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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 (ㅇㅇ(45.64))



들실장 하나가 수 개월의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다. 겨울이었다. 자고, 싸고, 보존식을 까먹고 나면 달리 할 일도 없었다. 유난히 사색적이던 이 들실장이 내면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화두는 이러하였다.

- 왜 닝겐들은 들실장을 기르려 하지 않는가?

인간을 보면 제 노예인 줄 아는 들실장치고는 괜찮은 시작점이었다. 하기야 정신머리가 붙어 있다면 - 실장석 치고는 드문 덕목이지만 - 모르기도 힘들었다. 탁아했던 친자가 독라가 되어 공원에 돌아오고, 자신을 기르라고 성화를 부리던 동족들이 밟혀 나가는 것을 보아 왔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그러나, 그 위석이 매캐하게 쓰라린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큰 보탬이 되지 아니하였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길러 주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 시작점과 목표 사이에 벌어진 골짜기는 너르고 깊었다. 실장석에게는 기적에 가까운 사고력으로, 이 들실장은 그 간극을 메우고자 했다. 닝겐이 우리를 기르려 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내자. 고칠 수 있다면 고치고, 고칠 수 없다면 여태 그랬듯 들실장으로 살아가면 된다. 마음의 짐을 하나 덜어낸 채.

진리의 길을 걷기는 쉽지 않았다. 벽으로 스미는 찬 기운에 떨리는 몸도 잊고 그저 조막만한 뇌를 채찍질했다. 사육실장도 모르는 인간의 사정을 들실장이 알 리 만무하니, 더욱 고된 일이었다. 질문 뒤에는 의문이 따르고, 작은 깨달음 뒤에는 더 큰 산이 있었다. 떠올렸던 생각을 잊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그저 정진할 뿐이었다.

춘삼월, 진달래 꽃향기가 코를 간지럽힐 때, 녀석은 구도자가 되어 골판지 밖으로 나왔다. 겨우내 얻은 답과, 더 많은 의문을 품은 채.

더럽다면, 씻으면 된다.
예절을 모른다면, 배우면 된다.
분충이라면, 솎아내면 된다.
귀엽지 않다면(이 생각을 할 때마다 위석이 찌르르했다), 어떻게든 꾸며 본다.
그냥 실장석이 싫다면, 그야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닝겐의 생각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크고 튼튼한 하우스를 세우고, 먹이를 끝모른 듯 쌓아 두고, 너무나도 세면서 또 바쁜 종족이다. 어딘가 놓친 것이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한 답이 나올 수도, 아니면 어이없이 간단한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직접 물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

벤치에 앉아 하늘에 흘러가던 구름을 멍하니 보던 남자의 발밑에서 데스데스 소리가 들렸다. 이것들 슬슬 기어나올 때가 되었나 하면서 발로 걷어차려던 남자는, 그러나 그 실장석을 보았다. 어딘가 초연하게 서 있는 녀석은 겨울철 소나무를 떠올리게 했다. 남자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링갈을 오랜만에 켜기로 했다.

"무슨 일이냐?"
"닝겐상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스. 와타시 혼자서는 온전히 알 수 없는데스."
"허. 그래, 궁금한 게 뭔데?"
"왜 닝겐상들은 들실장을 기르기 싫어하는데스?"
"뭔가 했더니..."

짜증이 눈가로부터 번져 나가는 남자를 보고도, 들실장은 태연히 서서 말을 이었다. 죽으면 죽더라도 알고 싶었다.

"길러 달라는 것은 아닌데스우. 이미 그런 것은 상관없어진데스."

남자는, 그 흔들림 없는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저 올곧고 진지했다.

"와타시는 그저, 알고 싶을 뿐인데스."

언젠가 갔던 절간의 늙은 스님이 이러했던가. 남자는 답을 주기로 했다. 엉터리로.

"니들은 꼬리가 없잖아."
"데... 데에?"
"생각해 봐라. 개도 꼬리가 있고 고양이도 꼬리가 있지? 그리고 토끼나 이구아나나, 하다못해 물고기들도 꼬리가 있단 말야. 근데 너희들은 꼬리가 없잖아."
"...그건 생각도 못 해 본데스우..."

토끼나 이구아나가 대관절 무언지, 공원에서만 살아온 이 실장석은 몰랐지만, 확실히 멍멍씨나 야옹씨는 꼬리가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 속에 있던 먹지 못하는 무언가를, 이웃 원사육실장은 물고기의 꼬리라 했었다. 닝겐들은 물고기도 기르는 거였구나. 그랬던데스, 그랬던데스우... 잠깐, 원사육실장?

"하지만 닝겐상."

명상으로 단련한 사고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미궁 속에서 헤매일 생각 속에서 용케도 실마리를 잡아냈다.

"사육실장은 꼬리가 없지 않은데스? 와타시는 그런 것 본 적이 없는데스."

이 들실장에게는 불운하게도, 남자가 엉터리 논리를 급조해 내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너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사육실장과 들실장은 달라. 사육실장은 확실히 꼬리가 있어. 옷을 입고 있어서 안 보이는 것뿐이지."
"데에? 그렇지만 전에 본 원사육실장은 꼬리가 없었던데스. 독라가 되었으니 잘못 봤을 리도 없는데스. 확실히 없었던데스."
"후... 아직도 모르겠냐?"
"뎃?"

약간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도, 들실장을 속일 말을 지어내는 데에는 충분했다.

"야. 원사육실장은 예전에 사육실장이었다는 거지, 니가 봤을 때는 아니었잖아."
"데스우."
"그건 주인이 버렸다는 얘기고."
"그런데스."
"버릴 놈한테 꼬리가 무슨 소용이냐? 떼낸 거라고. 다시는 사육실장 못 되게 말야. 왜, 니들도 원수들을 달마로 만들고 그러잖아? 비슷한 거야."
"데에... 몰랐던데스우!"
"이제 이해가 돼?"
"감사한데스우. 하마터면 모른 채로 지낼 뻔한데스."
"그려, 수고해라."

공손하게 인사하고 돌아서는 녀석을 보는 남자의 입가에는 오랜만에 개구장이 웃음이 걸렸다.

골판지로 새로운 지식과 함께 돌아온 녀석은, 그러나 더 많은 의문도 가지고 돌아왔다. 꼬리란 정확히 무엇일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으며, 몸과는 또 어떻게 이어진 것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역시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최선이리라.

멍멍씨나 야옹씨가 꼬리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얼핏 본 적만 있었지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도망가서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우선 아니겠는가. 다시 보러 갈 생각도 도무지 들지 않았다. 멍멍씨도 순해 보이지만 컹컹 짖을 때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였다. 야옹씨는, 그 세로로 찢어진 동공에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절로 오금이 저렸다. 그네들의 꼬리를 자세히 보려 하다니, 아니될 말이다.

그래도 알아야 했다. 꼬리란 것이 정확히 어디 달려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들실장들도 붙일 수 있는 것인지. 직접 살펴보고 만져도 보고 해야 의문이 풀릴 것 같았다. 볼 엄두가 나는 것은, 옷 아래에 감추고 있다고 남자가 말한, 사육실장의 꼬리뿐이었다.

기회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사육 자실장 한 마리가, 봄을 맞아 연두빛 싹이 올라오는 풀밭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주인이 부주의했는지 혼자였다. 겨울을 넘기지 못한 들실장이 태반이라 안전한 것이 다행이기에 망정이었다. 흙과 풀의 내음을 킁킁거리며 맡다가, 나비를 쫓아가다가, 모든 것이 신기한 양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하며 돌아다니는 자실장에게 다가갔다.

"테? 오바상은 누구인테치?"
"저쪽 골판지에 사는 들실장인데스우. 잠시 오바상을 도와줄 수 있는데스?"
"도움인테치? 뭘 도와주면 되는테치?"
"그건..."

말을 이으려던 들실장은, 이내 깜빡한 중요한 것을 떠올렸다.

"오마에, 혹시 버림받은데수?"
"테에에에? 아닌테츄! 주인님이랑 놀러온테치! 잠시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했던테치!"

자실장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그리 말했지만, 실제로 그런지 어떤지는 모를 일이었다. 버림받은 사육실장도 똑같이 말하니까. 아무래도 직접 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스우? 그럼 잠시만 실례하는데스."

들실장은 자실장을 한 손으로 안아 올렸다. 순간 테에에? 하고 어리둥절해했지만, 곧 성체의 따스함에 츄우우 기분좋게 울었다. 출산석인 마마와 공장에서 생이별한 녀석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들실장이 스커트를 확 젖혀 올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잘 안 보이는데스. 없는데스? 작아서 그런데수?"
"테... 테에에? 오바상 뭐하는테치?"
"잠시만 기다리는데스. 해치지 않는데스우."

그제서야 자실장은 떠올렸다. 브리더가 말했다. 공원은 무서운 곳이라고. 들실장이 사육실장을 잡아 독라노예로 만든다고. 운치굴 속에서 평생 운치만 먹으면서 프니프니만 하게 된다고. 자실장의 얼굴이 흙빛으로 질렸다.

"테에에엥! 테에에에엥! 독라가 되는테츄! 주인님! 주인님! 살려주는테치이-!"
"그런 거 아닌데스. 잠깐만 참는데스. 가만히 있으면 빨리 끝나는데스. ...그래도, 이상한데스우. 좀더 자세히 봐야 하는데스?"

자실장을 안아올리지 않은 반대편 손으로 팬티를 쭉 내렸다. 이제 자실장은 숫제 광란 상태였다. 바둥바둥대면서, 바들바들 떨면서, 탈분하면서, 그러면서도 세상 떠나가라 울부짖었다.

"테챠아아아! 놓는테치! 독라노예 싫은테치! 프니프니 노예 되기 싫은테챠아아아!"
"사육실장은 꼬리가 있을 것인데스. 역시 버려진데스우?"

그 소란 안에서 품은 의문은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순간 들실장은 부유감을, 그리고 전신을 덮치는 고통을 느꼈다. 오감이 잘 작동하지 않는 와중, 자신을 걷어찬 인간의 말소리를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하, 5분을 눈을 못 떼네. 괜찮니 미도리?"
"쮸인님! 무서웠던테치! 독라노예가 될 뻔한테치이... 테승테승..."
"그래그래, 무서웠지? 미안해, 다음부터는 혼자 두지 않을게."

인간의 발에, 그리고 나무등걸에 부딪혀 전신의 뼈가 부러지고 분대가 터져 질질 새는 와중에 들실장의 머리를 마지막으로 스친 것은 행복회로가 아니었다.

'이상한데스... 사육실장인데 왜 꼬리가 없는데스우?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데스. 와타시는 알아야 하는데스... 알게 될 것인... 데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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