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숍에서 파는 사육실장은 대부분 브리더의 엄격한 훈육을 통과한 개체이다.
적어도 팔리는 시점에서는 함부로 인간에게 아첨도 하지 않고 스시나 스테이크 따위의 요구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육주는 브리더만큼의 훈육을 따라하지 못하므로 자연스럽게 ‘올려진다.’
그렇게 지속적인 분충화와 그로 인한 항의로 인해 실장석 시장은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지속적으로 파이를 빼앗기고 있었다,
이에 여러 기업의 협의를 통해 한가지 운동이 시작되었다.
‘링갈 쓰지 않기 운동.’이다.
미도리는 사육실장이다.
처음에는 예의 바른 아이였다가 곧바로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는, 흔하디흔한 사육실장.
“똥닌겐! 이따위 음식은 치우고 당장 우마우마한 스시와 스테이크를 가져오라는 데샤앗!”
“그래그래. 미도리는 아침부터 활기차구나.”
매일 아침 미도리의 외침에도 주인은 실장푸드만을 준다.
밥그릇에 반도 채 차지 않는 싸구려 실장푸드가 미도리의 하루 식량이었다.
소식하는 실장석은 평균적인 실장석에 비해 1년가량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 때문이다.
“이딴 건 줘도 안 먹는 데샷! 도게자를 하며 우마우마를 가져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입에 안 대는 데샷!”
밥만 주고 바쁘게 일을 하러 나서는 주인에게 미도리는 오늘도 닿지 않는 고함을 친다.
주인이 사라지고도 한참을 씩씩대던 미도리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푸드를 힐끗 바라본다.
“데에... 절대로 안먹는 데샷...”
아까와 비교해 확연히 작아진 소리.
계속해서 꼬르륵 거리는 배와 씨름하던 미도리는 점심때가 돼서야 결국 푸드에 손을 댄다.
“데챱데챱. 내일은 절대 안 먹는 데챱. 똥닌겐에게 항의하는 데챱.”
매일의 맹세도 희미하게 미도리가 정말로 밥을 먹지 않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푸드를 게눈 감추든 순식간에 먹어버렸지만 아직 배는 반 밖에 차지 않았다.
“데에... 푸드를 먹어도 배고픈 데스우.”
조금만 배가 불러도 불평을 하는 미도리이기에 주인이 주는 양은 항상 모자랐다.
“뎃승. 뎃승.”
평소라면 자실장 시절부터 가지고 놀아 이제는 질린 공과 블록을 가지고 놀아야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며칠 전 주인은 사육 2주년을 기념해 실장석용 크레파스를 사 준 것이다.
혹시 모를 임신을 방지하기 위해 빨간색과 초록색이 없는 실장석용 크레파스를 들고 미도리는 종이에 열심히 낙서를 시작했다.
“뎃승 뎃승. 똥닌겐은 세레브한 와따시의 노에인 뎃승~. 매일매일 우마우마한 스시와 콘페이토를 바치는 뎃승~.”
현실과 동떨어진 노래를 데스데스하면서 부르며 놀다 보니 어느새 주인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다녀왔어 미도리.”
“똥닌겐! 뭐하다 이제 온 데스! 이 죄는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모자란 데스!”
양팔을 휘두르고 데스데스하며 화를 내는 미도리를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성체 실장석이 고함을 지르면 시끄럽기만 하겠지만 성대에 열처리한 사육실장의 목소리로는 그리 씨끄럽지도 않았다.,
“벌써 밥 시간인 데스! 당장 네놈이 먹는 우마우마한 것은 내놓는 데스!”
주인은 밥을 먹는 동안 미도리가 데스데스하며 화내는 것을 보아도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지금 먹을 것을 주면 내일 푸드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데에. 소리를 계속 질렀더니 배고픈데스. 물이라도 먹는 데스. 데챱데챱.”
한동안 떠들다가도 곧바로 조용해지는 미도리를 보고 주인은 싱긋 웃었다.
수조에는 미도리가 크레파스를 가지고 논 종이가 흩어져있었다.
저대로 놔두면 운치에 더러워질 수 있으므로 주인은 수조 속에서 종이를 꺼냈다.
“데엣! 와따시의 보물을 가져가지 말라는 데샷!”
미도리의 항의를 무시하고 주인은 그림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뭘 그렸는지 알아볼 수 없었지만 뭔가 열심히 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크레파스를 사 주길 잘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주인은 인간의 미적 감각으로도 그럴싸해 보이는 한 장을 따로 빼내어 보관했다.
그리고 나머지 종이를 버리는 모습을 미도리는 데에 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한데스. 너무한데스.”
풀 이죽은 미도리를 보고 주인은 놀아주기 위해 손가락을 수조로 집어넣었다,
미도리는 데샷 데샷 거리며 주먹을 날렸지만, 아무리 성체실장이라 하더라도 고작해야 실장석의 주먹이다.
간지럽기만 한 주먹에 주인은 웃고만 있었다.
“데휴. 데휴. 지친데스.”
그렇게 어느 정도 놀자 기운이 빠져 털썩 주저앉는 미도리를 보고 주인은 손가락을 빼냈다.
꾸벅꾸벅 조는 미도리가 귀엽기만 한지 주인은 내내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미도리. 오늘 직장에서 그 상사가 말이지...”
“그래서 그 놈이...”
“정말 웃기지 않아? 그치 미도리.”
미도리는 지친 몸으로 데스데스 하고 울 뿐이었지만 주인은 마치 미도리와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아지나 고양이와 달리 실제로 ‘대화하는’ 듯한 기분.
이러한 부분이 실장석 사육이 끊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한번 링갈을 써 볼까?’
순간 충동이 든 주인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링갈 사용은 실장석 사육의 금기 중 하나였다.
링갈 따윈 없어도 미도리와는 마음이 통하는 것 같다고 느끼며 주인은 어느새 잠든 미도리를 살짝 쓰다듬고는 침대로 옮겨 이불을 덮어 주었다.
사육실장 미도리와 주인의 하루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계속될 것이다.
자를 갖고 싶다는 것. 스시와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는 것.
일반적인 실장석이 원하는 것들을 미도리는 절대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사육실장의 삶과 들의 삶.
어떤 삶이 실장석에게 행복한 삶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그걸 결정하는 것은 실장석이 아닌 인간이다.
그리고 애완동물인 이상 실장석들은 영원히 전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애완동물은 주인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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