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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생 1~4 (완) (낭만곰)

 

나무 우듬지마다 내려앉은 눈으로 휘청이는 대설이었다. 산실장들은 일찌감치 동면 비슷한 상태로 들어갔다. 개미처럼 옹송그리고 굴에 들어앉아 목숨 소비를 줄이려는 안쓰러운 몸짓이었다. 강원도에서 산실장으로 살아남으려면 인간들도 적응하기 힘든 이 끝없는 폭설에 익숙해져야 했다.

지금 산 속을 걷고 있는 실장은 그들보다도 더 적응한 모양이었다. 눈은 예저녁에 그쳤지만 실장석이 나다닐 수 있는 기온도 아니고, 울창한 잡목림이 골라내어 인색하게 던져주는 몇 줌 햇살로는 어림도 없는 날씨였다. 하지만 그 실장은 익숙하다는 듯이, 서두르지 않는 묵직한 걸음걸이로 한 발 한 발 눈 위를 걸어 나갔다. 실장석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옷 외에도 두툼한 거적때기 같은 것을 잔뜩 두른 탓이다.

덩치에 비해 실장석의 몸은 가벼운 편이다. 무거울 근육도 없고 골밀도도 형편없이 낮다. 그래서 추위를 제외한다면, 인간처럼 발이 눈에 쑥쑥 빠져서 걷기 힘들다는 문제는 이 실장을 덜 괴롭혔다. 신발도 날 때 신고 나온 구두가 아닌 판자를 덧댄 눈신 같은 것을 신고 있다. 얕은 발자국이 점점이 이어진다. 보폭이 좁은 탓에 사람이라면 한 시간 정도 걸릴 거리를 실장은 이틀째 걷고 있었다. 거의 도착했다. 작게, 데슷 데슷 하는 호흡 소리가 들릴 뿐 숲은 고요하다.

실장이 도착한 곳은 산 능선 사이에 자리한 초막이었다. 작지만 너럭바위 하나를 등진 괜찮은 위치에 터를 잡아 지내기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실장은 반쯤 기다시피 마루에 다다랐다. 가지고 출발한 길 양식이 다 된 탓이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얼어붙은 언청이 입에서 나온다.

- 닝겐상... 계시는데스?

안방 문은 조금 늦게 열렸다.

- 송림(松林)이냐?

- 그런데스. 지금 막 도착한데스.

열린 문으로 엎드린 채 머리를 내민 것은 초로의 남성이었다. 농가에서 흔한, 굵고 거친 주름을 가진 얼굴이었고 보통 그런 얼굴의 인간들은 실장석에 관심이 없거나 보자마자 밟아 죽이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남자는 실장을 받아들였다.

- 오느라 욕 보았다. 들어와 몸 녹이고 씻어라.

- 감사한데스.

송림이라 불린 실장석은 이제 한계라고 외치는 듯한 온몸을 간신히 추스려, 외투와 신발을 벗어 던지고 방으로 기어 들어갔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고, 남자는 내어 준 고구마를 볼이 터져라고 쑤셔넣고 있는 송림을 바라보며 린갈을 켜고 말을 걸었다.

- 돌아온 걸 보니 복수는 그만 둔 모양이구나.

대답은 먹던 고구마를 마저 삼키고 목이 멘 송림이 물까지 한 잔 하고 나서 돌아왔다.

- 아닌데스. 와타시는 아직도 부족한데스. 가르침이 더 필요한데스.

남자의 눈에 안쓰러움과 분노, 그리고 슬픔이 동시에 맴돌았다.

- 너희는 어찌 그리 인간을 닮아서는...

- 와타시가 닌겐상에게 배운 것은 그뿐인데스.

- 송림아, 그냥 이 곳에서 나와 숯이나 굽고 살지 그래? 나도 늙어 말벗이 필요해.

- 감사한데스. 닌겐상과 보낸 날들은 와타시의 실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던데스. 하지만 그 자가 옛날을 잊고 세레브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만 하면 아직도 위석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아 잠도 이룰 수가 없는데스. 닌겐상도 잘 아시지 않는데스? 와타시는...

- 그래, 그래. 내가 너를 왜 모르겠니. 하지만 그러다 너까지 죽어버리면...

- 닌겐상이 그 자를 죽여 주시길 바란 적도 있는데스. 하지만 닌겐상이 손을 댔다간 그 곳의 닌겐들과 문제가 생길 것인데스. 와타시는 더 이상 닌겐상에게 폐를 끼칠 수 없는데스. 죽는 것보다 지금이 더 괴로운데스... 가르침을 주시는데스. 와타시는 아직 닌겐상의 권법을 마스터하지 못한데스.

남자는 혀를 찼다. 눈 앞의 송림의 분노는 보통 것이 아니다. 목숨조차 아깝지 않다는 원한을 토로하면서도 송림은 실장답지 않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하고 있었다.

- 정녕 다시 CHAMPI-ON에 나가야만 너의 한이 풀리겠니?

- 와타시의 자는 그 곳에 나가기 위해 자기 오네챠들을 목 졸라 죽인데스. 와타시도 그 곳에서 그 자를 때려 죽여야 이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데스...

송림이 고구마를 하나 더 쥐었다. 내어민 손은 거칠고 울퉁불퉁해, 실장석의 것이라기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심해의 괴생물체 부속지 같다. 지우개에 비견되는 실장석의 약한 몸을 이렇게 단련하기까지 송림이 거친 시간들은 결코 부드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 중 상당수는 남자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한때 격투실장들의 꿈, CHAMPI-ON의 잘 나가던 트레이너였지만 지금은 산골 초막에서 숯을 구우며 세상에서 잊혀진 남자는 커다란 한숨을 지으며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초막의 낡은 형광등이 자꾸 껌벅였다.


* * *


2년 전까지 송림은 전도유망한 격투실장이었다. 잘 훈련받은 격투실장의 새끼는 위석에 실장격투의 요령을 각인받고 태어난다는 경험적 지식에 의해, 송림은 곧 은퇴하고 괜찮은 씨실장이 되어 세레브한 여생을 보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한창 때 송림의 씨를 독점하기 위한 프로모터의 성급한 손길에 송림은 은퇴도 하기 전에 강제로 출산을 해야 했다. 어미가 된다는 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송림이었지만 실장석의 본능은 지능보다 강력하다. 그리고 송림은 조금 빨랐지만 그대로 은퇴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여기게 되었다. 자들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한참 물이 오른 송림의 격투 감각을 이어받은 녀석들은 자실장 때부터 남달랐다.

상품 회전률이 극도로 빠른 것이 실장 업계이다. 자실장들이 미트를 칠 수 있게 되자 바로 솎아내기가 들어갔다. 여기서 말하는 솎아내기는 물론 분충 새끼를 죽여버린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격투실장이 되기 위해 태어난 자실장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나씩 하나씩, 미트 치기에서 제외되는 새끼들이 늘어났고, 차녀와 3녀가 송림의 뒤를 이어 새 닉네임을 부여받을 예정이었다.

자신이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장녀가, 나머지 4명이 잠든 새 모조리 목을 수건으로 졸라 죽여 버리는 일만 일어나지 않았으면 그랬을 거라는 말이다.

- 송림이를 다시 임신시키는 게 낫겠는데요.

- 안 돼, 애 키우느라 일선에서 몇 달 물러났어. 지금 낳으면 감각 떨어져. 그냥 다 처분해.

- 장녀도 쓸만하지 않아요? 어쨌든 '그 송림이'의 씨잖아요. 여느 놈들보단 센데.

- '그 송림이'의 씨 치고는 부족해. 아, 아쉽구만. 차녀가 참 순발력이 좋았는데... 3녀는 깡이 괜찮았고.

- 부장님 아까우신 건 이해합니다만, 지금 나온 놈들 중에 장녀보다 나은 놈도 없어요. 제 어미 타이틀 달고 나가면 흥행은 확실할 겁니다. 게다가 제 자매들 다 죽여 버리는 그 분충성 보세요. 스타성 있을 수 있다니까요?

- 흠... 그럼 아예 이 일을 크게 홍보할까? 혈육의 정을 저버린 분충이 제왕에 도전한다?

- 부장님... 설마?

- 그래, 모자간에 한 판 붙이는 거지.

- ... 너무하십니다. 정말.

- 뭐가 너무해? 벌레들 삶인데.

- 뭐... 돈은 되겠네요.

그런 그들의 논쟁을 듣게 된 트레이너는, 그 때까지도 충격에 빠져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던 송림을 데리고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고향인 강원도로 돌아가 아버지의 버려진 초막에 처박혀 숯을 굽기 시작한 것이다. 이따금 들여다보는 인터넷 뉴스에서 송림의 장녀 '대력大力'이는, 실장석 기준으로는 무시무시한 완력으로 덤벼드는 도전자들을 모조리 링 바닥에 꽂아 버리고 이따금은 그대로 머리통을 깨 버리면서 무패 행진을 이어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더 참지 못한 송림이 남자에게 말도 없이 초막을 떠났다가 몇 달이 지난 지금 돌아온 것이다.

- 가려거든 겨울은 여기서 지내고 봄에 내려가거라. 그리고 말도 없이 떠나지는 마라. 도시는 실장석 혼자 지낼 곳이 아니다.

- 실은 체육관까지 갔던데스. 그 자도 본데스.

남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달 사이 죽지 않고 돌아온 것도 놀라운 일인데, 싸움밖에 모르고 들실장도 아닌 사육실장에 가까운 송림이가 학대파가 득실대는 도심 복판의 체육관까지 어떻게 다녀왔다는 것일까. 송림은 말을 이었다.

- 죽일 기회도 있었는데스. 하지만... 그냥 죽여서는 와타시의 분노가 풀리지 않는데스. 죽은 네 자들의 분노도 풀리지 않을 것인데스. 와타시는 그 자가 그렇게 서기를 원하는, 화려한 링에서 그 자의 위석을 박살낼 것인데스.

- 그래... 알았다. 봄이 오면 나와 내려가 자리를 마련해 보자.

지금껏 표정 변화가 없던 송림의 얼굴에 기이한 미소가 스쳤다. 복수에 대한 기대감과 희열, 미칠 듯한 분노가 잘 버무려진 표정이었다.

- 감사한데스. 와타시 운치 좀 보고 오는데스.

- 그래라.

미닫이문을 열고 마루로 나온 송림은 그러나 바로 화장실로 걸어가진 않았다. 대신 대들보를 붙들고 이를 악물고 적록색으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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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잠이 오지 않아 어딘가에 박아 놓은 담배갑을 찾아 살림을 뒤졌다. 장롱 솜이불 틈에 끼워 두었나.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송림이 녀석을 보자 곧장 생각나는 걸 보니 아니었나 보다. 무심코 피우려다, 옆에서 세상 모르고 자는 송림을 보자 남자는 헛 하는 멋쩍은 소리를 내며 마루로 나갔다. 격투실장에게 폐활량을 깎아먹는 담배는 인간 격투가에게보다 더 치명적이다. 간신히 쓸어 놓은 마당에 또 슬그머니 내리는 싸락눈을 바라보며, 남자는 입에 문 담배를 길게 빨았다.

- 와타시는 최강이 되어야 하는데스. 도와주시길 부탁드리는데스.

- 왜지?

첫 트레이닝 때 송림이 자신을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며 꺼낸 말이었다. 격투실장들이 늘 하는 말이지만 송림의 오드아이 안에 담긴 절박함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담담한 말투에서 느껴진 괴리감에, 조금 진지하게 들어 볼 생각이 든 남자였다. 송림은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을 어떻게 말로 풀어내야 할지 좀 혼란스러워하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 와타시는... 들실장 출신인데스. 닝겐상들의 테레비 상자에도 와타시를 들실장 출신인데도 제법 싸울 줄 안다며 칭찬하는 말들이 나오는 걸 본 적이 있는데스. 하지만 와타시는 '제법' 싸울 줄 아는 정도로는 안 되는데스. 들실장 출신이 이곳의 세레브 실장들을 이기고 CHAMPI-ON이 되는 걸 공원과 골목에서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 가는 동족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데스. 동족들이 겨울을 나는 골판지 밑에 까는 신문지에서 와타시의 얼굴을 보면서 희망을 얻기를 바라는데스. 와타시가 그렇게 희망을 얻어 여기까지 왔으니, 또 어떤 다른 동족도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데스. 닝겐상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제법 거창한 이야기를 꺼낸 것 치고는 자신없이 말끝을 흐리며 송림은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인간의 표정을 읽는 데 익숙하다곤 할 수 없는 송림은 남자가 얼마나 당혹했는지까지 알아채지는 못했다. 사실, 남자는 경악했다.

실장석이 '동족 모두'를 생각할 수 있다니? 남자가 철없던 청년 시절부터 이십 년을 이 바닥에서 수도 없는 분충들과 개념실장들을 만나 왔지만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다. 재미있는 녀석이다, 라고 생각하며 남자는 땀수건을 던졌다.

- 데, 데뎃?

땀수건에 온몸이 덮여 발버둥치는 송림에게 남자는 기운차게 외쳤다.

- 연설 잘 들었다. 그런데 연설만 하면 강해진다더냐? 일단 원투 백 번 치고 와라!

- 알겠는데스!

수건에서 간신히 벗어난 송림이 실장용 샌드백으로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남자는 실장석에게는 거의 보여 주지 않는 큼지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랬었다. 추억에서 벗어나니 한 번밖에 빨지 않은 담배가 절반은 타들어가 있었다. 송림은 타고난 피지컬이 뛰어난 개체는 아니었지만, 놀라운 적응력과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다. 실장 식 암바를 가르치자 이렇게 하면 어떤데스? 하면서 리버스 암바의 자세를 취하고 물어보는 송림을 볼 때면 인간 격투선수를 가르치는 기분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송림이라는 이름도 남자가 지어 준 것이다. 무슨 뜻인데스? 라고 묻자 남자는 핸드폰으로 소나무 사진을 검색해 이 나무로 된 숲이라고 알려 주었다. 송림은 씨앗을 먹지도 못하고 자칫하면 끈끈이에 온몸이 엉겨붙어서 가까이 가지 않는 나무인데스, 라고 투덜댔지만 남자는 인간들이 좋아하는 나무라며 굳이 그 이름을 붙일 것을 강권했다.

지금 여기, 이 초막이 소나무 숲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남자의 아버지는 만석꾼 출신이었다. 말년에 다 싫다며 재산을 처분해 이 산을 살 때 남자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어 도시로 뛰쳐나와 실장격투 업계에 투신했지만 해가 갈수록 남자는 아버지와 이 소나무 숲을 점점 더 그리워하는 자신을 인정해야 했다. 여름이면 솔향으로 가득할 이 곳은 그러나 폭설로 오직 싸하고 고즈넉한 마른 눈의 냄새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내가 좋아하는 똥벌레와 여생을 보낼 수는 없는 것일까.

어차피 몇 년 남지도 않았을 인생인데.

남자가 담배를 끊기로, 아버지의 초막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것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프로모터가 송림을 출산시키기로 결정한 것은 송림이 그 화려한 전적에도 불구하고 이미 전성기가 지나 실장석 기준으로 노년에 가까운 3년생 개체이기 때문이다. 그들 둘 다, 얼마 남지 않았다. 초막에 쌓이는 숯처럼, 그냥 눈비 맞으며 조용히 세상더러 우리를 잊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적어도 학대파에게 짓밟히거나 새파랗게 어린 후배에게 새치기를 당하며 내쫓기는 것보다는 품위 있는 마지막 아닌가.

가느다란 눈발 위에 뿌리는 저 희뿌연 달처럼,
초막에 쌓이는 숯처럼.

- 숯도, 타긴 하지. 아니, 숯불이 생나무 불보다 더 뜨겁다고.

마음 속 생각과는 정 반대 되는 말을 내뱉고 나서야 남자는 어느 쪽이 자기 본심인 줄을 알게 되었다.


* * *


- 와타시, 스텝이 안 좋아진데스. 와타시 마음만큼 빠르게 치고 빠지기가 안 되는데스.

- 늙어서 그렇다. 관절에 무리가 오는 거지. 대력이는 너보다 젊고 크다. 힘도 세고. 넌 무엇을 무기로 삼겠어?

- 발차기는 무리인데스. 관절기도 자보다 빠르게 걸 자신이 없는데스. 펀치밖에 없는데스.

- 그래. 잘 아는구나. 다행인 것은 대력이도 발차기나 관절기를 쓸 기량은 없다. 무식하게 들이받아 날려 버리는 인파이터지.

- 끝까지 말을 안 듣는 자인데스...

송림은 장녀인 대력을 끝까지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자'라고 불렀다. 그것이 애증의 표현인지는 실장이 아닌 남자로서 알 수가 없었다. 남자는 말을 이었다.

- 둘 다 주먹으로 간다면, 들어오는 대력이를 비껴내야 한다. 대력이 같은 방식을 인파이터라고 하고...

- 비껴내는 건 아웃복서, 맞는데스?

- 기억하고 있구나. 아웃복싱이 반드시 상대보다 더 빠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정확함과 끈기지. 지구력만 따지면 네가 위다. 아무래도 대력이는 장기전을 위한 별도의 훈련은 하지 않는 것 같더라.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대력의 무차별 난타 앞에 30초 이상 버티는 상대가 없었으니까. 송림도 전성기 때는 그런 식으로 싸워 보기도 했지만, 곧 그 방식을 간파당한 상대들에게 관절기나 회피로 농락당하기 시작하면서 몸에 익은 방식을 버렸다. 실장격투 계에서는 전성기의 송림을 '완전체'라고 불렀다. 원하는 때 들어갔다 나오면서, 실장석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치 영리하게 상대의 턱이나 배, 얼굴 한가운데에 치명적인 한 방을 날리거나 발을 걸어 넘어뜨린 후 사커킥으로 마무리를 하는 등 기가 막힌 플레이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실장격투의 적지 않은 팬들은, 고작 인간의 발길질 한 방에 무너져 버릴 보잘것 없는 육체를 가진 실장석들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보여 주는 극적인 모습들에 매료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송림의 전성기는 실장격투의 대 유행을 불러왔다.

그리고 수많은 들실장들의 희망이기도 했다. 공원의 학대파나 구제업자들 사이에서 들리는 소문으로 글도 읽지 못하는 실장석들이 골판지 구석에 송림의 사진을 찢어 붙여 놓고 살거나 화단 모퉁이에 옹기종기 모여 데스 데스 하면서 주먹질이나 발차기를 - 보통 엉터리로 - 연습하는 장면들이 목격되었다고들 했다. 남자가 송림에게 그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 그 날 송림은 남자가 알고 지낸 동안 가장 큰 목소리로 울었다. 기쁨의 눈물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는 실장석에게 정말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대력은 그런 어미의 재능 중 절반밖에 물려받지 못했다. 무지막지한 근력과 정확한 타격. 그래서 후계자에서 제외되기도 했고. 하지만 그녀가 저지른 끔찍한 자매 살해를 통해 대력은 잠재된 분충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되었고, 역설적으로 그것이 링 위의 대력이 아직까지 무패 행진을 이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대부분 세레브 실장, 사육실장 출신인 체육관 실장들에게 쓰러진 상대의 몸통에 손칼을 찔러넣고 위석에 직접 타격을 주는 상대는 너무도 잔인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 정말 끝까지 분충인 자인데스. 와타시가 교훈을 주어야겠는데스. 그러면 줄넘기나 달리기 위주로 하면 되겠는데스?

- 그리고 '권법'을 마스터해야지.

실장격투는 복싱, 유도, 레슬링, 무에타이 등등이 혼재된 종합격투술이었다. 사실 실장석의 비참한 팔다리 길이로는 정교한 니킥이나 관절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나름대로 실장의 몸에 맞게 트레이너들이 개발한 방식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원투의 경우, 인간은 스텝을 바꾸면서 칠 수 있지만 실장석이 짧은 팔다리로 그렇게 하면 몸이 통째로 휙휙 돌아야 하니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실장석의 원투는 스텝을 앞뒤로만 움직이면서 이뤄진다. 어퍼컷의 경우에도 그냥 치면 거의 맞지 않으니 치는 손 쪽의 발을 내면서 같이 올려친다거나. 젊은 날을 그런 연구로 보낸 이들 중 하나였던 남자는 나름의 '권법'이라 불릴 법한 노하우를 많이 알고 있었고 송림은 자신이 키워낸 실장들 중 가장 많이 노하우를 습득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송림의 말대로, 대력을 이기기에는 핸디캡이 너무 많았다. 한 가지라도 더 무기를 들고 가야 한다.

긴 겨울 내내 이어질 훈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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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왔다고?

이듬해 봄, 실장 전문 체육관 <월드 크러셔 짐>의 잘 나가는 프로모터는 방문자의 이름을 듣고 눈살부터 찌푸렸다. 설마 그 이름을 또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대체 무슨 염치로 다시 나타났나 궁금했기에 일단 만나는 보기로 했다.

- 여, 절도범 오셨네.

- 어차피 금방 처분할 애였으면서 아까워했던 것처럼 말씀하지 마시죠.

- 그런데 왜 그렇게 홱 사라지고 연락두절을 한 거야? 사랑의 도피라도 하셨나?

직스를 연상시키는 표현에 프로모터의 더러운 표정까지 곁들여지니 훌륭한 도발의 정석이 되었지만 남자는 넘어가지 않았다.

- 대력이, 요새 잘 나가더군요. 적수가 없죠?

- 그럼! 우리 대력이 오함마 펀치 서너 방이면 안면 함몰이 기본이거든. 자네도 남아 있었으면 어지간히 꿀 빨았을 텐데 말야.

- 꿀 더 빠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 무슨 소리야?

- 송림이 데려왔습니다. 대력이랑 붙이시지요.

- 뭐야... 그 년이 아직 살아 있어?

- 네, 그것도 아주 쌩쌩합니다. 제 자식 씹어먹을 마음으로 아주 단단히 칼을 갈고 왔죠. 모자간의 숙명적인 대결, 해 보고 싶으셨잖아요?

그 꼴을 보기 싫어서 송림이를 데리고 나왔던 남자가 하기에는 좀 쑥스러운 말이긴 했지만 프로모터에게는 어느 정도 먹힌 모양이었다.

- 에이, 그래도 올해로 4년차인 늙은 년을 한창때인 대력이랑 붙이면 재미가 있겠어?

- 직접 한 번 보시지요. 늙은 년 가오를.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남자를 따라나온 프로모터는, 잠시 후 연습 링 위에서 스파링 파트너 3명째를 녹초로 만들어 내보내는 송림의 모습을 보고 탄복을 했다. 저게 진짜 네 살짜리 실장석의 움직임이란 말인가? 전성기와 다를 바가 없잖아! 아니, 사실 전성기 때만큼 빠르지는 않다. 하지만 뭔가가...

- 맙소사, 자네 대체 저 애한테 뭘 먹인 겐가? 산에 들어갔다더니 산삼이라도 고아 먹인 거야?

남자는 '늙은 년'에서 '저 애'로 송림에 대한 호칭이 격상된 것을 놓치지 않았다.

- 말씀드렸잖아요. 칼 갈았다고.

송림은 지금 남자가 아는 모든 테크닉을 전수받은 것은 물론이고, 산삼은 아니었지만 겨울잠 자는 뱀이니 개구리니도 야생동물 불법 수렵을 감수하며 고아 먹인 데다, 한겨울의 맹훈련을 통해 최대한의 컨디션을 끌어낸 상태였다. 변수가 있다면 역시 늙은 육체였다. 몸과 몸으로 싸우는 실장격투에서 위석 처리를 할 수는 없었기에 늙은 위석이 받는 늙은 몸의 부담은 고스란히 송림이 견뎌내야 할 숙제였다 - 격투실장에 위석 처리가 허용됐다간 보던 관객들이 다 잠들 좀비 싸움이 될 것이다 - 

- 송림이, 벌써 잊혀진 건 아니지요?

- 아주 잊혀진 거야 아니지만...

- 애초에 대력이 처음 홍보할 때도 송림이 새끼라는 점에 치중하셨잖아요. 돌아온 노장이라고 광고 좀 때리면 이탈한 팬들 연어 만들기 좋을 겁니다.

프로모터의 머릿속에서 주판알이 불꽃을 내며 튀었다. 30분 정도 더 설득이 오가고, 결국 남자는 송림을 데리고 무단 이탈한 허물을 묻지 않는 대신 9:1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프로모터에게 이득의 대부분을 넘기기로 하여 계약서 초안을 작성하게 되었다.

- 딸내미, 볼래?

- 데에...

간만의 스파링으로 흥분과 나른함을 겪고 있던 송림은 많이 이완된 모습이었다. 막 신나게 산을 내달리다 바위에 늘어져 쉬는 표범 같은 모습이었다. 실장석 특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자가 본다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실장석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한 송림에게서 조금의 감동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저주받은 종족이 할 수 있다고 믿기지 않을 만한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송림은 근육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믿기 어려운 투실투실한 인형 같은 실장석의 체형을 꽤 극복한, 군살 없이 날렵한 몸을 하고 있었다. 먼 옛날 존재했다던 실장인이 이런 모습일까, 하고 남자는 잠깐 생각한다. 하지만 나른함도 잠시, 송림의 눈에 다시 불꽃이 일었다.

- 한 번 만나게 해 주시면 감사한데스.

- 그래, 가자.

송림의 귀환이 그 새 짐 전체에 퍼진 모양이었다. 훈련생들은 물론이고 프로로 뛰는 현역 격투실장들까지 남자와 송림이 지나가는 먼발치에 모여 서서 데슷데슷 하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방금 스파링 파트너 셋을 상대하며 보여 준 괜찮은 기량에 옛 명성까지 더해져 기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 오네챠, 오네챠라면 저 실장을 이길 수 있겠는데스?

- 무리지 싶은데스. 대력의 마마라고 하면 한때 대력보다 더 강했다고 들은데스. 대력이 사실 마마보다 못해서 후계자가 못 되려다가 자기 오네챠들을 죽...

- 쉿데스! 그런 소리 대력이 들으면 오네챠 큰일나는데스!

- 데힛!

그런저런 수군댐을 뒤로 하고 걷던 둘은 곧 대력의 개인 라커룸에 도착했다. 남자는 잠시 송림을 돌아보았다.

- 괜찮겠어?

- 준비... 된 데스.

남자는 여차하면 어느 한 쪽이 달려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미리 대력 쪽 트레이너도 불러 놓은 상태였다. 격투실장 둘이 링 밖에서 붙으면 하나는 반드시 죽는다고 좋을 만큼 격한 싸움이 벌어진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둘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온통 분홍색이었다. 천장도 바닥도, 심지어 라커룸의 철문까지도 분홍색으로 칠해 놓은 악취미한 인테리어의 한복판에 60인치는 돼 보이는 벽걸이 TV가 걸려 있었고, TV에서 흘러나오는 한참 유행인 예능석 그룹 '트와일☆라잇'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어디 공원 보스 실장의 경호원 정도 될 법한 거대한 덩치의 실장이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라커룸 안은 냄새도 괴상했다. 설탕과 꿀과 조청을 섞어서 프라이팬에 한참 태우면 날 법한 지독한 단내였다. 오랫동안 고즈넉한 산중에서 훈련을 해온 둘에게는 시청각 및 후각이 공감각적으로 공격을 받는 환경이었다. 거대한 덩치의 실장은 옷조차 핑크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그야말로 <와따시의 세레브함을 느껴 보아라>라고 온 사방에 써붙여 놓은 듯한 환경이다.

- 컨셉인 줄 알았더니... 평소에도 이러고 살았구만.

남자의 허탈한 목소리에 거대한 실장이 고개를 돌렸다. 송림은 그 얼굴에 난 커다란 흉터를 알아보았다.

- 참 잘도 컸는데스.

- 데뎃? 똥마마인데스? 진짜로 올 줄은 몰랐는데스! 시합 전에 죽고 싶어서 온데스? 데프프픗...

- 마마는 오마에에게 마마한테 그 따위로 말하라고 가르친 적은 없는데스.

못 본 새 두 배는 더 커졌고 세 배는 더 분충이 된 것 같은 장녀의 말투에도 송림은 차가운 태도로 일관했다. 그리고 대력 역시 분충의 태도로 응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관성 있는 모녀로군, 하고 남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 데프픗, 똥마마가 가르친 대로 했다가 와타시는 다시는 미트도 못 치고 케이지에 갇혀 장난감 신세나 될 뻔한데스. 똥마마다운데스. 아직도 와타시가 똥마마 운치나 빠는 장녀 같은데스? 와타시는 CHAMPI-ON인 데스! 똥마마는 경의를 표할 줄 알아야 되는데스!

교과서적 분충이다. 철저한 훈련 덕에 똥을 싸서 투분하는 행위 같은 것을 안 한다 뿐이지 표정이고 목소리고, 도저히 제 손으로 네 자매를 죽이고 그 자리를 탈환한 패륜아가 할 소리가 아니었다. 송림은 그야말로 솔숲에서 부는 매파람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봄이 온 데스. 오마에가 잠시 와타시의 자리를 차고 앉은 것까지는 봐 주겠는데스. 하지만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꼴은 봐줄 수 없는데스. 오마에의 오네챠들에게 사과하란 소리까지는 하지도 않겠는데스. 들어 처먹지도 않을 것 같은데스. 링에서 보는데스.

- 데프프픗, 지금 붙기에는 쫄리는 모양인데스? 쫄리면 뒈지는데스!

- 대력! 링 밖에서 붙지 말라고 했지? 손 하나라도 댔다간 바로 쳐맞을 줄 알아!

- 에이, 닝겐상. 쇼맨십 모르는데스? 똥벌레들한테는 시합 전에 이렇게 성질을 긁어 놔야 링에서 제 분수를 아는데스. 데프프픗.

대력의 젊은 트레이너의 노기 섞인 외침에도 대력은 능글능글하게 넘어갔다. 남자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송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시궁쥐새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것만 익히느라 자기관리는커녕 처먹기만 해서 피둥피둥 찐 꼴이 가관인데스. 마마가 곧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 주는데스.

- 교~육데스? 교~육이라고 한 데스? 똥마마는 뒈져서도 교~육을 시킬 수 있는데스? 어디 두고 보는데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똥마마가 이기면 그 놈의 교~육 마음껏 받아 주겠는데스. 와타시가 이기면 어디 한 번 쪼개진 위석 부여잡고 그 교~육 한번 제대로 시켜 보는데스! 데프프프프픗! 

- ... 더 들을 것도 없다. 가자.

- ...

교과서적 분충 대력의 비웃음 소리를 뒤로 한 채 둘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안내를 받아 도착한 그들의 라커룸 앞에서, 갑자기 송림이 입을 열었다.

- 와타시의 자식 교육이 잘못된 게 아무래도 맞는데스. 아마도 태교의 노래부터 글러 먹었는데스...

- 네 나머지 자식들은 괜찮은 녀석들이었다. 자책하지 마라. 너희들의 태교라고 다 의도대로 되는 건 아니잖냐.

남자의 위로에도 송림은 자책감을 떨쳐내지 못한 채 자신의 라커룸으로 들어섰다. 송림은 기억했다. 다섯 아이들을 밴 채 그녀가 불렀던 태교의 노래를.

- 뎃데로게~ 뎃데로게~ 자들은 위대한 CHAMPI-ON의 후예가 되는데스~
  세상 모든 실장들과 닝겐상들이 자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응원하는데스~
  싸워서 이기면 세계 모든 스테이크와 스시와 콘페이토가 자들의 것인데스~
  크고 강하고 튼튼하게 태어나 극상의 삶을 누리는데스~

정말로 그 때는 자신의 뒤를 이어 위대한 전사가 될 자들을 낳을 생각밖에 없었다. 개념이니 분충이니 하는 것을 생각할 일도 없었다. 송림의 실생이 그것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들실장들의 우상이자 희망, 전설의 완성형 격투실장, 76승 5패 68KO승의 슬러거 등이 그녀에게 따라붙는 칭호였다. 자식에게 바랄 것도 당연히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제 누이들의 피를 밟고 서서 설탕 냄새에 절여진 분홍색 라커룸 가운데서 춤을 추던 장녀의 모습을 목도한 순간 송림은 그것이 자신의 과오였음을 인정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어미이기 이전에 격투실장이었다.

- 와타시의 잘못인데스. 와타시가 링에서 푸는데스.

- 그래. 잘 생각했다. 내일 계체량 하고 몇 밤 더 자고 붙을 것 같더구나. 일단 오늘은 쉬어라.

- 닝겐상도 쉬시는데스.

각자의 방에서 침대에 누운 송림과 남자는, 그러기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둘 다 자기 방 천장에 대력의 모습을 그리며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 주먹 밥으로 부른 배는 죽어야 꺼진다.


* * *


중계권이 여느 경기의 두 배 값에 팔리자 바로 광고가 엄청나게 붙었다. 모녀가 어떤 마음으로 다가올 시합을 기다리고 있든지는 상관없이, 사육실장용 샴푸, 실장복, 콘페이토, 장난감, 케이지 세트, <죽이지 말아요> 공익광고, <하늘에서 별사탕이 비처럼 내려와> 드라마 광고, 집안에 침입한 들실장을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판매되는 플라스틱 빠루, 코로리, 도돈파, 게로리... 프로모터는 연일 입을 귀에 걸고 다녔다. 약간의 공백기간이 오히려 송림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는지 남자의 표현대로 '연어 팬'들의 열성은 신기할 지경이었다. 거대한 돔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이해가 안 갔지만, 관객석에서 송림의 모습이 그려진 대형 플래카드까지 등장할 땐 남자도 송림 자신도 어이가 없었다.

- 닝겐상들이... 와타시를 이렇게까지 좋아했는데스?

- 글쎄다,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저 양반 홍보력이 끝내주기도 하지만.

메인 이벤트 전에 치러지는 자잘한 데뷔전과 그럭저럭 프로들끼리 붙이는 시합이 진행되고 있었다. 개막전을 앞두고는 무려 예능석 '트와일☆라잇'의 멤버인 오렌지와 퍼플이 링에 올라 상투적인 멘트를 하는 시간까지 있었다. 덕후들의 환호성이 경기장 천장을 찔렀다. 남자는 짚이는 데가 있어 세컨드에게 물었고, 역시나 저 예능석들이 대력의 강력한 주장으로 오게 되었음을 알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참 세레브하시기도 하지.

황당할 정도로 거창하고 화려한 미사여구로 점철된 양 선수의 소개가 이어지고, '대애애애애애애애애~ 려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소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옹~ 리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임~' 하는 사회자의 호명과 함께 어미와 자식은 경기장 반대편으로부터 걸어나왔다. 송림은 늘 입던 팬츠에 수건 하나만 머리에 덮어쓴 차림이었고, 대력은 어마어마한 레이스 장식과 금실로 된 견장, 심지어 등 쪽에는 반짝이로 된 독수리 문장까지 달린 분홍색 망토... 를 걸치고 나왔다. 금실 견장에 독수리 문장이 분홍색 망토와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는 건 대력뿐일 테지만, 어쨌든 온 천지에 나 분충이오 하고 외치는 그 태도가 묘하게 호응을 얻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프로모터는 그런 태도를 부추기는 편이었다.

- 본격적 경기에 앞서 양 선수의 각오를 보는 인터뷰를 가졌는데요, 영상 보시죠!

경기장의 조명이 암전하고, 곧이어 대형 스크린이 송림의 모습을 비춘다. 초췌한 인상, 어딜 봐도 굳세고 강건한 옛 제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대신 항해를 막 마치고 돌아온 뱃사람 같은 다부짐과 노련함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 닝겐상 여러분, 송림인데스. 말도 없이 떠나 버려 죄송했했는데스. 그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훈련을 한데스. 한때는 와타시의 자를 잊으려고도, 용서하려고도 한데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는데스. 와타시 때문이 아니라, 와타시의 장녀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성체도 다 되지 못한 채 죽어버린 와타시의 다른 자들 때문인데스. 와타시의 장녀는 제 오네챠들의 핏값을 오늘 치를 것인데스. 지켜봐 주시는데스. 감사한데스.

현역 시절부터 송림의 이 차분하고 철든 듯한 태도는 많은 팬을 유지시키는 한 요소였지만, 주어진 고통에 어느 정도 달관한 느낌까지도 주는 지금의 송림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약간의 감동을 느꼈다. 영상은 바로 대력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참 어지간히도 세레브한 차림의 대력이 어지간히도 분충스런 태도로 고함을 지른다.

- 똥마마가 와타시에게 도전을 한데스. 다 늙어빠진 몸뚱이로 어디 구석에서 진작 뒈졌을 줄 알았는데 용케도 아직 살아 있었던데스! 데프프픗. 그 질긴 목숨에 경의를 표하며 오늘 링 위에서 하찮은 실생을 마무리 지어 주겠는데스! 와타시의 오네챠들처럼! 와타시의 이 손으로! 아, 발로 짓밟아 죽일 수도 있으니 장담은 못하겠는데스! 데프프프프픗!

무도한 발언에 관중들이 분노를 느끼는 것만큼 대력의 스타성이 올라간다는 것을 프로모터는 너무도 잘 안다. 우우 하는 야유가, 좀전에 예능석이 등장했을 때보다 더 크게 돔을 메운다. 영상이 꺼지고 링에 불이 다시 들어오고, 두 격투실장이 링에 올랐다. 야유는 금방 함성으로 바뀐다. 아찔하다. 인간 격투가도 어지간한 경력이 쌓이기 전에는 이 정도 규모의 함성 속에서는 넋이 나가기 쉽다. 하물며 실장석의 가느다란 신경으로야. 하지만 이 모녀는 그 정도에 위축될 보통 실장석은 아니었다. 서릿발 같은 차분함과 불덩이 같은 탐욕을 각자의 가슴에 품고, 두 실장석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규칙을 알려 주는 요식행위는 실장격투엔 없다. 규칙이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글러브도 벨트도 로우 블로우도 없는데 무슨 규칙. 가급적이면 죽이지는 마라, 정도였다.

뭐, 가급적이다.

공이 울린다.

모자가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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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 닝겐상 혹시...

- 응? 먹을 거 없다. 가라.

- 아니, 지금 보시는 것이... 실장격투인데스?

저녁을 먹고 여유롭게 공원 벤치에 앉아 DMB를 시청하던 남자는 린갈 앱을 켜고는 조금 놀랐다. 인간이 스마트폰으로 뭘 보든 실장석이 그것의 내용을 신경쓰는 경우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 맞아. 그런데 왜?

- 방해가 안 되신다면... 저희도 볼 수 있는데스?

- 너희가 실장격투도 봐? 하, 재밌네.

- 다 보지는 않지만 오늘 밤에는 송림이라는 실장이 싸움을 한다고 들은데스... 송림의 격투를 보고 싶은데스. 죄송하지만...

남자는 흥미를 느꼈다. 송림이 실장석들한테도 유명하던가? 하긴, 들실장 출신이라고 했던가...

- 크크크, 재밌네. 근데 화면이 작아서 보는 건... 지저분한 니들이 내 옆에 앉아야 되잖아. 그냥 소리 키워 줄 테니까 들어라. 좀 있으면 송림이 차례네.

- 감사한데스! 감사한데스!

고개를 연신 꾸벅이던 실장은 뒤를 돌아보더니 외쳤다.

- 송림 실장의 싸움이 곧 시작인데스! 뛰어오는데스!

뭐야? 하고 그 쪽을 바라보던 남자는 수십 마리의 꾀죄죄한 들실장이 환성을 지르며 뛰어오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남자가 학대파가 아니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으유, 지저분한 놈들. 하지만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성인답게, 그는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조용히 방송 볼륨을 높였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확 커져서 들린다.

- 1라운드, 지금 시작합니다!


* * *


- 데뱝뱝뱝... 뱤!

마우스피스를 물고도 우렁차게 고함을 지르며 뻗어낸 대력의 라이트 훅을 보기 좋게 피하며 송림은 그 오른쪽 옆구리에 보디 블로를 먹였다. 푹! 그 정도로 살집 좋은 대력의 몸에 큰 타격은 가지 않았지만 잠깐 호흡을 끊는 데는 성공했다. 대력도 녹록치 않아서 그대로 레프트 백스핀 블로로 전환하려는 순간,

송림이 대력의 등 위로 날쌔게 올라탔다.

'초크인데스!'

그래플링에 대한 방어는 그대로 뒤로 눕는 것이다. 대력은 아예 슬램을 꽂을 생각으로 등에 매달린 송림의 머리통을 양 손으로 꽉 부여잡고는 몸통째로 크게 떨어졌다. 시작부터 레슬링인가! 관중이 크게 술렁였다.

쿵! 팔각의 링 바닥의 탄성은 인간용 경기장보다 더 좋다. 낙상으로 다치는 것도 방지할 수 있고, 비중이 낮은 실장의 몸이 가끔 기묘하게 튀어 멋진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녀는 그대로 바닥에 벌렁 누웠지만 송림은 등부터 떨어진 타격을 무시하고 리어 네이키드 초크를 들어간다. 그러나 살덩이과 근육으로 둘러싸인 대력의 목줄기가 워낙 두꺼워, 깔끔하게 초크가 들어가지 못했다. 레프리 스톱을 고려하기도 전에 대력은 누운 몸을 그대로 뒤집어 일어난다. 송림은 아직도 목줄기에 매달려 있다. 초크는 포기한 듯, 한 팔로만 목을 붙들고 계속 헤드샷만 날린다.

'데힉, 데힉, 더럽게 끈질긴 똥마마인데스!'

'힘 하나는 더럽게 좋은 자인데스...'

- 아, 방금 그대로 경기가 끝날 수도 있었겠는데요? 해설위원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대력이 저런 어설픈 관절기에 걸릴 정도였으면 지난 겨울 시즌에만 18전 전승을 달성하며 디펜딩 CHAMP가 되지는 못했겠지요! 그보다도 송림이라면 방금의 초크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 안 했을 텐데, 무모한 시도를 하는 건 아무래도 나이 문제로 감이 떨어져서일까요?

명백히 편향된 해설을 마구 남발하는 해설자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송림은 감이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다. 송림이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매달려 공격하는 곳은...

- 왼쪽 눈 위! 송림이 대력의 왼쪽 눈 위를 계속해서 타격하고 있습니다! 저거 너무 더티 플레이 아닌가요?

- 일단은 렌즈가 있으니 바로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겠지만 왼쪽 눈 위가 터지는 걸 좋아하는 실장은 없겠죠. 저러면 화만 더 돋굴 것 같은데... 그런데 송림이 저렇게 치사한 수를 썼던가요?

사회자와 해설자가 말하는 '왼쪽 눈 위'는 바로 실장석을 강제로 임신 및 출산시킬 수 있는 약점을 말하는 것이다. 대체 왜 그 따위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장석은 왼쪽의 녹안이 붉게 물들면 그 자리에서 미숙아를 출산한다. 그것도 녹안의 붉은색이 사라질 때까지. 물론 피가 바로 튀어들어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격투실장들은 마우스피스와 함께 특수 코팅된 하드 렌즈를 착용하고 경기에 임하지만, 렌즈란 것이 그렇게 견고하지도 않은 데다 녹안 위를 공격당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할 실장도 드물다.

'오마에는 자를 잃어 본 적이 없을 테지데스? 자를 가진다는 공포는데스? 맛이 어떤데스?'

'이... 미친 똥마마가! 제 자식들 뒈졌다고 유치하게 이딴 식으로 복수하는데스?'

대력은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송림의 머리를 쥐어뜯으려 손을 뻗었지만 이미 송림은 스스로 삭발을 한 지 오래라는 사실만 깨닫고 말았다. 제 어미를 매단 채 그대로 일어나는 대력은 확실히 힘 하나는 괴력의 수준이었다. 으드드득, 몇 개 안 되는 이를 마우스피스째 부서져라 갈면서 대력이 그대로 팔각 링의 코너로 돌진했다.

- 케이지 슬램! 케이지 슬램을 쓰려 하는 대력! 과연... 아!

실장석이 아니라 다람쥐 같은 동작으로 송림은 대력의 목을 조르던 팔을 풀고 달리는 대력의 등을 차고 뒤로 뛰었다. 공중제비 1바퀴. 대력의 몸은 관성으로 그대로 링 가장자리로 고꾸라졌다. 쿵! 송림은 숨도 고르지 않은 채 그대로 돌진했다. 사커킥이다! 대력은 본능적으로 복부를 방어하려 웅크렸다. 하지만 송림은 가드한 대력의 팔 위로 무자비하게 킥을 꽂아넣었다. 콱! 콰각! 격분한 대력이 송림의 디딤발에 다리를 뻗어 걸어넘기려 했고 송림은 반쯤 비틀하면서도 용케 자세를 잡아 후퇴했다. 레프리는 잠깐 스톱을 외치고 둘을 떼놓은 뒤 대력의 상태를 살폈고 눈 위에 출혈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형편없는데스. 오마에는 겨우 이 따위 CHAMPI-ON이 되려고 오네챠들을 죽인데스? 덩치만 큰 시궁쥐 같은데스.'

'그딴... 그딴 눈으로 와따시를 보지 마는데스! 똥마마! 열 갈래로 찢어 죽이는데스!'
경기 속행! 대력은 더 이상의 돌격으로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가드를 올리고 어깨에 둥글게 힘을 주었다.

- 대력이 가드를 올리네요. 챔피언 등극 이후로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데요!

- 아... 좀 진지하게 해 볼 생각이 들었나 보네요. 하긴 저 정도까지 몰아붙인 상대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별 타격도 없는데 너무 사리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제 어미보다는 훨씬 젊고 강하지 않습니까! 승리의 열쇠는 대력의 장기인 저돌성에 있겠죠!

대력 빠돌이 해설자의 편파적이다 못해 악의적인 발언보다 훨씬 건설적인 조언은 양쪽의 세컨드가 외치고 있었다.

- 대력! 라운드 끝까지 수그려! 늙은이 오래 못 버틴다!

- 송림! 계속 괴롭혀! 폭발할 때까지!

그럴 생각이었다. 갑자기 달려드는 송림을 대력은 침착하게 바라보았다. '똥마마는 와타시가 개돼지처럼 달려들 줄만 안다고 생각한데스? 반격만 하면 된다고? 오만함의 대가를 치르는데스!' 대력은 숨겨진 특기이지만 링 위에서는 쓸 상대가 없었던 기술, 카운터 오함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적의 등 쪽으로 뒤로 돌면서 날리는 백스핀 블로우, 거대한 몸뚱이에도 불구하고 대력의 순간 회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말려들면 그대로 뒤통수 함몰이다. 송림의 몸이 니킥을 위해 뜨는 순간 대력은 바로 돌았다.

있었다

모든 것이 공중에 떠 있었다
침방울도 땀방울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지린 약간의 운치도
링 위에 내리쬐는 조명도 귀를 찢는 함성도 둘의 희미한 의식도

엄마도
딸도

'와타시의 자인데스.'

'더러운 똥마마! 쳐죽이는데스!'

니킥은 페인트 모션이었고 그대로 공중에서 내려찍는 라이트 훅을 준비하면서 송림은 대력을 내려다본다. 반쯤 돌고 있다. 다리는 이미 회전의 궤도 안이다.

'눈을 친데스? 더러운 똥마마! 찢어죽이는데스!'

'저 눈가의 상처는 와타시가 낸 것인데스.'

서로의 얼굴에 난 흉터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그 끔찍한 밤, 마지막으로 5녀를 목졸라 죽이다가 송림에게 발각된 장녀는 기를 쓰고 떼어내려던 송림의 손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5녀의 목을 조른 수건에서 떨어져나오지 않았다. 5녀는 목이 졸려 죽은 게 아니라 숫제 잘려 죽었다. 송림은 장녀를 5녀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그 머리통을 쥐어뜯다시피 했고 그래서 장녀의 양 눈 옆에는 실장석의 회복력으로도 지워지지 않을 찢어진 흉터가 남게 되었다. 죽는 쪽도 죽이는 쪽도 말리는 쪽도 적록색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어 사방은 피와 눈물과 운치로 온통 범벅이 되었었다.

지금의 링 바닥처럼.

'용서하는데스.'

송림의 몸이 스윙에 휩쓸려 통째로 날아갔다. 처박힌 곳은 링 반대편 폴이었다.


* * *


- 대력의 반격기! 크게 휘둘러서 달려드는 송림을 날려버렸습니다! 타격이 크겠는데요!

- 역시 대력! 무식하게 휘두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 주네요!

사회자도 해설자도 흥분해서 소리를 마구 지른다. 화면을 못 봐도 모여든 들실장들이 발을 동동 구르기에는 충분한 상황이다.

- 송림이 지는데스? 안되는데스! 똥분충 대력을 쳐죽이는데스!

- 야, 이 자식들아! 시끄러! 조용히 안 보냐!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진성 애호파로 오해받는 상황도 이미 잊어버릴 만큼 경기에 몰입한 남자였기에 데스데스 거리는 주위 실장들을 조용하게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가뜩이나 목청도 큰 실장석 수십 마리가 짖어대면 그 소리는 경기장 함성에 필적한다.

- 근데 니들, 왜 그리 송림을 좋아하냐? 송림이 이긴다고 너희들 뭐 좋아지는 거 없잖아?

- 희망인데스!

- 뭐?

경기에 흥분해 얼굴이 벌겋게 된 실장 하나가 달뜬 목소리로 외쳤다.

- 송림은 와타시타치의 희망인데스! 와타시 같은 들실장들도, 매일 맞아죽고 얼어죽고 잡아먹히고 굶어죽는 실생 말고도 다른 식으로 살 수 있다는!

- ... 쓸데없이 감동적인 소리는 경기 끝나고 하고 마저 보자! 어우, 저거 계속 처맞네!

- 송림이 계속 처맞는데스?!

송림은 가드를 올리고 모로 누운 채 계속 처맞고 있었다. 트레이너의 안타까운 외침은 1라운드 종료 공이 울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 야, 너 왜 그랬어? 아웃복싱 몰라? 그럴 거면 왜 경기하냐?

- ... 닝겐상.

- 왜 임마!

- 다음 라운드에... 하겠는데스.

남자는 얼어붙었다.

- 야, 이 미친 새끼야!

- 와타시의 자가 와타시의 고통을 깨닫게 하는 방법은 그것뿐인데스. 말리셔도 할 수 없...

- 네 몸뚱이고 네 목숨이다! 네 맘대로 해! 으이구, 이런 미친 년을 데리고 내가...!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목 울대를 떨며 남자는 홱 돌아섰다. 이 새끼나 저 새끼나, 미친 새끼들뿐이야, 정말! 남자는 경기 시작 1시간 전에 프로모터로부터 은밀하게 온 제안을 떠올렸다. 욕지기가 치미는 제안이었다.

- ... 네?

- 그러니까, 둘 다 죽는 걸로 가자고.

- 그게 무슨 개소립니까? 송림이야 그렇다 치고, 대력은 당신 상품이잖아요? 왜 상품을...

프로모터는 더러운 것이라도 우물거리던 것처럼 침을 퉤 뱉았다.

- 분충 새끼 시장가치가 계속 떨어져. 화려하고 자신감 넘치는 건 좋은데, 저 놈한테 건실한 애들이 자꾸 나가떨어지면 관객들이 싫어하거든. 그래서 웬만하면 송림이가 이겼으면 하는데, 송림이 솔직히 이번 경기 뜨고도 위석이 멀쩡할 거 같아? 내가 보기엔 아니던데.

스파링 때 최대한 팔팔한 모습만 보여 줬다고 생각했지만 운치 냄새와 함께 늙은 프로모터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나 보다. 남자는 욕지기가 났다. 송림을 데리고 체육관을 도망치듯 떠나던 그 날처럼. 프로모터는 남자의 속을 들여다보듯 말했다.

- 이렇게 하지. 자네는 송림이를 극한까지 몰아붙여. 그리고 나는 대력이한테 위석 약화제를 약간 쓸 거야. 송림이 지금 상태 같아서는 대력이가 죽을 때까지 무리할 거고, 그럼 대력이가 죽을 때쯤에는 송림이도 무사하지 못하겠지.

씹어뱉듯 남자가 고함을 쳤다.

- 저절로 죽게 두지 왜 링에서!

프로모터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외쳤다.

- 그래야! 전설이 되잖나!

그래야 전설이 된다... 그래야... 링 위로 걸어올라가는 송림의 등을 바라보며 남자는 중얼거렸다.

- 네가 하려는 짓을 해 버리면 전설은 확실히 되겠구나. 나도 모르겠다, 똥벌레들아...


* * *


- 똥마마! 쳐죽이는데스!

에너지 드링크는 인간보다 실장석에게 수십 배의 효과가 있다. 실장은 에너지 드링크로 가뜩이나 높은 회복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매 라운드보다 사육실장용 병 한 개 이상은 주지 못 하게 되어 있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마우스피스를 문 채 분노의 함성을 내지르는 대력은 충만한 힘으로 달려들었다. 딸의 공격을 회피하는 어미를 보며 대력의 세컨드는 확신했다. '확실히 늙었어!' 회피하며 꽂는 잽도 디딤발이 휘청대는 탓에 위력이 없다. 역시 '그 앞에서 30초 이상 버티지 못하는' 오함마 펀치를 1라운드 마지막에 15초 이상 연속으로 맞은 4년생 실장석이 온전할 리는 없는 것이다. 대력은 생각했다.

'눈 위를 친데스? 그대로 당해보는데스!'

갑자기 가드를 내리고 두 팔을 벌리고 자세를 낮추는 대력. 태클이다. 대력이 본 게임에서 그래플링을 먼저 시도하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사회자와 관중과 시청자들은 이 새로운 모습에 핏빛으로 기대감을 키운다. 대력의 몸뚱이가 송림을 그대로 덮어 버릴 기세로 덮쳐든다. 태클 방어 자세를 취한 송림이 그 자세 채로 뒤로 주우우욱 밀리다가 결국 벌렁 넘어졌다.

- 터졌습니다!

사회자의 환성. 어미를 깔고 앉은 딸이 또다시 무자비한 주먹질을 시도한다. 왼쪽 눈 위, 자기가 당한 그대로 미친 듯이 날린다. 주먹이 워낙 커서 상처가 곧 뭉개질 지경이다.

- 괜히 약을 올려서 송림이 더 처참하게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인데요?

- 처음 시작할 땐 정의의 사도 송림이 악당 대력을 응징하는 구도였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반대로 흘러가는 상황! 역시 실장격투는 흥미롭습니다! 과연 이대로 대력은 어미를 이기고 CHAMPI-ON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

푹!

- 와따시가!

퍽!

- CHAM!

빡!

- PI!

쩍!

- ON인데스!

콱!

- 똥마마가!

우직!

- 아닌데스!

마우스피스도 날려 버린 채 괴성을 지르며 송림의 왼쪽 눈, 아니 왼쪽 얼굴 전체를 맹타하는 대력, 그런데 송림은 쉽게 태클을 걸릴 때와는 달리 수월하게 대력의 몸 밑을 빠져나갔다. 일부 팬들은 '아니 저렇게 나올 수 있는데 왜 저렇게 맞고 있었던 거야?' 싶을 지경이었다. 남자는 마음이 철렁했다. '저 미친 새끼가...!' 레프리는 아무리 봐도 곧 송림의 왼쪽 눈이 피로 물들 것 같아 스톱을 외치려 했다. 그런데 링 가운데 선 송림이 이상한 짓을 했다. 왼쪽 손이 자기 얼굴 쪽으로...

푹!

- 꺄아아악!

유독 신경이 가는 시청자.

- 으아아악!

그 옆에서 같이 보던 시청자.

- 저, 저게 뭔가요! 송림이 자기 왼쪽 눈을!

다들 아는 사실을 설명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회자.

- 데엣?

- 끄악?

공원에서 DMB로 경기를 보던 수십 마리의 들실장들과 한 명의 인간.

- 저 미친 새끼가 기어이!

산을 내려오기 전 송림이 혼잣말로 '와타시가 녹안을 없애버리면 어떨까, 약점이 없어질 텐데'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죽을 만큼 패 주었던 남자.

- 아니, 저렇게까지 하라고 한 적은 없는데!

경악과 별개로 쇼의 자극성이 시청률을 극상의 경지로 이끈다는 사실에 행복회로를 돌리는 프로모터.

- 눈알을 빼냈습니다!

직업정신이 다시 한 번 투철한 사회자.

- ......!

누구보다 가까이서 그 광경을 목도하고는 충격으로 멍하게 선 대력.

- 송림이 미친 걸까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강한 자식 앞에서 이성의 끈을 놓은 걸까요? 일단 레프리 스톱 선언됩니다!

수의사가 송림의 눈을 살펴보았다. 이미 안구째 뽑혀나간 왼눈이 재생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 야 이 미친 똥벌레야. 뭔 짓이야?

- 의사 닝겐상, 와타시... 임신은 안 되겠는데스?

- 당연하지 똥벌레 새끼야! 격투하랬지 누가 호러쇼 하랬냐?

- 그럼 된데스.

어이가 없어 당황한 의사는 간단한 지혈과 소독만 해 주었다. 저그 같은 재생력을 가진 실장석에게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경기는 늘 그렇듯 속행되었다. 항복이 없었으니까.

- 한 쪽 눈을 스스로 뽑아버린 송림, 경기 재개됩니다! 스스로 회복불능의 핸디캡을 자처할 만큼 자신이 있는 걸까요? 과연 어머니의 광기가 딸의 괴력을 이길 수 있을까요? 모녀, 다시 맞붙습니다!

'미친 독라 똥마마, 미친 줄은 알았지만 완전히 돌아버린데스? 출혈에다 시야도 엉망인데스. 그대로 끝장내는데스!'

'끝장은 네년이 나는데스!'

1분 남짓 남은 2라운드, 둘의 위석은 끓어오르고 있지만 명백히 송림 쪽의 위석이 받는 부담이 크다. 자해행위는 그 부담을 격화시킨다. 솜으로 막은 왼쪽 안와에서 다시 피가 배어나온다. 대력은 자신의 주력기, 오함마 펀치를 난타하려 접근한다.

송림이 노린 것이 그것이었다. 송림은 벼락같이 대력의 정면으로 점프해, 믿을 수 없게도 휘두른 대력의 왼팔을 짓밟고 30센티 이상 뛰어올라 그 어깨에 무등을 타고 앉았다. 양 다리로 목을 조르며, 송림은 두 손을 있는 힘껏 곧추세워 대력의 왼쪽 눈두덩을 미친 듯이 때려댔다.

-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대력이 도살장의 돼지처럼 비명질렀다. 더 이상 격투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스스로 눈을 빼 버린 어미가 딸의 눈두덩을마구 때려넣는 모습은 상황 자체로 괴기스러웠고 목이 한껏 졸리느라 반쯤 눈이 튀어나온 대력은 무자비한 수도에 왼쪽 눈두덩이 터져나가는 것을 무방비하게 허용해야 했다. 레프리가 또 스톱을 외치려는 순간, 뒤에서 슬그머니 그의 어깨를 붙잡는 손. 귓속말. 도로 내려가는 레프리의 손. 법적으로 실장석 학대는 동물보호법 위반이다. 하지만 실장석 자신들이 자기 의사로 적절한 보상을 받으면서 경기장 위에서 서로에게 저지르는 폭력은 합법이다. 자기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 투견보다도 명백하게. 백주에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합법적 학대. 끔찍한. 잔인한. 차가운. 뜨거운. 극악무도한. 패륜. 패륜.

어미가 딸을 타고앉아 눈두덩을 터뜨려 그 다리 사이로 손녀를 뿌직뿌직 낳게 하는.

- 레프리 스톱!

적절한 그림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레프리 스톱이 외쳐진다. 송림의 사이드에서 남자가 목청껏 외쳤다.

- 이 미친 년아!


* * *


링 바닥에서 피와 운치, 구더기들이 조속히 치워지고 경기 속행 여부를 놓고 레프리와 운영진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방송심의위원회나 동물보호단체가 또 지랄을 하지는 않을지, 쇼가 너무 자극적이 되면 미래가 어둡다드니, 당장 시청률이 역대 최고인데 무슨 개나발같은 수작이냐든가, 뭐 그렇고 그런 닝겐상들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모녀는 링 반대편에서 서로의 외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뻘건, 불타는 외눈 두 개.

'똥마마! 죽이는데스! 반드시 찢어죽이는데스! 와타시의 자들이! 와타시의 자들이!'

'이제 좀 공평해졌는데스? 이제 와타시의 기분을 느끼는데스? 이게 네가 바라던 CHAMPI-ON의 대가인데스! 어미도 딸도 손녀도 모조리 잃어버리고 제 혼자 링에 살아남아 서 봤자 오마에는 절대 행복할 수 없는데스! 아니, 행복해서는 안되는데스! 오마에는 그럴 자격이 없는데스!'

- 와타시는... 저 분충을... 끝장을...

남자가 송림의 뺨을 때린다.

- 여기까지 하자, 여기까지! 이 미친 똥벌레 새끼야! 너도 병신 되고, 네 딸년도 병신 됐잖아! 그만하자고!

- 와타시는 저 분충을 끝장...

- 좆까! 난 이런 꼴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야! 집에 가자!

- 아니야! 계속 시켜!

뒤돌아보자 돈독으로 빵빵하게 부푼 듯한 프로모터가 환성을 지르고 있다.

- 파이팅 머니 20%, 아니 30% 더 쳐 줄테니까 계속하라고 해! 애도 원하는구만!

다음 순간, 프로모터는 전직 트레이너가 늙었을지언정 아직 몸놀림이 잽싸다는 것을 멱살을 잡히면서 깨달아야 했다.

- 이게... 무슨 짓... 켁!

- 이 인분충 새끼야! 학대가 하고 싶으면 빠루 들고 공원 가서 해! 내 새끼야. 내가 키웠어!

- 경기 속행됩니다!

- 뭐... 뭐?

돈독이 오른 것은 프로모터뿐이 아니었다. 운영진들도 어차피 퇴물인 송림과 효용이 다한 대력을 극한까지 활용하고 털어 버리겠다는 마음가짐은 동일했나 보다. 남자가 수건을 던질 기회를 놓친 채 3라운드가 시작되었다. 곧 프로모터의 건장한 부하 직원들에 의해 남자는 제압되고 선수 대기실 쪽으로 끌려갔다.

'닝겐상, 감사한데스. 하지만 와타시는 여기서 자를 죽여야 하는데스.'

'그만둬... 그만두라고!'

적수를 마주하는 격투실장과 끌려가는 트레이너는 돌아보지 않고도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기억하시는데스? 와타시는 희망이 되고 싶다고. 싸워서 이기는 것뿐이 아니라, CHAMPI-ON을 차지하고 앉은 똥벌레를 퇴치하는 것이 진짜 CHAMPI-ON의 의무인데스. 들실장 일족들이 분명 알아줄 것인데스. 와타시가 살아 있는 한, CHAMPI-ON을 고작 저런 똥벌레가 더럽히게 두진 않겠는데스...'

3라운드 공이 울린다.

- 송림상! 송림상! 똥분충을 쳐죽이는데스!

- 레후? 송림상이 이기면 프니프니를 해주는레후?

- 지지 마라, 송림!

- 그래그래, 미친 똥벌레들아, 서로 싸우다 다 뒈져버려라!

- 경기 멈추지 않고 다들 뭐하는 거야? 다들 미쳤어!

각양각색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CHAMPI-ON 방어전이라기엔 형편없는 졸전이 펼쳐진다. 둘 다 외눈이라 둘 다 헛친다. 둘 다 왼쪽 눈에서 피를 질질 흘린다. 늙은 송림은 위석의 부담으로, 금방 강제출산을 당한 대력은 뽑혀나간 체력으로 휘청거린다. 송림은 날쌔지 않고 대력은 둔중하다. 어쩌다 맞는 펀치도 정타가 아니다. 개싸움이다. 흐느적거린다. 비척거린다. 피투성이다.

슬프고,
더럽고,
시끄러웠다.

대력이 자기가 흘린 피를 밟고 넘어진다. 그 위를 타성에 젖어 깔고 앉아 난타를 먹이는 송림.

파킨.

장녀의 얼굴을 향해 쳐올려진 주먹이 힘없이 늘어졌다.

- 다운! 다운입니다!

와아아아.

귀가 따갑다가, 조용해졌다.


* * *


- 그래서 결국 송림상은 링 위에서 장렬하게 쓰러진데스. 하지만 똥벌레 대력도 그 날은 이겼지만 며칠 끙끙대며 누워 있다가 죽어버린데스. 강제출산 한 번에 좀 맞았다고 죽어버리다니 덩치만 컸지 허약한 분충인데스.

- 에이, 송림상 죽어버린테치... 바보인테치! 자기 눈을 왜 빼는테치?

- 그 마음을 누가 알겠는데스. 하지만 마마는 조금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스. 그러니 자들은 똥벌레 대력처럼 오네챠들을 미워하지 말고 서로서로 친하게 지내는데스!

- 알겠는테치! 오네챠들끼리 싸우면 분충인테치!

- 와타치도 외눈의 송림처럼 강해지고 싶은테치!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사육실장 모녀들의 대화에는 길가의 풀벌레 소리만큼이나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남자는 송림의 묘로 향하고 있었다. 묘래봐야 별 것 없다. 그냥 사육실장 용 납골당이다. 남자는 말기 암 환자가 운신하기에는 차고 넘칠 만한 파이트 머니를 받아 송림의 납골당에 많은 금액을 썼다. 달리 쓸 곳이 생각나지 않아서였다.

- 똥벌레 새끼들이란.

왼눈을 제외하면 유효타도 별로 맞지 않은 대력이 왜 며칠 뒤 죽었는지 진짜 이유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리고 훌륭한 보수의 대부분은 입막음 조였기에 극소수는 얌전히 침묵의 서원을 지키고 있었다.

- 사람도 못 믿을 세상에 똥벌레를 믿다니 내가 미쳤지.

제 스스로 눈을 빼 버리는 순간의 송림은 만화화, 애니화, 짤방화, 웹소설화, 기타 팬시 상품화되어 <외눈의 실장석>이라는 사회 풍조를 일으키기에 이른다. 한 쪽 눈을 없애 버리면 임신을 못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재발견되며 적지 않은 수의 사육실장들이 의안 교체 시술을 받게 되는 사소한 부작용도 있었지만, 사람보다 멋진 최후라며 송림의 모습에서 로망을 찾는 멍청이들이 세상엔 제법 많았다.

납골당에 빈 손으로 가긴 뭐해서, 남자는 길거리에서 군고구마 한 봉지를 사서 들고 가고 있었다. 그러다 저쪽 공원에서, 이제는 흔한 모습이 된 '권투 연습하는 들실장'을 발견하고 잠깐 멈칫하다 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들실장은 남자가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주먹질에 열중한다. 어디서 본 건 있는지 제법 스텝이 잡혀 있다.

- 어깨 힘 빼라.

- 데뎃?! 닝겐상! 죄송한데스!

건방지게 실장석이 권투 연습한다고 어지간히도 박해를 당했는지 인간을 보자마자 도게자부터 하는 실장석을 보고 남자는 어느 건방진 똥벌레를 떠올렸다. 그 앞에 남자는 고구마 한 덩이를 던졌다.

- 고구마나 처먹어라, 망할 똥벌레야.

- 데...?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가 자신에겐 눈길도 안 주고 지나친다는 것을 깨달은 들실장은 주먹질을 그만두고 고구마에 달려들었다. 그가 바로 자신의 우상을 훈련시킨 사람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채.

늦봄이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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