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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훈육방법

 

통상 실장석은 키우기에 노력이 많이 필요한 생뭉이라고 한다. 그 어설픈 지능과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을
주인들에게 적나라하게 전해주는 링갈이라는 기계의 존재에 의해서 뭐랄까. 인간의 기대심을 완전히 박살
내버리는 동물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대부분의 경우 실장석을 막 키우는 초보자들은 질릴대로 질려서
학대파로 전향하거나 다시는 그것들과 엮이지 않으려 하게 된다. 

나는 애호파다. 그리고 내가 키우는 실장석이 죽는 그 날까지. 잘 돌보고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만의 교육방식으로 소위 말하는 분충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주인님, 외출하시는테치?]
"그래, 너도 오늘은 같이 가자 초록아."
[테츙~ 오래간만의 외출인테치! 주인님 감사한테치!]

이 실장석은 내가 키우는 사육실장인 초록이다. 아는 동생이 하는 실장숖에서 사온 개체로 평범보다 다소
높은 지능을 가진 자실장. 내 훈육방식은 머리가 좋은 개체여야 편하기 때문에 골라서 대려온 녀석이다.
나는 주문제작한 투명 케이지에 초록이를 집어넣었다. 바닥은 쿠션이 깔려있지만 주변은 강화 아크릴로
만들어져 사방을 다 볼 수 있다. 초록이는 한달만의 외출에 다소 흥분한 듯, 테치테치거리며 콧김을 뿜고
벽에 손을 붙여 얼굴을 들이민 채 사방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다. 아크릴에 초록이의 콧김에 의해 김이
서렸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10cm 가량의 크기인 자실장에게 갑자기 사람의 손에 들려서 움직이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전신주 위에
올라가서 걸어가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 아닐까. 나는 주변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는 초록이를 흘끗 
보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나 전부 까먹었구나. 한달만에. 다시는 나가기 싫다고 울었으면서....
하긴, 그러니까 이런 훈육을 해야하는거겠지. 

"어서오세요~어, 형님 오셨어요?"
"음, 오래간만이네. 밥은 먹었어?"
"저야 아직이죠. 형님은요."
"나도 너랑 먹으려고 식전이다."

딸랑하는 방울 소리와 함께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짧은 머리의 아직 애티가 나는 이 친구가 내 학교 후배
이자 친한 동생이며 이 가게의 점장인 ㅇㅇ다. 항상 싹싹하고 웃는 얼굴이라 서비스 직종에서 대성할 거라고
다들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실장숖을 차릴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는데. 덕분에 나야 좋은 가격에 관련
물품들을 공급받으니 좋은 건 사실이다.

ㅇㅇ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로 온 나는 초록이를 바라보았다. 초록이도 이 실장숖 출신, 불안하게 떨리는
적록의 눈동자와 자꾸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니 훈육받던 시절의 기억이 새롭게 되살아나는 모양
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1년 이상 전문 브리더 훈련까지 받고 돌아온 ㅇㅇ가 직접 훈육했으니 그 때의 
고통과 불안은 아무리 머리가 나쁜 실장석이라도 몸에 세겨진 것이리라. 

[주인님....여기는 초록이가 전에 살던 곳 테치...'학교'인테치...왜 여기를 오신테치? 초록이는 이미 졸업
이란걸 한 테츄....]

여전히 불안하게 떨리는 눈동자. 초조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니 A형의 다물어지지 않는
입 끝에서 침이 번들거리며 주변으로 퍼진다. 귀엽다면 귀여운 모습이지만 지금은 한달에 한 번, 훈육의
시간. 나는 초록이가 들어있는 케이스를 들고 응접실을 나서 실장숖을 한 바퀴 돌았다. 다행히 다른 손님은
없는 시간. ㅇㅇ은 그런 나와 초록이를 보며 미묘하게 뿌듯한 웃음을 짓고 있다. 전에 들어본 바로는 이렇게
'우수한 고객'은 일본에서도 본 적이 없다나?

초록이는 간식과 장난감, 옷이 걸린 곳을 지나갈 때는 눈을 빛냈다. 욕망에 충실한 동물인 실장석답다.
하지만 내 목적지는 다른 실장석들이 진열된 곳. 무수히 많은 케이지 안에 무수히 많은 실장석들. 
사람이 다가오자 데스데스 테치테치 레치레치하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히 채운다. 링갈을 확인해보았다.

[주인님....친구들이 많은테치...다들 아직 졸업은 못한 친구들인테치...혹시 초록이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오신테치카?]

나는 고개를 한번 저어주고 초록이에게 말했다.

"초록아, 주변을 봐. 초록이 너도 저렇게 있다가 나에게 선택되어서 사육실장이 되었어 그렇지?"
[그런테치! 주인님이 초록이를 선택하신테치!]

사육실장이라는 말에 주변이 더욱 소란스러워졌지만 나는 무시하고 계속 초록이에게 말했다.

"자, 여기 수많은 실장석들 중에서 왜 너를 골랐을까?"
[테에....]

초록이의 A자 입이 더욱 벌어지고 표정이 멍해진다. 어째서 자신을 골랐을까. 자신이 특별하게 때문에?
보나마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나는 초록이가 말하기도 전에 미리 대답을 던졌다.

"아냐, 초록이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야. 그냥 나는 수많은 실장석들 중에 하나를 골랐고 우연히 그게
초록이였던거야. 물론 초록이는 내 좋은 사육실장이지만 분충이되면....알지? 나는 다시 이곳으로 와서
수많은 이 실장석들 중 하나를 골라서 새로운 사육실장으로 할거야."
[테!]

이제야 확 정신이 드는 듯 표정이 변하는 초록이. 이래서 어느 정도는 머리가 좋아야한다. 멍청한 개체는
이게 무슨 뜻인지도 못 알아먹으니까. ㅇㅇ가 훈육한 실장석들은 대부분 내 기준치를 충분히 만족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초록이는....대신할 수 있는테치?]

나는 일부러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물론 아무 이유없이 소중한 사육실장을 바꾸거나 하지는 않아. 하지만 절대로는 아냐. 언제든 나는 다른
실장석을 구해서 새롭게 사육할 수 있어. 여기 이 많은 실장석들 중에서 말야."
[안테치! 초록이는 계속 계~속 좋은 자로 있는테치! 주인님이 바꾸지 않게 하는테치!]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초록이, 적록의 두 눈에는 안구와 같은 색의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고 있는게 느껴진다. 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단다 초록아. 분충이 되지 않는 방법은 이
것 뿐이니까. 조금만 참으렴.

"자, 그럼 초록이는 저기 초록이의 '선생님'하고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여기에서 얌전히 기다리렴."
[하이테츄!]

짐짓 활기차게 대답하는 초록이. 내가 초록이를 들어서 놓은 곳은 한달에 한 번, 폐기하는 실장석들을
갈아버리는 분쇄기의 바로 옆자리. 이 또한 ㅇㅇ이 나에게 해준 크나큰 배려이다. 보통은 이런거 옆에
실장석을 두도록 해주지 않으니까. 아니, 애호파 손님들을 고려하면 아예 그런건 없는 것처럼 해두는게
더 좋으니 말이지. 나는 초록이를 두고 다시 응접실로 갔다. ㅇㅇ은 나를 기다리며 중국집에 음식을 주문
하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평소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ㅇㅇ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그럼 저는 가서 할 일 좀 하고 있겠습니다. 금방 음식 온다니까 조금만 기다리시죠."
"그래, 빨리 끝내고 너도 안 늦게 와서 같이 먹자. 식으면 맛 없어."
"네 형님."

나는 ㅇㅇ이 갈 곳을 알고 있다. 링갈의 모드를 일반에서 초록이 전용으로 전환했다. 미리 초록이의
위석 파동과 동기화를 시켜두었기에 사방 30m 안에만 있으면 링갈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링갈에는 초록이가 하는 말들이 계속해서 텍스트로 전환되어 표시되고 있다.

[테...주인님이 기다리라고 하신테치. 초록이는 착한 자로 있기 위해서 기다리는테츄.]
[테? 선생님이신테치...그런테치. 초록이는 주인님께 이쁨받는 좋은 사육실장으로 사는테치.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교육덕분인테치. 감사하는테치.]
[테.....? 친구들인테치? 아줌마들도 있는테치. 반가운테치. 와타시는 초록이라고 하는테치.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좋은 주인님과 함께 사는 사육실장인테치. 테? 다들 표정이 안 좋은테치. 왜 우는테츄? 어디 아픈
테치? 선생님, 이 친구들이 모두 아픈 테치. 아줌마들도 아파보이는테츄.]
[테? 테?! 테!!! 기억나버린테치! 예전에도 한번 이랬던테치! 친구들도 아줌마들도 전부 드륵드륵 부서져
버리는테치! 갈려버리는테챠아아아악! 테챠아아아악! 주인님! 주인님! 초록이 무서운테치! 
살려주시는테치! 주인님!!]
[안테치! 확실히 배운테치. 절대로 분충이 되지 않는테치. 분충이되면 초록이도 다른 실장석과 교환되서
드륵드륵되어버리는테치! 절대로 분충 안 하는테치. 주인님 말 잘 듣는테치! 운치도 더 열심히 참는테치!
밥투정은 꿈도 안 꾸는테치! 주인님이 놀아주고 싶을 때만 노는테치! 드륵드륵 안 되는 테치!]

ㅇㅇ이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 막 도착한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으로 나와 함께 식사를 끝마칠 때까지 
초록이의 자기 반성과 미래의 노력에 대한 다짐은 멈출 줄을 몰랐다. 뭐...한달에 한번 폐기하는거니까
한 40분은 있어야 다 갈려나가겠지. 나는 내 훈육을 위해 여러가지로 편의를 봐주는 ㅇㅇ에게 언제나처럼
감사를 표했고, ㅇㅇ이는 언제나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ㅇㅇ의 배웅을 받으며 실장숖을 나서는 나의 손에는 ㅇㅇ에게 감사의 표시도 할 겸 사들인 초록이의 간식들이 잔뜩 들어있는 봉투가 들려있었다. 아직도 공포에 덜덜 떨며 나를 계속 바라보는 초록이를 케이지에서 
꺼내 한번 쓰다듬어 준 다음 다시 케이지에 넣었다. 
그나마 나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마음이 편해진 것인지 더는 떨지 않는 초록이. 다소 험하지만 
이게 너에게도, 나에게도 가장 좋은 방법이란다. 인간이 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 포기해야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동물도 인간과 함께 살려면 희생해야하는 것이 있으니까.

다음 목적지는 공원, 초록이는 주변의 가로수를 물들인 단풍에 신이 난 것인지 테츄테츄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링갈에는 주인인 나의 자상함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가사가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초록아
아직 오늘의 훈육은 끝나지 않았단다. 

공원에 도착한 나와 초록이. 초록이는 가끔 산책으로 공원에 가본 적이 있기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목에 걸 목줄을 찾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목적은 그게 아니지, 평소에 산책가는 공원은 조금
멀지만 사육실장을 그냥 풀어두어도 고양이만 없다면 안전할 정도로 안전하고 정돈된 곳이라면 이곳은
그 반대. 아마 조만간 구제작업이 대대적으로 있을 것이 분명한. 소위 파탄난 공원이다. 

역시나 사람도 얼마 없고, 그나마 실장석을 때려잡으러 온 학대파들이 대부분인 모양이다. 내가 벤치에
앉자마자 주변에 제 나름대로 숨었다고 믿으며 나를 바라보는 들실장들. 온통 땟국물로 더러운 옷과 
머리카락, 음식물 쓰레기 국물이 잔뜩 베어들어간 듯, 울긋불긋한 무늬가 보이는 피부.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더러움을 아름다움이라고 착각하는 저 오만하고 건방진 태도와 표정. 짜증이 올라온다.

기본적으로 길고양이나 떠돌이개들은 인간에 대한 경계심만 높지 집에서 키우는 녀석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인데 저것들은 대체 왜 완전히 다른 종으로 느껴지는 걸까. 기본적인 태도나 성품의 문제일까
아니면 어설프게 인간과 닮아서 그런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는걸까.
마음속의 작은 의문을 뒤로 한 체. 나는 우선 초록이에게 커다란 고급 별사탕 하나를 주었다. 모양만 
별사탕이지 실장석에게 필요한 영양소와 깔끔한 단맛이 듬뿍 포함된 고급 간식이다. 초록이는 자기 머리
통만한 그것을 끌어안다시피하며 할짝할짝 먹기 시작했다. 나에게 몇번씩 거듭 감사의 인사를 올린 것은
물론이다. 아직 내가 사육실장을 미끼로 학살을 하는 학대파인지. 진짜 애호파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지
슬금슬금 다가오며 간을 보는 들실장들.

나는 초록이가 들어있는 케이지를 바닥에 두었다. 갑자기 달라진 주변의 풍경에 당황한 듯 먹던 고급 
별사탕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는 초록이. 하지만 이내 다시 별사탕에 집중한다. 자, 그럼.

"먹어라"

한 마디 말과 함께 나는 따로 사온 싸구려 별사탕을 케이지 주변에 흩뿌렸다. 애호파라는 확신이 들었는지
아니면 그냥 별사탕에 눈이 뒤집혔는지 일제히 뛰어나오는 들실장들. 내 링갈은 들실장들의 짜증스러운
울음소리를 번역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초록이 전용모드로 전환해서 쓸걸 그랬나. 거의 동시에 별사탕이
뿌려진 바닥에 도착한 들실장들은 서로를 마구 밀치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별사탕을 입에 쑤셔넣기 위해
바둥거린다.

[데샤아아! 이건 세레브한 와타시를 위해 준비된 공물인데샤아!]
[헛소리마는테샤! 이건 와타시를 위한 것인테스!]
[어디서 까부는데스! 이건 전부 와타시의 것인데샤아아악!]
[마마! 와타시도 주는테치! 와타시의 것인테치! 테? 아줌마 누구인...테챠아아아! 먹는게 아닌테치!
똥마마! 고귀한 와타시를 구해라테챠아!]

하나라도 많이 먹기 위해 옆의 실장석을 두드려패고 밀치고 물어뜯고, 그 와중에 다른 실장석의 자를
잡아먹기도 하고...아수라장이 된 풍경에 덜덜 떠는 초록이. 나를 찾기 위해서 케이지 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니지만 구조상 위를 보는 것이 굉장히 힘든 실장석의 몸 구조 때문에 나를 보지는 못 하고 있다.
이내 바닥에 더는 별사탕이 없는 것을 깨달은 들실장들. 데프프프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이 상태로
몇 초만 더 있으면 더 내놓으라던가. 고귀한 와타시를 키우라던가 하는 개소리가 나올태니 보자..역시
여기있네. 

부웅-!

공원 벤치 옆에 긴 사슬로 묶어 고정된 실장석 구제용 초록색 막대를 휘둘러 바닥에 후려치자 그제서야
내가 만만하게 보고 덤벼들면 죽을 수도 있는 존재임을 인식한 것인지 슬쩍 물러선다. 그리고 주변을
확인하는 실장석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투명한 케이지 안에서 자기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맛있어보이는 별사탕을 끌어안고 있는 초록이. 일제히 눈이 뒤집힌 들실장들이 초록이가 들어있는 
케이지를 향해서 돌진한다. 지금까지 주변의 참상에 놀라 아무 말도 못하던 초록이는 그제서야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른다.

[테,테챠아아아! 주인님! 구해주시는테치! 초록이를 구해주시는테치! 살려주시는테치!]
[오마에! 이리 내놓는데스! 그 아마아마를 내놓는데스! 그것은 와타시의 것인데샤아아!]
[오마에의 몸뚱이도 고귀한 와타시의 일용할 양식으로 바치는데스! 어서 내놓는데샤!]
[데-갸악! 어째서 저 사육분충에게 갈 수 없는데스! 뭐가 막고 있는데샤!]
[깨버리는데스! 깨버리고 저 사육분충의 고기를 씹고 피를 마시고 아마아마는 후식으로 하는데스!]
[내놓는데스! 내놓아라데샤!]

한달 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사이에 초겨울이 다가오니 더 먹고살기가 힘들어졌나보군.
초록이는 너무 큰 공포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꼼짝도 못하며 그저 '주인님, 주인님'하며 나를
찾고 있다. 아크릴 케이스를 마구 이빨로 물어대는 들실장. 돌로 후려치는 들실장. 몸으로 부딛히는
들실장. 뭐 하나같이 아무 쓸모없는 짓이고 아크릴 케이스에는 아무 타격도 주지 못하지만 작은 초록
이에게는 그것도 어마어마한 공포인 모양이다. 온통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 적록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빵콘은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인지 웅크리고 엎드린 자세에 보이는 팬티는 움찔움찔 힘이 들어간 것이
보인다. 초록이의 그런 약한 모습이 실장석 특유의 가학성에 불을 붙였는지 들실장들은 한 층 더 광분
해서 아크릴 케이스에 자신들을 부딛혀대고 있다. 음...실장석 피로 아크릴 케이스가 더러워지는 것도
그렇고. 좀 더 지나면 투분을 할테니 슬슬 처리할까.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고함을 질렀다.

"이 똥버러지들이! 내 사육실장한테 무슨 짓거리야!"
[데?]

나를 돌아본 실장석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구제용 막대기. 한번에 한 놈씩, 나는 이것들을 괴롭힐
생각도 없다. 그래서 뭘 이해할 것들도 아닌데 뭐. 최대한 빠르고 깔끔하게 죽이는게 최선이다. 
4번째 놈이 죽어갈 때 쯤 상황을 파악한 것들이 모조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성체들의 
싸움을 구경하던 자실장들이 고아가 되거나 짓밟혀 죽은 것은 덤이고. 나는 마찬가지로 사슬에 묶인
집게를 들어 박살난 실장석들의 시체를 전용 쓰레기통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여전히 덜덜 떨며 나를 찾는 초록이를 왼손으로 부드럽게 잡아 케이지에서 꺼냈다. 초록이는
간신히 자신이 케이지에서 꺼내졌음을 깨닫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내 손가락을 부여잡고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주인님, 초록이 무서웠던테치! 정말 무서웠던테치. 주인님이 살려주신테치. 테에엥 테에엥]
"그래, 그래 이젠 괜찮아 초록아. 이젠 괜찮아."

나는 초록이를 쓰다듬어 달래준 후, 케이지에 다시 넣어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초록이를 목욕시키며
마지막 훈육을 시작했다.

"아까 들에 사는 실장석들은 어땠어 초록아?"
[너무 무서웠던테치. 초록이를 마구 잡아먹으려고 한 테치. 다들 너무 더럽고 무서운테치..무서웠던
테치....분명히 죽을뻔한테치...핀치였던테치...]
"그래, 나는 초록이가 그런 분충이 되면 싫을거 같아. 초록이는 들실장같은 분충이 되지 않을거지?"
[하이테츄...초록이는 그런 분충이 되지 않는테치.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테치...주인님 말을 잘 듣는
착한 실장석이되는테치...]

저녁을 배불리 먹고 잠이 든 초록이를 확인한 후, 나도 휴일을 즐기기 위해 거실로 나와 TV를 켰다.
오늘도 무사히 한달만의 훈육을 끝냈다. 실장숖에서 다른 개체를 보여주고 그 최후를 구경시켜 자신이
'특별'하다는 인식을 망가뜨린다. 실장석의 분충성의 가장 큰 시발점은 바로 그 자신은 특별하다는 의식
이니까. 자신은 특별하기에 실패할 리 없다. 특별하기에 뭐든 잘 될거다. 내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부분을 제거해버리면 실장석의 분충성 90%는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지능이 썩 높지는 않아 반복
숙달이 필요하기는해도 배우면 배운대로 익히고 기억해서 지키는, 기본이 갖춰진 개념실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들의 살벌한 생활상을 계속 보여주어 자신이 나가면 죽는다는 것을 인식시키면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복종하는 실장석이 된다. 비록 한달에 한번이나 두 달에 한 번은 계속 이걸 반복해야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좋은 애완동물이 생긴다면 남는 장사이다. 친한 동생 얼굴도 주기적으로 보고 말이지.

무엇보다 이 훈육방식으로 키운 실장석들은 개념실장의 파멸이라고 불리는 임신욕구가 거의 없다. 아마도
자신이 특별하다는 의식이 없으니 자신의 자에 대한 기대치가 바닥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 대신이라고 할까.
실장석의 멘탈에서 가장 큰 부분이 망가진 셈이라서 그런지 수명이 4년이 한계이다. 아무리 잘 먹이고 
보살펴도 4년 쯤 되면 위석이 저절로 검어지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나는 초록이의 위석이 담긴 통에 영양제를 부어넣었다. 역시 오늘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는지 고농축 영양제
의 양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 옆에는 작은 보석함에 담긴 2개의 검은 위석이 있다. 초록이도 아마 4년 뒤에는
이 옆에 검은 위석을 남기고 떠나겠지. 그래도 분충성이 개화해 어떤 일에도 만족을 모르고, 계속해서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기며 실제로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죽어가는 다른 사육실장들보다 내가 키워온 이
녀석들이 훨씬 행복하고 편안하며 즐거운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 증거로 앞의 두 녀석도 죽으며 나에게 고맙다고 웃으며 인사하고 떠나갔으니까. 오늘도 나는 실장석과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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