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주인과 고치와 목줄

 

"데에...주인님...."

초록이는 자신의 뭉툭한 손(그걸 손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을 내려다보았다.
도저히 어디 한 군데 쓸모가 없다. 청소도 설거지도 빨래도 필사의 노력으로 해내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실장석 수준, 주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쓸모가 있다는 실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 

자신이 하루 종일 쓸고 닦아봐야 주인님이 작정하고 30분 청소한 것만 못하다. 아무리 필사적으로 설거지를
해봐도 주인님이 한 것처럼 반짝반짝하지 못하다. 수건 하나 정리하는 것도 수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데에...오로롱...오로롱..."

조용히 적록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왜 나는 실장석인걸까. 어째서 주인님에게 아무 도움도 못 되는걸까.
심지어 초록이는 자신이 귀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처음 주인님을 만났던 그 때, 슬슬 중실장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자실장이라 폐기처분이 코 앞이었던 그 때까지만해도 나름 귀여운 모습이었겠지만 지금의
자신은 절대로 귀엽지 않다. 물론 친절하고 좋은 주인님은 지금도 가끔 자신을 귀엽다고 해주지만....차라리

야옹야옹이나 멍멍처럼 평생 귀엽고 폭신폭신한 동물로 태어났다면 주인님께 귀여움으로 즐거움이라도 드릴
수 있었을텐데. 천만마리에 하나 있기 힘들다는 초 개념체, 바로 폐기처분되는 실장석들이 갈려나가는 
분쇄기가 있는 방 바로 옆이 초록이가 있던 수조여서 어릴 때부터 실장석의 쓸모없음과 허무한 삶의 끝을
끝없이 지켜보았기 때문일까. 실장석들에게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나만은 특별하다'는 개념과 행복회로도
초록이에게는 해당이 없는 듯 하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은데스까....?"

이대로라면 분명히 자신은 일평생 주인에게 한톨 도움도 되지 않고 기생충처럼 살아가다가 죽을 것이다. 보통의
실장석이라면 이 때 즈음해서 '귀여운 자로 주인님께 기쁨을' 따위의 헛소리를 하겠지만 초록이는 자신이, 또 
자신의 동족이 주인님께 행복을 주기는커녕 생활의 윤택함만 줄이는 부담덩어리임을 알기에 지난 봄 날, 우연히
날아든 꽃가루에 임신을 했을 때도 눈물을 머금고 스스로 한쪽 눈을 다시 붉게 물들여 자들과 이별을 고했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초록이는 어쩌면 자신이 죽어 사라지는게 더 주인님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진지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귀엽지도, 뭔가 쓸모가 있지도 않은 식충이가 구태여 주인님께 부담을 끼치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뭔가 고통을 받는 중도 아닌데 자살을 고민하는 실장석이라니! 학계가 한번 뒤집힐 일이었지만
주인은 [동물의 말을 구태여 알아들어야 할 필요가 있나]라는 주의였기에 링갈도 사용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초록이의 자살고민은 주인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주인은 초록이를 아꼈다. 처음 사왔을 때는 내일이면 폐기처분이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동정심이 들어 사왔으나
사온 이상 책임지고 키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주인이 인터넷으로 찾아본 실장석의 훈육에 대한 정보로 긴장한
것도 허무하게 초록이는 생각 이상으로 현명하고 착한 아이였고, 주인은 그런 초록이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최선의 애정을 베풀었으며, 자신이 알아본 정보로 실장석이 살기에 괜찮은 환경을 최대한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다.  보통의 실장석이라면 분충성이 폭발해 들실장으로 전직하거나 보건소에서
마지막 후회의 울음을 울게 되는 결말만이 남을 그런 환경에서 초록이는 끝까지 주인에 대한 존경과 애정,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아성찰로 처음의 마음과 감사를 지켜나갈 수 있었다.

아무튼 주인은 초록이가 데스데스 오로롱 하고 우는 것을 듣고 초록이의 위석을 담궈둔 보관함을 보았다. 오늘도
예쁜 녹색으로 빛나는 초록이의 보석. 영양제의 양도 충분하다. 초록이는 아픈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울고 있다.
그럼 뭔가 먹고싶다는거지. 그러고보니 간식시간이다. 주인이 생각하기에 동물이 울 때는 아프거나, 놀고 싶거나
배가 고플 때이다. 그런데 초록이는 낮시간에 놀아달라고 조른 적이 없고 위석도 멀쩡하니 배가 고픈거다.

나름의 결론을 내린 주인은 실장석용 푸딩을 하나 까서 초록이의 밥그릇에 놓아주었다.
초록이는 밥그릇에 놓인 푸딩을 보고 더욱 서럽게 울었다. 보아라, 주인님은 '일-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해님이
떠오를 때 나가서 별님이 반짝일 때 몹시 지쳐 돌아오는 어떤 아주 힘든 것' 을 해서 자신의 푸드와 간식 등을 
구한다고 했다(실장 교육 TV에서 본 것이다. 물론 그걸 보고 이 정도의 판단을 내리는 개체는 아주 드물다.)

그런데 자신은 그런 것을 소비하기만하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실장숍에 있을 때 저 멀리 공원 입구에서
보이던 실장석 가족이 기억난다. 친실장은 무언가를 열심히 모으는데 주변을 돌며 놀기만 하는 자실장들.
자신은 그런 자실장보다 쓸모없다. 주인은 좋아하는 간식을 보고도 우는 초록이의 모습에 당황해 물었다.

"초록아, 왜 그래. 산책가고 싶어서 그래?"

"오로롱~ 주인님 죄송한데스우...오로롱~"

주인이 자신을 걱정하는 것을 어투에서 알아챈 초록이는 훌쩍이며 애써 웃어보이고 밥그릇으로 가 푸딩을 집어
들었다. 항상 좋아하고 즐겨오던 간식이지만 오늘은 맛을 알 수 없었다. 주인은 초록이가 웃으며 간식을 먹는
것을 보고 안심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초록이는 가끔 실장석 답지 않게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어쩌면 실장석들도 개나 고양이처럼 우울증이 있는걸지도 모른다. 주인은 언제 한 번
동물병원에 가보자고 마음먹으며 다시 휴일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 날 밤.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 유달리 크게 떠오른 달을 보며 초록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달님....소원이 있는데스. 다음날 폐기처분되서 위잉위잉에 들어가게 된다고 했을 때도 빌지 않은 소원인
데스우...꼭 들어주시면 좋겠는데스. 초록이에게 주인님처럼 손가락이라는게 필요한데스. 그럼 빨래도
설거지도 잘 하는데스. 또 오래오래 움직일 수 있게 튼튼해져야하는데스. 그리고..그리고...주인님께서
예전처럼 귀엽다귀엽다 해주실 수 있게 멍멍씨나 야옹씨처럼 귀엽게 변했으면 좋은데스요....."

초록이는 소원을 빌고 또 빌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주인님을 사랑하고 싶다는 외침이 들여오지만
주인을 사랑하는 것은 사육실장이 되기 위한 교육에서 자를 가지면 안 된다 와 함께 충분히 교육받은 금기
사항. 초록이는 그 외침을 조용히 삼키며 처음의 소원을 반복하며 달을 바라보았다.

막 달이 지고 해가 떠오를 무렵, 초록이는 자신의 소중한 돌이 있던 장소가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초록이는
아픔을 삼키며 바닥에 엎드렸다.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혹시 이대로 죽는
것인가? 주제넘게 주인님께 사랑받고 싶다는. 사랑하고 싶다는 소원을 가졌기 때문에? 적록의 눈물이 다시
한 번 초록이의 옷을 적셨다. 초록이는 자신의 의식이 까무룩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주인님....보고 싶은데스우...."

주인은 여느 때처럼 초록이에게 밥을 챙겨주고 집을 나섰다. 평소라면 일찌감치 일어난 초록이가 '주인님 다녀
오시는데스.'(물론 주인에게는 그저 데스데스로 들릴 뿐이다) 하며 배웅을 했겠지만 오늘은 뭔가 몸이 안 좋은지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주인은 정말 뭔가 문제가 있는가 싶어 초록이의 위석을 담아둔 통을 보지만 평소보다
더 영롱하게 빛나는 녹색의 보석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양제의 양도 문제가 없고....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음
휴일에는 동물병원을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주인은 집을 나섰다.

기절한 초록이가 눈을 떴을 때, 태양은 정오를 알리고 있었다. 자신이 주인을 배웅도 못한 사실을 깨달은 초록이는
집 안의 공허함을 더욱 크게 느끼며 밥그릇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데? 이게 뭐인데스까?"

은색의 실이 초록이의 입에서부터 뻗어나와 손에 닿아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초록의의 입에서 서서히 풀려나온
그 은색의 실이 초록이의 온 몸을 칭칭 감아갔다. 초록이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무언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임을
이해하고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30분 가량이 지나고, 초록이는 하나의 거대한 고치덩어리가 되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그것은 밤 하늘에 빛나는
달을 닮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 해가 지고 한참이 지나 주인은 귀가했다.

"초록아 나왔...는데...."

주인은 말을 잃었다. 평소라면 데스데스거리며 입구에서 자신을 기다릴 초록이가 보이지 않아 정말로 몸이 안
좋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내일이라도 당장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항상 익숙한 집 안의
풍경 속에서 그를 반긴 것은 아파서 누워있는 초록이가 아닌 은색의 거대한 실뭉치였다.

상식을 넘어가는 광경에 잠시 할 말을 잊은채로 굳어있던 주인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래...가만있자..이런걸 분명히 어디서 봤는데. 초록이 처음 기를 때 인터넷에서 대충이지만 봤는데...'

주인은 곧바로 컴퓨터를 켜고 실장석에 관련된 사이트들을 뒤지며 고치, 실, 실뭉치 등으로 검색을 해댔다.
그리고 잠시 후 긴장되어있던 몸을 뒤로 편히 젖히며 기지개를 켰다.

"어휴~ 원래 저실장이 엄지가 될 때 이런걸 만든다고. 그럼 아픈게 아니구나 초록이...다행이네. 그런데 초록이는
성체 아니었나? 대체 왜....? 혹시 내가 먹이를 덜 줬나? 그래서 덜 큰게 이제 크는건가? 그게 말이 안 되는데..?"

애시당초 실장석에 뭔가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초록이의 불쌍한 모습에 동정심을 느끼고 사육을 결정한
남자는 사육에 필요한 지식만을 검색으로 얻어왔다. 그나마도 초록이가 워낙 흔치않은 개념개체였기에 얼마 후에
별 쓸모가 없어졌고. 그래서 남자는 실장석을 기르는 사람치고 너무나도 실장석에 대한 상식이 부족했다.

"그럼...일단 그냥 둬도 되겠지. 위석도 멀쩡하고."

초록이의 위석은 한층 더 밝은 빛을 내며 빛나고 있었다. 이제 거실의 불을 꺼버리면 살짝 주변이 밝아질 정도
였다. 주인은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영양제를 추가로 부어두고 보관함의 뚜껑을 잘 닫은 뒤, 초록이가
안에 들어있을 고치를 쓰다듬어주었다. 왠지 모르게 고치가 부르르 떠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날부터 주인의 일과에 아침저녁으로 초록이의 위석을 확인하는 일이 추가되었다. 행여나 영양제가 부족
해지거나 위석이 검게 변하거나 깨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또 커졌어...."

위석은 매일같이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크기가 커지고 빛을 내뿜으며 형태도 육각형에 가까운 모습에서
팔각형, 혹은 원형에 가깝게 변모하고 있었다. 다만 이런 변화는 주인이 보기에 긍정적이기에 당장 초록이가 들어
있는 고치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간다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고치에 함부러 손을 대는 것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판단도 있었다.

초록이가 고치로 변하고 10여일. 어제부터 고치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느낀 주인은 아예 3일 휴가를
내고 초록이의 고치 옆을 지키기 시작했다. 주인이 고치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그 시각, 고치에 작은 균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내 옆으로 벌어지며 서서히 그 형태를 무너뜨려갔다.

"아....?"

초록이는 낮선 풍경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익숙하지만 낮설다. 분명히 매일같이 보고 또 보던 집의 풍경인데
너무나도 낮설다. 모든 것의 위치가 변해버린 느낌. 그리고 그녀는 그제서야 예전과 뭔가 다른 감각에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데....?!"

손가락, 그토록 갈구하던 손가락. 이제 주인님만큼 빠르게 설거지를 할 수 있다.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길쭉한 다리. 이제 충분히 돌아다니며 청소를 해낼 수 있다. 초록이는 자신도 모르게 거실 한 구석의 작은
거울로 다가가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인간에 비하면 크고 뾰족하지만 작아진 귀. 이제 제대로 다물어지는
입과 붉은 입술. 풍성한 머리카락, 초록색의 하늘하늘한 원피스.....여전한 것은 적록의 눈동자 뿐일까.

초록이는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졌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주인님을 찾기 위해 자신이 있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주인도 옅은 잠에서 깨어 초록이를 보았다.

"너....초록이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채로 초록이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주인님이 나를 알아봐주었다! 이제 주인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 평생 곁에 있을 자격을 얻었다! 주인님께...어쩌면 화를 내실지도 모르지만...가슴터지도록 하고 싶었던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다!

초록이는 주인에게 뛰어가 그를 끌어안았다. 150cm 조금 안 되는 작은 여성 정도의 키, 주인은 대뜸 자신에게
안긴 초록이(라고 생각되는 여성? 혹은 그무언가)를 보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실장인인가 뭔가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초록이를 키우기 위한 정보 검색 중 보았었지만 정말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했는데. 다행히 실장인은
실존하기에 그 특수성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도 있다고는 하지만...주인은 다시 한 번 이런저런 것을 검색해봐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마구 부비고 있는 초록이를 슬쩍 끌어안아 주었다.

"주인님....이제 주인님 옆에 있을 수 있는거에요. 도움도 되는 거에요. 주인님과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거에요. 주인님께...주인님께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에요."

"그래, 그래 초록아. 고생 많았다."

주인은 아무튼 초록이를 쓰다듬어주며 대꾸했다. 그 순간, 주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 말이 통해?!"

"데?! 그, 그런거에요! 이제 주인님과 말이 통하는거에요! 주인님이 제 말을 알아주시는거에요!"

초록은 기쁨에 겨워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그동한 주인님이 실장숖에서 사용하는 말톨하는 기계를 사용
하지 않아 얼마나 불편이 컸던가. 같이 지낸 시간이 1년을 넘을 때 즈음에서는 말없이도 뜻이 통했지만 그래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그래, 초록아 몸은 이상없지?"

주인은 가장 걱정이던 부분을 물어보았다. 초록이는 자신의 몸을 둘러보고 발도 슬쩍 굴러보고 손가락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은거에요!"

주인은 안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초록이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뒤 방으로 향했다. 초록이는 
가만히 서서 주인님의 곁에 머물 수 있게 된 감격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주인님에게 했던 말을 다시
곱씹으며 얼굴을 곱게 붉혔다.

"사랑....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주인님은 화내지 않으신거에요....제 마음을...아주 조금이라도 받아들여주신
거에요...."

싱그러운 미소가 초록이의 입가에 머문다. 초록이는 자신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졌으며 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며 좀처럼 오지 않는 주인님을 찾아 주인님의 방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잘 열 수 없던 둥글둥글한 
손잡이도 손가락으로 잡고 돌리니 쉽게 열렸다. 주인님은 그곳에서 컴퓨터를 보며 뭔가를 끙끙 고민하고 
있었다. 초록이는 주인의 고민하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음.....이거는 사이즈는 되는데 초록이한테 너무 아플거 같고....이건 조금 작지 않나? 다른데서 찾아야하나...."

주인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대형견용 리드줄을 파는 사이트. 실장인으로 우화하며 인지력과 판단력도 대폭
늘어난 초록이는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데...? 주인님, 왜 이걸 보고 계신거에요?

주인은 태평스럽게 마우스를 스크롤하며 대꾸한다. 

"전에 쓰던 리드줄은 이제 니가 커져서 안 맞겠더라. 산책 매너가 있는데 리드줄은 제대로 차야지."

주인의 대답에 초록이는 더욱 더 얼어붙었다. 지금 주인님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거지? 주인님께 도움이 되고
사랑받고 싶어서 이렇게 변했는데 왠 리드줄? 그건 실장석일 때나 차는게 아닌가?

"보자....푸드도 큰걸로 하나 더 시켜야지. 아, 혹시 배고프니?"

"주인님....주인님을 사랑하는거에요. 주인님은 어떠신거에요?"

초록이는 간신히 충격을 이겨내며 주인에게 아까의 고백을 반복했다. 주인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록이는
살짝 굳었던 얼굴이 다시 펴지는 것을 느꼈다.

"당연히 사랑하지. 내가 너 키운게 몇년인데. 너만한 실장석 없다고 하더라. 내가 키워본 동물 중에 니가 제일...."

쿵!

주인이 쿵 소리에 뒤를 보았을 때, 초록이는 웃는 얼굴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주인은, 실장석의 우화에 대해 
정말 대충 알아보고 넘어갔던 주인은. 실장인을 여전히 실장석과 같은 카테고리에 넣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대형견용 리드줄이나 추가로 푸드를 구매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초록이의 고백도 개가 꼬리를 흔들며 
주인에게 달려오는 그 정도로 인지한 것이다. 주인의 뜻을 전부 이해한 초록이는 그 충격에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잠시 후, 기절에서 깨어난 초록이는 주인에게 달려들다시피 하여 울며불며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리고 그 다음 달부터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국제기관에서 보내온 인증칩을 어깨에 삽입한 실장인 한 명이, 
남자와 함께 정말이지 행복한 얼굴로 공원을 산책하는 모습이 가끔 보였다고 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무분별한 악플과 찐따 댓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