장을 주인 부재시에 집안에 혼자 풀어놓는 행위지만 어떠한 걱정도 없다. 발이 아픈 기봉이가 자기 자리를 나오는 건 점심을 먹을 때뿐인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기봉이는 처음 올 때와 비교해도 별로 성장하지도 살이 찌지도 않는다.


훈육안된 들실장이 그러하듯 기봉이도 금방 기고만장해져 나를 노예라 부르며 투분을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자실장의 허약한 팔힘으로 무언가를 던지려면 온몸을 사용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축이 되는 발에 하중이 쏠리는 건 당연지사.

"테챠아앗! 닌겐노예는 와타치의 운치를 맞고 주제를 깨닫는 테ㅊ...테텟!!"

발이 너무 아파 힘이 풀려버린 기봉이는 자신의 운치를 스스로 뒤집어쓰고 만 것이었다.

"자, 이제 누가 노예지?"
"테...테에에엥!! 테에에엥!"

눈을 질끈 감은 덕에 강제임신까지는 안 갔다지만 곧 자신의 운치냄새에 기겁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후로 기봉이는 나에게 고분고분해졌다.


이동 자체가 고역인 기봉이는 놀이보단 그림책을 읽거나 티비를 보는 게 취미가 되었다. 산책 나가자고 조르지도 않으니 좀 편하다.

"주인님 주인님, 발씨가 불편한 닌겐상이 바퀴가 달린 의자씨를 타고 다니는 거 본 테츄. 와타치도 그런 게 있으면 좋겠는 테치.."

어디서 휠체어라도 본 모양이다. 그렇게 조르니 한번 알아보기나 할까. 세상에, 애호파란 인간들은 안 만드는 게 없었다. 실장용 휠체어를 사다주니 기봉이는 뛸듯이 기뻐했다. 물론 뛰지는 않는다.

"주인님!! 감사한 테츄!! 정말정말 좋아하는 테츄~웅"

바로 휠체어를 타고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글쎄. 휠체어의 존재를 안 것까지는 좋은데 그걸 타고 다니는 사람의 팔근육을 보지는 못한 걸까.

얼마 후.

"기봉아. 왜 휠체어를 타지 않니?"
"테에.. 손씨 너무 아픈테츄.. 힘든 테츄.. 그냥 걷는 게 나은 테치."

휠체어는 주변 애호단체에 기부했다.


이렇게 매일매일이 고난의 연속이지만 실장석도 적응력이 있는 생물이다. 야생에 사는 수많은 독라 실장도 어쨌든 잘 걸어다니지 않는가. 기봉이의 부르튼 맨발도 어느덧 단단해졌다.

"오~ 요즘 좀 빨라졌는걸?"
"텟치! 이제 발씨 덜 아픈 테츄웅~"
"하하. 그래. 오늘은 오랜만에 '아와아와'할까?"
"좋은 테츄웅~"

기봉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 온수목욕이다. 물론 샤워는 매일 하고 있지만 제대로 물에 몸을 담그는 목욕은 잘 시켜주지 않는다.

데지 않을 정도로 뜨끈한 물을 전용 욕조에 담는다. 다 됐다고 하자마자 냉큼 입수하는 기봉이. 금방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물장구를 친다.

"따뜻한 테츄웅~ 기분좋은테츄~"

떠드는 것도 잠시 노곤해졌는지 꿈뻑꿈뻑 눈이 감긴다. 총구 힘도 풀려 운치를 약간 흘리지만 눈감아주기로 한다.

작은 손톱깎이를 가져와 잠든 기봉이의 발을 들어올린다. 새끼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발끝을 조심스럽게 깎는다. 불린 발에 박힌 굳은살을 잘라내는 것이다. 발밑동을 자르면 간단하겠지만 재생하는 데 시간도 걸릴 뿐더러 그동안은 움직이지 못한다. 무엇보다 난 학대파가 아니다. 그저 기봉이의 아장거리는 모습, 애쓰는 표정이 보기 좋을 뿐이다. 

금방 맨들맨들해진 발끝을 문질러 다듬으면 끝. 아직도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 물기를 닦아주고 침대에 옮겨 이불을 덮어준다. 내일부터 아픈 발을 감싸쥐고 호호 불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기봉아. 우리 이렇게 오래오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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