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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ㅇㅇ(125.180))


쌀과자는 맛있다.


...그러나 무엇이 쌀과자를 맛있게 만드는가...?


그것은 아마도

바삭함,

짭짤함,

달콤함,



그리고 그 뒤에 남는 '뭔가 부족함'.


그렇다.

진정으로 맛있는 맛이란,


"우와, 맛있다!"

하고 감탄하는 것이 아닌,




"오랜만에 그거 먹을까? "


하고,



그 맛을 그리워 하게 만드는 것.


진짜 맛있는 음식은, 그 맛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쌀과자도 그렇다.

선과의 표면에 골고루 입혀진 짭조름한 가루의 맛.

설병의 단면에 떨어진 달콤하고 하얀 설탕조각의 맛.



우리는 이것들이 더 없음에 아쉬워 하며,

때로는 그 맛을 그리워 하곤 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내가 가장 그리워 하는 맛에 대한 이야기 이다.


참, 집에 전자렌지가 있다면, 지금 당장 마트에서 작은 저실장들을 사오도록.

맛있는 음식은 함께 먹을때 더 즐거운 법이니까.




  - 이것은 내가 여섯살 때의 이야기 이다.

당시 나는 단맛에 미친 꼬맹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던 것은 젤리.

그것도 꼬물꼬물 길쭉한 지렁이 모양 젤리였다.

그 젤리는 언제나 집에 쌓여있었는데, 아마 젤리공장을 운영하던 한 삼촌이 가져다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젤리를 먹고 있었다.


"챱챱...맛있당~"

그러나 아이가 단것을 너무 좋아하면 어른들은 으레 걱정하기 마련이다.


"토시아키! 그러다가 이빨 다 썪는다!"


한도끝도 없이 젤리를 먹고 앉아있으면, 엄마의 꾸지람을 들을 차례였다. 그러나 꾸지람을 듣는다고 먹지 않게 될 수 있었다면, 아이를 키우는게 얼마나 편한 일일까?

나는 언제나

"네~" 하고 대답하고는,

엄마의 시선을 확인한 뒤, 돌아서서 젤리를 먹었다.
심지어 젤리가 있는 방에서 쫓겨날 때를 대비해서, 내 주머니에는 언제나 설탕이 잔뜩 묻어있는 지렁이 젤리들이 들어있었다.

항상 내 손은 당분으로 끈적했고, 심지어 내 앞니는 썩어서 구멍이 뻥 뚫려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시골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집에 찾아왔다. 아마 명절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달달한 것들을 잔뜩 사오셨는데, 나보다 먼저 그것을 발견한 어머니에 의해 달달한 친구들은 모두 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감금되었다.

"아버님! 안그래도 얘가 맨날 단것만 먹어서 이빨이 이모양이라구요! 아버님까지 그러시면 어떻해요!!"


어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애원하다시피 하며 짜증을 냈고, 할아버지는 어머니의 짜증을 묵묵히 듣고 계셨다.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그날, 점심을 먹고 할아버지와 산책을 나섰다. 내가 살던 곳은 어느 작은 소도시의 변두리여서 의외로 자연이 맑고 깨끗한 동네였다. 할아버지가 집에 오는 날이면, 나는 언제나 점심을 먹고 할아버지와 산책을 나가곤 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할아버지는 어머니께 작은 통을 하나 달라고 부탁하시고는, 그 통을 들고 산책길에 오르셨다.

"할부지, 그 통은 머에여?"

"엉, 우리 손주한테 맛있는거 주려고 그러지."

나는 할아버지가 저 통으로 무얼 하실까, 작은 머리로 열심히 고민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작은 통과 지렁이 젤리는 매치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상관 없던 나는 평소처럼 할아버지 손을 잡고 산책을 시작했다.

5분쯤 걷자, 할아버지와 나는 어느새 뒷동산을 오르고 있었다. 뒷동산에 오른 뒤 부터, 할아버지는 이리 저리 길 바깥쪽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하셨다.

"할부지, 뭐찾아요?"

"초록이. 우리 손주, 초록이 알어?"

할아버지는 궁금해 하며 묻는 나에게 그렇게 대답하셨다. 우리의 산책은 그렇게 뒷동산에서 정체되었다. 할아버지가 찾으시는게 정확히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지만, 나도 길 가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할아버지의 행동을 따라했다.

"에잉, 아무래도 여기에는 똑똑현 녀석들만 사는 모양이지? 좀 더 들어가야겠다."

한참 초록이를 찾던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음에 아쉬워 하며 길을 지나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나는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어 할아버지 옆에 바짝 붙어 더 깊은 숲으로 향했다.

얼마나 길에서 벗어났을까?


"데슷.. 데스 데스! 데스우우!"

어디선가 들려오는 생전 처음 듣는 기이한 소리. 마치 사람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동물의 소리 같기도 한 소리에 나는 그자리에 멈춰 섰다.

"왜그러니, 토시아키?"

할아버지가 걱정하며 내게 물었다. 아마 내 눈에 비친 공포를 알아 채셨던 모양이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들은것을 설명했다.

"저....저기 숲속에서여.... 뭐...뭔가 데스 데스우! 그랬어여어...."

나는 꼼짝도 못한 채 할아버지께 말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면서 기뻐하셨다.

"그거이 초록이여! 허허, 우리 손주 먹을 복이 있구만!"

"ㄴ.....네에엥...? 머거여어어...?!"

할아버지를 믿지 못하는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겁에 질려있던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꼬옥 잡고 할아버지에게 찰싹 붙어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할아버지는 내가 소리가 났다는 방향이 아닌, 우리가 서 있던 곳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셨다.

"어...어어...할부지... 소리...저쪽에서 났는데...."

내가 아직도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하자,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건 너무 커서 우리 손주 못먹어."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온갖 기괴한 그림이 그려졌다. 얼마나 큰걸까? 먹지 못할만큼 크다는건? 설마 우리가 잡아먹히지는 않을까?

나는 공포에 떨며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오히려 흥에겨워 콧노래까지 부르고 계셨다.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만약 저게 위험했다면, 할아버지가 저렇게 신나 하실 일은 없었을테니까.


"어이쿠, 여기 있었네!"

그리고 내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즈음, 할아버지는 마침내 '초록이'를 찾으셨다. 정확히는 '초록이들' 이었다. 아주 많은 숫자의...

"우엑! 이게 무슨냄새에여!!! 우에엑!! 똥냄새!!"

그리고 할아버지 옆에 있던 나의 첫 반응은 위와 같았다.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면서, 그 초록이들을 하나씩 집어 집에서 가져온 작은 통에 담기 시작했다. 초록이는 굉장히 작았고, 군데군데 찢어진 초록색 포대기에 싸여 있거나 혹은 알몸이었다. 앞머리가 몇가닥 있는 녀석도,  없는 녀석도 있었다. 그것들은 할아버지가 손으로 집어 올리자 이렇게 울었다.

"렛...레훼에에엥!!"

"레후..레후...!"

"헤헤. 꼭 살찐 지렁이젤리 같네"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할아버지 옆에서 한마리를 집어 들다가,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다.

"레후...?"

"아아....?! 하...할부지!!! 이거....이거요!! 초록이요!!! 아까 제가 들은 소리하고 달라요!! "

내 안에서 다시 미지의 대상에 대한 공포가 꿈틀거리기 시작할 때 즈음,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대답하셨다.

"허허, 토시아키, 그녀석은 얘네 애미란다. "

할아버지의 웃음 섞인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나는 완전히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다. 그때부터 나는 할아버지에게 초록이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할부지 할부지, 초록이는요, 원래 다리가 요만해요?"

"할부지 할부지! 얘네 엄마는 얼마나 커요?"

"할부지 할부지, 초록이는 왜 엄마랑 아기랑 소리가 달라요?"

나의 쏟아지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잠시 뜸을 들이시더니 대뜸 말하셨다.

"우리 손주, 얘네 애미 한번 보고 갈텨?"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고민되었다. 생각보다 무서운 녀석이면 어쩌지? 만약 자식을 데려가서 우리에게 화가 났다면? 나중에 우리를 해치려고 하는건 아닐까? 복수하지 않을까?

그러나 할아버지는 내가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근처 숲에 대고 외치셨다.

"요놈아, 어기 있는거 다 안다. 해치지 않을테니 나와봐라."

그러자 할아버지가 바라본 방향에서 "데뎃"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내 머릿속의 강한 포식자와는 달리 김빠지는 소리였기 때문에, 겁쟁이인 나의 머릿속에서도, 어느새 호기심이 공포를 한참 앞지른 상태였다. 어느새 나는 엄마 초록이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엄마 초록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한번 더 그쪽 숲에 대고 외치셨다.

"얌마! 도망가면 쫓아가서 죽일거여! 얼렁 나와!"

그러고는 잠시 나를 보며 윙크하시더니,

"이런 말 한거는 엄마한테 비밀이여."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잠시 후, 무언가가 수풀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키는 당시 나의 절반정도 되어 보였고, 군데군데 해진 초록색 옷을 입고 있었으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두건은 딱 대각선으로 찢어진 반쪽 뿐이고, 신발도 한짝만 신고 있는 우스운 모습. 심지어 마치 사람을 동글동글하게 깎아 만든것 같은 그 외형은, 어린 나에겐 너무 우스꽝스러웠던 모양이다.

"퓨하허헛...너....니가 엄마 초록이야?"

나는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웃음을 어떻게든 억누른 채 물었다.
내 말을 알아들었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어쨌든 내게 대답했다.

"데스우우..."

그때였다.

"토시아키, 저쪽좀 봐라, 새끼다."

할아버지가 방금 엄마초록이가 나온 수풀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엄마 초록이를 쏙 빼닮았지만 훨씬 깔끔하고, 그래서 그 동글동글한 외모와 머리카락이 귀엽게만 보이는 작은 초록이가 여섯마리나 있었다.

"데데뎃!! 데갸아앗!! 데스데스, 데샤아앗!!"

그러나 엄마 초록이에게는 꽤나 당황스러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엄마초록이는 바들바들 떨면서 뒤를 보며 새끼들에게 무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새끼들은 갑자기 옷을 입은 채로 똥을 한무더기씩 싸더니,

"테챠아아앗!! 테치테치, 테챠아아앗!!!"

하고 소리치면서 구르다시피 하여 수풀속으로 사라졌다.

"하하하하하헣, 프하하하핫"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한참을 웃었다. 어째서인지 그 어설픈 모습은 어린 내게도 너무 귀엽게만 느껴졌다.

그랬기 때문일까, 한편으로는 가까이서 새끼 초록이들을 보지 못한것이 내심 아쉬웠던 나는, 할아버지에게 졸라대기에 이르렀다.

"할부지, 얘한테 새끼 초록이 보여달라고 하면 안대요?"

그러나 흔쾌히 승낙할 줄 알았던 할아버지의 대답은

"이만큼 놀았으면 됐다. 그만 돌아가자꾸나."

였다.


"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우!!"

시무룩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자, 뒤에서 엄마 초록이가 무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마치 절박하게 비는 사람처럼 엎드려 있었다.

"저건 고맙다는 거란다. 그만 가자꾸나."

할아버지는 뒤를 바라보며 차마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나를 재촉했다. 엄마 초록이는 여전히 고개를 땅에 박고 비는것처럼 하고 있었다.

어느새 수풀속으로 숨었던 새끼 초록이들도 나와 엄마 초록이의 곁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읔 가족을 보고는, 언젠가 혼자 다시 이곳에 와 보겠다고 다짐한 뒤, 손을 몇번 흔들어 주고 가벼운 마음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 엄마가 통에 가득 들어있는 초록이를 보고 말했다.

"어머, 많이도 잡아오셨네요."

할아버지는 내심 뿌듯해 하시며 말하셨다.

"기본이지. 내가 소싯적엔 말여..."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수확을 자랑하는 사이,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엄마 손으로 옮겨간 통을 바라보았다.

"레훗 레후웃!"

"레훼에에엥!"

수십마리 초록이들이 몸을 배배 꼬는 모습은 어린 내가 보아도 꽤나 괴로워 보였다. 게다가 저세히 보니 이 작은 초록이들도, 결국 엄마 초록이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문득 호기심 어린 생각 하나가 자리를 잡았다.

'얘네도 자라면 엄마초록이처럼 클까?'

결국 나는 몰래 통에서 작은 초록이 한마리를 꺼내들었다. 통에서 손바닥으로 옮겨온 작은 초록이는 확실히 편안해진 모양인지,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고는 꼬리를 흔들었다.

"레후웅~"

그러나 그 작은 초록이의 울음 소리를 듣자마자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 나는, 내 방으로 작은 초록이를 데려와 작은 상자에 담아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렛...? 레렛...? 레훼에에엥!! 레훼에에에에엥!!"

그것이 내가 들은 그 작은 초록이의 마지막 울음소리였다.


다시 엄마와 할아버지에게 가보니, 어느새 할아버지는 통 안의 작은 초록이들을 물로 씻고 있었다.

"레삐야아앗!!"

"레삐이이!!"

순식간에 싱크대의 한쪽에는 짧은 털조각과 자질구레한 옷조각이 쌓여갔다. 그나마 옷이나 털이 남아있던 초록이들도 순식간에 알몸에 대머리가 되어 초록이라 불릴 만 한 부분이라고는 한쪽 눈 밖에는 남지 않게 되었다.

어느새 작은 초록이를 다 씻긴 할아버지는, 그제서야 내가 가까이 있음을 눈치 채시고는 말했다.

"우리 손주, 수고했다. 좀만 기다려 보거라, 이 할애비가 정말 맛난걸 해주마. 그동안 젤리는 먹지 말거라."

"넹. 알았어영~"

오랜만의 새롭고 즐거운 체험 덕분이었을까. 그날따라 젤리가 땡기지 않았다. 다만 젤리 하나를 집어 주머니에 넣긴 했는데, 그것은 내가 먹을것이 아닌, 상자에 넣어둔 작은 초록이의 밥으로 챙긴 것 이었다.

잠시 후, 또다시 작은 초록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가 작은 초록이들의 손질을 시작한 것이었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초록이들의 비명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는...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요리를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그 손질한 초록이를 예쁘게 펼치고, 그대로 전자렌지에 밀어 넣었다. 다이얼은 4분 30초. 그리고 그 사이 선반에서 종지를 꺼내 마요네즈를 담았다.

마침내, 전자렌지가 조리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를 울리자, 할아버지는 조리된 작은 초록이들이 담긴 접시에 마요네즈 종지를 올리고는 거실로 가져오셨다.

"어머나~ 바삭바삭하게 잘 되었네요~"

  접시를 보고 엄마가 말했다. 그 말에 나도 접시를 살펴보았다. 접시 위에는 수분이 싹 날아가 마치 마른멸치를 튀겨놓은것 같은 생김새의 '작은 초록이였던 것' 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산에 사는 녀석들은 보양식이여. 손주! 어여 머보거라"

할아버지는 눈을 빛내며 자신만만하게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음식을 내게 권하셨다. 엄마도 함께 눈을 빛내며, 내가 단것이 아닌 음식을 맛보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생김새는 정말로 별로였다. 누구라도 이 바삭바삭 말라 비틀어진 갈색 조각들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주저하는것은 당연한 것 이었다. 누구라도 그랬을 테니까.

눈을 빛내며 쳐다보던 할아버지와 엄마도 약간 초조해 하기 시작했다.

"아들, 어서 먹어봐."

엄마가 재촉했다.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묘한 긴장감이 거실에 감돌았다. 할아버지는 무언가 타계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결국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잠깐, 손주. 할애비가 아까 실수로 말 못헌게 있는디..."

"꿀꺽..."

묘한 긴장감을 조성하고는,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마요네즈 꼭 찍어먹어!"


"푸흡... 에헤하하하! 업?!"

그때였다. 내 입속으로 마요네즈를 찍은 바삭바삭한 작은 초록이가 돌진해 들어온 것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씹었다. 씹었는데...

처음 입으로 들어오자마자 느껴진 마요네즈의 맛 너머로 기분좋은 바삭한 식감이 느껴졌다. 그때까지 젤리가 세상의 전부인줄 알았던 나는 처음 느꼈다. 나....바삭한거 좋아하는구나... 하고.

"업....음...와삭...와삭...."

어쩐지 그 느낌이 괜찮아서 나는 두어번 더 씹어보았다. 그러자 작은 초록이의 바삭한 조각들이 드디어 본체에서 떨어져 나와 입안에서 구르며 맛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육포처럼 고기가 내는 감칠맛의 끝을 보여주며 마요네즈와 합류했다.

아무리 감칠맛이 있어도, 간이 되어있지 않은 육포의 한계가 존재한다면, 마요네즈는 당연하다는 듯 그 부족한 2%를 채워주었다. 비록 딱딱한 상태로 입 안에 들어왔지만, 조각이 나고, 부서지면서 마요네즈와 함께 점점 부드러워진 이 고기의 덩어리는 단맛밖에 몰랐던 내 인생에 날아오는 강력한 포탄이었다. 그날, 말 그대로 나의 미각계는 감칠맛의 폭격을 당했고, 나의 입맛은 그간 고수하던 단맛을 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나는 그날 실장육의 맛을 알게된 것이다.


그 날, 그 순간. 나는 그 앉은 자리에서 할아버지가 만든 바삭바삭한 초록이들을 몽땅 먹어 치웠다. 엄마는 눈물까지 흘리며 나를 안아주었고, 할아버지도 함께 기뻐해 주셨다. 내가 확실히 고기 애호 성향을 보여준 그 날, 할아버지가 사왔던 달달한 친구들 역시 감옥에서 풀려나 내 품에 안길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날 나는 그 접시 위에 있던 것 중 한 조각을 몰래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그것은 이 맛을 내가 키우는 초록이에게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사실, 둘은 본질적으로 같지만, 어린 나는 그런것 까지 생각할 수준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자안에 넣어두었던 그 초록이는 끝내 내가 가져온 바삭바삭 초록이를 맛볼 수 없었다.

내가 그날 그 한조각을 들고 초록이의 상자를 열었을 때, 이미 초록이는 눈이 뒤집힌 채 변을 질질 흘리며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 어렸던 나는 작은 애벌레같은 초록이가 그 좁디좁은 상자 안에서 6시간 가량을 문제없이 지낼거라 생각했었다. 어린아이 특유의 천진 난만함이었다.

그러나 죽은 초록이를 보고있던 나의 입에서는 어쩐지 군침이 돌았다. 살아있는 초록이를 보았던 그 순간과는 다르게... 나는 그것을 전혀 귀엽다거나, 불쌍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 그날 밤, 나는 할아버지가 했던 요리를 어렴풋이 떠올리며 죽은 초록이의 시체를 싱크대에서 씻었다. 입에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마지막 바삭바삭 초록이를 넣은 채.


그러나 여섯살 짜리 꼬맹이가 저실장을 제대로 손질 할 수 있을리가 없다.


...나는 애초에 그걸 손질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그대로 전자렌지에 넣은채 4분 30초를 돌렸다. 그저 입 안에 있는 감칠맛을 한번 더 느끼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결과는 당연히 참담했다. 애초에 전자렌지에 돌리면 토실토실한 초록이가 납작해질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기묘하고 작은 폭발음을 들어야 했다. 그 직후 들려오는 지글지글 소리... 전자렌지 내부는 뜨겁게 끓는 저실장의 운치와 피로...


그러나 엄마가 그 상황을 발견한 다음날 아침, 나는 전혀 혼나지 않았다. 그저 엄마의 뜨거운 눈총을 받았을 뿐이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나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게 되었다. 오히려 새로운 맛을 찾아내는것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나는 요리를 전공하게 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매일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는 나의 식당도 차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초록이들의 이름이 실장석이며, 그들의 고기가 '짓소산'이라는 것의 넝도가 높을수록 맛있어 진다는 것까지 알게된 지금에도 말이다.

그날, 할아버지가 해 주셨던 바삭바삭하게 전자렌지에서 튀겨진 저실장.

마요네즈에 찍어 먹던 그 오묘한 맛이...



그 오묘한 맛이 그리웠던 것이다.

지금, 뉴스를 보며 쌀과자를 먹는 지금 이순간에도,


새롭고 매혹적인 맛을 느낄 때 마다, 나는 그립다. 뼈에 사무치도록 그립다.

할아버지만이 할 수 있었던, 그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요리가.



이제는 영원히 맛 볼 수 없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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