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TV


 

추웠던 겨울이 끝나고 따스한 봄이 되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도 집에만 있던 미도리에게는 아무 의미 없었을 테지만. 봄이 되니까 컴백하는 가수들이 많아지고, 봄이 됨에 따라서 사랑노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음악방송만 봐도 그렇다. 걸그룹, 보이그룹 너나할것 없이 봄과 사랑을 떠들어댄다.


오늘은 기분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보이그룹이 봄을 맞아 컴백했기 때문이다. 음악방송을 본방사수하지는 않는 나이지만 오늘은 최초공개날이기 때문에 꼭 봐야 했다. 3월에 맞춰서 따스한 사랑노래라니, 흔했지만 자신의 최애가 예쁠 것이기에 꼭 볼 것이다. 10분 뒤면 음악방송이 시작하니까 미리 채널을 틀어두었다.


"뭐 보는 테스?"


미도리는 중실장이였다. 며칠 뒤면 성체가 되는 아이다. 빠르게 성체가 되고 싶은지 식탐이 왕성한것 빼고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니 미도리 앞에서 음악방송을 보여주는건 처음이였다. 미도리를 기른지는 9개월 가까이 됐고, 내 최애 그룹이 컴백 안한지는 1년이 넘었으니까. 처음 보여주는 거겠네..


"텟! 티비씨에 닝겐이 많이 나오는 테스!"


나는 최애 영접을 위해 굿즈들과 응원봉을 꺼내놓았다. 현장에 가질 못했으니 이렇게라도 응원하고 싶다. 내 최애는 파트가 적을 터였지만 예쁘니까 본다. 티비에는 걸그룹들이 나와서 신곡 무대를 뽐내고 있었다. 아 쟤 이쁘다. 이 정도만 느끼고 넘어갔다. 미도리도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테햐!"
"놀래라"


내 최애 그룹이 나오기까진 한참 멀어서 조금 지루해져 있었는데 미도리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급하게 TV로 눈을 돌리니 최근에 데뷔한 5명의 보이그룹이 나왔다.


"잘생긴 테스!"


첫 데뷔무대라 하니 참 풋풋하게 보였다. 내 최애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8년차라는게 믿기지 않았다. 나는 관심도 없는데 미도리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들려오는 가사로는 너를 사랑해 같은 소리를 외치는것 같은데 그게 미도리에게는 자신을 향한 구애로 들렸다는거 같다.


"본 테스?! 저 잘생긴 닝겐이 와타시에게 구애를 한 테스으으!!"


미도리는 방방 뛰고 난리가 났다. 양 손을 볼에 얹고 황홀하다는 듯이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고 있다. 그 모습이 아니꼽긴 하지만 내 최애는 봐야했다. 빨리 저 신인 아이돌의 노래가 끝났으면 좋겠는데 노래는 5분 짜리라 정말로 길었다.


어차피 가사는 널 사랑해, 지금 데리러 갈게, 난 평생 너의 곁에만 있을 거야 같은 가사들이였다. 우리 오빠들도 데뷔 초때는 저런 가사를 썼었지.


"와타시를 데리러 오는 테스! 손씨도 뻗은 테스!"


미도리는 신이 나 있었다. 풋풋하고 청량한 외모의 아이돌이 TV를 향해 손을 뻗고 있으니 당연할 것이다. 그러던 와중 5분은 끝났고 다른 걸그룹이 나왔다.


"..테? 남편상 어디간 테스?"


걸그룹도 사랑노래냐 하며 혀를 차고 있는데 미도리는 충격을 먹은 듯 몸을 떨고 있었다. 5명의 잘생긴 남자 아이돌이 사라지고 걸그룹이 나와서 충격을 먹은 걸까? 머릿속에서는 5명의 남자 아이돌에게 받들여지는 여신이었는데 그 환상이 깨져버린 걸까? 부들부들 떨고 있는 미도리의 볼을 콕 하고 누르자 미도리가 격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남편사아아앙!!어디간 테스!!!!"


발라당 드러누워서 팔다리를 휘적이며 우는 미도리의 소리가 매우 시끄러웠다. 걸그룹의 노래가 전부 다 묻혀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너무 시끄러웠지만 저 걸그룹에겐 관심도 없었으니 잘 됐다.


"와타시는 여기 있는 테스!!! 빨리 오는 테샤아아아!!!"


어쩌냐, 저 아이돌은 첫 일정 잘 마쳤다고 축하하고 클로즈를 위해서 기다리거나 다른 행사를 가거나 할 텐데. 그것도 아니라면 숙소에 가려나.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는 동안 걸그룹의 순서가 끝났고 우리 오빠들이 나올 차례였다.


오랜만의 컴백이라고 말 하는 MC의 말도, 그 말에 환호하는 팬들도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모든걸 용서할 수 있었다. 우리 오빠들만 볼 수 있다면.


"남편사아아앙!!!테벡!"


지금 이 달콤한 시간을 방해하는 미도리를 손으로 찍어 눌렀다. 정확히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밑에서 부브브븝 하며 고통에 난리를 치는 미도리가 느껴졌다.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 최애가 나와서 춤을 추고 있다. 춤을 잘 추는 나의 오빠는 센터 자리에서 격한 춤을 추고 있다. 머리카락이 찰랑이고 컨셉에 맞춰서 입고 나온 저 슈트는 얼마나 예쁜 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부브븝!!부!!"


미도리는 난리를 치다 곧 조용해졌다. 죽었나 싶지만 괜찮을 거다. 위석은 활성제 안에 잘 들어 있는걸. 오빠를 보는 4분이라는 시간은 너무도 짧았고 뒤이어 다른 걸그룹이 나왔다. 걸그룹이 컴백을 많이 했구나.. 나는 오빠들을 눈 속에 담았음에 만족하고 TV를 껐다. 손을 치우니 그때만 기다려왔는지 미도리가 벌떡 일어났다.


"테! 흡, 빨리 남편상을 보여주는 테샤아아아아!!!"


아이고, 목소리 한 번 우렁차네. 우렁차게 소리를 질러대는 미도리 때문에 잠시나마 좋았던 기분이 깨졌다. 내일도 음악방송에 나오는데, 미도리를 이대로 놔두면 별 깽판을 다 치겠다.


"오마에는 질투하는 테샤?! 남편상이 와타시에게만 웃어주니 질투한 테샤!?"


뭔 소리야. 아이돌의 본분은 모두에게 웃는 건데.. 빨리 내 오빠의 GIF와 고화질 사진들을 찾고 직캠을 보고 싶은데 미도리가 난리를 치고 있다.


"남편상과 와타시의 사랑을 방해하지 마는 테샤아아아!!!"


지랄도 풍년이다 란 말이 턱끝까지 올라왔다. 미도리가 저럴 때는 먹이를 주지 않는게 답이였다. 관종에게 먹이를 주면 더 날뛰는 법이지 않는가. 분충에게도 그게 답이였다.


"오마에는 나이든 마라닝겐을 좋아하는 바보인 테샤아아아아!!!"


굿즈들을 정리하려고 일어났는데 미도리의 말이 거슬렸다. 일단은 화를 참고 굿즈들을 정리했다. 소중한 우리 오빠니까. 그 후 상자를 하나 꺼냈다. 미도리에게 꽉 끼는 상자일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이건 뭐인 테샤!! 빨리 남편상을 데려오는 테샤아아아!!!"


미도리는 빵콘을 하려는것 같았다. 어쩌나, 총구마개가 있는데. 항상 투분을 하고 빵콘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산, 다이소 1000원짜리 총구마개이다. 싼 탓에 실장석 건강을 망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병에 걸린 적은 없다. 답답한 마음인지 미도리는 목 놓아 울기만 했다.


"미도리, 뭐라고?"
"오마에는 바보인 테스!! 질투!! 와타시가 아름다워서 질투하는 테샤아아아!! 그리고 늙은 마라닝겐을 좋아하는 바보인 테샤아아아!!!"


나는 오빠들을 데뷔할 때부터 좋아해온 사람이다. 이 5분짜리 하나 봐놓고 이러는 미도리와는 달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도리의 앞머리를 쥐어 뜯었다. 실장샴푸의 냄새와 보드라운 머리카락이 내 손가락에서 바닥으로 흩어져 떨어졌다.


"테..테에에에에?!?!?"


자신의 머리카락이 떨어져서야 상황파악을 한 미도리가 주저앉아 다 뜯어진 앞머리를 제 머리카락에 붙이려고 할 때, 뒷머리도 쥐어 뜯었다. 순식간에 허전해진 머리 때문에 미도리는 서럽게 울었다.


"와타시..와타시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씨가아아아!!!"


이제 입힐 일이 없는 실장복도 찢어서 벗긴다. 순식간에 독라가 되자 미도리의 눈은 생기를 잃고는 울고만 있었다. 입은 옷은 총구마개와 그 마개를 가리는 팬티 하나 뿐. 나는 누구보다 침착하게 미도리의 말을 기다렸다.


"와타시를 질투해도 이러는건 아닌테샤아아아!! 질투나면 질투난다고 솔직히 말하는 테샤아아아!!!"


난 저 아이돌에겐 관심도 없어. 내 오빠보고 늙었다고 해서 문제지. 다른 팬덤이 우리 오빠들에게 하는 말을 너도 할 줄은 몰랐어. 28살이 어떻게 늙었니, 20살에 데뷔했다는 소리거늘.. 


"테에에에에에!!!"


독라가 되어버린 제 추한꼴을 더 이상 보기 싫은지 미도리는 눈을 감아버렸다.


"남편사아아앙!!!미도리는 여기 있는 테샤아아아!! 살려주는 테샤아아아!!!"


시끄러운 미도리를 잡고 상자에 넣는다. 빵콘도 못하는 미도리는 애타게 울기만 했고 나는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테에엥!! 테에엥!!"


버둥거려도 상자는 기울지 않았다. 두꺼운 유리로 되어있는 이 상자는 실장석을 훈육시키는 상자다. 시끄러운 실장석을 조용히 시키는 용도. 상자는 불투명해서 실장석이 바깥을 잘 볼 순 없었으나 나는 투명한 뚜껑을 통해 미도리의 상태를 볼 수 있었다. 피눈물만 흘리는 미도리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얼마나 즐거운지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가운데, 미도리의 고통이 들려왔다.


"테야야야아아!!! 끼는 테샤아아아!!"

미도리의 팔 다리가 편안한 자세를 방해했다. 다리는 선 것도 만 것도 아니였으며 팔은 위로 솟아서는 뚜껑을 열지도 못했다. 어차피 자물쇠로 잠겨 있으니 여는 것도 무리겠다.


"테바바바바!!!!"


나를 바라보지도 못한 채 미도리는 고통의 자세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상자는 소리를 적당히 줄여주어 고통에 찬 비명도 작게 들렸다. 아마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운치도 제 맘대로 싸지 못하니 운치를 입으로 게워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상!! 미도리를 구해주는 테샤아아아!!!"


여전히 주제 파악을 못한 독라 상태의 미도리가 상자에 몸이 끼인 채로 울부짖고 있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무분별한 악플과 찐따 댓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